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3화
통제(1)
다혁은 열었던 창문을 닫고, 커튼을 다시 쳤다.
뭐지? 어떻게 된 일이지?
눈앞이 깜깜해지고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한다.
손발이 벌벌 떨리고 심장이 쿵쾅쿵쾅 뛰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런 상황도 아주 잠시.
“별이 아빠? 무슨 일이야?”
다혁은 아내 가영의 목소리에 정신이 돌아왔다.
그제야 들어오는 불안에 가득 찬 아내의 표정, 그리고 자고 있는 아이의 모습.
위이이잉-
다시 한번 울리는 전화기의 진동.
가영이 불안한 표정으로 전화기를 들어 올린다.
“가영아! 받지마!!”
“뭐야? 무슨 일인데?”
다혁은 아무 말 없이 서랍을 열어 종이봉투를 꺼내 얼굴에 뒤집어 쓰며 티비 리모콘을 찾아 뉴스 채널을 틀었다.
<“히어로 팀, 아스트로 스타즈 소속의 스타 히어로, 페이퍼 백의 정체가 공개 되었습니다. 놀랍게도 피자집을 운영하는, 평범한 자영업자라는 소식인데요….”>
뉴스 화면에 떠올라 있는 건 공다혁 자신의 집이었다.
설마설마했는데… 아니길 바랐는데….
멍하니 티비 화면을 보고 있던 가영이 다급한 표정으로 다혁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설마… 내가 생각하는 그 상황이야?”
“…맞아. 가영아. 지금부터 정신 똑바로 차려야만 해. 언젠가 이런 일이 생길 수도 있다는 거, 우리 예상하고 있었잖아. 그치?”
다혁의 말에 순식간에 눈빛이 바뀌는 가영.
아무 말 없이 아이를 안아 들고, 중요한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으아아아앙- 으아앙-”
부모의 속타는 심정도 모르고 깨어나 보채기 시작하는 아이.
그때였다.
“다들-”
갑자기 들려오는 낯선 이의 목소리.
다혁은 반사적으로 능력을 사용했다.
천천히 흐르기 시작하는 시간.
까마귀를 닮은 검은 슈트에, 붉은 빛이 감도는 눈. 컴퓨터로 변조한 듯 어색한 목소리.
히어로 활동을 할 때 자신의 동료 중 한 명인 다크 카이저였다.
내가 여기 사는 건 어떻게 알고 여길 찾아온 거지?
순간적으로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바깥에 있는 기자들도 아는 사실이라면, 다크 카이저가 모르는 게 더 이상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기자들이 먼저 온 걸 보니 아마 기자들의 위치를 보고 확인해서 찾아온 것에 가까우리라.
하지만….
다혁은 방금 창문 바깥에 깔려있는 사람들을 보았다.
그렇다면 현관문 앞에도 분명 깔려있을 테고, 다른 창문이라고 상황이 다르진 않을 터였다.
그런데 어떻게 여길 들어왔지?
거기까지 생각을 이어 나가던 다혁은, 자신이 아직도 능력을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다행이다. 나의 능력은 사라지지 않았어.
가끔은 히어로들 중에서 정체를 들키고 능력을 완전히 잃어버리는 종류의 사람들도 있었지만, 자신은 그런 타입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다혁은 사용하고 있던 능력을 풀었다.
다시 정상적으로 흐르는 시간.
“멀쩡한 걸 보니 다행히 늦지 않았군.”
“어머. 깜짝이야!”
다혁은 놀라 쓰러질뻔한 아내의 어깨를 잡아 진정시키며 다크 카이저를 바라보았다.
“놀라게 해서 미안하오. 하지만, 워낙 급한 사안이라 말이야.”
“여긴 어떻게 들어오셨어요? 다크 카이저?”
아내가 놀란 표정으로 다크 카이저를 향해 물었다.
“새롭게 생긴 동료의 능력이 출중해서 말이지.”
지이이잉-
몸을 살짝 비틀어 자신의 등 뒤를 가르키는 다크 카이저.
다크 카이저가 가리키는 곳에는 처음 보는 차원의 통로가 존재하고 있었다.
“사실은 진작부터 연락을 계속 시도했는데… 연락을 받지 않더군… 호출기 어디다 뒀나?”
반사적으로 침대 옆을 바라보았던 다혁은, 마지막 외출 이후 호출기를 꺼내놓지도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마 옷장 안 외출복 안에 그대로 담겨있을 터였다.
내가 안일해져 있었군….
아이를 키우면서 평화에 길들여져 버렸던 모양이다.
히어로들끼리의 연락이라는 게, 꼭 출동만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닐진대.
다혁은 머리가 아파오는 것을 느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건 미안하군… 그런데… 대체 어떻게 이런 상황이 일어나게 된 건지 알고 있는 건 있나? 다크 카이저?”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 있는데….”
그때였다.
쾅쾅쾅!
문을 두드리는 소리.
“공다혁씨! 공다혁씨! 경찰입니다! 공다혁씨!”
쾅쾅쾅!
“경찰?”
“경찰에 도움을 청하는 건 어때요?”
“그것도 한가지 방법일 순 있지. 그건 당신들의 선택에 달렸소.”
그렇게 말하며 경찰이 집안으로 들어오면, 언제든지 떠날 수 있게 통로 근처로 한발자국 물러서는 다크 카이저.
실질적으로 천산시의 경찰과 유명 히어로들간의 사이는, 나쁘다고는 말하지 못할 정도의 사이에 가깝다.
경찰들의 인력만으론 이 세계의 슈퍼빌런들을 제압하는 데 한계가 있고, 가끔은 함께 협력해서 일을 처리하기도 하는 편이니까.
특히, 아스트로 스타즈처럼 사람을 죽이지 않고, 제압하는 수준에서 그치는 히어로들에 대해선 훨씬 더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편이다.
보통 잡은 빌런들에게 사적제재를 가하는 것이 아닌, 경찰에게 넘기는 것을 주요 목적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은 정체가 밝혀지지 않은 히어로일때의 경우.
정체가 밝혀진 히어로는 조금 다른 대우를 받아야만한다.
자신의 초능력을 정식으로 등록하고 경찰이나 군인의 밑으로 들어가 나라의 밑에서 히어로 활동을 하게 만들거나.
그게 아니라면 초능력을 사용하는 것을 포기하고, 평생 시에서 감시당하며 살아야만 한다.
그렇다고 해도….
다혁은 고개를 돌려 자신의 아내와 아이를 바라보았다.
자신, 아니 래피드스타는 적이 많다.
래피드 스타의 적들은 지금 상황에 쾌재를 부르고 있을 터였다.
지금껏, 자신들을 골치 아프게 만든 적에게 복수할 수 있는 절호의 찬스니까.
그리고 그 위협은, 자신의 가족이 고스란히 받게 될 터였다.
자신 때문에 아내와 아이를 위험하게 만들 순 없다.
그렇다면… 여기서 이제 히어로 활동을 포기하고 가족과 함께 사는 삶을 선택해도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공다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런 상황이라면 경찰에 도움을 청하는 편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다혁의 결정에 가만히 다혁의 얼굴을 바라보던 다크 카이저가, 다혁에게 무언가를 하나 건넸다.
까마귀 모양이 달려있는, 소형 뱃지였다.
“당신의 선택을 존중하오. 하지만… 혹시라도, 정말 만약에 내가 필요한 일이 있다면, 언제든지 그 버튼을 눌러주시오. 내가 어디에 있든, 무슨 일이 있든, 당신들을 지키기 위해 무슨 방법이든 만들어 볼 테니까.”
다혁은 다크 카이저의 저 말이 빈말이 아니라는 사실을 느낄 수 있었다.
이 히어로는, 자신을 위해 언제든지 발벗고 나서주겠지.
다혁은 까마귀 뱃지를 받아들었다.
“지금까지 고마웠소. 래피드 스타. 아니, 공다혁씨.”
* * *
나는 이런 일을 벌이고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이 도시, 천산시에서 이런 방법을 통해 우리들을 압박해올 곳은 경한그룹밖에 없다.
경한그룹이 본격적으로 압박을 시도하는구나.
이 도시는 전부 경한그룹의 통제안에 들어가 있다.
깨끗한 정치인부터, 범죄조직까지.
사대희는 그 모두를 자신의 통제 안으로 밀어넣고 최선의 이득을 위해 계획을 만든다.
하지만 그런 상황이 이제 무너지기 직전까지 오게 된 것이다.
경한 그룹의 입장에서는 발등까지 불이 떨어진 격이다.
하지만… 놈들은 지금 너무나도 크게 일을 벌이고 있다.
지금 같은 상황이라면, 역으로 꼬리를 잡아 해치울 방법도 충분히 찾을 수 있을지 모른다.
나는 공다혁의 가족이 경찰차를 타고 이동하는 것을 지켜보다 자리를 떠났다.
* * *
드디어 다크 카이저의 팔 하나를 잘랐군.
정대수는, 래피드 스타, 공다혁이 결국 경찰의 도움을 받아들이기로 했다는 사실을 보고 받으며 남몰래 웃음 지었다.
십수 년간 천산시의 밤거리를 지배하던 빌런 집단, 잿빛 망토단, 불곰파, 망령당이 차례로 무너지고 난 지금 천산시에서.
아스트로 스타즈, 특히 다크 카이저의 힘은 가히 절대적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다.
다크 카이저에 의해 한 곳만 무너졌다면, 그건 그 범죄조직이 어설펐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 상황은 어떤가?
정대수가 이끄는 흑사자회 외에는 이젠 빌런 집단이 단 한 곳도 존재하지 않았다.
흑사자회 또한 경한그룹이 밤거리의 눈먼 돈을 쓸어모으기 위해 만든 조직이다.
그렇다면 실질적으로 범죄 조직을 모두 소탕한 것이나 다름 없는 상황이었다.
그로 인해 벌어진 상황은 생각보다 컸다.
이제 이곳, 천산시에서 아스트로 스타즈와 대적하고 싶어하는 빌런들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범죄 조직을 운영하는 빌런들은 실질적으로 밤거리와 함께 살아간다.
그런 밤거리 안으로, 가면을 쓴 히어로들이 마실 나오듯 드나들며 자신들과 대적하고 있는 것이다.
밤에 자신들과 대적하던 히어로들은, 낮이 되면 모두 가면을 벗고 일반인 틈으로 숨어들어 자신들의 삶을 영위한다.
범죄자로 활동하는 자신들의 삶은 위협받지만, 히어로들의 삶을 위협할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상대는 자신들의 삶에 직접적으로 타격을 주는데, 자신들은 상대의 정체조차 모른다.
보이지 않는 적과 싸우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그런데 그런 히어로들이 한 명도 아니고, 집단으로 활동하며 자신들을 공격해온다?
그런 상황이다 보니 아스트로 스타즈 자체와 적대하거나, 마주칠 수 있는 상황 자체를 꺼리는 경우가 많았다.
다크 카이저를 공격할 인원들을 구하고 싶어도, 후환이 두려워 참여하지 않는 빌런들 또한 점점 더 많아진다.
빌런이 히어로를 두려워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 히어로들의 정체가 밝혀진다면?
그들이 그저 평범한 사람들일 뿐이라는 사실이 세상에 알려지게 된다면?
그렇다면 빌런들은 다시 그들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어진다.
두려움은 정체를 알 수 없는 것에서 오는 법이니까.
경한그룹이 이 세상을 올바르게 지배하기 위해선 결국 빌런들이 필요하다.
세상에 범죄가 많아질수록, 사람들은 결국 강한 사람의 도움을 필요로 하게 된다.
자신의 삶을 지키고 싶어하는 사람일수록, 생각을 예상하고 다루기가 쉬워지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세계를 영원히 지배하는 것이야말로 경한그룹의, 아니 사대희 회장님의 원대한 목표나 다름없었다.
그리고, 자신은 그런 경한 그룹의 2인자로서 영원히 사람들의 위에 군림할 수 있게 되겠지.
진작 이렇게 할 걸 그랬네.
이렇게 쉬운걸 말이야.
정대수는 이 다음 단계로 가기 위해 전화기를 들어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