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6화
천월군(2)
【“이거 완전 엉망진창이구만.”】
놈들이 키메라 약을 왜 사용했는지, 이야기를 모두 들은 벨제뷔트의 평가였다.
그렇게 생각할만도 했다.
새로운 신제품의 임상실험을, 아무리 시골이라지만 대놓고 하게 시킨다고?
[“사업 확장을 무리하게 진행하고 있는 것 아닐까요?”]
일리가 있는 생각이네.
현재 천산시 내부는 흑사자회와 망령당이 나눠 먹고 있는 상황이다.
원래는 네 개의 조직이 나눠 먹던 파이를, 단 두 조직이 먹을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런 상황일수록 평화롭게 구역을 나눠먹진 않을터였다.
내 옆에 있는 놈만 제치면, 모든 파이를 나 혼자 독점할 수 있게 될 테니까.
흑사자회의 주력 사업 상품은, 술과 유흥이다.
반면 망령당의 주력 사업 상품은 마약, 그것도 중독성이 심한 마약류 상품들이다.
이미 자리 잡고 있는 다른 조직의 구역에 마약을 퍼트리긴 쉽지 않겠지만, 빈 구역에는 마약을 퍼트리기가 아주 쉽다.
한번 마약에 중독된 사람은 계속해서 또다시 마약을 구하고 싶어 할 테고, 마약 중독자가 많으면 많을수록 구역을 확보하는 건 식은 죽 먹기나 다름없다.
주인 잃은 땅에 마약을 뿌리는 것만으로도, 손쉽게 자신의 구역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최대한 손쉽게 마약을 뿌리기 위한 방법으로, 주변을 잘 아는 현지인을 구한 거다.
자신이 믿는 친인척을 통해 마약을 구매하게 만드는 것이 훨씬 부담이 덜해서 빠르게 퍼트릴 수 있을테니까.
지금 같은 경우는, 그렇게 일을 하다 보니 생각보다 질 낮은 애들이 많이 들어왔다고 생각해야겠지.
당연하지만 나는 천월군에 마약을 퍼트리게 내버려 두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처음 이 세계로 와서 히어로 활동을 시작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나는 마약으로 인해 인생이 망가진 사람들을 꽤 많이 보았다.
심지어 그 중에는 나와 같은 학교에 다니는 고등학생도 있었고, 그 친구의 어머니도 존재했다.
당장 내 옆에서도 그런 마약들로 인한 비극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마약은 전염병과도 같다.
넓게 퍼지기 전에 막아낸다면, 더 많은 사람에게 피해가 가는 것을 막아낼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선, 정보가 필요한데….
“히이익… 잘못했어요… 잘못했습니다… 제발… 제발 살려주세요… 알고 있는 걸 전부 다 말하겠습니다.”
내 앞에 주저앉아 나를 향해 무릎 꿇고 빌고 있는 마약 딜러.
이름이 뭐였지? 동성? 동석? 아까 들었는데 기억이 안 나네.
아무튼 협조적으로 나오는 모양새가 꽤 맘에 들었다.
굳이 내 정신력을 소모해가며 정신을 통해 벨제뷔트를 들여보낼 필요가 없었으니까.
내 생각이 맞다면, 어차피 이놈들은 알고 있는 게 많이 없을 터였다.
다만, 놈들에게 약을 공급해주는 공급처가 어딘지만 알아낼 수 있다면….
생각을 정리한 내가 입을 열려던 바로 그때.
퍼억- 퍼엉-
내 앞에 있던 마약 딜러들의 머리가 순식간에 폭발했다.
지금까지 겪어본 적 없는, 갑작스러운 상황에 당황하는 것도 잠시.
“너희의 죽음의 끝에 구원이 있으라!”
내 정신을 일깨워주는 누군가의 목소리.
나는 목소리가 들린 곳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아무런 문양도 존재하지 않는, 심지어는 눈구멍조차 뚫리지 않은 달걀귀신 같은 가면을 쓴 누군가가 이쪽을 향해 총을 겨누고 있었다.
총구에서는 아직도 화약 연기가 모락모락 올라오고 있는 것이, 놈이 방금까지 나와 대화하고 있던 마약 딜러들을 쏴 죽인 것이 분명했다.
“오늘도 두 개의 영혼을 구원으로 이끌었노라.”
[“어어? 도망친다. 쫓아요 어서!”]
나는 흰가면의 사내를 잡기 위해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 * *
망령당에서 활동하는 범죄자들은 보통 두 부류로 나뉜다.
약물을 이용한 돈을 버는데 눈이 멀어 망령당에 입당하는 범죄자들, 그리고 망령당의 종교적 이념에 취해 망령당에 입당하는 범죄자들.
망령당에 입당하는 대부분의 범죄자들은 전자의 성향에 가깝다.
망령당의 보스, 미닝리스가 말하는 종교적 이념이 너무나도 추상적이기 때문이다.
죽음 뒤에도 삶이 기다리고 있다.
이 세계에서의 삶은 죽음 뒤의 삶을 위한 초석일 뿐, 결국 제대로 된 인생을 살기 위해선 우리는 죽음을 겪어야만 한다.
하지만 그런 말을 하는 미닝리스 조차 죽음을 택하지 않고 이 세상에 살고 있으니까.
이 부분은 원작에서, 지옥의 문을 열고 나온 악마, 벨제뷔트가 놈을 죽이면서 한번 증명한 적 있었다.
놈은, 실은 죽고 싶지 않다.
【“으으음… 거기 있는 놈은 나와 다르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매번 이야기가 나오면 불편하기 짝이 없군.”】
미닝리스는 영계와 이 세계를 연결시켜 완전한 해방을 이루기 위해서 이 세계에 남아있는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에게 그런 소리들은 이해 못 할 개소리로 들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런 미닝리스의 종교적 이념에 완전히 매료된 사람들도 물론 존재하기 마련이었다.
미닝리스는 그들을 특별히, 스푸크(Spook)라는 이름으로 불렀다.
그리고 눈 앞에 있는 흰 가면을 쓴 남자는, 스푸크들 중 한 명으로 보였다.
내 눈앞에서 두 명을 쏴 죽이면서도 눈 깜짝하지 않고 이상한 말이나 지껄여댔으니까.
그나저나 저 녀석 왜 이렇게 빠른 거야?
나는 나무 위를 펄쩍펄쩍 뛰어다니는 스포크를 보며 혀를 내둘렀다.
스피드 모드를 사용해가면서 따라가고 있는데도 쫓아가기가 벅차다.
놈이 나무 위를 달려다니는데 익숙한 신체 구조를 하고 있는 탓이었다.
작은 덩치에 길쭉한 팔.
마치 원숭이와도 비슷한 느낌의 생김새다.
피잉-
내가 그런 생각을 하길 기다렸다는 듯, 나뭇가지의 탄력을 이용해 튕기듯 몇 개의 나무를 한 번에 뛰어넘는 스포크.
[“아까 딜러를 쫓았을 때처럼 허공을 날아 쫓아가는 것은 어때요?”]
아까는 지도를 만들어 놈이 움직일 루트를 파악했던 거잖아.
나무를 피해서 움직이는 놈의 움직임을 예상하긴 쉽지만, 나무를 타고 다니는 놈의 움직임은 예측하기 어렵다.
전자는 건물들을 피해 도망다니는 범죄자들을 통해 충분한 데이터를 축적했지만, 후자는 이번에 처음으로 겪는 상황이니까.
지금껏 꽤 경험을 쌓았다고 생각했는데, 나도 도시 안 개구리나 다름없었던 모양이다.
【“흑염의 날개를 펼쳐 나무들 사이를 뚫고 날아가는 건 어떤가? 그럼 쉽게 놈을 잡을 수 있을 것 같은데.”】
뭐? 산속에서 불을 지르라는 말이냐? 너 미쳤어? 산불 나면 어떻게 하게?
도시 안이었다면 피해 입을 사람이 없는 걸 확인하고 사용할 수도 있는 방법이었지만, 지금은 힘들다.
그렇다면….
나도 놈처럼 나무를 타고 움직여보는 수밖에.
[“나무 탈 줄 아세요? 그것도 나름 기술이 필요하던데.”]
기술이 부족하면 피지컬로 해결하면 돼.
퍽퍽퍽퍽-!
나는 나무 안에 손을 퍽퍽 박아넣으며 나무를 타고 위로 올랐다.
방금 놈이 했던 것처럼 나뭇가지의 탄력을 이용해 튕기듯 몸을 움직일 순 없겠지만.
이것도 피지컬로 해결하면 그만이었다.
꽈아아아악-
파워모드로 변경된 슈트가 내 종아리 근육을 꽉 쥐고 무는 것이 느껴졌다.
쌔애앵-
느슨하게 풀어내자마자 쏜살같이 쏘아지는 내 몸.
내 몸이 쏘아지는 소리가 들렸는지 도망치던 스포크가 등 뒤를 돌아 나를 바라보는 것이 보였다.
놀랬지 요놈아.
꽈아아아악-
쌔애애앵-
다시 한번 쏘아지는 내 몸.
점점 멀어지던 방금과는 다르게 좁혀지기 시작하는 놈과 나의 거리.
피잉-
자신을 쫓아오게 가만히 내버려둘 수 없다는 듯, 나뭇가지에서 몸을 튕기며 몸을 비틀어 나를 바라보는 스포크.
Bang!
그대로 쏘아내는 총탄.
하지만 내게 그정도의 총탄이 먹혀들 리가 없다.
나는 다크쉴드를 만들어내 놈의 총탄을 막아내며, 다시 한번 무릎을 굽혔다.
꽈아아아악-
쌔애애앵-
내게 총탄을 쏜 탓에 조금 더 좁혀진 놈과 나 사이의 거리.
피잉-
쌔애애애앵-
적막한 산속을 뚫고 나와 놈이 몸을 튕기는 소리만이 숲속을 가득 메우기 시작했다.
놈과 내 사이의 거리가 얼마 남지 않았다 생각하고 있던 바로 그때.
피잉-
놈이 다시 한번 쏘아져 나가며 몸을 비틀었다.
나는 반사적으로 다크 쉴드를 만들어내었지만.
철컥.
놈이 겨눈 것은 내가 아닌, 자신의 머리통이었다.
…뭐?
“죽음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다!”
Bang!
짹짹짹!
적막한 숲속에서 쏘아진 총알에 새들이 깜짝 놀라 날아올랐다.
* * *
[“생체 정보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얼굴로도, 지문으로도 이 사람의 존재를 찾을 수 없어요. 마치… 정말 귀신처럼. 한국에는 살지 않는 사람처럼 보여요.”]
흰 가면을 쓴 남자를 조사한 제인이 내게 해준 말이었다.
놈의 생체 정보에서 지금으로서는 얻을 수 있는 것이 전혀 없다고 했다.
【“으으음… 결국 오늘 한 일은 전부 쓸모없는 노력이 된 것인가… 이거 조금 기운 빠지는군.”】
글쎄. 아직 끝이라고 말하긴 이르지.
나는 딜러들이 가지고 있던 스마트폰을 품에서 꺼내들었다.
제인. 여기 있는 사람들 조사해서, 또 다른 마약 딜러들이 있는지 확인 한번 해봐.
[“네? 자기들 정보를 불까 봐 사람을 죽이기까지 한 놈들인데, 스마트폰을 조사한다고 뭔가 나오긴 할까요?”]
생각해 봐. 놈들은 좁은 시골의 인맥을 이용해 사업을 확장하려는 계획을 가지고 이곳에 온 거겠지.
하지만 그 말인즉슨, 좁은 시장인 만큼 서로 이어진 인맥이 많다는 의미다.
여기서 이런 일을 벌이고 있는 놈 인맥 중에서도, 똑같이 약을 받아 사업을 하고 있는 놈이 존재할지도 모른다는 의미였다.
세상이 많이 바뀌어서 이제 예전이랑은 좀 다르지.
입이 근질근질해서 어쩌질 못하는 놈들이, 이 세상엔 존재할 수밖에 없거든.
같은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이미 넌지시 이야기한 놈들이 분명 존재할 터였다.
[“…마스터의 생각이 맞았네요. 찾았습니다. 마약 딜러가 한 명, 구매자가 한 명. 둘 모두 SNS로 대화한 흔적이 남아있어요.”]
이것 봐. 결국 끼리끼리 모이게 되어있다니까.
* * *
“아이구! 내 애라서 그런 건 아닌데. 우리 별이 너무 예쁘지 않아? 나중에 연예인 시켜야겠어, 여보.”
공다혁은 싱글벙글 웃으며 주방을 향해 외쳤다.
히어로 활동을 하지 못해 무슨 일이라도 생길까 걱정이 된 적도 있었지만, 자신이 없어도 세상이 돌아가는 것을 보고 공다혁은 조금 여유를 가지기로 했다.
“여보! 아까 들어온 배달 갔어?”
“앗! 깜빡했다!”
“아니 깜빡할게 따로 있지. 뭐하고 있는거야.”
“미안해 여보. 지금 갔다 올게.”
그런 요란한 소동을 보고 있는, 한 사람이 있었다.
찰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