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3화 〉 악마들의 밤(6).
* * *
악마가 소환되기를 기다리라니.
“말도 안 됩니다! 어떻게 악마가 소환되기를 기다립니까. 그러고도 당신이…!”
머릿속에서 인지부조화가 일어났다.
눈앞에 보이는 것은 분명 성검이고, 용사인데.
하는 행동은 왜 용사답지 않은 것이지?
당장 방해해도 모자랄 판에, 악마 소환을 기다리라는 게….
용사로서 해야 할 말이 맞는 걸까?
지부장은 차마 애쉬를 매도하지 못했다.
자신의 판단보다 성검의 유무를 믿은 것이다.
‘성검을 지니고 있으니, 악을 멸하기 위해 선택된 용사가 맞다. 하지만….’
용사 애쉬가 품고 있는 뜻을 이해할 수 없었다.
지부장은 어떻게든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악마가 소환되기를 기다리라는 말은 즉, 악마를 마주하고 싶다는 것과 같다.
도대체 왜?
보통 사람의 사고방식이라면, 되도록 악마를 피하려고 노력해야 하는 것이 맞다.
악마를 보는 순간부터 피해가 누적되니까.
그러나 이 용사는 보통의 용사가 아니다.
‘일단 싸가지가 없어. 개념도 없고 신앙도 없고.’
용사만 아니었다면 길거리를 돌아다니는 거지새끼만도 못한 취급을 받았을 것이다.
아니면 외모 하나만큼은 뛰어나니 도시에서 고급 창관에 몸을 맡기고 있었을 지도.
가치관만 보통이 아닌 게 아니다.
무력의 수준도 보통 용사를 훨씬 뛰어넘었다.
벨리알을 소멸시켰다고 전해지는 용사니까.
‘…설마?!’
이제까지 지부장은 생각했다.
용사 애쉬가 혼자서 벨리알을 소멸시켰을 리가 없다고.
동료나 다른 용사들이 도움을 주었을 거라고.
이 재수 없는 용사가 업적을 가로치기 했다.
그리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만약에 그게 아니라면?
용사 애쉬가 솔로 플레이로 벨리알을 소멸시켰다면?
‘지금 보이는 기행이 설명 된다!’
악마를 소멸시키기 위해서는 악마를 만나야 할 필요성이 있다.
악마를 죽이고자 악마를 기다린다.
지부장의 눈이 크게 뜨였다.
‘자신 있다는 말인가! 어떤 악마가 소환되어도, 잡을 수 있다는 확신이…. 이 여자에게는 있다는 말인가!’
오만하다.
용사로서 가져선 안 될 자신감이다.
혹시라도 자신이 실패했을 때, 덧없이 사라지게 될 생명의 무게를 생각하면.
절대 이렇게 하지 못한다.
자신이 있다.
용사 애쉬에게는 지지 않을 확신이 있는 것이다.
자신의 실력에 대한 믿음.
그것이 너무도 확실하게 빛나고 있었다.
“지부장님…!”
성기사단장과 사제가 다가왔다.
어떻게 해보라는 듯 간절한 목소리로 숨을 끓였다.
불안감 가득한 말투에, 지부장이 책임감을 느꼈다.
‘이 정도의 압박감이다.’
훨씬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있으면서.
용사 애쉬는 어떻게 담담할 수 있는 걸까.
지부장은 자신보다 한참 어린 여자애가 든든하게 느껴졌다.
가만히 서있는 그 뒷모습을 보며, 안정감을 느꼈다.
“잠깐, 대기해라….”
“예?”
지부장이 명령했다.
성기사단과 사제들을 다독였다.
불안하게 떨리는 몸을 애써 붙잡으며, 용사 애쉬가 나설 때까지 기다렸다.
인원들은 지부장의 명령을 따랐다.
쿠구구구궁.
마법진이 다시 한 번 요동친다.
흑색 구름이 하늘을 어둡게 만들었다.
결계 내외에 시간 차이가 생긴 것 같았다.
애쉬는 진각을 구르며, 악마 소환을 기다렸다.
그 파동이 흑마술사들의 골을 뒤흔들었다.
“시발, 언제쯤 되는 건데!”
흑마술사들을 재촉했다.
무려 용사가, 악마는 언제 나오는 거냐며 소리쳤다.
동물원에 놀러온 아이가 사자를 찾는 것도 아니고.
용사가 악마를 찾고 있었다.
“…….”
기괴한 광경.
어딘가 많이 뒤틀렸다.
교단 인원들과 흑마술사들, 모두가 느꼈다.
하지만 물러설 순 없었다.
흑마술사들은 이곳에서 용사 애쉬와 프레소 백작령을 날려버리기로 결정했다.
꽤 긴 시간 준비해오기도 했고, 물러서기엔 많은 것이 진행된 상태였다.
‘이해할 수는 없다만.’
용사가 악마 소환을 기다리는 이유.
누구도 이해하지 못했다.
용사 본인을 제외하고는 납득할 수 없는 상황이 이어졌다.
쿠구구구구궁.
악마 소환이 진행된다.
마법진이 살벌하게 찢어지고, 새빨간 팔 하나가 불쑥 튀어나왔다.
기괴하게 뒤틀린 악마의 팔은 그 아래에 마련된 제단 하나를 찌그러뜨렸다.
그 위에 놓여 있던 청년 하나가 터져나갔다.
“크하하하하하! 이 세상에 파멸을!”
프레소 백작의 차남이었다.
프레소 백작은 자신의 아들들과 며느리들을 제물로 삼았다.
소환을 위한 제물이 아니라 악마들의 만찬으로서 그들을 바쳤다.
순수하게 자의로 이루어지는 공양.
그것은 흑마술사들에게 귀감으로 다가왔다.
이 자가 진실로 인류멸망을 바라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어머니, 아버지를 죽도록 방치한 이 세상의 멸망을 바란다! 용사여, 막을 수 있다면 막아보아라!”
악마를 마주하며 흑마술사들 사이에서 광기가 터졌다.
그 선명한 기세에 몸을 맡긴 프레소가 광소를 흘리며 소리쳤다.
애쉬는 시큰둥하게 쳐다보며 차례를 기다렸다.
이제 겨우 팔이 소환되었을 뿐이다.
쿠구구구궁.
마법진이 크게 들썩였다.
마기가 흡수되며, 그 통로 역할을 하는 마법진이 요동쳤다.
악마가 고개를 억지로 내밀었다.
거대한 팔로 짐작했건만, 보통 사람 크기의 악마가 아니었다.
인간 정도는 한 입에 삼킬 만큼 거대했다.
─ 흐으으으음, 상쾌하다! 이곳이 중간계로구나!
피에 젖은 듯 새빨간 대가리.
얼굴 전체를 피로 칠했다고 해도 될 듯했다.
이마에는 검은색 뿔 한 쌍이 돋아 있다.
애쉬는 그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푸르푸르….”
34위계에 속하는 푸르푸르가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
흑마술사들 중에 각혈하며 쓰러지는 이들도 있었지만, 악마소환은 아랑곳하지 않고 진행됐다.
─ 그래, 마기가 계속 흘러들어오는구나. 쏟아 부어라, 얼마 남지 않았다! 내가 너희의 바람을 들어주겠다. 이곳을 다 쓸어주겠다는 말이다!
작은 링에 몸을 통과시키듯.
푸르푸르는 마법진에 몸을 구겨 넣었다.
우락부락한 근육질의 육신을 밀어 넣으며, 중간계로 소환되려 했다.
벨리알 때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순수 악마소환은 편법에 가까운 제물소환보다 훨씬 어려운 난이도를 자랑했다.
─ 크하하하하하하하!
하지만 성공했다.
방해하는 자들이 없으니, 소환이 순조롭게 이루어졌다.
“끄아아아아!”
“물러나, 도망쳐!”
“밟힌다!”
푸르푸르는 전신이 새빨간 악마였다.
불에 달구어진 듯 붉은 몸뚱어리는 누군가에겐 정열적으로 보일 것이고 누군가에겐 잔혹한 살인귀로 비추어질 것이다.
그 크기는 저택 하나를 가릴 만큼 컸다.
성검이 이쑤시개로 느껴질 정도였다.
“으, 으으…!”
“지부장님! 악마, 악마입니다!”
“태양신이시여, 제게 용기를 주십시오…. 이 지옥에서 물러서지 않고 맞설 수 있는 용기를….”
교단 측 성직자들이 몸을 바들바들 떨었다.
악마를 눈앞에 마주하는 바람에, 영혼이 공포로 물들었다.
애쉬는 그런 그들을 흘기며 혀를 찼다.
오지마라고 했더니, 지들끼리 와서 염병을 떨고 있었다.
지부장은 부하들을 다독이며 애쉬를 향해 외쳤다.
“용사님! 이제 어쩌실 생각이십니까!”
“…어쩌긴 어째. 쟤 죽여야지.”
애쉬가 성검으로 푸르푸르를 겨누었다.
푸르푸르가 조소를 터트렸다.
─ 크흐흐흐흐, 혹시나 해서 살펴봤다. 내가 소환되었는데도,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아서. 정말로 눈앞의 놈들이 전부인가 싶어서. 그런데 이게 무엇이냐. 백도 안 되는 인원으로 나를 막으러 온 것인가? 용기가 가상하다!
마계침식을 통해 강림한 것이 아니라서, 푸르푸르도 전력을 낼 수 없다.
그럼에도 악마의 현신은 하등한 인간의 몸을 터트리기에 충분했다.
“대악마, 푸르푸르여! 그대를 위한 제물을 준비했다!”
프레소가 소리쳤다.
그 건장한 프레소도, 푸르푸르 곁에선 갓난아기만도 못했다.
푸르푸르는 아래에서 무어라 떠드는 프레소를 흘기고, 그를 향해 주먹을 뻗었다.
콰앙.
제단과 함께 프레소가 찌그러졌다.
곤죽이 되었다.
흑마술사들이 침을 삼켰다.
그들은 푸르푸르 가까이에 다가갈 생각을 못했다.
기회가 된다면, 도망칠 궁리만 했다.
악마를 소환한 것으로 그들의 역할은 끝났다.
악마가 깽판을 치면, 그것으로 만족이었다.
─ 제물? 제물이라 했나? 크하하하하하. 맛도 없는 것을 데리고 와, 무슨 제물을 논하느냐. 내 앞에서 무사하고자 했다면, 아름다운 만삭의 임산부라도 바쳤어야지!
푸르푸르는 그렇게 말하며, 제단에 다소곳하게 누워있는 첫째 며느리와 둘째 며느리를 집어서 들었다.
자신의 입을 벌리고 가볍게 옷자락을 놓았다.
두 여자가 악마의 한 입 식사가 되었다.
콰득, 콰드득!
─ 맛이 없지는 않구나. 만삭은 아니었어도, 자궁에 아이를 품고 있어.
푸르푸르가 날렵한 혀로 입술을 훑었다.
웃음기 띤 얼굴에는 약간의 만족감이 스며있었다.
─ 나쁘지 않다! 먹어보고 살려둘 걸 그랬구나.
푸르푸르는 이미 죽어버린 프레소에게서 시선을 거두었다.
발을 굴러, 순식간에 용사의 앞으로 도약했다.
콰아앙!
─ 일단 용사부터. 얼마나 맛있을지 기대가 되는구나!
“용사님!”
멀리서 지켜보던 지부장이 애쉬를 불렀다.
갑작스런 기습에, 죽기라도 한 것은 아닐까.
노심초사하며 애쉬가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흙먼지가 뭉게뭉게 피어난다.
애쉬의 모습은 좀처럼 보이질 않았다.
촤악!
피가 뿜어졌다.
푸르푸르의 얼굴을 깊게 베어내며, 새파란 핏물이 새까만 하늘에 뿌려졌다.
─ 이게 무슨…?
푸르푸르는 낯선 고통을 느끼며 한 발 물러났다.
커다란 손으로 얼굴을 덮고, 슬쩍 닦아내니….
핏물이 묻어 나왔다.
용사의 것이 아닌 자신의 것.
“갑자기 덤비고 지랄이야. 나름…. 흑마술사들 쪽에서 깽판치지 않을까 기대하고 기다려준 건데.”
“용사님…!”
애쉬가 흙먼지 속에서 털레털레 걸어 나왔다.
애쉬의 손에 쥐어져 있는 성검이 은빛으로 빛난다.
애쉬는 양손에 검을 한 자루씩 쥐고서 붕붕 휘둘렀다.
성검에는 검기가, 남은 한 자루의 검에는 강기가 쨍쨍하게 빛났다.
─ …모자란 용사는 아니구나. 하긴. 나를 앞에 두고 나설 정도의 용사라면, 중간계에서 보통의 용사는 아니겠지. 내가 잠깐 방심을 했다.
푸르푸르의 얼굴이 뒤틀렸다.
골격이 뒤틀리며 살점이 후두둑 떨어졌다.
거대하던 크기가 조금씩 줄었다.
응축하고 축소하여, 그 힘을 점으로 압축했다.
서걱.
푸르푸르의 목이 떨어졌다.
은빛 날개가 찬란하게 부서졌다.
“소환하는데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리잖아. 짜증나게.”
애쉬는 푸르푸르가 변신을 마치고 덤벼들 시간을 주지 않았다.
“……!”
그 광경을 지켜보는 교단의 프레소 지부 사람들….
환호를 가까스로 억눌렀다.
압도적인 힘의 용사를 보며, 침을 꼴깍 삼킬 뿐이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