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통이 깡패임 18화>
18화 혈통이 결심함 (1)
와삭.
입안에서 내단이 부서지더니, 이내 순식간에 녹아내렸다.
식도를 타고 내려가다 위에 닿자마자 내단의 기운이 사방으로 퍼지는 게 느껴졌다.
뜨겁다? 아니, 차가웠다. 너무 차가워서 되레 뜨겁게 느껴질 정도였다.
<이무기의 내단을 섭취하셨습니다!> <끔찍한 독성이 신체를 붕괴시킵니다!> 예상했던 대로 이무기의 내단은 쉽사리 힘을 내어 주지 않았다. 독성이 권한울의 신체와 정신을 공격했다.
하지만 권한울의 육신도 쉽사리 지지 않았다. 지금까지 쌓아 놓았던 독 저항과 해독력을 방패삼아 독성의 공격을 버텼다.
그에 분노하듯 독성이 더욱 거세졌다. 권한울의 입가에 피가 한 줄기 흘러내렸다.
‘이제부터는 내 싸움이다.’
체력이 먼저 바닥날지. 아니면 독성이 포기를 할지.
지금부터 정신력 싸움…….
<건강혈(乾剛血)이 독성을 감지합니다!> <독성을 흡수하고 효율을 극대화합니다!> <특성 ‘백독불침(百毒不侵)’을 습득합니다!> ……될 줄 알았다.
‘헐.’
설마하니 건강혈이 독성마저 실시간으로 흡수할 줄은 몰랐다. 게다가 백독불침까지 만들어 내다니.
독공의 끝이라는 만독불침보다는 급이 낮지만 그래도 어지간한 독성은 모두 무시할 수 있는 강력한 특성이다.
<‘백독불침(百毒不侵)’이 독성에 저항합니다!> <독성을 완전히 이겨 내셨습니다!> 아마 이무기가 살아 있었다면 혀를 내두르지 않았을까.
<이무기의 악의가 분노합니다!>
‘……정말로 뭔가 있었네?’
권한울이 당황한 사이 악의가 활동을 시작했다.
<악의가 정신을 오염시키려 합니다!> <견뎌내지 못할시 광증에 시달리게 됩니다!> <악의에 오염될 시, 무분별한 분노와 증오를 갖게 됩니다!> 눈앞이 새빨갛게 달아오른다.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분노가 치밀기 시작했다.
권한울은 저도 모르게 이를 악물었다. 시작부터 이 정도라니. 악의를 견뎌 내기 위해서는 정신을 단단히 다잡아야…….
<천재혈(天才血)이 굳건하게 버팁니다!> <악의에 의한 영향력이 감소합니다!> <정신 오염이 말끔히 회복됩니다!> ……할 줄 알았다.
머릿속이 맑아지며 마음이 다시 차분해졌다.
<천재혈(天才血) 악의를 해석합니다.> <악의의 소멸을 위한 마력 운용을 시작합니다.> 신체의 마력이 저절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내단의 기운 속에 숨어 있던 어두운 기운을 찾아낸 다음 완전히 불태워 버렸다.
기분 탓일까. 어디선가 괴수의 비명소리가 들린 것 같았다.
‘생각보다 싱거운데.’
고생을 덜었으니 좋은 일은 좋은 일이다. 권한울은 마음 편히 내단을 흡수했다.
<모든 능력치가 A로 격상됩니다!> <현룡승천공 입문형의 성취도가 6 -> 8로 상승합니다!> A를 달성한 순간, 신체에 변화가 일어났다. 모조리 녹아내렸다가 다시 구축이 되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내단을 통해 얻은 것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이번에도 혈통들이 나섰다.
<건강혈(健康血)이 강대한 힘을 인식합니다!> <내단을 말끔이 흡수합니다! 효율을 극대화시킵니다!> <특성 ‘교룡지체(蛟龍肢體)’를 습득합니다.> ‘교룡지체?’
권한울은 상태창을 열었다.
특성 : 교룡지체(蛟龍肢體)
품질 : 유니크(SSS)
설명 : 이무기의 신체를 얻는다.
권한울은 자신의 몸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명확하게 느낄 수 있었다.
뼈의 밀도가 점점 높아지기 시작했다. 근육이 철사를 꼬아 놓은 것처럼 강인하게 변했다.
주먹을 힘껏 쥐어 보니 바로 알 수 있었다.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힘이 느껴졌다.
변화는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어두운 방안이 서서히 뚜렷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빛이 없음에도 어둠을 꿰뚫어 볼 수 있게 되었다.
시야뿐만이 아니었다.
감각이 넓게 확대되었다. 확대된 감각은 저택을 완전히 감쌌다. 일하는 사람들의 움직임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엄청난데.’
교룡지체가 가져다 준 이무기의 강인함과 감각은 실로 엄청난 것이었다.
<천재혈(天才血)이 훈수를 둡니다.> <이무기의 기운을 해석합니다.>
<현룡승천공이 입문형의 성취도가 8 -> 10 상승합니다.> <‘권한울표 마력통로’가 ‘이무기 전용 마력통로’로 변화합니다.> 천재혈도 이에 질세라 메시지를 띄웠다. 아쉽게도 건강혈처럼 대단한 특성을 만들어 내지는 못했다.
‘내가 미쳤군. 교룡지체만 해도 엄청난 건데, 거기서 뭘 더 바라다니.’
권한울이 자신의 과욕에 헛웃음을 흘릴 때였다.
<진(眞) 흑룡혈이 내단의 기운을 흡수합니다.> <심장에 ‘용주(龍珠)’가 생성됩니다.> ‘용주?’
다시 상태창을 열어 확인했다.
용주(龍珠)
품질 : 유니크(S)
설명
-용의 힘을 강화시킨다.
-완성될 시 여의주(如意珠)로 격상된다.
권한울의 시선은 여의주(如意珠)라는 단어에 꽂혔다.
이무기는 여의주를 얻음으로서 용이 된다.
그렇다면 이무기의 신체를 얻은 권한울이 여의주를 얻으면 어떻게 될까?
‘힘을 얻었으면 한번 시험해 봐야지.’
권한울은 방 한가운데에 서서 용마기를 끌어올렸다.
용마기가 엄청난 기세로 혈도를 타고 흘렀다. 그 기세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무기의 신체라더니…… 혈도까지 달라졌어.’
인체의 혈도가 일반차도와 같다면 지금의 혈도는 고속도로와 같았다.
운용되는 용마기의 양, 속도, 위력. 모든 것이 우월했다.
권한울은 이제 용마기를 가라앉히려고 했다.
그때였다.
<용주가 용마기를 강화시킵니다.>
용마기의 위력이 두 배 가까이 늘어났다. 그 바람에 한순간 용마기를 제어하지 못했다.
폭주한 용마기가 외부로 방출되었다. 그 막대한 힘에 저택이 뒤흔들리며 창문이 모조리 깨져 버렸다.
“으, 으아아! 이게 무슨 난리야!”
“치, 침입이다! 경비대한테 연락해! 빨리!”
저택의 사용인들의 비명이 들렸다. 권한울은 마른세수를 하며 중얼거렸다.
“내가 못 살아.”
* * *
오전 시간, 주하연은 권한울이 머무는 저택을 찾았다.
회장을 만나고 싶다는 권한울의 부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따라 저택의 분위기가 이상했다.
창문이란 창문은 모두 깨져 있었던 것. 사용인들은 다크써클이 가득한 얼굴로 유리조각들을 치우고 있었다.
주하연은 이상하게 여기며 권한울의 방으로 향했다.
“권한울 님, 들어겠습니다.”
가볍게 노크를 하고 문을 열었다. 침대 위에 가부좌를 틀고 있는 권한울이 보였다.
주하연은 잠시 멈칫했다. 권한울의 분위기가 어제와는 완전히 딴판이었기 때문이다.
어제까지의 권한울은 활활 타오르는 불과 같았다.
넘치는 에너지 때문에 갈 길을 잡지 못하고 방황하는 모습이 역력했었다.
하지만 오늘의 권한울은 호수를 보는 듯했다.
잔잔하고, 고요하다. 깊이를 알 수는 없으나 놀랍도록 안정되어 있었다.
“아, 왔어요?”
권한울이 눈을 뜨고 주하연을 쳐다봤다. 주하연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축하드립니다. 기연을 얻으셨군요.”
“기연은요. 저번에 받은 내단을 먹은 것뿐이에요.”
주하연은 내심 한 번 더 놀랐다.
아무리 이무기의 내단이 귀하다 한들, 그것만으로 이 정도의 변화를 겪을 수 없다.
권한울 본인의 역량이 그만큼 뛰어나기에 내단 이상의 것을 손에 넣은 게 틀림없으리라.
“회장님을 뵙고 싶다고 말씀하셨죠? 그럼 빨리 움직이셔야 합니다. 이따 10시 30분부터 딱 5분만 시간을 내주겠다 하셨거든요.”
“되게 째째하네요.”
“그만큼 바쁘시기 때문입니다.”
권한울은 주하연과 함께 회장이 머무는 저택으로 향했다.
권한울이 사용하는 저택과 크기는 비슷했으나 상주하는 인원이 훨씬 많았다.
“여기부터는 혼자 가셔야 합니다.”
주하연은 건물 밖에 남고, 권한울 혼자서 내부로 들어갔다. 비서의 안내를 받으며 업무실로 들어갔다.
* * *
안으로 들어가자 산더미처럼 쌓인 서류를 뒤적이고 있는 권선우가 보였다.
“난 바쁘다. 약속이 산더미처럼 밀려 있으니 할 말만 하고 빨리 돌아가…….”
속사포처럼 말을 쏟아내던 권선우가 갑자기 입을 다물었다. 권한울을 쓱 훑어보더니 다시 전화기를 들었다.
“나일세. 지금부터 1시간 이내의 약속은 모두 취소하게.”
전화를 끊은 뒤, 권선우는 자리를 권했다.
“앉아라.”
소파에 앉자마자 권선우가 물어왔다.
“하루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어떻게 이렇게 바뀔 수 있는 게냐.”
못 본 지 몇 달이 됐음에도 권선우는 하루라고 콕 집어 말했다.
지속적으로 권한울에 대한 보고를 받은 게 분명해 보였다.
“내단을 섭취했습니다.”
“……그걸 섭취할 방법을 찾았다고? 무슨 수를 쓴 게냐?”
“다 흑룡혈 덕분이었죠.”
건강혈과 천재혈 덕분에 손쉽게 흡수를 했지만 그 두 혈통을 말할 수는 없었다. 때문에 그럴싸한 핑계를 대기로 했다.
“진혈에 그런 기능이…… 아무래도 평가를 수정해야겠군.”
괜한 오해를 산 것 같았지만 굳이 정정하지 않았다.
“내단을 흡수했다는 건…… 내가 생각하는 게 맞는 게냐?”
“예, 플래티넘 던전에서 데뷔전을 치르고 싶습니다.”
순간 권선우의 눈빛이 빛나는 게 보였다.
“내가 직접 조건을 내걸기는 했지만…… 설마 진짜 조건을 달성할 줄은 몰랐구나.”
“내기는 잊지 않으셨겠죠?”
“흥, 그거야 네 놈이 플래티넘 던전을 클리어했을 때 일이지.”
권선우는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기고만장해 하지 마라. 플래티넘급 던전을 혼자 클리어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조건을 달성하는 건 애교로 보일 정도지.”
“뭐, 그거야 두고 보시면 될 일이고…… 아무리 생각해봐도 수지타산이 안 맞는 거 같습니다.”
“뭐가 말이냐?”
“플래티넘급 던전을 클리어하는데. 흑천비고의 이용권 한 장이 뭡니까. 좀 더 통 크게 쏘시지요.”
의아해하는 권선우에겐 첨언이 필요해 보였다.
“팀을 만들 자격을 제게 주십시오.”
“팀? 네놈 설마…….”
팀을 만든다는 것은 외부 활동을 통해 자신의 영향력을 넓히겠다는 뜻.
권선우는 믿기 힘들다는 억양으로 되물었다.
“찬성이의 제안을 거절할 생각이냐?”
거기까지 알고 있었나. 능구렁이 같은 늙은이.
권한울은 말을 이어 나갔다.
“진혈이 순혈 밑으로 들어갈 수야 없지 않습니까.”
“팀을 만들면 찬성이와 대립하게 될 게다. 아니, 모든 순혈이 본격적으로 널 적대할 거다.”
“알고 부탁드리는 겁니다.”
권선우는 권한울을 물끄러미 응시했다. 이내 빙긋 미소를 지었다.
“이런 점은 네 아버지와 다르구나. 좋다. 플래티넘 던전을 클리어하면 네놈이 원하는 대로 해 주마.”
“그리고 한 가지 더 부탁드리고 싶은 게 있습니다.”
“이 이상 조건을 걸면 내 쪽이 수지타산이 안 맞는데.”
“아버지에 대해서 알려 주십시오.”
권선우의 얼굴에서 순식간에 미소가 걷혔다.
“알려 줄 수야 있지.”
뜻밖의 대답.
“네가 그만한 성과를 가지고 온다면 말이다.”
“그러니 플래티넘급 던전을…….”
“그 정도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권선우는 냉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모두들 널 인정할 수밖에 없는 아주 커다란 성과를 가지고 와라. 그러면 네 아버지에 대해서 말해 주마.”
권한울이 뭐라 말하기도 전에 권선우가 먼저 문을 가리켰다.
“이만 나가라. 더 이상 너에게 시간을 내줄 수 없다.”
불만스러웠으나 지금은 무슨 수를 써도 권선우를 설득할 수 없음을 알 수 있었다.
“가 보겠습니다.”
인사를 한 뒤,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권한울이 밖으로 나가자 권선우는 전화기를 들어올렸다.
“나일세. 이번에 천이의 아들이 플래티넘 던전에서 데뷔전을 치르기로 했어. 괜찮은 던전을 좀 알아보게.”
권선우는 천천히 말을 이어 나갔다.
“여기저기서 수작질이 많이 들어올 거야. 방해하지 못하도록 막으면 되냐고? 아니, 그럴 리가 있나. 그냥 내버려 두게.”
권선우는 창문을 내다봤다. 천천히 흘러가는 구름을 응시한 채 말했다.
“그 아이의 진가를 알려면 그 정도는 해야 하지 않겠나.”
* * *
회장실의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오자 벽에 등을 기대고 있는 권찬성이 보였다.
“동생, 실망이야.”
“설마 엿들으신 겁니까?”
“오해하지 마. 내 귀가 워낙 밝아서 저절로 들린 것뿐이야.”
권찬성은 아무렇지도 않게 변명을 늘어놓았다.
“나는 최대한 양보하려고 했는데. 동생은 내 호의를 이렇게 무시하네?”
권찬성은 옅은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눈빛은 결코 우호적이지 않았다.
“제가 어떻게 할지는 이미 몇 번이고 말씀드렸을 텐데요.”
“그래도 꼭 손에 넣고 싶었을 만큼 동생의 잠재력은 매력적이었거든.”
권찬성이 벽에서 몸을 떼고 천천히 다가왔다.
“동생, 그거 알아? 애들은 집착이 굉장히 심해. 자기가 갖고 싶은 장남감은 무슨 수를 써서든 손에 넣어야 직성이 풀리지.”
권찬성이 조용히 기운을 발산한다. 피부가 섬찟섬찟했다.
“하지만 결국 원하는 장난감을 손에 넣지 못하면 어떻게 하는지 알아? 무슨 수를 써서든 박살을 내버려. 아무도 가질 수 없도록.”
권찬성의 기세가 조금 더 강해졌다. 시퍼런 칼날이 몸 곳곳을 겨누고 있는 것 같았다.
“동생도 그 꼴이 되고 싶은 건가?”
권한울은 씩 웃었다. 여러 가지 의미가 담긴 웃음이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권한울은 권찬성이 얼마나 거대한지조차 가늠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제는 보인다. 권찬성이라는 인간의 그릇이 어떤지 말이다.
“마음에 안 든다고 장난감을 부수다니. 그거 참 버릇없는 꼬맹이군요. 그런 꼬맹이는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아십니까?”
“어떻게 해야 하지?”
“볼기짝을 걷어차서 혼내 줘야죠.”
권찬성의 눈동자가 커졌다. 이내 웃음소리를 흘렸다.
마치 강아지의 재롱을 구경하는 듯한 웃음소리였다. 강아지가 아무리 짖어도 소용없는 것처럼 권한울의 경고는 권찬성에게 위협거리조차 되지 않는다.
그래, 다들 저랬다. 흑천의 혈족이라는 놈들은 모두 저라다 자신에게 짓밟혔다.
권찬성의 미래도 그들과 별반 다르지 않으리라. 자신의 똑같이 만들 테니까.
그때가 되면 권찬성은 과연 어떤 표정을 지을까.
권한울은 자꾸만 비틀리는 입가를 억지로 바로잡았다.
“그래, 버릇없는 아이한테는 마땅히 훈수가 필요한 법이지.”
“그럼 저는 이만 가 보겠습니다.”
권한울은 권찬성을 지나쳐 사라졌다. 한참을 웃던 권찬성은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나야. 이번에 우리 동생…… 권한울이 데뷔전을 치르는 플래티넘 던전이 어디인지 좀 알아봐. 아, 그리고 이클립스의 촉수도 한 개…… 아니, 두 개 정도 잘라놔.”
대답을 들은 뒤, 권찬성은 전화를 종료했다. 그리고 다시 웃음을 터트렸다.
“동생은 참 재미있군. 그럼 어디 한번 시험해 볼까? 장난감이 먼저 부서질지. 꼬맹이의 엉덩이가 먼저 혼쭐이 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