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통이 깡패임 35화>
35화 혈통이 등장함 (4)
<‘아수라왕(阿修羅王)’이 눈을 뜹니다.> 아수라왕의 기운이 아룡태를 완전히 뒤덮는다.
쇠처럼 단단하던 갑주가 몸에 달라붙는다. 마치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말이다.
메이룽은 황망한 얼굴로 그 모습을 바라봤다.
“어떻게 아수라왕을 흑천의 혈족인 네놈이 가지고 있는 것이냐!”
“초대 가주의 사당에서 손에 넣었지.”
“헛소리 하지 마라! 그곳은 가주님께서 매일 같이 기도를 드리는 곳이다! 아수라왕이 있었더라면 가주님이 몰랐을 리가 없다!”
“모를 수밖에 없지. 아수라왕은 오직 진혈에만 반응하거든.”
“진혈이라고……?”
메이룽의 몸이 비틀거렸다. 순간적으로 다리에 힘이 풀린 모양이었다.
“……있을 수 없는 일이야.”
메이룽은 허망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혈통은 하나밖에 가질 수 없다. 그걸 어떻게 두 개나…… 그것도 진혈들을……. 네놈은 대체 뭐냐! 흑천은 대체 어떤 악마를 만들어 낸 것이냐!”
그 점은 권한울도 아는 것이 없었다.
어째서 그가 혈통을 복수로 가질 수 있는지. 또 어떻게 혈통이 계속 만들어지는지.
다만, 지금 신경 써야 할 것은 그게 아니었다.
<‘아수라왕(阿修羅王)’이 장비를 잠식합니다.> 수라혈(修羅血)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한 가지 무기만 배워도 백 가지 무기를 다룰 수 있게 된다.
또한 수라기(修羅氣)라는 특수한 힘을 이용해서 장비를 강화시킬 수도 있다.
하지만 이것들은 부수적인 능력일 뿐이다. 수라혈의 진가는 무기에 수라를 담았을 때 나타난다.
수라가 깃든다 혹은 수라를 꺼냈다라고 표현이 되는 이 현상은 무기의 수준을 격상시킨다. 그 위력은 용투기마저 꿰뚫을 정도.
흑룡혈이 그렇듯 수라혈 역시 순도가 높을수록 능력이 강해진다.
잡혈보다는 열혈, 열혈보다는 순혈.
그렇다면 진혈은?
그리고 진혈에만 깃드는 아수라왕의 힘은?
<일시적으로 신체능력이 강화됩니다. 모든 능력치가 S급에 오릅니다!> <일시적으로 저항력이 증가됩니다! 모든 저항력의 수치가 100을 달성합니다.> <일시적으로 기술이 증가됩니다! 모든 무기를 전문가 이상으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능력치의 상승 ‘따위’는 아수라왕의 진정한 힘이 아니다.
<장비 ‘아룡태(兒龍態)’가 강화됩니다!> <‘아룡태(兒龍態)’의 내구도와 강도가 50% 증가됩니다!> <‘아룡태(兒龍態)’가 보유하고 있는 모든 기능이 30% 상승됩니다.> 장비의 강화 ‘따위’도 마찬가지다.
<‘아수라왕(阿修羅王)’이 마력을 흡수합니다.> <‘아수라왕(阿修羅王)’에 의해 모든 타격(打擊)이 강화됩니다.> 이것이다. 이것이야 말로 아수라왕의 진짜 능력이다.
용마기가 주먹에 모여든다. 불길처럼, 혹은 연기처럼 흔들리던 용마기가 단단하게 응축된다.
그 모습에 메이룽의 눈동자가 커졌다.
“이놈 그건…….”
메이룽은 방금 전, 저것을 직접 봤다. 아니, 직접 겪어봤다.
이제 겨우 초입에 불과하지만 저것은 분명…….
<‘아수라왕(阿修羅王)’이 강기(罡氣)를 만들어 냅니다.> 놀랍게도 아수라왕은 단순히 마력을 흡수한 것만으로 진정한 초월자들만이 사용할 수 있는 지고의 힘을 권한울의 손에 쥐어줬다.
더욱 무서운 것은 이게 시작이라는 점이었다.
<진(眞) 수라혈의 동화율 0% -> 6%> 권한울과 수라혈의 동화율은 겨우 6%.
동화율이 높아질수록 아수라왕의 능력은 강해진다.
다시 말하자면 아주 약간 깨어난 능력으로 강기를 만들어낸 것이다.
만약 동화율이 100%에 달하면 강기보다 훨씬 뛰어난, 그 이상의 기술을 사용할 수 있게 되리라.
하지만 마냥 기뻐할 수는 없었다.
‘버겁군.’
아수라왕은 그야 말로 마병(魔兵)이었다.
유지하는 것만으로 온몸이 마력이 바짝 말랐다. 건강혈로 회복하는 것보다 아수라왕이 흡수하는 속도가 더 빨랐다.
심지어 호시탐탐 권한울의 몸을 뺏기 위해서 발악을 했다.
<진(眞) 수라혈의 동화율 6% -> 9%> 동화율이 오르면 오를수록 아수라왕의 침식 속도가 빨라졌다.
‘끔찍한 무기야.’
이 세상에 아수라왕을 능가하는 무기는 없으리라.
하지만 자칫 잘못하면 아수라왕에게 몸을 뺏기고, 살육과 파괴만을 위해 난동을 피우다 죽게 될 것이다.
‘하지만 길들이는 맛이 있겠어.’
아쉽게도 지금은 여유가 없었다.
벌써 숨이 조금씩 차다.
아수라왕을 아주 약간 유지한 것만으로 이미 한계에 도달한 게 분명했다.
더 이상 시간이 지나면 쓰러지는 건 이쪽이 될 것이다. 그러니 메이룽과 최대한 빨리 결판을 내야 했다.
“그럼 매중제일검.”
권한울의 목소리에 힘이 담긴다. 메이룽을 향해 소리쳤다.
“어디 한번 내 권(拳)을 받아 보시겠습니까.”
메이룽은 이를 악물었다.
권한울의 말투가 갑자기 바뀐 것은 정말로 그를 윗사람이라고 생각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메이룽을 낮게 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굴욕을 당하고도 메이룽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심장에 흐르는 피로 장검을 물들여 수라를 꺼내들었을 뿐이었다.
“내 목숨을 걸어서라도 반드시 이 자리에서 네놈을 죽여주마.”
“천하의 매중제일검께서 나와 생사(生死)를 논하시다니 이거 참 영광입니다.”
권한울의 조롱에도 메이룽은 발끈하지 않았다.
그만큼 지금의 권한울은 메이룽으로서도 방심할 수 없는 상대였다.
“그럼 먼저 시작하겠습니다.”
권한울이 발을 내딛었다.
기술을 펼칠 여유 따위는 없었다. 아수라왕을 제어하는 것만으로도 벅찼다.
그저 온힘을 다해서 주먹을 내질렀다. 주먹에 담겨 있는 막대한 힘을 방출했다.
그와 동시에 메이룽이 칼끝을 세웠다. 팔을 타고 신체의 모든 혈액이 검에 집중이 되었다.
발악인지 기합소리인지 모를 소리를 내지르며 메이룽이 칼끝을 내질렀다.
권격과 참격이 서로 부딪혔다.
결판은 한순간이었다.
* * *
“메이룽, 이 노오오옴!”
권명우가 길게 고함을 내질렀다. 두 눈에 핏발이 잔뜩 서 있었다.
“매중제일검이라는 놈이 어떻게 마지막까지 치졸하게 나온단 말이냐!”
“대장, 진정하세요.”
“진정? 내가 진정하게 생겼느냐!”
권명우가 사문옥을 삿대질하며 소리쳤다.
“저 안에 권한울 그놈이 갇혀 있단 말이다! 빨리 저 유물을 열지 않으면 그놈이 죽게 된다!”
비록 권명우에게 순식간에 패배하기는 했으나 메이룽은 메이 가문 최고의 고수다.
현재의 명성을 얻는 동안 메이룽이 해결한 국가 재해급 던전과 최고 위험 몬스터의 숫자는 이루 말할 수 없다.
심장을 꿰뚫리고, 체력이 바닥났다고 하지만 현재의 권한울이 이길 수 있는 상대가 아니다.
“하연아! 무슨 방법이 없겠느냐!”
사문옥을 살펴보고 있던 주하연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한 번 발동하면 소유자가 해제하기 전까지 절대로 열리지 않는 유물입니다.”
“마법으로 어떻게 안 되겠느냐.”
“아시잖습니까. 지구의 마법으로는 레전더리 유물을 어찌할 수 없습니다.”
이건 주하연뿐만 아니라 지구의 모든 마법사, 마녀에게 해당되는 이야기였다.
지구의 마법은 이제 겨우 걸음마 수준에 불과하다. 유물에 관여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젠장!”
권명우가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메이 혈족들을 돌아봤다. 살기어린 눈동자에 메이 혈족들은 잔뜩 겁에 질렸다.
“누구든지 좋다! 이 유물을 열 수 있는 자는 나와라!”
불행하게도 사문옥은 메이 가문 내에서도 비밀스럽게 다뤄지던 유물이었다.
그런 유물의 사용법을 아는 혈족이 있을 리가 없었다.
아무도 나서지 않자 권명우의 이마에 혈관이 돋아났다.
“이놈들이! 감히 내 말을 무시하겠다 이거냐!”
권명우가 주먹을 불끈 쥐었다. 메이 혈족들의 얼굴에 공포가 떠올랐다.
“진정해라.”
그때, 권선우가 입을 열었다.
“형님! 어떻게 그렇게 침착하신 겁니까! 빨리 구하지 않으면 그 아이가 죽을 겁니다!”
“너처럼 흥분한다고 뾰족한 수가 나오는 것도 아니지 않느냐.”
권명우는 입을 다문 채 숨만 씩씩거렸다.
“형님! 정말 무슨 방법이 없겠습니까?”
“없다.”
“잘 생각해 보십시오!”
“미다스 가문을 데려오면 또 모를 일이지만 어느 시간에 그놈들을 데려온단 말이냐.”
권명우가 주먹을 힘껏 내리쳤다. 한순간 땅이 들썩였다.
“……미안하구나.”
이내 죄책감 가득한 얼굴로 사문옥을 바라봤다.
“하다못해 네 복수라도 해 주고 싶다만…….”
아마 불가능할 것이다. 아마 권한울을 죽이고 나면 메이룽도 죽을 테니까.
죽은 사람에게 빚을 청구할 수는 없는 법이다.
“빌어먹을!”
무엇보다 그게 제일 화가 났다. 원수에게 복수를 할 수 없다니.
그때였다.
철컥!
자물쇠가 풀리는 소리와 함께 사문옥이 열렸다. 그와 동시에 폭발이 일어났다.
권명우는 팔뚝으로 얼굴을 가렸다. 강력한 힘이 권명우의 팔뚝을 긁고 지나갔다.
이내 세상이 잠잠해졌다. 권명우는 천천히 팔을 내렸다.
자욱한 먼지 속에서 한 명의 인영이 보였다. 권명우가 이를 갈며 으르렁거렸다.
“메이룽! 아직 살아 있었구나! 지금 당장 네놈을 산채로 씹어 먹어 주마!”
그때 먼지가 완전히 날아가고 사람의 모습이 드러났다. 그 순간, 모두의 눈동자가 커졌다.
서 있는 사람은 메이룽이 아니었다.
“무슨 말씀을 그렇게 살벌하게 하십니까.”
그 말에 권명우의 당혹감은 더욱 커졌다.
“너, 너너, 어떻게 사, 살아 있는 거냐?”
“그럼 죽기를 바라셨습니까?”
“아니, 그게 아니라…… 메이룽, 그 빌어먹을 놈은 대체 어떻게 되고…….”
그제야 권명우는 눈치 챘다.
권한울에게서 조금 떨어진 곳에 시신 하나가 놓여 있는 것을.
대체 무슨 일을 당했는지. 시신은 몸통의 반 이상이 사라져 있었다.
권한울의 생존에 충격을 받은 나머지 ‘저 시신’의 존재를 눈치 채지 못했다.
바닥에 쓰러져 있는 시신은 바로 메이룽이었다.
권명우도, 주하연도, 흑천대원들도, 메이 혈족들도 자신도 모르게 입을 크게 벌렸다. 심지어 권선우조차 눈동자가 커졌다.
“흑천의 권한울이 매중제일검 메이룽을 꺾었다!”
흑천대원 중 한 명이 소리쳤다. 그걸 시작으로 다른 이들도 우후죽순 따라서 외쳤다.
“흑천의 권한울이 매중제일검을 죽였다!”
흑천대원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권명우는 어처구니없다는 얼굴로 중얼거렸다.
“저놈의 자식. 내가 다 차려놓은 밥상에 숟가락만 얹어 놓고서는…….”
이내 권명우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권한울과 메이룽의 격차를 생각하면 마무리를 짓는 것조차 불가능하다.
그 불가능한 일을 권한울이 실제로 해냈다.
“과연 진혈이요. 천이의 아들답군.”
나지막이 중얼거리다 말고 권명우가 소리쳤다. 목에 핏대까지 세워 가며 크게.
“그래! 흑천의 권한울이 매중제일검을 꺾었다!”
이날, 흑천에 새로운 영웅이 탄생했다.
마지막만 날름 훔쳐 먹기는 했지만.
* * *
사람들의 환호성이 극에 달했을 때였다.
“한창 기쁠 때 방해해서 미안하구나.”
권선우가 입을 열었다.
“언제까지 이곳에 있을 수는 없다. 메이 가문의 남은 무인들과 중국의 군대가 모여들며 골치 아프거든.”
이곳은 흑천 일가가 아니라 적진 한가운데다. 마냥 마음을 놓고 있을 수는 없었다.
“어떻게 돌아가시려고요?”
권한울의 물음에 권선우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왔던 방법 그대로 돌아가야지.”
“……왔던 방법이라고요?”
권명우가 고개를 주억거리며 물었다.
“형님, 마력을 다 회복하신 겁니까.”
“어느 정도는 회복했다. 마지막으로 이걸 먹으면 돼.”
권선우가 작은 환단을 꺼냈다. 꺼내는 순간, 상쾌한 향기가 사방을 가득 채웠다.
아무리 봐도 회복용으로 쓸 물건이 아니었다.
“다만 가기 전에 꼭 해야 할 일이 있지.”
그는 메이 가문의 건물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털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