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화
아스트로 스타즈 뉴 멤버(2)
흑사자, 정대수는 손에 쥐고 있던 리모컨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경한 그룹과 함께하기로 하면서 피도 눈물도 모두 버리기로 했건만, 그런 정대수라도 쉽게 누를 수 없는 버튼이었다.
그럴 만도 했다.
이걸 사용하고서도 다크 카이저와 히어로들을 쓰러트리지 못한다면, 자신은 정말 죽은 목숨이 될 수밖에 없으니까.
모든 책임을 자신이 짊어진 채 목이 잘려 광장에 매달리겠지.
그런 상황에 대비를 완전히 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정대수는 어제 보았던 송태일이라는 사람을 떠올렸다.
어차피 하지 않으면 내 자리를 빼앗긴 채 헌신짝처럼 버려질 상황이다.
할 수 있는 건 끝까지 해보고 가야지.
정대수는 버튼을 눌렀다.
* * *
“아 피곤해.”
김나리는 퇴근하며 기지개를 쭉 켰다.
또각 또각.
조용한 밤거리에 나리의 구두 소리가 울려 퍼졌다.
현재 시각은 11시.
이것도 차 끊기기 전이라 겨우 나온 거지, 그게 아니었으면 아마 새벽까지 계속 야근해야 했을지도 모른다.
이제 집에 들어가서 씻고, 머리 말리고, 4시간쯤 자고 다시 출근해야 한다.
나만 이런가? 하고 주변을 둘러보면, 또 다른 사람들의 삶도 자신과 썩 다르진 않다.
그래. 다들 이렇게 사는 거야. 요즘 사람들 사는 거 다 똑같아.
그런 마음으로 또 한 번 우울해지는 마음을 다잡으며 출근하는, 매일 같이 반복되는 일상.
그런 반복되는 일상이, 오늘은 깨지고 말았다.
으적… 으적… 으적….
퇴근하기 위해 나온 버스 정류장에서, 개와 살덩이 그 사이에 있는 듯한 괴물이 사람을 씹어먹고 있었으니까.
순간적으로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뭐지? 영화 촬영인가?
하지만 그다음으로 이어지는 피냄새.
선명한 피비린내가 김나리의 그런 생각을 지워버렸다.
그와 동시에 이어지는 것은, 살고 싶다는 강한 의지.
나리는 그대로 뒤돌아 달리기 시작했다.
또각또각또각또각또각
조용한 밤거리에 나리의 구두 소리가 울려 퍼졌다.
회사의 복장 강요 때문에 신고 나온 구두가 불편했다.
“키에에에에엑!”
뒤에서 자신을 따라오기 시작하는 괴물의 열기가 느껴지는 것만 같았다.
결국, 구두가 일을 만들고야 말았다.
또각또각또각 뚝.
구두 중 한쪽의 굽이 부러지고 만 것이다.
이번에 살아남는다면, 꼭 이 거지 같은 직장에서 사표를 내고 도망쳐야지.
또각 뚜벅 또각 뚜벅
그렇게 생각하며 달리고 있던 바로 그때.
“어… 앗…!”
결국 김나리는 균형을 잃고 옆으로 무너지고 말았다.
아. 이대로 죽는구나.
엄마 아빠 죄송해요.
죽을 때 죽더라도, 놈의 얼굴을 보며 죽고 싶진 않았다.
그래서 나리는 눈을 꼭 감았다.
“키에에에에엑!”
…
…
…
…
갑자기 찾아온 고요함.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 상황을 보며, 나리는 의아함을 느꼈다.
뭐지? 무슨 일이 생긴 걸까?
살짝 눈을 떠 본 나리는 자신을 향해 휘둘러진 괴물의 팔을 막아내고 있는 한 남자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 남자는 나리가 눈을 뜬 것을 보고서야 입을 열었다.
“지금 여기, 나 강림.”
* * *
나는 시민을 향해 여유롭다는 듯 웃어주며 등장 대사를 날려주었다.
오늘도 이 녀석까지 치면 이런 괴물을 여덟 마리째 상대하는 중이다.
사실은 죽을 맛이지만, 이런 상황일수록 등장 대사 같은 디테일을 빼먹어서는 안 된다.
힘들다고 빼먹게 되면, 시민들이 현재 상황에 대해 무겁게 받아들일 가능성이 높아지니까.
이번 상황은 정말 어비스 위치의 능력이 있어서 천만다행이었다.
어비스 위치의 순간이동 통로가 없었다면, 이렇게 많은 사람을 구할 수 없었을지도 몰랐다.
지금 천산시는 갑자기 튀어나온 괴물들 때문에 골머리를 쌓는 중이었다.
[“대체… 이런 괴물들이 어디서 튀어나오는 거죠?”]
【“다른 차원이나, 마법적 처리를 통해 탄생한 괴물들은 아니다. 확실해.”】
경한이야.
[“네?”]
경한그룹이 처음부터 인체 실험을 하는 미친놈들은 아니었다.
가장 먼저 했던 실험들은, 동물들을 이용한 초능력 생명체의 탄생.
하지만 그 결과는 처참했다.
동물 실험의 결과로 눈앞에 있는 괴물들만을 무수하게 만들어낼 수 있었으니까.
이것은, 경한이 만들어낸 생명 실험의 부산물이다.
이놈들이 이것까지 이용해서 싸움을 걸어오기 시작했다?
이제 이 이야기의 끝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일지도 몰랐다.
* * *
<제목 :
천산시에 갑자기 나타난 괴물 영상 최초 공개!
익명1 : 이야 저 동네는 진짜 하루하루 미쳐 돌아가는구나.
익명2 : 천산시에서 살지 않아서 천만다행이다.
익명3 : 천산시 사는 사람들은 왜 계속 저기서 사는 거임? 안 무서움? 나 같으면 진짜 탈출하겠다.
ㄴ 익명 6 : 사람이 살던 고향을 버리고 탈출하는 게 쉽겠냐?
ㄴ 익명2 : 그래서 탈출하는 사람들 많음….
ㄴ 익명 9 : 경한 그룹의 본사가 천산시에 있잖아. 거기 사는 사람들도 대부분 경한그룹 때문에 먹고 사는 사람들임 대기업 돈 달달하다~>
* * *
얼마 전에 다크 카이저에게 구조를 받은 적 있던, 자경단 헬릭스는 현재 사태를 듣고 며칠 동안 쓰지 않던 장비를 착용한 채 바깥으로 나왔다.
자신은 분명 별것 아닌 능력을 가진, 별것 아닌 히어로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상황은 다크 카이저 혼자서 해결할 수 없는 일임이 틀림없었다.
그렇다면, 다크 카이저에게 도움을 받은 적 있는, 조금이라도 힘을 가진 내가 어떻게 해서라도 나서야 하는 것 아닐까?
“꺄아아아아악!”
헬릭스는 비명이 들려오는 방향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 * *
“아산동에서 괴물 발견! 어비스 위치님, 현재 스탠바이 된 멤버가 있나요?”
밀키웨이, 황서현의 질문에 어비스 위치, 한소연은 식은땀을 흘렸다.
<다크 카이저 : 전투 중
퀘이사 : 전투 중
슈팅노바 : 전투 중>
현재 출동이 가능한 히어로들이 모두 힘을 합쳐 괴물들을 잡느라 정신이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구역 히어로들의 도움과 순간이동 능력이 있다고 해도, 전부 대응할 순 없었다.
“현재 스텐바이가 된 멤버는… 어… 없습니다….”
그 말을 들음과 동시에 바깥으로 내달리기 시작하는 밀키웨이.
어디론가 도움을 청하기 위해 달려 나가는 것이리라.
「“소연! 나! 내가 가겠다! 내가 막겠다! 나를 보내달라!”」
소연의 머릿속에서 데다이트가 아우성쳤다.
애초에 어릴 때부터 싸움에 익숙하게 내버려 뒀으면 안 됐는데….
소연은 조금 후회하고 있었다.
능력이 발전되지 않아 데다이트의 양팔만이 겨우 나올 수 있었을 때는, 소연이 데다이트를 통제하며 전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젠 다르다.
소연의 능력이 발전함에 따라 데다이트도 꺼낼 수 있을 만큼 통로의 크기를 넓힐 수 있게 되었고, 그로 인해 데다이트 또한 밖으로 나가고 싶다는 의사를 자주 표출하곤 했다.
하지만….
소연은 데다이트의 모습을 떠올렸다.
근육질의 팔다리와 거대한 머리, 그리고 거기에 붙어있는 한 개의 눈.
누구라도 보면 무서워할 수밖에 없는, 괴물의 형태. 그리고 태어나면서부터 가지고 있던, 압도적인 파워.
만약 그런 모습을 사람들이 본다면, 어떻게 생각할까?
긍정적인 존재로 생각하기보단, 부정적인 존재로 생각하는 경우가 훨씬 더 많을 것이었다.
요즘도 종종 미튜브에는 예전에 다크 카이저가 싸워 이긴 괴물들에 대해 분석한 영상들이 올라올 때가 있었다.
그럴 때마다 올라오는 댓글들.
<저런 괴물들이 진짜 실존한다는 게 놀랍다 ㄷㄷ>
<소름 끼쳐>
<저런 괴물들 다 뒤져서 정말 다행이다>
소연은 데다이트를 본 사람들이, 똑같이 그때 같은 반응을 내보낼까 두려웠다.
그런 반응을 눈앞에서 본 데다이트가, 이성을 잃는다면?
자신의 통제를 따르지 않는다면?
그렇게 된다면, 데다이트는 앞으로 평생 나올 수 없을 것이다.
아니, 당장에 자신의 친구, 강림이부터가 나서서 데다이트를 처리하려고 들 터였다.
하지만….
지금도 수많은 사람이 갑자기 나타난 괴물에 저항하지 못하고 다치거나 죽어가고 있었다.
이대로 내버려 둔다면, 더 많은 사람이 죽을 터였다.
그럼… 자신은 스스로를 용서 할 수 있을까?
소연이 그런 고민을 하고 있을 때였다.
「“소연. 미안하다. 나는 더 이상 보고만 있을 수가 없다.”」
데다디트의 통제를 잃는다는 최악의 상황이, 결국은 벌어지고 말았다.
* * *
아직 내가 싸울 수 있을 만한 마법 장치들이 완성되지 않았는데….
외우주의 신을 막아내느라 자신의 마력은 모두 사용하고 말았지만, 마법적 지식은 아직 그대로 존재하고 있었다.
그런 마법적 지식들을 이용해 만든 도구들이라면, 충분히 히어로들과 맞먹을 수 있을 정도로 전투력을 발휘할 수 있을 터였다.
문제라면, 마법 장치를 만드는 것은 자신이 배우던 분야와는 완전히 다른 분야라는 것.
과학으로 따지자면 마치 물리학과 공학의 차이만큼 벌어져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거의 새로 공부하는 중이라 아직까진 전투를 할 수 있는 여유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자신이 다시 전투에 복귀하기 위해선, 아직은 조금 더 시간이 필요했다.
그렇다면….
어제는 완전히 거절당한 사람이지만, 지금은 믿을 수 있는 사람이 블루 래빗 밖에는 없다.
어떻게 설득해야 할까?
고민하며 블루 래빗이 기거하고 있는 방의 문을 열고 들어선 바로 그때.
밀키웨이는 마주하고야 말았다.
이미 전투준비를 한 채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블루래빗의 모습을.
“어제 했던 말을 번복하게 되어 죄송합니다. 지금 당장 그 히어로 활동이라는 거, 해보겠습니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상황은 모두 실제 상황입니다. 모두 안전한 곳을 찾아서 대피하십시오. 다시 한번 알려드립니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티비에서 나오는 뉴스 소리가 유난히 선명하게 들려왔다.
* * *
정대수는 팔짱을 끼고 천산시의 상황판을 바라보고 있었다.
실험체들의 등장으로 아수라장이 되어가는 것 같았지만, 생각보다 제압은 빨랐기 때문이다.
아스트로 스타즈, 심지어 구역 히어로들마저 자신들이 낼 수 있는 최선의 전력을 사용하며 괴물들을 제압하고 있기 때문일 터였다.
일 년 만에 일어났다곤 믿기 어려운 변화였다.
하나, 모든 상황이 다크 카이저에게 유리하게 바뀐 것만은 아니었다.
예전 같았다면 이런 상황에서 다크 카이저를 도와줄 히어로들이 많았을 것이다.
하나, 정대수의 계책이 통한 지금 다크 카이저를 도와줄 인물은 많지 않았다.
예전에 몇 번이나 본 적 있는 괴물도, 심지어는 과거 빌런 활동을 하고 있던 블루 래빗마저도 나와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싸우고 있었다.
그렇다면, 지금 같은 상황에서 다크 카이저를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은 없는 것이다.
습격한다면, 지금의 상황이 최적이다.
정대수는 그렇게 생각하며 자신의 장비들을 챙겼다.
오늘 밤은, 긴 밤이 될 것만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