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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도하라 키워놨더니 집착광공 됐는데-69화 (69/105)

069화

쿠쿠프가 지도에서 현재 위치를 짚으며 말을 이었다.

“축복의 땅으로 향하기 위해서는 우선 마물들의 협곡이라 불리는 위험 구역을 지나야 한다고, 회의 때 미리 말했지. 이제 곧 그 입구로 들어서게 된다. 거기서부터는 걸어서 지나갈 거야.”

마차로 이동하는 건 협곡 입구까지. 마차 안에 있으면 빠른 대응이 불가능하여 더 위험해질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물론 사전에 이미 이야기가 오갔던 점이기 때문에 모두는 놀라거나 당황하지 않았다.

뒤이어 델리온이 설명을 붙였다.

“보고 받기로 협곡에서 나타나는 마물의 위험 등급은 3등급까지라고 하더군. 하지만, 보고가 확실하다는 보장이 없고 날이 저문 상태이기도 하니 방심은 금물이다.”

물론 우성 알파가 무려 넷이나 되는 데다가 기사들도 단련된 발현자들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다들 큰 문제는 없을 거라 보고 있었다. 심지어 에녹조차 4등급 마물까지는 잡아낼 수 있을 만큼 기초적인 단련이 잘 되어 있는 발현자였기에 자기 한 몸 건사하지 못할 이는 이곳에 없었다.

그즈음 레오나드가 제 옆에 있는 채이의 손등을 부드럽게 덮어 잡았다. 왜 그러나 싶어 채이가 힐끔 쳐다보자 레오나드는 목소리를 작게 낮춰 말했다.

“내 옆에서 멀리 떨어지지 마.”

다정한 걱정이었다.

픽, 웃은 채이가 덮인 제 손을 빼내어 레오나드의 손등을 도닥여 주었다.

해가 완전히 떨어지고 달이 밝게 떠오르는 시간.

한참 달리던 마차 행렬이 천천히 속도를 늦추다 멈추었다. 그 앞에 오랜 시간 침식이 진행되어 생긴 거대한 협곡이 일행을 맞이했다. 앞쪽과 뒤쪽 마차에서 기사들이 나와 분주하게 움직였다. 앞 마차에 타고 있었던 로렌스도 마차에서 나오자마자 채이가 탄 마차로 다가와 문을 열어 주었다.

“이제 걸어서 이동하겠습니다.”

곧 일행들이 차례로 마차에서 내렸다.

그러는 동안 채이와 오랜만에 대면한 로렌스가 지나가듯 말을 걸었다.

“채이 님. 부디 무사하십시오.”

“아. 로렌스도요.”

채이의 대답에 웃어 보인 로렌스가 이내 행렬 앞으로 돌아가, 대기 중이던 기사들을 이끌고 먼저 움직였다. 그 뒤를 델리온과 쿠쿠프가 따르고 채이도 레오나드와 함께 그들을 따랐다. 갑옷이 절그럭거리는 소음. 비교적 일정한 간격의 발소리. 그 외에, 부우부우 울고 있는 새소리를 제외하면 무척이나 조용했다.

하여 협곡의 입구로 진입하는 동안에는 어딘가 숨이 막히는 긴장감이 감돌았다. 언제 어디서 대뜸 마물들이 튀어나올지 모른다고 생각하니 더욱 긴장이 되는 채이였다.

그때였다.

쿠쿠프와 함께 앞장서서 걸어가던 델리온이 갑자기 걸음을 멈추고 섰다. 기사들을 이끌면서 기민하게 감각을 세우고 있던 로렌스도 무언가 감지한 듯 멈춰 서라는 신호를 보냈다. 고개를 든 델리온이 중얼거렸다.

“…포위되었군.”

그제야 채이도 퍼뜩 고개를 들었다. 침식되어 협곡이 만들어지면서 양쪽으로 생겨난 절벽. 그 위에 있는 무언가의 붉은 시선들이 이쪽을 고요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몽니크다.”

위험 단계 4등급으로 분류된 마물.

몽니크.

원숭이처럼 생긴 마물인데, 빨간 눈에 꼬리는 2개로 갈라져 있고 지능이 높아 무리를 지어 활동하다는 특징이 있다. 또한 그들은 이빨이 크고 날카로워서 단단한 바위도 그냥 씹는다고 하며 사냥 본능이 강해서 불필요한 살육을 즐기는 악질이었다.

[키이이이익!]

직후 이쪽을 줄지어 지켜보고 있던 몽니크 중 가장 덩치가 큰 몽니크 한 마리가 팔을 번쩍 든 뒤 소리 질렀다. 그걸 신호로 삼아 대기하고 있던 다른 몽니크들이 일제히 절벽을 타고 내려왔다.

“죽여라!”

거의 동시에 로렌스의 명령이 떨어지고 기사들도 일제히 검을 꺼내 들었다. 그중, 우성 오메가 기사들은 자신의 레귤러 이능향을 이용해 세뇌시킨 몇몇 몽니크들을 같은 편과 싸우도록 만들어 판도를 더 유리하게 바꾸었다.

하지만 몽니크의 수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빠른 속도로 공격을 피해 기사들의 머리 위를 뛰어넘거나 그들을 다치게 만들어 빈틈을 만든 일부 몽니크들이 후방까지 달려들었다.

[카악!]

레오나드가 채이를 자기 등 뒤로 물리며 보호할 때였다.

기세 좋게 달려든 몽니크들은 우직하게 서 있던 델리온을 넘어가지 못하고 부푼 풍선처럼 펑펑 터져나갔다. 손 하나 까닥하지 않은 채 자신의 선에서 모조리 정리하는 모습은 가히 장관이었다.

“역시 무시무시한 능력이네.”

진즉에 손 놓고 구경하던 클레망이 휘파람과 함께 조용히 감탄했다. 채이도 그 평가에 공감하는 바였다. 언뜻 보면, 델리온은 무적에 가까웠다. 하지만 에녹은 그와 생각이 다른지 델리온을 걱정스레 지켜보고 있었다. 채이가 이유를 묻자 에녹이 조금 눈치를 보았고 레오나드가 대신 이야기를 해주었다.

“컴베스트 공작의 능력은 강하지만, 그만큼 제약이 많거든. 일단 대항이 가능할 정도로 튼튼한 신체를 가졌거나 강한 페로몬을 가진 존재에게는 능력이 통하지 않아.”

“아.”

“그리고 페르난데처럼 능력 자체를 무효화시키는 경우에도 통하지 않지. 눈이 마주쳐야 능력을 쓸 수 있다는 점도 제약이고 무엇보다 능력을 많이 쓰면, 그 부작용으로 신체에 무리가 와.”

채이는 조금 당황했다. 그렇다면 거의 약점이나 다름없는 정보란 소리이지 않나. 에녹이 왜 말하길 망설였던 건지 이해할 수 있었다. 여기에는 다른 영지에서 온 클레망과 셀리언도 있는 상태니 조심스러웠던 거다.

하지만 정작 제 아버지의 약점을 까발린 레오나드와 약점을 강제로 오픈당해 버린 델리온은 딱히 개의치 않는 눈치였다. 혼자서 거의 모든 몽니크를 제거해버린 델리온은 상황이 어느 정도 정리된 듯하자 힐끔 뒤를 돌아보았다.

“걱정해주는 건 고맙다만 염려하지 마라. 내 약점을 알고 그걸 이용해서 뒤통수치려던 자는 이제껏 많았지만… 그들은 전부 시체가 되어버렸거든.”

살벌하면서도 은밀한 경고였다.

마침 눈이 마주쳤던 클레망이 어색하게 웃다가 어깨를 으쓱여 보였다. 어쩐지 심장이 쫄깃해지게 만드는 시선이었던 까닭이다.

“자자, 얼른 이동하자꾸나.”

쿠쿠프의 독려와 함께 잠시 재정비를 끝낸 일행들이 다시금 앞으로 나아갔다. 협곡을 완전히 빠져나가기 전에, 한차례의 전투가 더 있었지만 이번에도 기사들의 활약과 델리온 덕분에 큰 피해 없이 끝낼 수 있었다.

그날 밤은 협곡을 빠져나가자마자 야숙 준비를 시작했다. 근처에 숲이 있었고 신선한 물이 흐르는 샘물도 있어서 쉬어 가기에 위치가 아주 적당했다.

기사들이 임시 움막을 짓고 모닥불을 피우고 근처에서 식수와 과일 등을 조달해오는 등 바쁘게 움직였다. 델리온과 쿠쿠프는 한참 동안 지도를 보며 이야기를 나누었고 셀리언과 클레망은 또 아웅다웅하고 있었다.

그리고 저녁 식사가 준비되는 동안 잠시 바람을 쐬고 오자 싶어 야숙지를 벗어난 채이는 숲으로 향했다. 입구에서 멀지 않은 곳에 샘물이 흐르고 있어 시원함이 느껴졌다. 그 앞에 쭈그리고 앉아서 샘물에 한 손을 넣고 있을 즈음, 등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채이.”

채이를 뒤따라온 레오나드였다.

“아. 레오.”

“혼자 다니면 위험하잖아.”

채이 옆에 다가선 레오나드가 같이 쭈그리고 앉았다. 채이는 픽 웃고서 레오나드의 하얀 뺨을 손가락으로 툭 건드렸다.

“미안. 금방 돌아갈 생각이었어.”

“그래도 걱정되니까 말해줘.”

“알았어. 앞으론 그러지 뭐.”

그러고 장난기가 발동한 채이가 샘물 속에 담가둔 손을 꺼내 물을 튀겼다. 움찔 눈을 감았다 뜬 레오나드가 작게 미소 짓다가 채이의 머리를 감싸고 입을 맞추었다. 처음에는 장난스럽고 간질거리는 수준의 귀여운 뽀뽀였지만 점차 짙은 키스로 바뀌자 분위기도 눅진해져 갔다. 쌉싸래하던 초콜릿 향 사이로 달콤한 밀크가 섞인 듯한 향이 느껴졌다.

최근 자주 스킨십을 하다 보니까 알게 된 사실은 그가 흥분하면 다크 초콜릿에 가까웠던 페로몬에 달달한 밀크 향이 섞인다는 거다. 때문에 레오나드에게서 밀크 초콜릿 향이 날 때마다 괜히 더 부끄러워지는 채이였다.

젖은 입술이 떨어지고 채이가 고개를 떨구었다. 달아올라서 빨개진 채이의 귀가 너무 귀여워서 레오나드는 그걸 살짝 깨물었다. 읏, 하고 터진 신음은 레오나드를 더욱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자, 잠깐… 레오.”

몸의 중심이 뒤로 기울면서 채이 위로 점점 레오나드가 올라타는 모양새가 되었다. 귀를 물다가 목선을 타고 내려가며 지분거리던 레오나드가 다시 입을 맞추었다. 그러다 옷 위를 짚는 레오나드의 손이 어디로 가는지 인지한 채이가 목까지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단전에서 뜨거운 피가 팽팽 도는 것만 같았다.

이대로 있다간 일을 치고 말 거다!

번쩍하고 정신이 든 채이가 옆으로 재빠르게 몸을 굴려 레오나드의 품에서 쏙 빠져나가자마자 벌떡 일어났다.

“저, 저녁 먹으러 가야지!”

어색한 목소리로 “배고프다 배고파” 중얼거리며 채이가 떠나버리자 야속한 뒷모습을 넋 놓고 바라보던 레오나드가 이내 한숨을 내쉬며 어기적어기적 일어났다. 아무래도 그는 조금 기분을 식히고 가야 할 것 같았다.

그렇게 두 사람의 은밀하던 밀회가 지나가고, 모르는 척 휘영청 떠오른 달은 어두컴컴한 밤을 조용히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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