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4화
스타 라이트(1)
그와 동시에 재희의 귀에 들려오는 악마의 목소리.
【“계약은 끝났다. 네 아들은 훌륭한 영웅이 되었고, 너는 그런 아들의 성장을 지켜볼 수 있게 되었지. 거기에 사대희에 대한 복수도 성공했어. 자, 마지막으로 약속한 소원을 들어보도록 하지. 참고로 네 영혼은 이미 계약에 귀속되어 있기 때문에, 살려달라는 등의 소원은 이뤄줄 수 없다.”】
애초에 그런 건 기대도 안 했다구요….
재희는 더 이상 삶에 미련이 없었다.
자신을 죽인 사대희를 지옥으로 떨어트리는 복수도 성공했고, 아들이 어떻게 자라고 있는지도 알 수 있게 되었다.
그렇기에, 자신의 존재를 강림에게 알리고 싶었다.
정말 멋지게 잘 자라 주었다고 칭찬해주고 싶었다.
내가 없는 이 세상을 굳건하게 살아가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재희는, 그것들을 모두 포기하기로 결심했다.
[“제 소원은….”]
또다시 강림이가 고통에 빠질 수도 있는 선택은 하고 싶지 않았다.
[“이 차원을, 스타 라이트의 눈이 닿지 않게 보호해주는 것. 그게 제 소원이에요.”]
소원을 들은 바알이 잠시 조용해졌다.
그리고 돌아온 대답은, 재희를 절망하게 만들었다.
【“미안하군. 내 나름대로 열심히 해봤지만… 그 소원은 이루어줄 수 없을 것 같다. ”】
* * *
남자는 매주 한 번은 같은 꿈을 꾸곤 했다.
괴물이 나타나, 우주에 떠 있는 별들을 하나하나 먹어치우는 꿈.
이윽고 온 우주에 자신 혼자만 남은 것을 깨달았을 때, 그 작은 별들의 빛을 꺼트린 괴물이 다름 아닌 자신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남자는 외로움과 아픔에 온몸을 비틀며 잠에서 깨어난다.
고통은 짧다. 익숙하다.
또다시 일어나 기계적으로 해야 할 일을 찾기 시작한다.
그것이 남자가 자신을 잃고 그동안 해왔던 것이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남자도 할 일을 찾지 못했다.
너무 많은 차원을 파괴한 탓일까?
점점 삶의 이유가 희미해지고 있던 그때….
쿵-!
어디선가 힘의 격돌이 느껴졌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강자들의 싸움이었다.
쿵-! 쿵-! 쿵-!
계속해서 이어지는 힘의 격돌.
남자는 차원의 좌표를 유추하기 위해 눈을 감았다.
82….
지직- 직-
남자의 감각에 노이즈가 낀다.
누군가가 자신의 감각을 속이기 위해 방해전파를 보내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그 순간, 순식간에 사라지는 힘의 격돌.
노이즈 때문에 정확한 차원의 좌표를 알 수 없었다.
한 번만… 단 한 번만 또 힘의 충돌이 일어난다면….
쾅!
지직- 지지직-
계속해서 나타나는 노이즈.
의도적이다.
자신의 존재를 아는 누군가가 좌표를 찾지 못하게 만들고 있다.
바로 그때였다.
슈우우우우우-
이건…?
이번에는 힘의 격돌이 아니었다.
분명 처음 느끼는 힘인데… 친숙하고 익숙한 느낌이었다.
남자는 보석을 이용해 차원을 뒤틀어 찢었다.
* * *
동화율 100%를 찍었지만, 막상 내게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하긴, 애초에 조건이 행복하게 살 수 있게 해준다는 거였지?
원래 삶과 다르게 이모도 병으로 고통받는 일이 없어질 테고, 이젠 오래오래 이모의 얼굴을 보고 살 수 있게 되었다.
그런 생각에 뿌듯했던 것도 잠시, 기쁨으로 차있던 내 정신은 점점 현실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이긴 건 좋은데, 뒤처리는 어떻게 해야 하지?
제인.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서 논의 좀 하자. 어떻게 해야 깔끔하게 뒤처리를 할 수 있을까?
[“…….”]
뭐야? 갑자기 왜 이렇게 조용해? 벨제뷔트?
【“…온다.”】
뭐가? 뭐가 온다는 거야?
나만 빼고 다들 무슨 생각을….
그때였다.
찌지지지직.
아까전에 닫았던 차원의 문이 있던 자리에, 알 수 없는 균열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나는 반사적으로 차원문에 달려있던 녹색 보석을 보았다.
녹색 보석은 금방이라도 폭발할 것처럼 밝은 빛을 내뿜어대고 있었다.
어? 저게 무슨?
퍼엉-
갈라졌던 균열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는 한 남자.
입은 옷은, 오래돼 이름마저 지워진 히어로 슈트. 그리고 무표정한 얼굴. 손에는 밝게 빛나는 녹색 보석을 들고 있었다.
슈트에 이름도 없고, 표정도 달라졌지만, 오랜 팬이었던 나는 그 남자가 들어오자마자 남자의 정체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스타라이트….”
그 남자는, 만화 HEROICEST의 주인공, 스타라이트 최강훈이었다.
뭐지? 이게? 동화율이 100퍼센트가 되면 이런 일도 일어나는 건가?
내 이야기가 정말 실제하는 이야기라면, 스타라이트의 이야기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나 때문에 많이 바뀌긴 했지만, 그럼에도 만화에서 봤던 일들이 이 세계에 똑같이 이루어지곤 했었으니까.
그렇다면… 스타라이트의 마지막은….
분명 빌런들에게 장악당한 도시를 늙은 몸으로 내려다보며 죽는 것이어야 할 텐데….
눈앞의 스타라이트는 만화에서 봤던 젊고 건강했던 시절의 얼굴을 하고 있다.
오래된 슈트만이 그의 고생을 엿볼 수 있게 할 뿐, 그때의 늙은 최강훈이 아니었다.
그리고 무표정에 가까운, 감정 없는 그 표정.
반가웠던 마음에 점점 경계심이 생기기 시작한다.
이 사람이 과연, 좋은 이유로 이곳에 온 것일까?
“너인가?”
“…뭐?”
다르다.
스타라이트와는 다른 사람이다.
그런데, 또 어쩐지 스타라이트인 것 같기도 했다.
“처음 느끼는 에너지를 따라 이곳까지 왔다. 텅 빈 것 같으면서도 안이 가득 차 있는듯한 느낌의 에너지. 그 에너지를 사용한 것이 너인가?”
그 순간.
내 눈앞이 검게 물들기 시작했다.
* * *
다시 눈을 뜬 곳은, 오랜만에 오는 우주의 검은 공간이었다.
마지막으로 이곳에 왔던 것은, 내 별을 찾았을 때.
그 이후로 공허의 힘을 깨달을 때 잠깐 이 공간을 엿본 적이 있긴 하지만. 직접 이렇게 다시 들어온 건 정말 오랜만이었다.
그리고… 내 눈앞에 떠 있는 스타라이트를 보는 것은, 더 오래간만의 일이었다.
스타라이트가 말했다.
“이젠 그 슈트가 잘 어울리는군.”
“항상 보살펴주신 덕분입니다.”
그랬다.
위기 상황에서 내게 새로운 능력을 만들어준 것도 그였고, 힘들고 지쳐 모든 걸 포기하고 싶을 때 새 힘을 줬던 것도 스타라이트였다.
스타라이트의 도움이 없었다면, 분명 지금의 나도 없었을 터였다.
하지만 스타라이트의 생각은 달랐다.
“내가 네게 도움을 준 것은 없어. 오히려 방해하는 걸지도 모르지.”
스타 라이트의 눈에 씁쓸한 표정이 떠오른다.
“네? 무슨 소리세요? 계속 저를 도와주셔 놓…”
그제야 나는 내가 바깥에서 무얼 하고 있었는지를 떠올렸다.
나는 갑자기 나타난 스타라이트를 경계하고 있었다.
나는 스타라이트에게 물었다.
“지금 여기에 나타난 그 사람. 당신이 맞습니까?”
“천산시가 사대희의 손에 완전히 넘어간 뒤, 나는 은퇴했다.”
내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다른 이야기를 시작하는 최강훈.
하지만, 나는 저 이야기가 내 말에 대한 대답일 거라 직감할 수 있었다.
나는 조용히 최강훈의 이야기를 듣기 시작했다.
* * *
은퇴한 채 나이를 먹은 스타라이트는 절망했다.
자신이 사랑하던 사람들은 모두 자신의 손으로 죽였고, 그들이 지키려고 했던 세상은 무너지고 말았다. 그런 세상을 되살릴 자신이 없어서 스타라이트는 은퇴를 결정했었다.
하지만 늙어 죽기 직전이 되니, 마음이 바뀌었다. 그래선 안 됐다. 나와 함께 싸우던 동료들을 생각해서라도 그런 마음을 가져선 안 됐다.
지금이라도 다시, 다시 도전해보자.
그렇게 생각하며 몸을 일으켜 보았지만….
일어서자 철제 난간에 자신의 얼굴이 비쳤다.
난간 속에 있는 자신의 늙은 얼굴은 추했다.
그런 생각이 떠오름과 동시에, 최강훈은 자신을 증오하기 시작했다. 결국은 자신이 포기했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었으니까.
그날 저녁, 최강훈은 자살 시도를 하였다.
칼날은 자신의 몸에 박혀 들지 않았고, 독이나 약도 자신의 몸엔 아무런 이상을 주지 않았다.
결국 그가 선택했던 것은 교살이었다.
천장에 줄을 매고, 자신이 죽는 시간을 기다리는 동안.
최강훈은 몇 번이고 후회했다.
그리고 자신을 지옥 같은 삶으로 밀어넣은 세상을 저주했다.
내가 죽지 않는다면, 이 세상을 무너뜨리고 말리라.
그렇게 생각했었다.
점점 눈이 감기며, 죽음을 느끼던 바로 그때.
최강훈은 자신의 영혼이 몸에서 튕겨 나왔음을 깨달았다.
빌어먹을 초인의 생명력 때문에 정신은 죽었지만, 몸은 죽지 않은 것이다.
죽지 않은 최강훈의 몸엔 마지막으로 영혼으로부터 들었던 메시지가 머리에 새겨졌다.
세상을 무너뜨리라는, 저주의 외침이.
* * *
“그러는 동안 내 몸은 수많은 세상을 멸망시켰다. 아무 생각도 없이 마치 기계처럼. 그 때문에 내 영혼은 어디로도 가지 못하고 떠돌아다닐 수밖에 없었다. 몸은 죽지 않았으니까. 내 몸은 계속해서 악명과 공포를 만들었고, 나는 그 악명과 공포 덕분에 악령이 되어 여러 가지 능력을 얻을 수 있었다.”
담담하게 말하는 스타라이트의 얼굴엔, 아무런 표정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러던 도중, 새로운 차원이 만들어졌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그 차원에는 나 대신 네가 있더군. 나는 너를 지켜보았다. 같은 차원에서 활동했지만, 너와 나는 달랐다. 나는 포기했지만, 너는 무슨 일을 겪어도 포기하지 않았지. 나보다 훌륭한 히어로였다.”
담담한 표정으로 말하던 스타라이트가 고개를 떨군다.
“아니에요. 그래도 위험하고 아파할 때 저를 위로해주셨던 건 진심이잖아요. 내게 주셨던 힘들, 모두 잘 사용하고 있어요. 그 힘이 없었다면 저는 여기까지 올 수 없었을 거예요.”
“너를 도울 수 있었던 것도 순전히 악령으로서 벌어들인 내 힘 때문이었다. 미안하군. 그런 사악한 힘을 사용하게 만들어서.”
안 된다.
이 사람에게는 지금 아무런 말도 통하지 않는다.
이 사람이 원하는 건, 그저 죽음뿐.
“히어로에게, 나약한 한 사람으로서 부탁을 하나 하겠다.”
스타라이트가 조용히 무릎을 꿇었다.
“슈퍼빌런인 나를, 죽여다오.”
* * *
나는 스타라이트 검은 공간에서 빠져나왔다.
다시 눈앞에 낡은 슈트를 입은 스타라이트가 보인다.
“대답을 하지 않는군. 말할 수 없다는 건가. 그렇다면 죽일 뿐이다.”
무심한 표정으로 손을 들어 올리는 스타 라이트.
그제야 피부로 저릿하게 느껴지는, 눈앞에 있는 스타라이트의 강함.
내가 과연 그를 이길 수 있을까?
사대희하고도 비교가 안 될 만큼, 강력한 기운이 등골을 타고 올라와 머릿속을 새하얗게 만든다.
나와의 압도적인 격차가 느껴진다. 나는 절대 이 사람을 이길 수 없다.
하지만….
“포기하지 말아라.”
그렇게 이야기했지. 스타라이트가.
포기하는 바람에 스타라이트는 평생을 후회했다.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자.
히어로로서 활동하며 내가 얻은 가장 큰 교훈 중 하나였다.
결과가 뻔히 보이더라도….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
나는 양 주먹을 들어 올려 파이팅 자세를 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