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권 - 7화 (7/11)

4권

5장. 진제

비문부터 시작되는 고통에 몸이 후들후들 떨려왔다. 며칠이나 안긴 건지. 이제 날을 세는 것도 의미가 없을 만큼 황제는 너무 자주 왔고, 올 때마다 입을 맞추었고, 갈 때까지 안에 남근을 넣고 사정을 했다. 황제는 사정을 하고 나서 마찰 때문에 발개진 둔덕을 보는 걸 몹시 즐겼다. 그것이 취향인 듯했다. 그저 보고 떠나면 다리를 벌려줄 텐데, 황제는 그 위에 손을 겹쳐 활짝 벌려 느슨해진 구멍에서 정액이 흘러 내려오는 걸 오랫동안 감상했다. 오랜 시간 들어가서 나오지 않은 터에 구멍은 쉽게 닫히지 못했다. 정액은 너무 안쪽까지 밀려 들어가 나오는 데 시간이 걸렸다. 황제는 안에 있는 걸 빼주겠다며 손가락을 넣어 긁어내렸고, 강은 입술을 달싹거리며 밭은 신음을 뱉어냈다. 강이 고개를 옆으로 돌리고 숨을 몰아쉬며 흥분을 가라앉히려고 할 때, 황제는 손가락에 거미줄처럼 엉킨 정액을 보여주며 속삭였다.

‘아우들이구나.’

‘으….’

강이 눈을 감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다리를 오므리면, 황제는 ‘천자가 여기서 어떻게 하라고 했지?’라고 넌지시 말했다. 다리를 벌리는 건 언제나 강의 몫이었다. 다리를 벌려서, 얼마나 부었는지, 치료가 필요한지, 안에 얼마나 사정했는지 황제가 다 면밀히 검사해야 했다. 회임할 몸에 무리가 가면 안 된다는 이유였지만 그게 이유의 전부는 아닌 것 같아, 수치스러웠다.

그러나 어릴 때부터 직접 황제가 훈육해온 강은 착실하게 손을 내려 다리를 벌리고, 발갛게 부어 익은 것처럼 보이는 입구를 보여주었다. 강의 얼굴은 내벽처럼 붉게 익었다. 황제는 고개를 슬며시 숙여 안을 살폈다. 강의 손끝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부끄러움 때문이었다. 정액과 타액이 묻은 입술을 꾹 깨물고 수치를 견디는 모습이 가슴을 동하게 만들었다.

‘더.’

‘어, 얼마나….’

강이 더듬거리며 물었다. 순하고 착한 아들의 표본이었다. 황제가 느긋하게 웃자 강이 몸을 움찔 떨었다. 황제가 무척 기분이 좋을 때 짓는 미소였다. 눈은 초승달처럼 휘고, 입술은 살짝 벌어져 고른 치열이 보였다. 그 미소에 마음이 놓였다. 황제가 이 손을 풀어줄 것 같아서 강은 눈물을 그렁그렁 매단 채 황제를 빤히 보았다.

‘아바마마, 이제 그만… 하고 싶어요. 부끄럽습니다.’

강이 조곤조곤 심정을 얘기하는데, 황제는 아들의 우는 모습에 발기한 남근을 꺼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너무 비벼서 여린 살갗이 예민해진 상태라, 황제의 미끈하고 부드러운 부분이 닿아도 몸이 소스라치게 놀랐다. 강이 둔부에 대고 있던 손을 떼어내려 하자, 황제가 손목을 잡아 누르며 단호하게 말했다.

‘벌려라. 아비가 들어갈 테니.’

‘아… 하지만, 너무… 많이 하셨… 아!’

제발 그만해달라는 의미를 담아서 황제의 팔뚝을 아프지 않게 잡고, 숨을 헐떡거렸다. 황제가 벌어진 입구에 귀두만 넣었을 뿐인데 벌써부터 통증과 그것을 압도하는 쾌감이 밀려왔다. 이러다간 정말 몸이 미칠 것 같았다. 친아버지를 상대로 느껴서는 안 된다고 스스로를 욕하고 짓누르며 강은 황제를 보았다.

그러나 황제는 죄책감에 시달리는 아들을 보며 웃었다. 아들이 그럴수록 좋았다. 처음에는 울면서 안 된다고 매달리더니, 나중에는 폐하고, 아버지고 다 잊고 목에 팔을 두르고 좋아했기 때문이다. 강은 쾌감이 절정에 다다르면 숨을 멈추고 허리를 느리게 움직였다. 본능이었다.

‘몸 상태를 보아하니, 오래는 못 하겠고… 딱 한 번만 할까.’

‘…저번에도 그러셨습니다.’

강이 억울해서 중얼거렸다.

‘그랬는가?’

황제가 얄밉게 딱 잡아뗐다. 강이 이제 둔덕을 그만 보여주고 싶어 손을 거두려는데 황제는 쉬이 거두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결국 황제의 남근이 반 이상 들어오고 나서야 황제가 직접 손을 잡아당겨 침상에 눕혔다. 다리가 활짝 벌어져 황제의 어깨와 등에 걸쳐졌다. 황제는 근육이 잘 잡힌 허벅지를 잡아 눌렀다. 강의 무릎이 관자놀이와 귀 부근에 닿았다. 허리와 목이 뻐근하게 아파오는 것도 아픈데, 삽입이 너무 깊어 머리까지 뚫리는 거 같아 두려웠다.

‘아바마마, 아바마마…. 그, 그만…!’

‘괜찮다.’

‘흐으, 아… 그만, 아, 아흑….’

남근이 끝도 없이 들어오는 바람에 속까지 꽉 차는 것 같았다. 강은 황제에게 잡힌 손을 꿈틀거리며 멍하니 옆을 보았다. 창문이 살짝 열려있고, 그 틈새로 햇빛과 바람이 들어와 한가로운 낮임을 보여주고 있었다. 친왕일 때는 마음껏 누렸던 햇살인데, 이제 그러지 못했다. 황제의 윤허 없이는 궁 바깥으로 못 나가는 비의 몸이 되어 황제의 아이를 낳아야 했고, 그 아이까지 뺏길 판이었다. 하늘에게 정말 묻고 싶었다. 당신이 원하는 게 이런 것이었느냐고. 나의 아버지를 뺏어다가, 연인으로 바꿔서 주셨냐고…. 하지만 이런 연인보다 상냥하고 다정한 아버지가 그립다고 속으로 말했다.

아직도 헷갈렸다. 다정할 땐 자신이 알던 아버지인데, 이런 식으로 정사에서 몰아세울 땐 다른 사람 같았다. 형제들이 죽어도 눈 하나 깜박하지 않던 아버지였기에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그는 다정하면서 잔인한 아버지였고, 남자였다. 퍽 다정하나, 가끔 가슴이 시릴 정도로 잔인해서 우울해졌다. 그가 늘 다정해주길 바랐는데. 어릴 때나, 지금이나 다름없는 마음이었다.

‘아바마마….’

강이 부르는 소리에 황제가 허리를 느리게 움직이다가 아들을 보았다. 강의 눈에 초점이 없다. 강은 음모가 닿을 정도로 남근을 넣으면 너무 잘 느껴서 이성을 차리지 못했다. 처음에는 아프다, 아프다하며 울던 것도 단지 자기 마음을 앗아가려는 교태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몸이 완전히 열렸는지, 남근이 내벽의 주름을 꾹 누르며 들어가면 강은 파르르 떨다가 남근을 벌떡 세웠다. 탄탄한 배에 정액이 얼기설기 얽혔다. 그걸 가져다가 발딱 선 남근처럼 꼿꼿하게 서버린 유두에 바르면 강은 눈을 감고 제멋대로 또 사정했다.

‘아바마마, 다정하게 대해주세요.’

강이 울먹거리며 말했다. 그 얼굴에 황제가 귀신에 홀린 것처럼 아들을 보았다. 황제가 기갈을 느끼는 사람처럼 허겁지겁 입을 맞추자, 강이 거기에 느리게 응해주었다. 황제의 속도와 비교가 안 되게 느렸다. 거북이처럼 느릿느릿하게 입술을 빨고, 혀를 넣어 황제에게 교태를 부렸다. 황제는 강의 하얗고 말랑한 엉덩이를 잡아 확 벌렸다. 남근을 쭈욱 빼내자, 안에 아주 약간 남았던 정액이 딸려 나왔다가 다시 남근과 함께 안으로 들어갔다. 다 강의 아우들이었다.

‘하아, 하….’

강이 호흡이 부족했는지 고개를 틀었다. 황제와 연결된 타액을 끊을 새도 없이, 강이 빠르게 움직이는 허리에 맞춰 입술을 달싹였다.

‘아, 아바마마, 아, 아으, 소자는… 아바마마가 다정한 게…. 아…!’

‘다정하게 대해달라고?’

‘네….’

강이 눈을 감았다. 고였던 눈물이 처량 맞게 흘렀다.

‘잔인한 건, 가슴이 너무 아픕니다. 아바마마는 소자를 사랑해주시잖아요.’

‘그건 단순한 부자가 아니더냐?’

황제가 쯧, 하고 혀를 차며 강을 번쩍 안았다. 강은 여전히 과거의 다정하고 착한 아버지를 원하고 있었다. 그걸 황제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황제가 원하지 않았다. 자신이 원하는 건 아들 이상이었으니까. 아들이 아니라 강이 자신의 아버지였어도 연인으로 만들었을 것이다. 이 자리는 그런 자리였다. 하늘도 허락한 자리. 황제는 우아하게 웃으며 강을 침대에 엎드리게 만들었다. 분명히 한 번만 한다고 약속했으면서, 낮부터 음탕하게 얽히려는 황제가 미워서 강은 뒤를 보았다. 그래 봤자 독기는 하나도 없었다. 황제가 남근을 빼내었다. 끈끈한 남근을 강의 붉어진 엉덩이에 비벼대자 강이 수치심에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강아, 몸이 아니라 마음까지 아비를 연인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지금은 그런 과정이라서 마음이 아픈 것뿐이야.’

정말 그런 걸까. 강은 백치처럼 들어오는 남근을 느끼며 신음했다. 아버지에서 연인으로 바뀌는 과정이라 마음이 이렇게 찢어지게 아픈 걸까? 물어보고 싶어도 물어볼 사람이 없었다. 왜냐하면 아들이 아버지와 교합을 하고, 아이를 낳은 경우는 이 나라에 없었으니까. 설령 있더라도…. 강은 점점 쾌감에 아득해져 오는 머리를 저으며 중얼거렸다.

‘한 번만 하신다고….’

황제가 웃으면서 뒤에서 강을 끌어안고 대답했다.

‘사정을 하지 않았으므로, 이건 한 번이 아니지 않느냐? 사정을 한 번 해야 끝나는 거지.’

몸이 개처럼 납작 엎드려져 흔들렸다. 위아래로 어지럽게 흔들리는 시야에 호화롭고 아름다운 내부가 보였다. 전부 황제가 가져온 금은보화였다. 친왕 시절에는 차별 소리를 들을 까 봐, 황제가 몰래 주어도 다 반납했던 것이다. 그러면 황제가 며칠 후면 다시 주었다.

‘다정하게 대해주고 있건만, 더 다정한 걸 원하는 것이냐.’

황제가 볼록 튀어나온 배를 매만지며 물었다. 정사를 하기 전이나 후에는 씹어 먹는다는 표현이 적합할 정도로 몸을 핥고, 빨고, 깨물었다. 그래서 손발을 제외하고 다 황제의 흔적으로 뒤덮였다. 어디 가서 목욕도 못 할 정도였다. 강이 침상 위 정액 범벅이 된 이불을 슬며시 잡자, 황제가 손목을 뒤로 당겨 고정시켰다. 그러다가 예쁜 손을 다친다며 힘을 주는 것도 못 하게 하고 있었다.

‘흐읏, 아, 으응…. 너, 너무… 깊… 아!’

황제가 빠르게 나가지 않고, 느리게 나갔다가 안을 찌르며 들어오자 몸이 바들바들 떨렸다. 눈앞이 순식간에 하얗게 변하고, 까매졌다. 너무 좋아서 신음도 가늘어졌다. 울음과 쇳소리가 섞인 신음은 명백한 조름이었다. 더 해달라고, 더 쑤셔달라고 조르는 것이었다.

‘그럼 매일 안고 다닐까.’

황제가 까슬까슬한 음모가 닿을 만큼 넣은 후 물었다. 강은 그건 아니라고 고개를 저었다.

‘어떤 다정함을 원하는 것이지?’

강은 눈을 감고 황제가 원하는 대로, 인형처럼 무기력하게 흔들리며 더운 숨을 내뱉었다. 안에 고인 열이 빠져나갈 생각을 하지 않는다. 오히려 황제가 들어오고, 나갈 때마다 열이 오른다. 황제가 깊이 들어오자 발가락이 오므라들었다. 강은 안에서 폭력적으로 돌변한 쾌감에 몸을 움츠리며 입을 열었다.

‘…예전처럼 사랑해주시고… 예뻐해 주시면….’

‘그때보다 더 사랑해주고 있다. 그대가 모를 뿐이지.’

황제가 느긋하게, 확실하게 말하자 정말 그런 것처럼 마음에 새겨졌다. 아바마마가 날 사랑한다고 말씀하셨다. 더 사랑한다고 하셨으니까, 이제 그만 의문을 가지고 받아들이면 되는데.

어째서 쉬워 보이는 게 어려운 건지 머리로 납득이 가지 않았다. 황제는 쉽게 받아들이고, 자신을 그대라고 부르며 정말 완벽한 비처럼 대하는데 강은 가끔 아버지와 연인의 사이에 있는 그가 어려워서 난감해졌다.

‘아마 아이를 낳고, 기르다 보면 생각이 달라지지도 모르지.’

‘예?’

‘그대가 원한다면 유모가 아니라 그대가 양육할 수 있게 해주겠다. 그러나 젖은 안 돼.’

‘…예?’

황제가 강의 어깨에 입을 느릿하게 맞추며 진중하게 속삭였다.

‘그대의 몸에서 나오는 건 다 천자의 것이야. 아무리 그대의 아이라 해도 안 돼. 그대의 아이가 배에 있는 것도 마음에 안 들지만…. 어쩔 수 없지. 아이는 배에서 자라니까.’

황제의 남다른 집착에 강은 오싹해져서 뒤를 볼 수 없었다. 아이가 배 안에서 자라는 건 당연한 건데, 그것도 봐주기 싫다고 말하는 황제가 자신의 아버지 같지 않았다. 아예 다른 사람 같았다. 양육은 되지만 젖 물리는 건 안 된다고 칼로 사람을 베듯 단호하게 말하는 황제의 남근을 받아들이며 강은 멍하니 생각했다.

제발, 잉태만은.

“마마, 손목을 주시지요.”

오늘도 발이 내려지고, 그 너머로 태의가 와서 진맥을 보고자 했다. 벌써부터 속이 답답해져 와 강은 한숨을 내쉬며 궁녀가 살짝 올려준 발 안으로 손목을 주섬주섬 넣었다. 태의가 무척 긴장한 얼굴로 진맥을 보았다. 혼례가 끝난 지 이제 열다섯 날이 지났을 뿐이라, 벌써 맥이 잡힐 리가 없을 텐데. 물론 임신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사내의 몸으로 황제와 정사를 맺어야 하니, 황제가 특별히 강의 상태를 고려해 늘 태의를 불러 진맥을 보게 한 것이다.

“폐하를 받아들이는 성스러운 일은 이제 괜찮으십니까?”

강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강이 아무런 대답도 못 하고 손을 움찔거리자, 옆에 있던 궁녀가 다가와 소곤거렸다. 앳된 소녀와 눈이 마주치자 강이 눈을 내리깔았다. 얼굴이 빨개지고, 창백해지고. 소녀가 모시는 비는 참으로 다채로운 표정을 지녔다.

“마마, 대답을 하셔야 합니다. 아니면 태의가 옷자락을 거두어 보실지도 모릅니다.”

알고 있었다. 그러나 알고 있어도 입에 밀랍이라도 바른 듯 열려지지 않았다. 발 너머로 보이는 태의도 겁을 먹은 듯 보였다. 감히 황제가 아끼는 비의 그곳을 보았다가 목이 잘릴까 봐 두려워하는 것이었다. 강은 눈을 느리게 감고 숨을 삼키며 입술을 열었다.

“아프긴 하지만…. 처음보다 괜찮네.”

강의 목소리는 울적하고 힘이 없었다. 태의도 속으로 한숨을 뱉어내며 입을 열었다.

“다른 곳은 어떠십니까? 아직도 심병이 있으십니까?”

“그렇네. 꼭 돌이 맺힌 것처럼 무겁고, 답답하니….”

강이 바닥을 멍하니 보며 중얼거렸다.

“밖에 나가고 싶네.”

친왕으로서 밖을 자유롭게 돌아다녔던 게 그리웠다. 말을 타며 친우들과 놀고, 사냥을 하고, 혹 다친 짐승들을 치료해주고. 어머니가 보고 싶으면 따로 패를 올려 허락을 받고 만날 수 있었던 그때로 돌아가고 싶었다. 황제가 보고 싶다며 궁으로 오라고 사람을 보내면, 연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가마를 타고 들어갔었는데. 모두가 보기 좋다고 칭송하는 아버지와 아들로 돌아가고 싶었다.

이런 식으로, 언제 임신할지 몰라 전전긍긍하고 사람의 눈초리가 무서워 궁에 틀어박힌 삶은 원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황제의 사랑이 너무 달콤하고 진득해, 헷갈리기 시작하니 그것도 두려웠다. 연정으로 들끓는 금안을 보면, 가끔은 편하게 그를 받아들일까 고민했다. 그러나 결국 끝에 붙는 건, 확실한 사실이었다. 그는 아버지였다. 그와 정사를 맺으며 느끼고, 사정할 때마다 뒤통수를 때리는 듯한 얼얼함은 세졌다. 누군가 꾸짖는 것 같았다.

너도 하늘을 빌미로 아버지와 붙어먹고 싶은 게 아니냐고. 이제 모든 것이 혼란이었다. 황제가 언제부터 자신을 아들이 아닌 연인으로 사랑했는지, 자신은 지금 황제를 아버지로 보는지, 연인으로 보는지. 어머니는 어떻게 되는 것인지. 그리고 자신이 낳은 아이는 족보에 어떻게 올라가는지. 살아있는 태후가 곧 올라올 텐데. 그녀를 보고 뭐라 불러야 할지도 감이 오지 않아 답답했다.

그러니 도망가고 싶었다. 고향처럼 아늑하고 달콤하던 궁은 이제 없었다. 자신을 옭아매고 쥐어짜는 궁이었다. 할 수만 있다면 자유로워지고 싶었다.

“나는….”

거기까지 말하던 강의 눈이 멍해지며 눈물이 후드득 떨어졌다. 작금의 상황을 천천히 돌이키고 생각하자 눈물이 갑자기 쏟아진 것이다. 태의와 궁녀들이 놀라서 강을 보았다. 강은 범람하는 시선을 감당하지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그런데 아래로 물이 고이고 있었다.

“어?”

강도 놀라 자신의 얼굴을 만졌다. 눈물이 걷잡을 수 없이 흐르고 있었다. 그제야 자신이 이 상황을 견디기 힘들어한다는 걸 깨달은 강은 얼굴을 가리고 서럽게 울었다. 이 상황이 싫은데, 싫은 것보다 황제를 사랑해서 힘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황제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었다. 어떻게 싫어하겠는가. 그가 없었다면 자신은 이 넓은 궁에서 하찮은 황자로 죽었을 테고, 어머니도, 어머니의 집안도 멸망했을 것이다. 강에게 황제는 아버지였고, 하늘이었고, 이 나라의 황제였다. 싫어할 수가 없었다.

차라리 황제를 미워할 수 있다면 마음이라도 편할 텐데.

“아바마마…. 아바마마를 불러다오. 아바마마를 봐야겠다.”

강이 서럽게 흐느껴 울다가, 궁녀를 보며 울먹거리며 말하자 궁녀가 빠르게 몸을 옮겼다. 황제는 지금 스승들과 모여 경연 중이었다. 오지 못할 수도 있었다. 강은 흐르는 눈물을 참지 못해, 밖에서 줄에 묶인 설을 불렀다. 설이 뛰어 올라와 강에게 덥석 안겼다. 강은 보슬보슬한 개털에 얼굴을 묻고 흐느껴 울었다.

“너도 내가 바보 같지.”

설이 화답하듯 멍! 했다.

“바보라고 하는 거냐.”

설이 또 멍! 했다. 강에게 자신의 몸을 내어주던 설이 고개를 들어 강을 보더니 입을 헤 벌리고 웃었다. 주인의 슬픔과 무관하게 설은 이곳에서 아주 행복하게 잘 지내고 있었다. 황제의 명령으로 매일같이 고기를 먹었기 때문이다.

얼마나 흘렀을까. 강이 울고 있을 때, 황제가 다급히 강이 있는 각호전으로 들어왔다. 숨을 헐떡이는 모습이 강을 염려하여 서둘러 온 게 분명했다. 괜히 원망의 화살이 갈까 봐 강이 설을 내보내려는데 아무것도 모르는 설이 황제에게 달려가 안겼다. 황제가 설을 번쩍 안아주었다.

“너는 주인이 우는데도 기분이 좋으냐?”

요새 설은 부쩍 황제를 잘 따랐다. 분명히 자기 기분 좋으라고 황제가 데려온 것인데, 같은 개과라 그런지 황제를 더 좋아했다. 강의 원망스러운 시선이 자신에게 향하자, 황제가 설을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 눈치 없는 설이 꼬리를 붕붕 흔들었다.

“모두 나가거라.”

황제가 나가라고 명하자, 궁녀들과 태의, 호위들까지 썰물처럼 스르륵 빠르게 빠져나갔다. 따스한 볕이 들어오는 각호전엔 이제 황제와 강뿐이었다. 황제가 강 옆에 앉자, 강이 눈물이 젖은 눈을 힘없이 들어 그를 보았다.

“왜 울었느냐?”

“…답답합니다.”

난생처음 보는 강의 우울한 얼굴에 황제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대가 세상에서 제일 사랑한다고 말했던 천자가 옆에 있는데 왜 답답하지?”

어린 시절, 강이 황제를 정말 사랑해서 늘 하던 고백이었다. 황제가 활을 쏘는 시범을 보일 때는 그 짧고 통통한 팔로 누구보다 갈채를 빨리 힘차게 보냈고, 황제가 늑대가 되어 사냥을 하면 얼굴에 홍조를 띠고 환호했다. 그리고 짧은 다리로 다람쥐처럼 뛰어와 귀여운 얼굴로 방긋방긋 웃으며 말했다.

‘아바마마, 소자는 아바마마가 세상에서 제일 좋습니다. 정말로요. 아바마마가 늑대일 땐 너무 멋있고, 또, 또….’

‘또?’

‘…모르겠습니다. 그냥 소자는 아바마마가 좋아요.’

황제는 아들의 어설프고 풋풋한 고백에 세상을 다 가진 듯 행복해서 환하게 웃었다. 강도 아버지의 목에 팔을 두르고, 어깨에 이마를 비비는 애교를 부리며 행복을 표현했다.

강도, 황제도 똑같이 기억하는 과거였다. 그러나 느끼는 감정은 달랐다. 황제는 기쁨을 주체할 수 없이 만끽했고, 강은 세상이 꺼지는 것처럼 우울해졌다.

“…아바마마를 정말 사랑해서, 너무 답답합니다.”

황제는 입을 다물었다. 눈물이 맺힌 속눈썹이 어여뻐서 거기에 시선이 멈췄다. 황제가 잠시 숨을 고르고, 할 말을 생각하는데 강이 먼저 고개를 돌려 황제를 보았다. 다시 눈물이 샘솟았다.

“잔인하신데, 다정하시고, 또 거기에 소자는 마음이 가고…. 이젠 모르겠습니다. 정말 모르겠어요.”

“하늘께서 허락하신 건데도?”

황제가 넌지시 묻자 강이 헛웃음을 터트리며 말했다.

“하늘께서 허락하셨다 해도, 폐하와 소자는 아버지와 아들입니다. 그건 변함이 없는 사실이지 않습니까. 몸과 머리가 따로 노는 기분이라… 속이 엉킨 것처럼 답답하고 체기가 있고…. 그저 이 모든 것들이 소자를 비난하는 것 같습니다.”

“그 누구도 그대를 비난할 수 없다. 천자가 있지 않은가.”

황제가 아예 강을 안아 올려 허벅지에 앉히고, 어르고 달랬다. 어릴 때 자주 해주던 방법이었다. 그 품에 울적하게 안겨있던 강은 힘없이 중얼거렸다.

“아바마마는 소자를 연인으로 받아들이는 게 정말 쉬우셨나요? 언제부터 소자를….”

연모하였느냐고 물으려는 강의 입술이 달싹거렸다. 얼굴은 부끄러움에 홍조가 피었다. 황제는 아들의 턱을 잡아 자신을 보게 만들었다. 입을 맞추려는 듯 황제가 눈을 반쯤 내리뜨고 입술을 움직였다. 야릇하게 조성되는 분위기에 강도 얼굴을 붉히며 입술을 열었다.

아버지인데. 하지만 정말, 아바마마의 말처럼 연모하게 되면 그때는….

“그런 게 지금 중요할까.”

황제가 숨이 멎을 만큼 깊숙이 입을 맞추었다. 혀가 진하게 엉겨붙었다. 숨도 놔주지 않겠다는 듯, 들어와서 이곳저곳 누비는 혀에 강의 손이 움찔거렸다. 황제가 그 손을 잡아 목을 잡게 하자 강이 머뭇거리면서 황제의 목을 안았다.

“으읍…. 응….”

잡아먹힐 것 같다. 영혼까지 씹어 먹힐 것 같은 입맞춤에 강은 눈을 뜰 수가 없었다. 황제의 금안에 빨려 들어갈까 봐 거리를 두며 고개를 돌리는데, 황제가 웃음을 터트렸다. 강이 시선을 발부리에 두고 거칠어진 호흡을 가다듬었다. 황제가 그새 또 붓고 피가 흐르는 입술을 엄지로 닦아주며 속삭였다.

“그대도 받아들이게 될 거야.”

강은 난처함에 몸을 떨며 대답하지 않았다. 장성한 아들이지만, 황제의 품에 안길 때면 유독 약하게 보이는 강이었다. 강이 황제의 시선을 피하려 하자, 황제가 강제로 고개를 들어 올리며 웃었다. 황제의 금안에 딱 들어가게 된 강이 몸을 굳혔다.

“이제 슬슬 비빈들과 정기적인 다과회를 가져야 한다.”

다과회는 비빈들이 모여 오붓하게 담소를 나누는 일이었다. 한 달에 두 번, 정기적으로 다들 모여 황제나 자식들의 일을 의논하곤 했다. 본래는 황후가 주관했어야 하지만, 황후가 몇 년째 없는 관계로 다과회는 형식적으로 진행되었다. 다들 모여서 차를 마시고, 안부 인사를 마친 후 자식들을 데리고 쌩하고 가버렸다.

거기에 가라는 황제의 말에 강이 놀라서 상체를 일으켰다.

“예? 하, 하지만 거기엔 어머니도….”

“누가 그대의 어머니지?”

황제가 짧게 웃으며 물었다. 마치 비웃는 듯한 어조였지만 강은 아무 말도 못하고 황제만 멍하니 보았다. 다과회에 가서 비빈들과 얼굴을 맞대고 있으라니. 계속 생각해 봐도 힘든 일이었다. 불가능에 가까웠다. 강의 얼굴이 서서히 창백해졌다. 핏기가 사라진 얼굴이 창호지처럼 하얗게 질려가는데, 황제는 여전히 웃는 낯이었다.

“어차피 황후에 오르면 그대가 주관해야 하는 일이다. 너무 무섭게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

“…꼭 가야 하는 겁니까?”

강이 푹 잠긴 목소리로 물었다. 황제는 강을 꼭 안아주며 말했다.

“가서 황제의 애정을 얼마나 받았는지 과시해야지. 그대는 그래도 된다. 그대가 비빈들에게 무시당하는 건 천자가 참을 수 없으니까.”

“하, 할 수 없습니다. 소자는 할 수 없어요. 그곳엔 마마들도 계시고, 그리고….”

“다 냉궁에 보내버릴까?”

황제가 단아하게 웃으며 물었다. 냉궁에 보낸다는 건, 비빈들을 다 죽여 버리겠다는 뜻이었다. 황제는 여태까지 냉궁으로 보낸 비빈들을 살려준 적이 없었다. 그 안에는 황제가 부정해도 자신의 어머니가 있었다. 지금도 궁에 갇혀 오들오들 떨고 있을 어머니가 떠오르자 앞이 아득해졌다. 강이 겁을 먹고 그러지 말라는 듯, 움츠러들어 고개를 젓자 황제가 유쾌하게 웃었다.

“다과회에 가지 않으면 천자의 사랑을 받지 못한다는 것과 같은 뜻이다. 그러니 꼭 가야 한다. 알겠느냐?”

*

황궁 내 사냥터에 햇살이 곤두박질쳤다. 풀마다 햇살이 물방울과 함께 걸렸다가, 저 멀리서 시작되는 진동에 툭 떨어져 흙으로 흡수되었다. 진동의 근원은 내관들이 푸는 오늘의 희생양들의 발이었다. 여우, 멧돼지, 사슴, 등이 살기 위해 사냥터를 빠르게 가로질렀다. 흑마 위에 앉아 희생양들이 달리는 모습을 무료하게 지켜보던 지홍왕이 고개를 돌렸다. 바로 옆에 황제가 백마 위에 앉아 정면을 집요하게 보고 있었다.

오늘 조반이 맛이 없었을까. 조반이 맛없게 나오는 날이면 입을 꾹 다물고 먹지 않던 형님이 떠올랐다. 특히 고기가 아니라 생선이 나오는 날이면 더더욱 표정이 안 좋았다. 눈을 또렷하게 뜨고, 궁녀를 보며 ‘싫다.’라고 말한 뒤 후다닥 달려갔다. 그러면 내관이 깜짝 놀라 ‘영휘왕 전하! 전하!’ 하며 같이 뛰어갔으나, 이미 늑대로 변한 형은 저 멀리 도망간 지 오래였다. 지홍왕도 형을 보고 배워서 같이 늑대로 변해 들판을 달리곤 했다. 결국 아버지가 직접 달려와 형을 입에 물고 가는 것으로 사태는 수습되었다. 아버지가 와앙, 하고 짖는 소리에 놀란 지홍왕은 알아서 쫄래쫄래 쫓아갔다.

유난히 오늘따라 새록새록 피어오른 기억에 푹 잠긴 지홍왕은 황제의 옆모습을 감탄하며 지켜보았다. 언제 보아도 아름다운 얼굴이지만 오늘따라 눈을 뗄 수 없었다. 머리카락 한 올도 빼놓지 않고 말끔하게 올려 뒷목이 시원하게 보였다. 사슴처럼 길고 쭉 뻗은 목선이 유려하다. 목을 타고 느릿하게 시선을 올리면 황제의 백옥 같은 뺨이 보였다. 건강하게 하얀 피부가 빛을 받아 아이의 피부처럼 매끈해 보였다. 설원을 떠올리게 하는 은색 머리카락은 한 올도 빼놓지 않고 관 속으로 들어갔다.

나른하게 반쯤 감긴 눈꺼풀 사이로 보이는 금안은 투명한 황금 같기도, 혹은 바다 건너에서 들여온 호박 같기도 했다. 각도에 따라 색이 깊어지거나 옅어지는 눈은 요사스럽게 아름다웠다. 그의 얼굴을 도둑질하듯 쳐다본 걸 황제가 알아채고 고개를 돌렸다. 금안이 가슴에 화살처럼 박혔다. 숨을 멈춘 지홍왕이 고개를 조아리자 황제가 살짝 웃으며 물었다.

“뭘 그리 보느냐.”

“용안이 무척 아름다워지셨습니다.”

지홍왕이 너스레를 떨며 말하자 황제가 하하, 하고 기분 좋은 듯 웃음을 터트렸다.

“늘 같은 얼굴인데 무엇이 달라진 거지.”

황제가 대답을 요구하듯 눈웃음을 지었다. 지홍왕은 고삐를 당겨 황제의 옆으로 다가갔다. 황제는 묘한 웃음을 지은 채 동생의 행동반경을 지켜보다가 직접 고개를 숙였다. 어린 시절처럼 지홍왕은 황제의 귀에 입술을 대고 속닥거렸다.

“희비 마마와 운우지정을 맺으신 후로 달라지신 것 같습니다.”

황제의 웃음이 짙어졌다. 황제가 손을 뻗어 지홍왕의 어깨를 잡으며 입술을 열었다.

“다 희비가 노력한 덕분이지. 무서워도 벌벌 떨면서, 천자가 원하면 모든 것을 내어주니까.”

“희비 마마께서 심성이 착하고 고운 분이신 건 맞지만, 그래도 너무 벼랑까진 몰아가지 마십시오. 희비 마마께서 마음을 달리 먹고 폐하를 두고 도망가기라도 하면 어떡합니까.”

황제의 비빈 중 한 명이 호위와 눈이 맞아 도망갈 뻔했던 적이 있었기에, 그 일을 떠올리며 농을 치듯 얘기하는데 황제가 지홍왕을 똑바로 응시했다. 그의 눈가에 스민 웃음이 서서히 옅어질 무렵, 황제도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는지 담담하게 말했다.

“그 아이는 도망 같은 건 생각도 못 해. 천자를 두고 다른 곳에 갈 리가 없다.”

“알고 있습니다.”

강이 도망을 간다고?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강은 여태껏 황제의 명령 때문에 먼 곳을 가본 적이 없었다. 혹여 다칠까 봐 황자 시절에도 금이야, 옥이야 품에 넣고 직접 키운 아들이었다. 전쟁은 고사하고, 왕부에서도 홍등가도 가지 못하게 사람들을 이용해 막았다.

강은 황제 때문에 하나, 둘씩 포기 당했지만 그것도 모르고 순하게 컸다. 황제가 하는 말이면 진리인 줄 알고 받아들였고, 황제가 엄하게 굴면 무서워서 그러지 말라고 오들오들 떠는 강아지였다. 어렸을 때, 지금이나 변함없는 모습을 혼례식에서 봤기에 지홍왕은 별로 걱정하지 않았다.

또한 강의 어미와 외가가 수도에 있으니, 도망을 갈 낌새를 보이더라도 외가를 이용해 협박할 수 있으니 일석이조였다. 강도 벼랑으로 내몰고 강의 외척도 처리한다. 그렇게 되면 강의 아이가 태자가 되어도 외척이 사라지니 걱정이 없었다. 어차피 사라질 외척이라면, 빨리 처리되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그래도 너무 몰아세우지 마십시오. 희비 마마께서 받아들일 시간이 필요하실 겁니다. 아버지를 연인으로 섬기고 아이까지 낳아야 하는데, 얼마나 답답하시겠습니까. 비가 되기 전까진 왕부에서 자유롭게 사셨으니까요.”

“애초에 왕부로 보낸 게 잘못이었다.”

“예?”

황제는 천천히 활을 집어 올리며 먼 곳을 보고 웃었다. 그의 눈이 드디어 사냥감들을 쫓기 시작했다.

“폐위하고 궁에 가두었다면, 그런 감정도 몰랐을 거 아니냐? 친왕이 아니라 황자 자리에서 끌어내리고, 가두어버릴 것을. 천자가 생각을 잘못했다. 애초에 자유를 몰랐다면 지금의 고통은 없었을 터인데.”

하지만 그랬다면, 하루가 다르게 그저 밝고 환하게 피어나던 아이를 보지 못했을 것이다. 강이 뛰고, 활을 잡고, 말을 타고. 그 모든 옆에 자신이 있었다. 지금도 달라진 건 없었다. 황제는 여전히 강을 무척 사랑했다. 나라를 가장 아끼고, 그다음이 강일 정도로 사랑하고 있다. 강을 사랑하지 않았다면, 강제로 아이를 임신시킬 생각은 하지 않았을 테지. 강은 그걸 알아야 했다. 이 모든 일이 자신을 위한 일이라는 것을.

그러다 보면, 강도 황제를 받아들이고 연인으로 인정해줄 날이 올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 하늘도 인정한 연인이었으니 강도 받아들여야 했다. 그 쉬운 걸 부자라는 관계에 갇혀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을 뿐이었다.

모든 건 순탄했다. 하찮을 정도로 쉬운 일들이 가소로워 황제는 짧게 웃고, 힘차게 내달렸다.

*

황제가 다른 이들과 친목을 쌓으며 사냥을 즐기는 사이, 강은 어두운 침전에 우두커니 앉아 설을 만지고 있었다. 설은 강에게 안기고 싶은지 낑낑거렸다. 강이 길고 가느다란 팔을 이용해 덩치가 좋은 설을 품에 안고, 설의 등에 얼굴을 기댔다. 개 특유의 냄새가 진하게 맡아졌다.

“이러고 있으니 꼭 예전으로 돌아간 거 같구나.”

예전이라 해도 불과 얼마 되지 않은 과거인데. 왜 이렇게 멀어 보이는 것인지. 몇 년은 된 것 같은 과거 속에 허우적거리다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들었다. 창문이 열려 선명한 봄이 들어오고 있었다. 옅은 꽃냄새, 뺨을 만지고 정신을 다독여주는 봄바람. 모든 것이 평온하다. 강은 멍하니 앞을 보다가 설을 안고 몸을 일으켰다. 시달린 안쪽이 얼얼하고 감각이 없었지만, 참고 걸어서 창문까지 걸어갔다.

창문으로 얼굴을 내밀자, 그동안 느끼지 못했던 봄이 느껴졌다. 따스하다. 여름에 입는 베처럼 가볍다. 눈을 감고 바람을 만끽하던 강은 설이 나가자고 낑낑거리는 소리에 뒤를 돌아보았다. 설이 나가고 싶은지 문 옆에서 빙빙 돌고 있다. 보다 못한 강이 궁녀들을 시켜 문을 열게 했지만 설은 얌전하게 앉아 꼬리를 붕붕 흔들었다.

“같이 나가자고?”

설이 웃는 것처럼 보였다. 난감한 얼굴로 설을 보던 강은 장의를 가지고 왔다. 황제의 상징이 그려진 검은 장의를 입고, 설을 따라 나갔다. 문이 차근차근 열리며, 어느 순간 뒤에 호위와 궁녀, 내관들이 붙었다. 마치 황자 시절로 돌아간 듯한 착각이 들었다. 그때는 천금궁에서 살았기 때문에 온갖 사람들과 금은보화에 둘러싸여 자랐다. 지금도 그러했지만, 묘하게 거북해 사람들에게서 벗어나고 싶었다.

“저기에 얌전히 있을 테니 그만 와주면 안 되겠는가?”

결국 강이 참지 못하고 뒤를 보며 말했지만 모두 안 된다고 단호하게 거절했다. 포기한 강은 시무룩한 얼굴로 사람들을 대동하고 설과 함께 화원으로 가게 되었다. 황제와 자주 놀러 나가는데도, 강과 나온 것이 행복한지 설이 정신없이 뛰어다녔다. 강은 그래도 설이라도 자유를 만끽해서 다행이라고 느끼며, 장의를 여몄다.

벌써 화원에 꽃들이 이렇게 많이 피다니. 강은 무릎을 살짝 구부리고 꽃들을 하나하나 살펴보았다.

“어….”

눈에 익은 꽃들은 다 강이 좋아하던 것들이었다. 왕부에도 똑같은 종류의 꽃들을 심어놓고 직접 길렀다. 가끔은 잘 큰 꽃들을 꺾어 황제에게 화관을 만들어 선물로 주곤 했다. 그때 생각이 나서 강은 자신도 모르게 웃으며 꽃잎을 만지작거렸다.

아마도 황제가 명령해서 심었을 것이다. 비빈들의 화원인 이곳은 황제의 명령이 절대적인 곳이니까. 자신이 무얼 좋아하는지 전부 꿰뚫고 있는 황제였다. 그의 사랑이 이리도 지극한데, 자꾸만 짓눌려지는 답답함에 강은 고개를 들었다. 궁녀가 다가오는 소리가 들렸다. 설마, 하는데 궁녀가 다소곳하게 허리를 숙이며 말했다.

“마마, 다과회에 가실 준비를 하셔야 합니다.”

“…응.”

가고 싶지 않은 다과회에 가야 할 시간이 온 것이다. 강은 움직이지 않는 다리를 질질 끌며 예월궁 안으로 들어갔다. 설은 강이 가는 걸 보고서, 그제야 후다닥 달려와 강의 옆에서 유유자적하게 걸었다. 울적해도 설을 보면 기분이 좋아졌다.

“넌 내 편이지?”

강은 설의 머리를 만지며 물었다. 설이 멍, 하고 짧게 짖었다.

“그래. 조금 이따가 고기 줄게.”

고기라는 말에 설이 눈을 부릅떴다. 싫어하는 말은 알아들어도 무시하면서. 강은 설을 보며 키득거리다가, 궁녀를 따라 들어갔다. 궁녀들은 숙달된 솜씨로 강을 씻기고, 아름다운 예복을 입혔다. 얼마나 호사스러운지 혼례식 날을 떠올리게 했다. 강이 질색하며 평복을 달라고 해도, 궁녀들은 ‘폐하의 명이십니다.’라고 딱 잘랐다. 길고 탐스러운 머리는 단정하게 묶기만 했다. 목선이 곱다며 칭찬하는 궁녀들의 말을 애써 무시하며, 강은 소매에 가려진 손가락을 슬금슬금 빼내었다. 거기에 금가락지, 팔찌, 귀걸이까지 하고 나서야 치장이 끝났다.

가마에 올라타는 것까지 궁녀들이 도움을 주었다. 친왕 시절에도 받지 않았던 봉사에 강은 머쓱해져서 얼굴을 붉혔다.

다과회는 호수를 마주 보고 있는 요후전에서 이루어졌다. 제발 빨리 끝나기를. 애가 탈 정도로 속으로 비는데, 안타깝게도 가마는 너무 빨리 요후전에 도착했다. 가슴이 사냥을 할 때보다 급박하게 뛰기 시작했다. 후우, 후…. 심호흡을 하며 가마에서 천천히 내리는데 얼마나 긴장했는지 다리를 삐끗했다.

“마마, 괜찮으십니까?”

내관이 호들갑을 떨며 다가왔다. 강은 긴 소매로 얼굴을 가리며 달아오르는 얼굴을 가렸다.

“괜찮네. 그러니 제발 그만하게.”

조금 시간이 흐른 후에 소매를 내린 강은 요후전 앞에 당도한 가마들을 보았다. 다들 비슷하고, 그만그만한 가마 사이에서 눈에 들어온 것은 빛바랜 어머니의 가마였다. 황제의 애정을 받아 보석과 새의 깃털로 장식한 자신의 가마와 달리 어머니의 가마는 색이 벗겨지고 장식도 유행이 지난 과거의 것이었다. 가슴이 쓰라리게 아프면서도, 이제 자신보다 품계가 낮아진 어머니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라 안절부절못했다. 황제는 ‘더 이상 어머니가 아니다.’라고 결론을 내렸지만, 강에겐 아직도 어머니였다. 황제가 아버지라는 걸 부정할 수 없듯, 어머니도 어머니였다.

그러면 그냥 말을 걸지 말까…. 멍하니 그리 생각하며 천천히 요후전 안으로 발을 디뎠다. 안으로 들어가자 비빈들이 각자 품계에 맞는 위치에 놓인 의자에 앉아있었다. 비의 자리는 두 개였고, 빈들의 자리는 많았다. 그 사이에 어머니인 여 소의가 담담하게 앉아있었다. 아직도 어리고, 약하게만 보이는 어머니는 합죽선을 손에 쥔 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무료한 듯, 눈을 내리깔고 있는 이 상황에 적응하려고 노력하는 것 같아 강은 가슴이 묵직해졌다.

유일하게 남자 비이자, 황제의 사랑을 받는 강이 오자 분위기가 달라졌다. 모두 강을 보고 가면을 쓴 것처럼 화사하게 웃으며 반겼다.

“마마, 오셨습니까.”

“기다렸습니다.”

그녀들의 미소에 강은 힘겹게 걸음을 이어갔다. 그러나 어머니와 눈이 마주친 순간, 강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몸이 돌처럼 굳었다. 궁녀가 강의 낌새를 알아채고 고개를 올렸다. 이건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강은 고개를 휙 돌렸다. 궁녀가 “마마!” 하며 잡았지만 강은 아무 말도 없이 성큼성큼 밖으로 나왔다.

가슴이 딱딱하게 뭉쳐졌다. 숨을 쉴 수 없을 정도로 가슴에서 시작된 통증이 몸을 마비시킨다. 너무 아팠다. 어떠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통증에 숨을 죽이던 강은 등에 닿는 따스한 감촉에 뒤를 보았다.

“희비 마마.”

“어….”

어머니, 라고 부르려던 강의 입술을 미소로 무마한 여 소의가 등을 다독였다. 어머니의 부드럽고 상냥한 손길에 눈가가 시큰해졌다. 그러나 눈물은 메마른 듯 나오지 않았다. 강은 무던하게 등을 올려 여 소의를 다정하고 의젓한 아들의 눈으로 보았다. 여 소의의 눈이 글썽거렸지만, 아들의 상태에 정신을 차리고 힘을 주어 말했다.

“마마, 이리 오시지요. 볕이 좋은 곳에서 잠시 쉬셔야 할 것 같습니다.”

뭔가 예전과 달라진 어머니의 분위기에 강이 무력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늘 무른 두부 같이 상처받고, 침전에 숨던 어머니와 다르게, 눈빛에 칼이 있었다. 강은 통증을 무시하고 어머니를 쫓아갔다. 어머니와 오랜만에 맞닿은 곳이 따스해서 놓치고 싶지 않았다.

호위와 궁녀, 내관들이 강을 무섭게 쫓아왔다. 강에겐 강해보이던 여 소의도 그들을 황제 대신이라고 생각했는지 몸을 움찔했다. 강이 그녀를 자신의 품으로 끌어들이고, 나무에 기대어 보호했다.

“어머니.”

강이 여 소의를 보자마자 말했다. 여 소의도 울먹거리는 얼굴로 그새 야윈 아들의 뺨을 쓰다듬었다.

“미안하구나.”

“어머니가 미안하실 일이 아닙니다. 다 하늘께서 정하신 일인 것을요.”

황제 앞에서와는 다르게 강은 어머니 앞에서 아무렇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황제는 한없이 기댈 수 있는 아버지였던 것에 비해 어머니는 자신이 지켜줘야 하는 존재였으므로. 강이 흔들림 없는 검은 눈으로 어머니를 눈여겨보며 손을 들어 뺨을 감쌌다.

“어머니께서도 괜찮으시지요?”

강이 살짝 웃으며 묻자,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다 네 덕분이다. 네 덕분에, 이 어미가….”

말끝을 흐리던 그녀는 강을 지그시 보았다. 아이의 얼굴이 확실히 달라졌다. 과묵한 눈에서 언뜻 보이는 절망감과 체념을 읽어낸 여 소의는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이 황궁에서 시드는 꽃들은 자신으로 충분했다. 이제 약관인 아이가 감당하기엔 너무 모진 곳이었다. 특히 황제의 거칠고 잔혹한 정사를 아는 그녀는 섬뜩해져서 입술을 깨물었다. 물론 황제가 강에게 유독 다정한 건 눈으로 확인해서 다소 안심하긴 했으나, 이대로 아들을 여기에 두고 싶지 않았다.

강은 자신과 달리 살아가야 했다.

“계속 오래 얘기하면 폐하께서 의심할 것이다. 강아, 달리 얘기하지 않겠다. 여기서 도망가게 해주겠어. 도망가.”

“예?”

강이 놀라서 눈을 크게 떴다. 뒤늦게 어색하게 웃음을 지은 강이 고개를 저었다.

“말도 안 됩니다. 어머니를 두고 도망이라니요. 아바마마께서 가만히 안 계실 겁니다. 또한 하늘의 명을 어겨선….”

“그건 중요하지 않아. 내가 중요한 건 너다. 아들인 네가 제일 중요해.”

어머니의 눈빛에 타오르는 심지를 본 강은 입을 다물었다. 여 소의는 찰나의 순간 눈을 감았다. 그 짧은 시간 여 소의는 빠르게 스쳐 가는 아들을 보았다. 무서운 건 아니었다. 아니, 사실 미치도록 무서웠다. 너무 무서워서 밤에 잠도 제대로 들지 못했다. 황제가 외가를 몰살시킬까 봐, 도망을 빌미로 자신과 귀비까지 다그칠까 봐 오들오들 떨었다.

그러나 이 아이가 자신을 보고 도망치는 걸 보았을 때, 아이를 여기서 보내야겠다는 결심이 들었다. 아이는 죄가 없었다. 순하게 잘 큰 게 죄라면 죄였다. 혼례 날, 자신을 범하는 아비에게 싫다는 소리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던 아이였다.

황제의 지독한 애정에 갇혀 친왕으로서 활약도 못 한 아들을 안쓰럽게 보며 그녀가 입을 열었다.

“다음에 다시 만나자꾸나. 우선은 그렇게 알아둬. 도망갈 기회가 생기면, 도망가게 도와줄 테니… 도망가거라. 너도 알고 있겠지만, 폐하는 나라를 버릴 수 없는 분이시다. 자신의 목숨과 부를 버리면서까지, 도망간 너를 잡지 못할 것이야.”

“어머니는요?”

강이 벌써부터 겁을 먹고 여 소의를 챙겼으나, 여 소의는 냉정하게 강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며 말했다.

“저는 신경 쓰지 마십시오. 어차피 한낱 소의에 불과한 여인이 아닙니까?”

여 소의, 어머니가 멀어져 간다. 강은 그녀를 붙잡고 싶었지만 도무지 몸을 움직일 수 없어 그곳에 서서 작아지는 그녀의 등을 보았다. 어느새 흐릿해진 가슴의 통증에 강은 눈을 깜박였다. 도망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가슴이 뛰었다. 무섭고, 또 얼핏 보이는 희망에 설레서. 강은 이상하게 가라앉지 않는 가슴에 손을 올리고 숨을 크게 내쉬었다.

정말 자기가 도망을 갈 수 있을까. 황제를 두고…. 황제가 상처 입을까 봐 걱정이 되었다.

자꾸만 뒤를 돌아보게 되는 마음에 강은 입술을 짓이겼다.

*

며칠째 시작되는 울렁거림에 강은 새카만 어둠속에서 몸을 뒤척거렸다. 처음 겪어보는 울렁거림은 강이 몸을 일으키게 만들었다. 나신으로 일어나, 이불로 몸을 가린 채 입을 틀어막았다. 구토가 하고 싶었다.

그러나 석반을 먹었을 때처럼, 헛구역질만 지속될 뿐 나오는 건 없었다. 강이 가슴을 두들기며 원래대로 돌아가려 노력하는데 그게 잘되지 않아 괴로웠다. 강의 뒤척거림에 옅은 잠을 자던 황제가 눈을 떴다. 기울어져 들어온 창백한 달빛 속에 앉아있는 아들의 모습이 그림으로 그린 듯 어여뻐서 지켜보던 황제는 강이 하는 헛구역질에 몸을 벌떡 일으켰다.

“아, 아바마마, 아니, 폐하. 그게 몸이….”

“언제부터 그랬지?”

황제는 어딘가 들뜬 것처럼 보였다. 강은 그의 반응을 보고도 몰라 고개를 갸웃했다. 언제부터라니. 오늘부터 뭔가 속이 울렁거리고, 꼬인 것처럼 좋지 않았다. 그래서 대수롭지 않게 넘긴 것이었다. 자기가 무엇을 한지도 모르고 강은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눈치를 보며 말했다.

“오늘 저녁부터 그랬습니다. 속이 좋지 않아서….”

“석반은 잘 먹었느냐?”

황제가 침의 자락을 여미며 궁녀를 불렀다. 궁녀가 한달음에 다가와 어둑어둑한 침전에 불을 밝혔다. 황제는 궁녀를 보지도 않고, 거추장스러운 긴 은발을 쓸어 올리며 “태의를 불러라.”라고 명령했다. 한밤중에 잘 자고 있을 태의를 부르는 게 이해가 가지 않아 강이 그들을 보는데, 황제가 강의 나신을 가리기 위해 직접 침의를 가지고 와 입혀주었다. 황제가 하는 대로 가만히 있던 강은 화사하게 웃는 황제를 보며 물었다.

“폐하, 신첩의 몸에 무슨 일이 생긴 것입니까?”

이럴 땐 또 소자가 아니라 신첩이라고 칭하는 아들이 예뻐서, 황제는 웃으며 뺨을 만지작거렸다. 정사를 마치고 누운 지 얼마 되지 않아 뺨이 뜨거웠다. 오늘도 무척 많이 울었기 때문이었다. 발그레한 눈가를 엄지로 쓸며 황제가 눈웃음을 진하게 덧그렸다.

“아기를 가진 것이지.”

“…예?”

강이 멍청하게 되물었다. ‘아기’란 말이 바로 머리에 들어오지 않았다. 아기, 아기, 아기…. 머리에서 메아리가 계속 울렸다. 그러다가 차츰 강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갔다. 황제는 백지처럼 변한 얼굴에서 발간 뺨과 입술을 연신 만지며 확답을 내렸다.

“드디어 그대의 배로 아우를 가졌구나. 축하한다.”

황제는 강의 얼굴이 서서히 굳어지고, 겁에 질린 걸 보면서도 우아하게 강의 손등에 입을 맞추었다. 황제의 입술이 닿은 자리가 뜨겁다. 뜨거워서, 녹아내릴 것 같다. 점점 가슴으로 몰리는 열에 강이 “아….” 하고 연약한 신음을 흘렸다.

“당분간 정사는 입으로 해야 할까. 그대의 구음 실력이 늘겠군.”

강이 수치심에 입술을 깨물고 얼굴을 붉혔다. 가슴은 무거워지고, 배는 울렁거리고, 머리는 황제로 인해 뜨겁다. 황제는 호숫가에서 풍류를 즐기는 한량같이 너그럽게 웃었다.

“그대가 왜 아기를 가져야 하는지, 그대도 잘 알잖아.”

황제가 풍전등화처럼 떠는 강의 얼굴을 잡고 속삭였다. 강은 황제의 손아귀에 잡혀 꼼짝달싹도 못 하고 아래만 보았다. 황제가 연신 ‘아이’니 ‘아우’니 강조하는 이유는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었다. 아이가 가장 큰 보호막이었다. 어머니를 통해 보았다. 자신이 황제의 사랑을 받기가 무섭게 어머니의 품계가 올라가고, 찬의 가짓수가 늘어나고, 내관과 궁녀들도 더 붙었다.

하지만 안다고 해서 바로 실행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설핏 치미는 두려움은 본능이었다. 강은 고개를 숙이려 했지만, 황제가 얼굴을 잡고 달래주느라 어쩔 수 없이 떨리는 눈으로 황제를 봐야 했다. 자신은 이리도 무서운데, 행복에 푹 젖어 흐물거리는 그를 보자 아무런 말이 나오지 않았다. 답답한 마음에 눈을 내리떴다. 황제의 손이 무척 부드럽고 상냥해 자꾸 기대고 싶었다. 강은 말없이 황제의 손바닥에 뺨을 댄 채 눈을 감았다. 일렁이는 그림자가 기울어져 강의 얼굴을 적셨다. 요새 들어 혈색이 옅어진 얼굴이 묘하게 야릇했다. 잠들기 전까지 흐느껴 울고 있던 터라, 눈가와 이어진 뺨, 입술이 확실히 붉었다. 하얀 뺨에 드문드문 퍼져간 열에 의해 가학심이 들끓었다. 당장 눕혀서 임신이고 뭐고, 아래가 다물리지 않을 때까지 박고 싶었다. 아들의 얼굴을 눈으로 음란하게 핥던 황제는 “폐하, 태의가 왔사옵니다.”라는 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강도 고개를 돌렸다.

“들라.”

황제가 나긋하게 명령을 내렸다. 문이 스르륵 열리며 태의가 법도에 따라 허리를 숙이며 들어와 바닥에 손과 이마를 댔다.

“이리 와서 진맥을 보거라. 희비가 임신을 한 것 같으니.”

태의가 주섬주섬 몸을 일으켜 황제와 강이 앉아있는 침상으로 다가왔다. 손목을 내밀고 싶지 않아 강이 황제를 빤히 보았다. 강의 내면을 보기만 해도 알아채는 황제가 웃으며 뺨을 만지작거렸다. 부자간이 아니라 정말 연인처럼 지독한 달달함이 흐르는 광경에 태의는 눈을 크게 떴다. 황제가 저런 얼굴을 할 줄도 알았구나. 늘 예의상 그린 것처럼 웃던 게 아니라 진심으로 행복해서, 기뻐서 웃는 얼굴이었다. 워낙 아름다운 얼굴이어도 무표정하게 있으면 오금이 저렸는데, 저리 웃으니 황제도 사람이구나 싶었다.

강도 그 얼굴에 한참이나 눈을 두더니, 한숨을 내쉬고 손목을 내밀었다. 태의와 눈이 마주친 강이 어색했는지 눈을 돌렸다. 그 누구와 있어도 한 폭의 그림같이 잘생긴 청년이건만, 황제와 있으니…. 묘하게 울리고 싶은 얼굴이었다. 황제의 우람한 상체에 가려진 몸이 유독 가늘어 보여서일까. 검은 머리카락 속에 가려진 하얀 얼굴이 어둠 속에서도 도드라져서일까. 강의 이목구비와 신체를 오목조목 살피던 태의는 다가온 손가락에 정신을 차렸다.

“천자의 아들을 보고 이상한 생각하지 말고.”

황제가 이마를 툭, 툭 건들며 서슬 퍼런 목소리로 다정하게 말했다. 태의는 자신의 자리로 돌아와 강의 손목을 잡았다. 늙은 태의를 보는 강의 표정에 긴장이 감돌고, 황제는 확실한 기쁨으로 웃었다. 태의는 혹여나 잘못 진맥할까 봐 몇 번이나 맥을 짚었다.

한참을 그러던 태의가 황제와 강을 번갈아 보다가, 바닥에 이마를 대며 크게 외쳤다.

“폐하, 희비 마마께서 회임을 하신 게 틀림없사옵니다. 경하드리옵니다!”

임신이었다.

설마, 아닐 거야, 하며 부인하던 강은 확실하게 가슴에 박히는 말에 얼굴이 하얗게 질려갔다. 아버지의 아기를 임신해버렸다. 그 사실이 머리에 쏙 들어오자 강은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었다. 강이 굳어서 태의를 뚫어져라 보다가, 입술을 느리게 움직였다.

“정말… 내가 임신을 했다고?”

강이 더듬거리며 말하는 걸 들은 황제가 강의 뺨에 입술을 맞대며 대답했다. 강의 체취가 묻어나왔다. 설국에 묻혀있던 자그마한 아이에게서 나던 체취는 어른이 되어서도 그대로였다. 뺨에 코를 묻은 채 강의 체취를 오롯이 혼자 빨아들이던 황제는 고개를 숙여 강의 목덜미에 파묻었다. 강은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창백하게 질린 채 바르작거렸다. 도망가고 싶으나, 도망갈 수 없는 현실에 눈을 굴리며 황제의 넓고 커다란 등을 보았다.

강이 신음을 삼키며 몸을 비트는데도, 강의 체취에 심취한 듯 황제가 거칠어진 신음을 흘리며 부드럽고 연한 목덜미에 코와 입술을 비볐다. 강의 체취가 났다. 막 돋아난 새싹처럼 푸른 냄새였다. 딱 정해서 표현할 수 없는 향에 처음부터 끌렸고, 길들여진 황제가 몽롱해진 눈을 깜박이며 고개를 들어 올렸다. 언제였는지 모르지만, 강의 옷자락은 거의 벗겨지다시피 흘러내려 있었다. 머리카락은 부채처럼 확 펼쳐져 시야를 어지럽혔고, 울긋불긋한 상체와 하체가 드러나면서 시야를 덮어버렸다. 강의 몸을 훑는 황제의 시선이 더없이 음탕해졌다.

강이 눈물을 그렁그렁 매단 채, 반항도 못 하고 침상에 누워 입술을 달싹였다.

“싫습니다.”

강이 긴 소매로 얼굴을 가리며 서글픈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얼마나 서러웠는지, 문장이 다 이어지지 못하고 중간 지점마다 뚝, 뚝 끊겼다.

“싫어요. 더 이상, 사람들 보는 데선 하고 싶지 않습니다.”

황제는 강이 왜 우는지 잘 알고 있었다. 강은 원래부터 사람들의 시선에 민감한 편이었다. 사람의 시선을 신경 쓰고, 항상 부모에게 자랑할 수 있는 자식이 되려고 노력했다. 반듯하고, 다정다감한 형이자 말을 잘 듣고 충직한 동생. 그 모든 것을 하려니 머리가 아프고, 힘든 거겠지.

황제는 강에게 단 한 번도 그런 자식이 되라고 말한 적이 없었다. 그저 아이가 자신의 옆에 오랫동안 있어 주길 바랐을 뿐이었다. 황제는 소리 죽여 우는 강의 얼굴을 보기 위해 손목을 잡아 눌렀다. 입으로는 ‘싫습니다.’라고 말해도 몸은 황제에게 눌린 상태라 강은 손끝만 움찔거리며 가만히 있었다. 고개를 왼쪽으로 돌리던 강은 사람들이 빤히 응시하고 있자, 화들짝 놀라 오른쪽으로 고개를 고정했다. 자신의 손목을 가볍게 제압한 황제의 두툼하고 큰 손이 보였다. 강의 시선은 힘을 주느라 오목하게 들어간 황제의 손등에 닿았다가, 서서히 황제의 팔을 타고 올라가 얼굴에 안착했다.

강의 영혼까지 빨아들일 것 같은 오묘하고 신비로운 황금색 눈이 오로지 강만 보고 있었다. 눈물이 맺힌 강의 눈은 밤과 새벽 사이에 잠든 호수 같았다. 투명한 어둠이 자욱하게 깔린 호수 아래로, 황제의 금안이 태양처럼 떠올랐다. 태양은 호수의 심연까지 빨려 들어가 빠져나올 수 없었다. 공존할 수 없으리라 생각했던 어둠에 태양이 겹쳐진 순간, 황제가 고개를 숙였다. 황제의 은발이 낙엽처럼 우수수 쏟아져 강과 사람들 사이의 장막이 되었다.

“싫으냐?”

“…아버지잖아요.”

강이 급기야 울음을 터트리며 속삭였다. 울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게 역력했다. 강은 황제에게 잡힌 손목을 빼내려 힘을 주며 조곤조곤 말했다.

“아무리 소자가, 아니, 신첩이 아바마마를 사랑한다 하지만, 이, 이건 불가능한 일입니다. 할 수 없어요. 저는….”

명치가 너무 아팠다. 돌로 수십 번 얻어맞은 것처럼 그 부분이 욱신거리고 멍든 것처럼 아파와 숨을 쉴 수 없었다. 강은 황제를 멍하니 보며 눈을 깜박였다. 고였던 눈물이 뚝, 관자놀이를 타고 흘러내렸다. 아버지의 아이를 임신했다. 천륜을 어지르는 짓을 저질러버렸다.

강은 눈물을 뚝, 뚝 소리 없이 처연하게 흘리며 무표정한 황제를 보고 말했다.

“이러시면 안 됩니다, 아바마마. 하늘이 맺어준 인연이라는 말로 아바마마와 소자를….”

황제의 입술이 삐뚜름하게 올라갔다. 강의 서글픔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의기양양한 미소에 강은 허탈하게 눈을 내리깔았다. 그래도 강의 입술은 멈추지 않고 처음으로 자신의 마음을 다해 고했다.

“하늘이 맺어준 인연이라 하여, 아바마마와 소자가 아이를 낳는다 해도 사람들이 손가락질을 할까 봐 두렵습니다. 혼례 날 때, 어머니가 보신 것도 걱정스럽고…. 형님도, 그리고 다른 비빈들도…. 대신들도, 다 보지 않았습니까? 분명 아바마마까지 욕되게 말할 것입니다. 소자는 그게 너무 서럽고, 하늘이 원망스러워…. 아이를 낳고 싶지 않습니다. 차라리 없었던 일이면 좋겠습니다.”

“아비는 좋은데.”

황제는 강의 원통하고 서러운 말을 산뜻한 고백으로 짓밟았다. 강의 눈이 화들짝 커졌다. 황제는 보란 듯이 강에게 얼굴을 가까이 갖다 대고, 눈물 젖은 뺨에 입술을 대어 눈물과 열기, 향까지 모조리 빨아먹은 후에 속삭였다.

“그대도 아비를 좋아하잖아. 그렇지 않은가?”

강의 어깨가 바들바들 떨렸다. 강은 소리도 못 내고, 어린 짐승처럼 황제에게 눌려 겨우 작은 얼굴을 끄덕거렸다. 지금 이 상황에서도 자신의 몸을 함부로 다루고, 제압하는 황제가 싫지 않아서 문제였다. 아버지로서 존경하고 사랑했다. 진심으로 온몸과 마음을 다해 그에게 충성을 바쳤다. 비록 친왕으로서 전쟁터에는 한 번도 나가지 못했지만, 수도에서 그를 위해 할 수 있는 모두 다 했다.

“아바마마를 사, 사랑하지만…. 그래도 아이를 낳는 것까진…. 못 하겠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도저히 낳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무섭습니다. 무서워요, 아바마마.”

황제는 엉엉 우는 강을 퍽 다정하고 사랑스러운 눈으로 더듬어 보며, 손을 내밀어 걷잡을 수 없이 흐르는 눈물을 닦아주었다. 그걸 지켜보던 사관이 ‘천제께서 희비를 애정 어린 손으로 만져주었다.’라고 기록에 적어 내렸다. 황제는 눈물을 멈추지 못하는 강을 아예 끌어안아 올렸다. 서로의 상반신이 맞닿았다. 어릴 때처럼 온몸이 쏙 들어오진 않았지만, 상체는 완전히 가려졌다. 황제는 강을 안고 침상에 걸터앉은 채, 강의 눈물 젖은 얼굴을 감상했다. 달빛이 반쯤 비친 얼굴에 묘한 야릇함이 감돌았다. 하루가 멀다 하고 매일같이 안았기 때문일까. 선이 가늘어진 얼굴을 손가락으로 쓸어 만졌다. 아직 솜털이 생생했다. 보들보들한 뺨을 문질러 만지자 강이 흠칫하고 떨었다. 때리면 울 것 같은 검은 눈을 보자 가학심에 불이 붙었다. 남근으로 얼굴을 세게 때려 자국을 남기고, 목에다가는 정액을 한 움큼 넣어주고, 아래에는 정액이 차고 넘쳐 질질 흐를 만큼 박아주고 싶었다.

눈물이 매달려 있는 검은 눈을 보고도 참을 수 있는 남자나 여자는 없을 것이다. 황제는 강의 눈가를 손가락으로 만져보다가 우아하게 웃었다.

“아비를 사랑한다고 그랬지?”

“네, 아바마마.”

강이 울먹거리면서도 사랑한다고 속삭였다. 물론 연인으로서가 아니라 아버지로. 그러나 어쨌든 사랑이었다. 사랑이라는 영역이 넓을 뿐, 공통적으론 사랑이었으니 된 것이었다.

“아비를 위해서 친왕으로서 무엇이든 하고 싶다고, 그리 말하였지?”

“…네, 아바마마.”

이제야 슬슬 두려움을 느끼는 건지 강이 우물쭈물 대답했다. 황제는 강의 뽀얀 이마에 입술을 대었다. 쪽, 하고 소리 나게 입을 맞추고 떨어진 황제가 강의 뺨을 하염없이 매만지며 웃었다. 그의 눈웃음이 너무 짙었다. 그 안에 푹 빠져들 것 같아, 강은 무심코 손을 뻗어 그의 어깨를 밀어냈다.

그러나 황제가 손목을 강하게 잡아챘다. 강이 미약하게 신음을 흘리자, 황제가 똑바로 강을 내려다보며 입술을 움직였다.

“그대가 아비를 사랑한다면, 아이 하나쯤은 그냥 낳을 수 있을 텐데. 안 그런가?”

“아바마마….”

강이 놀라서 말을 흘렸다. 강이 물러서는 틈을 알아낸 황제가 그 자리를 비집고 들어갔다. 황제는 웃음을 서서히 지우고서, 뒤를 보았다. 나가라는 말을 하지 않아도 태의와 궁녀들이 알아서 빠르게 나갔다. 황제는 강을 자신의 발아래에 꿇어 앉혔다. 강은 조신하게 황제 앞에서 무릎 꿇고 앉아, 그의 말을 기다렸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강은 황제의 말이나 행동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그렇게 키웠다. 20년 동안 오로지 황제만 보도록 키운 유일한 아들이었다.

황제는 강의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고 눈을 일직선으로 마주쳤다.

강의 눈이 흔들린다. 바람 앞에 선 촛불처럼, 금방이라도 후, 하고 사라질 것 같다. 강은 무척 불안해하고 있었다. 그건 본능이었다. 인간이기에 가지는 본능이 해서는 안 될 짓을 저질러 겁을 먹은 것이다. 황제는 유려하게 웃으며 아들이 뺨을 잡고, 엄지로 고의적으로 문질렀다.

“이미 시작된 거야. 더 이상 뒤로 물러날 수도, 바꿀 수도 없단다. 하늘이 정한 일이니까. 그렇지?”

황제의 음성이 그윽하고 부드럽다. 조금만 더 매달리면 꺾어줄 것 같은 그의 상냥함에 강은 홀려버린 듯, 그의 손을 꼭 잡았다. 황제의 손등에 자신의 손을 겹친 채 강이 고개를 들어 황제를 물끄러미 보며 입술을 열었다.

“아바마마는 정말 그리 하실 수 있습니까?”

강이 눈물을 억지로 삼키며 본심을 토로했다. 황제가 계속 말해보라는 듯 눈을 감고 슬며시 웃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여유로운 얼굴에 강은 불현듯 겁을 먹고 황제의 품으로 기어들어 갔다. 차라리 보지 않고 않았다. 그의 미소 띤 얼굴을 보면 마음이 다시 흔들릴 것 같았다. 아버지인가, 연인인가. 그 사이에 서서 결정해야 했는데, 너무 어려웠다. 그러니 그저 눈을 감고 등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무섭다. 너무 무서웠다. 강이 겁을 먹고 품에 안겨 떨자, 황제는 등을 가볍게 두들겼다. 자신의 허리에 팔을 감고, 고개를 침상에 떨군 채 힘을 뺀 강의 등이며 팔뚝을 쓸어 만지던 황제가 눈을 뜨고 정면을 보았다. 이지러진 달이 보였다.

마치 아비와 아들의 은밀하고 음탕한 정사를 훔쳐보기라도 할 듯, 산등성이로 얼굴을 내민 것이 우스워 황제는 입술 끝을 올려 웃었다.

“아이를 낳는 게 무서우냐.”

황제가 물었다. 강의 머리를 꼭 안아준 채, 다정하게 묻자 강이 거기에 고개를 파묻고 웅얼거리며 대답했다.

“네, 아바마마. 무섭습니다. 소, 소자가 어떻게 아버지의 아이를….”

황제는 무섭다면서도, 계속 자기에게 안기고 매달리는 강이 귀여워 소리 내어 웃고 말았다. 하하, 하하하하하! 쾌활하면서도 묘한 광기가 번들거리는 웃음소리에 강이 놀라 고개를 들었다. 어느새 황제는 웃음을 갈무리하며, 자신을 멍하니 보는 아들의 턱과 뺨을 지그시 잡고 말했다.

“만약 내가 원했다면.”

황제가 강의 몸을 번쩍 안아, 자신의 허벅지에 앉히고 허리를 억세게 휘어잡았다. 순식간에 황제의 위에 앉게 된 강이 놀라 황제의 어깨를 밀어내려 했지만, 그 손도 황제가 앗아갔다. 요사스럽게 눈웃음을 지은 황제가 아들의 뺨에 코와 입술을 맞대고 비볐다. 황제의 습기 밴 숨결이 여린 피부를 자극했다. 뺨을 타고 내려가 쇄골에 맺히고, 그 아래에 꼿꼿하게 솟은 유두까지 어루만졌다. 강의 숨이 점차 비틀리고, 덜덜 떨릴 때쯤 황제가 입술을 움직여 말했다.

“내가 하늘에게 널 원한다고, 널 달라고 바란 것이라면 받아들이겠느냐?”

“…그게 무슨…!”

강이 황제를 강하게 밀치려 했으나, 황제가 더 빨리 강을 침상에 눕히고 온몸으로 눌렀다. 양쪽 손목은 황제의 한 손에 잡혀 있었고, 두 다리의 약한 부분은 황제의 무릎에 눌려 옴짝달싹도 할 수 없었다. 황제는 남은 손을 풀어진 강의 침의 안에 넣어, 납작하고 부드러운 배를 만졌다.

그곳에 황제와 강의 아기가 있었다. 형체가 없는 아기를 몇 번이나 확인하려고, 배 위에서 덧그리는 움직임에 강이 숨을 들이마시고 움찔거렸다. 눈을 뜨면 황제가 금안으로 자신의 몸을 음란하게 훑을까 봐, 겁이 나서 보지 못했다. 그래서 줄곧 눈을 감고, 제발 이 시간이 끝나길 바라며 강은 덜덜 떨었다. 손가락이 오므라들고, 발가락도 안으로 곱아들었다. 쾌감과 공포는 몸에 비슷한 감각을 선사해, 분간이 어려웠다.

황제의 숨이 목덜미를 간지럽혔다. 강이 우는 소리를 내며 “제발, 제발….”이라고 빌었다.

“눈 떠야지, 강아.”

“흐윽, 으…. 아, 아바마마, 이, 이러지… 이러시면… 아!”

황제가 머리채를 잡고 누르는 바람에 강은 강제로 눈을 반쯤 뜰 수밖에 없었다. 강압적인 손길에 강이 입술을 질끈 깨물고 눈에 힘을 줬다. 눈물 때문에 뿌연 시야 속에서 그가 보였다. 쏟아지는 빛무리 같은 화사한 은발 사이에서 웃고 있는 미인이 보였다.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것처럼 신비롭고 단아한 얼굴 생김새에 강은 점차 눈물을 멈추고 이성을 잡으려 노력했다.

아버지다. 아버지야. 다른 사람도 아니고, 아버지니까. 괜찮다, 괜찮아. 속으로 몇 번이나 자신을 달래며 강은 심호흡을 하고 눈을 떠서 그를 보았다. 황제가 “그렇지.”라고 칭찬하며 손을 떼어내고 눈물에 흠뻑 젖은 뺨을 닦아주었다.

“그대는 아이 때나 지금이나 눈물이 많구나. 너무 자주 울고, 쉽게 울고…. 그래도 이게 다 천자 때문이라면, 기뻐해야겠지? 그대만큼 날 위해서 울어주는 사람은 없으니까.”

넋두리하듯 중얼거리던 황제가 짧게 웃었다. 그는 강의 목덜미에 얼굴을 파묻고 나른한 한숨을 쉬었다. 강은 멍한 눈으로, 어둠 속에서도 뚜렷한 문양이 보이는 천장을 보았다. 강이 머뭇거리다가 손을 뻗어 황제를 안아주자, 황제가 힘을 주어 강을 꼭 끌어안았다. 아까는 강이 아이처럼 매달렸다면, 이젠 황제가 강에게 고목나무의 매미처럼 매달린 꼴이었다.

“천자가 하늘에게 빌었다. 그대가 정말 예쁘고 사랑스러워서, 천자도 모르는 사이에 원하게 되었는데 줄 수 없겠느냐고.”

황제의 담담하고 담백한 고백을 듣는 강의 귀가 흠칫, 떨리고 몸이 굳어갔다. 황제의 등에 둘린 강의 손에서 힘이 슬슬 빠져나가는데도, 황제는 강에게 매달려 있는 터라 알지 못했다. 황제는 강의 체취에 심취한 듯, 그곳에 푹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하고 목덜미며, 어깨, 가슴팍에 코를 파묻고 향을 빨아들였다.

“그대도 천자를 사랑하잖아. 천자가 낳은 다른 아이가 태자가 되면 그 아이가 가장 먼저 공격할 건 그대겠지. 천자가 그대를 지키기 위해선 이 방법이 최선이었다. 그대도 잘 알잖아. 이 금궁에서 그대의 어미였던 여 소의가 그대로 인해 얼마나 큰 복을 받았는지.”

“소자를 태자로 만드는 방법도 있었습니다.”

강이 울분을 꾹꾹 누르고 말했다. 황제는 ‘태자’란 말에 다시 소리 내어 웃더니 고개를 들어 올렸다. 이미 강의 침의는 반쯤 벗겨진 상태였다. 황제는 자신의 흔적이 빼곡히 남은 하얀 몸을 검지와 중지로 쓸어보았다. 강의 몸이 바람을 못 이기고 떠는 이파리 같았다.

“흐읏, 아…. 싫어요….”

강이 손을 들어 얼굴을 가리고 울먹거렸다. 우는 얼굴이 보고 싶었다. 황제는 치미는 욕심을 이기지 못하고 강의 손목을 잡아 눌렀다. 눈물이 달린 눈초리가 길고 예쁘다. 오뚝하게 솟은 콧날과 물고 빨아서 부은 입술은 더할 나위 없이 사랑스러웠다. 이제는 젖내가 거의 사라진 뺨은 성숙한 향으로 물들었다. 그 향의 반은 자신이 준 것이었다.

내 아이였고, 내 아들이었고, 내 비였다. 내 것이었다.

황제는 치골에 아슬아슬하게 걸린 바지를 벗겨냈다. 강이 결국 “흑….” 하고 울음을 터트리며 황제를 보고 중얼거렸다.

“저, 정말 아바마마께서 제사 때 비, 비신 겁니까? 소자를 비로 달라고…?”

“그래.”

황제는 강의 다리를 벌려 어깨에 걸쳤다. 아래를 더듬는 노골적인 움직임에 강이 보료를 꽉 잡았다. 몇 날 며칠, 아니 혼례를 치른 후 지속적으로 교접을 한 덕분에 아래는 느슨하게 풀려있었지만 닿기만 해도 쓰라리고 아렸다. 황제의 손가락이 확실한 이물감을 남기며 안으로 침입하며 여부를 확인했다. 손가락 두 개를 벌려 쫀득하게 벌어지는 내부를 가늠하더니, 황제가 발기한 남근을 잡고 고환부터 퉁퉁 부은 입구까지 확실하고 느릿하게 쓸었다. 미끈하고, 뜨겁게 마찰되는 열에 강의 눈이 멍해졌다.

“태자 같은 건 시시하잖아.”

강이 입술을 꽉 깨물며 고개를 저었다. 태자 같은 걸 바란 적도 없었다. 그저 단순한 부자지간처럼, 천제의 애정과 신뢰를 받으며 당당한 친왕이 되고 싶었을 뿐인데.

“충성스러운 신하? 그런 건 발치에 널렸다. 천자는 그대에게 충성 같은 걸 바라지 않았어. 천자가 바란 건….”

말을 멈춘 황제가 남근에 힘을 실었다. 입구가 무리 없이 벌어졌다. 화끈한 열감이 남은 내부 위로 다시 덧새겨지는 통증에 강이 이를 악물었다. 황제의 남근은 너무 길었다. 두께도 상당해서, 가끔은 사람이 아니라 짐승과 한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도대체 언제쯤 다 들어올까. 강은 너무 아파서 헐떡이며 눈을 떴다. 배에 뭔가 들어차기 시작했다. 이물감과 꽉 차는 포만감 비슷한 더부룩함에 두 손을 내려 배를 만지작거렸다. 안이 얼얼하다. 황제가 빠져나가면 점막도 딸려 나갈 것처럼, 너무 강하게 밀착해 있었다. 강은 조금만 천천히 들어오라는 뜻으로 손으로 황제를 밀어보았지만, 그는 나무같이 고정되어 움직이지 않았다.

“천자가 바란 건, 이런 거였지. 천자의 아들인 그대는 이게 어울려. 그대만이 천자를 즐겁게 해준다.”

“흐윽, 아아, 아…. 사, 살살…! 아, 아파…!”

“아기가 아비를 알아보고 빨리 와달라고 그러는 구나.”

황제가 음탕한 말을 귀에 대고 속삭이며 허리를 느리게 움직였다. 전날, 아니, 오늘 여명이 트기까지 교합을 했던 터라 아직도 안이 쓰라리고 아팠는데, 황제가 확실하게 두툼한 귀두를 움직여 마찰하자 아파서 눈물이 펑펑 솟았다. 황제는 강의 우는 얼굴을 보면서 허리를 움직였다. 황제의 남근은 일직선으로 쭉 뻗어, 그저 들어오기만 해도 강은 너무 잘 느꼈다. 지금도 그러했다. 수치도 모르고, 아비의 남근을 품고서 좋아서 온몸을 덜덜 떨고 있었다. 아프다고 하는 것도 쾌감과 고통이 섞여서 그런 것이었다. 모르니까, 겁이 나서 그저 아프다고 엉엉 우는 아들을 보며 황제는 환하게 웃었다. 아들이 아파서 울 때마다 황제의 마음은 벅차올랐다.

원래 예쁘고, 귀엽고, 사랑스러울수록 울려주고 싶은 법이었다.

“그대도 그리 생각하잖아. 천자가 죽어서 사라지면? 과연 그 자리를 대신한 태자가 그대를 살려놓을까? 천자가 그러했듯, 가장 먼저 칼을 들이밀어서 목을 잘라내겠지. 그대의 아기도, 아내도. 그럴 바엔 천자의 옆에서 안전하게 목숨을 부지하는 게 그대도 낫지 않겠는가. 아기도 낳을 수 있으니 상관없을 테고.”

“소, 소자는 아기를 바란 적이…. 흐읏!”

황제가 거짓말하지 말라는 듯 허리를 세게 쳐올리자 강이 숨을 멈추고 고개를 젖혔다. 황제가 너무 깊숙이 들어와 안을 비비자 속이 울렁거렸다. 배가 꿈틀거리며 황제의 남근은 오물오물 조였다. 느껴서 강의 성기까지 벌떡 서서 정액을 질질 흘러 보냈다. 황제는 그 정액을 받아가, 강의 꼿꼿하게 선 유두에 바르며 중얼거렸다.

“그대가 아이를 좋아하는 건 천자도 잘 알고, 하늘도 알아. 그래서 그대가 임신을 할 수 있게 해준 거야. 아이를 너무 좋아하고, 아우도 좋아하니까. 아비의 아이를 가지면, 그 두 개가 동시에 성립되는 것이니 얼마나 좋은가? 그대에게도 행복한 일이야.”

“아, 아니… 아니에요, 아, 아…. 아, 아바마마, 아흑, 너, 너무…. 아, 그만….”

강이 지레 겁을 먹고 울음을 터트리며 고개를 저었다. 배꼽까지 들어와서 움직이지 않는다. 아니, 거기서 더 남근이 터질 것처럼 부풀고 있었다. 이러다간 아기가 있는 그곳까지 들어올 것 같아 강이 몸을 바르작거렸다.

“아, 아기는 아, 안 돼요, 마, 망가져요….”

“이 정도에 천자의 아기는 망가지지 않는다.”

강은 고개를 빠르고 확실하게 저었다. 호흡을 애써 가다듬으려고 노력해 보아도 쉽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것이 너무 깊숙이 들어와 구역질까지 나는 것 같았다. 너무 커…. 강은 멍하니 중얼거리며 눈을 굴렸다.

차라리 이대로 유산이 된다면. 강은 아기가 들어있는 배를 만지며 찰나의 순간 생각에 빠졌다.

정말 폐하의 말이 사실인가? 하늘에게 부탁해서 비빈을 받을 수 있다고? 하늘에 올리는 신성한 제사에는 황제의 감정 같은 건 실을 수 없다고 들었는데….

“무슨 생각을 그리 하지.”

황제는 강의 턱을 잡고, 고개를 바로 했다. 아까보다 또렷해진 눈이 일부러 황제를 보려고 노력하다가, 포기하고 눈꺼풀이 내려왔다. 강이 자주 쓰는 수법이었다. 토라진 듯한 강의 행동을 사랑스러운 눈으로 보던 황제가 입술을 내려, 맞대었다. 강이 주춤거렸다.

“우리가 모두 행복할 수 있는 길은 이것뿐이야.”

황제가 계속 세뇌를 하듯 강에게 속삭였다. 네가 비가 되어 내 옆에 머무르는 것이 안전한 것이라고. 그러나 황제에게 묻고 싶었다. 정말 그 방법밖에 없는 것이냐고.

“천자가 바랐다고 했지만, 사실은 하늘도 허락한 일이니…. 그대도 이제 슬슬 받아들여.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어. 그대는 여전히 천자의 아들이자 비이고, 천자는 그대의 군주지.”

결국 공범이었다. 황제도, 하늘도. 강은 흔들리는 시야 속에서 정신을 다잡으며 정면을 보았다. 살이 차오른 달이 침상을 창백한 은빛으로 적시고 있었다. 그 빛줄기 가운데 황제가 있었고, 자신은 황제의 아래에 깔려 낮 같은 밤을 보고 있었다. 강은 버티는 법을 잊고 침상에 널브러져 누웠다. 황제의 속도는 너무 빨랐다. 깊숙이 들어가서 빠져나올 때면, 붉은 점막이 미세하게 보였다. 그리고 다시 황제의 남근이 안으로 꾸물꾸물 들어가며 내벽도 거기에 맞물려 들어갔다. 삐걱거리는 침상의 소리, 남근과 내부가 마찰하는 적나라한 소리까지.

모든 것이 자신과 거리가 먼 줄 알았는데, 이리 가까이서 들을 줄이야.

강은 가슴이 묵직하게 아파와 숨을 쉬고 싶었다.

“아바마마, 아응, 아아…!”

아비의 밑에 깔린 강이 속절없이 신음하며 고개를 뒤틀었다.

싫어야 했는데. 그토록 싫다고, 머리로 싫다고 거부하면서 그럴 리가 없다고 거부했으면서.

넌 이러면 안 되잖아.

강의 머리에 퍼뜩 스치고 지나갔다. 강은 눈을 똑바로 뜨고 늑대의 털에 가려진 정면을 보려고 노력했다. 달이 그들을 보고 웃고 있는 듯했다. 아니, 아비의 밑에 깔려 좋다고 우는 자신을 보고 비웃고 있었다. 그건 곧 혼례식에 온 자들이기도 했고, 어머니기도 했고, 죽은 진영왕의 퇴색한 눈 같기도 했다. 결국 너도 아비를 원한 게 아니었냐고, 조롱하는 것 같았다. 그렇지 않고서 그렇게 좋아할 리가 없다면서.

내가 원한 건 이런 게 아니었는데. 어디부터 잘못된 거지?

강의 머리가 물레방아처럼 돌아갔으나 답은 나오지 않았다. 답은 애초에 강이 알 수 없는 곳에 있었다. 그 장소를 머리로 떠올리다가, 강은 내부에 퍼져가는 질척함에 눈을 감았다. 드디어 처음이 끝이 났고, 연달아 두 번이 남았지만 지금은 정신을 잃고 싶었다.

“강아. 눈을 떠보렴.”

“네….”

강이 정신을 겨우 다잡으며 앞을 보았다. 황제는 누워있었다. 자신은 그 위에 엎드려, 둔부를 보인 채 황제와 교합 중이었다. 멍하니 황제의 아름다운 얼굴을 보던 강은 고개를 내렸다. 황제의 넓은 어깨에 이마를 대고, 숨을 마시고 내뱉는데 황제가 강의 상체를 잡아 올렸다.

“아읏!”

순간 척추를 타고, 머리까지 뚫는 강렬한 쾌감에 전신에 힘이 들어갔다. 강이 주먹을 쥐고 전율했다. 발가락도 곱아들어 쾌감을 느끼고 있다는 걸 증명했다. 강의 머리가 축 늘어져 흔들거렸다. 황제와 연달아 정사를 맺은 터라 체력이 급격히 떨어져 있었다. 황제의 단단한 아랫배에 손을 댄 채, 더운 숨을 내쉬던 강은 연결된 부분을 만지는 황제의 손길에 어깨를 떨었다.

“부었군.”

“네…. 아파요.”

그러니 제발 그만해 달라고, 조르듯이 말했지만 그는 듣는 시늉도 하지 않았다. 황제는 주름 하나 없이 매끈하게 펴지고, 붉게 부은 입구 주변을 덧그리며 만졌다. 아프진 않았으나 충분히 민망했다. 황제의 아랫배에 손을 댄 채 숨을 고르던 강은 움직이라는 저의를 담아 만지는 손길에 고개를 들었다.

강은 달빛에 젖어 웃고 있는 황제를 보았다. 숨이 턱 막힐 정도로 아름다운 외모에 아랫배가 들끓는다. 가슴을 직격하는 통증에 신음을 삼키던 강은 집착 어린 시선에 고개를 저었다.

“모, 못 합니다. 할 수 없어요…. 이건 하면 안 되는 짓입니다.”

강이 어린 시절처럼 칭얼거리자, 황제가 강을 나긋하게 안아 다독거렸다. 그의 뜨거운 입술이 눈물 때문에 짭짤해진 관자놀이에 닿았다. 황제가 연달아 입술로 애정 담긴 낙인을 찍어주자, 그것이 가슴까지 닿았는지 강의 눈가에 또다시 눈물이 맺혔다. 황제가 뺨을 만졌다. 강은 차분하게 눈을 감았다.

“아들이 아비의 애까지 임신했는데 안 되는 일은 없단다.”

강이 눈을 떠, 제발 그러지 말라는 듯 쳐다보았지만 황제는 도리어 못을 세게 박을 뿐이었다.

“천명은 인간이 거스를 수 없다. 복종하는 수밖에 없지. 그대도 운명에 복종하는 게 좋아.”

그 운명이 아버지로 인해 조작된 것이라고 해도?

강은 다가오는 황제의 입술을 받아들이며 눈을 옆으로 굴려 흘러들어온 달을 보았다.

달을 타고 세상을 넘나드는 신선처럼, 이대로 사라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황제의 입술이 집요하게 달라붙고 혀가 안으로 파고드는 틈에 모조리 날아갔다.

“아, 아바마마….”

간드러지고 높아진 강의 목소리가 천장에 닿고, 바닥에 흘러넘쳤다.

*

봄이 한껏 여물었다. 꽃이 사방에 흐드러지도록 만개했다. 꽃 냄새가 진동했는지, 꿀벌과 나비들이 떼를 지어 다니며 꽃 속을 탐험했다. 백성들은 꽃으로 향기로운 바다를 이룬 산에 올랐다. 황제가 총애하는 희비의 회임을 축하하기 위해서, 너도 나도 꽃을 꺾기 위해 온 것이었다. 가시에 찔려 피가 나고, 벌에 쏘여 퉁퉁 부어도 그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황제는 연나라 최고의 성왕이었다. 그가 미숙하게 나라를 다스렸던 초기 시절과 다르게 안정을 찾아간 연나라는 자연재해도 오지 않았고, 더 이상 오랑캐들도 침범하지 않는 성스러운 땅이 되었다. 모두 현 천제의 은덕이라며, 모두 눈물을 흘리고 감읍하며 꽃을 꺾어 화관이나 다발, 반지 등을 만들어 희비에게 축하를 보냈다. 마을의 수장은 희비와 천제, 하늘을 위해 제사도 올렸다. 하늘은 그들의 마음에 감동해 꽃비를 뿌렸고, 천제 또한 흡족하게 보았으나 정작 임신한 희비는 침전에서 시들시들 앓았다.

“열이 심하군.”

이틀째 열이 떨어지지 않아 고민이었다. 황제는 강의 뜨겁고 축축한 이마에 손을 올린 채 혀를 차다가, 고개를 틀어 태의를 보았다. 태의가 고개를 조아렸다.

“소신, 성심성의껏 희비 마마를 돌보았습니다. 열은 몸이 낫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그러니 노여움을….”

“지금 천자가 노여움을 풀게 생겼느냐? 천자의 아이가 이리 아픈 것을.”

황제가 차갑게 분개했다.

“늙어서 머리가 둔해진 것이 아니냐?”

황제가 손가락질을 하며 조롱까지 퍼붓자, 태의는 수치스러움에 입술을 깨물고 고개만 조아렸다. 강의 일에 관해서는 노여움을 푸는 일이 없는 황제였다. 이제 여기서 끝인가. 태의가 저승사자를 마주한 심정으로 덜덜 떠는데, 말없이 황제의 말을 듣고 있던 강이 손을 들어 황제의 아름다운 용포 자락을 잡았다. 아주 약한 힘을 바로 알아챈 황제가 고개를 돌렸다. 강이 이리 와보라는 듯 손을 이용해 말했다. 황제가 말을 잘 듣는 아이처럼 얼굴을 바짝 가져가자, 강이 뜨거운 숨을 후우, 후… 느리게 뱉어내며 귀에 대고 속삭였다.

“아바마마…. 아니, 폐하. 신첩이 몸이 약해져서 그런 것이니 너무 태의를 뭐라 하지 마십시오.”

“하지만 그대가 이리 아픈데.”

황제는 자기가 아픈 것처럼 눈살을 찌푸리며 강의 손등을 뺨에 비볐다. 강은 끙, 하고 앓는 소리를 내며 중얼거렸다.

“폐하가 너무 오래 하셔서…. 신첩이 아프다고 말했는걸요.”

강이 눈을 힐긋 돌려 황제를 보자, 할 말이 없어진 황제가 입을 다물었다. 임신한 강을 아침이 올 때까지 안았으니, 강의 몸에 무리가 갈 만했다. 더불어 황제의 고백으로 충격을 받은 터라, 신체와 마음이 둘 다 아파 열이 난 듯했다. 황제는 뚱한 얼굴로 강을 보더니 투덜거렸다.

“그러게 왜 자꾸 안 되는 짓이라고 해서….”

“신첩이 죄송할 따름입니다. 이제 괜찮으니, 조정에 가셔도 됩니다. 신첩은 이곳에서 치료를 잘 받고 있겠습니다.”

강이 어서 가보라는 듯, 지친 기색으로 말했다. 황제는 무감한 금안으로 열에 차오른 붉은 얼굴을 보다 몸을 일으켰다. 황제가 눈을 감으라고 말하는 것처럼, 강의 눈가에 손을 올렸다. 큰 손에 얼굴이 반이나 가려졌다. 강은 황제의 손아귀에서 눈을 감고 옅은 잠을 청했다.

무척 잔혹하고, 제멋대로인 아버지였지만 이런 점에선 미치도록 다정했다. 차라리 하나만 하지, 두 개를 완벽하게 분간해서 행동하는 아버지가 원망스러웠다. 미워하는 것도 제대로 못 하게 하다니.

‘아우를 낳으면 너의 자식인 것처럼 예뻐해도 된단다.’

어느 날, 황제가 자신에게 탕약을 내리며 그런 모호한 말을 했었다. 문득 떠오른 과거에 강은 열이 감도는 눈을 떴다. 사방이 뿌옇다. 열 때문인가. 태의의 말로는, 너무 집요하고 집착적으로, 가학적으로 정사를 맺어 몸이 무리가 온 것이라고 했다. 그곳도 이미 퉁퉁 부어서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했는데. 그 모든 것이 낫느라 열이 나는 것이라고 그랬는데, 왜 이리 아픈 건지.

‘진짜 아우를 갖게 해주마.’

“진짜 아우…?”

강은 자신의 배를 감싸며 중얼거렸다. 과거에도 황제가 그런 말을 했던 거 같은데. 잡힐 듯, 잡히지 않는 과거에 강은 미간을 찌푸렸다.

그럴 리가 없다. 아버지가 아무리 나에게 미쳐있다 해도, 그런 짓을 했을까. 임신은 하늘의 뜻이었겠지. 그렇게 머리로 생각하는데 그 답이 흐리멍덩했다.

이미 그때부터 황제가 강의 운명에 뛰어든 것일 수도 있다고. 강은 눈을 번쩍 뜨고 이불을 끌어당겼다. 그런데 다리 사이에 누군가 있었다. 보슬보슬한 감촉에 황제인 줄 알고 화들짝 놀랐으나 황제는 조정에 갔다.

“아, 설이구나.”

강이 고개를 살짝 들었을 뿐인데 머리가 어지러워 풀썩 누웠다. 침상에 멍하니 누워 색색거리던 강은 생각보다 침착하게 상황을 판단했다.

태어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모든 것이 황제의 뜻대로 이루어졌다. 그는 천자니까. 인간이기 전에 하늘의 뜻을 받아 태자가 되었고, 지금껏 별 탈 없이 황제의 자리를 이어오고 있다. 그가 낳은 자식만 스무 명이 넘었으며 그중 살아남은 건, 반도 안 된다. 유달리 많이 죽은 형제의 수에 강인 고개를 갸웃했다.

정말 이게 우연일까. 황제가 자신을 원해서 하늘에게 바랐다고 말한 순간부터, 의심은 쉽게 가시지 않았다. 태풍을 만난 것처럼 하나둘 쓸려나가던 형제들, 비빈들. 그리고 대신들까지. 몇백 년 만에 부활한 근친혼. 심지어 보통 형제, 친척 간에만 이루어졌는데…. 직접적인 관계로 맺어진 건 시조밖에 없었다.

“설마….”

정말 만약이지만, 정말 희미한 의심으로 생각한 만약이지만.

그가 처음부터 모든 걸 계획하고 다 죽인 것이라면.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그렇게까지 해서 자신을 갖고 싶었을까? 아무리 그래도 그는 다른 형제들의 아버지였다. 그의 사랑을 갈구하던 형제들이 전쟁터에 나가 자신을 증명하다가 죽은 일을 알기에 강은 이불로 기어들어 갔다.

그렇다면 비빈들은 어떻게 되는 거지? 자신이 희비가 되었다면, 어머니가 포함된 비빈들도 무사하지 않을 터였다. 자신이 아프거나, 유산되기라도 하면 바로 비빈들을 모함해서 죽일 지도 모르는 황제였다.

자꾸만 심해지는 망상에 강은 머리를 잡고 흔들었다. 늑대가 된 아버지와 두 번이나 관계를 맺어서 나도 상상을 하는 것인가. 허탈한 웃음을 흘리던 강은 아랫배가 욱신거리는 통증에 허리를 숙였다.

예전에도 이렇게 배가 아팠었다. 황제가 준 탕약을 먹고 난 직후였다. 그때와 유사한 통증에 강은 눈을 깜박거렸다. 식은땀이 주륵 흘렀다.

강은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가 없다. 이 모든 건, 자신의 몸이 허약해졌기 때문에 생겨난 의심이었다. 가슴이 너무 아파서, 원인을 찾고 싶어서.

“흐으….”

그러나 이해하려고 노력을 해도 가슴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어떻게 자신에게 이럴 수 있을까. 적어도 자신을 사랑해줬다면, 이해해줬다면 이런 방식으로 취할 순 없었다. 하늘을 이용해 자신을 강제로 취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오로지 그를 위해서 산 20년이었는데, 한순간에 그가 모든 걸 짓밟았다. 자신의 노력, 성취, 모든 것을. 그가 자신의 얼굴을 아끼는 걸 알아 얼굴도 가렸고, 전쟁터에 나가 죽을까 봐 전쟁에 출정하지도 못했고, 혼례도 하지 못했다. 모두 그가 원해서. 그가 싫어할까 봐, 그에게 미움을 받을까 봐, 그게 다른 이들에게 화살로 날아갈까 봐 그저 참기만 했는데.

이 임신도 참아야 할까.

강은 떨리는 손으로 아이가 있는 배를 만졌다. 배를 쓰다듬던 강은 궁녀가 “마마.” 하고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무슨 일이냐.”

강이 다 쉰 목소리로 물었다. 이내 궁녀가 단아한 목소리로 나긋하게 화답했다.

“태후 마마께서 뵙기를 청하십니다.”

“어디서?”

땀을 잔뜩 흘린 몸을 일으켜 물었다. 궁녀는 머뭇거림 없이 태후가 기다린다는 장소를 말했다. 화원 근처에 있는 전각이었다. 한숨을 내쉰 강은 가볍게 목욕을 하고, 평복에 자줏빛 장의를 걸치고 그녀를 보러 갔다. 아픈 강을 지켜주기 위해 붙인 것이라고 하지만 물고기 떼처럼 많은 사람들을 보고 강은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완연한 봄기운 속에 홀로 겨울인 것처럼 쓸쓸하게 걷던 강은 걸음을 멈추었다. 배가 너무 아팠다. 강이 배를 감싸고 신음하자, 내관이 호들갑을 떨며 다가왔다. 강은 창백해진 얼굴로 이를 악물고 참았다.

“아니야, 가자.”

참는 것이 익숙한 강은 바늘 끝을 걷는 암담한 기분으로 전각을 향해 갔다. 햇볕에 들어온 화원이 무척 아름다워 잠시 거기에 시선을 두었다. 그러다가 느릿하게 걸음을 옮겨, 계단까지 올라간 강은 태후를 마주하고 엎드리려 했으나 태후가 무감한 얼굴로 손을 들어 저지했다. 황제와 지홍왕 일이 아니라면 지독하게 냉정한 그녀의 모습에 강은 쓰게 웃었다. 아픈 기색이 역력해도 그녀는 흔하게 ‘괜찮으냐?’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반듯하게 앉아 강을 뚫어지게 보느라 바빴다. 수없이 본 얼굴인데도 태후이자 할머니를 마주하는 게 거북해 강은 눈을 돌리고 싶었다. 그러나 예의에 어긋나는 일이라, 강은 덤덤하게 그녀를 보려고 노력했다.

태후의 시선이 머리부터 드러난 손까지 닿았다. 미처 가려지지 않은 목과 쇄골 부근에 남은 아들의 흔적에 태후는 헛기침을 했다. 손자는 그것도 모르고 아픈 얼굴로 간신히 앉아있었다. 하얗게 질린 얼굴, 붉어진 눈가와 입술, 초점이 풀린 검은 눈. 원래 손자가 저렇게 애틋하고 아련한 얼굴을 했던가. 잠시 눈을 흘기고 고민에 빠졌던 태후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들과 손자의 열렬한 혼례를 보고 났더니, 그 광경이 뇌리에 박힌 듯 자신까지 이상해졌다.

“이리 와보게.”

손자에게 시선을 거둔 태후가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자신의 궁녀를 불렀다. 늙은 궁녀가 손에 무언가를 들고 다가왔다. 궁녀가 가져온 건 약이었다. 태후는 직접 일어나서 강에게 함을 열어, 그 안에 소중하게 담겨있는 약을 보여주며 조곤조곤 말했다.

“그대는 폐하의 씨앗을 품은 몸이니, 앞으로 몸 관리를 잘해서 훌륭한 황자나 황녀를 낳아줘야 하네. 그게 그대의 일이니까. 하루 세 번, 식전에 먹으면 되는 걸세. 폐하께도 말씀을 드렸으니, 잊지 말고 먹게.”

“네, 마마.”

답답한 마음에 이곳을 탈출하고 싶었지만, 할머니였고 폐하의 어머니였으니 참았다. 그래도 참는 것에 한계가 있었는지 가슴에서 죄는 듯한 통증은 심해졌고, 아랫배가 찌르르하게 울리는 통증이 목구멍까지 치고 올라왔다. 강이 통증을 이기지 못하고 상을 잡고 숙이자, 태후가 영 탐탁지 않다는 얼굴로 강을 보았다.

“그렇게 아프면 침전에 있을 것이지. 폐하께서 도리어 나에게 화를 내시면, 그대가 책임져줄 것인가?”

이제 진짜 자신을 손자가 아니라 며느리로 취급하는 그녀의 태도에 강은 가슴에 멍이 든 것 같았다. 아무도 자신의 처지를 이해해주거나, 위로해주는 사람이 없었다. 어머니를 제외하고서 말이다.

강은 고개를 들어 태후를 보고 메마른 입술을 달싹거렸다.

“마마께서도 저에게 바라는 일이, 폐하를 위해 몸을 바치는 일입니까?”

“그러면 비빈이 된 그대가 무얼 할 수 있다는 거지? 어차피 비빈의 일은 단 하나야. 하늘의 아들이신 폐하를 성심성의껏 모시는 것이지. 폐하께서도 그대를 무척 어여삐 여기시고, 사랑하시니….”

모호하게 말을 흐리던 태후가 아미를 찡그리며 툭 내뱉었다.

“설마 혼례를 치른 지 한 달이나 지났는데 아직도 폐하를 아버지라고 생각하는 건 아닐 테지. 그대도 그날 무척 좋아하고 느꼈던 걸로 아는데. 아닌가?”

가슴에 못이 대여섯 개 박힌 듯 아팠다. 숨도 못 쉬고 멍하니 태후의 얼굴을 보던 강은 눈을 느리게 깜박이며 힘없이 중얼거렸다.

“노력하고 있습니다.”

“노력만 하면 안 되지. 실행을 해야지. 그대가 아프면, 폐하께서도 신경이 쓰여서 나랏일에 집중 못 하실 걸세. 그러다가 하늘의 버림이라도 받는다면? 이 나라는 하늘의 뜻으로 좌지우지되는 나라이니, 절대적으로 폐하의 심신안정이 필요해. 그대가 아무리 힘들어도, 폐하의 심기를 거슬러서는 안 된다는 뜻일세.”

그녀의 말은 늘 듣던 대로였다. 이 나라의 건국 이치였고, 지금까지 나라를 태평하게 이어왔던 일이기도 했으니까. 태어났을 때부터 마음에 새겨온 것을 그녀의 입을 통해 들은 것에 불과했지만 왜 이리 가슴이 싸르르하게 아픈 것인지. 강의 표정이 안 좋아지자 그녀가 자신의 실수를 깨닫고 한숨을 내쉬었다. 비빈들을 대하듯 강을 대했는데, 강은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침울해 보였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우울한 얼굴에 태후가 손을 내밀어, 처음으로 손자의 가느다란 손을 잡았다. 활을 무척 잘 쏘던 사내다운 손이 살이 빠져 말라있었다. 이렇게 가까이서 마주 보니 조금 안쓰럽기도 했다.

“희비. 그대가 힘든 건 잘 알아. 혼례 자체가 버거운 일이지.”

태후가 기억에서 잊은 지 오래인 자신의 혼례를 떠올리며 자조적으로 웃었다.

“수치스럽고, 내 몸이 내 것이 아닌 느낌이지. 오로지 폐하를 위해 존재하는 느낌. 특히 희비는 폐하의 아들이었으니, 얼마나 힘들지 잘 알지만 그래도 견뎌야 해. 시름시름 여기서 앓아가면서 죽는 건, 그대에게만 안 좋은 일이야.”

“태후께서는 폐하가 절 아들이 아니라 희비로 안는 걸 보셨는데…. 납득이 가십니까?”

강이 드디어 건조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녀는 흔들리는 강의 눈을 똑바로 응시하며 입을 열었다.

“납득이 안 가면? 하늘로 돌아가기라도 할 것인가?”

그녀의 직접적인 물음에 강은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태후는 지극히 현실적인 사람이었다. 그녀 또한 선황과 원하지 않았던 혼례를 치러야 했다.

그녀는 강의 손을 꽉 잡고, 눈을 마주 보며 웃었다. 수십 년을 금궁에서 버텨온 자답게 여유롭고 연륜이 넘쳐나는 미소였다.

“이 자리는 남들이 가지지 못해 안달 난 자리야. 즐겨. 그러면 간단하지 않은가? 그대도 그날 무척 좋아하던데. 그대로 가면 되는 것이야. 아버지라는 생각을 버리고, 그대의 하나뿐인 지아비라 생각하면서 즐기게. 그럼 되는 거 아닌가? 부도, 권력도, 명예도. 모두 폐하께서 그대에게 선물로 줄 것인데, 뭘 그리 어렵게 생각하는가? 그대 또한 아비를 무척 사랑하는 걸 알고 있네. 그 마음을 조금만, 아주 조금만 바꾸면 되는 간단한 일이야.”

정말? 아니었다. 그리 할 수 없어서 이리 괴로운데. 그 누구도 알아주지 못하는 고통에 강은 눈을 감고 싶었다. 너무 힘들고 피곤했다.

“네, 마마.”

“그대가 편안해야 아이도 잘 크지. 그래야 폐하도 행복하고. 그러면 우리 모두 행복하게, 이 금궁에서 잘 지낼 수 있을 걸세.”

편안이라… 강은 그녀가 했던 말 중에서 유독 선명하게 들리는 단어를 곱씹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본래 늙은이의 말은 적당히 들어주고, 끊는 게 중요했다. 괜히 반발했다간 대화만 길어지고, 쓸데없이 여기서 그녀와 기 싸움을 해야 했다. 선천적으로 기 싸움을 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 터라, 강은 그저 맞는 말이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배가 아파서 빨리 가고 싶기도 했다.

태후는 고분고분하게 대답하는 강을 흡족한 얼굴로 보며 손등을 매만졌다.

“그래. 그때처럼 하면 돼. 혼례처럼.”

혼례를 강조하는 그녀를 보자 얼굴이 하얗게 질려갔다. 자신은 기억하기 싫은 혼례인데, 그녀는 그날의 강이 무척 예뻤다며 과분한 칭찬을 했다. 강의 얼굴이 점점 파리해지자 태후가 강에게 그만 쉬라고 말하며 몸을 일으켰다.

“언제나 약 잘 먹고. 꼭 건강한 아이를 낳아야 하네.”

“네, 마마.”

그러니 제발 빨리 가달라고, 강은 속으로 빌었다. 다행히 눈치가 빠른 태후가 궁녀들과 함께 물러났다. 드디어 혼자가 된 강은 상에 엎드린 채 신음했다.

“마마, 태의를 부를까요?”

줄곧 강의 상태를 지켜보던 궁녀가 넌지시 말했다. 강은 고개를 저었다. 팔뚝에 이마를 대고 있던 강은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미안하지만, 혼자 있고 싶은데…. 잠시만 나가줄 수 있을까.”

“예, 마마.”

궁녀들과 내관, 호위들을 모두 물린 강은 배를 만졌다. 여기에 아버지의 아이가 있다. 모두가 낳길 바라고 있는 아이인데, 자신만은 원하지 않고 있었다. 무엇보다 이 금궁에서 그와 같이 있다간 자신이 미칠 것 같았다. 가슴이 너무 아파서, 터져서 죽을지도 모른다. 주먹을 쥔 채 고뇌에 잠겨있던 강은 불현듯 상을 손가락으로 만졌다.

황제의 사랑을 순수하게 다 받아들이면 좋을 텐데…. 그러나 자꾸 끝에 의심이 달라붙는 건, 무슨 일일까.

확인해보고 싶었다. 정말 이게 황제가 하늘에게 청해서 일어난 일인지. 황제가 자신을 태자가 아닌 비로 만들기 위해 저지른 일인지. 전자라면 황제도 순수하게 빌었을 뿐이니 받아들이려고 노력하겠지만, 만약 후자라면. 그의 욕심으로 일어난 일이라면….

끝없이 몰아치는 의심에 자신의 머리가 갉아지는 지경이었다. 이 의심이 강을 몰아세우고 있었다. 또한 황제와 정사를 맺을 때마다 끝에 달라붙는 ‘아버지’란 존재가 강을 벼랑 끝으로 몰고 있었다. 몸이 좋아서 안달을 내며 그를 찾을 때마다 괴리감은 더 심해졌다. 너무 좋은데, 아버지라서 너무 원망스러웠다. 특히 그와 정사를 맺고, 그가 정무를 보러 가면 홀로 침전에 남아 쉽게 우울해졌다. 황제는 늘 같은 황제였는데. 강은 달라져서 겉에서 맴돌고 있었다.

“만백산.”

강은 배가 꼬이는 통증에 신음하면서, 가장 높은 산에 있는 신당을 떠올렸다. 만백산. 그곳에서 천명을 들으면 거짓이 없다고 했는데.

도망을 생각하는 강을 붙잡기 위해서인지 배의 통증이 더욱 극심해졌다. 더 이상 정신을 잡을 수 없었다.

“아바마마….”

강은 자신을 이렇게 만든 황제를 무의식중에 불렀다. 이래도 행복하냐고 묻고 싶었다.

그러나 답은 정해져 있었다.

‘아비는 좋은데.’

그는 웃을 것이다. 행복하니까. 아바마마는 행복한데, 왜 소자는 이리도 슬프죠. 아바마마가 갖고 싶어 하는 이 아이를 소자는 원하지 않습니다. 소자는, 그저 아버지의 자랑스러운 아들이 되고 싶었을 뿐인데.

문득 자신은 태어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황제가 애지중지 여기는 아들 그 이상도, 이하도 되지 못한 걸 깨닫고 나니 모든 노력이 부질없어 슬퍼졌다. 공허했다.

*

외정의 중앙에서 서쪽으로 옮겨가면 황자나 친왕들, 황녀들을 독대하는 화비전이 나타난다. 늑대의 코를 상징하는 태화전을 중심으로 위쪽에 있어 눈을 나타냈다. 만남과 황제의 눈을 상징하는, 두 개의 의미가 있는 화비전의 회랑을 걷는 경혜왕의 발걸음이 사뿐했다. 학처럼 긴 다리로 소리도 내지 않고, 한 걸음, 두 걸음 걷던 경혜왕이 고개를 돌렸다. 저 멀리 손을 흔드는 아들이 보였다. 자신이 곧 죽는 줄도 모르고 환하게 웃는 아들의 모습을 보며 가면 속에서 무표정하게 있었다.

멍청한 녀석. 뭐가 좋다고 저리 웃어?

시커먼 내면으로 어린 아들을 향해 타박을 한 경혜왕은 한 손으로 가면을 풀었다. 오늘의 가면은 슬픔을 나타내는 우는 가면이었다. 딱히 슬프진 않았다.

그날 이후로 경혜왕의 심연엔 분노밖에 남지 않았으므로, 슬픔 같은 것도 느끼지 못했다. 다만, 가끔, 바람이 불어 얼굴이 찢어지게 아프거나 사라진 팔에서 환지통이 느껴질 때면 어머니가 생각났다. 유일하게 자신만 보고 살던 어머니. 이젠 아버지인 황제에게 버림받고, 아들이자 새로운 비빈에게 밀려 뒷방 노인네 신세가 되어버린 어머니.

그녀에게 사실을 말하지 못해서 미안했다.

사실, 당신의 아버지 내 손으로 죽였다고. 하지만 내 탓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다. 이 모든 건, 저 화비전 어좌에 앉아있는 욕심 많은 아비 때문이었다.

이럴 거면 애초에 강을 황후로 삼고 예뻐할 것이지, 무슨 눈이 무서워서 강을 친왕으로 내버려 두고 그렇게 아껴뒀을까. 먹기 좋을 때까지 기다렸던 걸까. 그렇게 먹고 싶어 안달이 난 눈으로 온몸을 끈적하게 발라뒀는데, 누가 감히 강을 건드릴 수 있었을까.

황제가 강을 볼 때의 눈을 안다. 강이 황제를 볼 때의 눈도 잘 알고 있다. 늑대도 되지 못하는 주제에, 진짜 어린 늑대처럼 황제를 쫓던 검은 눈. 더 놀라운 건, 이 눈을 자신만 알고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대신들과 비빈들도 확실함을 가지지 못할 정도로, 자신의 감정을 아버지란 가면으로 음습하게 가려두었던 황제.

그는 진짜 미친 사람이었다. 아무리 하늘의 이름을 빌려도 그는 미친 아버지였다. 아들에게 발정하는 아버지라니. 그리고 그의 품에 안겨 들떠서 신음하던 강도, 마찬가지였다. 끼리끼리 붙어먹은 것이다.

“한심한 놈.”

“예?”

강을 향해 자기도 모르게 중얼거리던 소리를 내관이 듣고 멍청하게 되물었다. 됐다는 식으로 손을 휘젓고, 가면을 그에게 내밀었다. 내관은 경혜왕의 찢겨진 왼쪽 얼굴을 보고 흠칫했다. 경혜왕은 부러 그를 향해 괴상하게 웃어주고서, 슬쩍 말을 남겼다.

“걱정 말게. 이 얼굴도 오늘이면 끝이니까.”

“주,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전하.”

“그러면 죽어 볼 테냐?”

“예?”

“죽어버리라고. 죽을죄를 지었다며? 그럼 죽어야지, 여기서 무얼 하고 있는 거야? 죽어버려.”

내관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갔다. 그러나 최종 결정권은 황제에게 있었으므로 경혜왕의 말은 실행되지 않았다. 장난일세. 경혜왕이 히죽 웃으며 내관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고 화비전 문 앞에 섰다. 내관 두 명이 소매에 손을 넣고, 허리를 숙이며 경혜왕이 왔다고 황제에 알렸다. 총 12번을 거치고 나서야 문이 차례대로 열렸다. 경혜왕은 몸에 익은 법도대로 차분하게 걸어가, 연단 앞에 섰다. 무릎을 꿇고 손을 바닥에 댄 채 허리를 숙였다.

“신 경혜왕, 고귀한 천제 폐하를 뵙사옵니다.”

“고개를 들라.”

황제의 나른하고 우아한 목소리가 화살처럼 귀에 푹 꽂혔다. 언제 들어도 가슴이 시릴 만큼 낮고 그윽한 목소리가 화비전에 울창하게 퍼져갔다. 경혜왕은 그 목소리에 짓눌린 듯 숨을 한 차례 내뱉다가, 그 호흡보다 느리게 고개를 들어 올렸다. 그리 높지 않은 곳에 앉아있는 황제가 웃고 있는 게 보였다. 빛을 받은 은발은 하나로 묶어서 어깨를 타고 내려와 가슴을 가렸다. 은발에 잘 어울리는 투명한 진달래꽃 색 장의는 느슨하게 걸쳐 종아리에서 흔들거렸고, 안에 덧대어 입은 평복은 백색으로 청실과 홍실로 부부의 금실을 상징하는 꽃과 나비, 벌들이 새겨져 있었다. 봄을 상징하는 아름다운 옷을 입은 황제는 영락없이 사랑에 빠진 청년이었다.

아들과 딸, 거기에 손자와 손녀까지 둔 황제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의 미색에 경혜왕은 자기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정말 아름다운 자태에 사내다운 목소리. 굵직하고 긴 팔다리. 성격만 아니라면 흠잡을 곳 없는 성왕의 모습이었다. 황제는 원망과 시기로 불타는 아들의 눈을 알아챈 듯 여우처럼 눈웃음을 살살 지었다. 교태로운 미소에 경혜왕이 눈을 내리깔았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래, 저렇게 다 가졌으니 내가 당신이 가진 것 중 소중한 걸 가져가도 상관없겠지. 경혜왕은 속으로 비릿하게 웃으며 고개를 조아렸다.

“폐하, 소신은 이제 폐하를 위해 충성을 바칠 수 없는 몸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리하여 인사를 올리고, 서남부 현으로 남은 처와 자식들과 함께 떠날까 합니다.”

“이미 서한으로 보아서 알고 있다. 가도 된다. 단, 그대가 가장 아끼는 아들, 하제는 두고 가야 할 것이다.”

황제는 하제를 음관으로 들여보내라며 남기라고 말했지만, 그의 본심은 경혜왕도 황제도 잘 알고 있었다. 아들 하제는 인질이었다. 하제와 이미 혼인을 약속한 예비 며느리까지도. 한 명이 까딱 잘못하다간 모두가 다 같이 저승으로 가는 상황이었다.

경혜왕은 그건 두렵지 않았으나, 왠지 모르게 조금 슬퍼졌다. 자신을 아들로 인정하지 않는 것도 그렇지만, 끝까지 손자인 하제를 ‘내 손자’라고 안아준 적이 없는 황제였기 때문이다. 그가 인정한 아들과 손자는 강과 강의 배 속에 있는 아이뿐이었는데. 새삼스럽게 다시 느껴도 치욕스럽고 화나는 상황에 경혜왕은 애써 분노를 삼켰다.

“그동안 천자를 위해 고생해주었다. 고맙구나. 그대의 충직한 마음은, 아들인 하제가 잘 받을 것이니 걱정 말게. 본래 부모의 공로는 자식이 받는 것 아니겠는가?”

“정말 그리 생각하십니까?”

본심을 숨기지 않고 경혜왕이 불쑥 내뱉었다. 황제의 눈이 묘하게 가늘어지며 웃는 걸 본 경혜왕은 아무렇지 않은 척 말을 덧붙였다.

“소신이 쌓은 공로가 아무래도 적지 않습니까. 폐하를 위해 충심을 바쳤다곤 하지만, 광증에 걸리기도 했고, 몸도 좋지 않아 조정에 폐만 끼쳤습니다.”

“그대가 살아준 것만으로도 좋아한 사람들이 있으니 되었다.”

경혜왕은 입을 다물었다. 황제의 은밀한 압박에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끝까지 협박을 놓지 않는 황제였다. 너희 가족이 내 손에 있으니 얌전히 입 다물고 살라는 뜻이었다. 경혜왕은 고개를 숙여 처첩들과 자식들을 떠올렸다.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도 있었다. 마음을 다잡은 경혜왕은 그나마 멀쩡한 얼굴로 애써 웃었다.

“예, 폐하. 알고 있습니다. 그들을 위해 서남부 현에서도 조정을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그래. 알았다.”

황제가 독대를 마치고 싶어 하는 기색을 뚜렷하게 드러냈다. 이미 서한으로 몇 차례 오간 이야기였고, 하제의 거처와 음관, 모든 이야기를 다 마친 상태라 할 이야기가 없었다. 그래도 마지막 인사를 하기 위해 온 것인데 끝까지 그는 자신을 보지 않았다.

한 번도 얼굴이 많이 아팠느냐, 힘들었느냐, 물어보지 않았다. 미안하다는 말도 하지 않았다. 경혜왕은 몸을 일으켜 가려는 황제를 향해 처음으로 용기를 내어 물었다.

“아바마마.”

오랜만에 자신을 아바마마라고 부른 소리에 황제가 눈을 느리게 돌렸다. 황제가 할 말이 있으면 해보라는 듯 여유롭게 웃었다. 그는 언제나 저렇게 여유로워서, 나태해서, 마음에 들지 않았다. 강의 일이 아니면 초조함을 드러내지 않는 황제. 그에게 늘 묻고 싶은 게 있었다.

“한 번이라도, 단 한 번이라도 소자나 진영, 폐위된 정까지 아바마마에게 진정한 아들인 적이 있었습니까?”

“그걸 왜 지금에 와서야 묻는 거지?”

황제가 이해가 안 간다는 듯 눈을 가늘게 좁혔다. 그는 경혜왕이 있는 지점까지 차분히 내려왔다. 그의 진분홍색 장의가 꽃잎처럼 흩날리는 모습을 남은 눈으로 좇던 경혜는 당도한 그를 보고 고개를 올렸다. 어릴 때나, 지금이나 별다를 바 없이 아름다운 얼굴로 자신을 온화하게 봐준 황제가 자신의 턱을 매만지며 말했다.

“다 알고 있는 것 아니었나?”

“그건 소자의 착각일 수도 있지 않습니까?”

황제가 한숨을 푹 쉬더니, 귀찮다는 듯 뒷목을 만지작거렸다. 그의 눈이 딴청을 부리는 것처럼 천장에 닿았다가, 천장을 받치는 기둥을 장난스럽게 훑었다가, 이내 경혜에게 도착했다. 황제의 눈에 연주는 없었다.

“강이 슬퍼할 줄 알았다면 형제들은 안 낳는 게 나았을 거라고, 그런 생각을 했었지.”

가슴이 찢어지게 아팠다. 멍울이 생기다 못해, 누군가 칼을 거기다 박고 긁어내리는 듯한 통증이 이어졌다. 황제는 냉정하게 창백해진 경혜왕을 보며 입을 열었다.

“아들이라 해봤자 어차피 권력을 나눠 가지기 위해 싸워야 하는 대상일 뿐인데, 천자가 사사로이 정을 줄 수는 없지.”

“강은요? 강은 뭐가 그리 달라서 예뻐하셨습니까?”

경혜왕의 목소리가 떨렸다. 도대체 강이 무엇이기에, 자신이 이 지경이 되어야 했는지, 진영이 비참하게 죽어야 했는지, 소현이 자신의 어미를 죽여 가면서까지 결백을 주장해야 했는지.

“강이니까.”

황제가 너무 단호하고 빠르게 답을 내렸다. 경혜가 어이없어서 멍하니 눈만 뜨고 있었다. 가슴에 화살이 박히고 지나간 듯, 한 자리가 아프고 피가 흐르고 있었다. 죽은 자들은 차라리 다행이었다.

“그 아이는 천자의 아이다. 너희와 달라. 이제 답이 되었느냐?”

경혜는 비참함을 욱여넣고 고개를 끄덕였다. 황제는 소리 내어 웃으며 등을 돌렸다. 어깨에 걸쳐진 그의 장의가 깃발처럼 펄럭거렸다.

“죽은 진영에게도, 폐위되어 산에 갇힌 정에게도 서편을 보내서 알려다오. 너희가 왜 그리되었는지 말이다. 죽은 아이들이 많으니 보내야 할 서편도 많겠구나. 경혜, 그대가 할 일이 많다.”

황제의 조롱에 치가 떨렸다. 끝까지 아들이라고 인정하지 않는 그의 얼굴에 흉을 남기고 싶었다.

“…답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바마마. 늘 소자만의 생각인지 고민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답을 주셨으니, 모든 것을 인정하고 서남부 현으로 떠나도록 하겠습니다.”

“잘 가거라.”

황제가 손을 내밀었다. 잡으라는 뜻이었다. 경혜왕이 머뭇거리며 처음으로 황제의 손을 잡았다. 황제의 손은 매우 따스하고 부드러웠으며, 어른스럽게 굳은살도 있었다. 이렇게 잡아준 적이 언제였을까. 그는 경혜왕이 온전하게 일어나자 미련 없이 손을 떼어냈다. 그는 아무런 감정이 없는 시선을 내어준 후, 등을 돌렸다. 황제의 분홍빛 장의가 시야에 걸렸다. 경혜왕도 황제가 나갈 때까지 그 자리를 지키다가, 허리를 숙여 다시 절을 하고 화비전 밖으로 나갔다. 그곳에서 하제가 내관과 까르륵거리며 놀고 있었다.

“아버지!”

하제가 경혜에게 뛰어왔다. 경혜는 방금 전 아버지인 황제가 해준 것처럼, 하제의 손을 처음으로 잡아주었다. 하제가 놀라서 경혜를 빤히 보았다. 경혜왕은 가면을 쓰지 않은 얼굴을 보여주며 하제에게 말했다.

“아비가 돌아올 때까지 얌전히 있어야 한다. 알았지?”

“예, 아버지. 그런데 진짜 빨리 돌아오실 거예요?”

“그래.”

사실 이제 만나지 못하는 것이라고, 넌 여기서 인질 역할이라고, 다 말할 수가 없어서 입을 다물었다. 이 모든 업보는 다 황제 때문이었다. 그걸 알면서도 아직도 그에게 애정을 갈구하는 자신도 한심했으니 스스로 죽일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 따위가 뭐라고. 그렇게 죽도록 노력했을까. 황제 말대로 전쟁터에서 목이 잘려 죽는 게 나았을 텐데.

이따위 얼굴로, 병신이 된 몸으로 왜 살아남았을까. 이것도 강과 황제 때문이었다. 다 그 둘 때문에 열심히 살아온 이들만 죽어버린 것이다.

가마에 올라탄 황제는 턱을 괴고 경혜왕에 대해 생각했다. 경혜를 생각하면 항상 혀에 쓴맛이 남았다. 그리 좋지 않은 느낌이 따라붙는 아이라, 오늘의 꺼끌꺼끌함도 잊어야겠노라고 생각했는데 도통 잊을 수가 없었다. 마치 혀에 달라붙어 각인된 느낌이었다. 혀를 움직여 보던 황제는 옆에서 따라 걷는 총관 태감을 불렀다. 그가 웃는 모양의 눈을 돌려 황제를 보았다.

“경혜가 서남부로 잘 가는지 알아보도록.”

“예.”

강이 안정을 찾을 때까진 함부로 죽일 수 없었다. 애초에 강이 경혜를 직접 살리지 않았다면, 영현왕부에 데려와 치료하고 알뜰히 보살피지 않았다면 신경도 안 쓸 아이였다. 어쩌다 살아남아서. 강이 그렇게 애걸복걸 매달리지 않았다면 단번에 죽였을 것이다.

인생이 자신이 원하는 대로 되지 않는다는 건 알지만, 묘하게 강과 관련되면 조급해졌다. 강이 알게 될까 봐? 무엇을? 내가 자신의 형제들을 죽인 것을?

“하하.”

황제는 소매로 입가를 가리고 아주 예쁘게 웃었다. 내관들이 황제의 웃음소리에 어깨를 떨었다. 저렇게 웃을 때면, 몹시 좋거나 불쾌하거나. 우아하게 소매 안으로 웃음을 삭이던 황제가 턱을 괴고 눈을 감은 채 강에 대해 떠올렸다.

네가 안다고 뭐가 달라질까. 어차피 죽어버렸는데. 그들은 살아 돌아오지 못한다. 그러나 강에겐 진짜 아우가 배 속에 있었다. 그게 중요했다. 죽은 자는 말이 없고, 산 자의 삶은 유한하게 남아있다. 강은 당연히 후자를 선택할 것이다. 피가 반도 섞이지 않은 형제와 피가 반 이상 섞인 형제라니. 이렇게 기가 막히게 강을 잡을 수 있는 사슬이 또 있을까.

역시 아무리 생각해도 차근차근 죽이길 잘했다. 강이 아이를 낳기만 하면, 아니, 안정만 찾기만 하면 경혜도 죽여 버려야지. 태자도 이미 정해진 마당에 남은 아이들은 돌부리와 같았다.

귀찮으니 뽑아버려야 했다.

가볍게 결론을 내린 황제가 가마가 땅에 닿기도 전에 훌쩍 뛰어 내려와 장의를 벗어던졌다. 당당한 평복 차림이 된 황제가 예월궁으로 들어갔다. 아주 깊은 곳, 황제와 강이 오붓한 시간을 보내는 침전에 당도했다.

침전 안으로 들어가자, 침상에 죽은 듯이 누워있는 강이 보였다. 머리카락이 땀에 달라붙어 물에서 흐느적거리는 미역 같았다. 머리카락을 하나씩 떼어주며, 땀도 닦아주는데 강이 앓는 소리를 내며 몸을 뒤척거렸다.

“내 아가.”

황제는 탕약을 먹고 깊은 잠에 빠진 강의 배에 머리를 대었다. 아직 태동이나 그런 건 느껴지지 않는 시기지만 벌써부터 가슴이 떨렸다.

“내 아가들.”

황제는 가늘게 늘어진 강의 손을 꼭 잡고 속삭였다. 강이 미약한 소리를 내며 고개를 틀며 답답했는지 꿈틀거렸다. 황제는 고개를 천천히 들고, 어릴 때처럼 강의 가슴팍을 토닥여주었다. 그러자 아이가 신기하게도 긴장을 풀며 고른 숨을 색색 내뱉었다. 숨도 거칠고, 몸도 뜨거웠다.

아이는 정신적으로 두부처럼 무른 편이었다. 황제가 손수 키운 아이니 다 알고 있었다. 특히 자신의 말이나 눈빛, 손짓에 무척 신경을 썼고 거기에 거슬리지 않게끔 행동했다. 자신이 잘못하면 어머니가 잘못된다는 사실에 강박관념을 가지고 있었다.

강은 이미 그런 식으로 죽어간 형제들을 보았고, 황제의 마음이 떠나가면 후궁들이 어떤 식으로 냉궁에 가는지 너무 잘 알았다. 모든 걸 옆에서 보았다. 비빈들이나 형제, 황녀들이 살려달라고 비는 모습을 창백한 낯으로 보던 강은 자기도 모르게 모든 걸 황제에게 맞추기 시작했다. 또 그게 통하기 시작하자, 궁녀, 내관, 그리고 비빈들까지도 강을 이용했고 강은 적절한 시기에 사용되어 황제의 화를 달랬다.

황제를 조절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은 강뿐이었다. 그걸 알면 강도 자신을 자유자재로 쓸 텐데, 그걸 몰라 이리 힘들어하고 있었다. 아버지와 아들이라는 아주 단순한 틀만 깨면 쉬운 것을.

그러나 그 사실에 힘겨워하고, 아파하고, 궁지에 내몰려 바들바들 떠는 모습도 어여쁘니 이를 어찌하면 좋을까. 이대로만 있어 줬으면 좋을 것 같았다. 아무것도 안 해도 좋은데. 너에게 바라는 건, 그저 내 옆에 있어 주는 것뿐인데. 왜 너는 자꾸 나에게 충심이니 신뢰니 그런 쓸데없는 말을 하는 걸까.

황제는 눈을 감고 아들의 손등에 뺨을 대었다. 따스한 정도가 아니라 뜨겁다. 강의 손등에 한참동안 얼굴을 비비적거리던 황제는 머리에 닿는 따가운 시선에 눈을 들어 올렸다. 잠에서 깬 강이 부끄러운 듯, 황제를 반쯤 감긴 눈으로 응시하고 있었다.

“언제 오셨습니까.”

강이 무척 아픈 목소리로 말했다. 황제는 강의 옆에 앉았다. 넓적다리를 탁, 탁 손으로 두드리니 강이 느리게 움직여 거기에 머리를 대었다. 땀에 푹 젖은 뒷목을 만져주자 강이 기분 좋은 듯 눈을 감고 신음을 흘렸다. 슬쩍 머리카락을 치우나, 황제가 밤새 새긴 흔적이 적나라하게 보였다. 어느 곳은 피멍이 남았고, 어떤 곳은 잇자국이 고스란히 남았다. 다 내 것이라는 흔적에 황제는 뿌듯해져서 웃음이 피식 나왔다.

“그대가 보고 싶어서 바로 왔지.”

“…정무는 다 보셨습니까?”

황제가 웃는 낯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강이 눈을 감은 채 손바닥으로 근육이 잘 잡힌 황제의 허벅지를 만지며 중얼거렸다.

“고생하셨습니다. 소자가…. 아니, 신첩이 목욕 시중을 해드려야 하는데 몸이 좋지 않아….”

“천자가 씻겨줄까?”

“예?”

“어렸을 때도 같이 했는데. 지금에 와서는 못할 것도 없지.”

황제는 허락도 듣지 않고 느슨한 침의 자락을 풀었다. 강의 몸이 금세 나신이 되었다. 손발을 빼놓고 멀쩡한 곳이 없었다. 특히 유두를 물고 열심히 빨아준 덕분에 그곳은 살이 까져 빨갰다. 아직도 울혈이 남은 가슴 주변을 만지는 손길에 강이 몸을 움츠렸다. 얼굴을 붉히고, 다리까지 오므린 채 수줍어 하는 아들을 지켜보던 황제는 강을 번쩍 안아 올렸다. 황제에게 덥석 안긴 강이 얌전히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어렸을 때도 황제가 씻겨주는 게 아니라, 그냥 같이 탕에 들어가 물을 끼얹으며 논 정도가 고작이었다. 강이 눈을 감고 이 상황을 이겨내려 하는 사이에 황제는 목욕탕까지 강을 안고 이동했다. 강을 먼저 나무로 만든 통에 넣고, 자신이 거기에 따라 들어갔다. 예정된 시간대로 움직이는 황제에 맞추어 미리 물이 데워져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두 사람이 들어가자 물이 촤르륵 소리를 내며 흘러넘쳤다. 강은 황제의 허벅지에 앉아 그의 가슴에 몸을 기댄 채 꾸벅꾸벅 졸았다. 그가 끼얹어주는 물이 따스해서 좋았다. 나른한 눈을 반쯤 떠서 뿌연 시야를 누비다가 강이 고심하던 말을 조심스럽게 내뱉었다.

“폐하, 신첩이 부탁이 있습니다.”

“응? 무엇이지?”

황제가 달콤하게 되물었다. 그의 젖은 손가락이 각질 하나 없이 매끈한 입술에 닿았다. 그의 손길이 이곳저곳 닿은 얼굴에 열이 치솟았다. 강은 얼굴을 붉히며 그의 손을 맞잡고 내렸다.

“딱 한 번이면 됩니다.”

“그게 무엇인데?”

황제가 아예 이마를 맞대고 웃었다. 그가 종종 하던 버릇에 강은 눈을 감고 그의 목에 팔을 둘렀다. 지금이라면. 강은 그의 목에 둘렀던 팔을 내리며, 손을 이용해 젖은 뺨과 머리카락을 만졌다. 매우 부드럽다. 관리를 잘 받은 머리카락은 한 올, 한 올 실을 짜내 만든 것 같았고, 뺨은 신선들이 자주 입는다는 신비의 옷 같았다. 황제는 눈을 감고 애틋하게 자신을 만져주는 손길을 음미하다가, 강의 손목을 다소곳하게 잡고 손바닥에 입을 맞추었다. 찌르르, 하고 혈관을 타고 흐르는 쾌감에 강이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 황제의 단단한 어깨가 있었다.

“아바마마….”

이런 식으로 몰아세울 때마다 생각나는 윤리에 강은 황제의 어깨에 매달려 부탁했다.

“한 번이면 족합니다. 소자와 어머니에게 하루라도 좋으니, 밖에 나가서 정리할 시간이라도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이곳은 너무 답답합니다. 소자를 보는 시선도 너무 많거니와, 어머니께서도 버거워하시니…. 아바마마께선 어머니라고 생각하지 말라 하지만, 어떻게 낳아주신 어머니를 어머니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강은 울지 않았다. 목소리에 힘이 없고, 무척 우울했다. 말끝마다 배인 우울함과 지독한 패배감, 체념에 황제는 불쾌한 듯 손가락으로 목간통의 난간을 두들겼다. 어머니와 단둘이 있게 한다? 기분이 매우 불쾌했다.

“그녀는 그대를 낳아주기만 했을 뿐이야.”

강이 우물쭈물 말을 더듬었다.

“그, 그래도 소자의 어머니입니다. 소자를 낳아주셨으니 그 은혜는 갚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가장 기본적인 효를 걸고넘어지자 황제도 할 말이 없었다. 낳아준 은혜. 끙, 하고 앓는 소리를 내던 황제는 고민에 빠졌다. 희비가 탕에 조신하게 앉아 저런 눈으로 보니 안 들어줄 수도 없었다. 눈망울이 너무 맑았다.

“폐하, 단 하루면 됩니다. 멀리 가지도 않겠습니다. 여기 궁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황족들만 이용하는 노천탕이 있지 않습니까? 그곳에 가겠습니다. 궁에서 가까우니, 폐하께서도 원하실 때 오실 수 있으니….”

“정말 하루면 되느냐?”

“네, 폐하.”

드디어 황제가 자신의 부탁을 들어줬다는 사실에 기뻐 강은 황제를 와락 끌어안았다. 황제는 강이 적극적으로 안겨 오자 기분이 얼떨떨해 강을 바라만 보았다. 강은 고개를 올려 황제를 보고 은은하게 웃다가, 눈을 감고 황제의 입술에 용기 내어 짧게 입을 맞추었다. 쪽, 소리도 나지 않는 아주 가벼운 입맞춤에 황제는 참지 못하고 강의 얼굴을 큰손으로 다잡고 입을 거칠게 맞추었다.

“앗…. 아!”

너무 빠르다고, 강이 황제의 어깨를 다 잡으며 말해보았지만 이미 황제의 입술에 다 먹힌 지 오래였다. 황제의 양손이 관자놀이와 귀 부근을 잡고 놔주지 않았다. 다른 손은 강의 뒷목에 내려와 꽉 고정하고 황제에게서 떨어지지 못하도록 했다. 강은 숨을 쉴 수가 없어 입술이 떨어질 때 다급하게 숨을 마셨다가, 다시 다가온 입술에 숨을 멈추었다.

“흐음… 응….”

강이 인상을 찡그리며 숨을 고르다가, 황제의 등에 팔을 둘렀다. 얽힌 입술 사이로 혀가 오갔다. 타액이 땀과 같이 어우러져 턱을 타고 흘러내려 갔다. 강이 결국 숨을 다 못 쉬고 헐떡이자 황제가 입술을 떼어냈다. 황제의 눈은 이미 음탕해진 지 오래였다.

“아바마마.”

강이 슴이 거칠어진 채로 황제를 불렀다. 황제는 목간통에 강을 엎드리게 했다. 젖은 나무가 팔꿈치에 닿았다. 아직 열이 남은 몸이었지만, 강은 눈을 멍하니 뜨고 물이 맺힌 바닥을 보았다.

물에 잠긴 다리가 벌어졌다. 황제가 둔덕을 벌려 뜨거운 물이 오가는 구멍을 보다가 손가락을 넣었다. 뜨거운 물이 꾸물꾸물 달아오른 내벽으로 들어갔다.

“아읏, 읏…. 물이 들어와서…. 아….”

강이 젖은 신음을 뱉어내며 허리를 틀었다.

“아픈 게 아니니 걱정 말거라.”

황제가 물이 오가는 발간 구멍을 보다가, 강의 허리를 더 들어 올려 종아리만 물에 잠기게 했다. 무슨 상황인지 몰라 멍한 눈으로 뿌연 사방을 살펴보던 강은 부은 둔덕에 서리는 습기에 눈을 크게 떴다.

“아, 앗…. 무, 무슨…! 아바마마, 안 돼요, 아, 싫어…!”

황제가, 아버지가 도톰한 엉덩이를 벌리고 그 사이를 핥고 있었다. 혼례 때처럼, 늑대가 된 것도 아닌데 정성스레 통통 부은 그 부근을 핥아주고 회음부까지 쪽쪽 빨아주는 힘에 강의 성기가 벌떡 섰다. 황제의 혀가 잠시 떨어졌다. 강의 허벅지가 바들바들 떨리며 도망가려고 버둥거렸으나, 황제가 허리를 잡고 놔주지 않았다.

“아흑, 아, 싫어요! 이상해, 이상해요! 아바마마, 하지 마세요…. 아, 아아…!”

황제는 기겁하고 도망가는 강을 강제로 누르고, 그 안에 다시 얼굴을 넣어 둔덕을 빨았다. 혀로 고환부터 입구까지 쭈욱 핥아 올리자 강이 신음도 내지 못하고 부들부들 떨었다. 건장한 어깨가 경직되어 있는 게 보였다. 근육마다 흐르는 땀이 예뻤다.

“아흣, 이상해…. 싫어요, 아바마마, 그, 그만…. 그만해주세요.”

강이 급기야 바닥을 긁으며 엉엉 울었다. 쪽, 쪼옥, 하고 안에서 흐르는 소리가 커지고 타액이 더 고여 음모가 없는 곳에 닿을 때마다 강은 미칠 지경이었다. 그곳에 맺힌 타액이 황제의 것이라 생각하니 강은 참을 수 없이 달아올랐다.

“아, 안 돼….”

아래가 뜨끈거렸다. 명백하게 넣지도 않고 황제의 혀로 느껴버린 것이다. 그 사실에 충격을 받을 새도 없이 황제가 강을 안아 다시 탕에 앉으며, 강의 성기를 한 손으로 잡아 비볐다. 고환까지 잡고 문질러주자 강이 좋아서 고개까지 젖히며 신음을 내뱉었다. 주먹을 쥐고, 발가락은 곱아들고 좋아서 덜덜 떠는 모습에 황제도 발기했다. 탕 속에 오래 있느라 발갛게 달아오른 뺨에 땀과 눈물이 맺혔다. 강은 눈을 질끈 감고, 입을 벌린 채 힘겹게 숨을 내뱉었다.

“아, 아…!”

황제가 귀두를 잡고, 여린 피부가 까질 만큼 세게 문질러주자 강이 좋아서 허벅지 안을 떨었다. 전율한 것이다. 황제가 거기서 멈추지 않고 발기한 남근으로 강의 회음부를 긁어내렸다. 물 안이라 답답하게 잘 되지 않아, 결국 다시 강을 엎드리게 하고 둔덕에 남근을 비볐다.

황제는 잘 익은 사과처럼 발갛게 변한 엉덩이를 한 손으로 꽉 잡았다. 강이 신음했다. 이미 강의 성기는 한 차례 사정을 하고도, 다시 힘을 얻어 아랫배에서 꺼덕거리고 있었다.

“넣어줄까.”

강이 소리 없이 눈물만 뚝뚝 흘렸다. 사실 내벽이 아까부터 간지러웠다. 이상한 일이었다. 간지러운데, 도망가고 싶었다. 무서웠다. 내벽에 뭔가가 들어와 긁어주길 바랐고, 더 나아가 깊숙한 곳까지 찔러주길 원했다. 자신의 몸이 아닌 것 같았다. 황제의 혀가 그곳을 핥고, 비벼줬을 뿐인데. 왜 이렇게 좋은 건지, 왜 이렇게 무서운 건지.

정말로 도망가고 싶었다. 몸이 이상했다. 마음도 제멋대로 날뛰고 있었다.

확실하게 알았다. 아버지로 느꼈다. 몸이 아버지를 원하고 있었다. 내벽이 정확하게, 아버지의 남근을 조이고 싶어서 안달이었다.

강은 눈을 감고 눈물을 뚝뚝 흘렸다. 그 와중에도 성기는 벌떡 서서 자극을 원했고, 내벽은 더 큰 자극을 주길 바라고 있었다.

“으응…!”

황제의 남근이 다시 한번 둔덕 안으로 들어와 비벼졌다. 엉덩이 살 사이에 들어간 거대한 물건이 반들거리며 빛이 났다. 그 상태에서 느리게 마찰하자, 강이 어깨를 뒤틀며 지나치게 느꼈다. 너무 민감했다.

“넣어줄까?”

황제가 재차 다정하고, 낮게, 물었다. 바닥을 긁으며 신음하던 강이 끝내 안에서 시작되는 간지러움을 참지 못하고 아주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네….”

황제의 남근이 안을 뻐근하게 벌리며 들어왔다. 강의 입술이 소리 없이 움직이며 무언가를 말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황제는 강의 허리를 잡고 허리를 움직이느라 보지 못했고, 강 또한 제 목소리를 듣지 못했기에 흐릿한 말은 응고되지 못하고 사라졌다.

도망, 가야 해.

강은 정체를 알 수 없는 무언가로부터 공포를 느끼기 시작했다. 배가 알싸하게 아파 왔다. 지독한 통증에 신음하면서도 아프다고 말할 수 없었다.

그저 너무 무서웠다. 처음으로 느껴본 지독한 쾌감에 시달리는 게.

그런데 과연, 자신이 도망을 갈 수 있을까. 서로 상반된 두려움이 강하게 부딪혀 마찰을 일으켰다.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팠다.

*

강에게 팔을 내어주고 단잠을 청하던 야심한 시각, 황제는 저 멀리서 ‘폐하!’, ‘폐하!’ 하고 부르는 소리에 눈을 떴다. 강도 부스스 잠에서 깨어 황제를 보았다. 아직도 잠에 취해 눈을 제대로 못 뜨는 강에게 더 자라고, 가슴을 두드렸다. 강이 무심코 황제의 소매를 잡으며 중얼거렸다.

‘빨리… 오셔야 해요.’

어렸을 때와 같이, 강은 어둠 속에서 혼자 있는 게 무서워 황제에게 꼭 빨리 오라고 말했다.

정말 잠결에 한 거겠지만, 아직도 아이가 어둠을 무서워한다 생각하여 황제는 초에 불을 켜고 설까지 안아 올려준 후에야 밖으로 나왔다. 은은하게 불이 밝혀진 침전에서 설이 무엄하게도 꼬리만 살랑살랑 흔들었다. 제 주인을 지키라는 뜻으로 웃어주자 설이 ‘왕!’ 하고 우렁차게 짖고는 강 옆에 몸을 말고 누웠다.

그렇게 분명히 행복한 기억만 안고 나왔는데, 난데없는 경혜왕부의 화재 소식에 인상이 찡그려졌다. 야심한 시각에 왕부를 지키기 위해 돌아다니던 위병이 발견하고 빠르게 서신을 보낸 것이다. 불의 규모가 상당히 커서, 끄는 데 고생하는 중이라고 전했다. 수도에 퍼져있는 화수대를 불러 불을 끄게 시켰다. 불은 다행히 소멸되었지만, 문제는 생존자가 없다는 것이다. 대부분이 안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사망했다. 원인은 도둑을 방지하기 위해 안에서 단단하게 걸어둔 걸쇠 때문이었다. 경혜왕부는 귀중품이 많아 이중으로 잠금장치를 해놓았고, 걸쇠가 불에 달아오르니 열 수 없었을 것이다. 앞, 뒤, 그리고 노비들이 다니는 곳까지 모두 탈주를 막기 위해 그리 해놓았다. 담장은 의심이 많은 경혜가 높이 쌓아 절대 넘어설 수 없었다.

즉, 불이 붙으면 다 같이 죽기에 좋은 폐쇄적인 구조였다. 다 경혜왕이 피습을 당하면서 생긴 버릇이었다.

오랜만에 가벼운 행복을 입고 바깥으로 나온 황제는 차가운 눈으로 불탄 경혜왕부를 살폈다. 사실 날씨가 이런 때에 불은 쉽게 번졌다. 공기는 건조했고 바람은 수시로 자주 불었다. 아주 미약한 불씨라도 붙기만 한다면, 큰불이 될 수 있었다.

다 타들어 간 목재를 손으로 집어 살펴보던 황제는 화수대가 싣고 온 시체를 보았다. 바싹 타들어 간 시체는 팔 하나가 없었다. 다른 쪽은 불에 너무 타서 아예 확인조차 불가능했다. 다른 시체도 다른 점은 없었다. 아이들은 불을 피하려고 서로 부둥켜안고 있었고, 아내는 남편을, 남편도 아내를 끌어안고 있었다.

그리고 끝은 다 죽음이었다.

아들, 며느리, 손자, 손녀들, 그리고 거기에 딸린 종들까지 다 잃었지만 황제는 감흥이 없었다. 저 멀리 땅굴까지 확인하고 온 화수대가 황제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나온 건 아무것도 없었사옵니다, 폐하.

황제는 무감한 얼굴로 몸을 일으켰다. 고기 타는 냄새가 나는 시체를 통해선 이게 경혜인지, 다른 사람인지 알 수 없었다. 불이 냄새까지 모조리 태워버린 것이다. 우선은 믿어야 하는 것인가. 황제의 금안에 불쾌한 빛이 서렸다.

아직 의심은 다 거두어지지 않았으나, 물증이 확실하니….

다 타버린 목재를 던진 황제가 등을 돌렸다. 친군들이 따라붙었다.

“조사는?”

“어제 수도를 나간 이들은 여섯 개의 상단뿐이었습니다.”

“그 안까지는 다 조사했다고 하느냐?”

“예. 모두 검문을 마쳤고, 평상시와 같아서 내보냈다고 합니다.”

황제가 짧게 침음했다. 경혜와 연관된 가족들, 종까지 모조리 죽어버렸으니 물어볼 이가 없었다. 고뇌하던 황제는 총관 태감을 불렀다. 그가 총총 다가왔다.

“하제를 옥에 가둬라.”

“알겠사옵니다, 폐하.”

“아무리 어린애라도 아버지에 대한 일은 알겠지. 하제를 통해 경혜에 대해 알아오도록. 조사는 놓치지 말고 해야 한다.”

“예, 폐하.”

황제는 경혜가 죽었다고 확신했다. 저 정도 규모의 화마에서 살아남기란, 인간의 힘으로 무리였다. 경혜는 늑대였기에 변신해서 도망칠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팔 하나가 없으니 그것도 불가능했다. 그래도 ‘혹시’라는 상황이 있기에 황제는 기민하게 곤두세운 감각을 누그러뜨리지 않았다. 항상 어떤 일이든 순탄하게 흘러가면 차근차근 돌아가 생각해 봐야 한다. 내가 놓친 것이 없는지. 느긋하게 흙길을 걷던 황제는 따라오는 총관 태감을 보며 넌지시 말했다.

“희비에겐 말하지 말거라. 아이를 가지고 있으니.”

“예, 폐하.”

희비가 아이를 가진 지도 한 달이 넘었지만 아직 유산의 위험이 있으니 조심해야 했다. 황제는 어떻게든 강에게서 아이를 볼 작정이었기에, 강에겐 좋은 것만 보여주고 들려줄 생각이었다. 그리하여 금궁에 다시 돌아온 황제는 그날 희비를 보낼 채비를 마쳤다. 수십 명의 호위와 친군을 붙였고, 열 명이 넘은 내관과 궁녀들이 수두룩하게 붙었다. 위험한 상황을 대비하기 위해 태의와 어의, 의녀까지 붙였다. 거기에 강의 호위무사나 다름없는 설까지 동행했다.

단 하루. 어머니와의 작별을 위해 보내는 것인데 보내고 싶지 않았다. 황제가 시무룩한 얼굴로 강의 손을 꼭 잡고 있었다. 오죽했으면, 쇄약해진 강이 침울하게 축 처진 황제가 걱정되어 등을 토닥이고 달래주었다.

“하루면 옵니다, 폐하. 너무 걱정 마세요.”

“그래도 보고 싶을 것 같다.”

강이 하하, 하고 기분 좋게 웃음을 터트리더니 황제의 뺨에 입을 맞추었다.

“내일이 바로 다과회라 와야 합니다. 다른 비빈들을 기다리게 할 수는 없으니까요.”

실제로 이번 작별에 여 소의뿐만 아니라 강과 어린 시절을 함께 했던 빈들도 동참했다. 일곱 명의 인원이 함께였다. 귀비는 경혜왕의 화마 소식에 쓰러져서 참석하지 못했다. 강은 일곱 명의 어머니나 다름없는 빈들이 보는 앞에서 황제를 꼭 안으며 속삭였다. 이제 완연한 연인 같은 모습에 여 소의는 눈물을 왈칵 터트릴 뻔하다가, 아들을 생각해 눌러 참았다.

“잘 다녀오게.”

“예, 폐하.”

황제가 이제야 웃었다. 돌아오겠다는 제 의사가 강하게 전해졌을까. 손을 놓은 강은 아픈 몸을 이끌고 가마에 앉았다. 그 상태에 앉아서 긴 소매를 이용해 얼굴을 가린 강은 입술을 깨물었다.

저 수많은 친군, 내관, 궁녀…. 그리고 달라붙은 설을 떼어놓고 도망가는 건 무리였다. 황제가 그냥 보낼 리는 없다고 생각했지만, 도저히 도망을 실현할 수 없을 것 같은 생각에 강은 한숨만 푹푹 내쉬었다. 어제는 도망가고 싶다는 욕구를 강하게 느꼈지만, 막상 현실로 체감하니 우울해졌다. 도망은 무슨.

강은 가마에 같이 탄 설이 헥헥거리며 부대껴오자 직접 안아 허벅지에 앉혔다. 성견이라 무게가 상당히 나갔다. 그걸 보던 부쩍 친해진 양 내관이 다가와 투덜거렸다.

“마마, 회임하신 옥체로 강아지를 막 안으시면 무리가 가실 겁니다.”

“괜찮네. 설은 어릴 때부터 나와 이렇게 함께했으니, 이게 편할 걸세.”

강은 애써 웃으며 설을 끌어안고, 보송보송한 털에 얼굴을 파묻었다. 도망이라…. 거창하게 생각했지만 수도를 나가본 적이 없어 두려웠다. 황제가 금이야 옥이야, 수도에 가둬놓고 키운 덕분에 강은 어릴 적에 배를 타본 게 전부였다. 그것도 황제가 내려줄 때만 배 위를 오갈 수 있었다.

정말 난 해본 게 없구나. 이런 내가 도대체 뭘 할 수 있다고….

황제가 심심하면 사냥이나 하라며 준 화살과 활, 황제가 쓰던 대도만이 자신이 사용할 수 있는 유일한 물건이었다.

어머니와 담소나 나누며, 마지막 사냥이나 즐겨볼까.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사냥을 즐기다가, 적절한 때가 보이면….

“역시 안 되겠지.”

다시 도망을 생각하던 강은 건조하게 웃으며 설을 꼭 안았다. 내가 도망을 간다 해서, 만백산에 간다 해서 달라지는 건 없겠지만. 그래도 한 번쯤은 자유를 맛보고 싶은 마음이 시냇물처럼 흘렀다.

“그런 날이 오긴 할 테지.”

강은 후, 하고 숨을 길게 뱉어내며 하늘을 보았다. 오늘따라 하늘이 청명하고 파란 것이 구름처럼 동동 떠다니며 어디론가 가고 싶었다.

황제가 주는 지독한 쾌감이 없는 곳으로.

“거기에 너도 함께 있어야 해. 알았지?”

강은 함박웃음을 터트리며 설의 이마에 자신의 이마를 비볐다. 황제가 종종 하던 버릇을 그대로 익혀 설에게도 행했다. 설도 오랜만에 주인과의 나들이에 기분이 좋은지 큰 목소리로 짖었다. 강은 설을 끌어안고 계속 도란도란 대화를 나누었다.

*

그날, 희비가 사라졌다. 실종이나 다름없었다. 가장 먼저 일어난 병사 한 명이 급하게 말을 타고 와 황제에게 알렸다. 상황파악도 전에 그가 가장 먼저 달려온 터라, ‘희비가 사라졌다’는 말을 듣고 황제는 놀라서 몸을 벌떡 일으켰다. 보낸 지 불과 몇 시진도 되지 않은 사이에 일어난 일이었다. 이제 석반을 먹고, 다 같이 옹기종기 모여 놀고 있을 터인데. 황제도 정무를 보고 겨우 침전에 들어와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그 짧은 사이에, 희비가 사라졌다니.

황제는 듣자마자 말을 타고 달려서 궁 밖에 있는 노천탕으로 갔으나 그곳에서 황제를 반긴 건, 죽었던 외팔이 황자의 시체였다. 복부에 대도가 박혀있었다. 황제가 희비에게 ‘되도록 사냥은 하지 말도록. 하지만 야산이 있으니, 몸을 지키기 위해 항상 가지고 다닐 것.’이라고 말하며 쥐여준 것이었다. 황제는 성큼성큼 다가가 한쪽 팔이 없는 시체를 발로 뒤집었다. 얼굴에 난 상처 자국. 한쪽 팔이 찢긴 흔적. 경혜가 맞았다. 그렇다면 불에 탄 건 경혜가 아니라는 뜻이었다.

가슴이 타들어 갈 것 같은 고통에 황제가 비틀거렸다. 호위들이 다가가 황제를 지탱해주었으나, 그가 거칠게 그들을 밀쳤다.

“너희들은 조사도 안 하고 무얼 했어!”

“저, 저희도 조사를 했습니다만, 정말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폐하!”

“정말이옵니다, 폐하! 전서구도 보내어 확인해 보았지만 실마리를 찾지 못했습니다!”

내관들과 호위, 궁녀, 그리고 그 외의 사람들이 겁에 질려 무릎을 꿇었다. 황제가 가장 소중히 여기는 희비를 잃었으니 죽어도 할 말이 없는 사태였다. 황제는 숨을 고르며 앞으로 걸어갔다.

왜 여기까지 온 것일까.

내가 그리 가지 말라 일렀거늘. 주먹이 부들부들 떨릴 정도로 세게 힘을 주고 어두운 야산을 훑던 황제는 발에 닿는 묵직한 것에 고개를 내렸다.

“…설?”

이미 굳어버린 사체는 강이 애지중지 키우는 개, 설이었다. 설은 짐승과 싸우다 혈투를 벌였는지 목덜미 살이 다 뜯겨 있었다. 뼈가 드러날 정도로 살점이 뜯기고, 피가 흘러 이곳에서 두 눈을 뜨고 죽어버렸다. 어두워서 눈을 찌푸리며 손을 움직이는데, 곧바로 손등에 무언가 느껴졌다.

그걸 잡아보니 화살이었다. 이것 또한 자신이 강에게 준 화살이었다. 워낙 말 타면서 활 쏘는 걸 좋아하던 아이인지라, 기념으로 주었는데. 설의 명치에 꽂혀있는 화살을 단번에 뽑아냈다. 횃불에 비쳐보니 황제의 늑대 문양이 그려져 있었다. 황제가 준 게 확실했다.

황제는 무표정한 얼굴로 대충 상황을 가늠해 보았다. 화살을 손에 빙글빙글 돌리며 눈을 반쯤 감고 설의 사체만 보던 황제는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아마 노천탕에서 쉬고 있던 강을 누군가 불러냈을 것이다. 강은 아무것도 모르고 나갔을 테지. 경혜가 어떻게 위장을 하고 왔는지 모르지만, 강을 의심 없이 여기까지 불러냈다면 얼굴을 아는 자다. 그것뿐만 아니라 설만 대동하고 온 거면 믿고 있다는 것이었다.

도대체 누구지. 그 당시 같이 온 내관들과 궁녀들, 일곱 명의 빈들은 석반을 먹고 쥐죽은 듯 잤다고 했다. 약에 취해 잠든 것인데….

거기까지 생각을 마친 황제는 하, 하고 짧게 웃음을 터트리며 친군들에게 서늘한 음성으로 말했다.

“당장 여 소의를 끌고 와. 당장!”

작은 별궁 흙먼지가 날리는 마당에 여 소의가 무릎 꿇려졌다. 모든 걸 포기한 듯, 여 소의는 겁먹은 얼굴로 냉소를 살짝 머금고 있었다. 두려움, 불안, 체념, 그리고 옅은 희망으로 일렁거리는 검은 눈을 마주 본 황제가 화를 가라앉히며 웃었다.

“왜 강을 내보냈지?”

“제 아들이니까요.”

“그 아이는 네 아들이 아니다.”

“신첩의 몸으로 낳았는데, 왜 신첩의 아들이 아닙니까?”

여 소의가 겁을 상실한 듯 당돌하게 되물었다. 황제의 손이 순간 여 소의를 가차 없이 후려칠 뻔 했다. 여태껏 한 번도 여 소의에게 손을 대본 적이 없었다. 강이 너무 사랑하고, 아끼는 친어미였으니까. 그리고 강과 너무 닮은 얼굴로, 겁을 먹는 표정까지 같아 황제의 손이 주춤거렸다. 후우, 긴 숨을 몰아 내쉬며 겨우 화를 누른 황제가 여 소의의 어깨를 세게 잡았다. 여 소의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황제는 상냥하게 웃으며 서적을 읽듯 말했다.

“그 아이는 천자의 아이지. 그대는 낳기만 했을 뿐이야. 언제부터 비빈이 낳은 아이가, 비빈의 아이였지? 비빈들이 낳은 아이는 생후 6년까지만 책임이 있을 뿐이야. 그 후는 오로지 금궁을 지배하는 천자에게 그 아이의 모든 것이 있다.”

“아무리 폐하께서 법도를 가져오신다 해도, 강은 신첩의 몸으로, 폐하의 씨를 받아 낳은 아이입니다. 그런데도 신첩의 아이가 아닙니까?”

황제가 눈을 느리게 감았다. 아름다운 얼굴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처음이었다. 저런 얼굴을 보는 건. 그 사실 하나에 여 소의의 눈이 반짝이고 얼굴에 노골적인 흥분이 번졌다. 그 고고하고 신비롭던 황제가 인간적인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진짜 경혜의 죽음이 아니라 강의 도망 아닌 도망에.

황제가 눈을 떴을 때, 그는 지독할 정도로 차분해져 있었다. 여전히 나라를 유지하는 황제다웠다. 인간의 감정에 휘말리지 않고, 군주의 모습으로 돌아와 여 소의를 똑바로 보며 입술을 움직였다.

“아이의 소유를 주장하기엔, 그대는 아무것도 아니야. 지금까지는 천자의 아이를 낳아줬고, 아이가 그대를 사랑했기에 지켜줬지만 이젠 아니지.”

“신첩을 아무리 고문해봐야….”

“하지만 그대도 누군가의 소중한 딸이고, 자매겠지.”

황제가 해맑게 웃었다.

“당장 여 소의의 구촌까지 다 잡아 와라. 천자가 직접 고문해서 여 소의의 입에서 희비의 도주에 대해 듣도록 하겠다.”

하지만 이미 마음을 굳힌 여 소의는 미동도 보이지 않았다. 황제의 눈이 의아함에 가늘어졌다. 평상시의 여 소의와 달랐다. 그렇게 약해 보이지 않았다.

반대로 어느 때보다 강해 보였다. 누군가를 지키고자 하는 모습이 너무나 선명하여 황제는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실소를 터트리던 황제가 은연중에 든 생각에, 미소를 싹 지우고 여 소의의 어깨를 슬며시 잡으며 귀에 대고 물었다.

“그대가 보낸 것이야, 아니면 강의 발로 간 것이야?”

“…강은 폐하를 무척 사랑하는 아이죠. 신첩이 가라고 해서, 갈 아이가 아니었습니다. 처음엔 무척 겁을 먹었지만…. 마음을 달리 먹고 자기 발로 도망가더군요.”

여 소의의 어깨를 잡은 황제의 손에 힘줄이 융기했다. 엄청난 힘으로 여 소의의 어깨를 꽉 잡고 있었다. 결국 엄청난 통증을 참지 못하고 여 소의가 “아악!” 소리를 내며 상반신을 틀었다. 황제가 여 소의를 거칠게 밀어내며 얼굴을 감쌌다. 황제가 “아아….” 하고 신음했다. 황제가 비틀거리자, 총관 태감이 화들짝 놀라 다가와 그를 지탱해 주었지만 황제가 그도 밀쳐냈다.

황제는 불투명한 어둠에 홀로 서서, 하얀 얼굴을 감싼 채 중얼거렸다. 그의 몸이 공포로 떨렸다.

“그럴 리가 없어….”

“폐, 폐하…. 이성을 차리십시오. 폐하는 이 나라의 군주이십니다! 폐하께서 흔들리시면 나라가 흔들립니다!”

“그럴 리가 없다.”

황제는 얼굴을 가리던 손을 내리고, 멍하니 총관 태감을 보며 나긋하게 말했다. 총관 태감이 겨우 안도를 하고 “폐하….” 하며 불렀다. 황제도 찰나 이성을 잃었다가, 군주의 본분으로 돌아와 숨을 죽였다. 어느새 그의 눈은 늑대의 눈처럼 동공이 길어져 있었다.

“강이 천자를 버리고 갔다고? 그럴 리가 없다. 여 소의가 거짓을 고하고 있으니, 당장 옥에 넣어라.”

“예, 폐하!”

“천명을 받듭니다!”

친군과 호위, 같이 동행한 대신들이 무릎을 꿇고 대답했다. 황제는 눈을 느리게 깜박이며 하늘을 보았다. 아직 하늘의 답은 없다. 늘 그렇듯 평온한 하늘이다.

그럼 이 정도 분노는 괜찮다는 건가. 하늘의 눈치를 보며 분노까지 삭여야 하는 이 자리가 미치도록 짜증났지만, 강을 가지기에 적합한 자리였으니 끝까지 인내했다. 황제는 피가 날 정도로 주먹을 꽉 움켜쥐며 대신들을 보고 명령했다.

“비밀리에 희비를 찾아라. 그리고 이제부터 모든 백성들의 멱리 착용을 금지한다.”

황제가 그들을 두고 성큼성큼 걸어가 말에 등자도 밟지 않고 올라탔다. 그가 고삐를 잡으며 냉정한 얼굴로 말했다.

“또한 귀비는 비 자리에서 폐하고 옥에 가두고, 그년의 가족들은 전부 다 잡아와 똑같이 화형에 처한다.”

그날, 귀비는 산 채로 자신의 외가에 갇혀 불에 타죽어야 했다. 안에서 살려달라는 곡소리에 주변에 살던 사람들도 겁에 질려 떨었으나, 그 누구도 황제의 명에 반발하지 못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