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8화 〉 최강의 용사(13).
* * *
애쉬는 싸늘하게 식은 표정으로 군중을 훑어봤다.
악마보다 더 살벌한 눈빛이 사람들을 훑고 지나갔다.
“윽, 으으…!”
“살려줘…!”
“엄마아…!”
애쉬의 시선에 닿은 사람들은 비명을 꾹 억눌러 담으며 주저앉았다.
본능이 입을 틀어 막아버렸다.
실금을 지리는 사람도 있었다.
“…마론 할아버지…!”
군중은 건물에 처박힌 마론 쪽을 흘겼다.
마론은 미동도 없이 잔재 사이에 파묻혀 있었다.
애쉬의 발길질에 걷어차였다.
절명했을 것이다.
‘시발, 대체 어떻게 해야 하지?’
처음에 애쉬가 등장했을 때는 구원자라도 나타난 것 같았다.
애쉬를 보는 순간 느낀 안도감은 아마 평생 가도 잊지 못할 듯했다.
섹스와는 비교가 안 될 만큼 짜릿했다.
그런데 그 이후가 문제였다.
전부 다 죽이려는 애쉬를 어떻게 해야 할까.
머릿속이 뒤죽박죽 엉망이었다.
흥분한 가슴을 식히고 냉정하게 바라봤다.
스킬의 성장에만 초점을 맞추고 ‘소매치기’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당하는 상대 입장에선 자신의 사유재산을 빼앗기는 것인데 말이다.
안일하게 행동한 점도 없지 않아 있었다.
전(?) 유테론 경비대장을 만나 즉결심판 당하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지 않았다.
‘누가 그렇게까지 계획을 짜.’
시원통쾌하게 일단 저지르고 다니는 애쉬에게 감화라도 된 것일까.
대충 ‘소매치기’ 실습하다가 걸리면 인맥을 동원해 풀려나야지.
거기까지만 계산하고 움직였다.
애쉬의 힘은 내 것이 아닌데.
내 손으로 휘두를 수 없는 힘을 과시하고 다닌 꼴이었다.
그 멍청하고 어리석은 짓거리에 애꿎은 사람들이 휩쓸렸다.
과연 이들은 애쉬의 손에 죽어 마땅한 사람들일까.
아니다.
이 상황에서 문제는 나다.
“잠깐만…!”
애쉬의 손을 붙잡았다.
성검을 휘두를 수 없도록 막아 세웠다.
애쉬가 돌아본다.
무감정한 표정이 나를 주시하고 있다.
“왜?”
“…하지 마.”
“왜? 네 손목이 날아갈 뻔 했어. 정당방위야.”
“내가, 내가 먼저 잘못한 거야. 이 사람들은 죄가 없어.”
도끼를 휘둘렀던 마론은 이미 죽었다.
내가 저지른 짓 때문에 어처구니없게 눈을 감았다.
그것으로 됐다.
지금도 충분히 죄책감을 느끼고 있다.
이 이상의 살상을 방치할 이유가 없었다.
‘좆같지. 나라고 괜찮은 게 아니야.’
마론에게 제압당하고 손목이 날아갈 뻔 했다.
내가 잘못해서 벌어진 일이지만 너무 과한 대응 아닌가, 당장 쓰러진 상황에서도 그런 생각이 들었었다.
군중은 나와 마론을 방관하듯 지켜봤다.
어차피 나를 도와줄 사람은 없었겠지만, 누군가의 구경거리가 된다는 것은 썩 기분 좋은 일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대량살상을 정당화할 순 없다.
이 사람들은 쓰레기 짓을 일삼던 악당이 아니다.
유테론에서 평범하게 살아가는 평민들이다.
주인공 용사 루크가 당하는 수모에 비하면 지극히 가볍다.
루크는 잘못하지도 않았는데 대중들에게 지탄을 받으니까.
애쉬가 나를 빤히 바라봤다.
내 눈빛에 담긴 감정을 읽고 스스로 판단하는 것 같았다.
“후우….”
생각 정리를 마친 애쉬는 성검을 내렸다.
눈을 질끈 감고 거칠게 한숨을 내쉬었다.
주변 공간을 짓누르던 살기가 순식간에 옅어졌다.
“흐윽! 하악…!”
“윽, 으윽….”
사람들이 격하게 공기를 들이마셨다.
“손목 보여줘.”
“…여기.”
애쉬가 내 손목을 붙잡고 살펴봤다.
티끌만한 생채기조차 보이지 않았다.
은빛 마력이 일렁이고 있었다.
“이런 일이 일어날 것 같아서 각인에 새겨뒀지.”
“…고마워. 진짜로.”
진심으로 감사를 표현했다.
만약에 각인이 없었다면, 생각만으로도 끔찍했다.
‘애쉬의 이름값이 있으니까. 사제를 만나서 다시 붙였겠지만…’
손목이 날아가는 짜릿한 경험을 체험했을 것이다.
돈 받고도 안 할 것을 공짜로 말이다.
애쉬는 나를 바라본다.
하늘빛 눈동자에 나만을 담았다.
“…다 꺼져.”
애쉬가 주위 사람들에게 말했다.
마나를 담고 있는 목소리에, 사람들은 기겁하며 물러났다.
소우타를 제외한 모두가 도망쳤다.
“소우타, 유테론 저택으로 가서 사람을 데려와.”
“네, 용사님.”
애쉬는 마론의 장례를 유테론 남작에게 맡기려고 했다.
“강아진.”
“…….”
나는 주변을 둘러보곤 대답했다.
“…왜.”
“다음부터는 위험한 짓 절대 하지 마. 알았어? 대답해.”
“알겠어….”
“뽀뽀.”
벽이 무너진 잔재 속에 시체가 하나 있다.
방금 막 애쉬가 죽여 버린 노인의 시체다.
그런 섬뜩한 공간에서 이래도 되는 건가 싶다.
애쉬는 개의치 않았다.
당당하게 요구하며 입술을 내밀었다.
그 모습을 보니 성욕이 들끓었다.
방금 전에 겪은 격한 일 때문에 더 뜨거워졌다.
쪼옥.
도덕적으로는 이 상황이 비정상이라는 것을 안다.
하지만 내 몸은 애쉬를 만족시키기 위해 움직이고 있었다.
애쉬는 고분고분한 내 태도가 마음에 드는 듯 흡족하게 웃으며 속삭였다.
“…저택으로 돌아가면, 혼자 위험하게 돌아다닌 벌 줄 거야.”
“…….”
“절대 봐주지 않아. 각오하고 있어.”
“…응.”
소우타가 의외로 빨리 돌아왔다.
유테론 남작의 사병들을 이끌고 뛰어왔다.
“용사님! 데리고 왔어요!”
“저쪽이야. 가서 확인해.”
애쉬가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사병들은 참상을 확인하고 눈살을 찌푸렸다.
“이게….”
“흠, 어떻게 처리하면 되겠습니까.”
“남작님께 보고부터 드린다. 한 놈, 갔다 와.”
병사들 중 하나가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사병 중 선임병사가 애쉬에게 다가왔다.
“어찌 된 일인지 여쭈어 봐도 되겠습니까, 용사님?”
“…강아지. 여기서 있었던 일, 다 말해.”
나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유테론 남작 저택에서 나와 이곳에 이르기까지.
되도 않은 기행을 간략하게 정리해서 전달했다.
“…….”
“눈 곱게 떠라. 너도 죽여 버리기 전에.”
“…실례 했습니다.”
선임병사는 말을 잇지 못했다.
나를 병신 보듯 하던 눈빛은 애쉬가 대신 정리해주었다.
“이전 경비대장…. 유테론이 엄청 넓은 곳이라서 말이죠. 얼굴도 몰랐습니다.”
선임병사가 어색하게 말을 이었다.
거짓말이다.
남작의 저택에서 머무는 사병이라 해도 전(?) 경비대장을 모를 리가 없다.
‘…시체가 심각하게 훼손되었다는 말이겠지.’
직접 보지는 않았다.
“일단 용사님은 저택으로 돌아가시죠. 뒷일은 저희가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애쉬는 남은 일들을 간단하게 떠넘겼다.
사람 하나 죽는 것쯤이야.
애쉬에겐 아무렇지 않은 일이었다.
‘…악마에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는데….’
원작 후반부에는 사람 목숨이 파리보다 못한 상황에 이른다.
애쉬는 그런 지옥도를 경험하고 회귀했다.
안 그래도 무감각한 애쉬의 성격이 더욱 냉혈해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우리는 유테론 저택으로 복귀했다.
괜히 ‘소매치기’ 실습을 하고 일만 잔뜩 키운 채 돌아왔다.
성과가 있었느냐 하면, 전혀 없었다고 말해주고 싶다.
내 ‘소매치기’ 랭크는 여전히 F였다.
“용사님.”
“…….”
유테론 남작이 별채 앞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자신의 저택 내부이기는 해도, 직접 와서 서있을 줄이야.
작정하고 찾아왔다는 게 느껴졌다.
유테론 남작은 고상하게 허리 숙이고 애쉬를 반겼다.
“식사를 준비해두었습니다. 혹시 함께해주실 수 있으십니까?”
애쉬에게 대화를 좀 하고 싶다는 말을 에둘러 표현했다.
애쉬가 인상을 팍 찡그리며 나를 흘겨봤다.
내 잘못을 추궁하는 것 같아 몸이 절로 움츠려들었다.
나도 내 죄를 알기에, 얌전히 쭈그리고 있었다.
“좋아. 강아지랑 소우타는 별채에서 씻고, 내가 올 때까지 쉬고 있어.”
애쉬는 나와 소우타를 데려가지 않았다.
별채에 처박혀있으라고 명령했다.
유테론 남작도 우리를 부르지 않았다.
애쉬 말고는 가치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 듯했다.
“가시지요, 용사님.”
유테론 남작과 그의 사용인들이 우르르 몰려갔다.
애쉬가 유테론을 따라 저택으로 향했다.
애쉬의 뒷모습에서 화가 잔뜩 난 얼굴이 보이는 것 같았다.
소우타가 내 곁으로 다가왔다.
“형. 다행이에요.”
“…다행이긴 하지.”
“형이 소매치기 실패하고 잡혔을 때, 저 진짜 큰일 나는 줄 알았어요. 그 노인이 한 실력 할 줄은 꿈에도 몰랐거든요.”
“나도 몰랐다. 시발.”
한숨을 푹 내쉬었다.
꽉 막혀 있던 속이 풀리는 기분이다.
“그래도 다행이에요. 형 손목 날아갔으면, 유테론 자체가 터졌을 텐데. 후우….”
“…그렇게도 생각할 수 있나?”
나 때문에 노인이 죽었다.
죄책감이 오래 갈 것 같았다.
하지만 현장을 벗어나니, 나를 짓누르고 있던 감정이 씻은 듯 날아갔다.
‘나 사이코패스인가?’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극적인 합리화가 이루어졌다.
내 정신건강을 위해 어쩔 수 없었으리라.
나는 죄가 없다.
즉결심판이고 나발이고, 조금만 기다려줬으면 내 순수를 증명하고 서로 좋게 헤어질 수 있었다.
성급하게 내 손목을 날리려 한 노인이 잘못한 것이다.
고개를 주억였다.
발걸음이 가벼워졌다.
‘그나저나…. 어떡하지…?’
애쉬가 유테론에게 불려갔다.
식사시간 동안 이런저런 대화를 나눌 것이다.
‘깨끗하게 씻고 도게자 박고 있어야겠다.’
깽판치지 않고 얌전히 따른 것은 그 협상에 응할 마음이 있다는 의미다.
무엇이 됐든 용사로서 해야 할 일이 생기겠지.
귀찮은 일일 확률이 99.99퍼센트.
애쉬의 머릿속엔 온통 나에 대한 체벌로 가득할 것이다.
지금까지 봐온 애쉬는 그런 여자였다.
나는 몸을 깨끗하게 씻고 방에서 대기했다.
옷을 입고 있는 게 나을까.
아니면 벗고 있는 게 나을까.
한심한 고민을 하며 애쉬가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왔다.
콰앙.
“강아진.”
“예! 주인님!”
애쉬는 내 방문을 세게 열어젖히며 들어왔다.
나는 잽싸게 애쉬의 곁으로 다가가 뭉친 어깨를 주물러주었다.
“…진짜 시발. 어이가 없네.”
애쉬가 실소를 흘리며 내게 어깨를 맡겼다.
뭔가 기분이 좋아보였다.
이대로라면 부드럽게 넘어갈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할 때쯤.
“강아진.”
“예스, 마스터.”
“옷 안 벗고 뭐해?”
“…….”
내가 옷을 벗는 동안, 애쉬도 옷을 벗었다.
순식간에 나신을 드러낸 애쉬가 의자에 앉아 다리를 벌렸다.
“천천히 기어와.”
“…….”
“옳지.”
“…….”
“손쓰지 말고. 빨아.”
할짝. 할짝.
시키는 대로 했다.
반항은 생각도 하지 않았다.
애쉬의 수북한 털보지에 설(?) 수색대를 파견해, 대소음순 고지를 점령하고, C포인트 클리토리스를 빨았다.
“흐음…. 아진아….”
“예, 주인님.”
애쉬가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잠깐 멈추고 애쉬를 올려다 바라봤다.
“시발, 유테론 그 새끼가 뭘 요구했는지 알아?”
“…….”
“다른 가문에 팔려간 딸내미 기 좀 세워주고 오라네.”
“…그래서…? 수락 했어…?”
애쉬는 흰자까지 보이며 나를 내려다봤다.
나는 더 이상의 대답을 바라지 않았다.
애쉬의 시선을 피하며 얌전히 고개를 숙였다.
애쉬의 보지에 얼굴을 파묻었다.
츄릅, 츄릅.
할짝.
달다, 달아.
“딜리셔스.”
“…뭐?”
“…아무것도 아니에요, 주인님….”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