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통이 깡패임 24화>
24화 혈통이 집결함 (1)
권한울은 곧바로 회의장으로 향했다.
모든 건물이 한옥으로 지어진 흑천 일가답게 회의장은 조선 시대 임금의 어전처럼 지어져 있었다.
마치 그때의 모습이 재현된 듯, 압도적인 고풍스러움이 느껴졌다.
차이점이 있다면 더 넓고, 더 높게 지어졌다는 점이다.
안에는 열 명 정도 되는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아직 모두 도착한 게 아닌지. 권한울이 온 이후에도 속속들이 회의장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놀랍게도 이들은 모두 순혈의 혈족이었다. 진(眞) 흑룡혈 덕분에 알아볼 수 있었다.
“못 뵈던 분들이 많네요.”
“순혈의 혈족이라도 모두 흑천 일가에서 생활하는 건 아닙니다. 다른 지역에서 생활하시다가 이번 단체전 때문에 오신 분들이 대다수입니다.”
주하연은 순혈들을 눈짓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선대 순혈이셨던 어르신들도 계시고, 직계는 아니지만 아직까지 순혈을 유지하고 있는 집안도 있습니다.”
하긴 회장의 직계 혈족들만 순혈이어서는 그룹을 제대로 유지하기 힘들 것이다.
그때, 하이힐 소리가 선명하게 들렸다.
붉은 정장을 입은 중년 여성이 당당한 걸음걸이로 회의장 안에 들어왔다.
권한울의 고모인 권미였다.
“다들 모여 주셔서 감사해요. 이번 일을 총지휘하게 된 권미라고 해요.”
흑천 그룹의 외교 담당을 맡고 있는 사람은 권미이니 당연한 인사 결정일지도 몰랐다.
권한울에게는 달갑지 않은 상황이었따. 하필이면 자신을 싫어하는 권미가 단체전을 맡게 되다니.
“다들 알고 계시겠죠. 이번에 메이 가문과 던전의 소유권을 놓고 마찰이 생겼습니다. 이에 메이 가문은 단체전을 통해 승리하는 쪽이 던전 소유권을 가져가자는 제안을 했습니다.”
권미의 말에 혈족들의 얼굴이 험악하게 변했다.
“메이 가문 따위가 우리 흑천에게 도전장을 내밀다니.”
“많이 컸군요. 나 때는 감히 흑천에게 말대답도 못하는 놈들이었는데.”
“아무래도 조만간 수준 차이를 확실하게 각인시켜줘야 할 것 같습니다.”
“그걸로 되겠습니까? 가문 전체를 흔적도 남기지 말고 짓밟고 옵시다!”
순혈들의 거친 반응에 권한울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들은 말로만 화를 내고 있는 게 아니었다. 진심으로 메이 가문의 행동에 분노하고, 또 그들을 가소롭게 생각하고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중국 대륙을 지배하고 있는 메이 가문을 이렇게까지 푸대접을 해도 되냐는 생각까지 들었다.
‘아니, 당연한 걸지도 모르겠군.’
이들은 흑천이다.
메이 가문이 대단하다 한들 흑천에 비하면 부족했다.
흑천은 언제나 동아시아의 지배자였으며 메이 가문은 도전자에 불과했으니까.
이 정도 오만함은 당연한 것일지도 몰랐다.
“여러분들의 마음을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회장님께서는 이미 도전장을 받아들이기로 결정하셨습니다.”
“회장님께서 그딴 놈들이랑 상종을 하겠다고 하셨다고?”
“뭐 하러 그런 귀찮은 짓을 하시는 거지? 우리에게 명령만 내리면 당장 버르장머리를 고쳐 주고 올 텐데!”
“재밌을 것 같다고 말씀하시더군요.”
권미의 말에 순혈들이 조용해졌다.
“메이 가문은 언제나 흑천과의 수준 차이를 인정하지 않았죠. 그러니 이번 기회에 뼛속까지 새겨 주자고 하셨습니까.”
“그거 재미있겠군.”
“듣고 보니 마음에 듭니다.”
순혈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메이 가문에서 제시한 규칙은 세 가지 입니다. 첫째 가문의 대표자는 세 명으로 할 것. 둘째 최후의 한 명이 남는 쪽이 던전의 소유권을 가져간다는 것. 마지막으로 참가자는 아직 이름을 알리지 못한 혈족으로 할 것.”
순혈들이 인상을 썼다.
마지막 규칙 때문에 자신들이 메이 가문을 손볼 수 없다는 사실이 너무 원망스러운 듯 했다.
“지금 이 자리에서 참가자를 결정하려고 합니다. 어르신들의 고견이 있다면 부디 들려주세요.”
이름을 알리지 못한 혈족.
권미의 말에 순혈들은 저마다 추천자를 말하기 시작했다.
“이번에 내 손주 녀석이 제법 실력이 괜찮은데…….”
“내 딸이 아주 여장부야.”
갑자기 분위기가 격변했다.
방금 전까지는 메이 가문을 어떻게 심판할지 판결을 하는 자리였다면 지금은 팔불출 부모의 모임 같았다.
“다들 왜 저렇게 열을 올리는 거죠?”
“자식의 명성을 높일 좋은 기회이기 때문입니다. 잘하면 회장님의 눈에 들 수도 있구요.”
즉, 재판장이 출세의 현장으로 변한 셈이다.
그때였다. 별안간 회의장의 문이 벌컥 열렸다. 갑자기 내부를 밝히는 환한 햇살에 모두의 시선이 집중됐다.
“끄윽, 취한다.”
회의장의 문을 연 사람은 반백의 수염과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는 노인이었다.
하지만 노인 치고는 근골이 지나치게 컸다. 팔다리의 근육도 위협적이기 짝이 없었다.
“끄윽, 취한다.”
노인은 손에 든 술병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대낮부터 술을 얼마나 마신 것인지 얼굴이 토마토처럼 새빨겠다.
회의장에 참석하는 사람치고는 지나치게 불경스러운 태도. 하지만 순혈들은 노인을 타박하기는커녕 경외심에 찬 얼굴로 바라봤다.
“권명우 전무님이시잖아?”
“저분께서 어떻게 이곳에…….”
그 이름에 권한울 역시 퍼뜩 놀라고 말았다.
권명우.
흑천 그룹의 회장 권선우의 동생. 동시에 흑천 일가의 최강이라 불리는 존재였다.
엄청난 재능을 가지고 있는 남자로 직접 창조한 S랭크 스킬만 수십 개.
현재 흑천의 헌터들이 익히고 있는 스킬들의 대부분은 그가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숙부님, 어쩐 일이세요?”
권미가 황급히 달려와서 물었다. 술을 홀짝이며 말을 이어나갔다.
“그 뭐냐. 우리 권선우 형님께서 특별히 지시를 내리신 게 있어서 왔지.”
“특별히…… 지시라고요?”
단체전을 총괄하는 사람은 권미다. 그런 그녀도 모르는 특별 지시라니?
“여기 권한울이라고 있냐?”
내 이름을 어떻게?
난데없는 호명이었다. 권한울은 손을 들며 말했다.
“제가 권한울입니다.”
“저기 권한울이라는 놈은 무조건 단체전에 집어넣으라더군.”
그 말에 순혈들의 얼굴이 굳었다.
그중에서도 권미의 얼굴은…….
“……지금 뭐라고 하셨죠?”
귀신처럼 일그러져 있었다.
* * *
“저 권한울이라는 놈을 단체전에 참가시키라고 했다니까.”
권명우는 한 번 더 말했다. 권미는 입술을 깨물며 소리쳤다.
“말도 안 되는 일이에요! 이번 단체전은 던전의 소유권뿐만이 아니라 흑천 일가의 자존심이 걸려 있어요! 그런데 제대로 된 검증 절차도 거치지 않고 덜컥 저 놈을 집어넣으라니…….”
“미야. 꽤 재미있는 소리를 하는구나.”
권명우가 다시 술을 들이켰다. 완전히 비운 뒤, 그녀에게 말했다.
“플래티넘 던전으로 데뷔전을 치른 아이에게 실력을 검증하라니. 농담치고는 재미가 없어.”
그 말에 순혈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플래티넘 던전으로 데뷔전을? 저 놈이 그 소문의 진혈이었군.”
“과연 진혈입니다. 시작부터 다르군요. 조심해야겠어요.”
“흥, 별거 아니에요. 찬성이도 플래티넘 던전으로 데뷔전을 치르지 않았습니까!”
회의장의 분위기가 달라졌다. 모두들 권한울을 경계하기 시작했다.
권한울은 조용히 미소를 지었다. 이렇게 대단한 실력과 세력을 가진 흑천의 순혈들이 자신을 경계하고 있다니.
그리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좋았다.
“그 말씀에는 오류가 있어요!”
권미가지지 않고 소리쳤다. 권명우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가 말이냐?”
“몬스터를 사냥하는 것과 사람과 싸우는 건 전혀 다른 문제에요! 저놈이 몬스터를 잘 죽인다고 해서 사람과의 전투도 그럴 거라는 보장은 없어요!”
놀랍게도 권미의 말에 대부분의 순혈들은 수긍을 했다.
“하긴 듣고 보니 그렇군. 몬스터를 사냥하는 것과 인간을 잡는 건 서로 별개의 문제지.”
“몬스터와 인간은 너무 다르니까요.”
한때 유명한 헌터가 암살자에게 살해당하는 일이 벌어졌다.
놀랍게도 그 암살자는 일류도 아닌 이류에 불과했다.
헌터가 사람을 상대하는 방법을 전혀 몰랐기에 벌어진 참사.
여론이 자신 쪽으로 기울자 권미의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회장님께는 제가 잘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러니 일단 그 결정은 보류를…….”
“제가 증명이 안 됐다 하셨습니까.”
모두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권한울이 걸어 나오고 있었다.
“너 뭐야. 지금이 어떤 자리인데 이렇게 시건방지게 굴어.”
“제가 부족하다 말씀하시니 증명을 하려고 나왔지요.”
“뭐? 증명?”
권한울이 용마기를 일으켰다. 칠흑 같은 오러가 사방으로 퍼졌다.
그 광경에 순혈들은 경악했다.
“세상에…… 무슨 용투기의 양이 저렇게 많단 말입니까.”
“이렇게 흉흉한 기운은 난생 처음 보는군.”
이 자리에 모인 순혈들은 가문에 크게 이바지했던 자들이다.
최전선에서 싸웠으며 무수한 승리와 영광을 흑천 그룹에 가져다줬다.
실력만 따지면 권한울은 이들보다 한수 아래다.
하지만 그들조차 권한울의 용마기는 얕잡아 볼 수 없었다.
그들을 향해 권한울이 선언했다.
“누구든지 덤비시죠. 이 자리에서 제 실력을 증명해 보겠습니다.”
* * *
“허! 저 건방진 놈을 보십시오!”
“감히 우리에게 도전하라고 말을 하다니!”
여기저기서 격한 반응이 튀어나왔다. 하지만 그들 중에서 나서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던 것이다.
권한울이 진혈에 대단한 유망주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으나 자신들과 비교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때였다.
“으하하하하핫!”
권미의 옆에 서 있던 권명우가 큰소리로 웃기 시작했다.
“이 건방진 놈을 보게. 뭐? 덤벼? 내가 상대해 주겠다고? 으하하하핫!”
권명우가 용투기를 일으키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권한울은 조금 당황했다.
‘잠깐, 저 사람이 나랑 싸운다고?’
권선우와 함께 흑천을 지탱해 온 기둥이자 최강이라고 평가받는 권명우다.
언젠간 실력을 겨뤄보고 싶긴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아직 완벽하지 못한 곳이 많다. 현재로선 부담스럽다 못해 거절하고 싶은 상대였다.
‘적당히 핑계를 대고 거절을…….“
하지만 권명우는 그럴 틈을 주지 않았다.
“백문이 불여일견! 지금 당장 시작해 보자꾸나!”
권명우가 용투기를 발산하며 순식간에 접근했다. 권한울 역시 그 찰나의 순간에 용마기를 발산했다. 들판에 맞불을 놓은 것처럼 두 사람이 충돌했다.
그러나.
‘용마기가 밀려나고 있어?’
경악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용마기는 용투기보다 상위에 있는 힘이다.
그런데 용마기가 용투기에 밀리고 있다고?
“이 몸을 앞에 두고 한눈을 팔다니! 대단한 배짱이구나!”
권명우가 냅다 주먹을 휘둘렀다. 별다른 기교가 섞이지 않은 단순한 주먹질이었으나.
‘정면에서는 막을 수 없다.’
권한울은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양팔을 교차하며 몸을 살짝 띄웠다. 그 직후, 권한울의 몸이 천장에 처박혔다.
엄청난 소리와 함께 천장의 먼지가 후두둑 떨어졌다. 권명우는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잉? 뭐가 이렇게 가벼워?”
천장을 올려다보며 물었다.
“이봐?”
그 순간, 권명우의 얼굴에 웃음기가 싹 사라졌다.
천장을 뚫고 권한울이 튀어나왔다. 권명우를 향해 낙하하며 발꿈치를 내리꽂았다.
권명우는 팔뚝으로 권한울의 공격을 막아 냈다. 철근끼리 서로 힘껏 붙이는 듯한 소리가 났다.
“오호.”
권명우의 얼굴에 웃음이 떠올랐다.
“공격이 제법 알차군.”
“지금부터 그런 말씀은 못하게 되실 겁니다.”
“투지도 강하고!”
권명우가 주먹을 휘둘렀다. 이성이 경고했다. 받아 내지 말고 피하라고.
하지만 본능은 정 반대로 말했다. 권한울은 고민하지 않고 본능에 몸을 맡겼다.
피하지 않고 막아 냈다. 막아 냈음에도 전신의 뼈가 울렸다.
“오호?”
권명우가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그 얼굴에 똑같이 주먹을 날렸다.
권명우 역시 팔뚝으로 주먹을 막았다. 교차된 주먹 사이로 권명우의 미소가 보였다.
“감히 이 몸과 난타전을 벌일 생각인 게냐.”
“못할 것도 없죠.”
“요요, 건방진 녀석!”
권명우가 기꺼워하며 주먹을 휘둘렀다. 권한울은 이를 악물고 거기에 맞섰다.
팔뚝과 주먹이 쉴 새 없이 충돌한다. 서로 부딪힐 때마다 마치 지진이 일어난 것처럼 회의장이 뒤흔들렸다.
“이, 이럴 수가.”
“마, 말도 안 되는 일입니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순혈들은 두 눈을 의심했다.
“저분과 정면에서 난타전을 벌이다니.”
권명우의 진짜 실력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이미 눈치를 채고 있었다.
권명우가 권한울을 상대로 손속을 두고 있다는 것을.
하지만, 그렇지만.
권명우의 주먹은 봐준다고 받아 낼 수 있을 만큼 만만하지 않다.
“과연 진혈답구나!”
권명우의 주먹에 더욱 강맹한 힘이 실렸다. 권한울은 주먹을 방어했으나 두 무릎이 꺾이는 것까진 막아 낼 수 없었다.
으득, 이를 갈며 굽혔던 무릎을 폈다. 턱을 향해 주먹을 처올렸다.
권명우는 손바닥으로 권한울의 주먹을 막아 냈다. 그러나 권한울의 공격도 만만치 않았다. 권명우의 몸이 아주 약간 밀려났다.
“허!”
“하!”
두 사람의 입가가 찢어질 듯이 올라갔다. 그 광경에 순혈들은 한 번 더 경악했다.
“두, 둘 다 웃고 있어요.”
흑천의 혈족들은 한 명도 예외 없이 투쟁을 추구한다. 흑룡혈이 그들을 그렇게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저 두 사람처럼 난타전을 벌이며 웃을 정도는 아니었다.
그만큼 두 사람의 투쟁심과 호승심이 다른 이들보다 강하다는 뜻이었다.
“얘야! 많이 힘들어 보이는데. 이만 쉬지 그러느냐!”
“작은 할아버님이야 말로 연세가 많으셔서 지치셨을 텐데 이만 쉬시지요!”
“요요, 건방진 녀석!”
권한울이 다시 주먹을 들어올렸다. 그때였다.
“즐겁구나! 하지만 더 이상하면 네가 위험하겠구나!”
아직 더 할 수 있다.
권한울이 그렇게 외치려던 찰나, 권명우의 손날이 번개처럼 떨어졌다.
순간, 눈앞이 캄캄해졌다.
눈으로도 볼 수 없고, 반응하는 것은 더더욱 불가능했다.
손날이 권한울의 목덜미에 박혔다. 그 순간, 권한울의 몸이 땅에 처박혔다.
* * *
권한울의 몸이 땅에 처박혔다. 바닥이 무너지며 먼지가 자욱하게 올라왔다.
“으하하하하핫!”
먼지 속에서 권명우는 큰소리로 웃었다. 듣는 사람이 다 호쾌해지는 웃음소리였다.
“훌륭하다! 훌륭해! 내 평생 이렇게 흑천에 어울리는 아이는 처음이로다!”
권명우는 순혈들을 돌아봤다. 그 날카로운 눈빛에 모두들 흠칫 놀랐다.
“나 권명우가 보장하겠다! 이 아이라면 이번 메이 가문과의 단체전에서 흑천의 이름을 빛내기에 충분하다! 아니 차고 넘치지!”
쐐기를 박듯 권명우가 한 번 더 소리쳤다.
“불만이 있는 자는 앞으로 나오라! 내가 직접 납득을 시켜 줄 테니!”
흑천 그룹의 최고 고수이자 웃어른인 권명우에게 불만을 표할 만큼 간이 큰 순혈은 없었다.
모두들 말이 없자 권명우는 권미를 돌아보며 말했다.
“다들 불만이 없는 듯하구나.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권미는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불만이야 차고 넘쳤으나 그걸 말할 수는 없었다.
“……알겠어요. 저 아이를 대표자로 인정하겠습니다.”
“으하하핫! 그래, 그렇게 나와야지!”
권명우는 다시 한 번 더 웃음을 터트렸다. 그때, 한 여인이 앞으로 나섰다.
“감히 어르신께 한 말씀 올리겠습니다.”
“음? 뭐냐. 설마 내 결정이 불만이 있다는 게냐?”
“그럴 리가요. 저는 단지 걱정이 되서 그렇습니다.”
“걱정?”
여인, 주하연이 바닥을 가리켰다. 거기에는 권한울이 뚫고 지나간 구멍이 나 있었다.
“권한울 님께서 도통 일어나질 못하고 계셔서요.”
잠시 침묵이 흘렀다. 권명우는 허겁지겁 양손으로 바닥을 파기 시작했다.
“너, 너무 세게 쳤어! 이, 이봐 죽으면 안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