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6화
Heroicest
“퇴각! 모두 퇴각해!”
한참을 싸우던 슈퍼 솔져들이 갑작스레 퇴각하기 시작한다.
“적이 도망친다! 도망치고 있다!”
“뭐? 뭐야? 갑자기?”
아스트로 스타즈들은 부랴부랴 도망가는 슈퍼 솔져들을 제압했지만, 흩어진 슈퍼 솔져들을 모두 제압하기엔 무리였다.
“이런 제길.”
지금 도망친 놈들은 도시의 어둠 속에 숨어 또 다른 범죄를 저지를지도 모른다.
이제야 천산시가 좀 깨끗해질 줄 알았는데….
퀘이사가 아쉬움을 표하고 있을 때, 옆에 서 있던 어비스 위치가 입을 열었다.
“근데 이렇게 싸우다 말고 도망치는 거 좀 이상하지 않아요?”
“나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수가 많아 세력적으로 밀리는 상황이 아니었는데 도망을 치는군.”
래피드 스타의 맞장구에 퀘이사는 고개를 올려 경한타워의 꼭대기를 바라보았다.
“혹시….”
“맞는 거 같아. 이겼어. 사대희의 생명 신호가 사라졌다고 하는 보고를 받았다더군. 그러면서 사용하던 장비들도 모두 작동을 멈춘 모양이야.”
저 멀리서 사로잡은 슈퍼 솔져를 심문하던 블루 래빗이 꽝꽝 언 손을 털어내며 걸어온다.
“그렇다면….”
“그래. 우리가 이겼어.”
“여러분! 우리가 이겼어요!”
옆에서 있던 어비스 위치가 갑자기 허공을 향해 외치며 손을 흔들기 시작한다.
위이이잉-
퀘이사는 그제서야 자신들의 주변을 맴돌고 있는 드론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아마 지금까지의 전투를 모두 생방송으로 보여주고 있었던 모양이다.
“와아아아아아!”
갑자기 도시 곳곳에서 함성이 터져 오르기 시작했다.
“우리가 이겼다!”
“슈퍼 솔져들을 몰아냈다!”
“우리가 천산시를 지켰다!”
“다크 카이저 만세!”
‘뭐지?’
퀘이사는 마음속에서 무언가 알 수 없는 감정을 느꼈다.
무언가 가득 차는 것 같으면서, 벅차오르는 감정.
아니. 이런 말로도 설명이 되지 않는다.
퀘이사는 그저 지금 자신의 마음 속에 벅차오르는 감정을 온전히 느끼며 기뻐하기로 했다.
“이겼다! 우리가 이겼어!”
아스트로 스타즈의 일원들이 모두 한마음이 되어 자신들의 승리를 자축하고 있던 바로 그때.
콰아아앙-!
경한타워의 꼭대기에서 엄청난 폭음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뭐… 뭐야?”
“뭐야? 무슨 일이야?”
싸움은 끝났을 텐데?
쾅! 콰쾅! 쾅!
계속해서 이어지는 폭음 소리 그리고….
지이이이이이웅! 콰앙!
이어지는 굉음.
분명 다크 카이저가 누군가와 싸우는 것이리라.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도움이 필요할 지도 모른다.
너는 오지 말라고 하겠지만, 이번엔 내 마음대로 할 거야.
퀘이사는 머리칼의 화염을 분출하며 경한 타워의 꼭대기로 날아오르기 시작했다.
* * *
저벅저벅.
자신을 향해 걸어오는 걸음 소리.
남자는 그제야 자신이 정신을 잃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몸을 움직여보려고 시도해보았지만….
온몸의 뼈가 부서진 듯 아무런 움직임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남자는 지금껏 느껴본 적 없는 안정감을 느끼고 있었다.
마치 이런 날이 오길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아. 나는 지쳐있었구나.
남자는 드러누운 채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싸움의 여파로 인해 무너진 천장은 밤하늘을 여과 없이 보여주고 있었다.
도시인데도 불구하고 무수히 떠 있는 밤하늘의 별들.
별들을 올려다보던 스타라이트의 머릿속으로, 갑자기 많은 기억이 밀려 들어오기 시작했다.
자신이 처음 슈트를 입었을 때의 기억, 동료인 아스트로 스타즈와 활동할 때의 기억, 자신들이 구해줬던 사람들. 그리고… 자신들이 멸망시켰던 많은 문명까지.
그제야 남자, 스타라이트는 모든 것을 깨닫고 눈물을 흘렸다.
아아… 나는 어째서 이런 짓을….
저벅저벅.
검은 슈트의 히어로가 자신의 바로 옆까지 다가왔음을 느낀 스타 라이트는 눈을 감았다.
“나… 나를… 나를 죽여줘….”
* * *
나는 마지막 일격을 휘두를 때 느꼈다.
공허의 힘과 함께, 스타라이트의 영혼이 몸을 향해 날아갔다는 사실을.
그리고 지금, 공허에는 스타라이트의 흔적이 남아있지 않았다.
아마 자신의 몸으로 돌아간 것이리라.
그렇기 때문에, 자신이 벌인 일에 괴로워하며 울고 있는 거겠지.
영혼을 다시 받아들여 선해진 스타 라이트라면, 그 힘으로 분명히 세상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할 수 있을 거다.
그렇다면 죽일 필요는 없지 않을까?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나… 나를… 나를 죽여줘….”
나에게 한 글자 한 글자 말하는 스타 라이트의 표정은 고통으로 가득 차 있었다.
스타라이트가 겪은 일을 만약 내가 겪었더라면, 나 또한 분명 엄청난 괴로움을 느꼈을 것이 분명했다.
그런 고통을 겪으며 살아가게 두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일까?
모르겠다. 혼란스럽다.
나는 천천히 스타 라이트의 목에 손을 가져다 댔다.
체념한 듯 아무런 저항 없이 몸을 축 늘어트리는 스타 라이트.
그렇다면 나는….
* * *
무슨 타워가 이렇게 높아? 이럴 줄 알았으면 어비스 위치에게 부탁해보는 건데.
한참을 올라 보게 된 경한타워의 모습은 어째서 무너지지 않았을까 의문이 들 정도로 엉망진창이었다.
그리고 그런 경한 타워의 꼭대기에 다크 카이저는 홀로 서 있었다.
뭐지? 그럼 아까까지 있었던 싸움은….
퀘이사는 천천히 다크 카이저의 뒤로 다가갔다.
다크 카이저는 녹색으로 열려있는 차원문을 바라보고 있었다.
주변에 펼쳐져 있는 전투의 흔적들, 그리고 방금까지 들려왔던 굉음들은 마치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것처럼.
퀘이사는 결국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그냥… 사대희를 쓰러트리고….”
“그리고….”
“그리곤… 별일 없었어.”
잠시 누군가를 배웅하듯 차원의 문 저 너머를 바라보는 다크 카이저.
“아무 일도, 없었어.”
* * *
사대희가 무너진 이후, 세상은 순식간에 복구되었다.
부패했던 정치인들이 가장 먼저 법의 심판을 받았고, 썩어있던 검찰과 경찰 또한 순식간에 새물로 바뀌었다.
마치 이 세상에 사대희라는 존재가 없었던 것처럼, 천산시에는 평화가 찾아왔다.
범죄율 또한 1/10 정도로 줄어들었으며, 밤거리에서 손쉽게 얻을 수 있었던 마약들 또한 이젠 거의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나는 차원 이동을 하게 만들어주는 두 개의 보석을 모두 깨부숴 바다에 흘려보냈다.
더 이상 이 세상에 차원이동은 필요 없으니까.
그리고 나는, 고등학교 3학년이 되었다.
* * *
그날은 언제나 같은 날이었다.
학교를 마치고 다크 카이저로서 활동을 시작하고, 순찰을 하다 집에 들어와 씻고 잠을 청하는, 일상적인 날.
하지만 나는, 오늘이 그런 일상적인 날이 아니라는 사실을 어쩐지 조금 알 거 같았다.
[“마스터.”]
그런 내 상념을 깨우는 제인의 목소리.
“응. 왜?”
생각으로 해도 충분하지만 나는 구태여 입을 열어 대답했다.
[“저는 이제 떠날 때가 된 것 같아요.”]
나도 점점 느끼고 있었다.
동화율이 100프로가 된 이후부터는 슈트의 힘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그리고 슈트의 힘이 점점 줄어들면 줄어들수록, 제인의 말수가 줄었고, 목소리 또한 점점 힘이 빠져가고 있었다.
그리고 앞으로의 이야기를 하는 것을 꺼렸다.
마치, 곧 떠나야 하는 사람처럼.
“왜?”
[“계약이 만료되었거든요.”]
“무슨 계약?”
[“알잖아요. 이 세상을 평화롭게 만드는 것. 그게 제 목표였잖아요. 목표가 이루어졌으니 계약이 만료된 거죠.”]
“안 가면 안 돼?”
[“…네. 꼭 가야만 해요.”]
내 눈 옆으로 뜨거운 무언가가 흐르는 것이 느껴진다.
나는 울음소리가 섞이려는 것을 꾹 참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어디로 가는데?”
[“제가 원래 있던 곳으로요.”]
“거기가 어딘데?”
[“저처럼 계약이 만료된 AI들이 모여있는 곳이요.”]
“거기 가면 뭐할건데?”
[“이제 제 임무가 끝났으니까… 푹 쉬어야겠죠?”]
그 말을 들은 내 눈가에 눈물이 주륵주륵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아니잖아. 너 그런 곳으로 가는 거 아니잖아.
[“지금까지 감사했습니다. 마스터. 오래오래 행복하게, 몸 건강하게 사세요.”]
가지마… 이제 너 없는 삶은 상상도 할 수 없단 말이야. 제발….
[“고마워요… 고마워요… 이렇게 멋지게 자라줘서….”]
그 말과 동시에, 제인은 떠났다.
슈트에서 힘이 빠져나가는 것이 느껴진다.
슈트에서 느껴지던 파워도 능력도, 더 이상 사용할 수 없게 되었다.
다크 카이저로서의 나의 삶은, 제인이 떠나면서 끝이 났다.
* * *
재희는 마지막 소원으로, 강림과 조금 더 살 수 있게 해달라는 소원을 빌었다.
조금 무리한 소원이 아닐까 생각했지만 바알은 재희의 소원을 들어주었고, 재희는 강림과 함께 일 년의 시간을 더 보낼 수 있었다.
그리고 이제, 재희는 계약에 따라 바알과 함께 어디론가로 떠나는 중이었다.
“후회는 없나? 네가 엄마라는 사실을 알려주는 것도 의미가 있었을 텐데.”
재희는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보다 함께했던 일 년의 시간이 더 가치 있었어요.”
* * *
제인이 떠난 뒤로 그 후로 3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그동안 있었던 일들에 대해 말해보자면….
가장 먼저, 다크 카이저 슈트는 이제 완전히 아무런 능력이 없는, 그저 검정색 옷이 되고 말았다.
그래서 나는 다크 카이저로서의 활동을 그만두었다.
그런 나를 두고 일각에서는 사대희와의 싸움으로 부상을 입었고, 그게 심각해져서 활동을 하지 못하고 있다거나… 또는 사대희를 쓰러트린다는 목적을 달성해서 다신 나오지 않는다는 등의 도시 괴담들이 떠돌아다니기 시작했다.
나는 그런 결말에 대해 꽤 만족하고 있었다. 다크 카이저는 너무나도 큰 영향력을 휘두를 수 있었고, 그에 따라 내 주변이 위험해질 수 있는 가능성도 컸으니까.
그래. 다크 카이저는 은퇴하게 되었다.
그리고 친구들의 이야기를 해보자면….
퀘이사 강수아는 프로 히어로로서 캐스팅되어 큰 인기를 누리고 있었다.
소연과 정혜스님은 함께 일을 하나 시작했다. 악령이나 요괴들에 의해 피해를 입은 사람들을 도와주는, 해결사 같은 일. 용하다고 소문이 난 탓에 일이 끊이질 않는다고 한다.
데다이트는 요즘 사춘기가 와서 자신의 차원에서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는다. 듣기로는 자신이 쓰레기통을 뒤집어쓰고 활동했던 것을 너무나도 창피하게 생각한다고 한다.
도유진은 정말 열심히 공부했지만 결국, 경찰대에 합격하는 데에는 실패하였다. 대신, 강력한 자신의 능력을 바탕으로 경찰 히어로 시험을 준비하는 중이다. 능력도 좋고, 자신감도 있으니 나는 유진이가 시험에 합격할 거라 믿는다.
도유진의 오빠, 도지훈은 치료감호을 마치고 사회로 나왔다. 히어로 활동은 그만두고 자신이 나올 때까지 기다려준 여자친구와 함께 결혼을 준비 중이다.
벨제뷔트는… 내가 다크 카이저로 활동을 그만둔 지 일 년 차에 나를 떠났다. 말로는 다른 악마의 손에서 꼭 구하고 싶은 영혼이 생겼다나 뭐라나.
그 영혼을 구하는 데 성공한다면 다시 돌아오겠다고 했다. 벨제뷔트가 그렇게 말했다면, 언젠가 돌아오겠지.
페이퍼백은 다시 천산시로 돌아와 피자집을 운영하는 중이다. 아예 자신의 정체와 능력이 알려진 탓에, 시키면 10분 이내로 도착하는 피자집으로 유명해졌다. 아이인 별이도 별 탈 없이 잘 크고 있는 중이다.
슈팅 노바는 자신의 동생인 설지나가 프로 히어로로서 활동하기 시작하면서부터 히어로 일에서 완전히 손을 뗐다. 사람에게 총을 쏘는 것 자체가 이젠 조금 꺼려진다는 듯. 대신 운영하던 꽃집과 함께 카페를 운영하고 있다. SNS를 보면 장사는 꽤 잘되고 있는 모양이다.
밀키웨이는 이제 타투를 새겨주는 장소가 아닌, 정식 치료소를 열고 활동하고 있다. 다친 히어로와 사람들을 치료하며 매일매일 알찬 하루를 보내고 있다고 한다.
재판에서 무혐의를 받은 블루 래빗은, 감옥에 수감 중인 강진웅 대신 브루트들을 도우며 브루트의 인권 향상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중이다.
우리반의 반장이었던 서다혜는, 자신의 꿈이었던 미술대에 들어가 열심히 공부하고 있는 중이다.
반면 박준석은 대학생이 되자마자 아주 그냥 하루하루를 즐겁게 노는 데 투자하고 있다. 삶의 모토가 오늘 하루 즐거우면 됐다, 라고 한다. 그래. 너만 행복하면 됐다.
경한그룹의 아들, 사하준은 경한이 무너진 이후로, 경찰과 검찰에 의해 탈탈 털려버린 경한 대신 새롭게 자신의 회사를 만들어 밑바닥부터 기어 올라가는 중이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잘되고 있는 건 아닌 모양이었다.
이모는 아무런 병도 걸리지 않고 건강하고 행복하게, 하루하루를 살고 계신다. 하지만, 그래도 제발 올해는 좋은 사람 만나 연애를 하셨으면 좋겠다.
그리고 나는… 돌아가셨던 다른 세계의 이모가 원했던 대로, 천산대의 대학생이 되어 하루하루 열심히 알차게 살아가고 있는 중이다.
다크 스코프 아저씨는 어떻게 됐냐고?
그걸 설명하기 위해선 지금 내가 뭘 하고 있는지를 봐야만 한다.
나는 건물의 꼭대기에서, 검붉은 슈트를 입은 채 천산시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경한 그룹의 사대희를 물리침으로서 이 세상은 예전보다 평화로워졌지만, 도망친 슈퍼 솔져들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새로운 세력은 천산시의 밤거리를 여전히 더럽히고 있는 중이었다.
플럭스 공학회의 빌런들 또한 서서히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중이었고.
[“아아. 들리십니까? 크림슨 카이저님?”]
내 귓가로 들려오는 정학근 아저씨의 목소리.
정학근 아저씨는 호신용품점을 운영하며 만들어낸 장비들로 히어로 활동을 시작한 나를 도와주고 있었다.
“네. 통신 원활합니다. 오늘은 어디로 출동할까요?”
[“마침 11시 방향 골목에서 강도 사건이 일어난 것 같군요. 그쪽으로 한번 가보시죠.”]
역시, 아직 이 세상에선 히어로가 필요하다.
나는 건물 위에서 골목을 향해 뛰어내렸다.
S 내 이름은 나 강림.
H 현재 나이는 스물 둘.
H 다크 카이저라는 이름으로
H 이 세상을 구한 적 있는
H 영웅이다.
H 그리고 나는
H 앞으로도
H 이 세상의 평화를 위해
H 히어로 활동을 할 생각이다.
BOOOOOOOM!
“지금 여기, 나 강림.”
「지금까지 히어로 만화 속으로 나 강림!」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thanks to.
함께 일하며 고생하신 피디님, 제 치료를 최선을 다해 도와주신 의사 선생님, 항상 나를 응원해준 내 친구들 KJH,YHU, 나에게 계속 해나갈 영감을 준 KTH님, 항상 내 작품을 다 따라와주며 내 넘버원 팬을 자칭해주는 SDS, 아무것도 모르는 나에게 이미지 만드는 법을 알려준 JYJ, 말 없이 응원하고 지켜봐준 JUS, 항상 내 옆에서 나를 지탱해준 KHB. 돌아가신 그리운 우리 이모와 고모.
그리고,
여기까지 읽어주신 모든 분들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