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혈통이 깡패임-27화 (27/221)

<혈통이 깡패임 27화>

27화 혈통이 승리함 (2)

“잠깐!”

우렁찬 외침이 결투장 밖으로 나가려던 권한울의 발목을 붙잡았다.

뒤를 돌아보자 대기석에 우뚝 서 있는 매중제일검 메이룽의 모습이 보였다.

“참으로 훌륭한 결투였네. 과연 흑천의 위명에 어울리는 대단한 실력이야.”

칭찬과 달리 메이룽의 눈빛에는 살의가 넘실거렸다.

자신의 아들에게 굴욕을 안겨 줬으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하물며 그 굴욕이 결투가 시작된 지 10초도 되지 않아서 패배한 것이라면 말할 것도 없었다.

“마음 같아서는 이대로 자네의 승리를 축하하고 싶네만, 메이 가문을 대표하는 무인으로서 그러기는 어려울 것 같군. 이 일은 메이 가문의 큰 오점으로 남을 게 분명할 테니까.”

매중제일검의 아들인 메이차우가 결투가 시자하자마자 패배했다.

그것도 단 일격에.

이 일이 외부에 알려지면 메이 가문은 두고두고 조롱거리가 될 게 분명했다.

“부디 그걸 만회할 기회를 주면 좋겠네.”

뭘 어떻게 만회할 생각이지? 의아해하는 권한울에게 메이룽이 소리쳤다.

“나, 중화제일검이 흑천에 제안하오. 경기의 규칙을 연승제로 바꾸는 게 어떻겠소!”

흑천의 혈족들도, 메이 가문의 혈족들도 모두 놀랐다.

권한울은 메이룽에게 물었다.

“그러니까 이긴 사람이 남아서 계속 경기를 치르는 걸로 경기 방식을 바꾸자 이겁니까?”

“그렇다!”

권한울은 헛웃음을 터트릴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그래도 메이 가문 정도 되는 곳에서 이런 억지를 부리다니.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어떻게든 권한울을 결투장 위에서 꺾어야 지금의 치욕을 조금이라도 갚을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자네에게도 나쁜 제안을 아닐 거라고 생각하네. 이 자리에 섰다는 것은 자네도 명예에 목이 말랐다는 뜻일 테니까.”

만약 나머지 두 명을 이기면 명성을 더욱 드높일 수 있다.

반대로 패배하면 운 좋게 승리한 애송이밖에 되지 않는다.

“게다가 아직 부족하지 않은가? 싸우고 싶어서 안달이 난 게 뻔히 보여.”

그랬다.

전투가 빨라도 너무 빨리 끝난 탓에 권한울은 좀처럼 흥분을 가라앉힐 수가 없었다.

권한울이 대답하기 위해서 입을 열었다. 그때, 권미가 신경질적으로 소리쳤다.

“지금 누구 마음대로 규칙을 바꾸겠다는 겁니까!”

권미의 항의에 모두의 시선이 집중됐다.

“원래 협의했던 방식은 이게 아니잖아요! 단체전 규칙을 멋대로 바꾸는 건 용납할 수 없어요!”

권미의 어딘가 조급해 보였다. 권한울은 그 이유를 바로 알 수 있었다.

불안한 것이다.

자신의 아들이 돋보여야 하는데. 권한울이 모든 관심을 독차지하는 이 상황이 말이다.

“당장 원래대로 중견전을 시작…….”

“그거 재미있겠군!”

권미의 옆에 서 있던 권명우가 소리쳤다. 그는 무릎을 팡팡 때리며 즐거워했다.

“안 그래도 한 명씩 싸우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 연승제라? 그거 좋군! 아주 좋아!”

“수, 숙부님?”

권미가 당황해서 말리려 했으나 권명우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그 틈에 메이룽이 냉큼 말했다.

“그럼 흑천제일권께서 동의한 것으로 알고 진행하겠소이다.”

메이룽이 몸을 돌렸다. 메이 가문의 대표자 둘을 향해 말했다.

“자, 누가 나오겠느냐. 대체 누가 흑천의 어린용을 쓰러트리고 메이 가문의 명예를 되찾을 것이냐!”

“허락하신다면 제가 해 보겠습니다!”

젊은 청년이 벌떡 일어나며 말했다. 훤칠한 키에 곱슬머리가 몹시 잘 어울리는 남자였다.

“메이펑이다!”

“메이 가문의 미래가 나타났다!”

“메이펑! 메이펑!”

남자의 등장에 메이 가문의 사람들은 그야말로 폭발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럴 수밖에.

저 남자, 메이펑은 메이 가주의 아들이자 대표자들 중에서 대장의 자리를 맡고 있었으니까.

“오호라, 벌써 대장이 나선다? 마음이 급하기는 급했나 보구나!”

권명우가 껄껄 웃음을 터트렸다.

대장의 자리는 팀에서 가장 실력이 뛰어난 사람이 맡기 마련.

그런 점에서 보면 메이펑은 자격이 충분했다.

메이펑이 날렵한 걸음으로 결투장에 올라왔다. 권한울을 향해 포권을 취하며 인사했다.

“우리의 요구를 받아 줘서 고맙다! 그 넓은 아량에 감사를 표하마!”

메이차우와 달리 메이펑은 예의를 차렸다.

“하지만 너무 기고만장했군. 이 제안을 받아들이다니.”

겉으로는.

“네가 메이 차우를 쓰러트릴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허를 찔렀기 때문! 내게는 통하지 않는다.”

메이펑은 큰소리로 외쳤다.

“알량한 승리를 챙기고 도망치지 않은 것을 이제 곧 후회하게 될 것이다!”

관중석에서 엄청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직계혈족다운 인기였다.

권한울도 결투장으로 올라갔다. 메이펑을 마주보고 섰다.

“양쪽 모두 준비가 됐는가?”

두 사람은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시작하게나!”

메이펑이 양손으로 언월도를 잡으며 자세를 취했다.

당장이라도 목이 베일 것처럼 날카로운 예기가 휘몰아쳤다.

권한울은 히죽 웃었다. 그래, 이 정도는 되어야 짓밟을 맛이 나지 않겠는가.

“웃어?”

마음에 안 든다는 듯 메이펑이 미간을 좁혔다.

“그 미소부터 지워 주마!”

메이펑이 먼저 달려들었다. 거리를 좁힌 뒤, 망설임 없이 언월도를 휘둘렀다.

넓은 반원이 그려진다. 날에 맺힌 오러가 공기를 가르며 권한울의 목을 노렸다.

오러가 닿기 직전, 권한울은 몸을 움직여 공격을 피했다.

그런데 동작이 어딘가 기묘했다. 마치 바람에 떠밀리는 것 같았다.

<권능 ‘모나르크’의 바람이 당신을 돕습니다!> “어디서 쓸 만한 보법이라도 익히고 온 모양이구나!”

메이펑이 고함을 지르며 더욱 거세게 공격했다.

그러나 아무리 실력이 뛰어나도 바람을 벨 수는 없는 법.

메이펑은 권한울의 옷깃조차 스치지 못했다.

모나르크의 권능은 메이 가문을 유용한 정도가 아니었다. 천적이나 다름없는 권능이었다.

“그만 도망치고 덤비란 말이다!”

결국 화가 난 메이펑이 소리를 질렀다. 권한울은 짧게 대답했다.

“그럴까?”

안 그래도 슬슬 태세를 전환하려고 했다.

땅을 박차고 나가며 주먹을 내질렀다. 언월도의 창대를 가격했다. 창대가 수수깡처럼 부러졌다.

메이펑의 얼굴이 당혹감으로 물들었다.

“어떻게……?”

무기가 사라지자 메이펑의 몸통이 훤히 드러났다. 권한울은 발을 내딛으며 발끝으로 명치를 꿰뚫었다.

그때였다.

메이펑의 양손에 두 자루의 칼이 나타났다. 메이펑은 칼을 교차하며 권한울의 발차기를 막았다.

둔탁한 소리와 함께 메이펑의 몸이 뒤로 쭉 밀려나갔다.

놀란 표정을 짓고 있는 권한울에게 메이펑이 자랑하듯 말했다.

“무기를 망가트려도 소용없다. 그 정도 대책은 다 세워 놨으니까.”

메이펑의 손에 쥐어진 무기가 계속 바뀌었다.

장검에서 단검으로, 단검에서 수리검으로, 수리검에서 창으로.

‘저게 작은 할아버님께서 말씀하신 메이 가문 특유의 스킬인 모양이군.’

이곳에 오는 동안 권명우에게 들었던 이야기.

메이 가문의 혈족들은 대량의 무기를 보관하고, 그것을 언제든지 꺼낼 수 있는 스킬들을 가지고 있다고.

그 능력을 이용해 여러 종류의 무기를 동시에 사용하는 게 특기라고 말이다.

“이제부터 메이 가문의 무기술을 보여 주도록 하지.”

메이펑이 기합을 지르며 창을 내질렀다. 권한울은 모나르크의 권능을 이용해서 공격을 피했다.

피한 순간, 갑자기 창이 사라졌다. 대신 메이펑의 손에는 채찍이 쥐어져 있었다.

메이펑이 정신없이 채찍을 휘둘렀다. 채찍이 허공을 때리는 날카로운 소리가 쉴 새 없이 들렸다.

권한울은 뒤로 크게 물러났다. 그러자 이번에는 수리검이 날아왔다.

“역시 메이펑! 대단한 연격이다!”

“저 비겁한 놈한테 본때를 보여 줘!”

“메이차우 님의 복수를 해 주세요!”

사방에서 응원이 쏟아졌다. 권한울에 대한 비난은 덤이었다.

그들의 목소리를 들으며 권한울은 비웃음을 지었다.

이들은 뭔가를 착각해도 단단히 착각하고 있었다.

메이차우가 시작하자마자 패배한 것은 허를 찔렸기 때문도, 방심해서도 아니다.

그저 권한울이 압도적으로 강했기 때문이다.

“받아라!”

메이펑이 도끼를 내려찍었다. 권한울은 피하지 않았다.

대신 두 주먹을 단단히 말아 쥐었다. 용마기가 전신을 타고 흘렀다.

용마기를 응축시킨 주먹으로 도끼를 올려쳤다.

“미쳤군!”

글러브를 착용하고 있다지만 제정신이 아닌 행동이었다.

도끼란 부수고 파괴하는데 특화된 물건이다. 그 충격은 글러브로 상쇄할 수 있는 게 아니다.

하지만.

맞부딪히는 순간, 박살이 난 것은 도끼였다.

“말도 안…….”

메이펑은 반대쪽 손에 들고 있던 곡검을 휘둘렀다.

권한울이 팔꿈치로 곡검을 내리쳤다. 곡검의 날이 수수깡처럼 뚝 부러졌다.

“엇?”

메이펑은 뒤로 물러나며 다시 무기를 꺼냈다. 그러나 휘두르기도 전에 권한울의 주먹에 박살이 났다.

“젠장!”

메이펑은 당황한 얼굴로 세 번째 무기를 꺼내들었다.

그 순간, 권한울이 자세를 잡았다.

양발을 넓게 벌려서 몸을 단단히 고정시켰다. 강하게 쥔 주먹을 허리에 붙였다.

심장에서부터 주먹까지.

용마기가 소용돌이치며 이어졌다. 그 힘이 정점에 달한 순간, 주먹을 힘껏 앞으로 내질렀다.

현룡승천공 기본형(賢龍昇天功 基本形)

붕격식 나선파(崩擊式 螺線波)

직선으로 날아든 주먹이 메이펑의 몸통에 꽂혔다. 방출된 용마기가 메이펑의 내부를 강타했다.

“커어억!”

긴 비명을 지르며 메이펑의 몸이 결투장 밖으로 날아갔다.

메이차우가 그랬던 것처럼 메이펑도 벽에 처박혔다. 하지만 그 여파는 똑같지 않았다.

메이펑이 박힌 벽이 갈라지기 시작했다. 이윽고 소음과 먼지를 일으키며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

뻥 뚫린 구멍으로 바깥의 풍경이 훤히 드러났다.

다시금 정적이 흘렀다. 이번에는 처음보다 훨씬 길었다.

권한울은 정적이 끝나기를 기다리지 않고 메이룽을 향해 소리쳤다.

“다음!”

메이룽의 얼굴이 구겨졌다.

* * *

“……쿨럭.”

그때, 기침 소리가 들렸다. 잔해가 들썩이며 메이펑이 일어났다.

메이펑의 몸 상태는 처참했다. 권한울에게 얻어맞은 부위가 완전히 짓눌려 핏덩어리가 되어 있었다.

“쿨럭, 쿨럭.”

입에서 흘러나오는 피의 양도 심상치 않았다. 내장을 다친 것인지 피가 검붉은 색이었다.

“그냥 누워 있지 그래.”

권한울이 한 마디를 툭 던졌다.

“죽지 않도록 마지막에 힘을 빼기는 했는데…… 거기서 더 움직이면 진짜 죽을지도 몰라.”

“다, 닥쳐!”

메이펑은 이를 갈며 소리쳤다.

“메, 메이 가문은! 지지 않아! 특히 너희 흑천 놈들한테는!”

메이펑이 다시 창을 꺼내들었다. 별안간 창날을 맨손으로 움켜쥐었다.

갑작스러운 자해에 권한울은 인상을 찡그렸다.

메이펑의 피가 창날을 적셨다. 그 직후, 변화가 일어났다.

창 전체가 붉은색으로 물든다. 색만 달라진 게 아니었다. 창에서 섬뜩한 한기가 느껴졌다.

그 모습에 권한울은 한 단어를 중얼거렸다.

“……수라.”

권명우조차 주의하라고 말했던 수라가 깃든 무기였다.

“검은 지렁이 놈! 이제부터가 진짜다!”

그 말대로 수라를 꺼내들자마자 권한울은 등골이 쭈뼛 서는 것을 느꼈다.

몸이 먼저 느끼고 있었다. 저것을 만만하게 생각하지 말라고.

방심했다가는 위험하다.

그리 생각했을 때였다. 권한울의 시야에 무언가가 들어왔다.

한 자루의 장검이었다.

전투 도중 메이펑이 떨어트린 무기 중 하나였다.

그 격렬한 전투 속에서도 장검은 용케 멀쩡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다.

권한울은 발끝으로 장검을 쳐올렸다. 허공에 떠오른 장검을 낚아챘다.

<수라혈에 의해서 검술에 대한 이해도가 증가됩니다!> <천재혈이 훈수를 둡니다! 무기의 이해도가 더욱 증가됩니다!> <현재 현룡승천공(賢龍昇天功)의 약 50%를 검으로 재현할 수 있습니다.> 권한울은 검을 몇 번 휘둘러봤다. 오랫동안 써왔던 것처럼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었다.

“지금 뭐 하는 거지?”

메이펑이 어이없다는 얼굴로 말했다.

전투가 끝나지도 않았는데. 갑자기 검을 들고 이리저리 휘두르고 있으니 저런 반응이 나올 만도 했다.

권한울은 장검의 끝을 까딱까딱 흔들며 말했다.

“이걸 한번 써 볼까 해서.”

그 한마디에 메이펑은 헛웃음을 터트렸다.

“하.”

헛웃음은 점점 더 커져만 갔다.

“하핫, 하하하하핫!”

그러나 이내 서서히 분노로 바뀌었다.

“감히 권사가! 흑천 가문이! 내 앞에서! 메이 가문의 혈족에게! 무기를 들겠다는 것이냐!”

창날에 담긴 수라기가 주인의 격한 분노에 호응했다. 엄청난 기운을 발하며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내 반드시 네 놈의 심장을 씹어 먹어 주마!”

메이펑은 보는 사람이 걱정이 될 정도로 길길이 날뛰었다.

“무시하는 거 아닌데.”

“개소리하지 마라!”

“그렇게 들리면 어쩔 수 없고.”

권한울이 용마기를 일으켰다. 검은 오러가 결투장을 완전히 뒤덮었다.

그 엄청난 양에 메이펑은 물론 관중들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저, 저거 설마 용투기는 아니겠지?”

“말도 안 되는…… 흑천이 아무리 대단해도 어찌 저런…….”

“어, 엄청난 양이야. 호수의 물을 쏟아 붓는 것 같잖아.”

권한울은 모든 용마기를 장검으로 집중시켰다. 용마기는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장검에 응축되었다.

<‘용마기(龍魔氣)’와 ‘수라기(修羅氣)’가 융합합니다.> 장검에 맺힌 오러가 더욱 강해진다. 그 막강한 기운에 메이펑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어때? 이 정도면 잘나신 메이 가문의 혈족과 무기술을 겨룰 수 있지 않겠어?”

조롱 섞인 물음에 메이펑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조용히 자세를 잡았을 뿐이었다.

권한울은 메이펑이 필살의 초식을 준비하고 있음을 눈치 챘다.

권한울 역시 자세를 취했다. 검술은 아는 바가 전혀 없기에 현룡승천공을 준비했다.

메이펑이 창을 내질렀다.

붉은 오러가 수백 가닥으로 나뉘어 쏟아졌다. 마치 수백 명의 궁사들이 일제히 화살을 날린 것 같은 형상이었다.

권한울도 검술을 펼치기 위해 자세를 잡았다.

현룡승천공 기본형(賢龍昇天功 基本形)

쇄격식 창류(崩擊式 漲流)

본래는 일시에 오러를 방출해 사물을 파괴하는 기술.

기술을 펼치기도 전에 알 수 있었다. 이 일격으로 모든 것이 결정되리라는 것을.

장검에 담겨 있던 오러를 모조리 방출했다. 검은 파도가 모든 것을 집어삼켰다.

“이런 괴물 같은…….”

그 말을 남긴 채 메이펑은 용마기에 휩쓸렸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