소설리스트

히어로 만화 속으로 나 강림-175화 (175/236)

175화

정신지배(2)

타투 다프네를 불태우는 황색 화염 속에서 퀘이사, 강수아는 정신을 차렸다.

삐죽 나온 소연의 얼굴이 다크 카이저와 밀키웨이를 데리고 가던 장면이 떠올랐다.

다행이었다.

밀키웨이도, 다크 카이저도, 모두 자신의 인생을 구해준 생명의 은인들이었다.

그런 사람들을 자신의 손으로 다치게 했다면, 엄청난 죄책감에 시달려야만 했을 터였다.

‘몸이… 말을 안 들어.’

방금 싸움으로 인해 분명 정신은 조금 돌아왔지만, 몸은 자신의 통제를 벗어나 있는 상태였다.

마치 잠에 빠져 꿈을 꾸는 듯한 감각이었다. 온몸이 노곤해져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아무것도 내 말을 듣지 않아. 하지만….’

이대로 포기할 순 없었다.

히어로였던 부모님이, 생명을 태워 가며 지켜준 목숨이었다.

다크 카이저가, 자신을 희생해가며 지켜주었던 목숨이었다.

그런 자신의 능력을 빌런이 사용해 악행을 저지르도록 내버려 둘 순 없었다.

강수아는 다크 카이저와 밀키웨이가 사라진 방향을 바라보며 손가락을 움직이기 위해 용을 썼다.

언젠가, 다크 카이저의 사이드킥인 다크 스코프가 자신의 슈트를 살펴본 적이 있었다.

새롭게 개발한 기능이라며, 자신의 슈트 장갑에 몇 가지 통신과 관련된 제스쳐 기능을 만들어 넣어준 적이 있었다.

몇 번 손발을 맞춰본 적 있는 사이였기에, 언젠가 또다시 팀워크를 맞출 상황이 오면 쓰일 거라 생각했었는데.

이런 상황에서 사용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거… 어떻게 하더라… 이거 맞나?

정신지배를 당했기 때문인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지금 하고 있는 것이 정답이었어야 했는데….

“돌아가자.”

자신에게 정신지배 능력을 사용한 빌런의 목소리가 귓가로 들려왔다.

‘아직… 안돼… 조금만 더….’

명령을 듣고 움직이려던 몸을 가까스로 멈춰 세우며, 강수아는 손가락을 억지로 움직였다.

제발… 제발….

“뭐지? 돌아가자니까? 벌써 정신 지배가 풀렸나?”

휘익-

‘안돼!!!’

가까스로 잡았다고 생각했던 몸의 주도권은, 메두사의 휘파람 소리와 함께 다시 완전히 넘어가고야 말았다.

강수아의 정신은, 다시 천천히 심연 같은 마음 속으로 가라앉고 말았다.

*    *    *

“그래. ‘앞으로도’ 보다는 ‘이번만큼은’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리겠지만 말이지.”

“참나. 너무 쪼잔하시네요.”

한참을 서로 으르렁대며 싸우던 두 사람이, 서로 힘을 합치기로 마음 먹고 있던 바로 그때.

‘…이거 이상한데.’

도유진은 그런 소연과 다크 카이저의 모습을 지켜보며 묘한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두 사람 사이에서 느껴지는 미묘한 기류를 조금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다는 애들이 보여주는, 간질간질한 느낌이 드는 다툼.

도유진은 다크 카이저와 소연이 서로 부딪히는 것에서 그런 묘한 감정의 편린을 읽었다.

‘아무래도 착각이겠지. 소연이는 강림이를 좋아하니까… 가만 있어 보자.’

어쩐지 생각해보면 소연이는 다크 카이저를 꽤 믿고 있는 느낌이기도 했다.

지난번, 자신이 친구 지예를 구하기 위해 뛰어들었을 때에도, 누군가가 우리들을 구해줄 거라며 호언장담을 했었지.

그리고 소연이 호언장담하기 무섭게 다크 카이저가 나타나 유진과 소연을 구해주었었다.

그러고 보면 평소에도 그랬다.

히어로와 관련된 이야기에는 별 관심이 없는 것처럼 굴던 한소연이 어쩐지 다크 카이저와 관련된 소식에는 꽤 해박한 편이었던 것이다.

다크 카이저와 관련된 뉴스를 보며 조금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던 적도 있었고.

어쩌면, 두 사람이 서로 아는 사이일 수도 있지 않을까?

잠깐 그런 생각을 하던 도유진은, 자신의 생각이 너무 멀리까지 흘러갔다는 것을 깨닫고 피식 웃고 말았다.

생각해보면 소연이 다크 카이저를 걱정하기 시작했던 시기가, 어쩐지 자신들이 현장학습을 갔던 시기와 맞아떨어진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현장학습을 떠났던 당시, 빌런들의 급습을 받았던 자신들을 다크 카이저가 구해줬었던 적이 있었다.

아마 그때 팬이되었겠지.

도유진은 그렇게 생각하며 마음속에 떠오르는 불안감을 애써 지웠다.

*    *    *

며칠 전부로 은퇴한 사이드 킥, 다크 스코프 정학근은 오랜만에 가족과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히어로 활동을 시작한 이후로 한번도 하지 못했던 소풍을 함께 가기로 했기 때문이다.

“우와아아! 아빠 이 트럭 뭐야? 진짜 멋있다!”

“…여보. 이런 차는 언제 산거에요?”

“이… 이혼 서류에 도장 찍고 나서 산 거야. 그 전에 산 거 아냐.”

‘그걸 변명이라고 했냐 정학근 이 바보 같은 놈아.’

“뭐… 차는 잘나가기만 하면 됐죠.”

입 밖으로 내고 나서 아차 싶었지만, 다행히 아내는 별말 없이 눈만 한번 흘기고 말았다.

“우와아아! 움직인다 움직여!”

간만에 함께 나들이를 나가기 때문인지, 유난히 즐거워 보이는 가족들의 모습을 보며 정학근은 일반인의 삶을 만끽하는 중이었다.

히어로로서의 생활에 미련이 남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성장할 수 없는 힘을 가진 자신은, 그들에게 있어서 방해밖에 되지 않는 존재일 테니까.

이제 자신은, 그들이 지켜주는 이 천산시의 평화를 누리는 일반인으로서 살아가게 될 것이다.

바로 그때.

“아빠 오늘은 집에서 자고 가시면 안돼요?”

아들 진이의 입에서 평화를 뒤흔들만한 말이 나오고야 말았다.

이제 막 초등학교에 들어간 어린 아이인 진이에겐 부모의 이혼은 아직 이해하기 어려운 문제였을 테니까.

다시 가정으로 돌아오고 싶은 생각은 있었지만, 자신의 욕심으로 인해 했던 이혼이었기 때문에, 정학근은 지금 입이 열 개라도 할말이 없었다.

어떻게 대답을 해줘야 아이가 상처를 받지 않을지 고민하고 있던 찰나에.

“응. 오늘 주무시고 간대.”

자신보다 한 타이밍 일찍 아이의 말에 대답해주는 아내.

“와아! 오늘 아빠 자고 간다!”

빠앙!

“뭐해요? 안 가고?”

경적 소리가 들리고 나서야 정학근은 신호등 앞에서 자신이 잠시 넋을 놓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어? 어 응 가야지. 그래. 가야지.”

“뭘 그렇게 놀라요? 잠자리 따로 준비해줄 테니까 자고 가요. 아이가 그러고 싶어 하는 거 같으니까. 오늘만이에요.”

“어. 응. 그래. 오늘만.”

바로 그때.

삐익-삐익-삐익-

갑작스럽게 차 안에서 울리기 시작하는 경적음. 아직 채 떼지 않은 경보기가 차 안을 시끄럽게 울렸다.

“뭐… 뭐에요?”

“와~ 사이렌이다! 사이렌! 경찰트럭 같아!”

경보음이 들리자마자 정학근은 반사적으로 차체 안의 버튼을 눌렀다.

삐익-

앞유리창에 떠오르는 홀로그램.

“우와! 아빠 차 멋있어! 진짜 최고야!”

홀로그램 안에는, 퀘이사의 호출이 들어와 있었다.

<퀘이사 : 화염이 모두 떨어졌음. 화염의 충전이 필요함.>

“이건….”

그 화면을 보자마자 정학근은 본능적으로 느꼈다. 무언가 자신을 필요로 하는 일이 생겼다는 사실을.

하지만….

정학근은 나들이를 가기 위해 자신의 차 안에 함께 있는 가족들을 돌아보았다.

자신은 은퇴한 몸이고, 더 이상 히어로일을 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이제 가족들과 다시 관계를 회복하고 있는 상태였는데… 또 다시 실망을 시키게 된다면….

정학근이 그런 생각을 하며 정신을 놓고 있는 사이, 옆에 앉아있던 정학근의 아내가 입을 열었다.

“가요. 여보.”

“응? 어… 어딜?”

“지금 당신이 필요하다는 거 아니에요? 가요. 가서 도와주자구요.”

은퇴하겠다는 사람 불러오는 덴 이유가 있겠죠. 그 사람들이 있어서 우리가 평화롭게 사는 거잖아요.

그렇게 말하며 정학근의 아내는 안전벨트를 꽉 조여맸다.

“빨리 가자니까요? 사람들 구하러.”

덜커덕 덜컥.

기어를 올리며 정학근이 말했다.

“그래. 구하러 가야지.”

지이이잉-!

어느새 섀도우 머신으로 변한 트럭의 차체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    *    *

-다시 다크 카이저.

“위치 추적은 안돼요?”

“내가 만들어준 호출기는 모두 부숴버린 모양이야. 위치 파악은 안 되는군.”

“그런….”

지금 상황에서 도움이 될만한 일손을 구한 건 좋았지만, 여전히 퀘이사의 정확한 위치를 파악하는 것은 어려웠다.

소연의 순간이동만으로도 화염으로 추진력을 만드는 퀘이사의 비행 속도를 따라가긴 무리였던 것이다.

삐빅-삐빅-

급박하게 느껴지는 다크 호출기의 호출음.

어?

나는 호출기에 떠오른 이름을 보고 놀랄 수 밖에 없었다.

호출기에는, 얼마 전 전투로 인해 능력을 잃고 은퇴를 준비하던 다크 스코프의 이름이 떠올라 있었기 때문이다.

혹시… 저쪽에도 무언가 다른 일이 터진 건 아닐까?

갑작스럽게 밀려오는 걱정을 밀어내며, 나는 통신을 연결했다.

<“앗? 다크 카이저 님!”>

호출기에서 들리는 밝은 목소리를 들으며, 나는 조금 안심했다.

그리고, 동시에 조금 목이 메이는 것을 느꼈다.

없어진 지 며칠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이렇게 그리울 줄이야.

처음에는 그냥 조금 바보 같은 아저씨라고 생각했는데, 어느샌가 나도 모르게 의지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방금 퀘이사님께서 제게 도움 요청을 하셨는데 말이죠… 지금 무슨 일 터진 거 맞습니까?”>

도움 요청? 퀘이사가?

【“그래. 퀘이사가 그렇게 쉽게 정신을 완전히 빼앗길 리가 없지. 아직 남은 부분이 있는 모양이다. 아직은 포기할 때가 아니야.”】

“무슨 도움을 요청했지? 어떤 식으로?”

<“앗. 그게….”>

순식간에 퀘이사의 장갑에 들어가 있던 제스쳐의 호출 기능에 대해 설명해주는 다크 스코프 아저씨.

호출 기능을 사용할 수 있다면… 혹시 위치추적도 가능하지 않을까?

나는 곧바로 생각하고 있던 것을 다크 스코프 아저씨에게 물어보았지만….

<“죄송하지만… 해킹당할 경우 악용당할 여지가 있어서 정확한 위치 추적은 할 수 없게 만들어놨습니다. 하지만 대략적으로 어디에 있는지는 알 수 있습니다. 대략적인 위치에 대해서는 통신편으로 보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삐빅

다크 스코프에게서 내게로 전송되어지는 위치정보.

이 정도만을 이용해서 파악하긴 너무 넓은데….

[“괜찮아요 마스터. 다크 스코프가 보내준 정보와 더불어 지금까지의 진행방향과 진행속도, 거기에 SNS에 올라온 시민들의 목격담을 이용하면 조사해야 할 구역을 최대한으로 좁힐 수 있어요.”]

띠리리릭-

내 눈 위로 마구 떠오르기 시작하는 홀로그램.

[“범위를 좁혀봤어요 마스터.”]

내 눈 위로 떠오르는 홀로그램 지도에는 단 한 곳의 위치만이 떠올라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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