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통이 깡패임 21화>
21화 혈통이 결심함 (4)
이틀 후, 기다리던 데뷔전 당일.
권한울은 플래티넘 던전에 도전하기 위한 마지막 준비에 한창이었다.
“다 됐습니다.”
주하연의 말에 권한울은 자신의 몸을 내려다봤다.
칠흑같이 검은 빛의 갑주가 전신을 덮고 있었다. 이무기의 비늘을 겹쳐 만든 듯한 갑주는 어느 누가 봐도 훌륭하단 걸 알 수 있을 정도였다.
“박태식 명장님께서 갑주만 달랑 보내서 미안하다는 말을 전해 달라 하셨습니다.”
“일이 바쁘시다면서요? 어쩔 수 없죠.”
불만이 있을 리가 없었다. 설사 그렇다 해도 갑주의 설명을 보면 불만이 싹 사라졌다.
아룡태(兒龍蛻)
-품질 : 레전더리(A+)
-설명 : 이무기의 심장과 비늘을 중심 소재로 다양한 레어메탈을 섞은 갑주.
-능력
1. 착용 시 모든 능력치를 20% 상승시킨다.
2. 착용 시 마력 효율이 20% 증가된다.
3. 모든 타격계 공격의 위력이 20% 증가된다.
4. 외부의 공격을 최대 20%까지 흡수한다.
5. 주위의 마력을 흡수하여 자동적으로 기벽(氣壁)을 형성한다.
무려 A+등급의 레전더리답게 다섯 개나 되는 능력이 붙어 있었다.
권한울이 원하던 그대로의 장비였다.
“명장님 말씀으로는 활동성에 최대한 집중했다고 하시더군요, 한번 움직여 보시겠습니까?”
권한울은 몇 가지 동작을 펼쳤다. 두 팔을 높게 들어서 좌우로 움직여도, 한쪽 다리를 위로 쭉 뻗어도 움직임에 전혀 방해가 되지 않았다.
더구나 무게감이 거의 느껴지지 않아 마치 얇은 옷을 입은 듯한 기분이었다.
“정말 대단하네요.”
“A+등급의 레전더리 장비는 흑천 내에서도 찾기 힘든 물건입니다.”
그런 물건을 시작부터 얻게 되었으니, 큰 행운이 아닐 수 없었다.
“이제 던전을 공략하는 일만 남았네요.”
권한울이 허공에 주먹을 붕붕 휘두르며 말했다. 주하연은 여전히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왜 그렇게 울상이에요?”
“제가 드린 말씀이 권한울 님을 위험에 빠트린 것 같아서 그렇습니다.”
권한울은 이게 무슨 말인지? 라는 표정을 지었다가 이내 떠올렸다.
“흑천의 정점에 도전하라고 말한 거요?”
“기억하고 계시는군요.”
“뭘 그런 거 가지고 그러세요. 하연 씨가 말하기는 했지만 선택은 제가 했어요. 그러니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그리고…….”
권한울은 잠시 뜸을 들이다가, 갑주를 한 번 바라본 뒤에야 입을 열었다.
“하연 씨가 말하지 않았어도 저는 언젠가 이렇게 행동했을 겁니다.”
이건 예상이 아니었다. 확신이었다.
“저도 굉장히 갑갑했거든요.”
고아로 자란 권한울은 사회의 이방인이었다. 융화되기는 어려웠으나 배척받는 것은 쉬웠다.
출생의 비밀을 알고, 흑천 일가에 소속된 이후에도 처지는 변함이 없었다.
“정말, 더럽게 갑갑했죠.”
문득, 정신을 차리자 주하연이 바로 옆에 서 있었다. 시선을 내리자 주하연이 자신의 손을 붙잡고 있는 게 보였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있는 힘껏 주먹을 쥐고 있었다.
“이제 곧 던전에 들어가셔야 합니다. 이렇게 몸을 학대하시면 안 됩니다.”
권한울은 주먹에 힘을 풀고 가볍게 털었다.
“이만 나가죠.”
권한울은 컨테이너 밖으로 나왔다. 조금 떨어진 곳에 플래티넘 던전의 게이트가 떠 있었다.
기대와 긴장이 반반씩 섞인 듯한 기분이라고 할까.
게이트 앞에 섰다. 들어가기 전, 뒤를 돌아보니.
수건과 물통을 든 채 서 있는 주하연이 보였다.
“이따 봐요.”
말을 남기고 권한울은 게이트로 몸을 날렸다.
* * *
오전 시간.
권찬성은 조부인 권찬성의 업무실로 향하고 있었다. 점심시간 전에 자신을 찾아오라는 권선우의 명령 때문이었다.
대체 무슨 일로 자신을 부른 것일까.
걸음을 옮길 때마다 마음이 무거워졌다. 껄끄러움이 목을 타고 올라왔다.
권선우.
흑천 그룹의 회장이자 흑천 일가의 가주.
흑천의 혈족이라면 누구나 권선우를 두려워하고 우러러봤다.
권찬성은 물론, 아버지 권혁, 고모인 권미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들어가겠습니다.”
가볍게 노크를 하고, 문을 열었다. 넓은 업무용 책상에 앉아 있는 권선우가 보였다.
권선우는 산더미처럼 쌓인 서류와 한창 씨름을 하고 있었다. 서류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한 마디를 툭 던졌다.
“왔느냐.”
순간, 어깨에 무거운 추가 내려앉은 것 같았다. 권찬성은 즉시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그동안 강녕하셨습니까.”
권찬성을 아는 사람이 봤다면 두 눈을 의심할 법한 모습이었다.
언제 자신감과 자만감에 가득 차 있던 권찬성은 어디에도 없었다.
지금 권찬성은 작두 위에 서 있는 것처럼 호흡조차 조심하고 있었다.
“앉아라.”
권선우의 명이 떨어지고 나서야 권선우는 의자에 엉덩이를 붙였다.
“내가 왜 너를 보자고 했는지 아느냐.”
“잘 모르겠습니다.”
권찬성은 즉시 대답했다. 권선우의 의중을 함부로 예상하려 들었다가 큰일을 당한 사람들을 몇 명 봤다.
“권한울, 그놈 때문에 불렀다.”
권찬성의 얼굴에 의문이 떠올랐다. 전혀 예상외의 이유였기 때문이다.
“이번에 그 아이가 도전할 플래티넘 던전에 재미있는 수작을 부렸더구나.”
“죄송합니다.”
권찬성은 곧바로 허리를 숙였다.
설마 권선우가 권한울에게 그렇게까지 신경 쓸 줄은 몰랐다. 오산도 이런 오산이 없었다.
“오해하지 마라. 널 탓할 생각은 없으니까.”
권찬성은 속으로 안도했다.
“그저 물어보려는 것뿐이다. 그놈이 데뷔전을 무사히 치를 수 있을지. 없을지 말이다.”
권선우의 물음에 권찬성은 바로 대답했다.
“한울 동생은 오늘 죽을 겁니다.”
권선우의 눈동자에 흥미가 담겼다.
“어째서 확신하지?”
“그렇게 되도록 제가 판을 만들었으니까요.”
권찬성의 얼굴은 확신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의 행동에 회장은 유쾌하게 웃었다.
권찬성의 눈동자가 커졌다. 회장이 웃는 모습을 보는 게 얼마만인지 몰랐다.
“애송이 놈.”
그 말에 권찬성은 울컥했다.
“조부님, 제 판단은…….”
“그래, 네놈이 자기 안목에 자신이 있는 건 알겠다. 하지만 세상일이란 아무도 모르는 법이다. 어제까지 됐던 것도 오늘 안 될 수도 있지.”
“그럼 회장님께서는 한울 동생이 던전을 공략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그거야 모르지.”
권선우는 딱 잘라 말했다. 앞서 한 말과 정반대의 대답이라 권찬성은 조금 당황했다.
“말하지 않았느냐. 세상일이란 아무도 모르는 법이라고. 다만…….”
잠시 뜸을 들인 뒤, 권선우가 말했다.
“내 감이 말하는구나. 그 아이는 살아서 돌아올 거라고.”
* * *
던전에 진입한 직후, 권한울의 눈에 나타난 광경은 계곡을 연상시킬 정도로 거대한 땅굴이었다.
그 높은 벽을 온통 카란쿨라 일꾼들이 빽빽하게 뒤덮고 있었다.
“문어 다리 두 개 뜯어먹은 거 치고는 너무 많지 않나?”
얼핏 봐도 수십만 마리가 넘었다. 많을 뿐만 아니라 덩치도 굉장히 컸다.
본래 카란쿨라 일꾼들은 대형견과 비슷한 덩치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눈앞에 보이는 카란쿨라 일꾼들은 딱 봐도 호랑이랑 맞먹는 크기였다.
더 끔찍한 것은 모든 일꾼들이 권한울 한 명에게 살기를 쏟아내고 있다는 것이다.
“배가 많이 고픈 모양이지? 보고만 있지 말고 뜯어먹으러 와야지.”
카란쿨라의 일꾼들이 일제히 벽에서 낙하한다. 한순간 권한울의 시야가 어두워졌다.
그 순간, 카란쿨라 새끼들이 일제히 터졌다. 빗자루로 쓸어내듯 세상이 다시 밝아졌다.
용마기.
권한울이 발산한 용마기가 카란툴라 새끼들의 신체를 으스러트린 것이다.
권찬성의 오판 첫 번째.
그건 권한울의 능력이 그의 예상을 아득히 뛰어넘었다는 것이다.
용마기는 용투기보다 뛰어나다. 교룡지체는 용마기의 효율을 극대화시킨다. 심장의 용주는 용마기의 위력을 더욱 강화시킨다.
일꾼들 따위는 단순히 용마기를 발산한 것만으로 청소할 수 있었다.
-끼루루룩!
남아 있던 카란쿨라 일꾼들이 달려들었다. 권한울의 눈동자에 살기가 뻗어 나왔다.
<진(眞) 흑룡혈이 눈을 뜹니다.>
<천재혈(天才血)이 훈수를 둡니다.>
용의 본능이 피를 달군다. 천재혈이 머릿속에 정확한 경로를 그렸다.
현룡승천공 입문형(賢龍昇天功 入門形)
강격식 철명퇴(强擊式 鐵鳴槌)
권한울이 주먹을 휘두를 때마다 카란쿨라 새끼들이 사라진다. 마치 화이트보드의 낙서를 지우개로 지우는 것처럼.
<동화율 10 -> 12%>
권한울의 심장이 더욱 거칠게 뛰었다. 모든 혈액의 움직임이 더욱 가파르게 빨라진 게 직접적으로 느껴질 정도였다.
현룡승천공 입문형(玄龍昇天功 入門形)
강격식 파죽(强擊式 破竹)
높이 처든 다리를 힘껏 내려찍는다. 땅이 거미줄처럼 갈라졌다.
그 직후, 폭발이 이어졌다. 용마기가 남아 있던 카란쿨라 일꾼들을 완전히 휩쓸어 버렸다.
“후우…….”
권한울은 거칠어진 숨을 진정시켰다. 짧은 순간, 격하게 움직인 탓에 체력이 적잖게 소모됐다.
전투 도중에 체력 분배는 무척 중요했다. 그걸 알면서도 권한울은 무리하게 달려들었다.
왜냐면.
<‘건강혈(健康血)’이 격한 움직임을 감지합니다!> <체력이 빠르게 회복됩니다!>
숨을 크게 한 번, 두 번, 마지막으로 세 번 쉬었을 무렵. 더 이상 피로를 느끼지 않게 되었다.
전투를 시작하기 전과 마찬가지로 온몸에 활력이 넘쳤다.
그때였다. 하늘 위에서 날갯짓 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들자 카란쿨라 벌새들이 무리를 짓고 있는 게 보였다.
그것들이 일제히 가시를 발사했다. 길쭉한 가시들이 권한울이 서 있던 자리를 폭격했다.
권한울은 다리를 들어서 힘껏 땅을 내려찍었다. 바닥에 널려 있던 카란쿨라 일꾼들의 잔해가 허공으로 떠올랐다.
그것을 다리로 쓸어서 날렸다. 용마기를 듬뿍 담은 견갑 조각들이 카란쿨라 벌새들을 덮쳤다.
권한울은 연달아 잔해들을 날려 보냈다. 카란쿨라 벌새들은 잔해를 피해 이리저리 흩어졌다.
이윽고 달리기 시작했다. 벽을 타고 올라가며 카란쿨라 벌새들이 있는 높이까지 도달했다. 벽을 박차고 그 무리로 뛰어들었다.
현룡승천공 입문형(賢龍昇天功 入門形)
연격식 난휘난격(聯擊式 難揮亂擊)
권한울의 손이 어지럽게 얽혔다. 카란쿨라 벌새들이 갈기갈기 찢겨나갔다.
벌새들이 소탕된 걸 확인한 후 땅 위에 가볍게 착지한 순간, 갑자기 땅을 뚫고 거대한 괴물들이 나타났다.
카란쿨라 병정.
오로지 침입자를 처단하는 용도로만 태어난 괴물이다. 본래 중형 자동차와 비슷한 크기의 괴물이지만.
지금은 저층 건물과 맞먹을 정도로 컸다.
더구나 최소 다섯 마리는 되어 보였다.
“이건 뭐…… 저층 건물도 무너뜨리겠네.”
지금은 몇 배로 커져 있었다.
“이상한 집게발도 달려 있고.”
그뿐만 아니라 공격하기 용이하게끔 가재를 닮은 앞발도 달려 있었다.
-끼르르륵!
카란쿨라 병정이 권한울을 향해 앞발을 내리쳤다. 마치 벌이 침을 쏘는 것처럼 가볍고 빨랐다.
하지만 느껴지는 압력이 장난이 아니었다.
권한울은 용마기를 양손에 집중시켰다. 마치 손에 검은 잉크 방울이 맺힌 것 같았다.
카란쿨라 병정의 공격을 무시한 채 앞으로 튀어나간다. 앞발이 권한울의 몸통을 찍었다
그 순간, 갑주의 표면에 검은 막이 형성되었다. 집게발은 막을 뚫지 못하고 밀려나갔다.
권찬성의 오산 두 번째.
그건 권한울이 보유하고 있는 장비가 보통이 아니라는 점이다.
일명 ‘템빨.’
<‘교룡지체(蛟龍肢體)’가 ‘아룡태(兒龍蛻)’에 반응합니다.> <‘아룡태(兒龍蛻)’의 성능이 강화됩니다!> <‘아룡태(兒龍蛻)’에 특수 기능이 추가가 됩니다!> 손에 맺힌 용마기가 더욱 짙어졌다. 권한울은 병정의 가슴을 주먹으로 후려쳤다.
현룡승천공 입문형(賢龍昇天功 入門形)
강격식 철명퇴(强擊式 鐵鳴槌)
거대한 종이 울리는 소리와 함께 병정의 견갑이 박살난다. 그 안에 있던 내장도 함께 으스러졌다.
단 일격에 건물이 무너져 내린다. 권한울은 그 잔해를 밟으며 허공으로 뛰어올랐다.
-끼르륵!
남아 있던 병정이 앞발로 권한울을 찍을 듯한 행동을 취했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권한울이 병정의 턱밑에 도착했다.
현룡승천공 입문형(賢龍昇天功 入門形)
강격식 골추각(强擊式 骨墜脚)
허리를 틀며 병정의 목을 걷어찼다. 용마기에 둘러싸인 다리가 반원을 그렸다. 우둑, 소리와 함께 병정의 머리가 날아갔다.
권한울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병정의 어깨를 밟고 위로 올라갔다. 그리고 온힘을 다해서 병정을 밟았다.
현룡승천공 입문형(賢龍昇天功 入門形)
강격식 천근추(强擊式 千斤錘)
병정의 몸이 위에서부터 으스러지기 시작한다. 권한울이 땅에 착지했을 때는 이미 잔해만 남아 있었다.
두 발이 땅에 닿자마자 권한울은 앞으로 달려 나갔다. 병정들을 향해 몸을 날렸다.
권한울이 용마기가 담긴 권각(拳脚)을 휘두를 때마다 허공에 묵빛 자국이 남아 있다. 병정들의 몸이 산산이 깨졌다.
권한울의 몸이 우뚝 멈췄다. 더 이상 눈앞에 남은 적은 없었다. 뒤를 돌아보자 바닥을 뒤덮고 있는 잔해들이 보였다.
끝?
시시하다고 생각한 찰나 땅굴이 진동하기 시작했다. 마치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세상이 마구 뒤흔들렸다.
땅을 뒤집으며 거대한 몬스터들이 나타났다.
크기는 병정과 비슷했다. 하지만 모습이 완전히 달랐다.
인간처럼 팔다리가 달려 있고, 그 위를 곤충의 견갑이 뒤덮고 있었다.
카란쿨라 장군.
군대가 작정하고 포격을 가해도 막을 수 없을 만큼 단단한 몸체를 가지고 있다는 괴물.
카란쿨라 내에서도 몇 마리 되지 않는 특수한 계급이었다.
“이건 입문형으로 안 되겠는데.”
현룡승천공은 급이 높은 형(形)일수록 위력이 더 강했다.
지금까지 애용하던 입문형으로는 카란쿨라 장군을 상대할 수 없었다.
“마침 잘됐어.”
상위형을 제대로 운용하기 위해서는 하위형을 10성 이상 익혀야 한다. 그전에는 몇 가지 기술만 쓸 수 있었다.
권한울은 최근 입문형을 10성까지 익혔다.
기본형을 자유자재로 사용할 기반이 마련됐다는 뜻이다.
권한울의 자세가 달라졌다. 기세가 더욱 거칠게 변했다.
-키르르륵!
카란쿨라 장군이 고함을 지르며 권한울을 공격했다.
<동화율 12 -> 14%>
권한울의 몸이 앞으로 튀어나간다. 허리춤에 붙인 주먹을 일직선으로 뻗었다.
현룡승천공 기본형(賢龍昇天功 基本形)
붕격식 나선파(崩擊式 螺線波)
단단하게 쥐어진 주먹이 카란쿨라 장군의 복부를 가격한다.
카란쿨라 장군의 내부로 용마기가 침투한다. 용마기는 회전하며 카란쿨라 장군의 내부를 완전히 박살내고 지나갔다.
굉음과 함께 카란쿨라 장군의 등 뒤가 터져 버렸다. 몸 한가운데 커다란 구멍이 생겼다. 남아 있던 껍데기가 옆으로 쓰러졌다.
-끼르르륵!
남아 있던 카란쿨라 장군이 달려들었다. 가시가 잔뜩 돋아난 손으로 권한울을 후려치려 했다.
권한울은 두 무릎을 굽혔다. 손으로 땅을 짚었다. 그와 동시에 사라졌다.
그 직후, 카란쿨라 장군의 정강이가 부러진다. 반대쪽 무릎이 꺾인다. 복부의 견갑이 깨진다. 양쪽 팔뚝이 떨어져 나갔다.
카란쿨라 장군은 뒤늦게 뭔가 이상함을 눈치 챘다. 그러나 도망치기도 전에 머리가 산산이 깨졌다.
현룡승천공 기본형(賢龍昇天功 基本形)
순격식 증속권(瞬擊式 增速權)
공격을 할수록 속도가 빨라지는 권격.
카란쿨라 장군의 등 뒤로 권한울이 나타났다. 카란쿨라 장군이 앞으로 쓰러졌다.
“워우.”
본인이 저지르고도 믿기 힘들었다. 카란쿨라 장군 같은 특수한 개체마저 이렇게 쉽게 쓰러트리다니.
“더 이상 남은 놈은 없나?”
권한울은 땅굴 깊숙이 걸음을 옮겼다. 그러자 거대한 알집을 배고 있는 카란쿨라 어미가 보였다.
-끼르르륵!
어미는 위협적인 울음소리를 냈다. 하지만 땅굴에 있던 모든 수하들은 권한울의 손에 죽었다.
혼자 남은 여왕을 두려워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었다.
권한울은 카란쿨라 어미에게 다가갔다. 마무리를 짓기 위해 손날을 높이 쳐들었다.
손을 내리치기 직전, 권한울을 멈칫했다.
이대로 카란쿨라 어미를 죽이면 더 이상은 돌이킬 수 없다.
정말로 흑천의 정점을 향해 달려야 하리라.
그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피를 묻히게 될까. 그리고 얼마나 강한 적들과 싸우게 될까.
거기까지 생각이 닿았을 때, 실소가 터져 나왔다.
“낄낄, 아니지. 다른 놈들이 날 무서워해야지.”
권한울은 잡혈도, 열혈도, 순혈도 아닌 진혈이다.
두려움의 대상이 될 사람은 다른 누구도 아닌 권한울이다.
“반드시 흑천의 정점에 오르겠다.”
결코 꺾이지 않을 결심과 함께 손날을 내리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