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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도하라 키워놨더니 집착광공 됐는데-42화 (42/105)

042화

서운해할 거라니….

무슨 소리지?

말의 속뜻을 알아듣지 못한 채이가 멀뚱멀뚱 쿠쿠프를 내려다보았다. 레오나드와 델리온 두 사람도 쿠쿠프에게 슬쩍 시선을 두었다. 쿠쿠프는 호호홍! 웃음을 터트리고 말했다.

“드래곤들은 태어나고 몇 시간 만에 어떤 이가 자신의 적이고 아군인지를 인식하지. 그러니까 위험한 인물이라 인식했으면 저 녀석은 가차 없이 아가를 죽인 후 영양분으로 삼았을 거다. 친부모에게도 그러는 놈들이니.”

친부모에게까지. 꽤나 살벌한 이야기다. 하지만 겁을 주려고 하거나 농담을 하는 것 같진 않았다. 분명 거짓 없는 사실이리라.

“그러니 그 녀석이 그리 붙어 있는 것은 아가를 부모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도 있지만, 아가 옆이 가장 안전하다 느끼기 때문이라는 거지. 아가라면 자신을 해코지하지 않을 거라고 확신하는 거야.”

“…그렇군요.”

“아가는 다정하고 강한 사람인가 보구나.”

쿠쿠프가 만면에 미소를 가득 지은 채 턱수염을 쓸었다. 갑자기 칭찬 아닌 칭찬을 들으니 머쓱해졌다. 고개를 아래로 떨구자 빤히 채이를 쳐다보고 있던 해츨링이 기다렸다는 듯 반응했다.

“갸우갸우.”

꼼지락거리던 앞발이 채이의 뺨을 톡톡 건드린다. 꼭 사람 아기가 하는 행동 같아서 귀여웠다. 그 모습을 흐뭇하게 지켜보던 쿠쿠프가 이내 표정을 바꾸고 말을 이었다.

“말이 잠시 샌 것 같아서, 본론으로 돌아가자면… 이 녀석의 부모를 찾기 위해서는 체취가 강하게 묻어 있는 물건이 필요해. 혹시 그런 물건이 있나?”

“음….”

해츨링의 체취가 강하게 묻은 물건인가. 채이는 턱을 짚은 채 곰곰이 생각했다. 함께 생각하던 에녹이 아, 하고 탄성을 뱉었다.

“채이 님. 그 방석은 어때요?”

“아. 그것도 괜찮겠네.”

어제 해츨링이 종일 앉아 있었고 몸을 비비고 잘 때도 애용했던 방석이 하나 있다. 물론 그보다 채이에게 안겨 있는 일이 더 많았던 까닭에, 체취는 어제 채이가 입은 옷에 더 많이 묻어 있을 터다. 하지만 그 옷은 이미 하인들이 수거해서 세탁하고 있을 거라… 방석이면 충분하지 않나 싶었다.

“에녹. 가서 방석을 가지고 와.”

“네. 공자님.”

레오나드의 명령에 에녹이 쪼르르 오닉스 저택으로 올라갔다. 잠시 후 에녹이 가지고 돌아온 방석을 쿠쿠프에게 건넸다. 방석에 코를 박고 킁킁거려 체취를 맡아본 쿠쿠프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주 좋군. 이거면 되겠어.”

그리고 말을 이었다.

“잠시 빌리도록 하겠다. 내 친우에게 부탁해서 닮은 냄새를 최대한 빨리 찾아봐 달라 할 테니 기다리고 있어라.”

“네. 부탁드리겠습니다.”

쿠쿠프는 레오나드와 델리온에게 마지막 인사를 남긴 뒤에 델리온의 안내를 받으며 훌쩍 떠났다. 때마침 해츨링이 배가 고픈지 보채기 시작했다.

“꾸앙. 아아앙.”

“알겠어, 알겠어.”

채이는 아기에게 하는 것처럼 둥가둥가를 해주었다. 그리고 일이 아직 덜 끝나 돌아가 봐야 한다는 레오나드를 배웅하고 에녹과 함께 저택으로 돌아갔다.

“앞으로 이 애랑 얼마나 같이 지내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부르기 편하려면 역시 이름이 필요하지 않을까?”

“그럼 이름부터 지어 볼까요?”

“응. 벤이랑 페르도 불러야겠다.”

기간은 이 해츨링의 부모 드래곤을 찾아내기 전까지… 그렇게 본격적인 해츨링의 임시 보육이 시작되었다.

***

이후 채이는 벤냑스, 페르난데와 함께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여 해츨링의 이름을 지어주었다. ‘실비에트’. 애칭으로는 실비라고 부르는 이름이다. 이름 후보들이 마음에 안 드는지 매번 고개를 내젓던 해츨링이 유일하게 만족스러운 기색을 보인 이름이기도 했다.

그리고 오늘은, 쿠쿠프가 방석을 가지고 돌아간 지 딱 이틀째가 되는 날이다. 실비에트는 도서관에서 벤냑스와 페르난데 그리고 채이와 함께 글자 카드 놀이를 하면서 제국어 공부를 하고 있었다.

“이 단어는 뭐라고 읽게요?”

“사과!”

“맞아요. 그럼 이 단어는요?”

“가… 조… 가족!”

며칠 만에 사람 말을 알아듣는 단계를 넘어 스스로 말을 할 수 있는 단계까지 온 것이었다. 물론 드래곤은 드워프와 달라 인간처럼 성대로 발성하는 게 불가능했다. 그럼에도 현재 실비에트가 인간처럼 말할 수 있는 이유는 드래곤의 특기 중 하나인 전음(轉音)을 이용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채이. 나 무릎에 앉을래.”

책상 위에 엎드려 집중하던 실비에트가 불현듯 위치를 바꾸고 싶었는지 앞발로 책상을 툭툭 치며 말했다.

“그래. 이리 와.”

채이가 팔을 벌리자 냉큼 품으로 파고든 실비에트가 자세를 고쳐 앉으면서 널브러진 카드에 다시금 집중했다. 반대편에 앉아 있던 벤냑스는 그 모습을 편안하게 바라보다 다시 카드를 섞어 실비에트와 카드 놀이를 해 주었다. 그 옆에 앉은 페르난데도 간간이 질문을 던지거나 장난을 치며 놀아주었다.

이틀 내내 빠지지 않고 찾아와서 도와주는 두 사람이, 채이는 참 고마웠다. 물론 두 사람뿐만이 아니었다. 에녹과 로렌스도 거의 함께 있다시피 해 주었고 레오나드도 시간이 날 때마다 찾아와서 도와주었으니까.

그렇게 다들 도와준 덕분에, 채이는 실비에트를 돌보는 일이 딱히 힘들지 않았다. 불편한 게 하나 있다면 실비에트에게서 눈을 뗄 수 없어 산책 시간이 짧아졌다는 것 정도일까.

“뭐 좀 드시면서 하세요.”

그때 몇몇 시종과 에녹이 먹을 것을 가져와 책상 위에 올려주었다. 향긋한 차와 고소한 과자였다.

“실비 님 거는 이거예요.”

실비에트가 먹을 수 있게 따로 만든 과자가 담긴 작은 접시를 가리키며 에녹이 말했다. 아무리 드래곤이 인간도 잡아먹는 잡식이라지만 너무 짜고 단 건 안 좋을 것 같아 저염, 저당으로 만든 과자였다.

“맛있어. 움움.”

다행히 실비에트는 그 과자의 맛이 마음에 드는 듯 잘 먹어 주었다. 과자를 아작아작 씹으며 글자 카드 맞추기 놀이를 하는 모습을 보니 영락없는 어린애였다. 그러고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채이.”

등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레오나드다. 돌아보자 그사이 다가와 있던 레오나드가 채이의 뺨에 쪽하고 입술을 맞추었다. 순간 당황하긴 했으나 이내 평범한 인사로 받아들인 채이는 평온한 얼굴로 레오나드를 바라보았다.

“오늘은 좀 일찍 왔네.”

“응. 카드놀이 중이었구나.”

레오나드가 책상 위를 한 번 보고 앞에 앉은 벤냑스와 페르난데를 한 번 보고 마지막으로 채이에게 안겨 있는 실비에트를 보았다. 그 얼굴에 어딘가 못마땅한 기색이 일순 스쳤다. 솔직히 레오나드는 당장 저 두 사람을 내쫓아버린 후 채이의 품에서 실비에트를 뺏어 어딘가로 보내버리고 싶었다.

레오나드의 입장에서는 하나부터 열까지 달가운 것이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당분간은 어쩔 수 없다는 것 또한 알고 있었다. 레오나드 자신이 모든 부분을 옆에서 케어해 줄 수 없는 상황인 만큼 저들의 도움은 채이에게 유용하니까.

그리고 그에겐 비장의 무기가 있었다.

불만을 금방 숨긴 레오나드가 채이를 돌아보며 부드럽게 말했다.

“채이. 점심 같이 먹자.”

마치 연인을 대하듯 상냥한 말투다. 페르난데가 질색할 동안 채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레오나드의 등을 도닥였다. 마침 배가 고프던 상태였다.

“좋아. 실비, 밥 먹으러 가자.”

“웅.”

실비에트가 기분 좋은 듯 조그만 날개를 파닥이며 잽싸게 글자 카드를 정리한다. 그리고 페르난데와 벤냑스는, 아쉽지만 그들이 머물고 있는 셀레니티스 저택으로 돌아갈 준비를 해야 했다.

물론 두 사람하고도 함께 식사하면 더 좋겠으나….

이미 레오나드는 오로지 채이를 위해, 상당한 배려심을 발휘하는 중이었다. 그가 제 영역에 이렇게나 많은 타인을 들인 건 이번이 처음이라고 하니까. 그런데 거기에 식사 자리까지 공유하라 할 순 없는 노릇이었다. 채이는 그런 레오나드의 불편함을 이해했다. 물론 레오나드가 그런 채이의 생각을 이용해, 페르난데와 벤냑스를 떼어놓는 유일한 시간을 만들고 있다는 것은 눈치채지 못했지만.

“수고했어. 내일 보자.”

“그래.”

“벤도 들어가서 푹 쉬어요.”

“네! 채이 님, 내일 봬요.”

채이는 페르난데와 벤냑스를 배웅해주고 실비에트를 품에 안았다. 레오나드 그리고 에녹과 함께 식당으로 내려가자 주방장이 때맞춰 식사 준비를 하고 있었다.

“카드는 제가 정리할게요.”

“고마워.”

에녹이 글자 카드 뭉치를 가지고 식당을 나간다. 실비에트는 채이의 옆자리에 앉았고 레오나드는 맞은편에 앉았다.

“맛있게 드십시오.”

곧 먹음직한 음식들이 식탁 위로 올라오기 시작했다. 반면 실비에트 앞에는 양념이 안 된 닭고기와 양고기만이 올라왔다. 그게 마음에 안 들었는지 실비에트가 고기를 발톱으로 꾹꾹 찍으면서 투정을 부렸다.

“맛없어! 맛없어!”

“실비. 장난치면 안 돼.”

“하지만 맛없어.”

채이의 충고에도 흥 하고서 콧방귀를 뀐 실비에트는 고개를 옆으로 돌려버렸다.

‘어쩐다.’

사람이 먹는 양념은 자극적이기 때문에 그런 걸 실비에트에게 주기에는 걱정이 된다. 그리고 오늘 아침 쿠쿠프로부터 온 서신에 의하면 먹이는 닭고기와 양고기로도 충분하다고 했다. 그 외에 다른 말은 적혀 있지 않았던 까닭에, 채이는 선뜻 결정하기 어려웠다. 그때 레오나드가 짧은 한숨을 삼키더니 포크를 내려놓은 후 실비에트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채이가 힘들어하잖아. 투정 부리지 마.”

“훙….”

“먹기 싫으면 먹지 말든가.”

그리곤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고기 접시를 뺏어 드는 레오나드의 단호한 행동. 그 모습을 보고 시무룩해진 실비에트가 구시렁거렸다.

“웅. 그거 내 건데. 먹을 건데.”

“…진즉에 그럴 것이지.”

레오나드가 코웃음 치면서 접시를 다시 돌려주었다. 실비에트도 더는 투정 부리지 않고 고기를 짭짭거렸다. 그 둘을 잠자코 지켜보던 채이는 꼭 형제처럼 싸우는 둘의 모습이 귀여워서 그만 조그맣게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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