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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어로 만화 속으로 나 강림-215화 (215/236)

215화

통제(3)

마침, 사건이 연달아 터져서 하마터면 늦을 뻔했네.

최근엔 소연이 나의 정체를 알아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가끔 들었다.

소연의 도움을 받아 이렇게 이른 시간 안에 도착할 수 있었으니까.

겸사겸사 내가 처리하고 있던 사건도 소연이에게 넘겨주고.

“비켜라. 신입 히어로. 내 복수의 대상은 네가 아니다.”

그리고리의 가면 너머에서 들려오는 묵직한 저음의 목소리.

“그럴 순 없지. 네 복수의 대상이, 내 소중한 동료거든.”

[“뭐? 신입 히어로? 말하는 거 봐! 하! 어이가 없네. 정말.”]

틀린 말은 아니니까 너무 어처구니없어 하지 마.

가끔 잊는 것 같은데, 난 아직 1년 차 히어로라고. 보통 1년 차면 유명세는 둘째치고 신입인 건 맞지.

거기에 저기 있는 빌런은 적게 잡아도 몇 년 전에 감옥에 간 히어로일 테고.

[“그럼 신입 히어로의 손맛을 단단히 보여주자구요 마스터! 그리고리에 대한 경찰 정보, 띄워드리겠습니다.”]

[빌런명 : 그리고리

이름 : 박찬수

나이 : 38세

신체 계열 슈페리어

특이 사항: 다른 능력은 존재하지 않지만, 극한으로 강화된 육체능력을 가지고 있음]

화면 위로 떠오르는 정보들.

뭐 이리 보고서가 대충이야? 극한으로 강화된 육체능력이라고 하면 어떻게 알아먹냐?

[“자세한 정보는 기밀 정보라 그런지 캐어오기가 쉽지 않네요. 지금부터 시도해볼게요, 마스터.”]

그리고리라… 원작에서는 등장하지 않았던 빌런이다. 대신, 아주 가끔 등장인물들의 입을 통해 이름 정도만 나온 적 있는 인물.

천산시의 수호자였던 히어로, 솔라버드가 사라진 후 천산시 밤거리를 완전히 지배한 적이 있는 빌런이라고 했다.

분명 사형을 선고받고 죽었던 인물이라고 알고 있었는데….

살아있었네.

이 녀석도 경한그룹에서 실험을 당하고 있던 것일까?

그렇다면 원래 알고 있던 것보다 훨씬 더 강력해졌을지도 모른다.

경한그룹의 실험을 받고 나온 빌런들이 모두 그렇게 변했었으니까.

눈으로 보기에도 그리고리는 거대하고 강해 보였다. 양어깨를 완전히 드러낸 복장은 그리고리의 팔근육의 형태를 완전히 보여주고 있다.

세상에, 어떻게 사람 팔이 저렇게 단단하게 보일 수 있지? 어떻게 단련해야 저런 멋진 팔을 가질 수 있지? 이따가 물어보면 알려줄까?

“비키지 않겠다면 어쩔 수 없지. 너부터 상대해주마.”

부우우우웅-!

순식간에 소름돋는 소리와 함께 휘둘러지는 주먹.

놈이 공격해 들어올 것도 충분히 예상하고 있었고, 그렇지 않더라도 충분히 피해낼 수 있는 공격이라고 생각했지만….

공격은 내 생각보다 훨씬 빨랐다!

“크억!”

퍼억-!

나는 놈의 거대한 주먹에 얻어맞아 붕 떠 날아가고 말았다.

뭐야 이거? 뭐가 이렇게 아파? 미친 거 아냐?

정신이 빙글빙글 돌고 어지러웠다.

【“꼴사납군. 나강림. 이제 겨우 한 대 맞은 거다. 정신차려라! 네 동료 래피드 스타가 위험해!”】

나는 그 말을 듣자마자 번쩍 몸을 일으켰다.

내 생각과 반응하여 스피드모드로 변형하는 슈트.

나는 그대로 다시 달려들어 놈의 등 뒤에 매달렸다.

하나, 놈은 나 따윈 신경 쓰지 않으려는 듯 그대로 공다혁을 향해 주먹을 휘두르려고 했다.

부웅-

슈트를 입은 내가 얻어맞고도 이 정도 위력이었는데, 초능력을 사용하지 않은 상태의 페이퍼백이 얻어맞는다?

그럼 정말 사람 하나 잡을지도 모른다.

나는 그대로 슈트 모드를 파워 모드로 변형해서 그대로 놈의 팔을 꽉 쥐어 잡았다.

부웅 휘둘러지던 주먹이 가까스로 공다혁의 코 앞에서 멈춘다.

“…가족을 데리고 도망가시오! 빨리!”

내 말에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이고 뒤돌아 달려 나가기 시작하는 공다혁.

“귀찮게 구는군. 신입 히어로.”

“빌런을 귀찮게 구는 게 내 일이거든.”

퍼억!

또 순식간에 팔목을 잡아 나를 바닥에 내팽개치는 그리고리.

다행히 이번에는 낙법을 펼쳐 대미지를 줄일 수 있었다.

그리고리는 나를 내팽개치자마자 순식간에 발을 굴러 나를 밟으려고 들었지만.

나는 그대로 몸을 굴려 그리고리의 발을 피했다.

쿵!

소름 끼치는 소리와 함께 아스팔트 바닥이 움푹 패였다.

저런 것에 밟혔다간 진짜 골로 갔겠지.

나는 그대로 몸을 일으키며 왼주먹을 뻗었다.

퍼억-

내 공격을 얻어맞고도 미동도 하지 않는 그리고리.

뭐야? 무슨 돌덩어리를 때린 것 같네.

휙- 쉭- SHEEEEEK-!

그대로 여러번 손을 뻗어보았지만.

퍽 퍽- BAM!

그리고리는 나 정도의 공격은 아프지도 않다는 듯 그대로 몸으로 받아내며 내게 두꺼운 손을 위협적으로 흘려댔다.

SHEEEEEK-

놈이 휘두른 손을 뒤로 물러나며 분명히 피해냈지만.

주륵-

내 뺨을 타고 흘러내리는 피.

단지 풍압만으로도 상처를 낼 정도인가.

하지만, 바로 내 눈에 기회가 보였다.

이때다.

화르륵-

오른손 위로 피어오르는 흑염의 기운.

보인다. 놈의 얼굴과 이어지는, 일직선의 경로가. 이 경로로 뻗는다면 놈은 내 주먹을 피할 수 없다.

순간 아머/파워 모드로 변형되는 내 오른손의 슈트.

꽈아아악-

그리고 일어나는, 순간 신체 강화능력.

슈트가 내 근육을 쥐어짜는 것이 느껴진다.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최선의 일격.

나는 눈앞에 보이는 경로를 향해 손을 뻗었다.

shhhhHHHHHHHHH- 퍼억-!

화륵!

분명 정타로 들어갔지만, 아예 미동조차 하지 않고, 얼굴로 내 공격을 받아내는 그리고리.

“생각한 것보단 약하군. 별거 아니야.”

흠칫 놀란 나는 빠르게 뻗었던 손을 되돌리려고 했지만….

온 힘을 다한 일격을 뻗은 탓인지 놈의 손놀림이 나보다 더 빨랐다.

나는 순식간에 놈에게 팔이 잡히고 말았고….

우드득.

“끄아아아아악!”

그대로 오른손이 찌그러지고 말았다.

생뼈가 부러지는 소름끼치는 느낌.

나는 왼손을 들어올렸다.

자연스럽게 허리춤에 매달려있던

셰도우가 왼손으로 빨려들어온다.

화르르륵!

내가 손에 쥐고 있는 셰도우에 흑염이 묻는다.

나는 그대로 내 팔을 쥐고 있는 놈의 손을 셰도우로 찔러버렸다.

놈도 칼붙이에까지 상처를 입지 않는 것은 아니었는지, 칼로 찌르자 내 손을 놓아주었다.

나는 부러진 팔을 부여잡고 뒤로 두어 발자국 물러섰다.

오른팔이 완전히 부서졌다.

전투에는 전혀 사용할 수 없을 정도의 수준.

“으음. 이상한 능력을 사용하는군. 불인 것 같은데… 불은 아니고… 영혼을 갉아 먹히는 기분이군… 좋지 않아. 너, 여기서 죽어야겠다.”

그렇게 말하며 그리고리는 자신의 팔에 꽂혀있는 셰도우를 뽑아냈다.

그리곤….

콰지지직-

그리고리의 손 안에서 마치 종잇장처럼 찌그러지는 단검, 셰도우.

[“아…안돼! 섀도우가!!!”]

방금의 일전으로 알았다.

맨손으로, 흑염만으로 상대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다.

나는 오른손에 칭칭 감겨있는 체인을 왼손으로 옮겨 감았다.

왼손을 펼치자, 내 손안에 가볍게 쥐어지는 셰이드.

나이프를 쓰는 법은 배워본 적 없지만, 나이프를 상대한 적은 수도 없이 많다.

그런 나이프 전문가들을 상대했던 경험으로 나이프, 까짓거 한번 써보지 뭐.

머릿속에서 나이프를 사용하는 빌런들, 특히 나이프 파이트의 전문가였던 스카 페이스의 모습을 떠올렸다.

스카 페이스가 나이프를 어떻게 쥐었더라?

스카 페이스가 쥐었던 대로 나이프를 고쳐 쥔 뒤 왼손을 앞으로 뻗는다.

다친 오른팔을 한 번 더 잡히기라도 한다면, 이번엔 정말 오른팔을 잃을지도 모르니까.

그리고 방금 전 놈이 한 말에 따르면, 흑염이 놈에게 피해를 주지 못하는 건 아닐테니….

화륵-

손에 쥔 셰이드에서 흑염의 불꽃이 확 피어오른다.

흑염이 맺힌 나이프로 타격을 쌓아 지치게 만들어 쓰러트린다.

덩치를 보니 내가 나이프로 몇 번 찌른다고 죽기는커녕 크게 다칠 것 같지도 않다.

나는 내게 다가오려는 그리고리를 향해 나이프를 휘둘렀다.

화륵!

일직선으로 그어진 나이프에서 불꽃이 확 튀어오른다.

스윽-

그리고리의 살가죽을 스치고 지나가는 셰이드의 날.

하지만 주먹과는 달리, 나이프의 공격을 받아내며 버티지는 못했다.

아니, 어쩌면 그 사이를 파고드는 흑염 때문일지도.

어쨌든 나이프를 써보니 왜 그렇게들 나이프를 많이 썼는지 이제 알겠네.

공격은 훨씬 위협적으로 변하고, 손에 쥔 나이프 덕에 아까처럼 손을 잡힐 위험도 적어졌다.

sheek- sheeeek- sheeeek!

그리고리는 아까 같은 강력함은 보여주지 못하고, 나이프에 조금씩 상처를 입으며 뒤로 물러나고 있었다.

이대로 천천히 상처를 입히다 보면, 나보다 놈이 더 빠르게 지칠 터였다.

하지만… 나이프로 아무리 놈의 가죽을 많이 찢어놨어도 놈은 몸이 달라지지 않았다.

분명히… 나보다 더 빠르게 지쳤어야 했는데….

그래야만 했는데….

“헉… 헉….”

계속해서 공격을 퍼부으려던 내 쪽에서 먼저 지치고 말았다.

나는 그즈음 깨달았다.

나이프로 놈의 몸을 여러 번 찢어놨음에도 불구하고, 놈의 몸에선 피가 흐르지 않는다.

놈의 모습을 다시 살펴보자, 비로소 상황이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아까전에 나이프로 찢어놨던 놈의 상처가, 말끔하게 재생되어있다는 사실을.

그래, 놈은 재생능력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재생 능력이 있었으니 피가 흐를리도 없었고, 재생 능력이 있었으니 나보다 더 일찍 지칠 리도 없었다.

그제야 나는 지금껏 내가 얼마나 안일하게 전투하고 있었는지 뼈저리게 깨달을 수 있었다.

원작의 내용을 알고 있던 지금까지 나는, 약점과 공략정보가 가득 담긴 공략집을 보고 게임을 플레이하고 있던 격이었던 것이다.

그러니 알지 못하는 적들이 나올 때마다 이렇게 고전하는 것이고.

완전한 패착이다.

그래도… 손은 휘둘러야 한다.

내가 조금이라도 시간을 벌어줘야 공다혁이 자신의 가족들을 데리고 도망갈 수 있는 확률이 높아지니까.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지만 내 손의 속력은 점점 느려지고 있었고.

덥썩.

결국 나는 또 다시 손을 잡히고야 말았다.

왼팔마저 부러지고 나면, 나는 이제 놈을 어떻게 할 방도가 없다.

이대로 끝이나는 걸까? 아직 경한 그룹을 완전히 끝장내지 못했는데….

흐릿해지는 정신으로 그런 생각을 하고 있던 바로 그때.

sooooong!

순간적으로 주변의 시야가 바뀌었다.

나는 어느새, 얼굴에 종이봉투를 뒤집어쓰고 있는 히어로, 래피드 스타의 품 안에 안긴 채 한참 뒤로 물러나 있었다.

“잘 버텨주었다. 다크 카이저. 이제부턴 우리가 상대하지.”

래피드 스타는 그렇게 말하며 나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안돼!

놈은 강력하다.

분명 경한 그룹의 실험을 통해 능력이 강화된 것이 분명했다.

예전에 공다혁이 그리고리를 쓰러트린 적이 있다곤 해도, 이번에도 똑같이 쓰러트릴 수 있을 거란 보장은 없다.

공다혁은 아내도 있고 아이도 있다.

공다혁이 여기서 죽는다면 아이는 아버지 없는 삶을 살아가게 될거다.

그 삶이 얼마나 슬픔에 가득 차 있는지, 나는 안다.

나는 그 아이가 아빠 없는 삶을 살게 내버려두고 싶지 않았다.

“호… 혼자서는 안돼오… 놈은 강해… 가족도 있는데 헛된 죽음을 맞이하게 내버려둘 순 없소. 안돼… 도망… 도망치시오. 도망….”

“음? 무슨 소리하는건가? 분명 ‘우리’라고 했을텐데.”

…뭐? 우리?

여기 래피드 스타랑 나 말고 누가 있다고 우리….

“누가 혼자래?”

바로 그때, 허공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퀘이사였다.

“그러게 말이야. 아스트로 스타즈에 혼자만 있는 줄 아나봐.”

슈팅 노바도.

“걱정마요. 다크 카이저. 다친 팔. 내가 금방 고쳐줄테니까.”

심지어 밀키 웨이까지.

래피스 스타는 혼자 온 것이 아니었다.

아스트로 스타즈가, 나를 구하기 위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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