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어로 만화 속으로 나 강림-223화 (223/236)

223화

흑사자(2)

흑표범은 다크 카이저를 칭칭 감은 채 눈을 꼭 감았다.

그 순간, 그녀의 눈앞에 자신의 과거가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가기 시작했다.

*     *     *

흑표범, 서하얀은 열 살이 되던 생일날, 오백삼십이만 원이라는 몸값에 팔려나갔다.

서하얀의 친부가 지고 있던 도박 빚 대신, 정대수에게 끌려가고 만 것이다.

이제는 서하얀은 자신이 끌려가던 전날 밤, 자신을 품 안에 안고 서럽게 울던 엄마의 얼굴도 희미했다.

정대수는 열 살짜리 서하얀을 살인병기로 키우고 싶어 했다.

감정이 없는, 마치 인형 같은 살인 병기로 키우기 위해 훈련시켰다.

처음 그 훈련을 받을 때는, 서하얀 외에도 몇 명인가의 친구들이 함께 훈련을 받았었다.

하나 마지막 훈련을 받을 때쯤, 남은 건 서하얀 하나뿐이었다.

그리고 열 여덟이 된 지금, 서하얀은 자신의 주인에게 죽음을 명령받았다.

*     *     *

하지만, 정대수가 모르는 것이 있었다.

도구로서 훈련 받은 서하얀은, 실은 아직도 감정이 남아있었다.

길을 걷다 보면 가끔은 맛있는 음식을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가끔 들려오는 음악에 신이 나고 설레기도 했다.

예쁜 옷을 보면 입어보고 싶었고, 사랑이란 무엇일까 고민해본적도 있었다.

단지, 정대수의 앞에서 그런 모습을 보일 수 없기 때문에 인형처럼, 살인 도구처럼 연기를 했을 뿐.

서하얀은 아직도 자신이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사람으로서의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그런 날도 오늘로 마지막일 테지.

자신은 이제 다크 카이저와 함께 죽을 테니까.

자신의 정체성은 어떻게든 연기로 감출 수 있었지만, 세뇌된 정신까지는 완전히 되돌릴 수 없었다.

서하얀은 정대수의 의도를 알아차리자마자 마치 당연히 해야 하는 것처럼 정대수의 의도에 따랐다.

하지만….

dudadadadadadada!

babababababaababa!

tutatatatatatatatata!

자신을 중심으로 사위에서 총탄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죽고 싶지 않아….”

서하얀의 입에서 그 말이 나온 바로 그 순간…!

서하얀은 자신이 아직 죽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어… 뭐… 뭐지? 분명 총탄이 발사되는 소리가 들렸는데…?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어쩌면 난 이미 죽은 것이 아닐까?

살짝 실눈을 떠본 서하얀의 눈 앞엔….

커다랗게 펼쳐져 자신과 다크 카이저를 완전히 덮고 있는 다크 카이저의 검은 망토가 보였다.

“죽고 싶지 않다면, 죽지 않아도 돼.”

다크 카이저가 서하얀을 향해 그렇게 말했다.

*     *     *

내 몸을 칭칭 감은 채 꽉 안고 있는 흑표범을 보며, 나는 당황했다.

“으하하하하! 역시 내가 믿고 키운 간부답구나! 말하지 않아도 내 의도를 완벽하게 읽어줬으니!”

그리고 동시에 들려오는 흑사자의 외침.

촤라라라락-

허공에 정렬되어 있던 총기들이 사방에서 나를 겨눈다.

이대로 저 총이 발사된다면, 나 뿐만이 아니라 흑표범도 함께 죽고 말리라.

의도.

흑표범이 나를 움직이지 못하게 고정시키고, 그 후 흑표범과 함께 나를 죽여버리겠다는 의도일 터였다.

나는 그 사실을 깨달음과 동시에 머리끝까지 불이 확 붙어오는 느낌이 들었다.

망령당 때도 그렇고 이 빌어먹을 악당들은 대체 사람의 목숨이 뭐라고 생각하는 거냐?

소모품? 인간으로 생각하긴 하는 거야?

【“평정을 되찾아라. 다크 카이저! 지금은 위기다! 위기를 타파할 방법부터 찾는 게 우선이야!”】

내 머릿속에서 들려오는 벨제뷔트의 목소리에 나는 차오르던 분노를 조금 가라앉혔다.

그래. 지금은 위기 극복이 먼저지.

나는 조금이라도 몸을 움직이려고 해보았지만….

완전히 내 몸을 감고 있는 흑표범에게서 벗어나려면 꽤나 시간이 걸릴 것만 같았다.

그리고 흑사자는 그 시간을 기다려주지 않겠지.

[“마스터! 망토는 움직일 수 있습니다!”]

그 말대로, 내 몸 자체를 감고 있는 흑표범은 망토의 밑단을 잡고 있지 않았다.

그렇다면 망토는 사용할 수 있다.

하지만… 다크 쉴드를 사용하려면 망토를 손으로 잡아 끌어야만하는데….

[“꼭 그렇지만은 않아요 마스터. 능력의 활용은 마스터의 생각에 달려있어요. 새로운 방법을 생각해보세요!”]

“죽고… 싶지 않아….”

그때 들려오는, 흑표범의 조용한 목소리.

아이 같은 목소리였다. 나이가 그렇게 많진 않으리라.

아직 하고 싶은 것도 많고, 해야 할 것도 많은 나이.

얼마나 무슨 죄를 지었는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살고 싶어 하는 사람은 살게 도와주는 것이, 히어로의 의무라는 생각이 들었다.

바로 그때.

dudadadadadadada!

babababababaababa!

tutatatatatatatatata!

허공에 있던 수많은 총구들에 불이 붙었다.

망토가 확 펼쳐지며 나와 흑표범을 완전히 감싼다.

마치 검은 공처럼 동그랗게 말려 나와 흑표범을 보호해주는 다크 쉴드.

“죽고 싶지 않다면 죽지 않아도 돼.”

내가 그렇게 말하자 스르르 풀리는 흑표범의 팔다리.

내가 새로운 인생을 살 수 있게 해주마.

*     *     *

흑사자는 순간 조금 당황했다.

오늘 전투를 위해 분석해왔던 다크 카이저의 능력에는, 망토를 저런 식으로 활용하는 기술이 없었으니까.

끝없이 강해지는 히어로.

다크 카이저는 바로 그런 히어로였다.

하지만, 망토를 사용하는 다크 쉴드에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음을, 흑사자 정대수는 알고 있었다.

다크 쉴드의 에너지는, 영원하지 않다.

수많은 싸움에서 이미 증명된 바 있는 사실이었다.

그렇다면, 분명 자신의 총기를 모두 막아내느라 다크 쉴드의 에너지는 꽤 많이 소모되었을 터.

아직도 내가 이길 수 있다.

허공에 떠 있던 총기들을 내리고 새로운 총기들을 허공으로 띄운다.

내려간 총기들은 다시 재장전.

“뭐하는 거냐 흑표범! 다크 카이저를 다시 잡아!”

자신의 말을 듣고도 아무렇지 않게 멍하니 바닥에 쓰러져있는 흑표범, 서하얀.

으이이이익!

이러려고 널 그 돈 주고 키운 게 아니란 말이다!

그 틈에 빠른 속도로 자신을 향해 달려오기 시작하는 다크 카이저.

소름끼치도록 빠르다.

흑사자, 정대수의 능력은 섬세한 다중 염력 능력이다.

그리고 다중 염력 능력은, 이능 계열이다.

이는, 정대수에게 신체 강화 능력이 존재하지 않다는 것을 의미했다.

다크 카이저와 근접전을 벌이게되면, 이길 가능성은 제로다.

무조건 거리를 벌려야만 한다.

다행히 지금의 전투 상황은 좁은 골목길.

자신이 유리한 상황이나 다름없다.

흑사자는 그대로 허공위로 띄웠던 총기들을 다시 한번 발사 했다.

tudadadadada!

총탄이 나가는 소리가 골목길을 가득 메웠다.

그리고 총탄 또한, 골목길을 가득 메울 만큼 많은 양이 되어 다크 카이저에게 향하고 있었다.

다크 쉴드로 막아낼 수 없다면, 이번 총탄이 분명 다크 카이저에게 타격을 입힐 것이 분명했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놀랍게도, 육체 모드를 스피드 형태로 변형한 다크 카이저는, 그 많은 총탄을 대부분 피해냈다.

마치 총탄의 경로를 예측할 수 있는 것처럼.

“다크 카이저, 네 놈의 능력은 대체 어디까지인 거냐?”

장전하고 있던 나머지 총기 또한 발사해보았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몇 발인가의 총탄이 다크 카이저의 피부를 스치고 지나간 것 외에는, 자신의 총기는 다크 카이저에게 아무런 피해를 입히지 못했다.

이대로 간다면, 자신의 코앞까지 다크 카이저가 따라 붙어버리라.

앞서 말했듯, 근접전을 허용한다면 자신은 백 프로 패배할 수밖에 없다.

흑사자는 신고 있던 철 부츠를 허공으로 띄웠다.

그는 철부츠를 허공으로 띄운 것만으로 자신의 몸을 떠오르게 할 수 있었다.

스스로를 대상으로 능력을 사용할 수 없는 이능 계열의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생각해낸, 일종의 편법이었다.

화르르륵!

빠른 속도로 허공을 향해 날아가는 흑사자를 따라잡기 위해, 다크 카이저의 흑염의 날개가 펼쳐진다.

아무리 자신의 염력 능력이 강력하다고 해도, 저 날개만큼의 속도를 낼 정도는 아니다.

놈이 자신에게 가까이 오지 못하게 만들어야만 한다.

흑사자는 순식간에 총기가 먹히지 않는 이유를 머릿속에 떠올렸다.

총. 총구의 위치만 파악한다면, 총탄의 경로를 예상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어떻게 머리 뒤에까지 있는 총기의 경로까지 예상하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총기의 사격 루트는 단조롭다.

그렇다면….

흑사자는 허공을 날아 움직이며 코트를 양쪽으로 확 펼쳤다.

코트에 묶여있던 미스릴제 칼날들이 허공으로 떠오른다.

그렇다면, 이젠 루트를 예상할 수 없게 만드는 수밖에 없지.

허공으로 날아오르기 시작한 다크 카이저를 향해, 흑사자는 칼날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휙-

쉭-

샥-

과연 다크 카이저.

경로를 예측할 수 없게 만든 칼날마저도 피해를 최소화하며 피해내고 있다.

다크 카이저가 느려진 틈을 타 흑사자는 부츠를 움직여 뒤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     *     *

총탄의 경로까진 예측하기 쉬웠는데….

이놈의 미스릴 칼날은 문제다.

백 개는 확실히 넘는 듯한 미스릴 칼날들이 예측하기 힘든 경로로 나를 향해 날아들기 시작했다.

미쳤군. 스카 페이스는 미스릴 나이프 한 개만 가지고도 그렇게 강력했는데, 이 정도로 많은 양의 미스릴 칼날을 가지고 있다고?

이놈 돈이 얼마나 있는거야?

어떻게든 미스릴 칼날의 공격을 피해내곤 있었지만, 몸에 크고 작은 상처가 나고 있는 것은 피할 수 없었다.

검은 슈트를 타고 뚝뚝 흘러내리는 붉은 액체.

피를 많이 흘린 탓인가, 몸이 둔해져가는 것이 느껴진다.

동시에, 계속해서 허공을 날아 도망치고 있는 흑사자.

이렇게 거리가 멀어지다 보면 결국 흑사자를 놓치게 될 거다.

흑사자를 놓치고 나면, 이놈은 또다시 새로운 술수를 만들어내고 나에게 덤벼들겠지.

그리고 그 술수로 인해 또 누군가가 고통받게 될지도 모른다.

지금, 이 순간, 나는 무조건 저놈을 잡아야만 한다.

하지만 어떻게? 어떻게 해야 놈에게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까?

바로 그 순간.

머릿속으로 떠오르는, 검은 어둠.

아니, 검은 어둠이라고 생각했던 그것은 우주였다.

우주의 공허.

공허에 있는 우주의 힘이 몸 안을 가득 채워주는 것이 느껴진다.

갑작스럽게 생겨온 힘에 정신이 멍해진다.

멍해진 정신으로 나는 눈앞을 향해 손을 뻗었다.

슈르르르르륵-

허공에 떠 있던 미스릴 칼날들이 한데 모여 내 손 안으로 들어온다.

“아… 아니? 뭐… 뭐야?”

당황해하는 흑사자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파아아앙-!

내 등 뒤에 있는 흑염의 날개가 커다란 소리를 내며 내 몸을 앞으로 쏘아 보내기 시작했다.

나는 그대로 주먹을 뻗어 흑사자의 얼굴을 후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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