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2화
화해하는 법(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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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핵심은 이 부분이라 이말이야….”
‘선생님… 수업 종 쳤는데요!’
소연은 그렇게 크게 외치고 싶은 마음을 꾹 누르며 옆 교실에서 나오는 소리에 집중했다.
다행히도, 아직 저쪽도 계속해서 수업을 하는지 목청 큰 선생님의 목소리가 복도를 지나서 쩌렁쩌렁 울려 퍼지고 있었다.
다행이다. 우리 반이 더 빨리 끝나면 아직은 기회가 있다.
소연은 그런 생각을 하며, 수업 시간이 빨리 끝나길 빌고 있었지만….
“자. 그래서 질문 있는 사람?”
아무도 손을 들지 않을 줄 알았지만, 번쩍 힘차게 손을 들어 올리는 소연의 반 범생이, 힘찬이.
평소에도 눈치가 없는 걸로 유명한 친구였다.
“하아….”
“어 그래. 힘찬이 말해봐.”
교실 내에서 탄식이 터져 나왔지만, 힘찬이는 아랑곳하지 않고 질문하기 시작했다.
“아까 이 부분이 중요한 부분이라고 하셨는데요… 그렇다면….”
이러면 계획에 어긋나는데….
“야 니네 반에 오늘 점심 시간에 축구할 애들 있냐? 사람 부족해.”
“어 그래. 한번 찾아볼게. 몇 명 필요한데?”
“어 몰라? 많으면 많을수록 좋지. 가다가 다른 반에도 좀 물어봐봐.”
조금 더 빨리 끝난 다른 반 친구들이 복도를 어슬렁거리며 떠드는 것이 느껴졌다.
그런 통에 그 목청 큰 선생님의 목소리가 묻혀 들려오지 않았다.
선생님, 제발 조금만 더 빨리 끝내주세요.
“아까 수업 중에 말한 숙제는 꼭 다 해오고, 더 궁금한 게 있는 사람은 교무실로 따라와라. 오늘 수업 끝.”
수업이 끝나기가 무섭게 소연은 자리에서 일어나 교실 뒷문을 박차고 나갔다.
곧바로 강림과 수아가 다니는 옆반의 문을 열고 교실을 살펴보았지만….
‘없어….’
소연의 친구, 수아는 이미 어디론가 사라져버린 후였다.
“저… 저기….”
“응?”
“혹시 수아 어디 갔는지 알아?”
소연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얼굴도 모르는 친구에게 수아의 행방을 물어도 보았지만.
“어? 수아? 저기… 어라? 아까까지 저기 있었는데? 어디 갔지?”
항상 그렇듯, 수아의 행방을 아는 사람은 없었다.
매번 이랬다.
수업이 끝나면 소연은 항상 수아를 찾기 위해 돌아다녔고, 수아는 그런 자신을 피하기라도 하듯, 항상 자리를 비웠다.
소연이 친구를 아무리 모른다고 해도, 이건 분명 자신을 피하는 것이 맞았다.
어… 어떻게 하지?
소연에게 처음으로 친구가 되어준 건 강림이었고, 소연에게 처음으로 변화할 용기를 준 것은 수아였다.
그만큼, 소연에게 있어서 수아는 소중한 존재였다.
그런 수아가, 자신을 피하고 있었다.
항상 같이하던 등교도, 항상 같이 보내던 점심 시간도.
수아가 자신을 피하면서부터 소연은 다시 혼자가 된 기분에 휩싸였다.
‘이번엔 올 때까지 기다려볼까?’
수업에 조금 늦어도, 올 때까지 기다린다면 얼굴을 마주할 순 있을 거다.
그러면 그때 잠깐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소연은 쉬는 시간이 끝날 때까지 기다렸지만, 수아는 나타나지 않았다.
당황한 표정으로 교실 이곳저곳을 살피고 있던 소연의 앞에, 그림자가 하나 드리웠다.
“소연아. 수아 찾아? 도와줄까?”
자신의 첫 번째 친구, 강림이었다.
* * *
[“일단 여자아이들끼리 일어난 일이니까, 사실 마스터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어요. 그냥 셋이 알아서 해결해주길 기다리는 게 가장 좋죠.”]
뭐? 그렇게 해서 지금 일주일 지났는데? 그러다가 셋이 영영 어색해지면 어떻게 해?
[“네. 마스터는 그런 결말을 받아들이기 힘드시겠죠. 그럼 일단 이렇게 하도록 해요.”]
제인의 말은 이랬다.
셋 모두 성격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어떤 일이 있었는지에 대해 제대로 설명해줄 타입은 아니다.
그나마 소연이는 물어보면 무슨 일이 있었는지 내게 알려줄 테지만, 지금 상황은 수아 혼자서 나머지 친구들을 피하고 있는 상황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런 상황이라면, 가장 먼저 수아의 이야기를 들어보는 것이 맞다.
하지만, 수업이 끝나면 부랴부랴 도망가는 수아를 쫓아가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는데….
[“쪽지 쓰세요. 마스터.”]
뭐? 쪽지?
[“쉬는 시간에 대화를 못한다면, 수업 시간에 쪽지를 건네주면 되는 거 아닐까요?”]
수업시간에 무슨 쪽지야. 유치하게.
[“뭐 어때요? 학생 때 쪽지 조금 주고받는 것 정도야. 원래 다들 그렇게 사는 거예요. 저기 보세요.”]
마치 내가 보길 기다렸다는 듯 쪽지를 주고받는 반 여자아이들.
아니. 그래. 쪽지를 보낸다 치자. 지금까지 계속 친구들을 피하고 있는데, 내가 쪽지를 보낸다고 나랑 대화를 하겠어? 어?
[“네. 대화할걸요.”]
어떻게 그렇게 확신하는데?
[“내기 하실래요? 대화를 하는지 마는지?”]
내기? 너랑 나랑 내기해서 걸게 뭐가 있다고.
[“왜 없어요? 제가 지면 일주일 잔소리 모드를 OFF해드릴게요.”]
뭐? 잔소리 모드 오프?
내 머릿속에 존재하는 제인은 항상 잔소리를 할 준비가 되어있다.
밥을 챙겨 먹으라고 하거나, 뭘 먹고 나면 양치를 하라고 하거나, 방 청소를 좀 하라고 하거나, 심지어는 내 옷 입는 스타일까지.
히어로 활동에 훈수할 부분이 없어지자, 이젠 평소 생활하는 부분에서의 훈수가 많아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래도 그런 잔소리의 대부분은 받아들이고 넘어가는 편이었다.
제인은 육체도 없이 AI로서 내 일거수일투족을 바라보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으니까.
매일 같이 지켜봐야 하는 놈이 방 청소도 안 하고, 양치도 안 하고, 밥도 안 처먹으면 보는 입장에서는 답답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와는 별개로, 그런 제인의 참견이 가끔은 귀찮을 때도 있었다.
제인은 내게, 이번 내기를 이기면 일주일간 잔소리를 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이건… 괜찮을지도….
그럼 네가 이기면?
[“제가 이기면, 나중에 마스터가 제 소원을 하나 들어주세요.”]
뭐? 일주일 잔소리 오프랑 소원권은 너무 차이가 큰 거 아니냐?
[“그럼 똑같이 소원권 하실래요? 어차피 저한테 매일 같이 일 시키시잖아요.”]
그건… 그렇지만… 딱히 하고 싶진 않은데….
【“나강림. 혹시 쫄았나?”】
해. 해. 해. 하자고.
당사자도 아닌, 옆에서 보고 있는 개구리의 도발은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쫄아? 내가? AI한테? 하. 절대 아니지.
나는 스프링 노트를 살짝 찢어 쪽지를 적어내기 시작했다.
<수아야. 혹시 나랑 이야기 좀 할 수 있을까? 쉬는 시간에 도서실에서 보자. -나강림>
보통은 이걸 접어서 건네주겠지만, 그렇게 접어주면 애들 눈에 띄겠지.
그럼 애들 입에서 이상한 소문이 나올지도 모른다.
안 그래도 친구들과 싸워서 괴로울 수아에게 또 다른 짐을 얹어줄 필요는 없었다.
수아와 내 자리는 거리가 좀 있는 편이었지만, 히어로 활동을 하며 단련된 내게 그 정도 거리는 의미가 없었다.
나는 쪽지를 동그랗게 말아 수아의 책상 위로 던졌다.
* * *
그리고 쉬는 시간.
도서실에서 기다리고 있던 나는, 문을 열고 들어오는 강수아를 보며 머리를 부여잡았다.
[“그것 봐요, 마스터. 제가 이겼죠?”]
이걸 좋아해야 하나 싫어해야 하나.
“뭐… 뭐야 나강림? 왜 불렀어?”
내가 자신을 불러냈다는 것에 당황한 모양인지, 눈빛이 흔들리기 시작하는 수아를 보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결과가 좋으면 좋은 거지.
“수아야. 혹시 소연이랑 유진이랑 무슨 일 있어?”
어차피 기왕 이렇게 된 거, 돌직구를 통해 수아의 이야기를 들어볼 생각으로 돌직구를 던졌지만.
“어? 뭐?”
어? 이게 아닌가?
당황해서 잔뜩 찌푸려지는 수아의 얼굴을 보며, 나는 함께 따라 당황하고 말았다.
“다른 일은 아니고… 요즘 셋이 갑자기 사이가 안 좋아진 게 느껴져서… 같이 다니던 친구로서 좀 불편하잖아. 그래서 한번 살짝 물어보려고….”
내가 부랴부랴 말을 꼬는 동안, 내 얼굴을 바라보던 강수아가 한숨을 푹 쉬며 고개를 끄덕인다.
“너까지 알아챌 정도면 티가 많이 났나 보네. 그래. 나강림. 무슨 일 있어. 그러니까 좀 도와줘.”
강수아의 얼굴이 벌겋게 홍당무처럼 물들어가기 시작했다.
* * *
‘괜히 이상한 상상했네.’
자신이 강림의 정체를 알아차린 것처럼, 혹시 강림도 지난 싸움에서 자신의 정체를 알아차리게 된 건 아닐까?
그래서 그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 자신을 부른 건 아닐까?
수아는 잠깐, 그런 상상을 했었다.
‘괜히, 그러길 바랐던 거지.’
강림이 그럴 리가 없다는 걸 알면서도, 수아는 내심 자신이 다른 상황을 기대하고 있었다는 걸 인정 할 수밖에 없었다.
“수아야. 혹시 소연이랑 유진이랑 무슨 일 있어?”
하지만, 강림의 입에서 왜 자신을 불렀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고 나서부턴, 수아는 강림의 걱정을 이해하고 말았다.
당연한 일이었다. 만약, 자신이 강림이 같은 상황이었어도 많이 불편하고 걱정되었을 테니까.
사실 강수아 자신도 불편하긴 마찬가지였다. 항상 자신의 옆에 있어 주었던 친구들과 함께 할 수 없다는 사실이, 수아도 매우 쓸쓸했다.
거기까지 생각이 닿은 수아는, 히어로로서의 인생만을 살아가겠다고 결심했던 과거의 자신이 떠올라 창피해졌다.
히어로 활동에 모든 걸 걸었다고 생각했지만, 실은 스스로 부모님을 잃은 고통을 피해 거기로 도피했다는 걸 문득 깨닫고 만 것이다.
사람은, 사람을 떠나 살 수 없는데도 불구하고.
‘이게 세상이 말하는 중2병. 뭐 그런 걸까?’
중2병이면 중2때 끝나야 하는데, 자신은 고등학교 1학년 때까지 중2병이 끝나질 않았던 것이다. 창피하게도.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지금까지 자신이 했던 고민들도 마음속에서 모두 스르르 녹아 스러지는 것이 느껴졌다.
자신의 중2병이 지금, 뒤늦게 끝난 것처럼, 자신의 들뜬 이 마음도 언젠간 끝이 날 테니까.
거기까지 생각한 수아는, 얼굴이 달아오르는 것을 느끼며 입을 열었다.
“지금 당장은 마음의 준비가 안 됐으니까… 점심 시간. 그래. 점심 시간 때 우리 여기서 다시 보기로 하자. 그때 내가 소연이랑 유진이랑 셋이서 이야기해볼게.”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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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이익-
학교종이 울리는 소리를 들으며, 스카 페이스는 담배를 입에 물고 불을 붙였다.
쓰으읍….
빨아들인 연기가 폐를 지나 다시 코로 나오는 동안, 스카 페이스는 다시 한번 학교를 내려다보았다.
이 도시의 학교는 대부분 훈련이 잘되어있는 편이다. 수업이 울리는 시간에는 습격해봐야 의미가 거의 없었다.
수업을 하던 도중 습격을 하게 된다면, 선생님들의 인도 아래 이 학교에 있는 고등학생 전부가 일사분란하게 학교를 탈출하거나, 지하에 있는 벙커로 숨어들 테니까.
만약 스카 페이스의 목표가 지하 벙커에 들어가서 나오지 않는다면, 조금의 농성만으로 금방 또다시 히어로, 그리고 군경의 지원이 들어올 거다.
그렇게 되면 병력을 잃은 스카 페이스는 또다시 목표를 찾기 위해 꽤 오랜 시간을 준비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스카 페이스는 학생들이 가장 편하게 쉬는 점심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점심 시간에는 전부 교실이 아니라, 학교 전부에 여기저기 흩어져 있을 테니까.
그런 상황에서의 습격이 인질을 만들기도 쉽고, 원하는 것을 찾는 것도 쉬울 거다.
이제… 두 시간 정도 남았나….
스카 페이스는 이제는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