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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어로 만화 속으로 나 강림-183화 (183/236)

183화

화해하는 법(3)

수아와의 대화가 끝난 후, 나는 소연이와 유진이에게 수아의 말을 전달해주었다.

“저… 정말? 나랑 이야기해줄 거래?”

소연이는 금방이라도 눈물을 쏟을 것처럼 감동했고.

“…그래. 고맙다.”

도유진은 어색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그리고 4교시 수업이 시작한 직후….

[“거봐요 마스터. 제가 이겼죠? 제가 이겼잖아요.”]

나는 나를 조롱하는 제인의 목소리를 애써 외면하며 생각했다.

이거 대충 이렇게 됐으니까, 점심 시간에 나는 빠져주는 게 낫겠지?

【“내가 인간관계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지만… 그러는 게 낫지 않을까 생각이 드는군.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지는 일이 생길지도 몰라.”】

혹시라도 또 무슨 일이 생긴 거 같으면, 사서 선생님의 의견을 들어봐도 될 테고….

[“하.하.하.하.하! AI한테 졌대요!”]

나 들으라는 듯 내 머릿속을 헤집어대는 제인의 목소리를 들으며, 나는 내심 한숨을 내쉴 수 밖에 없었다.

알겠다. 알겠어. 네가 이겼어. 소원이 있다면 말해봐.

[“으음… 지금 당장 하고 싶은 소원은 없는데… 나중에 사용할게요.”]

그런 게 어딨어? 지금 당장 써야지.

[“좋아요. 그럼 지금 당장 일어나서 아이돌 댄스 추기 하시던가요.”]

…뭐? 지금 수업시간인데?

[“이거 안 하실 거면 나중에 쓰는 걸로 하시던가요.”]

진짜 극악무도한 AI이구나 너. 알겠다 알겠어. 필요할 때 쓰십쇼.

[“걱정마세요. 제가 마스터한테 무리한 걸 시키겠어요?”]

그래. 네가 시켜봐야 뭘 얼마나 시키겠니. 나도 그렇게 걱정하진 않아.

아무튼… 오늘 점심시간은 셋이서 이야기하게 두고 혼자 조용히 놀아야겠구만.

“이 부분은 무조건 시험에 나오니까 별표돼지꼬리땡땡. 이건 수능에도 십중팔구는 무조건 나오는 문제야. 기본 중의….”

“선생님! 진도가 너무 빨라요!”

“수업 시간에 자꾸 뭘 집어먹으면서 하니까 진도가 빠르게 느껴지지. 입에 집어넣은 거 안 뱉어?”

“앗. 들켰다.”

반 친구와 선생님의 대화에 웃음이 터진 반 친구들.

그 사이에 함께 섞여 웃다 문득, 지금 이 상황이 너무나도 평화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친구들끼리 다툼이 일어난 것을 중재하고, 제인과 시답지 않은 걸로 내기하고….

내가 이 세계에 처음으로 도착했을때는 달랐다.

이모와 오래 살아남기 위해서 억지로 히어로 활동을 했고, 내가 한 실수 때문에 비틀어진 이야기를 제자리에 되돌리기 위해서 히어로 활동을 했었다.

하지만 이젠 달랐다.

단순히 이 이야기의 끝을 보고 싶어진 게 아니라, 점점 평화로워지는 이 세계가 사랑스러워졌다.

이 세계의 평화로운 부분들을 보면 볼수록, 그 평화를 지키고 싶다는 생각이 강해지기 시작했다.

내 손으로 만들어가고 있는 이 평화를 너무나도 사랑하게 되었다.

이 세계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선, 아마 평생 히어로 활동을 해야되겠지만….

나는 혼자가 아니니까.

내게는 나를 전심전력으로 도와주는 AI와 지옥의 왕이 있다.

이들의 능력을 함께 사용한다면, 분명 평생 히어로로서 활동할 수 있을 거다.

이 세계의 평화를 지킬 수 있을만큼.

그렇지 제인?

[“그럼요. 평생 도와드릴게요. 걱정마세요.”]

그렇게 평화로운 4교시의 수업 시간이 끝나가고 있었다.

*    *    *

후우….

강수아는 심호흡을 한번 하고 도서실의 문을 열었다.

“어머. 수아 오랜만에 일찍 왔네. 요즘 잘 안와서 무슨 일이라도 있나 했는데.”

“아… 아니에요. 시험기간이라 좀 바빠서 그랬어요.”

“그래. 항상 열심히 하는 모습이 보기 좋네. 그럼 수아가 일찍 온 김에 선생님 빨리 밥 먹고 돌아올게.”

“네. 다녀오세요.”

사서 선생님이 나가는 걸 보며, 강수아는 안도의 한숨을 푹 내쉬었다.

자신보다 일찍 온 친구는 없었다.

당연하다면 당연할지도 몰랐다. 수업이 끝나자마자 거의 뛰다시피 해서 도착했으니까.

왜 그랬냐고?

수업 시간이 동시에 끝나는 반 친구인 강림, 유진이와 함께 어색하게 여기로 올라오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 생각으로 가장 먼저 올라오는 데에는 성공 했지만….

“…안녕.”

“어… 응… 안녕.”

도서실 문을 혼자 열고 들어온 유진이 덕분에, 수아의 노력은 무색해지고 말았다.

“…….”

“…….”

생각해보니까, 단둘이서 이야기를 시작한다는 것도 어색하기 그지없는 일이었으니까.

나강림. 얘는 대체 왜 안 온 거야? 같이 와서 도와줘야지.

“강림이는 안 온대. 자기가 여기서 실수하고 싶지 않다고.”

마치 수아의 생각을 읽은 것처럼 입을 열어주는 도유진.

“그렇구나… 아까 보니까 소연이네 반은 아직 수업 안 끝났더라.”

“응… 나도 아까 오면서 봤어.”

수아도 유진도,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는 데에 서툴다.

수아는 히어로 활동에 몰두하기 위해 스스로 인간관계에 뜻을 두지 않았기 때문이었고.

유진은 나약하고 상처 입기 쉬운 자신의 마음을 가리기 위해 강한 척을 하고 다녔기 때문이었다.

서로 다른 이유로의 어색함을 느끼는 두 사람은, 지금은 같은 생각을 떠올리고 있었다.

‘소연이는 대체 언제 오는 거야?’

‘한소연 대체 언제 와!’

*    *    *

수아와 유진이 어디 있는지 부르짖는 소연은, 아직도 끝나지 않은 수업이 끝이 나길 기다리고 있었다.

“자, 마지막으로 129페이지 3번 그림 한번 같이 보자….”

‘대체 오늘따라 왜 이렇게 수업이 안 끝나는 거야?’

강림이가 도와준 덕분에 겨우 얻어낸 값진 시간이, 소연이 쥐지도 못했는데 흩어지고 있었다.

해봐야 5분 정도 늦는 것으로 뭐라고 할 친구들은 아니었지만, 소연은 한시라도 빨리 수아와 화해하고 예전처럼 즐겁게 지내고 싶었다.

“자 그럼 오늘 수업은 여기까지. 다음 수업 시간에 쪽지 시험 있는 거 잊지 말고 꼭 공부해와라.”

“네.”

‘끝났다!’

우당탕탕!

“이 녀석들아. 그러다가 다쳐! 뛰지마!”

“선생님이 너무 늦게 끝내주셨잖아요~”

수업은 끝났지만, 소연이 가장 먼저 교실 문을 나가는 일은 없었다.

수업이 끝나기 무섭게 식당을 향해 달려 나가기 시작하는 친구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천천히 기다렸다 가자….’

바로 그때.

위이이이잉- 위이이이이잉-

갑작스럽게 학교 전체에서 사이렌이 울리기 시작했다.

*    *    *

천산 고등학교의 정문 경비를 맡고 있는 김정태는 은퇴한 군인 출신이었다.

은퇴해서 학교의 경비팀에 들어오길 결심한 것은 딱히 대단한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은퇴했다고 집에서 쉬기엔 너무 젊은 나이이기도 했고, 마침 당시 아들놈이 다니던 학교가 바로 천산 고등학교이기도 했다.

지금 김정태의 아들은 졸업을 하고 대학을 다니고 있었지만, 김정태는 계속해서 학교에 남아 경비를 맡아 학교를 지키고 있었다.

사실, 경비원 업무의 대부분은 평화로운 편이었다.

학교 수업 시간이 시작하면 학교의 정문과 후문이 모두 닫힌다.

학교를 대상으로 한 각종 테러 덕분에 생긴 조치였다.

내부에 있는 사람은 원한다면 문을 열고 바깥으로 나갈 수 있지만, 문이 닫힌 상태에선 바깥의 사람이 안으로 들어올 순 없었다.

사람의 힘으로 넘어가기 힘든 높은 수준의 담이 학교 주변을 둘러싸고 있었기 때문에 바깥에서 안으로 들어오기도 어려웠다.

학교 내부에서 일어나는 테러 상황에 대비해서 담 안에서 바깥으로 나가는 문은 존재하지만, 담 바깥에선 안으로 들어오기 어렵다.

그런 의미에서 정태는, 매일같이 정문만을 지키고 있기만 해도 충분히 이 학교를 지킬 수 있다는 것에 만족하고 있었다.

‘곧 점심시간이네. 유진이 오면 달리기나 좀 봐주고 미뤄뒀던 일이나 해야겠다.’

정문을 지키는 것이 최우선 일인 것은 맞지만, 남의 돈 벌어먹는 게 그렇게 쉬울 리가 없다.

학교의 시설물과 관련된 몇 가지 업무가 경비실의 앞으로 배당되어 있었다.

♩♪♬

마침 울리는 점심 종을 들으며, 정태는 몸을 일으켰다. 점심시간이 되면 운동장으로 몰려나올 아이들을 지켜보는 것도 꽤 즐거웠으니까.

‘가만 있어보자… 오늘 점심은 뭘 먹어야 하나….’

철컥.

핑-

그렇게 혼자만의 생각에 빠져있던 정태의 귓가에 익숙한 소리가 들려왔다.

육체계열 능력자인 정태의 가장 큰 장기는, 좋은 귀와 감이었다.

남들보다 귀가 좋아 남들이 듣지 못하는 미세한 소리도 포착할 수 있었다.

그렇게 포착한 소리로 적의 장비 상태나 숫자를 헤아리는 것이 정태가 군인으로서 좋은 평가를 받게 만들어줬던 능력들 중 하나였다.

지금 들리는 이 소리는 군에서 근무할 때 수도 없이 들었던 소리였다.

총을 다루는 소리.

숫자는… 못해도 열 명.

벨트에 매어둔 총기에 손이 절로 가는 것을 꾹 눌러 참았다.

수상한 움직임을 벌였다가는 지금 당장 총을 맞을지도 모른다는 ‘감’이 들었다.

전쟁터에서 자신을 수없이도 구해주었던 감각이었다.

‘도망갈까?’

무장한 사람이 열 명 이상. 노리는 것은 학교.

자신의 힘으로는 절대 막을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햇수로 치면 5년, 그렇게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본래부터 정이 많던 김정태가 정을 붙이기엔 충분한 시간이었다.

매일 같이 등교를 하는 아이들이, 선생님이, 함께 일하는 동료들이 저 안에서 아무것도 모른 채 당해버릴 가능성이 높았다.

아직 놈들이 눈치 채지 못했을 때 자신의 일을 해야만 했다.

정태는 경보버튼을 누르며 총기를 뽑아들었다.

탕탕!

위이이잉- 위이이이이잉-

총소리와 동시에, 학교 전체로 사이렌이 울려퍼지기 시작했다.

*    *    *

위이이이잉- 이이이이잉-

타다당! 탕! 타다다당!

사이렌 소리가 울리기 무섭게 학교를 향해 총소리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다들 당황하지마! 매달 훈련 받은대로! 여기 있는 애들은 이 선생님따라 지하로 내려간다!”

목청 큰 역사 선생님의 목소리가 아수라장인 복도를 쩌렁쩌렁 울렸다.

“어? 어어?”

갑자기 일어난 상황에 유진은 크게 당황했다.

수아와 화해하기 위해 기다리고 기다리던 점심시간에, 갑작스럽게 사이렌이 울리고 총소리가 학교를 채우기 시작했으니까.

“이쪽! 이쪽으로!”

도서실 바깥에서 선생님들의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학생들을 지키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는 선생님들의 반응을 보며, 유진은 창밖을 내다보았다.

운동장으로 나갔던 학생들이 학교 안으로 들어오기 위해 발버둥을 치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저 멀리서 총기를 든 군인 같은 사람들이 학교 안으로 밀고 들어오고 있는 것까지.

그 순간, 유진의 마음속에서 갑작스럽게 무언가가 꿈틀거리며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유진은 입을 열어 수아에게 말했다.

“수아야. 내가 지켜줄게. 걱정하지말고 나만 믿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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