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8화
망령당(1)
언제나 히어로 활동 중 가장 우선시해야 하는 것은, 사람들의 목숨을 살리는 것이다.
빌런을 제압할 수 있는 상황과, 누군가를 살릴 수 있는 상황 중에 무언가를 선택해야 한다면, 나는 누군가를 구해내는 쪽을 선택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지금, 내가 방금 쓰러트린 흰가면들을 구출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수틀리면 자신의 머리에도 총탄을 들이대는 놈들이다.
흰가면들은 분명, 쓰러진 자신의 동료들에게도 가차 없이 총탄을 박아버릴 터였다.
누군가의 죽음을 지켜봐야 한다는 것은, 익숙해지긴 힘든 일이다.
그게 만약 빌런이라고 하더라도.
“어비스 위치. 장내에 쓰러진 흰가면들을 대피시키는 것을 우선시하시오.”
“어…? 어째서? 저 사람들은… 사람들을 죽이는 악당들일 뿐인데….”
초보 히어로들은 이런 게 곤란하다. 사람을 구하는 데 이유를 따지니까.
“히어로는 누군가를 구하기 위해 존재하는 사람이오. 빌런을 벌하는 것은 우리가 꼭 해야만 하는 일이 아니야.”
초보 히어로들은 저 사람은 나쁜 사람이기 때문에 구해선 안 되고, 해치워야 할 적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너도 예전에 그랬지 않은가?”】
먼저 해봐서 그게 얼마나 잘못된 일인지 알고 있으니까 그렇지.
나처럼 평생 후회하게 할 필요 없잖아.
“나… 난 사실 이해 못 하겠어. 하지만… 네가 그렇다면 네 말을 듣겠어.”
그런 말과 동시에 통로를 열어 쓰러진 흰가면들을 구출하기 시작하는 어비스 위치.
그와 동시에 데다이트를 위한 통로를 열어 전투에도 도움을 주고 있었다.
“꺽!”
저 멀리서 데다이트의 거대한 주먹에 얻어맞고 내게 날아오는 흰가면 중의 한 명.
나는 쓰러진 흰가면을 받아낸 뒤, 뒤로 집어던졌다.
지이잉-
흰가면이 떨어질 장소에 열리는 어비스 위치의 통로.
내가 던진 흰가면을 받아낸 어비스 위치가 통로를 저편으로 사라진다.
장내에 남은 흰가면들은 총 6명.
대부분 총기로 무장한 상태.
그나마 다행인 점이라면, 식당 안에서 손님으로 위장하고 있던 상태였기 때문인지 휴대가 간편한 작은 총기류를 들고 있다는 점이다.
이 정도라면, 강화된 다크 쉴드의 방어력만으로도 충분히 오래 막아낼 수 있다.
나는 팔에 휘감고 있던 망토를 그대로 몸 위로 둘러썼다.
완전히 내 몸 위를 덮으며 만들어지는 다크 쉴드.
이런 상황이라면 나도 바깥으로 영향을 줄 수 없겠지만….
나는 그대로 눈을 감았다.
붉은 기운이 내 눈을 빠져나와 바깥의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그대로 정신 집중을 하며, 방금 두 사람을 쓰러트렸던 셰도우와 셰이드를 들어 올린다.
duadadadadada!
다크 쉴드 위로 권총과 기관단총의 총탄이 쉴 새 없이 쏟아졌지만, 이젠 이 정도의 총탄으론 다크 쉴드는 꿈쩍도 하지 않는다.
다크 쉴드의 에너지가 총탄을 흘려내는 동안 주변을 돌며 흰가면을 쓴 스포크들을 처리하기 시작하는 셰도우와 셰이드. 그리고 데다이트.
“끄억!”
pzzzzzzz!
조용하던 건물 내부를 울리는 비명.
순식간에 장내에는 세 명의 사람만이 남아 움직이고 있었다.
나는 내 몸을 두르고 있던 다크 쉴드를 들어 올리며 앞으로 뛰어나갔다.
바로 그때였다.
“우리의 죽음의 끝에 구원 있으라!”
“받아들여라! 죽음은 새로운 천국으로 향하는 통로이니라!”
예의 사이비스러운 말을 외치며 품 안에서 꺼내 들은 폭탄을 나에게 집어던지는 스포크들.
이런 미친놈들이 언제나 그렇듯, 또다시 폭탄 테러로 이 상황을 마무리하려는 거다.
하지만, 내가 지금까지 폭탄 테러를 몇 번째 막았는데.
하루 이틀 일도 아니고, 대비를 안 해놨을 줄 알아?
나는 그대로 휘감은 망토를 허공에 집어 던졌다.
퉁!
마치 그물처럼 넓게 퍼진 망토가 놈들이 집어던진 폭탄을 모두 휘감은 채 바닥으로 내려앉는다.
booom!
나는 그대로 뛰어올라 가만히 서 있는 스포크들에게 달려들었다.
이제는 포기한 듯,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멍하니 서 있는 스포크들.
나는 남은 놈들을 순식간에 제압할 수 있었다.
* * *
“살려주셔서 감사함다. 다크 카이저. 하마터면 뉴스에 실릴뻔했네.”
우리보다 더 일찍 마약 판매자를 잡기 위해 가게에 잠입했던 경찰은, 놀랍게도 예전에 가끔 함께 일한 적 있는 경찰, 정경구 형사였다.
“…오랜만이군. 최근 만나기가 힘들어져서 경찰을 관둔 줄 알았는데 말이오.”
“쫓겨나면 쫓겨났지, 내 손으로 경찰 관둘 생각 없슴다. 사실, 지금도 거의 쫓겨난 거나 다름없지만.”
언제는 나보고 경찰 할 생각하지 말고 히어로나 하라더니….
매번 경찰을 그만둘 것처럼 하지만, 아직까지도 경찰을 그만두진 않은 모양이다.
책임감 때문일까?
이런 경찰들이 있기 때문에 이 세상이 어떻게든 살만한 세상으로 바뀌어 가고 있는 거겠지.
비실비실 웃으며 금연 껌을 하나 꺼내 씹기 시작하는 정경구 형사.
“그래도 도시에 있을 때보단 속이 편합디다. 경찰로서 납득이 안 되는 일을 하는 것보단, 시골에서 할머니들 싸움 말리는 쪽이 더 살기 좋드라고.”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경찰 내부의 일로 도시에서 좌천이라도 당했던 모양이다.
“그것도 최근에 여기로 기어들어온 요놈들 때문에 달라졌지만 말임다. 요놈들이 최근 이런 시골까지 약물을 풀어내는 탓에 아주 골치가 이만저만이 아님다.”
때마침 기다렸다는 듯 들려오는 정경구 형사의 벨소리.
정경구는 핸드폰의 벨소리를 무음으로 바꾸었다.
“빨리 데려오랍니다. 더 시간을 많이 드릴 수가 없겠네요. 저도 나랏밥 먹고 사는 놈이라. 죄송함다.”
“아니. 괜찮소. 이 정도 시간을 배려받은 것만으로도 고맙지.”
정경구 형사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아무 말 없이 가만히 앉아있는 스포크들을 살펴보았다.
마치 무슨 끈 떨어진 인형처럼 조용히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나란히 앉아있는 스포크들.
마치 도자기로 만든 사람처럼 표정도 존재하지 않는다.
“히이익… 제발… 저 여기서 좀 꺼내주시면 안 될까요? 다른 방으로 갈게요. 네?”
그사이에 앉아있던 마약 딜러가 철창을 부여잡고 우리에게 애원한다.
가게를 열고 마약 딜러를 하던 이 쓰레기는 잡혀 오자마자 순식간에 입을 열었다.
마약 딜러들이 마약을 공급받는 곳도, 이렇게 자신의 가게로 찾아오는 흰가면을 쓴 남자에게서 공급받았다고 한다.
만약 배신하면 자신이 찾아와 순식간에 죽여줄 테니 배신할 생각은 꿈에도 꾸지 말라는 말까지 들었던 모양이다.
기본적으로 이 마약 딜러에게서 얻을 수 있는 정보는 그다지 많지 않았던 거다.
그렇다면, 여기 있는 스포크들은 무슨 이유로 가게에 일반 손님으로 위장한 채 앉아 있었을까?
제인 신상 정보에 대해 알아낸 거 좀 있어?
[“아니오, 마스터. 놀랍게도 지문, 얼굴, 어떤 걸로 조사를 해보아도 정보가 나오지 않습니다. 어떤 방법을 썼는진 모르겠지만요.”]
이렇게 많은 사람을 쓰러트렸는데,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게 단 하나도 없단 말이야?
[“sns나 사진들을 뒤져보곤 있는데… 정보가 부족해서 아직까진 시간이 더 필요합니다.”]
“아까 지문으로 여기 있는 사람들의 신상정보를 살펴보았는데 말임다.”
내가 그런 생각에 잠겨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듯 입을 여는 정경구 형사.
무언가 힌트가 되는 부분이라도 있나?
약간의 희망을 가지던 바로 그때.
[“아무것도 찾을 수 없었을 거에요. 제가 항상 경찰 데이터베이스부터 뒤져보거든요.”]
곧바로 희망을 꺾어버리는 제인의 목소리.
“대부분 제대로 신상정보를 파악할 수도 없게 지문도 훼손되어 있고, 정보도 거의 다 말소가 되있더군요.”
그럼 그렇지.
“그런데, 그중 한 명은 제가 얼굴을 알고 있는 사람이었슴다.”
나는 고개를 번쩍 들어 올렸다.
내게 무언가를 하나 건네주는 정경구 형사.
실종자를 찾고 있는 전단지였다.
이름 강담비.
나이 만 17세.
직업 고등학생.
옆에는 환하게 웃고 있는 여자아이의 사진이 붙어있었다.
“3개월 전 이야기임다. 아직도 애타게 찾고 있거든요. 담비 어머니가. 그 아이가 여기 이렇게 누워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지만.”
[“마스터. 정경구 형사가 알려준 정보를 기반으로 강담비에 대한 정보를 찾아냈습니다.”]
내 눈앞에 떠오르는 강담비의 sns 계정.
나는 환하게 웃고 있는 여고생의 사진을 보았다.
우리 학교, 우리 반에도 한 명 있을 법한 평범한 외모의 소녀였다.
나는 강담비를 찾기 위해 고개를 돌렸다.
누구지? 얼굴만 봐선 구분이 잘 안 되는데 말이지.
“저기. 저기 있는 저 여자애인 것 같슴다.”
그런 내게 강담비의 위치를 알려주는 정경구 형사.
멍한 표정으로 가만히 앉아있는 강담비는, 사진 속에서 환하게 웃는 평범한 소녀와는 완전히 다른 사람인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내가 금세 찾을 수 없었던 모양이다.
이런 평범한 여고생이 삼 개월 만에 자신의 머리에도 총을 겨눌 수 있는 광신도가 되었다고?
나는 내 옆에 앉아있는 소연이의 모습을 보았다.
평범한 사람이 히어로로 활동하는 것도 마음의 준비가 꽤 되지 않는 이상 쉽지 않다.
그런데 이렇게 평범한 고등학생이 그렇게 순식간에 사람을 죽일 수 있는 살인자가 되었단 말이야?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아무래도 정신지배를 받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타당하리라.
거기까지 생각이 연결되자, 폭탄을 집어 던지고 나선, 마치 인형처럼 가만히 있던 스포크들이 머릿속에서 떠올랐다.
그때 놈은, 폭탄이 무조건 터질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정신지배를 하고 있던 사람이 죽었을 때 자신의 정신에까지 미칠 영향을 줄이기 위해 순간적으로 정신지배를 완전히 끊어냈던 것이다.
그래서 스포크들이 폭탄을 던지고선 마치 끈 끊어진 인형처럼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있었던 거다.
그렇다면, 내가 지금 해야 할 것은?
“정경구 형사. 천산시에서 실종 신고된 사람들을 중심으로 이 사람들의 정보를 알아봐주시오.”
“알겠슴다. 일 끝나면 제대로 찾아보겠슴다.”
“어비스 위치. 조금 시간이 걸릴지도 모르니까 잠깐 나를 지켜줄 수 있겠나?”
“어? 응! 알겠어요. 걱정하지 마요. 안전하게 지켜줄 테니까.”
내 옆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없어 풀 죽어 있던 소연이 결연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정신을 집중하며 눈을 감았다.
나는 지금, 정신지배당한 사람의 머릿속으로 들어가 그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 볼 생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