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5화
학교 습격(2)
천산 고등학교의 운동장의 구석에는 운동기구와 자재들을 쌓아두기 위한 창고가 하나 존재한다.
그리고 그 창고 안에는, 긴급 상황을 대비하여 사람들이 숨을 수 있는 작은 지하 대피소 또한 존재하고 있다.
그리고 그 지하 대피소에는, 점심시간에 축구를 하기 위해 모여있던 아이들이 숨은 채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천산고 중에서도 가장 먼저 대피소에 도착한 아이들이었다.
선생님 없이도 훌륭히 대피소에 도착하는 데 성공한 아이들은 대피소의 문을 걸어 잠근 후, 기존에 훈련받았던 대로 가장 먼저 대피소 내부의 통신기로 경찰에 구조 요청을 보냈다.
훈련한 내용에 따르면 늦어도 15분. 15분 안에 경찰팀이 온다고 했지만, 15분 안에 출동한 경찰팀이 바깥에 있는 빌런들과 싸워 이기는 데까지는 또 오랜 시간이 걸릴지도 모를 상황이었다.
어쩌면 최악의 경우, 이 학교를 끼고 며칠 간의 전투가 벌어질지도 몰랐다. 그런 경우, 여기 있는 학생들은 며칠 동안을 여기서 버텨내야만 했다.
안에 있는 아이들이 모두 불안감과 공포에 휩싸인 채,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이 시간이 빨리 지나가기를 빌고 있던 바로 그때.
지이이잉-
대피소의 문 앞을 볼 수 있게 만들어진 인터폰에 요란한 소리와 함께 불이 들어왔다.
인터폰과 가장 가까이 있던 문강민이 인터폰의 화면을 들여다보았다.
인터폰의 화면 안에는 다섯, 여섯 명 정도 되는 아이들이 울상을 지은 채 버튼을 누르며 화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대피소 안의 시선이 자신 쪽으로 몰린 것을 느끼며, 문강민은 인터폰을 들어 올렸다.
“여… 여보세요…?”
“흑… 흐흑… 문… 문 열어줘….”
인터폰 너머에서 눈물 섞인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문강민은 그 안에서 자신의 여자 친구, 조하나의 모습을 찾아볼 수 있었다.
그와 동시에.
타다다다당! 타다당!
계속해서 들려오는 총소리도, 함께 섞여 들어오기 시작했다.
“꺄아아악!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당장이라도 버튼을 눌러 문을 열어주고 싶었지만, 혼자서 처리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문이 닫혀있는 지금은 자신들을 위험에 처하게 할 요소가 없었지만, 문이 열리고 나서는 달랐다.
문이 열리고 나서 생겨날 수 있는 위험은, 자신 혼자서 책임질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문강민은 고개를 돌려 함께 대피소를 지키고 있는 친구들을 바라보았다.
“이거… 어… 어떻게 하지?”
문강민의 질문이 텅빈 대피소를 울렸다.
조용해지는 사방을 보며, 문강민은 조바심을 느꼈다. 문을 열기엔 지나치게 위험한 상황이었다.
문을 열지 말자고 하면 어떻게 해야 하지?
조용해져 있던 대피소에서, 누군가 입을 열어 답했다.
“열자.”
“위… 위험하면?”
“그렇다고 저기 있는 애들이 다 저기서 죽게 내버려 둘 순 없잖아.”
“그래. 열어. 여기까지 왔는데 무시하고 우리끼리 살 순 없잖아. 열어줘!”
대답한 친구 한 명만의 의견이 아니었다. 대피소 안에 있던 모두가 강민을 향해 고개를 끄덕여주는 것이다.
친구들의 표정을 확인한 강민이 고개를 끄덕이며 인터폰 밑의 레버에 손을 가져다 댔다.
“…그래. 알겠어. 지금 문 연다.”
드르르르륵
강민이 레버를 내리자, 대피소의 문이 열렸다.
쾅!
열린 문안으로, 기계 의수 하나가 순식간에 들이닥쳤다.
“하하하! 역시 애들은 별수 없구만!”
* * *
“애들 상대로 너무 과했나.”
스틸러는 대피소의 문 안으로 몸을 밀어 넣으며 생기려는 죄책감을 웃음으로 애써 지웠다.
‘어쩔 수 없지. 이것도 다 임무를 위해서야.’
스틸러가 대피소의 문을 이런 방법까지 동원해서 연 것은 다른 이유가 아니었다.
의뢰주는 깽판을 치면 목표물이 바로 튀어나올 거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지만, 용병단인 토마호크의 생각은 달랐다.
히어로랍시고 거들먹거리던 놈들도 자기 목숨을 지킨답시고 모든 걸 내팽개친 채 숨어버리는 경우를 정말 많이 보았다.
목표물이 정말 학교나 다니는 애송이라면, 그냥 만사 제쳐두고 대피소 안으로 숨어들었을 가능성까지 생각해야만 하는 것이다.
골치 아프게 두 번 세 번 일하는 것보단, 한 번에 완벽하게 찾아내는 것이 일을 덜 하게 만들어줄 테니까.
스틸러는 애들을 상대로 손을 더럽히고 싶진 않았다. 조금 협박하는 것으로, 능력을 사용하게 만들려고 했을 뿐이었다.
이 안에 숨어든 놈이 초능력자라면, 죽기 일보 직전의 상황에서까지 능력을 숨기려고 들진 않을 테니까.
위이이이이잉-
스틸러는 겁을 줄 요량으로 기계 의수에 달린 미니건을 위협적으로 작동시키기 시작했다.
바로 그때.
스틸러는 직감적으로 손을 들어올려 머리 위를 보호하였다.
챙!
“어이! 아저씨! 나이 처먹고 그따구로 꼬마들 속이고 그러면 좋나? 앙?”
머리에 피도 마르지 않은 꼬마가, 공중에서 떨어져 자신의 머리 위로 야구방망이를 휘두르고 있었다.
“애들 괴롭히지 말고 나랑 한판 뜨자.”
* * *
방금까지 스틸러가 공격하던 대피소 안에는 은퇴한 전 사이드킥, 데빌 보이 박준석이 함께 숨어 있던 상태였다.
축구를 하러 나온 친구들 틈에 있다가 엉겁결에 대피소 안까지 말려들어 갔던 것이다.
하지만, 바깥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음에도, 박준석은 섣부르게 움직일 수 없었다.
자신을 치료해준 히어로, 밀키 웨이가 자신에게 남겼던 말 때문이었다.
“앞으로 일상생활 하는 데에는 무리가 없겠지만… 제 생각엔 당분간 히어로 활동을 하지 않는 것이 좋을 거라고 생각해요.”
관절부에 무리가 생겼다고 했다. 한번 어긋난 관절은 쉽게 치료하기 어렵다고 했다.
밀키웨이에게 3~4년 이상 꾸준히 치료를 받는다면 언젠가 완전히 호전될 가능성도 있지만, 그것도 장담하기 어렵다고 했다.
그래서 준석은 히어로 활동을 포기하고 은퇴했었다. 자신의 몸이 망가지는 것도 문제지만, 오히려 자신의 존재가 동료들의 발목을 잡을지도 몰랐으니까.
하지만….
운동장에서 들려오는 비명, 아이들의 흐느낌.
잠시나마 히어로 활동을 하며 진짜 히어로들을 존경하게 된 준석에게 있어선 견디기 힘든 것들이었다.
그래서 강민이 문을 열어도 되겠냐고 물었을 때, 가장 먼저 입을 열어 대답했다.
바깥에 있는 아이들의 울음소리를 참을 수 없었으니까.
그러니까, 이 안에 안전하게 있던 아이들이 다치게 된다면, 그것은 자신의 잘못이다.
자신의 몸이 망가지더라도 책임질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준석은, 구석에 있던 야구 방망이와 야구공을 손에 쥐었다.
익숙한 촉감이었다. 어쩐지 그리웠던 것 같기도 했다.
손에 쥐고 있던 야구공을 스틸러의 머리 위로 집어 던지며, 준석은 어쩌면 인생 마지막 히어로 활동일지도 모르는 전투를 시작했다.
* * *
훈련이 제대로 되어있군. 이 학교.
실비아는 순식간에 비어버린 학교를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아주 잠깐이었다.
미리 자신들을 발견한 경비팀과 잠깐의 총격전을 벌이는 동안, 학교 안에 있던 사람들은 순식간에 흩어져 대피소 안으로 들어가 버리고 말았다.
원래 계획대로 점심시간에 완전히 아이들이 흩어졌을 때 일을 벌일 수 있었다면, 지금보다 훨씬 일이 수월했을 텐데….
상황이 이렇게 되면 어쩔 수 없었다. 조금 더 요란하게 일을 벌이는 수밖에.
실비아는 앞서 스틸러가 생각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아이에 불과할 목표물의 의리와 영웅심을 그렇게 믿지 않았다.
이 잠깐의 시간 동안, 목표물은 이미 대피소 안으로 숨어 들어버렸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어쩔 수 없지. 깡통 캔 몇 개 정도 깐다고 생각하지 뭐.
다른 용병들이면 모를까, 실비아가 가지고 있는 힘이라면 그것도 가능했다.
머리에 심어져 있는 보석이 자신에게 힘을 줄 테니까.
본래 실비아가 가지고 있던 힘은, 간단한 염력 정도였다.
물건을 집어 올리고, 던진다.
아주 간단한 힘이었지만, 전쟁터에서는 그런 간단한 기술일수록 고위력을 발휘하곤 했다.
자신의 이마에 박혀있는 보석은, 이집트에서 있었던 유물을 둘러싼 전쟁에 참여하고 받은 보상이었다.
이집트 마법사가 자신의 마력을 담아 만들었다는 보석은 실비아가 가진 염력의 힘을 더욱더 강력하게 만들어주었다.
실비아는 보석의 힘을 빌려 다시 한번 머리 위쪽에 거대한 주먹을 만들었다.
두터운 철제문이었지만, 자신의 힘으로 뚫지 못할 거란 생각이 들지 않았다.
실비아가 만들어낸 빛의 주먹이 대피소의 문을 두드리려던 바로 그때.
쾅!
허공에서 만들어진 통로에서 튀어나온 괴물의 손이 실비아가 만든 빛의 주먹을 맞받아쳤다.
“당장 관둬. 대체 무슨 목적으로 이런 짓을 벌이는 거야?”
“뭐야? 진짜로 튀어나왔네? 애라서 겁먹고 안 나올 줄 알았더니.”
이렇게 되면, 굳이 대피소의 문을 열 필요가 없어졌다.
실비아는 자신의 뒤쪽으로 나타난 목표물을 상대하기 위해 몸을 돌렸다.
얼굴에 가죽가면을 쓴 여자아이가 실비아를 증오에 찬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목적이 뭐냐구? 바로 너야.”
* * *
“내 생각이 맞았다! 바로 여기에 있었어!”
허공에서 나타난 검은 통로를 보며, 스카 페이스는 환희에 찬 미소를 지었다.
그 정도 힘을 가진 능력자라면, 학교보다는 군부대에 있는 것이 맞을지도 모른다고, 이성적으로는 생각했었다.
하지만, 스카 페이스의 감은 학교에 있는 아이일 것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스카 페이스는 자신의 감을 따랐고, 결국 목표물을 찾고야 말았다.
스카 페이스가 수많은 전쟁터를 헤치며 얻은 이 감은, 한 번도 스카 페이스를 배신하지 않았다.
차원의 문을 열 수 있는 능력자를 이용한다면, 자신이 했던 실수를 모두 지울 수 있을 터였다.
자신의 가족에게 했던, 크나큰 실수를.
자신이 저지른 실수로 인해 자신의 가족들은 자신을 떠나고 말았다. 이젠 다시 찾아가도 자신을 절대 환영해주지 않을 터였다.
스카 페이스는 오랜 세월 동안, 자신이 저지른 실수를 지울 방법을 찾아다녔다.
그러던 어느 날, 스카 페이스는 경한 그룹의 한 연구원이 썼다는 논문 하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그 논문 안에는 차원 이동을 통해 시간 여행을 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 적혀 있었다.
스카 페이스는 이 논문을 썼다는 경한 그룹의 연구원을 찾아보았지만, 이 논문을 썼던 연구원은 이미 오래전에 죽었던 사람이었다.
그날 이후로 스카 페이스는 차원을 이동하는 방법을 찾아 헤매기 시작했다.
차원 이동을 할 수 있다면, 논문의 내용대로 시간여행도 할 수 있을 테니까.
자신이 아무 일도 저지르지 않았던 과거로 돌아간다면, 자신의 가족들에게 했던 실수 또한 없던 일이 될 터였다.
실비아가 전투를 벌이고 있는 자리로 이동하려던 바로 그 순간.
“지금 여기, 나 강림.”
스카 페이스의 눈앞으로, 익숙한 실루엣의 사람이 떨어져 내렸다.
“그래. 그날 박물관에 네가 나타난 건 우연이 아니었다는 뜻이군.”
몇 번이나 자신을 방해한 히어로, 다크 카이저를 보며 스카 페이스는 미스릴 나이프를 뽑아 들었다.
“오늘은 이 악연의 끝을 봐야겠구만 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