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어로 만화 속으로 나 강림-203화 (203/236)

203화

연백산(1)

“뭐… 뭐요? 얼마요? 그게 말이 돼?”

김재철은 망령당 마약딜러의 말을 듣고 분노에 차 일갈했다.

최근 3개월 간, 약의 가격이 전체적으로 10배 이상 풀쩍 뛰어 오른 것이다!

자그마치 3개월 간 10배다! 이건 거의 도둑놈들이 아닌가!

“쉿! 소리 지르지 마! 다크 카이저라도 오면 어떻게 하려고 그래?”

다크 카이저라는 말에 김재철은 높아지려던 목소리를 살짝 낮췄다.

“아무리 그래도 10배는 너무 심한 거 아뇨?”

“우리라고 이렇게 가격을 올려 받고 싶어서 그런 줄 알아? 요즘 상황 알잖아!”

“상황? 무… 무슨 상황이길래 10배가 넘게 올라?”

“요 1년 사이에 히어로들 때문에 천산시의 빌런 조직 2개가 괴멸했어. 지금 죄다 잡혀 들어가서 감방에서 콩밥 먹고 있거나, 아니면 다 사형선고 받고 뒤졌어. 우리도 지금 목에 칼 들어온 상황이라니까?”

김재철은 그 말을 듣고 나서야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천산시에서 약을 공급해주던 2개의 빌런 조직이 추가로 괴멸했으니, 사실상 망령당에서 마약 공급을 독점하고 있는 상황이 된 것이리라.

그래서 옳다구나 하고 10배를 올린 거겠지. 다른 데로 가봐야 약을 구할 수 없을 테니까!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김재철은 분노에 차 입을 열었다.

“그래! 알겠다! 당신네들 사정 알겠다고! 근데 몇 개월 만에 10배 이상 오른 약값을 감당할 나 같은 소비자 사정도 생각해줘야지! 이제와서 10배나 가격을 올리면, 나 같은 사람은 죽으라는 거나 마찬가지야!”

“약 못했다고 사람이 뒤져? 그럴 목숨이면 뒤져야지. 약쟁이 새끼야.”

“뭐? 말 다했어?”

약을 파는 놈들이 약이 떨어졌을 때의 느낌을 모를 리가 없다.

세상이 무너지는 듯 불안하고 고통스러운 그 감각을 모를 리가 없다.

그러니까 지금 이건, 자신에게 죽으라는 의미나 다름 없다.

“그래! 네 말대로 약쟁이 새끼는 죽으련다.”

김재철은 그 소리를 들은 순간, 눈이 휙 돌아 바지 안에서 칼을 꺼내 들었다.

식칼이나 나이프 따위의 작은 칼이 아니었다. 저런 걸 어떻게 품 안에 넣고 다녔나 싶을 정도로, 품 안에 들어가기엔 생각보다 긴 칼이 신문지에 둘둘 말린 채 바지에서 빠져나왔다.

“같이 가자 X새야!”

휙!

긴 칼을 휘둘러 신문지를 털어낸 김재철이 딜러에게 칼을 찔러 넣으려던 바로 그때.

“지금 여기, 나 강림.”

허공에서 들려오는, 공포의 목소리.

“이 X새끼… 목소리 좀 낮추라니까.”

허공 위를 바라보는 마약 딜러의 모습을 보며, 김재철은 눈을 꼭 감았다.

BOOOOOM!

*    *    *

“제발… 잘못했어요….”

다크 카이저의 다크 부츠를 붙잡고 눈물을 펑펑 흘리는 마약쟁이의 모습을 보며,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완전히 맛탱이가 갔구만 이거.

벨제뷔트가 마약 딜러 머릿속을 뒤져보는 사이, 나 역시 약쟁이를 심문하기 위해 몇 가지 질문을 해봤지만….

“제발… 집에 토끼 같은 아내와 여우 같은 아이들이 있어요….”

내 모습을 본 약쟁이가 완전히 공포에 질려 이성을 잃은 탓에, 심문을 제대로 진행할 수 없었다.

아마 약을 지속적으로 한 자신이 받을 처벌이 두려운 모양이었다.

근 1년간 히어로 활동을 통해 얻은 법지식으로 생각해보자면, 아마 이 정도 약쟁이라면 시설에 갇혀 몇 년을 요양해야 할지도 모른다.

이런 종류의 약쟁이들은 시설에 들어가 약을 끊어야 하는 상황 자체를 두려워한다.

【“그게 자신을 도와준다는 것도 모르고 말이지. 마약에 빠져 있는 것보다는 훨씬 나을 텐데.”】

벨제뷔트가 나타나 딱하다는 듯 말했다.

마약 딜러 쪽엔 괜찮은 정보 있어?

【“아니. 없다. 마약쟁이들 머릿속이라 그런지 들여다보기가 힘들군. 뒤죽박죽이야. 뭐가 환상이고 뭐가 진짜 정보인지 구분하기가 힘들어.”】

그거 아닐걸.

【“무슨 소리지?”】

놈들이 우리에게 정신 관련 능력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아차렸을지도 모르지. 그래서 일부러 머릿속을 헝클어 놓는 걸지도 몰라. 정보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 하게 하기 위해서.

【“그럴싸한 추론이예요. 망령당은 약을 이용한 정신세뇌에도 익숙하잖아요? 자신들의 정보가 정신 능력을 통해 새어나가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챘을지도 몰라요.”】

골치 아프군.

불곰파가 시외에서 철수한 이후로 브루트로 인한 테러와 범죄는 크게 줄어들었지만, 역으로 약쟁이들로 인해 일어나는 범죄는 크게 늘었다.

망령당이 불곰파의 구역이던 시외까지 구역을 확장한 탓이었다.

상대해야 할 집단의 수 자체는 줄었지만, 역으로 커버해야 할 범위 자체는 실질적으로 넓어진 거나 마찬가지인 상황이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던 바로 그 때.

<어비스 위치 : 지금 어디야?>

내 눈 앞의 홀로그램에 떠오르는 어비스 위치, 소연의 통신 메시지.

한 달에 한번, 소연이 차원의 문을 열 수 있게 된 이후부터, 소연과 나는 영계의 틈을 막기 위해 이주에 한 번 이상을 연백산으로 향했다.

그리고 오늘도, 연백산으로 가기 위해 약속했던 날 중 하나였다.

나는 홀로그램 지도에 위치를 찍어 어비스 위치에게 보냈다.

지이이잉-

보내기가 무섭게 내 눈 앞에 열리는 어비스 위치의 차원 통로.

가죽 슈트를 입은 소연이가 통로를 향해 고개를 쏙 내민다.

“앗. 또 일하고 있었구나. 천산시 최고 히어로 다크 카이저답게 참 하루하루 바쁘게 사네.”

나를 놀리듯 배시시 웃으며 말하는 소연.

나는 그 장난스러운 얼굴을 보며 함께 피식 웃었다.

최근 어비스 위치로서 슈트까지 만들어낸 소연이, 자신의 집 주변에서 조심스럽게 히어로 활동을 시작했다는 걸 나는 알고 있었다.

나는 통로를 향해 천천히 걸어 들어갔다.

“그러는 너도 요즘은 히어로로서 활동하고 있는 거 아니었나?”

“어? 어떻게 알았어?”

어떻게 알긴 욘석아. 천산시에서 일어나는 일을 내가 모르면 어떻게 하냐?

사실, 내가 아니라 항상 제인이 고생해주고 있는 상황이긴 했다.

내가 알고 있던 원작 내용이 거의 다 끝나버린 지금 같은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선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예측하기 위해 정보의 수집이 가장 중요했다.

천산시에서 일어나고 있는 주요 범죄 조직의 움직임부터, 일어나고 있느 사건 사고, 그리고 자연변화까지.

대부분이 인터넷을 통해 돌아다니는 정보긴 했지만, 그 정도만 해도 꽤 요긴하게 상황을 예측할 수 있었다.

품 안에 컴퓨터를 하나씩 품고 다니는 요즘 세상에선, 인터넷을 사용하지 않는 경우가 더 드물었으니까.

잠깐 대화를 하며 3분 쯤 걸었을까? 다시 눈 앞에 보이는 통로 하나.

언제나 느끼는 거지만, 진짜 순식간이라니까.

나는 통로를 향해 걸어나갔다.

지이잉-

익숙해지지 않는 감각과 함께 눈 앞에 펼쳐지는, 산속에 들어앉은 그림 같은 절 한 채.

“정혜 언니. 율사님! 저희 왔어요!”

끼이익-

낡은 소리를 내며 절의 문이 열리고,

“소연아! 강림아! 이번엔 빨리 왔구나!”

이주 만에 보는 정혜 스님이 우리를 반갑게 맞이해주었다.

*    *    *

“두 분이서 어떻게 지내셨어요?”

“여기야 항상 똑같지. 그래도 너희가 오기 시작하면서부턴 힘을 덜 쓰게 돼서 그런지 훨씬 나아.”

반갑게 달려가는 소연이와 조곤조곤 대화를 하기 시작하는 정혜 스님.

“오느라 고생이 많았네.”

그리고 나를 향해 자애로운 미소를 지어주는 율사님.

처음 우리를 만났을 때에는 꽤 경계했었지만, 몇 개월간 함께 부대끼며 일을 하기 시작해서 그런지 생각보다 훨씬 친해졌다.

[“사실 당연한 거예요. 영혼이 된 스님과 함께 단둘이서 이십 년이 넘게 이곳에 있는 영계의 틈을 지키고 있었던 거잖아요?”]

그렇지. 처음 보는 우리를 경계하면서도, 실질적으로는 많이 외로웠을 터였다.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정혜 스님을 바라보았다.

겉보기 나이를 생각해보면, 우리 이모하고 비슷한 연배이거나, 그것보다 덜되어 보이기도 했다.

듣기로는 아주 어린 나이, 10살이 채 되기도 전부터 이곳에서 지내며 영계의 문을 관리하며 살았다고 들었다.

뭐… 그것도 이젠 곧 끝이 나겠지만….

나는 뒤쪽에 있는 영계의 틈을 바라보았다.

처음에는 꽤 크게 느껴졌지만, 지금은 영계의 틈도 거의 다 닫힌 상황이었다.

벨제뷔트가 예측하길, 우리의 힘 정도라면, 앞으로 두 달 안에는 영계의 문을 완전히 닫을 수 있을 정도라고….

영계의 틈이 닫히고 난다면, 정혜스님도 더 이상 이곳에만 묶여있을 필요가 없었다.

그럼 그때부터는 자신의 인생을 되찾아 생활하면 되겠지.

“그래서 말이에요. 저랑 유진이가….”

“와… 진짜? 나도 거긴 한번 꼭 가보고 싶구나.”

내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사이, 점점 산으로 가고 있는 소연이와 정혜 스님의 대화.

두분이서 친하게 지내는 것도 물론 좋지만, 나는 바쁜 몸이라….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고민하고 있는 사이, 나 대신 입을 열어 상황을 알려주는 율사님.

“정혜야. 손님들이 조금 바쁘다시구나.”

항상 생각하는 거지만, 정말 눈치가 빠르신 편이다.

“어… 네… 미안하지만… 일단 해야 할 일부터 시작하는 게 좋겠어요. 제가 오늘도 좀 바빠서.”

“아. 그랬지. 미안해. 여기서 지내다 보면 남아도는 게 시간이라… 그래. 일단 해야 할 일부터 시작하자.”

나는 체인을 두 손에 감아쥐며 영계의 틈을 바라보았다.

*    *    *

【“으음… 아니. 이 정도면 생각보다 훨씬 더 빠르게 닫을 수 있겠군. 오늘이 지나고 나면 2주 후에는 완전히 문을 닫을 수도 있을 것 같다.”】

뭐? 진짜야?

【“그래. 내 생각엔, 최근 들어 너희 둘 모두 능력적으로 성장한 탓에 훨씬 더 속도가 빨라진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군.”】

스르륵….

마치 기다렸다는 듯 내 옆에서 나타나는 율사님.

나는 가장 먼저 내 옆에 나타난 율사님에게 지금의 상황을 설명해드렸다.

“허허… 그렇구만… 앞으로 이주라….”

내 말을 들으며 조금은 씁쓸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율사님.

“그래. 이런 말이 나와서 말인데… 부탁 하나만 해도 되겠나?”

산 사람 부탁도 들어주는데, 죽은 사람 부탁이라고 못 들어주겠나?

“네? 부탁이요? 뭐… 말씀하세요.”

“이 일이 모두 끝난다면, 정혜가 사람들 사이에서 생활할 수 있게 도움을 줄 수 있겠나?”

*    *    *

“오늘도 고생 많으셨어요. 정혜스님.”

“뭐… 내가 고생이라고 할 게 있니? 고생은 너희가 다 했지.”

“강림이가 말하길, 이제 틈이 닫힐 때까지 얼마 안 남았대요. 틈이 닫히면 우리 같이 저랑 말한 곳 여기저기 다녔으면 좋겠어요.”

소연의 말을 듣자 급격하게 어두워지는 정혜스님의 얼굴.

예전 같았으면 눈치채지 못했을지도 모르지만, 최근 소연에겐 많은 친구들이 생겼다.

그래서 정혜 스님의 표정에 근심이 끼어있다는 사실을, 소연은 눈치챌 수 있었다.

“정혜스님… 혹시 걱정이라도 있으세요?”

소연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이는 정혜스님.

“응. 아까 말한 그거 말인데….”

“네? 아까 말한 카페요?”

“아니. 틈. 틈 닫는 거.”

잠시 소연을 보며 침을 꿀꺽 삼킨 정혜가 입을 열었다.

“혹시… 틈을 완전히 닫지 않고 이대로 내버려 두면 안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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