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통이 깡패임 16화>
16화 혈통이 마주침 (3)
“동생?”
상태창을 좀 더 자세히 살피고 싶었으나 권찬성이 이름을 부르는 바람에 그럴 수 없었다.
권한울을 아쉬움을 안은 채 상태창을 다시 닫을 수밖에 없었다.
어차피 혈통은 너무 광범위한 능력이기에 설명만 읽어서는 무슨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 알 수 없다. 나중에 차차 알아볼 생각이었다.
“어서 따라오지 않고 뭘 하나?”
권한울은 걸음을 옮겼다. 주하연도 같이 움직였다.
문득, 이상한 점을 하나를 깨달았다.
“말리질 않네요?”
“본 상황이 탐탁지 않은 것은 사실이오나…… 이미 성립이 된 전투를 제가 파할 수도 없지 않습니까.”
주하연은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대신 꼭 이기셔야 합니다.”
“아무렴요.”
권한울은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
* * *
권찬성이 향한 곳은 흑천 일가 내에 있는 야외 대련장.
일전에 권한울이 이용했던 단련실 아래층의 대련실과 달리 훨씬 넓었다.
“누구든지 상처를 입을 것 같으면 내가 바로 개입할 거다. 알겠나?”
권찬성이 자리를 비키자 비로소 권한울은 이필승과 마주할 수 있었다.
‘이필승…… 소문으로만 듣던 인간을 이렇게 직접 보게 될 줄이야.’
헌터로 일할 당시, 딱히 관심을 기울이지 않아도 이필승이라는 이름 세 글자를 여기저기서 자주 들을 수 있었다.
이필승은 그 정도로 유명하고, 대단한 인물이었다. 권한울 따위는 감히 말을 섞을 수조차 없었다.
그런 인물과 대면한 것도 모자라서 손속을 섞으려고 하고 있다.
‘쉽지는 않겠지.’
기프트(Gift)를 소유하고 있는데다 SS랭크의 대괴수 이클립스와 대면한 적도 있는 실력자다.
권찬성이 괜히 권한울의 상대를 시킨 게 아닐 터.
하지만 그건 권한울도 마찬가지였다.
‘진 흑룡혈을 얻은 이후로 많은 것들이 느껴진다.’
사람과 대면했을 때, 과연 그를 이길 수 있을지 어떨지.
그런 것들이 본능적으로 느껴지기 시작한 것이다.
“망부석처럼 멀뚱멀뚱 서 있기만 하고 뭐 하는 거요?”
까칠한 목소리에 권한울은 상념에서 깨어났다.
“무서우면 내가 먼저 시작하지.”
이필승이 양손을 팡팡 때렸다. 그 모습에 권한울은 위화감을 느꼈다.
“무기는 안 쓰십니까?”
이클립스의 촉수를 ‘베어’냈다고 했으나 분명히 날붙이를 사용할 것이라 생각했다.
“난 무기 따위는 안 쓰는 사람이우. 대신 이런 걸 사용하지.”
이필승이 마력을 발산했다. 젊은 나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방대한 양이었다.
대단한 광경이었으나 권한울은 이상하게 여겼다.
‘저건 마력을 그냥 버리는 거 아닌가?’
마력으로 스킬을 사용하는 것도 아니고, 단순히 방출하기만 한다니? 이해하기 힘든 행동이었다.
그러나 권한울은 곧 위화감을 깨달았다.
‘……마력이 흩어지지 않잖아?’
방출된 마력은 사라지지 않고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 바람에 이필승의 주변이 마력 때문에 살짝 일그러져 보일 정도였다.
“흡!”
이필승이 기합을 넣었다. 주변에 퍼져 있던 마력이 다시 모여들었다.
마력은 이필승의 표면에 모여들고, 응축되었다. 이내 마력과는 다른 무언가로 변화되었다.
아지랑이.
이 대낮에도 뚜렷하게 보일 만큼 선명한 아지랑이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이필승이 손을 쥐자 아지랑이가 모여들더니 검의 형상을 만들었다.
아지랑이와 그것으로 만들어진 무형의 검은 보석 가루가 흩날리는 것처럼 무척 아름다웠다.
하지만 그것을 보고 있는 권한울은 바짝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설마 저건…….”
* * *
“권찬성 님께서는 항상 흉계를 꾸미시는군요.”
별안간 주하연이 입을 열었다. 질문의 대상은 당연히 권찬성이었다.
“흉계?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군.”
“시치미를 떼실 생각이라면…… 좋습니다. 하지만 이 말씀만은 드려야겠습니다. 권한울은 님을 만만하게 생각하시다가는 크게 다치실 겁니다.”
그 말에 권찬성은 웃음을 터트렸다.
“나는 단 한 번도 동생을 만만하게 생각한 적이 없어.”
흑천 일가가 현재의 위치에 있을 수 있는 것은 흑룡혈 덕분이다.
순도가 높을수록 강해지는 흑룡혈은 순혈에 이르러서는 소유자에게 초월자와도 같은 힘을 가져다준다.
“진혈은 틀림없이 대단하겠지. 역대 흑천의 고수들 중 어느 누구를 데려놔도 동생에게는 안 될 거야.”
흑룡혈의 격차는 절대적이다.
대다수의 순혈들은 부정을 하고 있지만 권찬성은 일찍이 인정했다.
진혈 권한울은 조만간 무서운 존재로 성장할 것이다.
“하지만 그건 나중의 일이지. 지금의 동생은 부족한 면이 많아.”
용도 과거에는 한낱 구렁이에 불과했다. 권한울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신입은 이미 완성되어 있지. 마침 시작하는군. 자세히 한번 봐봐.”
권찬성이 이필승을 가리켰다.
저 멀리 이필승의 전신에서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모습이 보였다.
주하연은 믿기 힘들다는 얼굴로 말했다.
“오러? 말도 안 됩니다. 어떻게 저 나이에 오러를…….”
상위 헌터들 중에서도 오러를 터득한 이는 드물다.
오러는 스킬이 아니라 경험과 깨달음을 통해서만 습득할 수 있는 기예이기 때문이다.
“저게 우리 신입의 기프트(Gift) ‘자연지체(自然肢體)’다.”
권찬성은 자랑스럽다는 어조로 말했다.
“우리 신입은 선천적으로 마력저장량, 마력친화력, 마력순응력 같이 마력에 대한 모든 능력을 타고났어.”
세상에는 다양한 천재가 존재한다.
권법의 천재, 무기술의 천재, 집필의 천재 등등.
“우리 신입은 이를 테면 마력의 천재라고 할 수 있지.”
* * *
설마 오러(Aura)를 꺼내들 줄은 몰랐는데…….”
마력을 정제하고, 또 정제해야지만 얻을 수 있다는 힘.
헌터들 중에서도 극히 드문 이들만이 얻을 수 있다는 그 힘을 이필승은 이미 터득한 뒤였다.
“핫!”
이필승이 돌진했다. 아니, 발사됐다.
오러가 이필승의 몸을 총알처럼 만들었다.
권한울은 반사적으로 허리를 뒤로 젖혔다. 그 순간, 허공에 빛이 그려진다.
직선으로 휘둘러진 오러의 칼날이 권한울의 머리가 있던 자리를 벤 것이다.
“제법 반사 신경이 좋수!”
이필승이 연달아 오러를 휘둘렀다. 아니, 휘두른다 싶었을 때는 이미 허공에 선이 그어진 뒤였다.
오러는 몬스터의 질긴 가죽도 두부처럼 벨 정도로 날카롭다. 권한울의 신체쯤은 물처럼 베어낼 터.
한시도 긴장을 놓을 수 없었다. 한 번의 방심도 용납이 되지 않았다.
‘공격 자체는 단순하군.’
그 정도로 위험한 순간이었으나 권한울의 마음속은 놀랄 만큼 평온했다.
‘흑룡혈 때문인가?’
권한울의 내면은 동화율이 오를수록 변했다. 신체 결손에 대한 두려움보다는 전투에 대한 고양감이 몸속을 꽉 채우고 있었다.
“핫!”
이필승이 오러를 힘껏 내리쳤다. 그 순간, 본능이 경고했다.
권한울 역시 힘껏 땅을 박찼다. 뒤로 쭉 물러났다. 그 즉시, 권한울이 서 있던 땅이 망치로 맞은 듯이 박살이 났다.
‘오러를 망치로 변형시켰어?’
오러를 내리치는 찰나, 이필승은 오러를 거대한 덩어리로 만들었다. 하마터면 몸이 으스러질 뻔했다.
“이걸 피해?”
이필승도 의외라는 듯이 말했다.
“그럼 이건 어떠시우?”
이필승이 오러를 내질렀다.
뒤로 물러난 탓에 권한울과 이필승 사이의 거리는 무려 10미터가 넘었다.
오러를 집어던지지 않는 이상 도저히 닿을 수 없는 거리였다.
하지만 권한울은 본능적으로 허리를 옆으로 틀었다. 창처럼 길게 늘어난 오러가 권한울의 복부를 스치고 지나갔다.
‘저 젊은 나이에 오러를 이렇게 자유자재로 사용한다고?’
권한울이 알기로 오러는 터득하는 것도 어렵고, 다루는 것은 더 어렵다.
이렇게 자유자재로 사용하려면 무수한 경험이 필요할 터.
도저히 이필승의 나이로 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과연 기프트로군.’
이필승에 대한 소문 중에는 그가 마력의 천재라는 말도 있었다.
당시에는 무슨 뜻인지 몰랐는데. 이제는 알 수 있었다.
“촉이 예리하시우!”
이필승이 제차 오러를 휘둘렀다. 오러가 채찍처럼 늘어나며 권한울을 노렸다.
한 번 휘두를 때마다 땅바닥에 쩍쩍 갈라졌다. 한 번이라도 공격을 허용하면 땅바닥이 아니라 권한울이 저렇게 될 터.
‘이거 곤란한데.’
오러를 사용하는 이필승은 무섭도록 강맹했다.
오러는 마력보다 뛰어나다. 연료를 갈아치운 셈이니 당연했다.
‘게다가 오러라서 함부로 손을 댈 수도 없고.’
오러는 단순히 날카로운 칼날이 아니다. 마력의 덩어리다.
사용자 이외의 사람이 손을 대면 그것만으로 피해를 입는다.
‘이런 놈을 이길 수 있다고 판단했다니…… 흑룡혈 이거 정말로 믿어도 되는 건가?’
괜히 투덜거릴 때였다.
<천재혈(天才血)이 훈수를 둡니다.> <범인은 알 수 없는 것을 깨닫습니다.> 권한울의 머릿속으로 온갖 종류의 지식들이 들어왔다.
‘아니……?’
지식들이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화학반응을 일으켰다. 그 순간, 권한울은 깨달았다.
‘……왜 지금까지 마력을 이딴 식으로만 사용했지?’
지금까지 권한울은 현룡승천공을 사용하는 데만 마력을 사용했다.
하지만 마력이란 그런 것이 아니었다.
‘마력이란 물이다. 내 몸은 물을 담는 그릇이다. 물은 고여 있기만 하면 소용이 없는 법. 끊임없이 흐르고, 변화해야 한다.’
사소한 깨달음.
하지만 그것이 가져온 결과는 엄청났다.
<‘깨달음’을 얻으셨습니다.>
<현룡승천공 입문형의 성취도가 5성 -> 6성으로 증가됩니다.> <기초 마력운용법을 습득합니다.>
권한울의 전신에 마력이 흐르기 시작한다. 권한울의 움직임에 힘이 깃들었다. 자연스럽게 동작이 빨라지기 시작했다.
지금까지는 참격에 쫓겼다면 이제는 반보 먼저 피하기 시작했다.
“엇?”
이필승의 얼굴에 살짝 당혹감이 어렸다.
“서, 설마 마력운용법을 깨달은 거요?”
마력의 천재답게 이필승은 권한울의 변화를 금방 눈치 챘다.
대다수의 헌터들은 마력을 스킬을 사용하는 연료로만 인식한다.
하지만 마력운용법을 깨달은 베테랑 헌터들은 마력을 힘으로 인지하며 다양한 방법으로 활용한다.
“어, 어떻게!”
마력운용법은 오러를 익히기 위해서 꼭 필요한 것으로, 오랜 경험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기술이다.
그것을 전투 도중에 갑자기 습득했으니 놀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지금 권한울에게는 이필승의 반응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아니다. 이 운용법은 내게 전혀 어울리지 않아.’
권한은 즉시 마력운용법을 수정했다.
마력운용법을 바꾼다는 것은 베테랑 헌터들도 쉽사리 하지 않는 위험하고 어려운 행위였다.
그러나 천재혈이 권한울에게 끊임없이 영감과 지식을 불어넣어줬다.
<본인의 신체에 최적화된 마력운용법을 찾아내셨습니다.> <‘권한울표 마력통로’를 습득하셨습니다.> 권한울표 마력통로
-품질 : 유니크(S)
-스킬의 발동 속도 / 마력의 재생 속도 / 마력의 운용 속도가 전부 20% 증가된다.
권한울의 전신에 마력이 충만하게 깃들었다. 끝을 알 수 없는 활력이 샘솟기 시작했다.
동시에 권한울의 손에 마력이 모여들었다. 마치 물방울이 맺힌 것 같은 형태였다.
그것을 본 이필승은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어, 어떻게 저걸!”
오러는 아니다. 하지만 그 직전이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삼류 헌터였던 사람이 단 3개월 만에 오러의 턱밑까지 도달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이필승이 고함을 지르며 오러의 검을 하나 더 만들어냈다.
양팔을 교차하고, 내질렀다.
트윈소드(Twin Sword)
크로스그레이브(CrosGrave)
유니크 스킬 크로스 그레이브.
내질러진 십(十)자 모양의 참격이 권한울의 가슴을 정확히 베었다.
현룡승천공 입문형(玄龍昇天功 入門形)
방격식 궐차(旁格式 橛汊)
권한울이 양손을 모은 채로 앞으로 내질렀다. 십자 참격이 물줄기처럼 갈라졌다.
믿기 힘든 광경에 이필승은 양팔을 휘두른 채로 굳었다. 그 바람에 정면이 훤히 드러났다.
그 틈을 노리고 권한울이 땅을 박찼다. 일직선으로 뻗어나간 팔꿈치가 이필승의 명치를 정확히 꿰뚫었다.
현룡승천공 입문형(玄龍昇天功 入門形)
강격식 충각(强擊式 衝角)
팔꿈치가 이필승의 명치를 찔렀다. 마력이 터지며 이필승의 몸을 날려 보냈다.
두 말할 것도 없는 깔끔한 승리.
권한울은 천천히 뻗었던 동작을 거둬들였다.
“후우.”
담담한 척하고 있었으나 내심 마음속에서는 감정이 벅차올랐다.
삼류 헌터였던 자신이 대형 루키인 이필승을 쓰러트렸다.
그 사실이 너무도 기뻤다.
“흑룡혈, 이놈 믿을 만하네.”
권한울이 그리 말할 때였다.
저 멀리 날아갔던 이필승에게서 심상치 않은 기운이 뻗어 나왔다.
* * *
“제가 뭐라고 했습니까.”
날아가는 이필승을 보며 주하연이 말했다.
“권한울 님을 얕잡아보지 말라고 말씀드렸죠.”
“아직이다.”
권찬성은 입을 굳게 다문 채 이필승을 노려봤다.
“아직 신입에게는 비장의 기술이 남아 있어.”
비장? 주하연이 그렇게 생각했을 때였다.
대련장 위, 이필승에게서 흉포한 기운이 품어져 나왔다.
오래 동안 흑천에서 몸을 담아온 주하연은 바로 알 수 있었다.
“……어떻게 외인이 용투기를 사용하고 있죠?”
오로지 흑룡혈을 지닌 사람에게만 허락되는 권능 중 하나.
용투기를 이필승이 사용하고 있었다.
“말했잖냐. 저 놈은 마력의 천재라고. 내 용투기를 맨날 지켜보더니 기어코 흉내를 내더군.”
권찬성이 기꺼워하며 말했다.
“순혈인 내가 장담하지. 이필승의 용투기는 열혈보다 뛰어나다.”
* * *
몬스터를 마주하고 있는 것 같은 흉포한 기운.
“용투기?”
이필승이 내뿜는 기운은 틀림없이 용투기였다.
기프트가 신의 축복이라는 말은 자주 들어봤다. 하지만 설마 흑룡혈의 권능까지 흉내를 낼 줄이야.
“아직…… 안 끝났수.”
이필승이 바닥에 침을 뱉었다. 내장이 상했는지 피가 섞여 나왔다.
“이제부터는 쉽지 않을 거요. 뭐, 그건 그쪽이 더 잘 알겠지.”
이필승이 앞으로 튀어나갔다. 발바닥이 땅을 때리면서 바닥이 울렸다.
수십 미터의 거리가 단숨에 좁혀진다. 코앞까지 온 이필승이 용투기로 만든 칼을 휘둘렀다.
권한울은 몸을 비틀어서 참격을 피했다. 참격이 땅에 닿으며 용투기가 폭발했다.
폭발로 인해 발생한 척력이 권한울과 바닥을 통째로 날려버렸다.
‘용투기가 이렇게 강하다고?’
권우진 때는 워낙 빨리 끝나서 용투기의 편린밖에 보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직접 마주한 용투기는 등골이 오싹할 정도였다.
“언제까지 도망만 칠거요!”
이필승이 칼날을 휘두를 때마다 권한울은 이리저리 휩쓸렸다.
그 모습에 이필승이 웃음을 터트렸다.
“진혈이라는 인간도 별 볼일 없군!”
으득.
이가 갈렸다. 분노가 목덜미를 타고 전신으로 퍼졌다.
<동화율 9% -> 10%>
<동화율이 10의 배수가 되었습니다.> <권능을 개방합니다.>
몸속 깊은 곳.
그곳에서 무언가가 솟구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