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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어로 만화 속으로 나 강림-210화 (210/236)

210화

망령당(3)

[YOU LOSE]

“에이씨… 또 졌네.”

대학에서 만난 친구 놈들인데, 군대 가기 전 휴학 일자와 복학 일자를 맞출 만큼 친하게 지내며 놀았던 친구들이었다.

나는 이모의 간병 때문에 한 학기 먼저 쉬게 됐지만….

이모도 나았겠다, 다음 학기부턴 나도 복학을 준비하고 있는데 그사이에도 틈틈이 이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오늘도 그런 날 중 하나였다.

“그냥 재수가 없었어. 상대 조합이 너무 좋아. 야 담판 빨리 큐 돌려!”

대학 동기, 성우가 말하는 것을 들으며 나는 피시방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 뭐야? 어디 가게?”

“그냥. 게임이 재미가 없다. 안 할래.”

“야. 관두더라도 이기고 관둬야지. 찝찝하잖아.”

“너 혼자 이기고 와라.”

“에이씨….”

나를 따라 일어나는 친구들.

“야. 그럼 술이나 먹으러 갈래? 너 전역빵으로 내가 쏠게.”

“됐어. 술도 별로 안땡기고.”

“뭐냐? 천하의 나강림이 술이 싫다고 하는 날이 다 있네? 뭐 어디 아프냐?”

“됐다. 술은 너희끼리 마셔라. 오늘은 네 말대로 몸 상태가 별로 안 좋은 거 같다.”

“어? 어… 그래, 알았다.”

나는 친구들과 헤어져 천천히 길을 걸었다.

집으로 돌아가려면 차를 타고 한참을 가야 할 길이지만, 어쩐지 차를 타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상하네… 자꾸 이상한 기분이 들어….

아스팔트를 달구던 해는 진작 고개를 넘어 모습을 감췄고, 달은 빌딩 숲에 얼굴을 감춰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침침한 어둠 속에서 가로등 불빛만이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낮에 잠시 이모와 함께 시간을 보낼 때까진 괜찮았다.

문제는 저녁시간이 다가오고 나서부터 시작되었다.

날이 어두워지면 어두워질수록, 점점 더 무언가를 잊어버리고 있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기 시작했다.

내가 무언가를 잘못해내고 있다는 그런 생각.

분명 뭔가를 잊어버리고 있는 것 같은데….

“내가 뭘 잊어버리고 있는 걸까?”

나는 누군가 대답해주기를 기다렸지만….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렇게 집 앞에 거의 도착했을 때쯤이었다.

“…주 …요.”

어디선가 희미하게 들리는 목소리.

“도… 주… 세요….”

어디? 어디서 들리는 소리야?

“도와주세요!”

나는 소리가 들리는 곳을 향해 반사적으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    *    *

이런 곳에 숨어 있었나.

분명 몇 번이고 지나쳤던 곳이건만.

어떤 주술적인 방법으로 공간 자체를 비틀어서 숨겨놓았던 모양이지만….

정확한 위치와 존재를 알아버린 이 순간, 미닝리스에게 그런 잔재주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미닝리스는 비틀려 있는 공간 안으로 발을 들이밀었다.

그리고….

짝짝짝짝!

“아… 아름다워… 내가 예전에 보았던, 바로 그 모습이야!”

미닝리스는 영계의 틈 앞으로 도착한 바로 그 순간, 자신도 모르게 박수를 치고 말았다.

영계의 틈은 지금껏 이것을 위해 싸워왔다는 게 자랑스럽게 느껴질 정도로, 아름다운 모습으로 미닝리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저 틈을 완전히 열어젖힐 수만 있다면, 영계와 이 세계가 완전히 연결되는 것이다.

죽음과 삶의 경계가 희미해지고, 죽었던 사람이 이 세상으로 돌아올 수 있게 되겠지.

그렇게 된다면, 미닝리스는 꿈에도 그리던 자신의 아내를 다시 한번 만나볼 수 있게 될 터였다.

“무슨 이유로 찾아오신 분인가요? 이곳은 아무나 찾아올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돌아가세요.”

그때, 미닝리스의 귓가로 들려오는 여성의 목소리.

곧 쓰러질 것 같은 절 한 채가 영계의 틈이 벌어지지 않게 틀어막은 채 버텨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안에 가부좌한 채 자신을 바라보고 비구니 한 명.

지금까지 문이 열리지 않았던 이유는, 저 절에 기거하고 있는 저 비구니 한 명 때문이었으리라.

하지만….

사람의 정신을 쥐고 흔드는 데 익숙한 미닝리스는 곧바로 비구니의 정신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완전히 새하얀 도화지 같은 정신에 검은 액체가 한방울 떨어져 있었다.

그것은….

자신의 유일한 가족이 떠나버릴지도 모른다는 것에 대한 공포.

자신이 모르는 세상에서 살아가야만 한다는 것에 대한 공포.

그 공포 때문에 지금껏 영계의 틈을 닫지 않은 채 유지만 하고 있었던 걸 테지.

불쌍한 것.

내가 그런 너를 위해 답을 내려주마.

“비켜라. 네가 하지 못한 걸 내가 대신해주마.”

*    *    *

“도와주세요!”

벌써 네 번째 들려온 소리다. 무슨 일이 생겼어도 진작 생겼을 법한 긴급한 상황이었다.

소리가 들린 곳에 도착하자 보인 것은 교통사고가 난 현장이었다.

길게 이어진 타이어 자국이 보였다.

“야옹!”

갑자기 튀어나온 고양이를 피하려다 가드레일에 들이 받아버린 모양이었다.

차량 안에는 일가족이 도로의 가드레일에 부딪힌 채 정신을 잃고 있었다.

퉁퉁퉁!

“저기요! 정신 좀 차려보세요! 저기요!”

애타게 불러보아도, 차 안에 있는 사람들은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끼이익- 끼익-

그 가드레일 밑으로 떨어지면 언덕 밑으로 굴러떨어질 텐데….

언덕의 높이가 꽤 높은 터라 들이받았다가는 분명 안에 있는 사람들의 목숨이 위험할 것이 분명했다.

나는 부랴부랴 차의 문을 열기 위해 앞으로 달려나갔다.

가장 먼저, 뒷좌석을 열어 아이부터 끄집어냈다.

아이를 안고 나오는 동안 따뜻한 체온과 숨결이 느껴졌다.

아직 살아있다.

아이를 안전한 곳에 내려다 놓은 뒤, 나는 앞 좌석의 문을 열기 위해 달려들었지만….

덜컥. 덜컥.

가드레일에 부딪히며 차가 찌그러진 탓일까?

아무리 힘을 주어 차 문을 잡아당기려 해보아도 차 문은 옴짝달싹하지 않았다.

나는 도움을 청할 사람을 찾기 위해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무도 없어.

평소 이 길에는 다니는 사람이 많았었는데, 오늘따라 어쩐지 사람이 한 명도 존재하지 않았다.

끼익— 끼이이익-.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듯, 위협적인 소리를 내기 시작하는 차량.

문이 열리지 않는다면, 창문이라도 깨서 구해내야만 한다.

나는 급하게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주변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나는 급한 대로 입고 있던 티셔츠를 벗어 손에 돌돌 말아쥐었다.

쾅!

한 방.

쾅!

두 방.

쾅!

세 방!

다행히 사고 덕택에 금이 가있던 보조석의 유리창은 내 주먹질에도 쉽게 깨어졌다.

완전히 깨어진 창문을 억지로 뜯어내며 나는 그대로 몸을 들이밀어 보조석에 있는 여자의 안전벨트를 풀어낸 뒤 몸을 끄집어냈다.

깨어진 창문 조각이 몸을 스치고 지나가는 것이 생생하게 느껴졌지만.

끽--- 끼이이이익-

지금은 내 고통을 신경 쓸 상황이 아니었다.

“쿨럭… 쿨럭….”

여자가 기침하는 것을 보며, 나는 마지막으로 운전석에 있는 남자를 구하기 위해 몸을 안으로 들이밀었다.

역시나 매어있는 안전벨트를 풀어내고 몸을 들어보려고 했지만….

지금까지 구한 다른 사람들에 비해서 몸이 무거운 탓에 끄집어 내기가 쉽지 않았다.

심지어 깨어낸 창문에서 먼 운전석에 있는 사람이었으니까.

끽— 끼이이이이이이이-

그렇게 고군분투 하는 와중에도 차량은 계속해서 미끄러져 내려가기 시작했다.

“끄… 끄으아아아아!”

나는 결국 온 힘을 다해 남자를 들어 올려 차 안에서 끄집어내는 데 성공했다.

끼이이이익- 퉁! 쾅! 쿵!

내가 남자를 끌어내기가 무섭게 언덕 밑으로 굴러떨어지기 시작하는 차량.

사… 살았다.

나는 그대로 뒤로 드러누워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제서야 나는 내가 무얼 하고 있었는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

이 기분, 이 감정.

누군가를 구해냈을 때 느껴지는, 그 쾌감.

나는 밤마다 히어로 활동을 하고 있던, 다크 카이저였다는 사실을, 나는 떠올리고야 말았다.

【“드디어 정신이 돌아왔군. 기다리고 있었다. 어둠의 황제, 다크 카이저여.”】

그제서야 내 머릿속에서 들려오기 시작하는 벨제뷔트의 목소리.

강담비의 머릿속에서 점점 깊은 어둠으로 향하던 나는, 눈앞에 펼쳐져 있던 어둠이 누군가 만들어낸 함정이란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이런 정신 함정을 파놓을 사람은, 망령당의 보스 미닝리스밖에 없을 터였다.

하지만….

나는 지금 놈이 어디 있는지 알지 못한다.

그렇다면, 놈을 잡기 위해 일부러 함정에 들어가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놈이 어떤 방식을 통해 사람을 지배하는질 알게 된다면, 정신 지배에 당해 이용 당하는 사람들을 구해줄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기도 했으니까.

그래서 나는 일부러 놈이 파놓은 함정에 들어왔다.

그리고 지금.

나는 결국 놈의 함정을 이겨내는데 성공했다.

아마 나 혼자만의 힘은 아닌 것 같지만.

지금 여기 있는 이 사고 현장. 네가 꾸며낸거지?

나를 부르는 목소리도 그렇고.

【“네가 못 이겨낼 거라 생각해서 그랬던 건 아니다. 지금 상황이 조금 급박했기 때문이지.”】

급박해?

【“놈이 우리가 함정에 기어들어 간 것을 알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네 머릿속의 정보로 영계의 틈으로 향하고 있어. 지금 빨리 빠져나가야 놈을 막아낼 수 있다.”】

그런가… 급박한 상황이군.

나는 잠시 내가 예전에 살았던 집을 돌아보았다.

이모가 돌아가시기 전까지, 나의 집이었던 곳.

내가 원하는 의도대로 일도 진행되고 있고, 정신 지배를 어떤 방식으로 유지하는지도, 결국 알아낸 거 같으니까.

천국을 부르짖는 미닝리스는, 사람의 머릿속에서 계속해서 그 사람이 원하는 천국의 모습을 보여주는 듯했다.

그렇게 자신만의 세상에 빠져있는 사람들이 남겨놓은 육체를, 미닝리스는 움직이고 이용하는 것이다.

【“…괜찮겠나? 이곳에서 빠져나가도?”】

내가 보고 싶은 것을 볼 수 있는 세계에서 살 수 있다.

분명 매력적인 일이지만….

괜찮아.

이제 내 집은 여기가 아니니까.

그런 생각을 함과 동시에 세상에 빛이 환하게 비추기 시작했다.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다.

*    *    *

미닝리스는 자신의 앞에 서서 영계의 문을 열고 있는 비구니를 보며 미소지었다.

비구니의 정신을 지배하는 것은 손쉬웠다.

비구니 또한 영계의 문을 열고 싶다는 욕망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정혜에게 무슨 짓을 한 게냐! 정혜를 원래대로 돌려놔라, 이놈! 이놈아!”

“이게 다 당신을 위한 거야. 당신도 당신의 제자와 함께 오랫동안 지내고 싶지 않나? 응?”

“사람의 육체는 썩어서 흙으로 돌아가고, 사람의 영혼은 윤회하여 새로운 삶을 찾아가는 것이 부처님의 뜻이다.”

“그러는 당신도 영혼인 상태로 아직까지 살아있지 않나? 응? 그건 부처님의 뜻인가?”

스님의 영혼이 조금 시끄럽긴 하지만, 결국 자신에겐 아무런 해를 끼치지 못한다.

미닝리스가 손을 들어올려 명령하자, 비구니가 닫혀있는 영계의 문을 서서히 열어젖히기 시작했다.

이제 다 왔다. 곧, 미닝리스가 원하는 세상이 도래하리라.

그때였다.

차라라라라랑-

열리려던 문에 칭칭 감겨오는 검은색 체인.

“미안하지만, 네가 원하는대로 하게 내버려둘 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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