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통이 깡패임 17화>
17화 혈통이 마주침 (4)
몸에 흐르던 마력이 다른 것으로 변질되어 간다.
마력이 조용히 흐르던 시냇물과 같았다면 지금의 것은 폭풍이 몰아치는 바다와 같았다.
거칠고, 막대한 양의 힘이 전신을 달린다. 그것도 모자라서 밖으로 퍼져나가기 시작한다.
<권능 ‘용마기(龍魔氣)’를 습득합니다.> ‘용마기?’
의문이 떠올랐으나 잠시 접어 두기로 했다. 지금 당장 신경 써야 할 것은 눈앞에 있는 적이었으니까.
“목이 훤히 비었수!”
권한울이 잠시 한눈을 판 사이, 이필승이 쌍검을 휘두른다. 그 순간, 권한울은 용마기를 발산했다.
아니, 이걸 발산이라고 해야 할까.
아슬아슬하게 차오른 둑을 개방하듯, 그곳에 담겨 있던 물이 한 번에 방출되듯.
용마기가 터져 나왔다.
밟고 있던 땅이 박살이 나며 사방으로 금이 퍼졌다. 그 힘에 휩쓸려 이필승이 뒤로 날아갔다.
* * *
이필승은 재빨리 자세를 바로 잡았다.
‘저게 뭐지?’
권한울이 발산하는 검은 오러를 보며 이필승은 당혹감에 사로잡혔다.
‘용투기? 아니야, 뭔가 다른데…….’
외인이긴 하지만 권찬성의 팀에 소속되어 있기에 용투기라면 지겹도록 봤다. 용투기를 모방할 수 있었던 것도 그러한 관찰의 결과였으니까.
그렇기에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었다. 저 오러는 용투기와는 달랐다.
오러에서 느껴지는 막대한 기운은 용투기를 ‘따위’로 보이게 할 정도였다.
무엇보다 두려운 것은 그 양.
외부로 발산되는 양이 상상을 초월했다. 마치 산을 불태울 만큼 거대한 화재(火災) 속에 권한울 혼자만 서 있는 것 같았다.
‘이런 건…… 대장한테서도 본 적이 없어.’
순혈인 권찬성에게서도 이런 위압감을 느껴보지는 못했다. 이필승은 자신도 모르게 침을 꼴깍 삼켰다.
그때, 권한울이 무릎을 살짝 굽히는 게 보였다. 검은 오러들이 그에 호응하며 다리와 발밑에 모여든다.
온다! 생각했을 때는 이미 코앞에 와 있었다. 단순한 도약만으로 여기까지 도달한 것이다.
이필승은 동체시력을 뛰어넘는 속도에 경악하면서도 재빨리 쌍검을 교차했다.
트윈 소드(Twin sword)
포인트 봄브(Point Bomb)
이필승의 오러가 풍선처럼 부풀어 올랐다. 그것을 권한울 발바닥으로 냅다 걷어찼다.
‘괴력귀 오우거의 주먹도 박살 낸 방어 기술이우! 그 다리는 내가 가져가겠수!’
서로 맞부딪히는 순간, 부풀어 올랐던 오러가 폭발…….
“컥!”
권한울의 발이 오러의 중앙에 구멍을 내 버렸다. 오러는 즉시 안개처럼 사라져 버렸고 발이 명치로 오는 것을 막을 수가 없었다.
명치를 가격당한 이필승의 몸은 걷어차인 축구공처럼 뒤로 날아갔다.
“쿨럭! 쿨럭!”
피가 섞인 기침을 토해 내면서도 이필승의 머릿속은 의문으로 가득 찼다.
‘방금 뭐였지? 왜 내 오러가 꿰뚫렸지?’
오러가 서로 충돌하면 약한 쪽이 밀려나가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렇지만!’
방금 전, 이필승의 용투기는 저항은커녕 두부처럼 뚫렸다. 저쪽의 격이 아득히 뛰어나다는 증거였다.
‘대, 대장이랑 대련할 때도 이러지는 않았어!’
순혈인 권찬성과도 종종 대련을 하곤 했다. 오러도 몇 번이고 부딪혔다.
매번 이필승이 지기는 했으나 이 정도는 아니었다. 이렇게까지 처참하게 밀리지는 않았다.
명백한 격차.
하지만 이필승의 투지는 조금도 약해지지 않았다. 지금까지 쌓인 실전 경험을 되짚으며 이길 방법을 찾으려 했다.
‘저 정도의 힘을 가지고 있으니 바로 제어할 수 없을 거다.’
힘이란 강력하면 강력할수록 길들이는데 시간이 필요한 법이다.
저 정도의 힘을 갑자기 손에 넣었으니 분명히 빈틈이 생길 터.
‘그 빈틈을 찌른다!’
그리 생각한 순간, 권한울이 다시 움직였다. 이필승도 다시 오러를 응집시켜 칼을 만들어 냈다. 그러더니 기묘한 자세를 취했다.
칼을 역수로 잡은 채 하나는 위로, 다른 손은 아래로 내린다.
트윈 소드(Twin Sword)
스왈로우 스트라이크(Swallow Strike) “이클립스의 촉수를 베었던 참격기요. 이것도 받아 내면 내 인정해 드리지.”
권한울을 향해 도발하듯이 말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반만 진실이었다.
이클립스의 촉수를 벤 기술인 것은 맞다. 하지만 참격기가 아니라 반격기다.
‘공격이 들어오면 단숨에 목을 벤다.’
이클립스의 촉수를 베어 낸 만큼, 이필승이 가지고 있는 기술 중 최강에 속하는 것이다.
그런데 어째서일까.
오러를 쥐고 있는 두 손에서 자꾸 잠이 베어 나왔다. 생애 처음으로 던전에 들어갔을 때만큼 긴장이 됐다.
‘와랏!’
권한울이 땅을 박찬다. 오러가 폭발하며 그의 몸을 밀어 냈다. 이쪽으로 단숨에 다가온다.
권한울이 도달하는 것과 동시에 이필승이 오러를 휘두른다.
그때였다.
별안간 권한울의 몸이 옆으로 이동했다. 마치 빙판길을 미끄러지는 듯했다.
‘뭐? 오러 이동술이라고?’
오러 사용에 능숙한 이들은 오러를 이용해서 독특한 보법을 사용한다.
그 대표적인 기술 중 하나가 바로 저것이다. 오러를 이용해서 지면과의 마찰을 없애고, 추친력을 일으켜서 움직이는 기술.
‘오러 이동술은 나도 아직 완전히 숙달되지 못했는데……?’
직선이 아니다. 횡으로, 반원을 그리며 이필승의 뒤로 이동했다. 이필승은 당황하며 몸을 돌렸다.
그보다 먼저 권한울의 주먹이 옆구리에 틀어박혔다.
현룡승천공 입문형(玄龍昇天功 入門形)
강격식 철명퇴(强擊式 鐵鳴槌)
얻어맞는 순간, 몸이 울린다. 착각이 아니었다. 종을 치는 듯한 소리가 주변을 울린다.
‘컥!’
비명조차 나오지 않는다. 장기가 짓눌리고, 뼈가 으스러지는 고통이 그의 입을 틀어막는다.
‘바, 반격을…….’
반대쪽 옆구리에 또 주먹이 박힌다. 갈비뼈가 으스러지는 고통이 온 신경을 자극했다.
‘커억!’
젠장, 무조건 튀어야 한다.
더 이상 반격이니 뭐니 하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도망쳐야 한다는 일념만이 이필승의 머릿속을 꽉 채웠다.
도망치는 이필승을 권한울이 따라잡았다. 한 발을 높이 쳐올렸다.
현룡승천공 입문형(玄龍昇天功 入門形)
강격식 파죽(强擊式 破竹)
하늘 높이 올라갔던 다리가 땅을 내려친다. 권한울과 이필승 사이에 굵직한 금이 생겨났다.
콰쾅!
이어지는 폭발.
갈라진 금 사이로 오러가 치솟으며 이필승의 몸을 휩쓸었다.
이필승의 몸이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이윽고 땅 위로 푹 떨어졌다.
정신을 잃었는지 미동조차 하지 않는다. 권한울은 천천히 그를 향해 걸어갔다.
적이 전의를 잃었음에도 권한울은 기세를 잠재우지 않았다.
이필승의 머리 위에 한쪽 발을 올려놓았다.
현룡승천공 입문형(玄龍昇天功 入門形)
강격식 천근추(强擊式 千斤錘)
오러가 듬뿍 담겨 있는 발이 이필승의 머리를 으깨려 했다.
“동생, 거기까지 합세.”
그 직전, 정강이를 누군가가 걷어찼다. 이필승의 머리 바로 옆에 발이 꽂혔다. 인근의 땅이 으스러졌다.
“좋은 의미로 한 대련인데. 살인이 일어나면 안 되지. 안 그런가?”
권찬성이 타이르듯이 말했다.
* * *
“맞는 말씀이십니다.”
권한울은 땅에 꽂힌 발을 뽑으며 말했다.
“전투가 격해져서 제가 너무 흥분했던 모양입니다.”
“이해하네. 나도 첫 번째 권능을 얻었을 때 그랬거든. 마치 내가 아닌 것 같았다고 해야 할까. 뭔가에 사로잡힌 기분이었지.”
권찬성은 묘하게 들 뜬 것 같았다.
“동생, 정말 대단하군. 진혈의 잠재력이 이토록 클 줄은 몰랐어! 내 평생 그렇게 거대한 용투기는 보지 못했다네!”
용투기가 아니라 용마기였지만.
권찬성은 한참 동안 용마기에 대해서 감탄을 늘어놓았다.
그래서 미처 눈치 채지 못했다. 권한울의 시선이 여전히 이필승을 향하고 있다는 사실을.
“끄, 끄으윽.”
정신이 들었는지. 이필승이 몸을 일으켰다. 권한울과 권찬성을 번갈아 쳐다봤다.
“겨, 결투는 어떻게…….”
“신입, 보면 모르겠나. 자네가 졌어. 그러게 내가 뭐라고 했나. 동생을 얕보지 말라고 했지.”
졌다는 말에 이필승은 큰 충격을 받았다. 권찬성은 이필승의 등을 토닥였다.
“자자, 이제 동생에게 사과하고. 좋게 마무리를 짓자고.”
“형님, 한 가지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응? 그게 뭔가?”
“흑천 일가에서 흑천의 혈족에게 예의를 차리지 않으면 어떻게 됩니까.”
“그게 누구냐에 따라 달라지지만 보통의 경우에는 큰 문초를 당하게 되겠지.”
“그럼 흑천의 혈족에게 손을 대면 어찌되는 겁니까.”
“그거야 누구든 상관없이 처형…….”
듣고 싶은 대답이었다.
그 즉시 권한울이 이필승에게 달려들었다. 정강이로 관자를 후려치려 했다.
“동생!”
권찬성의 눈동자가 매섭게 변했다. 손으로 권한울의 정강이를 막아 냈다.
“이미 결투는 끝났다고 말했…….”
현룡승천공 기본형(玄龍昇天功 基本形)
반격식 회축(反擊式 回蹴)
붙잡힌 정강이를 접어서 거둬들였다. 그와 동시에 몸을 뒤로 돌리며 반대쪽 다리를 휘둘렀다.
이필승의 턱에 발꿈치가 꽂힌다. 으스러지는 소리와 함께 이필승이 머리가 땅에 처박혔다.
권찬성은 멍하니 이필승을 바라봤다. 이윽고 얼굴에 서서히 분노가 차올랐다.
“……동생 이게 무슨 짓이지?”
“형님, 아까 말씀하셨잖습니까. 흑천 일가 내에서 외인이 혈족에게 손을 대면 사형이라고요.”
권한울은 천연덕스럽게 대꾸했다.
“죽었는지 살았는지 모르겠습니다만…… 형님의 얼굴을 봐서 이 정도로 넘어가겠습니다.”
“동생, 신입은 내 부하야.”
“저는 흑천의 혈족입니다.”
“내 얼굴을 봐서라도 넘어가 줄 수는 없었나?”
“형님의 얼굴을 봐서라도 더더욱 넘어가서는 안 됐죠.”
권찬성은 말없이 권한울을 바라봤다. 이윽고 깨달았다.
“……저주에 걸리지 않았군.”
권찬성의 얼굴은 의문으로 가득했다. 잠시 후, 누그러진 얼굴로 말했다.
“동생의 말이 맞군. 이번 일은 수하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내 잘못이야.”
권찬성은 순순히 사과를 한 뒤, 이필승을 어깨에 들춰 맺다.
“어떻게 저주를 풀었는지 안 물어보십니까?”
“그런 촌스러운 짓은 하지 않는다네. 다만, 반지를 뺏긴 건 좀 쓰라리군.”
그 정도 되는 레전더리 물건을 돌려달라고 하지도 않는다.
그릇이 큰 것인지. 아니면 그 정도로 레전더리 장비를 많이 가지고 있는 것인지.
권한울은 속으로 조금 감탄했다.
“동생한테 장난을 친 건 미안하지만 내가 동생에게 약속한 것들은 전부 사실이야.”
“저는 누구의 밑에도 들어갈 생각이 없습니다.”
그 말에 권찬성은 웃음소리를 흘렸다.
“동생, 생각을 잘하는 게 좋을 거야. 아니면 작은 아버지처럼 될 지도 모르니까.”
권한울의 눈동자가 커졌다. 권찬성에게 작은 아버지는 한 명밖에 없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내 손을 잡으면 자세히 알려 주도록 하지. 그 전에는 아무 말도 안할 거야.”
권찬성을 노려봤지만 그는 웃기만 할 뿐이었다.
“내 밑으로 들어와. 그럼 동생에게 모든 진실을 알려 주고 최고의 자리를 약속하지.”
권찬성은 손을 흔들며 자리를 떠났다. 권한울은 그 뒷모습을 한동안 가만히 노려봤다.
“권한울 님, 수고하셨습니다.”
주하연이 권한울에게 수건과 물을 건넸다. 권한울은 그것들을 받지도 않고 그녀에게 물었다.
“방금 저 말이 무슨 뜻이죠?”
“저는…….”
“회장님의 명령 때문에 말 못한다고요?”
주하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권한울의 빠득 이를 갈았다.
“젠장.”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권한울은 바닥에 주저앉았다. 고개를 숙인 채 화를 삭이려 했다.
한참 뒤, 권한울이 힘없이 말했다.
“……흑천 그룹에 들어오기 전에는 남들 눈치만 보면서 살아야 했습니다.”
헌터 협회가 만들어놓은 귀찮은 규칙에 시달려야 했다. 대형 길드의 횡포를 피해 다녀야 했다. 쥐꼬리만 한 수입으로 하루하루를 버텨야 했다.
“흑천 그룹에 들어오면 이제 모든 것에서 해방될 줄 알았습니다. 내 뜻대로 살 수 있을 줄 알았죠. 그런데 실상은 전혀 달라진 게 없네요.”
몸은 편하다. 이전에는 꿈도 꿀 수 없던 부귀를 누릴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여전히 출신 때문에 업신여겨진다. 선택을 강요당한다. 심지어 아버지에 대한 일조차 속 시원하게 알 수 없다.
“정말 엿 같은 인생이네요.”
그때, 얼굴에 수건이 와 닿았다. 주하연이 권한울의 얼굴에 흐르는 땀을 수건으로 닦으며 말했다.
“죄송합니다.”
따지고 보면 주하연이 잘못한 것은 없었다.
“앞으로 시간이 지날 수 록 이런 일이 더 많을 겁니다. 많은 이들이 권한울 님을 원하고, 혹은 꺾으려 들 겁니다.”
“그거 참 끔찍한 일이네요.”
권한울이 빈정거리며 대꾸했다.
“권한울 님께서 뜻을 이루실 방법은 하나뿐입니다.”
“그게 뭡니까.”
“정점에 오르시는 겁니다.”
권한울은 인상을 썼다. 정점이라고?
“권한울 님을 얽매려 드는 모든 이들과 맞서십시오. 그들을 짓밟고, 꺾어 버리고, 휘하에 두십시오. 그리하여 흑천의 하늘이 되신다면…… 권한울 님의 뜻을 이룰 수 있을 겁니다.”
권한울은 헛웃음을 흘렸다.
흑천 그룹은 동아시아의 지배자라 불릴 정도로 이 거대한 공룡이다.
이곳의 정점에 서라고? 그게 말이 되는…….
“…….”
주하연은 권한울의 상념이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
“……일단 돌아가죠.”
권한울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 * *
그날 밤, 권한울은 침대 위에 놓인 이무기의 내단을 가만히 바라봤다.
이미 내단을 섭취할 준비는 다 끝났다. 모든 능력치가 B급을 달성했으며 해독력과 독 저항력도 수준 이상이 됐다.
내단을 먹을 수 있느냐 없느냐가 고민거리는 아니었다.
“흑천의 정점이라…….”
주하연은 말했다. 원하는 삶을 얻고 싶으면 흑천의 하늘이 되라고.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흑천의 회장 권선우는 일찍이 권한울에게 약속했다.
그만한 실적과 성과를 보이면 회장의 자리까지 넘겨주겠다고.
농담으로 한 말일 수도 있으나 흑천의 회장 정도 되는 인물이 그런 말을 함부로 입에 담을 리가 없다.
“능력은…… 뭐, 충분하겠지.”
권한울은 진(眞) 흑룡혈을 비롯한 여러 가지 혈통을 가지고 있다.
어째서 자신의 피가 이런 잡탕이 되었느냐는 차차 생각하기로 하고.
“혈통들이 있으면 가능하다.”
각 혈통들이 얼마나 대단한 힘을 가지고 있는지는 몸으로 직접 겪었다.
“흑천의 정점에 도전하기 위해서는 그만한 성과를 보여야 한다.”
그 시작은 플래티넘 던전으로 데뷔전을 치르는 게 될 터.
“하지만 그렇게 되면 권찬성과 척을 지게 되지.”
흑천의 정점에 도전한다는 것은 권찬성과는 다른 노선을 걷는다는 뜻이다.
그걸 권찬성이 용납할 리가 없다.
아니, 그뿐만이 아니라 모든 순혈들이 그를 적으로 생각할 것이다.
“권찬성의 밑으로 들어가면 편하기는 편할 거야.”
권혁이 가장 유력한 그룹의 후계자라면 권찬성은 가장 유력한 권혁의 후계자다.
별 일이 없는 한 차차기 회장은 권찬성이 될 터.
그에게 순종하면 든든한 뒷배와 온갖 권세를 손에 넣을 수 있다.
“미치겠군.”
사실 이미 마음은 한쪽으로 기울었다. 아무리 노력해도 저울추는 반대쪽으로 기울기는커녕 흔들리지도 않았다.
“내가 미쳤지.”
자신은 이성적이고, 현실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했었고 그렇게 살아왔다.
그래서 도전하기 보다는 안정을 택했다. 미래보다는 현재를 택했다.
흑천의 정점? 말이야 좋다. 하지만 이미 흑천 그룹의 후계구도는 반쯤 굳어져 있다.
부회장 권혁과 그 아들들에게 회장 자리가 대물림 될 것이다.
정점에 오르기 위해서는 그들에게 도전하고, 그들을 넘어서야 한다.
그에 비해서 권찬성에게 순응하면 그런 가시밭길을 걷지 않더라도 장밋빛 인생이 기다리고 있다.
그 사실을 너무나도 잘 인지하고 있으면서도.
“까짓 거 한번 도전해 보자.”
권한울은 내단을 입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힘껏 깨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