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3화
경한타워(4)
쐐애애액!
십여 개의 칼날이 나를 향해 날아온다.
백덤블링해 칼날을 모두 피하려고 했지만.
금속칼날이 계속해서 날아와 한 번 움직이는 것으론 부족했다.
나는 백덤블링을 세 번이나 더 하고 나서야 칼날을 모두 피할 수 있었다.
칼날이 대체 몇 개야?
[“정확히 50개의 칼날입니다.”]
어쩐지 피해도, 피해도 끝없이 몰아쳐 오더라니….
나는 헐떡이려는 숨을 참으며 내 옆에 있는 순간이동 장치를 바라보았다.
순간이동 장치의 한가운데에 떠있는 숫자.
[8264-025]
저게 차원 좌표인가 보네.
쐐애애액!
잠시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내게 다시 날아들기 시작하는 칼날들.
나는 이번엔 칼날을 피하기 위해 바닥을 굴렀다.
타타타타타탁
섬뜩한 소리를 내며 바닥에 박혀드는 칼날들.
다중 염력능력.
흑사자도 같은 능력을 사용하곤 했었지.
이능계열의 능력이라 신체계열 슈페리어는 사용할 수 없어야 했지만….
사대희는 정말로 그 법칙을 깨고 이능계열의 능력을 사용하고 있었다.
“으하하하하하! 놈! 아까와는 다르게 꼬리 말고 도망치는 모습을 보니 속이 다 시원하구나!”
시원하게 웃는 모습과는 다르게, 온 얼굴을 찌푸리는 것을 보니 부작용이 있는 게 틀림없었다.
그렇다면 놈이 지치길 기다리는 것도 방법일 수 있었지만….
쐐애애애액-!
boooooosh!
pzzzzzzzzz!
나는 나를 향해 날아드는 칼날과 화염, 전격 공격으로 언제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은 상태였다.
화염과 전격을 향해 흑염을 흩뿌렸지만, 그것만으로 공격을 다 막을 순 없었다.
날아드는 칼날을 피하기 위해, 이번에는 옆으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쐐애애애액-
투두두두두둑!
내 뒤를 따라 바닥에 박혀들어가는 칼날들.
나는 갑자기 느껴지는 세한 느낌에 망토를 들어 올려 다크 쉴드를 만들어냈다.
콱!
쉴드와 함께 망토에 구멍을 뚫고 바닥에 박혀들어가는 칼날.
세한 느낌에 속도를 늦춰서 다행이지, 하마터면 다크 쉴드로 막고도 공격을 맞을 뻔했다.
놀랍게도 사대희는 점점 자신의 능력을 사용하는 데에 익숙해지고 있었다.
【“공허의 힘에 익숙해진 뒤 왔더라면 훨씬 상대하기 쉬웠을 터인데….”】
벨제뷔트가 안타깝다는 목소리로 말했다.
공허의 힘을 마음대로 사용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지만, 공허의 힘은 일정하지 않았다.
어떨 때는 강력한 에너지로 주변을 빨아들이기도 했지만, 어떨 땐 반대로 주변을 밀어내기도 했다.
어떨 땐 빛만을 빨아들여 어두운 공간만을 만들어내기도 했었다.
아직 내가 능력에 익숙해지지 못한 탓이다.
반대로 사대희는 오늘 처음 얻은 능력임에도 점점 능력에 익숙해지고 있었다.
왜 이 세계의 최강자가 되었는지 이해가 될 정도로 엄청난 재능이었다.
사대희가 능력들을 사용하는 데에 더 익숙해지게 내버려 뒀다간, 분명 내가 패배할 것이다.
결국 승부를 보는 수밖에 없다.
나는 스피드 모드로 변형한 뒤, 칼날을 피해 곡선으로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투두두두두두두둑!
바닥에 박혀들며 나를 향해 날아드는 칼날들.
칼날이 부족해지면 칼날을 바닥에서 뽑고, 내가 피하는 동안 정렬한 뒤 그것을 다시 던진다.
뿜어져 나오는 전격과 화염은 어떻게든 버틸 수 있었지만, 칼날은 아니었다.
칼날은 던지는 궤적을 비틀 수도 있어서 다중 염력으로 총기를 사용하던 흑사자보다 훨씬 상대하기가 어려웠다.
적어도 총은 총탄의 방향을 예측할 수 있었으니까.
투두두두둑!
코과과과과과광!
내 뒤에 박혀 들던 칼날 위로 전류가 떨어지기 시작한다.
여러 가지 능력을 다루는데 익숙해진 김에, 응용을 시작한 모양이다.
미치겠네. 안 그래도 힘들어 죽겠는데.
바닥에서 흐른 전류가 몸을 저릿하게 타고 올라오는 것이 느껴진다.
지금은 별거 아닌 타격이었지만, 이런 데미지도 누적되면 고통으로 이어질 수 있었다.
조금 더 빨리 해치워야 할 이유가 늘었다.
“와라!”
칼날을 피해 곡선으로 내달리며 달려가는 내게 사대희가 외쳤다.
오냐. 안 그래도 그쪽으로 향하는 중이다.
이제는 앞으로 달려가는 형세가 된 탓에 몇 개의 칼날이 내 피부를 스치고 지나갔고, 또 하나의 칼날은 내 어깨에 박혀들었지만.
나는 속도를 늦추지 않았다.
boooooooosh!
그런 내 눈앞에 화염이 쭉 깔린다.
이 정도 화염은 정신력으로 버티면 그만이다.
꽈아아악-
슈트가 근육을 잡아 채는 느낌을 느끼며 허공으로 뛰어오른다.
꽈아아악-
나는 그대로 달려오던 에너지를 실어 사대희를 향해 주먹을 내질렀다.
촤라라라락-!
터엉!
어느새 뭉쳐져 방패를 만들어낸 칼날들이 산산조각이 되어 부서진다.
내가 생각하지도 못한 활용법이었다.
흑사자고 사대희고 다 이렇게 하려고 금속 칼날을 사용하는 거였군.
미리 흑사자한테 겪어봤으면 좋았을 것을.
후두두두두둑!
깨진 칼날 파편들이 순식간에 내 온몸 위로 쏟아진다.
깨진 파편 그대로 나를 향해 쏘아버린 것이었다.
이 공격을 모두 맞으면, 분명 벌집이 되어 쓰러질 터였다.
지금이 승부를 봐야 할 시점이었다.
이번엔 해내야만 했다.
시간이 천천히 흘러가기 시작한다.
나는 눈을 감고, 머릿속으로 예전에 본 적 있던 내 별을 떠올렸다.
작고 희미한 빛을 내던 내 별은,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너무 밝아. 조금 더 어둡게.
모니터의 밝기를 낮춘 것처럼 천천히 줄어들기 시작하는 나의 별빛.
그것은 이젠 다시 예전처럼 작고 희미한 빛만을 내뿜어내고 있었다.
아니. 이걸로도 안돼. 더 어둡게.
작고 희미한 빛을 내뿜던 별은, 이윽고 자신의 빛을 완전히 감췄다.
새까만 어둠으로 물들기 시작하는 주변.
나는 그제야 내 별 주변에 있는 공허를 느낄 수 있었다.
텅 빈 곳에 가득 채워져 있는 에너지를 느낀다.
이제는 공허 안에 차올라 있는 에너지를 이해할 수 있다.
나는 공허의 에너지를 끌어, 내 눈앞에 공허를 만들어냈다.
슈르르르륵!
순식간에 나를 향해 날아들던 칼날들이 하나로 뭉친다.
“어? 으… 아니? 대체 무슨 술수를 부린 거냐! 이놈!”
눈앞에 만들어진 공허에 당황하며 물러나는 사대희.
그대로 있었으면 공허를 움직여 꿀꺽 삼킬 수도 있었을 텐데. 눈치 빠른 늙은이.
나는 공허의 크기를 키웠다.
커진 크기만큼 주변의 칼날들을 빨아들이기 시작하는 공허.
50개의 칼날들이 모두 빨려들어 둥근 공처럼 뭉친다.
“이… 이건 대체… 너… 너는 신체 능력자이자 화염계열 능력자잖아! 어떻게 이런 이능계열 능력을 사용할 수 있는 거냐! 마… 말도 안 돼!”
아. 네 눈엔 내가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구나.
공허는 칼날들만을 빨아들인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주변에 흩어져있던 전격의 힘과, 사대희가 뿌려뒀던 화염의 힘마저도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공허 한가운데로 뭉친 그 물체는, 불꽃과 전류로 반짝이며 마치 우주에 떠 있는 작은 태양처럼 보였다.
“당신 물건이니 당신에게 돌려줄게.”
나는 만들어진 작은 태양을 그대로 사대희를 향해 밀어내기 시작했다.
“이… 이런!”
그런 나를 보고 염력에 온 힘을 쏟아붓기 시작하는 사대희.
태양을 중간에 놓고 공허의 힘과 힘겨루기를 시도해보지만….
그렇게 내버려 둘 순 없지.
나는 그대로 놈을 향해 흑염을 내 뿜었다.
내 팔에서 만들어진 화염은 조용히 바닥을 가로질러 사대희를 향해 나아갔다.
“커… 커헉…!”
내 공격을 눈치채지 못했던 사대희가 흑염에 맞아 잠깐 고통에 찬 신음을 흘린다.
하지만, 이런 힘겨루기에선 그런 조금의 흐트러짐이 승부를 결정 짓기 마련이었다.
“아… 안돼… 안돼에에!!!”
결국 공허의 힘을 견디지 못하고 밀리기 시작하는 사대희.
그때였다.
푸슈우우우우우!
갑작스럽게 물을 뿜어내기 시작하는 스프링클러.
스프링클러가 작동하는 바람에 이번에는 나의 집중력이 깨지고 말았다.
퍼엉-!
사대희가 궤적을 비틀어놓은 탓에 구체는 허공을 뚫고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뭐야? 아까까진 작동 안 하던 게 왜 이제야 작동하는 거야?
【“여긴 사대희의 건물이다. 잊었나?”】
아니, 스프링클러의 작동까지 맘대로 할 수 있을지는 몰랐지.
“이… 대로… 패배… 할… 순… 없… 다!”
내가 그런 생각을 하기 무섭게 순식간에 꺼져버리는 주변의 불빛들.
순식간에 주변에 어둠이 찾아온다.
뭐야? 갑자기 불까지 끈다고?
내가 쓰곤 하던 기술을 도리어 당하자 조금 당황하고 말았다.
나는 오른쪽 눈의 능력을 활성화해 사대희를 찾아 움직였다.
[“저깄어요, 마스터!”]
어느새 녹색으로 빛나는 순간이동 장치로 내달리고 있는 사대희.
이제야 멍청하게 당하던 적들의 상황이 이해가 가네.
순간적으로 불이 꺼지면 당황하게 되는구만.
【“그렇게 멍청하게 중얼거릴 때가 아니다. 다크 카이저! 이러다간 놈이 다른 차원으로 도망가고 말 거다!”】
벨제뷔트. 지옥의 차원 번호가 뭐지?
【“크하하하! 666! 025부분을 666으로 바꾸면 된다! 순식간에 이런 생각을 해내다니! 대단하군!”】
내 의도를 간파하고는 웃어 재끼기 시작하는 벨제뷔트.
제인. 들었지? 차원의 문 좌표번호를 666으로 변경해줘!
[“네 마스터. 지금 해볼게요.”]
그러는 사이 차원의 문 바로 앞까지 도착하는 데 성공한 사대희.
이런… 조금 늦었나? 이러면 다음은 어떻게 해야 하지? 곧바로 따라 달려 들어가야 하나?
그래도 문제인 게, 여기에서의 일 초가 저곳에서는 수십 시간이다.
내가 쫓아 들어가도 놈을 곧바로 찾기란 힘들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다.
방심해서는 안 됐는데….
혀를 차며 다음 행동을 생각하고 있던 바로 그때.
텅!
다시 주변의 불이 켜지며 사대희의 모습이 드러난다.
입고 있던 양복이 그을리고, 단정하게 넘겨놓았던 머리칼이 흐트러졌지만, 사대희는 크게 다치지 않고 차원의 문 옆에 서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으… 정말… 정말… 놀랍군.”
뭐? 갑자기?
“싸우던 도중에 새로운 능력을 개방하다니. 정말… 놀라워.”
갑자기 나를 향해 감탄의 말을 내뱉는 사대희.
“내가 한 가장 큰 실수는, 다크 카이저라는 존재를 눈치채고도 내버려 둔 거였어.”
[“마스터! 해냈어요! 차원문의 좌표를 바꿨습니다.”]
마침 그 타이밍에 일을 끝마친 제인.
곧장 들어갔으면 살았을 텐데, 넌 네 입 때문에 망했다.
“지금 가는 다른 차원에서는, 절대 실수 하지 않겠다. 다크 카이저. 그럼 다음 차원에서 보지.”
내게 하고 싶은 말을 하고 나서야 지옥으로 향하는 포탈로 뛰어드는 사대희.
“어?”
잠시 경한타워에 흐르는 적막.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이윽고 포탈에서 들려오는 사대희의 비명.
“안돼! 안돼!”
다시 빠져나오려는 듯 손을 뻗어보지만….
“크하하하하! 진짜로 성공할 줄은 몰랐군! 지옥에 온 걸 환영한다! 사대희!”
안에서 들려오는 소리와 함께 사대희의 손은 다시 포털 안으로 들어가고 말았다.
[“포털, 지금 닫겠습니다.”]
제인의 말에 닫히기 시작하는 차원의 문.
“해… 해치웠나?”
나는 포탈 앞으로 천천히 걸어가보았다.
벨제뷔트. 방금 들린 목소리, 뭐야?
【“…악마다.”】
그럼 지금 진짜 지옥으로 걸어 들어간 거 맞지?
【“그래.”】
빰빠밤!
[동화율 : 100%]
그 소리와 함께 눈앞에 떠오르는 동화율 창.
내… 내가 이겼다.
* * *
재희는 강렬한 불안함을 느꼈다.
그동안 악마 바알이 몇 번이나 재희에게 깨워선 안 된다고 말했던 ‘그 남자’가 이번 싸움으로 인해 깨어나진 않았을까 걱정되었기 때문이다.
동화율이 100퍼센트가 된 이 순간, 제인은 선택을 해야만 했다.
자신의 정체를 밝힐 것인지, 아니면 앞으로 닥쳐올 미래의 위험을 막을 것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