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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어로 만화 속으로 나 강림-207화 (207/236)

207화

천월군(3)

“가… 강림아… 우리 진짜 이런 데 들어가도 되는 거야?”

간단한 음식과 술을 마실 수 있게 만들어진 호프집의 옥상에서, 소연은 당황한 채 강림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여긴… 수… 술집이잖아.

“걱정하지 마. 내가 만들어준 홀로그램을 쓴 상태라면 우리의 정체가 들킬 일은 없을 거니까.”

“그… 그렇구나. 홀로그램…!”

소연은 강림이 가끔 보여준 적 있는 홀로그램 변장을 떠올렸다.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하는 수준이었는데, 그 정도의 변장이라면 어른처럼 보이는 것도 어렵지는 않을 터였다.

“준비 됐어?”

“으… 응!”

지이이잉-

기계음과 동시에 눈앞에 작게 펼쳐지는 홀로그램.

<홀로그램 변장 작동중….>

소연은 완전히 대학생 언니처럼 변해버린 자신의 모습을 보며 얼굴을 살짝 쓰다듬어 보았다.

지잉-

“어. 얼굴은 만지지 않는 게 좋을 거야. 홀로그램이 불안정해서 꺼져버릴지도 몰라. 마찬가지로 너무 격한 움직임도 금물이고.”

“그… 그렇구나.”

“아무래도 우리가 미성년자다 보니 술집에 익숙하지 않잖아. 어린 대학생 새내기 커플이라는 설정으로 들어갈게. 술은 안 마시는 걸로.”

“어? 커… 커플?”

소연은 자신의 옆에서 완전히 어른처럼 변해버린 강림의 모습을 보며 붉어진 얼굴을 가리기 위해 고개를 돌렸다.

어차피 히어로 활동이야.

마약을 파는 마약딜러들을 잡기 위해 들어가는거야.

그렇게 생각하려고 하고 있었지만, 마치 첫 데이트를 나온 것 같은 설렘 덕에 소연의 심장은 계속해서 쿵쾅쿵쾅 뛰었다.

“나… 수… 술집엔 처음으로 들어가봐. 엄청난 일탈을 하는 기분이야. 신기해.”

“마음 가다듬어. 홀로그램이지만 표정 관리 못 하면 들킬 가능성이 높아지니까.”

“아… 알겠어! 표정 관리! 표정 관리!”

연기를 잘해야 해. 최대한 자연스럽게. 자연스럽게! 술집에 자주 안 다니는 대학생 새내기 커플처럼.

소연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는 강림의 등 뒤를 따라 가게 안으로 들어섰다.

*    *    *

전현민은 천월군에서 작은 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자영업자였다.

망령당이 천월군으로 진출하기 전까지는.

망령당에게서 일을 받아 시작한 지난 두 달 동안, 1년 동안 뼈 빠지게 일한 정도의 돈을 받게 되면서부턴, 전현민의 주요 업무는 마약 판매로 바뀌었다.

원래 운영하던 가게는 폐업 처리한 뒤, 호프집을 운영하는 척 살고 있었다.

실질적으로는, 망령당의 밑에서 마약딜러 일을 하고 있었지만.

‘귀찮게 오늘따라 일반 손님이 많네.’

평소에는 한두 팀 있을까 말까 하던 가게가 오늘은 꽤 붐볐다.

예전에 식당을 운영할 때는 손님이 왕이라는 생각으로 최선을 다해 손님을 맞이했었지만, 지금은 머리가 콩밭에 가 있는 상황이었다.

일반 손님은 아무리 많아져도 좋을 것이 없는 것이다.

‘특별’ 손님들이 많이 오는 것이 가장 중요하지.

짤랑-

그때, 가게 안으로 들어서는 손님.

“소민아. 손님 받아라!”

슬쩍 고객의 행색을 살펴 견적을 뽑은 전현민은 곧바로 알바생을 불러 일을 시켰다.

보통 일반 손님들이 들어오는 건, 알바생을 사용하여 처리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현민은 특별 손님들은 모두 명단화해서 관리하고 있었으며, 자신이 만들어준 초대장이 없다면 새로운 손님조차 받고 있지 않았다.

짤랑-

다시 한번 들려오는 차임벨 소리를 들으며, 현민은 눈을 돌렸다.

충혈되어 풀린 눈, 덜덜 떨리는 몸, 두서없는 표정.

특별 손님이었다.

그것도 처음 보는 특별 손님.

아마, 초대장을 가져온 손님이리라.

짤랑- 짤랑-

뒤이어 들어오는, 젊은 대학생 커플.

“네. 어서 오세요!”

“소민아. 저 손님은 내가 볼 테니, 넌 저 뒤에 오는 커플 손님들을 받아라.”

“네. 알겠습니다! 이리로 오세요.”

싹싹하게 대답하고 커플들에게 주문을 받으러가는 알바생을 보며, 현민은 특별손님에게 다가갔다.

“자~ 어떻게 해드릴까?”

“날씨가 많이 춥군.”

가을이 끝나고, 이제 쌀쌀한 겨울이 되어가고 있는 시점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곧 첫눈이 올지도 모른다는 뉴스 기사가 뜨기도 하는 시점이었다.

“밖이 많이 춥죠? 히터 따뜻하게 틀어놨는데. 좀 있으시면 괜찮아지실 겁니다.”

“따뜻한 거. 따뜻한 걸로 주십쇼. 이거. 이게 좋겠네.”

“그래요. 어묵탕 한 냄비… 술은 뭘로 드릴까?”

“제일 센 거.”

“쐬주드려?”

“그거 말고. 더 센 거 말이오. 더 센 거.”

역시나 현민의 생각대로 특별 손님이었다.

현민은 자신을 보는 손님들이 있는지 주변을 슬쩍 살펴보았다.

“술은 뭘로 드릴까요?”

“아… 지금 제 여자친구가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상태가 좀 안 좋네요… 그냥 콜라로 주실 수 있나요?”

뒤쪽에 앉은 커플들이 주문을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다행히도 이쪽에는 아무도 관심을 두고 있지 않았다.

현민은 다시 고개를 돌려 특별 손님을 바라보았다.

“더 센 거 드리려면 초대장이 있으셔야 하는데… 초대장은 가지구 오셨나?”

명함을 하나 꺼내 자신의 손에 그것을 쥐여주는 특별 손님.

명함에는, 그의 고등학교 동창인 손동성의 이름이 적혀있었다.

자신에게 이 일을 소개해준 친구 중 한 명이었다.

현민은 그 명함을 보자마자 불길한 기분을 느꼈다.

지금은 서로 손님을 두고 다투는 바람에 얼굴을 보지 못한 친구 놈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친구 놈의 소개를 받고 자신에게 찾아왔다?

경찰.

경찰이나 히어로가 틀림없었다.

현민은 고개를 끄덕이곤, 주방으로 들어가 자신이 직접 담근 담금주를 한 병 꺼내 가지고 나왔다.

진짜 대신, ‘더 센’ 술을 줘야할 상황에 내놓기 위해 만들어놓은 술이었다.

“자. 더 센 거 나왔습니다.”

담금주를 보자마자 얼굴이 일그러지는 손님.

“이게 뭐지?”

“이게 더 센 술이죠. 제가 직접 담근 건데, 도수가 오십….”

“이거 말고! 나도 다 알고 왔어! 여기서도 취급하고 있잖아!”

덥석.

자신의 손을 잡는 손님.

“뭐… 뭡니까? 경찰에 신고합니다?”

흥분한 듯 온 얼굴을 벌겋게 물들이던 손님이, 크게 심호흡을 한 번 하더니 고개를 내리고 조용히 말하기 시작했다.

“내가 동성이 명함을 가져와서 의심하는 모양인데, 동성이랑 재한이가 이 일을 그만뒀어.”

“뭐요?”

“약을 구해야 하는데 연락을 아예 안 받는다고! 어떻게 된 건진 나도 모르지. 예전에 자네 이야기를 어디서 한번 들은 적이 있어서 온 거야. 약이 다 떨어진 지 벌써 사 일째야! 제발… 제발 내게 약을 줘! 미쳐버리겠다고.”

자신의 손목을 잡아 쥔 손님의 손이 덜덜 떨리는 것이 현민에게도 느껴졌다.

이건 진짜다.

마약 중독자만이 할 수 있는, 진짜 떨림.

경찰과 히어로가 이렇게까지 마약 중독자를 연기 할 수 있다고?

놈들이 그만둔 게 사실이라면, 지금 시점에서 자신이 벌 수 있는 돈이 두 배, 아니 세 배가 된다. 그렇다면 손님을 받지 않을 이유가 없다.

“제일 큰 걸로 20장.”

두말하지 않고 품속에서 봉투를 꺼내 자신에게 건네는 손님.

돈을 받은 현민이 마약을 꺼내려던 바로 그때.

철컥.

자신의 손목에 채워지는 수갑.

“선생님을 마약 소지 및 판매 혐의로 현행범 체포함다. 변호인을 선임할 수 있고 체포 구속 적부심을 청구할 수 있으며 선생님의 모든 발언은 법정에서 불리하게 적용함다.”

벌떡.

그 목소리가 나옴과 동시에 저 멀리서 혼자 술을 홀짝이던 손님이 몸을 일으켰다.

“꺄아아아악!”

알바생의 비명소리.

손님의 손에는 총이 들려있었다.

“죽음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다!”

탕-!

*    *    *

“죽음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다!”

내 이럴 줄 알았지.

나는 그 소리를 들음과 동시에 몸을 일으켜 뛰어 다크 쉴드를 들어 올렸다.

지이이잉-

내 몸에 걸려 있던 홀로그램이 풀려나는 것이 느껴진다.

[“저 사람은… 경찰?”]

【“이런 곳에서 경찰을 만날 거라 생각하지 못했는데. 신기한 상황이군.”】

이 자리에 경찰이 있을 거라곤 생각 못 해서 조금 당황하긴 했지만, 차라리 다행이었다.

우리를 담당한 알바생은 아무것도 모르는 일반인인 거 같았거든.

알바생은 연기를 너무 못하는 소연이 수상해 보였는지, 호시탐탐 계속해서 신분증을 제시받기 위해 우리를 살펴보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게, 내가 봐도 소연이는 너무 처음으로 술집에 들어오는 미성년자 같은 느낌이 많이 들었다.

아마 우리가 콜라를 시킨 게 아니면 분명 신분증을 받았을거다.

어차피 술 같은 건 먹을 생각이 없어서 다행이었다.

내가 생각을 좀 잘못했어.

차라리 아저씨 아줌마로 변장하는 게 맞았는데.

“으으앗!”

내가 일어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라 함께 벌떡 일어나는 소연, 아니 어비스 위치.

아무튼 우리 대신 이곳에서 수사를 맡고 있는 경찰이 있던 덕분에, 우리는 다행스럽게도 마약 딜러를 찾아낼 수 있었다.

“어비스 위치! 여기 있는 사람들을 대피시켜주시오!”

“알겠어요! 여러분… 잠시… 이쪽으로….”

대피를 시키기 위해 통로를 열려던 소연의 말이 느려지기 시작했다.

지금 내가 보고 있는 장면을 함께 보게 된 탓이리라.

술집 안의 모든 손님이, 품 안에서 가면을 꺼내 얼굴에 쓰기 시작했으니까.

“너희의 죽음의 끝에 구원이 있으라.”

“받아들여라. 죽음은 새로운 천국으로 향하는 통로이니라.”

마치 우리가 이곳에 올 걸 알고 있기라도 했던 것처럼, 이곳을 지키고 있었던 것이다.

아니면… 경찰을 감시하고 있었나?

어떤 상황이던 간에 지금은 술집 안의 남은 일반 사람들을 대피시키는 것이 우선이었다.

알바생과 경찰, 그리고 마약 딜러까지.

철컥

철컥

철컥

철컥

순식간에 우리를 향해 겨눠지는 총부리들.

이런 상황들을 대비해서 최근, 원래 사용하던 장비들을 조금씩 개선하고 있었지.

나는 등 뒤의 망토를 손으로 확 잡아끌었다.

내 왼팔에 완전히 감긴 검은 망토가, 훨씬 더 커다란 다크 쉴드를 만들어내 총알을 튕겨내기 시작했다.

투두두두두두- 두두두!

차라라라랑-

다크 쉴드를 두드리곤 바닥으로 흩어지는 총탄들.

나는 그대로 오른손을 뻗어 셰도우와 셰이드를 꺼내 집어던졌다.

휘휘휘휙-

pzzzzzzZZZZZ!

내 품 안에서 날아간 셰도우와 셰이드가 순식간에 가면을 쓴 두 사람의 허벅지에 박혀 들어 전류를 흘려댄다.

그와 동시에 앞으로 돌진해나가며 들고 있는 다크 쉴드로 눈앞에 있던 흰 가면의 얼굴을 후려쳤다.

텅 하는 소리를 내며 앞으로 붕 떠 날아가는 스포크.

순식간에 세명의 스포크를 쓰러트린 내가 주변을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내가 잠깐 구경만 시켜줄게. 너희가 가고 싶어 하는 그 죽음 이후의 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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