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어로 만화 속으로 나 강림-179화 (179/236)

179화

과욕의 결말

길게 이어진 전투 끝에, 퀘이사의 머리색은 점점 흑색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머리칼에 저장해두었던 화염이 거의 소모되어가고 있기 때문일 거다.

하지만….

퍼억!

퀘이사가 뻗어낸 발차기가 적중하면서, 가까스로 버티고 있던 다크 아머 모드 또한, 모든 힘을 잃고 부서지고 말았다.

부서진 다크 아머의 파편이 허공에 흩날린다.

다크 아머가 꽤 많은 충격을 흡수해주었지만, 이미 내 몸 또한 만신창이인 상태였다.

이대로 갔다간, 퀘이사의 화염이 모두 소모되는 것보다, 내가 쓰러지는 것이 먼저일지도 모르겠다 생각하고 있던 바로 그때.

<“다크 카이저 님! 제가 도착했습니다!”>

이곳에서 들려서는 안 되는 통신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마스터. 지금 있는 곳을 기준으로, 오른쪽 아래에 있는 빌딩을 보세요!”]

나는 제인의 외침을 듣고 오른쪽 아래 빌딩으로 슬쩍 눈을 돌렸다.

오른쪽 아래에는 평상복 위로 가면만을 얼굴에 간신히 쓴 다크 스코프가 손에 장비를 든 채 이쪽을 겨누고 있었다.

반갑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다크 스코프는 이제 능력을 잃고 서서히 일반인에 가깝게 변해가고 있었다.

괜히 이 싸움에 얽히게 내버려 두면, 다크 스코프가 크게 다치진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다크 스코프를 바라보던 내게, 땀범벅인 다크스코프의 평상복이 보였다.

지금 계절은 겨울을 앞둔 쌀쌀한 가을인데도 불구하고, 다크 스코프 아저씨는 땀을 뻘뻘 흘리며 이곳까지 뛰어온 거다.

이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을지도 모른다는 그 걱정 때문에.

그러니까, 지금 저곳에 서서 나를 바라보고 있는 저 사람은,

능력을 모두 잃고 일반인이 되었음에도 아직 히어로였다.

나는 다크 스코프 아저씨가 손에 쥐고 있는 물건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언젠가 퀘이사와 함께 협동임무를 했을 때 사용한 적있던, 번개 불꽃을 뿜어내는 도구였다.

당시 퀘이사는 이 불꽃을 받아들여 사용하는 대신, 결국 기절을 하고 쓰러지고 말았었다.

저걸로 쏘아 맞힌다면 퀘이사는 번개가 담긴 불꽃을 흠뻑 흡수할 테고, 몸 안을 진동하는 번개에 기절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저 밑에서 쏘아 맞히기에는, 퀘이사의 속도가 너무나도 빨랐다.

퀘이사의 속도를 늦춰야만 한다.

이대로 화염을 계속 소모 시켜 속도를 느리게 만들 수도 있지만, 내가 그사이를 버틸 수 있을지 나는 확신할 수 없었다.

그렇다면….

나는 내게로 뻗어지는 퀘이사의 발차기를 막아내거나 피해내는 대신, 그대로 손으로 받아쥐었다.

턱!

내게 발을 잡힌 퀘이사는 그대로 화염을 분사해 나를 밀어내려고 했지만.

나는 그 화염을 그대로 몸으로 받아내며 퀘이사를 끌어안았다.

최근 퀘이사를 끌어안을 일이 많네.

쇠도 녹이는 위력을 가진 퀘이사의 화염을 온몸으로 받아내기란 쉽지 않았다.

지글지글 끓는 화염이 결국 내가 입은 다크 카이저의 슈트를 녹이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하지만… 하는 수밖에.

나는 퀘이사를 한껏 끌어안은 채, 우리를 겨누고 있는 다크 스코프를 향해 외쳤다.

“쏘시오! 지금 당장!”

쏘아진 번개 불꽃이, 나와 퀘이사를 맞췄다.

*    *    *

“허억… 허억….”

마법 대결에서 밀리고 있다.

메두사는 인상을 찌푸렸다.

자신이 훨씬 더 일찍 마법에 입문했음에도, 메두사는 단 한 번도 다프네를 이겨본 적이 없었다.

메두사에게 있어서 그런 다프네는 시기와 질투의 대상을 넘어선, 증오의 대상이었다.

어딜 가서도 좋은 대접을 누리고 살 수 있는 치료 능력을 가진 다프네가, 마법에서까지 자신을 넘어설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메두사는 스승 몰래 흑마법을 연마하기 시작했다.

조금 더 쉽고 빠르게 강해져야만, 다프네를 앞지를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자신이 그렇게 노력하는 동안, 다프네는 마법사를 그만두고 인간들 사이에 섞여 생활하고 있었음에도 전혀 녹슬지 않고 여전히 자신의 위에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 사실에 불쾌함을 느낀 메두사가 이를 악물고 완드를 다시 한번 뻗어내던 바로 그때.

쨍그랑!

균형을 이루고 있던 마도막들이, 과한 힘을 견디지 못하고 무너졌다.

펑!

터져나온 마도력을 견디지 못한 메두사가 바깥으로 튕겨 나갔다.

핑그르르.

메두사가 손에 쥐고 있던 완드가 힘을 견디지 못하고 바깥으로 떨어졌다.

메두사는 여기가 모든 일의 끝임을 예감했다.

자신은 또다시 다프네에게 패배했고, 자신의 계획은 여기서 끝을 맞이하고 말 터였다.

그렇게 생각하며 모든 걸 놓아버리려는 메두사의 귀로, 다프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제 그만 포기해. 언니. 여기서 그만둔다면, 아직 용서받을 수 있어.”

용서를 받아라.

그 말이 메두사를 분노하게 만들고 말았다.

“용서? 누구한테? 너에게? 아니면 이 세상에게?”

웃기지마라.

용서받을 생각이었다면 시작하지도 않았다.

“네 육신에 고요를.”

메두사라는 이름을 받게 해준, 메두사의 장기. 마비 마법이 다프네를 향해 날아갔다.

이 마법이라면, 아주 잠깐이나마 메두사에게 시간을 벌어줄 터였다.

메두사는 그대로 품 안에 있던 혼돈력을 꺼내어 하늘 위로 치켜들었다.

조금 부족하더라도, 릴리트에게 닿을 수 있기를.

메두사의 입에서, 릴리트 강림을 위한 주문이 외워지기 시작하였다.

“뒤틀린 존재의 여왕이시여. 보이지 않는 세계의 여신이시여. 당신의 충직한 하인에게 구원을!”

사아아악-

성공했다.

주문을 모두 외운 메두사는 그렇게 생각했다.

저 먼 외우주에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릴리트의 시선을 느꼈기 때문에.

그 시선을 느낀 메두사는 릴리트가 자신을 위해 힘을 내려줄 것임을 의심치 않았다.

혼돈력이 부족했음에도 이곳을 바라봐주었다는 것은, 자신의 마음이, 기도가 와닿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메두사는 곧, 그 생각은 자신의 착각이라는 사실을 금방 알게 되었다.

자신을 발견한 릴리트가, 부족한 혼돈력을 자신의 영혼으로 채우려고 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으니까.

커어억… 커억… 컥….

영혼의 힘을 모두 빼앗긴 메두사는, 이윽고 죽음을 맞이하고 말았다.

아직도 힘이 부족했다.

메두사의 영혼마저 집어삼킨 릴리트는 탐욕스럽게 주변을 둘러보았다.

*    *    *

다프네, 아니 밀키웨이는 자신이 결국 자신이 메두사를 막을 수 없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저 먼 외우주의 존재가 이곳을 응시하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으니까.

이곳에서 흑마법이 시행되었음을 깨달은 스승님이 이곳을 향해 달려오고 있긴 하겠지만, 스승님이 이곳에 당도했을 때는 이미 늦은 후일 터.

그렇다면, 이곳을 지킬 사람은 자기 자신밖엔 없었다.

마법사 다프네가 아닌, 히어로 밀키웨이로서.

황서현은 릴리트의 강림을 막아내기로 결심했다.

앞서, 메두사는 자신에게 완드를 가지고 있지 않다고 했지만, 그 말은 틀렸다.

황서현은 완드를 자신의 몸에 그려놓은 상태였으니까.

황서현의 온몸에 그려져 있던 마법진이 환한 빛을 내기 시작했다.

*    *    *

살덩이의 괴물을 막아낸 소연은, 살덩이를 해집으며 자신의 친구 도유진을 찾고 있었다.

빌라의 벽까지 녹여버리는 산성액체를 품고 있는 놈이었다.

도유진이 그 안에서 버틸 수 없으리라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소연은 자신의 친구 유진이 여기서 죽었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없었다.

바쁘게 움직이며 살덩이를 해집던 데다이트의 손이 순간적으로 멈칫한다.

살덩이 속에서 밝게 빛나는 무언가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데다이트는 천천히 그것을 살덩어리 사이에서 끄집어냈다.

“흑… 흐흑… 유진아… 유진아….”

살덩어리의 안에는, 마치 보석처럼 밝게 빛나는 도유진의 몸이 들어가 있었다.

“다행이야… 유진아….”

PZZZZZZZZZZ!

자신의 몸 주변을 찌릿찌릿하게 흘러가는 전류를 느끼며, 강수아는 점점 정신이 돌아오고 있음을 느꼈다.

자신의 몸을 따라 움직이고 있는 화염은, 분명 전격의 힘을 지니고 있는 라이트닝 스파크의 화염이 분명했다.

그리고 이 상황에서 자신에게 이 화염을 쏘아내줄 사람은, 자신이 도움을 요청했던 다크 스코프 밖에 없을 터였다.

그리고….

강수아는 전격의 화염 외에도, 자신을 따뜻하게 해주는 무엇인가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몇 번이고 느껴본 적 있는, 익숙한 따뜻함이었다.

‘다크 카이저….’

지금껏 몇 번이고 자신을 구해준 적 있는, 자신의 동료 히어로 다크 카이저의 따스한 온기.

강수아는 감고 있던 눈을 떴다.

눈을 떴을 때, 가장 먼저 보인 것은 반쯤 녹아버린 다크 카이저의 가면이었다.

그리고, 그 반쯤 녹아버린 가면 너머에서 보이는, 눈을 감고 있는 강림이의 얼굴.

너였구나. 그래. 너였어.

강수아의 머릿속으로 몇 가지 기억의 파편들이 스쳐 지나가기 시작했다.

매일같이 피곤한 표정으로 등교하던 강림의 모습, 가끔씩 몸에 생기던 자잘한 상처들, 건강을 위해서라기엔 과하게 느껴졌던 운동들. 너희 둘은 밤마다 연락이 되지 않는다고 툴툴대던 친구들의 모습들까지.

강수아는 그제야 깨달았다.

그동안 자신과 함께 이 도시를 지키고 있던 히어로가, 자신의 친구였음을.

자신을 몇 번이고 구해줬던 히어로가, 나강림이었음을.

쉬이이이익-

그제야 온전히 몸의 통제를 되찾은 강수아의 감각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찌릿거리는 몸의 감촉과 더불어, 강림이와 자신이 허공에서 떨어져내리고 있다는 사실까지.

pzzzzzzzz!

몸 안을 돌아다니는 전격의 화염 때문에 정신이 혼미해지는 것이 느껴졌지만, 강수아는 이를 악물며 버텼다.

전격의 화염을 받아들여 두 번을 기절했다면, 세 번째는 버틸 수 있어야만 했다.

강림이는 이번에도 자신을 구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주었다.

이번엔 자신이 강림이의 목숨을 지켜줘야만 했다.

하지만 오랜시간 정신지배를 통해 굳어버린 자신의 몸은 명령을 쉽게 따라주지 않았다.

점점 가속도가 붙어 바닥으로 떨어지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이대로 갔다간 자신도 강림이도 모두 죽고 말 터.

“어머. 저게 뭐야?”

“저 위에서 사람이 떨어지고 있는데?”

“꺄아아악!”

조금만… 더… 조금만 더….

떨어지는 수아와 강림의 모습을 보고 있던 사람들이 눈을 질끈 감은 바로 그때.

강수아는 자신의 몸안을 휘젓고 있는 전격의 화염을 뿜어내며 허공을 날아올랐다.

“와아아아아!”

“깜짝 놀랐잖아!”

“살았다!”

허공을 한 바퀴 유영한 수아는 강림이를 안은 채 옥상 위로 향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