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혈통이 깡패임-3화 (3/221)

<혈통이 깡패임 3화>

3화 혈통이 이상함 (2)

성인식이 열리는 장소는 블랙폴리스의 상층에 있는 오페라 홀.

이렇게 커도 되나 싶을 정도로 규모가 엄청났다. 무대의 넓이도 넓이였으나 좌석이 무려 5층에 걸쳐서 만들어져 있었다.

1층에는 영화관처럼 좌석이 쭉 나열되어 있었고, 위층부터는 칸칸이 나뉘어서 관람할 수 있게끔 만들어져 있었다.

“여기 모인 분들은 전부 흑천의 분가에 속해 있는 혈족들입니다.”

주하연의 설명에 의하면 분가 혈족들은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흑천 그룹의 지부에서 생활한다고 한다.

그곳에서 흑천 그룹의 일을 돕는 게 분가 사람들의 의무.

흑천 그룹의 가장 강력한 힘은 혈족이니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저건 뭐지?

사람들을 둘러보던 이한울은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자리가 저렇게 많이 남아 있는데. 왜 위층에 앉아 있는 겁니까?”

1층의 좌석은 반이 넘게 비어 있었다. 그럼에도 위층에도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급을 나눈 겁니다.”

“급이라고요?”

“1층은 잡(雜) 흑룡혈을 가지고 있는 분가 혈족이고, 위부터는 열(劣) 흑룡혈을 보유하고 있는 분가 혈족들이 앉아 계십니다. 같은 열(劣) 흑룡혈이라고 해도 자질에 따라서 더 높은 자리에 앉습니다.”

“고작 자리가지고 너무 하는데요.”

“흑천 내의 지위를 결정하는 것은 흑룡혈입니다. 흑룡혈에 따라서 받는 대우가 달라지는 건 당연합니다.”

실소가 절로 나오는 이유였다.

아무래도 자신은 이 집안에 익숙해지기 힘들 듯싶었다.

“이쪽에 앉으시죠.”

둘은 1층의 뒷좌석에 앉았다.

그때였다.

“하연아!”

오페라 홀이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웬 젊은 청년이 뒤에서 주하연을 끌어안았다.

아니, 끌어안으려다가 주하연이 벌떡 일어나는 바람에 무산됐다.

“하연아! 오랜만에 스킨십인데 너무하는 거 아니야?”

“권지석 님, 오래만이십니다. 잘 지내셨습니까.”

“나야 잘 지냈지. 너무 자리내서 탈이지. 하하핫.”

청년의 목소리가 얼마나 크던지 사람들의 시선을 모두 끌어 모을 정도였다.

“근데 이놈은 뭐야?”

청년, 권지석의 시선이 이한울에게 향했다. 헤실헤실 풀어졌던 얼굴이 험악하게 구겨졌다.

“뭐 하는 새끼인데. 하연이 옆에 있어? 엉?”

말투는 여전히 가벼웠으나 기세는 그렇지 않았다. 당장이라도 손을 쓸 것처럼 얼굴의 근육이 꿈틀거렸다.

“회장님께 말씀을 들으셨을 겁니다. 이분이 바로 이한울 님이십니다.”

권지석의 눈동자가 커졌다.

“이놈이 그 배반자의 아들이라고?”

안 그래도 시끄럽던 청년의 목소리가 한층 더 커졌다. 그 바람에 오페라 홀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그 소리를 들었다.

“배반자? 설마 권천을 말하는 건가? 권천의 자식이라고?”

“세상에…… 가문을 도망치고 뭘 하나 했더니. 자식을 낳았을 줄이야.”

“가문을 배반한 것도 모자라서 외인과 피를 섞어서 흑천의 피를 더럽히다니! 이렇게 수치스러울 수가!”

살면서 이렇게 주목을 받은 적이 있나 싶었다. 그리 달갑지 않은 관심이라 문제였지.

곳곳에서 비난이 쏟아졌지만 눈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이 정도야 이미 예상했던 일이다. 더구나 이한울의 특기 중 하나가 듣기 싫은 소리를 한 귀로 듣고 흘리기다.

“누굽니까?”

“권지석 님입니다. 권혁 님의 차남으로 이한울 님보다 세 살이 더 많으십니다.”

그 음습한 남자한테서 저렇게 시끄러운 아들이 태어날 줄이야. 핏줄이란 정말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근데 이놈은 왜 여기에 있는 거야?”

“이한울 님께서는 성인식의 차례를 기다리고 게십니다.”

“차례? 설마 그 나이가 돼서까지 흑룡혈을 각성시키지 못한 거야? 이거 진짜 웃긴 놈이네.”

권지석의 입 꼬리가 올라갔다. 노골적으로 사람을 깔보는 얼굴이었다.

“하연이, 저딴 덜떨어진 놈 말고 이 오빠랑 진득하니 이야기나 나눌까? 오빠가 조만간 팀을 새로 만드는데. 하연이가 꼭 들어와 줬으면 좋겠거든.”

“저는 회장님의 명령만을 따릅니다.”

“에이, 그러지 말고.”

권지석은 이한울을 아예 무시한 채 주하연에게만 관심을 보였다.

흑천 그룹처럼 대단한 곳에서도 이런 덜떨어진 놈이 나올 수 있다는 사실에 이한울은 놀라움을 표했다.

“이한울이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마음에 들지 않는 남자였으나 그와 별개로 인사는 나눠야 했다. 좋으나 싫으나 사촌 지간이 아니던가.

그러나 권지석은 생각이 조금 달라보였다.

“이 건방진 새끼 좀 봐라.”

“무슨 말씀이십니까?”

“본가의 직계 혈족을 보고도 무릎을 꿇지 않아? 뒤지고 싶어?”

권지석의 목소리가 날카로워졌다. 이한울은 어쩌라는 식으로 말했다.

“직계라면 저도 직계 아닙니까.”

“뭐? 이 새끼가 뭐라고 지껄이는 거야. 나는 말이야. 순(順)혈이야. 너랑은 급이 달라.”

“아직 제 흑룡혈이 뭔지 밝혀지지 않았는데요.”

“이런 멍청한 새끼를 봤나. 네 애비는 밖에서 천한 년이랑 놀아났어. 너는 그 천한 년한테서 태어났으니 별반 다를 것도 없을 거 아니야.”

너무 당당해서 오히려 감탄스럽다.

흑천의 직계 혈족이라는 엄청난 배경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이렇게 천박하게 말할 수 있다니.

“보나마나 잡(雜) 흑룡혈을 받고 분가로 격하가 되겠지. 이제 너랑 내가 어떻게 다른지 이해가 되냐? 그럼 좀 닥치고 있어. 난 우리 하연이랑 찐득하니 이야기를 나눠야 하니까.”

권지석은 멋대로 주하연의 옆자리에 앉더니 시끄럽게 떠들기 시작했다.

“내가 만들 팀이 얼마나 끝내주는지 알아? 아버지한테 특별히 부탁해서 재능 있는 놈들만 쏙쏙 골라서 모아놨어! 빵빵하게 지원도 해 주신대!”

“예, 대단하군요.”

“너만 들어와 주면 형님도 금방 뛰어넘을 수 있어! 어때, 하연아. 이 오빠 좀 도와줄 거지?”

“저는 회장님만을 모실 뿐입니다.”

주하연은 무척 귀찮다는 표정을 지으며 짧게 대답했다.

“에이, 그러지 말고. 우리 하연이만 와 주면 해 달라는 건 다 해 줄 테니까.”

“싫습니다.”

“설마 형님한테 갈 생각은 아니지? 그것만큼은 절대로 안 돼!”

“제의는 받았습니다만 그럴 생각은 없습니다. 저는 오직 회장님만을 모실 생각입니다.”

연이은 거절에 권지석의 표정이 조금씩 험악해졌다. 그러더니 별안간 이한울을 향해 소리쳤다.

“뭐 해? 당장 꺼지지 않고. 하연이랑 이야기하는데 방해가 되잖아!”

아무래도 화풀이 대상으로 이한울을 선택한 모양이었다.

안 그래도 권지석의 태도에 슬슬 짜증이 났던 찰나였다.

저놈의 성질을 건들 수 있는 역린은 뭐가 있을까.

고민도 잠시뿐, 답은 금방 나왔다.

“뭐 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묻긴 물어. 빨리 꺼지라니까!”

“권혁 부회장님의 자제 분에 대한 이야기는 저도 자주 들어봤을 정도로 엄청 유명하거든요.”

권혁의 자식 중에서 장남과 막내딸은 이미 유명한 헌터였다.

특히 장남은 위험도가 10성에 달하는 거대 몬스터를 퇴치했을 정도로 막강한 실력자.

“그런데 차남에 대한 이야기는 단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거든요. 그건 왜 그렇습니까?”

당사자 앞에서 할 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먼저 시비를 건 쪽은 권지석이었기에 거리낌 없이 말했다.

권지석의 반응이 가관이었다. 얼굴이 시뻘겋게 변하더니 손가락 마디가 으스러질 정도로 힘껏 주먹을 쥐었다.

“이, 이 개 같은 새끼가……!”

권지석의 분노가 폭발하기 직전, 주하연이 말했다.

“권지석 님, 이제 곧 성인식이 시작됩니다. 회장님께서도 지켜보고 계실 텐데 여기서 화를 내셨다가는 크게 혼나실 겁니다.”

효과는 굉장했다. 권지석이 분노를 꾹 눌러 참은 것이다.

“이 새끼…… 나중에 보자.”

권지석이 분노가 들끓는 눈빛으로 이한울을 노려볼 때였다.

진행자로 보이는 청년이 무대 위로 올라왔다.

<이제 성인식을 시작하겠습니다.>

진행자가 성인식을 시작하자마자 한 소년이 잽싸게 무대 위로 올라갔다.

<손을 올려놓으십시오.>

진행자의 말에 소년은 용 석상 위에 손을 올려놓았다. 소년의 손을 중심으로 붉은색 선이 번지기 시작했다.

용 석상의 눈동자가 붉게 빛났다. 곳곳에서 탄식이 터져 나왔다. 소년은 어깨를 축 늘어트린 채 내려왔다.

“보이냐? 너랑 같은 잡(雜) 등급이다. 별 볼 일 없는 새끼라는 증거지.”

방금 전 일로 화가 단단히 났는지. 권지석은 씩씩거리며 이한울을 조롱했다.

그래봤자 이한울에게는 씨알도 먹혀들지 않았다. 패자의 조롱 따위에 누가 귀를 기울이겠는가.

<다음 분 올라오십시오.>

다른 소녀가 위로 올라왔다. 소녀 역시 석상에 손을 올려놓았다.

용 석상의 눈동자가 다시 빛났다. 이번에는 노란색이었다.

그러자 두 남녀가 소리를 질렀다.

“겨우 열(劣) 흑룡혈을 가지고 방방 뛰는 꼴이라니. 이래서 분가 새끼들은 안 돼요. 물론 너도 안 되는 놈이고.”

“혼잣말은 남이 안 듣는 곳에서 하시지요.”

“뭐야, 이 새끼야!”

“권지석 님, 회장님이 지켜보고 계십니다.”

주하연의 경고에 권지석은 입을 꾹 다물었다.

그 뒤로도 많은 이들이 석상 앞에 섰다.

잡(雜)이 압도적으로 많았으며 그 다음이 열(劣)이었다. 순(順) 등급은 한 명도 없었다.

<이제 그만 성인식을 종료…… 예? 아직 한 사람이 더 남아 있다고요? 알겠습니다.> 진행자가 좌중을 둘러봤다. 그리고 이한울에게 시선을 고정시켰다.

<이한울 씨, 단상으로 올라오십시오.> “뭐 해? 빨리 안 올라가고.”

권지석이 반색을 하며 소리쳤다.

네가 어떤 등급이 나올지 잘 봤다가 실컷 조롱해 주겠다는 의도가 빤히 보였다.

이한울은 자리에서 일어나 용 석상으로 향했다.

단상에 올라가자 주변의 시선이 모이는 게 느껴졌다. 동시에 자신을 향해 수근 거리는 목소리도 들려왔다.

“배반자가 흑천 그룹을 도망쳐서 낳은 자식이니 보나마나 더러운 피를 가지고 있을 겁니다.”

“아무리 잘해 봐야 잡(雜) 등급이 고작일 겁니다. 분가로 떨어지면 그때 손을 봐줍시다.”

“암, 그래야지요. 저런 놈을 가만히 내버려 둘 수는 없습니다.”

무대로 걸어가는 내내 험한 말이 들려왔다. 이한울은 눈 하나 까딱하지 않고 석상 앞에 섰다.

석상에 손을 올리기 전, 좌중을 돌아봤다. 1층부터 5층까지 살기 어린 시선이 쏟아졌다.

‘세상 살기 참 뭐 같군.’

이미 예상했다는 말로 얼버무렸으나 이한울이 속내가 정말로 괜찮은 것은 아니었다.

‘밖에서도 출신 때문에 욕을 들었는데. 여기서까지 그럴 줄이야.’

언제나 고아라는 말이 꼬리표처럼 따라붙었다. 애미 애비가 없어서 가정교육을 못 받았다느니. 부모가 없어서 애가 그 모양이라던지.

그런데 흑천 그룹에 와서까지 사람들은 이한울의 출신을 문제 삼으며 욕을 하고 있었다.

이제 이한울이 낮은 등급의 흑룡혈을 각성하면 그러한 태도는 더욱 심해질 터.

‘하여간 빌어먹을 집안이야.’

그때, 누군가와 눈이 마주쳤다. 이 오페라에 딱 하나밖에 없는 로열석에 있는 회장과 서로 시선이 닿은 것이다.

회장은 의자에 기댄 채로 이한울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 거만한 자세는 기업의 회장이 아니라 황제처럼 보였다.

뭐, 다를 것도 없지.

그런 생각을 하며 석상에 손을 올려놓았다.

<용천승상(龍天昇像)에 접촉하셨습니다.> <잠재력의 각성이 시작됩니다.>

<특수 항목 ‘혈통(血統)’이 추가가 됩니다.> 눈앞에 상태창이 연달아 떠올랐다. 그와 동시에 용의 눈동자에서 붉은 빛이 뿜어져 나왔다.

붉은 빛은 잡(雜) 등급을 뜻한다. 예견된 결과였으나 입맛이 쓴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이만 무대에서 내려가기 위해서 석상에 올려놨던 손을 거둬들였다.

“……뭐야?”

접착제로 붙인 것처럼 손이 떨어지지 않았다. 이한울은 진행자를 향해 물었다.

“손이 안 떨어지는데. 이게 원래 이런…….”

그 순간, 손을 타고 무언가 흘러들어왔다.

전류? 아니다. 번개였다. 번개에 맞은 것처럼 온몸이 흔들렸다.

용의 눈동자가 새하얀 빛을 내뿜기 시작했다.

빛이 얼마나 강하던지 오페라 홀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눈을 감을 정도였다.

“저, 저게 뭐지?”

“석상에서 하얀빛이? 저런 건 처음 보는데……?”

“순(順) 흑룡혈? 아니야, 순(順) 흑룡혈은 푸른색이지 하얀색이 아니야!”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거지……?”

성인식이 개최된 이래로 단 한 번도 발생한 적이 없는 현상에 흑천의 혈족들은 두려움에 빠졌다.

“하!”

어디선가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로열석에 앉아 있던 회장이 어느새 일어난 채 웃고 있었다.

“하핫, 으하하하핫!”

혈족들은 다시 한 번 더 경악했다.

언제나 말없이 조용하던 회장이 굉소를 터트리다니?

석상에서 빛이 터져 나온 것만큼이나 믿기 힘든 일이었다.

“내가 살아 있는 동안 이렇게 멋진 일이 일어날 줄은 몰랐군!”

로열석에서 회장이 소리쳤다. 오페라 홀이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보아라! 진(眞)이다! 저 빛이야 말로 저 아이가 진(眞) 흑룡혈을 가지고 있다는 증거다!”

잡(雜)이 아니다. 열(劣)도 아니다. 그렇다고 순(順)조차도 아니다.

진(眞) 흑룡혈.

대부분의 혈족들은 그게 뭐냐는 표정을 지었다. 몇몇 혈족들만이 알아들었다.

“우리 흑천 일가의 시조이신 초대가주 권현문 님만이 보유하셨다던 진(眞) 흑룡혈이란 말이다!”

모두가 경악에 빠졌다.

하지만 이 자리에 모인 사람들 중에서 가장 크게 놀란 사람은 이한울이었다.

마치 넋이 나간 사람처럼 허공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눈에는 보였기 때문이다.

<특수항목 – 혈통>

1. 흑룡혈(黑龍血)

-등급 : SSS+

-순도 : 진(實)

2. 건강혈(健康血)

-등급 : S+

-순도 : 진(實)

3. ???

-등급 : ???

-순도 : ???

진(眞) 흑룡혈 외에도 상태창에 표시된 두 개의 혈통들이 말이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