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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어로 만화 속으로 나 강림-178화 (178/236)

178화

정신지배(5)

펑!

빌라의 벽이 결국은 살덩어리 괴물의 몸을 버티지 못하고 무너졌다.

괴물이 계속해서 내뿜는 산성액체를, 빌라의 벽이 견디질 못한 것이다.

「“소연! 놈이 도망친다! 쫓아야만 한다!”」

데다이트의 놀란 목소리가 소연의 머릿속을 울렸다.

빌라의 벽을 녹이는데 성공한 괴물이 바깥으로 뛰쳐나가기 시작한다.

“어? 아… 알겠어!”

좁은 방 안에서와는 다르게, 덩치에 맞지 않는 빠른 속도였다.

“끄어어어억 으어어억!”

배 쪽에서 환한 빛을 내뿜으며 길로 뛰쳐나간 괴물은 순식간에 주목을 받았다.

“뭐야? 저게 뭐야?”

“꺄아아아악! 괴물이야!”

“도망쳐!”

도망치는 괴물의 뒤를 따라붙으려던 소연은 깜짝 놀라 벽 뒤로 숨었다.

자신은 히어로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슈트 같은 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지금 이대로 바깥으로 나와 괴물과 대적한다면, 자신의 신원이 세상에 노출될지도 모른다.

소연의 신원이 노출된다는 것은, 생각보다 더 무서운 일들을 불러올 수 있었다.

대다수의 이능계열의 초능력자들이 이질적인 능력들을 많이 다루고 있지만, 소연의 능력은 그것보다 훨씬 더 이질적인 편이었다.

차원 이동과 생명 창조.

혹시 자신과 비슷한 초능력을 사용하는 사람이 있는지 확인해보기 위해 온갖 곳을 뒤져보기도 했지만, 소연과 비슷한 능력을 가진 사례는, 공식적으로 단 한 번도 발견된 적이 없었으니까.

어쩌면, 소연만이 유일하게 가지고 있는 능력일지도 모른다.

만약 바깥으로 나갔다가 자신의 정체가 발견되기라도 한다면, 주목받은 소연은 분명 큰 피해를 입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소연은 자신의 친구, 강림을 떠올렸다.

매일 밤마다 가면을 쓰고 이 도시를 구하기 위해 자신의 인생을 내던지는 영웅, 다크 카이저의 모습을.

소연은 머릿속에 떠오르는 그대로 슈트를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데다이트라는 존재도 스스로 만들어낸 자신인데, 옷가지 정도는 만들지 못할 리가 없었다.

공포영화를 많이 본 탓인지, 소연이 만들어낸 슈트는 히어로보단 빌런에 가까웠다.

‘뭐 어때? 어차피 내 정체만 가려지면 되는 걸.’

천산시에 새로운 히어로, 어비스 위치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슈트를 만들어 입은 어비스 위치는, 빌라의 벽을 뚫고 뛰쳐나간 괴물을 쫓기 시작했다.

*    *    *

Swish!

[“마스터! 머리 위!”]

내 머리 위를 스쳐 지나가는 퀘이사의 발차기를 가까스로 피했다.

공중전에 익숙하지 않은 탓인지 몸이 한차례 휘청거린다.

마치 내가 그러길 기다렸다는 듯 또다시 뻗어져 오는 퀘이사의 연속 발차기.

다리 옆구리 어깨.

속절없이 내 몸에 틀어박히는 발차기를, 나는 아머모드의 방호능력으로 가까스로 흩어버릴 수 있었다.

아머 모드로 변형한 슈트의 방호능력으로 타격을 조금 흩어낼 수는 있지만, 미세한 타격은 점점 쌓여가고 있는 상황이었다.

“퀘이사! 정신차려! 내 얼굴을 똑바로 봐!”

혹시 조금이라도 정신을 차리게 만들 수 있을까 싶어 말을 걸어보았지만….

“…….”

내게 돌아온 것은 퀘이사의 대답이 아닌, 공격이었다.

쩌어어엉!

마치 공기가 찢어지는 듯한 소리가 들려오며 퀘이사의 발차기가 날아든다.

피하기엔 늦었다. 팔을 들어올려 가까스로 퀘이사의 공격을 막아내보았지만….

퍼억!

내 어깨에 틀어박힌 발차기에 얻어맞은 나는 반대편에 있는 건물의 벽까지 날아가 틀어박히고 말았다.

쾅!

“꺄아아아악!”

“뭐야? 지진이야?”

사람이 많은 건물 주변에서 싸우는 것은 피해야만 했다.

비명을 지르는 사람들의 소리를 들으며, 나는 다시 퀘이사를 향해 쏘아져 나갔다.

공중전으로 유도하면, 정신지배에 당한 퀘이사가 화염을 난사할 거다. 그렇게 된다면 화염을 순식간에 쏟아버린 퀘이사를 손쉽게 제압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그렇게 기대했었다.

하지만 내가 그렇게 기대하고 있을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는 것처럼, 공중에서 전투를 벌이는 동안 퀘이사는 비행을 위해 사용하는 화염 외에는 절대 사용하지 않았다.

오히려 나보다 훨씬 더 오랫동안 히어로 활동을 해왔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는 듯, 실전으로 다져진 전투감각과 완급조절로 나를 능욕하다시피하고 있었다.

그동안 배운 복싱이라는 무술은, 기본적으로 땅에 발을 딛고 사용하는 무술이다.

주먹을 휘두르는 방법부터, 스텝을 밟는 방식까지. 전부 지상 위에서의 싸움에 특화되어있는 무술.

공중전에서는 사실상 사용할 수 없는, 무용지물인 무술이었다.

차라리 땅이었다면, 복싱으로 전투상황을 리드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지상에서의 전투 상황이었다면, 또다시 화염 능력을 중심으로 거리를 두고 전투를 이끌어나갔겠지. 전투에 천부적인 재능을 가지고 태어난 아이다. 자신의 능력을 좋은 곳에 사용하고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해야겠어.”】

그 강력한 히어로가 지금 내 상대긴 하지만 말이지.

퍼퍼퍽.

벨제뷔트와 대화하고 있는 사이에도 순식간에 내 가슴팍에 세 방의 발차기가 틀어박힌다.

무슨 다리가 저렇게 길어?

강수아가 여자치고는 큰 키를 가지고 있는 건 맞지만, 그래도 남자인 나보다는 작았다.

그런데 다리 길이는 나보다 더 긴 듯한 느낌이었다.

마치 공중에선 어떻게 근접전을 유도해야 하는지 빠삭하게 아는 듯한 느낌.

그 생각을 하고 있는 사이에도, 재차 다시 내 가슴팍을 노리고 들어오는 발차기.

Booooosh!

나는 퀘이사가 하는 것처럼, 순간적으로 화염을 분사해 공중에서 몸을 한 바퀴 돌렸다.

퀘이사의 긴 다리는 내 가슴팍을 맞추지 못하고 스쳐 지나갔고.

나는 공중에서 몸을 돌린 원심력을 사용해 그대로 퀘이사를 향해 발차기를 돌려주었다.

정확하게 퀘이사의 옆구리에 틀어박히는 내 발차기.

퍼억-!

화르륵!

분명 내 발차기가 적중하는 데 성공하긴 했지만, 제대로 맞는듯한 느낌이 들진 않았다.

상대인 퀘이사가 허공에서 타격을 흩어버리는 방법에 익숙한 탓이리라.

그 이후로 이어지는 공방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퀘이사는 마치 나를 약 올리기라도 하는 듯 긴 리치를 이용해 나를 몰아붙였고, 가까스로 내가 먹이는 데 성공한 공격은 흩어버렸다.

언젠가 한번 느낀 적 있는 감정이었다.

막막함.

지훈이형과 상대해야할 때 느꼈던 막막함.

나는 그 정도의 막막함을 느끼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그때도 그랬지.

약의 기운에 취해 제정신이 아닌 채, 악행을 저지르려던 지훈이 형의 인생을, 나는 포기하지 않고 구해내는 데 성공했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내가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나는 퀘이사를 구할 수 있을거다.

나는 두 주먹을 꽉 쥐고 퀘이사를 향해 다시 한번 달려들었다.

*    *    *

“꺄아아아악!”

“도망쳐!”

“살려주세요!”

도시에서 들려오는 비명을 들으며, 메두사는 미소 지었다.

자신이 예상하지 못한 괴물이 나타나면서부터, 예상보다 훨씬 더 많은 혼돈력이 차오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공중에서 일어나고 있는 두 강력한 히어로의 전투, 그리고 지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두 강력한 괴물의 전투.

전투가 격해지면 격해질수록, 메두사가 들고 있는 시험관이 점점 차오르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훨씬 더 많은 양이었다.

어쩌면 오늘, 자신이 이루고 싶었던 목표를 이룰 수 있을지도 모른다.

메두사에게 있어서, 이 세상은 불합리함이 가득한 세계였다.

이 세상은, 태어날 때부터 강자와 약자가 나뉜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초능력 때문이었다.

이 세상은 초능력자들에게 관대하다.

직종에 따라 우대하는 초능력자가 존재하고, 그런 초능력자들은 조금의 노력만으로 손쉽게 사회에서 가장 선망받는 직업들을 가질 수 있었다.

가지고 태어난 능력을 통해 손쉽게 직장을 구할 수 있고, 대접받을 수 있으며, 좋은 삶을 누린다.

하지만, 아무것도 가지지 않고 태어난 누군가는 언제나 외면당한 채 살아야만 했다.

그래도, 뮤턴트 인자를 가진 슈페리어들은 조금 사정이 나았다.

아무런 능력이 없더라도, 자신의 몸에 잠들어 있는 뮤턴트 인자가 언젠가 어떤 능력을 만들어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가지고 있을 수 있으니까.

하지만, 몸 안에 완전히 뮤턴트 인자가 존재하지 않는 네추럴들에게는 그러한 희망이 존재하지 않았다.

메두사는 그런 세상이 불합리하다고 느꼈다.

그런 메두사는 어느 날, 마법이라는 존재가 이 세상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초능력자가 아닌, 네추럴도 강력한 힘을 가질 수 있게 만드는 마법은 메두사에게 매력적으로 느껴졌고, 메두사는 자신의 인생을 마법에 바쳤다.

새로운 힘에 눈을 뜨면 눈을 뜰수록, 메두사는 더 큰 힘을 갈구하였다.

더 큰 힘. 더 큰…! 세상을 지배할 수 있을 만큼 더 큰 힘을!

메두사는 한계를 넘고 싶었고, 한계를 넘기 위해서 더 큰 존재에게 힘을 빌리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다.

결국 메두사는 마법사들 사이에서 제명당한 채 도망다니는 도망자가 되고 말았다.

하지만, 도망만 다니는 일도 오늘로 끝을 보게 될지도 몰랐다.

악신 릴리트가 내려준 힘을 얻게 된다면, 이 세상을 자신이 지배하게 될 테니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던 메두사는 손에 쥐고 있던 완드를 들어올렸다.

지이이잉-

메두사가 만들어낸 붉은색의 마도막이, 푸른색의 마도막을 틀어막고 있었다.

자신의 마도막을 점점 밀어내고 있는 다프네의 마도막을 보며, 메두사는 인상을 크게 찌푸렸다.

“아직 실력이 녹슬진 않았군. 다프네. 완드도 없이 이 정도의 마법을 사용하다니.”

“원래부터 그랬지. 언니. 이것도 재능차이야.”

“너는, 내가 듣기 싫어하는 말만 골라하는 재능이 있다니까.”

*    *    *

“꺄아아악!”

“살려주세요!”

저 멀리서 시민들이 비명을 지르는 소리만이 들려왔을 뿐이다.

시민의 비명을 들은 정학근은, 자신의 마음이 조금 급해지고 있음을 느꼈다.

슈페리어로서의 능력이 거의 상실된 자신은 지금 저기에 가봤자 도움이 되지 않을거다.

지금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 맞았다.

지금이라도 시민들이 비명을 지르고 있는 곳으로 달려가고 싶은 마음을 꾹 누르며, 정학근은 자신이 여기까지 온 목적을 상기했다.

다크 스코프는 공중을 올려다보았다.

아까 전, 차를 타고 오면서도 본 적 있는 불꽃놀이가 다크 스코프의 머리 위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허공에서 번쩍번쩍 피어오르는 화염, 그리고 가끔씩 피어오르는 흑염.

그것만 보고도 정학근은 지금 일어나고 있는 상황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정학근은 다크 카이저와 퀘이사가 전투를 벌이고 있는 공중의 바로 밑, 가장 높은 빌딩으로 올라왔다.

하지만… 그래도 트라이해보긴 해야겠지.

정학근은 손에 들고 있었던 장비를 들어 올렸다.

라이트닝 파이어.

언젠가 한 번, 퀘이사를 기절시키는 데 썼던 적이 있던 무기였다.

부랴부랴 전투 상황을 지켜보기 위해 공중위로 올라왔지만, 그래도 전투를 도와주기엔 아직 쉽지 않은 정도의 거리였다.

그래도… 시도는 해보아야겠지.

정학근은 장비에 달려 있던 스코프를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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