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8화
자살자를 구하는 법
성훈의 취미는, 수많은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자료들을 퍼다나르는 것이다.
A사이트에 올라온 게시물을 B사이트에, C사이트에, D사이트에.
계속해서 옮겨가며 자료들을 퍼트리는 것이다.
그러면서 무슨 재미를 느끼냐고?
그냥 가져온 게시물을 보고 사람들이 이런저런 댓글을 달아주거나,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도 즐거운 것이다.
그렇다고 아무거나 퍼나르는 것은 아니다.
댓글이 많이 달릴만한, 자극적이고 노출이 잘될만한 게시물.
성훈이 주로 옮기는 것은 그런 게시물이었다.
그리고 성훈은 바로 방금, 그런 게시물을 하나 찾았다.
<다크 카이저 정체 유추 중. 80퍼센트 이상 확신함>
* * *
오늘의 천산시는 평화로웠다.
매번 시끄럽게 생겨나던 밤의 범죄율도 많이 줄어들었고, 밤마다 일어나던 범죄집단끼리의 전쟁은 완전히 사라졌다.
그나마 남아있는 흑사자회의 빌런들도, 자신들이 소유하고 있는 주점들만 관리하며 큰 소동을 일으키고 있진 않았다.
흑사자회까지 몰아내야 밤거리가 조용해지긴 하겠지만, 아무 일도 안 하는 놈들을 두들겨 패서 잡아넣을 순 없으니까, 지금은 그저 놈들이 혹시 다른 짓을 하는지 계속해서 살펴보는 중이었다.
그리고 나면 내가 해야 할 일은 이제… 어쩔 수 없이 일어나게 되는 사고 상황들에서 사람들을 구출하는 일이다.
바로 지금처럼.
“어어! 저기 저 아저씨 봐!”
“아저씨 거기 위험해요! 내려오세요!”
10층 여가 돼 보이는 빌딩 위에, 한 남자가 안전난간을 넘은 채 서 있다.
추위를 막기 위해 두꺼운 외투에 목도리와 모자까지 했지만, 코가 빨갛게 되는 것까지는 막지 못했다.
빨간 코를 드러낸 아저씨는 눈물을 글썽이며 밑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곧 떨어질 것처럼, 무릎을 살짝 굽힌 채.
그리고 나는 그런 모습을 하늘 위에서 내려다보고 있었고.
가끔 있는 일이다. 이런 사람들을 위로해주는 것도, 어쩌면 히어로의 일 중 하나일지도 모른다.
나는 빨간코 아저씨의 등 뒤로 천천히 내려섰다.
【“저 사람을 살리고 싶다면, 그냥 뛰어내릴 때까지 기다렸다가 날아서 구해주면 되는 것 아닌가? 왜 수고로운 짓을 하려는 거지?”】
역시 종 차이 때문일까? 아직도 인간에 대해 완전한 이해하지 못한 벨제뷔트가 이상한 질문을 던졌다.
그렇게 목숨만 구해줘 봐야, 저 사람을 구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 그렇지.
【“어째서지? 떨어지는 사람의 목숨을 구한 건 사실 아닌가?”】
내가 구해준다고 다시 뛰어내리려고 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있어?
【“그럼 그때도 구해주면 되지.”】
내가 구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하다못해 내가 볼 수 없는 집안에서 약이라도 먹고 죽는다면? 그럼 내가 그때도 구할 수 있을까?
【“그런 죽음까진 네가 막을 수 있는 게 아니다. 신경 쓰지 않아도 되지.”】
아니야. 사람을 구한다는 건 그런 게 아니야. 너 집에 가려면 아직 멀었다, 야.
나는 뛰어들려는 빨간코 아저씨의 등 뒤에 가만히 섰다.
아저씨의 등 뒤가 덜덜 떨리는 것이 느껴졌다.
무슨 일이 있었길래 자살을 선택하려고 한 걸까?
“어! 저기 뒤에! 다크 카이저! 다크 카이저다!”
에고. 하필이면 밑에서 구경하고 있는 사람들 눈에 걸려버린 모양이다.
그 말을 듣고 나를 돌아보는 빨간코 아저씨.
“히… 히이이익! 거기서 더 가까이 오지 마! 가까이 오면 뛰어내릴 거야! 오지 마!”
아저씨가 당장 뛰어내린다고 해도 정말 간단하게 구할 수 있거든요?
머릿속에선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지만….
“진정하시오. 진정해. 괜찮소. 괜찮아.”
이렇게 말하며 나는 아저씨를 진정 시키고 있었다.
“당신이 날 죽지 못하게 막을 수 있다는 거 나도 알아. 지금 당장 살린다고 해서 내가 죽지 못하는 거 아니야? 어? 집에 가서 연탄 피우고 죽는 거까지 막을 거야? 뭐? 어? 어쩔 건데?”
뜨끔.
마치 내 생각을 읽었다는 듯 말하기 시작하는 빨간코 아저씨.
나는 천천히 자세를 낮추며 말했다.
“그래. 죽는 건 당신 자유지. 그런 자유까지 침범할 생각은 없소. 다만, 그전에 나와 함께 잠깐만 대화라도 좀 할 수 있겠소? 아주 조금만이라도.”
내 말에 굽혔던 무릎을 펴고, 나와 함께 천천히 난간에 걸터앉기 시작하는 빨간코 아저씨.
“그래… 죽기 전에 유명인이랑 대화라도 한번 해보고 죽지 뭐….”
“그래. 잘 생각했소.”
휘이이이잉-
겨울바람에 거세게 불어오기 시작했다.
훌쩍.
내 옆에 앉은 빨간코 아저씨는 코를 훌쩍여댔다. 코를 훌쩍이는 것뿐인데도 풍겨오는 술냄새.
잠시 고요한 시간이 흐르고….
나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혹시… 왜 죽고 싶어하는 지 물어봐도 되겠소?”
“삶에 지쳤어. 매일 위에선 쪼아대지. 후배는 나를 무시하지. 그런 직장에서 겨우 퇴근해서 하루를 마무리하기 위해 집에 들어가면, 집에 혼자 있는 것 같아. 아들내미도, 딸내미도, 다들 자기들 일이 바빠서 아빠같은 건 신경도 안써줘.”
“저런… 아내분은?”
“아내는 애들 어릴 때 교통사고로 죽었지. 그 이후로 나 혼자 애들 키운다고 고생 좀 했고. 이젠 애들도 다 컸어. 딸내미는 이제 대학교 4학년이고, 아들내미는 내년에 대학 들어가지.”
제인. 지금까지 나온 정보로 빨리 자녀분들 연락처 찾아내.
[“네 알겠습니다 마스터.”]
“그럼 애들 거의 다 키운 거 아니오? 잘 큰 애들한테 대접받으면서 살아야지. 죽긴 왜 죽소? 손자도 보고 손녀도 보고 해야지.”
“이젠 그런 것도 보고 싶지 않아… 한 가지 보고 싶은 게 있다면… 우리 아내… 날 챙겨주던 아내가 다시 보고 싶어. 그러다 보니 그런 생각이 드는 거야. 내가 죽으면… 아내를 만날 수 있지 않을까?”
【“저런… 얼마 전에 영계와의 문이 닫혀서 만나기 쉽지 않을 텐데….”】
“아내를 그런 방법으로 본다고 해서 아내가 좋아하겠소? 애들 두고 왔다고 구박이나 하겠지.”
“아하하핫! 그것도 그렇구만. 그럼 그냥 나 편하기 위해서 죽는 걸로 하지 뭐.”
[“마스터! 똑같은 조건을 가진 사람이 두명이나 있어요.”]
그래? 그럼 내가 무슨 이야기를 끌어내면 될까?
[“아저씨 나이. 아니면 이름!”]
“조금 늦은 것 같지만, 통성명부터 좀 하지. 내 이름은 어둠의 황제, 다크 카이저요.”
“크하하하핫! 그거 진심으로 하는 대사요? 그렇담 나는 허씨라고 불러주쇼!”
허씨라는데? 이것만으론 안돼?
[“됩니다. 찾았어요, 마스터. 자녀분들께 연락 돌렸으니 곧 이곳으로 올 거예요.”]
“담배는 피우시오?”
“엉? 애들이 안 좋아해서 요즘 잘 안 피우긴 했는데….”
그러면서도 주머니를 주물럭대기 시작하는 빨간 코 아저씨. 저 주머니 안에 담배가 들어있는 게 틀림없다.
“갈 때 가더라도, 담배 한 대쯤은 괜찮지 않소?”
“그래. 좋은 말이야.”
칙…치익… 스으읍…. 하….
담배 연기가 찬 공기를 가르며 허공을 타고 오른다.
담뱃재가 몇 번 정도 바람을 타고 흩날렸을 때, 아저씨 손에서 튕겨 나간 담배꽁초가 바닥을 향해 떨어졌다.
작은 불빛은 완전히 바닥으로 떨어지기도 전에 꺼졌다.
“유명인이랑 이야기도 해보고, 담배도 한번 피워보고 하니까… 이제 죽고 싶은 생각이 없어졌네. 그려.”
[“하아… 성공이네요… 다행히도….”]
“그래… 일찍 가 봐야 애 엄마한테 미안하기만 하고, 애들한테 원망받기만 하고 죽어도 뉴스에도 안 나올 거 같은데, 이렇게 죽긴 아깝잖아. 좀 더 살아볼 테요.”
그렇게 하며 아저씨가 천천히 일어서는 그 순간.
“아빠! 거기서 뭐 해요! 네?”
건물 밑에서 놀란 듯 떨리는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이고! 우리 딸내미가 왔네. 어떻게 알고 왔지?”
“동네방네 소문 다 났어. 아빠 죽으려고 한다고!”
“어? 아빠 앞으로 창피해서 어떻게 사냐?”
“제발 무서운 생각하지 말고 내려와. 엄마도 없는데 아빠까지 죽으면 나랑 성현이 둘이서 어떻게 살아? 응? 나 시집갈 때 내 손도 잡아주고 해야 할 거 아니야.”
딸 아이의 진심 어린 말에 눈물을 글썽이기 시작하는 빨간 코 허씨 아저씨.
“그래! 안 죽어! 안 죽어! 우리 딸내미 사위 얼굴도 한번 보고 결혼식 때 손도 잡아주고 손자 얼굴도 보고. 그래 그렇게 하고 가야지. 걱정하지 말어!”
그렇게 말하며 아저씨가 난간을 다시 넘으려던 바로 그때.
“엇?”
술에 취한 아저씨는 난간을 제대로 넘지 못하고 뒤로 벌러덩 넘어가고 말았다.
“으아아아아아아!”
순식간에 바닥으로 떨어지기 시작하는 빨간코 허씨 아저씨.
정말… 못 살겠군.
나는 곧바로 날개를 펴고 아래를 향해 뛰어내렸다.
아저씨가 먼저 뛰어내린데다 10층 높이가 그렇게 높지 않아 남은 시간이 그렇게 많지 않다.
내 등 뒤로 펼쳐지는 흑염의 날개 한 쌍.
나는 그제야 아저씨와 떨어지는 속력을 맞출 수 있었다.
하지만, 바닥까지의 거리는 불과 10미터도 안 되는 정도….
하지만….
나는 아저씨를 안은 채로 그대로 흑염의 날개의 힘을 끌어올렸다.
후우우우웅!
바닥에 닿을까 말까 하기 바로 직전, 허공으로 날아오르는 나와 아저씨.
짝짝짝짝짝짝짝!
보고 있던 사람들이 요란하게 박수를 쳐대기 시작했다.
나는 안전한 바닥에 아저씨를 내려놓았다.
“허씨가 죽고 싶지 않다고 하셨기 때문에 구한 거요. 아시겠소?”
“어… 그래. 물론이지. 구해줘서 고맙네.”
“그래. 그 정도면 됐소.”
나는 그대로 아저씨를 바닥에 내려둔 채 허공 위를 날았다.
* * *
성훈은 게시물을 보다 말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 글을 쓴 사람이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가져가도 좋은 소리는 못 들을 수준의 가짜 뉴스들이다.
다크 카이저 안티팬들이나 쓸법한 저열하기 짝이 없는 주작들.
얼씨구? 합성도 했네.
다크 카이저가 레드 래빗을 죽이려는 듯 목에 손을 얹는 모습이 담긴 CCTV 동영상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이런 영상을 올릴 거면 죽은 사람으로 합성해야지. 살아서 잡혀간 사람으로 합성하면 어떻게 해?
다크 카이저에 대해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이야기다.
레드 래빗이 얼마나 다크 카이저의 신경을 긁어 댔는지.
그러나 다크 카이저는 그 어떠한 빌런도 직접 죽인 적이 없었다. 단 한 명도.
이런 건 가져가 봐야 작성자로서 욕만 더럽게 먹을 뿐, 이득이 될 구석이 없다.
성훈은 뒤로가기를 눌렀다.
* * *
흑사자, 정대수는 가만히 자리에 앉아 생각에 빠져 있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모두 시도해보았다.
그렇게 많은 시도를 했어도, 다크 카이저에겐 단 하나의 흠집조차도 만들 수 없었다.
겨우, 다크 카이저의 동료 중 한 명을 은퇴시켰을 뿐.
회장님이 남겨주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그 시간을 넘기게 된다면, 자신은 ‘실패’하게 되겠지.
그리고 세 번째 실패를 겪은 자신은 회장님에게서 버려질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다.
이래죽으나 저래죽으나 똑같다면, 조금 더 이길 가능성이 있는 놈과 싸울 수밖에.
정대수는 흑사자의 가면을 얼굴에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