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어로 만화 속으로 나 강림-204화 (204/236)

204화

연백산(2)

소연은 정혜스님의 말에 깜짝 놀라 입을 열었다.

“네? 갑자기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이 정도만큼만 닫았다면, 이제 더 이상 여기 있는 영계의 틈을 통해 악령이 빠져나가진 못할 거야. 나머지를 관리하는 건 나와 율사님의 힘만으로도 충분해. ”

“네…? 하지만 영계의 틈을 완전히 닫게 되면 정혜스님도 이제 이 곳에 묶여있지 않고 더 자유롭게 사실 수 있잖아요.”

자유라는 말이 나오자 표정이 조금 더 두려워지는 정혜스님.

“그… 나… 난 자유롭고 싶지 않아.”

“네?”

방금 뭐라고 하셨지?

“솔직히 바깥으로 나가서 사는 거? 그게 정말 좋은 건지 잘 모르겠어. 사실, 나는 연백산을 떠나 사회로 가는 것 자체가 두려워.”

“어… 음… 네?”

“나는 내가 할 일을 평생 지킬 수 있게 이 세상에 영원히 영계의 틈이 존재하고 있었으면 좋겠어.”

정혜스님의 입에서 나온 말에 소연은 충격을 받고 말았다.

*    *    *

“이 일이 모두 끝난다면, 정혜가 사람들 사이에서 생활할 수 있게 도움을 줄 수 있겠나?”

“아 예. 그거야 뭐 당연히 해드려야하는 일이죠.”

율사님의 말에 나는 일단 시원스레 대답했다.

아무것도 없는 이런 산골에 들어앉아, 이 세상을 위해 언제 열릴지 모를 영계의 틈을 부여잡고 있던 사람이다.

내 인생을 누리며 히어로 활동을 하고 있는 나보다, 훨씬 더 큰 희생과 책임을 짊어진 채 이 세상을 위해 싸우고 있던 사람인 것이다.

그런 사람을 도와달라는 말에 머뭇거려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게 시원하게 대답한것도 잠시, 나는 다시 생각에 잠겼다.

사회복지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아 도와준다는 방법이 있긴 하지만, 이 세계에선 신원 보장이 되지 않은 사람이 사회에서 자리 잡긴 힘들다.

초능력의 존재로 자신의 신원을 세탁하기가 너무나도 쉬워진 탓이다.

[“이런 부분은 마스터가 어떻게 하려고 하기 보단, 역시 밀키웨이에게 도움을 청하는 편이 나을 거 같은데요. 마스터.”]

“아마 정혜는 이제 더 이상 문을 닫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할걸세.”

“이 곳과 영계의 틈이 닫히면 율사님께서도 이 곳을 떠나야하니까 말이시죠?”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율사님.

“평생을 죽음 이후 세계를 옆에 두며 살아온 아일세. 자네들보다 죽음의 무게를 더 가볍게 느낄지도 몰라. 내가 없어지면, 나를 따라 오겠다고 스스로 목숨을 끊을지도 모른다네.”

소연이와 대화를 하고 있는 정혜 스님의 얼굴을 바라보며, 이젠 육체가 존재하지 않는 율사님이 말씀하셨다.

“10살도 채 되지 않은 나이부터 누리고 싶은 걸 누리지 못하고, 이곳에서 먹지도 자지도 못한 채 영계의 틈을 지켜온 아일세. 이젠 스스로의 삶을 찾아도 되지 않겠나?”

*    *    *

“오늘도 고생 많았어. 소연아.”

“어? 응. 뭐… 나 혼자 한 일도 아닌걸. 다들 같이 고생했지 뭐.”

강림의 말에 대답한 소연은 통로를 걸으며 생각에 잠겼다.

자유롭고 싶지 않다는 정혜스님의 말은, 진정한 의미에서의 자아와 자유를 되찾은지 얼마 안 된 소연에게 큰 충격을 안겨주었다.

혹시 이 문제에 대해서 강림이는 어떻게 생각할까?

소연은 입을 열었다.

“강림아. 잠깐 상의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데….”

“응? 말해.”

소연은 하고 싶은 말을 하지 못하고 잠시 꼼지락거렸다.

“정혜 스님 이야기야?”

‘앗… 내 속이 그렇게 들여다보였나?’

마치 자신의 속을 들여다봤다는 듯 입을 여는 강림.

소연은 조금 당황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시… 실은 있잖아….”

소연은 조심스럽게 정혜스님이 자신에게 했던 이야기를 강림에게 들려주었다.

“지금까지 영계의 틈을 지켜온 정혜스님께는 미안하지만, 재고할 가치도 없는 이야기야.”

소연의 이야기를 듣자마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입을 여는 강림.

“닫을 수 있는 틈을 열어둔다는 것 자체가 어떤 변수를 불러올지 몰라. 재앙이 일어날 가능성이 존재하는 상황을, 나는 가만히 내버려 둘 수 없어.”

강림의 말에 소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응. 네 말이 맞아. 나도 그렇게 생각해.”

소연은 강림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지만….

“나는 내가 할 일을 평생 지킬 수 있게 이 세상에 영원히 영계의 틈이 존재하고 있었으면 좋겠어.”

소연은 정혜가 이 말을 하며 지었던 표정을 떠올렸다.

그 알 수 없는 불길한 표정을.

*    *    *

붉은 코트 연합은, 천월군에서 자리를 잡은 히어로 팀이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히어로를 따라 하는 ‘괴짜’ 모임이라고 하는 편이 더 정확할 터였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히어로 팀이라는 말도 틀렸을지도 모르겠다.

히어로가 되지 못한, 자경단 지망팀이라고 말하는 편이 더 나을지도 모르리라.

‘헬릭스’는 멍하니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오늘도 천월군은 평화롭구만… 안 그래, 레드불렛?”

그때, 자신과 함께 팀을 이루고 있는 레드캡이 입을 열었다.

“물론이지 레드캡! 이게 다 범죄와 싸우는 우리 같은 히어로들 때문이 아니겠어? 아하하하하!”

“아하하하하!”

누굴 따라 하는 건지도 모르는, 이상한 콘셉트로 웃음을 터트리는 레드캡과 레드불렛을 보며, 헬릭스, 성한결은 내심 한숨을 쉬었다.

‘이제… 이런 짓 그만둘까?’

레드캡은 붉은 코트 연합을 만든, 리더격에 가까운 사람이었다.

사실 붉은 코트 연합을 만들었다고 해도 그다지 능력이 있는 사람은 아니다.

천월군에 사는 히어로 팬 동호회에서 만난 사람들 사이에서, 그나마 초능력이라고 할만한 걸 가진 사람들끼리 뭉친 것뿐이니까.

그만둘까 하는 생각이 든 건, 지금 하는 이 일이 유치하게 느껴지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히어로들을 따라 한 슈트를 만들어 입은 채, 길거리를 활보하는 일.

처음에는 그냥 코스프레를 한 채 거리를 돌아다니는 취미 정도로만 생각했다.

이런 식의 취미는 이 세상 어느 곳에도 있지 않은가?

만화 캐릭터 옷 따위를 입고 광장 같은 곳에 가서 프리허그 따위를 하는 것처럼.

그저 그렇게 코스프레한 채 흉내만 내는, 그런 취미의 일종이라고 생각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내 데드 포인트를 봐줘. 레드 캡. 얼마 전에 몇 가지 개조를 했는데 말이지….”

문제는 함께 행동하는 이놈들이 진심으로 히어로 활동을 하고 싶어라 하는 정신병자들이라는 것이다.

“그거 멋진걸. 그런데 거길 건드는 것보다, 이 부분을 이렇게 수정하는 게 훨씬 더 고위력을 발휘할 수 있지 않을까? 레드 불렛? 이 정도는 해야 빌런들 대가리를 한 방에 날릴 수 있지 않겠어?”

이놈들은 어디서 어떻게 개조해왔는지 몰라도 사람 한둘은 순식간에 쏴 죽일 수 있는 사제무기들을 만들어 든 채 거리를 활보한다.

몇 번이고 이런 상황에서 탈출해야 하는지 고민했지만, 저런 무기를 든 채 돌아다니는 놈들을 도저히 가만히 내버려 둘 순 없었다.

경찰에 신고하는 것도 몇 번이나 고민했지만, 자신이 경찰에 신고한 걸 알면, 이 진짜로 미친 ‘괴짜’들이 자신의 집까지 알아내 총을 쏴대지 않으리란 법이 없었다.

그래서 어떻게 하지도 못한 채, 동료라는 이름 하에 함께 거리를 활보하고 있던 것이다.

제발 오늘도 아무 일 없이 넘어가길 바라면서.

하지만, 오늘은 그런 날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다 도망쳐!”

갑자기 저 멀리서 이곳을 향해 달려오기 시작하는 사람들.

이 주변에 살고 있는 성한결은 이 사람들의 얼굴을 잘 알고 있었다.

이 주변에서 농업에 종사하며 살아가는 주민들이다.

“사…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저기… 저 숲속에… 괴… 괴물이 있어요!”

괴… 괴물?

사람들이 도망쳐 나온 곳을 살펴본 성한결은 깜짝 놀라 뒤로 넘어질 뻔하고 말았다.

“약… 약을… 약을 줘! 약… 내게 약을 더 줘!”

예전에 인터넷 동영상으로 본적 있는 괴물이었다.

천산시에서 한때 범죄자들 사이에서 유행했다는 키메라 약물을 투여한 사람이 저렇게 된다는 사실을, 헬릭스는 금방 알아차릴 수 있었다.

아니, 지금 보니 그때의 그 괴물들보다 훨씬 더 크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 괴물들을 알아본 건, 자신만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괴물이 나타나자마자 자신의 얼굴을 바라보는 레드불렛과 레드캡.

망했군.

이 두 괴짜라면 이렇게 말할 테지.

“천월군의 히어로 팀, 우리 붉은 코트 연합이 처음으로 해야만 하는 일이 생겼군.”

“그래. 나의 데드 포인트가 울부짖고 있다. 붉은 코트 연합이여.”

그리고 괴물한테 달려 나가 자신들이 손에 쥔 무기를 발사해대다 피떡이 되고 말 터였다.

자신이라도 도망쳐야지. 그렇게 생각하고 있던 바로 그때.

“끄…끄아아아악!”

순식간에 뒤를 돌아 괴물에게서 달아나기 시작하는 두 괴짜 히어로.

그들이 자랑하던 사제무기와 개조 도구들이 순식간에 바닥에 떨어져 굴렀다.

이 괴짜들도 진짜 사건 앞에선 어쩔 수 없구나.

성한결은 이를 악물고 그들의 뒤를 따라 달리기 시작했다.

사람들을 따라 3분 정도 도망쳤을까?

“끄으으… 으으….”

한결은 귓가에 들려오는 희미한 신음을 들을 수가 있었다.

동네 구멍가게의 할머니가 발목을 접질린 채 바닥에 쓰러져 흐느끼고 있던 것을 발견한 것이다.

자신이 자주 가는 가게의, 혼자 사는 할머니였다.

그 순간, 한결은 자신도 모르게 할머니를 향해 달려 나갔다.

자신도 왜 그렇게 하는지 모를 정도로, 아무런 생각없이 반사적으로 했던 행동이었다.

“할머니! 제 손을 잡아요!”

한결은 할머니를 부축한 채 앞으로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쿵! 쿵!

자신의 뒤를 따라오는 괴물의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약!! 약… 약을 줘!”

쿵쿵!

점점 가까워지는 발걸음 소리를 들으며, 한결은 한 가지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뒤에 있는 놈은 자신들을 완전히 타겟으로 잡고 따라오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털썩!

결국 함께 달려나가던 할머니가 결국 주저 앉고 말았다.

“나… 난 됐어. 너라도 도망쳐!”

어째서 그랬는지 모르겠다. 여기까지 온 이상, 할머니와 함께 이곳을 빠져나가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한결은 할머니를 꼭 끌어안았다.

바로 그때.

“지금 여기, 나 강림.”

한결의 귓가에 들려오는, 어디선가 들어본 적 있는 듯한 목소리.

SMASH!

괴물을 한 주먹에 뒤로 물러나게 만든 남자, 다크 카이저가 한결에게 말했다.

“지금까지 고생 많았다. 히어로. 이제부터 여긴 내가 맡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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