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통이 깡패임 36화>
36화 혈통이 동행함 (1)
권선우는 모든 흑천의 혈족들을 데리고 메이 가문의 비고로 향했다.
지하 깊은 곳에 마련된 흑천의 비고와 달리 메이 가문의 비고는 지상에 존재했다.
너비는 축구장과 비슷하고, 높이는 5층에 달했다. 흑천의 비고에 비하면 굉장히 작은 크기였다.
그래도 명색이 대 가문의 비고인지라 각종 보안 설비들이 흑천의 혈족들을 가로 막았다.
“으라차차찻!”
그래봤자 권명우의 주먹질 한 방에 모두 뚫려 버렸지만.
무력화된 비고로 들어가기 전, 권선우가 각자 구역을 나누었다.
“흑천대는 밖으로 가서 메이 혈족들의 무기를 수거해라. 그리고 명우는 1층의 무기고로 가서 괜찮은 것들은 모두 가져와라. 권미는 2층으로 가서…….”
한 명 한 명 지명을 하던 도중, 권한울의 차례가 됐다.
“너와 하연이는 지하에 있는 약재 창고로 가거라.”
“아, 아빠?”
그 말에 권미가 화들짝 놀랐다.
“왜 거기를 저 녀석한테 맡기시는…… 우리 후돈이도 있는데…….”
“시끄럽다. 내 말에 토를 달 거면 당장 나가라.”
“아, 알았어요.”
권미가 시무룩한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그녀뿐만이 아니라 권지석도 뭔가 영 못마땅한 얼굴이었다.
딱 한 명, 권명우만이 크게 기뻐했다.
“으하핫, 역시 형님이라면 그곳을 저놈에게 맡길 줄 알았습니다.”
“시끄럽다, 이놈아.”
권선우는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하고 위층으로 올라갔다.
혈족들이 각자 정해진 층으로 이동했다.
하나둘 움직이는 혈족들을 보며 권한울은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다. 대체 약재 창고가 뭐라고 저러는 거지?
“권한울 님, 저희도 이동하도록 하죠.”
권한울과 주하연은 지하의 약재 창고로 이동했다.
약재에 대해서는 권한울보다 주하연이 더 많이 알고 있기에 그녀가 주도했다.
“어디보자…… 이 선반에 있는 약재들은 모두 가져가야겠네요.”
대체 어디서 꺼냈는지 주하연은 커다란 포대 자루에 약재들을 모조리 쓸어 담기 시작했다. 권한울도 옆에서 그녀의 작업을 도왔다.
선반 하나를 통째로 털고, 다음 선반으로 갔을 때였다.
“여기 있는 약재들 모두 권한울 님의 아공간 창고에 넣으세요.”
“예?”
놀라서 반문할 수밖에 없었다. 얼핏 봐도 선반에 있는 약재들은 값비싼 것들뿐이었으니까.
“그래도 되는 겁니까?”
“예, 이게 약탈의 묘미죠. 몇 개 없어져도 아무도 모르거든요.”
대수롭지 않게 말하는 주하연을 보며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어째 익숙하신 것 같네요.”
“많이 해 봤거든요.”
“많이…….”
순간 권한울의 머릿속에서 하나가 번뜩였다.
“이래서 회장님이 저를 약재 창고로 보내신 겁니까?”
“네. 맞습니다. 권한울 님께서는 지금 모든 능력치가 A급이 되셨죠. 그런데 그 이후로 능력치가 상승된 적이 있나요?”
“생각해 보니 한 번도 없네요.”
아무리 훈련을 해도, 몬스터를 사냥해도 능력치는 요지부동이었다.
심지어 건강혈에 의해서 능력치가 오르는 현상도 멈췄다.
“당연한 현상입니다. 기존의 방식으로는 A급에서 S급으로 올라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헌터는 상태창에 표시된 능력치를 상승시킴으로서 성장할 수 있다.
모든 헌터의 능력치는 E등급부터 시작되며 세부적인 수치로 50을 달성하면 등급이 하나 올라간다.
이렇게만 보면 능력치가 점진적으로 상승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등급이 올라갈수록 능력치를 상승시키기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A등급이 초인의 경지라면 S등급은 초월자의 경지라고 불립니다. 그 정도로 S등급을 달성하는 건 하늘의 별따기보다 어렵죠. S등급을 몇 개나 달성했느냐로 세계 랭킹이 달라질 정도입니다.”
이건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아니, 들을 기회가 없었다고 말하는 게 정확할 것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권한울은 C등급도 달성 못한 삼류 헌터였으니까.
“S등급까지 올라가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강대한 보스 몬스터를 사냥하거나 혹은 그에 버금가는 영약을 섭취하는 것이죠.”
권한울은 그 말을 듣고 나서야 약재 창고로 보낸 정확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S등급을 달성할 수 있을 만한 약재를 몰래 훔치라는 뜻이군요.”
“맞습니다. 그만한 영약은 흑천 일가 내에서도 희귀하기에 탐을 내는 혈족들이 많습니다. 이런 기회가 아니라면 권한울 님께서 차례가 돌아가지 않을 겁니다.”
권미와 권지석이 왜 못 마땅해 했는지 알겠다. 이런 좋은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마침 그런 약재가 하나 있군요.”
주하연이 선반에 놓여 있던 물건을 집어 들었다.
어린아이의 주먹만 한 크기의 씨앗이었다.
“메이 가문도 얕잡아 봐서는 안 되겠군요. 설마 이걸 가지고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이게 뭐죠?”
“황금사과의 씨앗입니다.”
쿨럭.
너무 놀란 나머지 권한울은 기침을 토해 냈다. 간신히 기관지를 진정시킨 뒤에야 되물을 수 있었다.
“이게 황금사과 씨앗이라고요?”
먹기만 하면 젊음을 되찾고, 무한한 활력을 가져다주는 영과(靈菓).
과거 세계적인 길드 세 곳이 황금사과를 놓고 충돌했을 정도로 엄청난 가치를 가진 보물이 바로 이 황금사과였다.
그것의 씨앗이라고 하니 놀랄 수밖에.
“황금사과를 섭취하시면 능력치 하나를 S등급으로 상승시키실 수 있습니다. 다만, 열매를 맺을 때까지 키우는 게 대단히 어렵죠.”
“어떻게 해야 성장시킬 수 있는데요?”
“성황수라 불리는 특수한 유물이 필요합니다. 이 세상의 모든 봉인을 해제할 수 있는 효능을 가지고 있기에 황금사과 씨앗만큼이나 구하기 힘들죠.
황금사과가 극히 드문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씨앗도 잘 나오지 않을 뿐만 아니라 성장시키는데 필요한 성황수를 얻기도 힘들다.
“하지만 그만한 노력을 들일 가치가 있습니다. 권한울 님께서 흑천의 정점에 도전할 자격을 갖추시려면 최소한 세 개 이상의 능력치를 S급까지 올려놔야 합니다.”
하나만 달성해도 초월자라 불리는 S급을 세 개씩이나 갖춰야 겨우 도전할 자격을 얻게 된다니.
빡빡하다 못해 불가능에 가까운 조건이 아닐 수 없었다.
“권찬성 형님은 능력치가 어떻죠?”
“그 분은 이미 오래 전에 모든 능력치가 S급이 되셨습니다.”
“작은 할아버님은요?”
“권명우 님께서는 S급은 물론 근력은 SS급을 달성하셨다고 들었습니다.”
S급도 실감이 나지 않는데. SS급은 또 어떨지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
“이거 도전 자격을 갖추는데도 아주 오래 걸리겠는데요.”
“글쎄요.”
주하연은 그 말을 부정했다.
“권한울 님의 성장속도를 보고 있으면 그리 오래 걸릴 것 같지 않습니다.”
주하연의 말에 권한울을 약간 뜨끔했다.
다수의 혈통을 보유하고 있는 권한울의 성장 속도는 범상치 않았다.
혈통의 도움을 받는다면 그깟 S급은 금방 달성할 수 있을 터.
“제가 뭐 대단한 게 있다고 그러십니까.”
그렇다고 주하연에게 이 사실을 밝힐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권한울은 대충 얼버무리며 황금사과를 아공간에 깊은 곳에 집어넣었다.
그 뒤로도 권한울은 주하연과 함께 약재창고를 돌아다녔다.
아쉽게도 능력치를 S등급으로 올릴 수 있는 영과는 황금사과의 씨앗 하나뿐이었다.
“이만 나가시죠.”
쓸 만한 약재는 모두 쓸어 담았으니 돌아갈 일만 남았다.
권한울은 주하연과 함께 밖으로 나갔다.
* * *
권한울과 주하연은 다시 1층으로 돌아왔다. 다른 혈족들은 이미 약탈을 끝내고 기다리고 있었다.
아무래도 약재 창고의 크기가 가장 크다 보니 두 사람이 가장 늦을 수밖에 없었다.
“오, 그래 왔느냐.”
가장 먼저 권명우가 권한울을 맞이했다.
양 어깨에 황소보다 더 큰 포대를 짊어지고 있었다. 울퉁불퉁한 것을 보니 모두 무기인 모양이었다.
“그래서 주머니는 두둑하게 채웠냐?”
“눈에 불을 켜고 쓸어 담았죠.”
권한울의 말에 권명우가 껄껄 웃음을 터트렸다.
그때, 밖에서 권선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 여아는 대체 누구냐?”
비고 안에 있던 사람들이 우르르 밖으로 몰려나갔다.
권선우와 무릎을 꿇고 있는 흑천대원들이 보였다. 그들의 앞에는 피투성이가 된 여인이 쓰러져 있었다.
“메이 가문을 돌아다니던 도중 발견했습니다.”
“너희가 이렇게 만든 것이냐?”
“아닙니다. 처음 발견했을 때부터 이랬습니다.”
여인은 살아 있었으나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상처가 깊었다.
권한울은 여인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순간, 어떤 생각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메이홍?”
권한울은 여인에게 다가가서 얼굴을 살폈다. 상처투성이라 알아보기 힘들었으나 메이홍이 분명했다.
“아는 아이냐?”
“메이 가문의 대표자 중 한 명입니다. 그리고…… 유물의 마력로를 끊은 그 메이 혈족입니다.”
“이 여인이 그 아이라고?”
어째서 상처투성이인가 했더니 마력로를 끊은 직후 메이 혈족들에게 공격을 당한 모양이었다.
“누가 약을 가지고 오거라.”
흑천대원 한 명이 품에서 약병을 꺼내서 메이홍의 입에 흘러 넘겼다.
잠시 뒤, 메이홍은 기침을 하며 깨어났다.
메이홍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주변을 살폈다. 흑천의 혈족들을 알아보고 물었다.
“……전투는, 메이 티엔은 어떻게 됐죠?”
“메이 가주를 말하는 거라면 이미 죽었습니다.”
권한울의 말에 메이홍은 안도의 표정을 지었다.
“……다행이다.”
쿨럭.
메이홍이 피를 토해 냈다. 권선우는 권한울에게 물었다.
“이 아이에 대해서 잘 아느냐?”
“모릅니다. 오늘 처음 만났습니다.”
“믿을만한 아이냐?”
권선우의 물음에 권한울은 잠시 고민했다.
“믿을 만할 겁니다. 제게 메이 가문의 독살 시도를 알려준 사람이 바로 이 여인입니다.”
건강혈과 천재혈이 있기에 소용없는 도움이었지만.
“그럼 괜찮겠구나. 저 아이를 치료해라. 흑천으로 데려가야겠다.”
권선우의 말에 권한울은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설마 은혜를 갚으려는 생각인가 싶었다.
“마침 수라혈을 휘하에 넣고 싶었는데. 협조적인 메이 혈족을 얻게 돼서 다행이구나.”
그럼 그렇지.
은혜를 갚으려는 이유보다는 가문에 이득이 되기에 데려가려는 목적이 더 큰 것 같았다.
“다들 물러나라.”
흑천의 혈족들은 냉큼 거리를 벌렸다. 그들이 아주 멀리 떨어진 뒤에야 권선우는 용투기를 일으켰다.
그 순간, 눈앞에 절벽이 나타났다.
권선우가 일으킨 용투기의 밀도가 너무 높고, 양이 많은 탓에 그렇게 보인 것이다.
용투기가 형체를 이루기 시작했다. 푸른 하늘에 거대한 용이 떠올랐다.
“대단하지?”
권명우가 권한울의 등을 때리며 물었다. 권한울은 멍하기 고개를 끄덕였다.
“잘 봐둬라. 저게 모든 혈통의 정점인 화신체(化身體)라는 거다.”
권명우가 선망이 담긴 눈동자로 말했다.
흑천제일권이자 권강을 손에 넣은 권명우조차 동경할 정도로 화신체는 대단한 경지였다.
“어떻게 하면 화신체까지 도달할 수 있죠?”
“자격이 있는 사람이 동화율을 100%를 달성하면 얻을 수 있다.”
“어떤 자격을 말씀하시는 거죠?”
“그건 모른다.”
권명우가 딱 잘라 말했다.
“수많은 흑천의 혈족들이 화신체를 얻고자 했지만 화신체에 도달한 사람은 흑천 가문에서 초대 가주와 2대 가주, 그리고 형님이 끝이었지.”
권명우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대체 기준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화신체를 이룰 수 있는 사람은 지극히 한정되어 있다는 것만은 확실하단다.”
아마 권명우 역시 화신체를 얻고자 했으나 실패했을 것이다.
그래서 저렇게 아쉬움에 가득한 얼굴로 권선우를 바라보는 게 아닐까.
“진혈인 너라면 분명히 화신체를 얻을 수 있을 거다. 어쩌면 형님보다 더 대단한 경지에 오를지도 모르지. 아니, 분명히 그렇게 될 거다.”
권명우가 확신에 가득한 어조로 말했다. 그 말에 권한울은 그저 미소를 지었다.
“근데 한 가지 궁금한 게 있습니다.”
“뭐냐.”
“엄연히 화신체를 얻은 회장님께서 계신데. 어째서 작은 할아버님께서 흑천제일권이라고 불리는 겁니까.”
그 물음에 권명우의 표정이 와락 일그러졌다.
“야 이놈아! 내가 비록 화신체는 얻지 못했지만 권법만큼은 형님도 날 못 따라와!”
“아, 그렇군요.”
“이놈! 어디서 그런 시원찮은 대답이냐! 빨리 이리 와서 납득하지 못할까!”
두 사람이 실랑이를 벌일 때였다. 완전한 용이 된 권선우가 아래로 내려왔다.
-다들 내 등에 올라타라.
* * *
흑천 일가.
흙으로 가득한 공터에 흑천의 순혈들이 한 가득 모여 있었다.
대체 무슨 일인지 다들 조마조마한 얼굴로 하늘을 올려다보는 중이었다.
그중 한 명이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가주님께서는 언제쯤 돌아오실련지…….”
흑천의 회장 권선우가 화신체로 변해서 메이 가문을 향해서 날아간 지 벌써 7시간이 지났다.
설마 권선우가 메이 가문 따위에게 당할 리는 없지만 가문의 수장이 적진에 있는데 마냥 마음을 놓고 있을 수는 없었다.
“저기 가주님이 보입니다!”
누군가 소리쳤다. 저 멀리서 날아오는 흑룡이 보였다.
“다행히 무사하십니다!”
“당연한 소리를 하고 앉아 있군! 가주님과 흑천제일권께서 함께 계신데 무슨 일이야 있으려고!”
순혈들이 한 마디씩 주고받는 사이 권선우가 아래로 내려앉았다.
등에 태우고 있던 혈족들이 내려오자 권선우도 화신체를 풀었다.
“후우…… 하루에 두 번이나 화신체로 변하려니 힘들군.”
“형님께서도 이제 많이 늙으셨습니다.”
“너한테 그런 말을 듣고 싶지는 않구나.”
권선우가 툴툴거렸다. 그런 권선우를 향해 순혈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가주님! 다치신 곳은 없으십니까!”
“메이 가문은 어떻게 됐습니까!”
마지막 물음에 권선우는 귀찮다는 듯이 권명우를 가리켰다.
“저놈이 다 말해 줄 거다.”
순혈들의 시선이 권명우를 향했다. 권명우는 씩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뭐 당연한 걸 묻는 게냐! 당연히 박살을 내고 왔지!”
권명우가 짊어지고 있던 자루를 내던졌다. 다른 혈족들도 창고에서 가져온 물건들을 내려놓았다.
자루에 담긴 수많은 전리품들을 보고 순혈들은 감탄을 터트렸다.
“으하하핫! 정말 대단한 전투였지! 그 중에서도 특히 대단했던 게 누군지 아느냐? 한울아! 이리 와봐라!”
권명우는 권한울을 내세우며 자랑하듯이 말했다.
“이 젊은 놈이 글쎄 매중제일검과의 일기토에서 승리했지 뭐냐!”
그 순간, 정적이 내려앉았다.
* * *
권한울은 한숨을 내쉬었다.
“작은 할아버님. 정확히 설명하셔야죠. 그게 아니라…….”
“으하하핫! 대단하지 않느냐! 이 젊은 나이에 매중제일검을 쓰러트리다니!”
“아니, 그러니까 정확하게…….”
“그 비겁한 놈이 글쎄 이상한 유물을 사용해서 이놈을 납치했는데. 아주 멍청한 행동이었지! 그 안에서 이놈에게 죽었으니까!”
권한울의 목소리는 들리지도 않는지 권명우는 실컷 떠들어댔다.
자랑이 길어질수록 순혈들의 얼굴에는 경악이 떠올랐다.
권한울이 될 대로 되라는 모든 것을 포기했다.
“이놈아. 시끄럽다.”
그때, 권선우가 말했다.
“아, 형님. 뭡니까.”
“자꾸 이상한 소리를 하고 있으니 그러는 게 아니냐.”
순혈들은 일말의 기대를 담아서 권선우를 쳐다봤다. 하지만 권선우 역시 그들의 궁금증을 해결해 주지 않았다.
“묻고 싶은 게 많을 게다. 하지만 오늘은 주역들이 많이 지쳤으니. 이만 자리를 파하겠다.”
권선우의 목소리에는 거역할 수 없는 힘이 담겨 있었다.
“논공행상(論功行賞)과 이번 일에 대한 경위 설명은 며칠 뒤에 있을 가문 회의에서 진행하도록 하겠다.”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이만 쉬거라.”
모든 혈족들이 뿔뿔이 흩어지기 시작했다. 권한울도 움직이려 했다.
그때였다.
“너는 가지 말고 잠깐 기다려라.”
별안간 권선우가 권한울을 불렀다.
“내일모레 나랑 어딜 좀 같이 가야겠다. 그러니 미리 준비해놓고 있어라.”
“어디를 가려고 그러십니까.”
“델로스 경매장으로 갈 생각이다.”
권선우는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으나 권한울이 받은 충격은 엄청났다.
델로스 경매.
전 세계에서 가장 비싼 유물들이 거래되기로 유명한 경매장이다.
유명인사는 고사하고 세계 랭커조차 입장권을 얻기 힘든 그곳에 권한울을 동행시키겠다니?
“왜 저를 데려가시려는 겁니까?”
권한울의 물음에 권선우가 몸을 돌리며 말했다.
“가방 들어 줄 놈이 필요해서 그렇다.”
“가방이라고요……?”
귀를 의심하게 만드는 이유였다.
“심심하지는 않을 거다. 델로스 경매장에서는 별의별 놈들이 다 모인다. 다른 가문 놈들도 얼마든지 볼 수 있지.”
다른 가문.
그 말에 권한울의 눈이 번쩍 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