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2화
삶의 의미
【“문이 닫히고 있다!”】
나도 보고 있어!
정혜스님이 힘을 보태준 이후부터, 완전히 벌어져 그 안에 있는 영혼들을 쏟아내고 있던 영계의 틈이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그와 동시에….
“구어어어어- 어어어-”
세상 밖으로 빠져나오던 악령들 또한, 소용돌이치며 다시 영계의 틈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조금만… 조금만 더…!
영계의 틈을 거의 닫았다고 생각했던 바로 그때, 나는 그 틈 사이로 무언가를 보고 말았다.
이모의 모습이였다.
병에 걸려 고통스럽게 돌아가시던 시절의 이모.
이모를 본 순간부터 세상의 모든 것이 천천히 흘러가기 시작했다.
“강림아! 갑자기 왜 그래!”
소연의 외침이 들려오고 나서야, 나는 제정신을 찾을 수 있었다.
【“정신 차려라 나강림! 네가 본 것은 악령이다. 네 마음을 흔들어보려는 악령!”】
나도… 알고 있어!
나는 깨달았다.
나에게 남아 있는 미련이 무엇인지를.
미닝리스의 정신지배에서도, 악령의 유혹에서도.
나는 아직도 내가 돌아온 세계를 그리워하고 있었다.
마치 이방인처럼, 이 세계에서 언젠가 원래 세계로 돌아갈 것처럼.
그 세계에 대한 그리움이 나에게 약점처럼 남아 계속해서 내 심장 한켠을 찌르고 있었던 것이다.
“으아아아아아아!”
나는 크게 소리질렀다.
내 마음속에 남아있는 것이 무엇이든 간에, 이 함성으로 쏟아내고 떠날 수 있게.
치이이이이이익-
쿵-
결국 영계의 틈은 닫혔다.
* * *
미닝리스, 남영민은 아주 어렸을 때부터 부모의 요구를 충족시키며 살아왔다.
남영민의 부모는 영민이 의사가 되길 원했다.
영민은 그런 부모의 기대를 맞추기 위해 죽을 힘을 다해야만 했다.
놀이? 취미?
영민의 삶에 그런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식사도, 수면도, 최소한의 조건만 맞추며 죽지 않게 살아왔을 뿐.
영민이 전교 1등을 하지 못하는 날에, 영민은 그마저도 식사를 뺏긴 채 두들겨 맞았다.
만점을 맞지 못했다는 이유였다.
그는 그날, 홀로 울며 이해되지 않는 수학 공식을 억지로 머릿속에 집어넣어야만 했다.
그런 영민은 어느날, 갑자기 자유를 얻을 수 있게 되었다. 영민의 집에 강도가 들었기 때문이었다.
강도는 자신의 얼굴을 알아보는 사람을 남기고 싶어하지 않았고, 집안에 있는 모든 사람을 쏴 죽이려고 했다.
하지만 먹지도, 자지도 못해 또래보다 작았던 영민은 세탁기 안에 숨어 있는 것으로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날 이후, 영민은 혼자가 되었다.
혼자가 되었지만, 영민의 삶은 달라지지 않았다.
영민은 이미 공부 외엔 할 줄 아는 게 없는 상태였으니까.
다만, 의사가 되면 뭐든 네가 원하는대로 할 수 있다던 부모의 말만큼은 철썩같이 믿고 있었다.
영민은 결국, 영민의 부모가 원했던 대로 의사가 되고 말았다.
하지만 그런 영민에게 돌아온 것은, 그저 공허함과 허무함 뿐이었다.
의사가 되어도 뭐든 원하는 대로 할 수 있다던 부모의 말은 틀렸다.
오히려 의사가 되고 나서 영민은 더 해야 할 일이 많아졌다.
공부는 평생 끝없이 해야 하는 것이었고, 병원에서 요구하는 스케줄은 가히 살인적인 수준이었다.
그 시점에서 영민은 깨달았다.
자신은 살면서 단 한 번도 삶에 의미를 두지 않은 채 살아왔다는 사실을.
영민에게 있어서 삶은 의미 없는 것이었다.
영민은 의사를 그만두고 길거리로 나갔다.
그즈음 영민은 하고 싶은 것을 찾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었다.
지금껏 단 한번도 느껴본 적 없는,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 떠돌았다.
그런 영민에게 삶의 의미를 가르쳐준 것은, 아이스크림 집의 알바생이었다.
“여기 아이스크림은 딸기맛이 가장 맛있어요. 저는 바닐라를 제일 좋아하긴 하지만.”
“어머. 바닐라가 더 마음에 드세요? 저랑 취향이 같으시네요.”
“또 오셨네. 오늘도 바닐라로 드릴까요?”
“저, 오늘로 여기 그만두게 됐어요. 그래도 가끔, 저랑 이야기해주실 거죠?”
처음으로 사랑에 빠졌고, 삶의 의미를 찾았다.
영민에게 삶의 의미는, 아내의 기뻐하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런 영민의 삶의 의미는,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후후… 내가 죽으면… 꼭 나 찾으러 오실거죠? 기다리고 있을게요….”
결혼한 지 불과 삼 년 만에 아내가 병으로 세상을 떠나게 된 것이다.
그날 이후로, 영민은 미닝리스가 되었다.
* * *
“진짜 찾으러 와준 거야? 응? 어떻게 한 거야? 응?”
“내가 꼭 찾으러 온다고 했잖아. 내가 약속 어기는 거 본 적 있어?”
“가면이 예쁘네. 내가 좋아하는 색이야.”
그리고 지금, 영민의 눈앞에는 아내가 다시 돌아와 있었다.
좋게 말해줘도 사람이라곤 부를 수 없는 모습이었지만, 영계와 이 세상의 경계가 허물어지면 그 모습마저도 예전처럼 돌아오리라.
아내를 되찾기 위한 오랜 시간의 싸움 끝에, 결국 영민은 영계와 이 세상의 틈으로 찾아와 아내를 되찾을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세상은 이번에도 영민의 편을 들어주지 않았다.
콰아아아-
열려있던 영계의 틈을, 기어코 다크 카이저가 다시 닫는 방법을 찾아내고 만 것이다.
“괜찮아. 여보. 저기로 같이 가자. 응?”
그래. 아내가 없는 이곳에서의 삶은 의미가 없다. 나 또한 죽음을 택하고 저 세계로 가야겠다.
그렇게 생각하며 내민 아내의 손을 잡은 바로 그때.
“같이 죽자. 여보.”
“뭐…?”
“나 혼자서 죽고 싶지 않아. 외로워. 힘들어. 추워. 안아줘. 사랑해줘. 나 혼자 보내지 말아줘.”
갑자기 돌변한 아내의 모습이 순식간에 변화하기 시작했다.
“같이 죽자! 너도 죽자! 함께 죽자! 죽어! 죽어! 죽어!”
아내는 완전히 악령으로서의 본색을 드러낸 채 영민의 손을 악착같이 잡아끌었다.
추했다.
죽음이란, 저렇게 추한 것이던가.
영민은 그제서야 깨달았다.
“죽… 죽고 싶지 않아….”
삶에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 만큼, 자신은 삶의 의미를 찾는 데에 집착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그만큼, 죽고 싶지 않았다는 사실을.
“죽고 싶지 않아!! 죽고 싶지… 않아!!”
영민은 발버둥 치기 시작했다.
끌려가지 않기 위해 피가 나도록 입을 앙다물며 바닥을 사정없이 훑었지만….
“아… 안돼… 안돼!!”
영민은 결국, 영계의 틈 안으로 빨려 들어 가고 말았다.
“안돼애애애!”
* * *
율사님의 희생 때문일까? 영계의 틈은 결국 완전히 닫히고 말았다.
지금껏 그 자리에 있었는지조차 모를 정도로, 완전하게.
그와 동시에, 영계의 틈을 가리고 있던 결계 또한 완전히 사라져 흩어지고 말았다.
결계를 유지하고 있던 율사님의 존재가 완전히 사라졌기 때문일 터였다.
그와 동시에, 정혜스님의 초능력은 완전히 사라지게 되었다.
이 세계의 초능력은, 초능력을 사용하는 사람의 심리적인 부분에 큰 영향을 받는다.
정혜스님의 능력이 완전히 사라진 건 영계의 틈이 사라진 지금, 정혜스님이 자신의 능력을 필요로 하지 않게 되었기 때문일 터였다.
나는 밀키웨이에게 정혜스님의 사정을 설명하고 새로운 삶을 살 수 있게 도움을 요청했다.
밀키웨이의 도움이라면, 정혜스님도 분명 살아갈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미닝리스는 그 자리에서 완전히 죽음을 맞이했다.
미닝리스가 있던 곳엔 시체조차 존재하지 않았다.
그저 미닝리스가 입고 있던 옷가지와 흰가면만이 덩그러니 놓아져 있을 뿐.
【“악령의 소행이군. 영계의 틈이 닫힐 때 영혼을 물고 들어간 모양이다.”】
열린 문이 다시 닫히는 바람에 화가 난 악령이 영혼과 함께 긁어간 모양이라는 추측만 할 수 있었다.
미닝리스가 완전히 죽음을 맞이하고 난 뒤, 망령당은 수십 개로 쪼개져 계속해서 전쟁을 반복하고 있었다.
미닝리스의 위치로 올라가기 위해 서로 상잔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렇게 잘게 쪼개진 빌런 집단은, 히어로에게도 경찰에게도 그저 손쉬운 먹잇감일 뿐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망령당은 천산시에서 완전히 모습을 감추게 될터였다.
그렇게 되면, 이 세계에 풀려있는 마약의 종류도 많이 사라지게 되겠지.
이제 거의 다 왔다.
남은 것은 단 두 스텝.
흑사자회, 그리고 경한 그룹.
흑사자를 쓰러트리고, 흑사자회를 몰아낸 뒤엔 사대희와 경한그룹과 맞서 싸워야만 한다.
마지막 한 걸음치고 아주 어렵고 힘든 일이 되겠지만….
나는 끝까지, 이 세계의 평화를 위해 싸울 것이다.
[“마스터. 중요한 생각을 하고 있는 찰나에 죄송한데요. 이건 꼭 보셔야할 것 같아서요.”]
응 뭔데? 홀로그램 띄워봐.
<“히어로 팀, 아스트로 스타즈 소속의 스타 히어로, 페이퍼 백의 정체가 공개 되었습니다.”>
영상을 확인한 나는, 얼굴이 뻣뻣하게 굳는 것을 느꼈다.
제인. 지금 당장 통신 열어서 아스트로 스타즈 전부 소집해. 어서!
[“네 알겠습니다, 마스터. 목적지는 어디로 할까요?”]
페이퍼백의 집으로.
* * *
지이잉- 지이이잉- 지이이잉-
공다혁은 전화 진동이 울리는 소리에 잠에서 깨어났다.
잠에서 깨어나자마자 다혁은, 가장 먼저 핸드폰의 진동 소리를 완전히 꺼트렸다.
아이도, 아내도 겨우 방금 잠에 든 상황이었다.
조금이라도 더 자게 하고 싶지 깨우고 싶진 않았다.
연락이 어디서 왔는진 모르겠지만, 자신이 바깥으로 나가 다시 연락을 돌리면 될 터였다.
지이이이잉- 지이이이잉-
그런 생각을 하고 있던 공다혁의 귓가엔, 계속해서 진동 소리가 울렸다.
방금 껐는데…?
진동소리는 다혁의 폰에서 나는 것이 아닌, 아내의 폰에서 나는 것이었다.
그와 동시에 다시 울려오는 자신의 스마트폰.
다혁은 그제야 스마트폰을 확인했다.
부재중 전화 124통.
지이이이잉- 지이이이잉-
무언가 이상하게 돌아간다는 생각을 하던 다혁은, 알 수 없는 기분을 느끼며 창문가 앞으로 다가갔다.
어쩐지, 창문을 열면 안 될 것 같은 불길한 예감과 동시에, 창문 너머를 확인해야 한다는 묘한 감정이 동시에 다혁을 고통스럽게 만들었다.
다혁은 천천히 창문을 열어젖히고 나서야 보고 말았다.
“페이퍼백씨! 정체가 들킨걸 알고 계십니까?”
“래피드 스타씨! 래피드 피자라는 피자집을 운영하고 계신 게 사실입니까?”
“공다혁씨! 가족들은 당신의 히어로 활동에 대해 알고 있습니까?”
찰칵- 찰칵- 찰칵-
찰칵- 찰칵- 찰칵-
찰칵- 찰칵- 찰칵-
수십, 수백 개의 셔터가 자신의 집에 향하고 있는 모습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