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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통이 깡패임-37화 (37/221)

<혈통이 깡패임 37화>

37화 혈통이 동행함 (2)

메이 가문에서 돌아오고 이틀이 지났을 때, 권지석은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뭐? 성황수?”

권지석은 어이없다는 듯이 소리쳤다. 그 정도로 발신자의 요구는 과했다.

“야! 그걸 내가 어떻게 구해! 아니, 애초에 내가 그걸 왜 구해다 줘야 하는데!”

권지석의 항의에 발신자, 권한울은 혀를 차며 말했다.

-갑자기 왜 발뺌을 하십니까.

“뭐, 이 새끼야.”

-내기에서 진 대가로 제가 원하는 것을 하나 들어주기로 했잖습니까.

그 말에 권지석은 뜨끔했다. 끔찍한 기억인데다 시간이 오래 지나서 잊고 있었다.

-설마 들어주기 싫어서 잊은 척한 건 아니겠죠?

“이 새끼가 날 뭐로 보고! 나 권지석이 그런 치졸한 짓을 할 거 같아!”

-그럼 성황수를 구해 주십시오.

그 말에 권지석은 식은땀을 삐질 흘렸다.

아무리 그라고 해도 성황수를 구하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 즉 불가능한 일이었다.

가격도 가격이었으나 매물을 찾는 것조차 일이었다.

그 정도로 성황수는 귀한 물건이었기 때문.

“그거 말고 다른 건 안 되냐?”

-안 되는데요.

“내가 구해 주기 싫어서 이러는 건 아니고. 그건 진짜 구하기 힘든 물건이라 그래…….”

-역시.

역시? 이게 무슨 소리지?

-혹시 몰라서 물어본 건데. 역시 못 구하시는군요.

“뭐야? 이 새끼가 지금 날 놀려? 너 진짜 뒤지고 싶…….”

-그럼 이만 끊습니다.

뚝.

통신이 끊어졌다. 권지석은 핸드폰을 움켜쥔 채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이 새끼가 진짜 죽을려고!”

* * *

권한울은 전화를 끊고 화장실 밖으로 나왔다.

굳이 화장실에서 통화를 한 이유는 이곳에 자신의 저택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저택은커녕 건물조차 아니었다. 비행기, 그것도 흑천의 회장 권선우의 전세기였다.

온갖 편의의 총집합인 곳이니 전화쯤이야.

권한울은 거실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넓은 좌석에 앉아 있는 권선우와 그 옆에서 차를 끓이고 있는 주하연이 보였다.

주하연이 김이 모락모락 나는 찻잔을 권선우의 앞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찻잎을 바꿨는데. 입에 맞으실지 모르겠습니다.”

“네가 끓여 주는 차야 언제나 일품이지. 잘 마시도록 하마.”

권선우의 목소리는 놀라우리만큼 부드러웠다. 주하연은 행복한 얼굴로 웃었다.

둘을 보며 권한울은 복잡한 기분을 느꼈다. 혈연인 자신보다 더 조손 사이 같았기 때문이다.

“권한울 님께서도 한 잔 드시지요.”

주하연이 권한울에게 손짓을 했다. 권한울은 권선우의 맞은편에 앉으며 찻잔을 받았다.

한 모금 마시자 입 안 가득 풍부한 향이 퍼졌다. 권선우의 칭찬은 빈말이 아니었다.

권한울은 차를 마시며 권선우의 눈치를 살폈다. 권선우가 찻잔을 내려놓자 질문을 던졌다.

“정말로 짐꾼이 필요해서 저를 데려가시는 겁니까?”

권한울의 물음에 권선우가 눈만 치켜들었다. 굵고 진한 눈썹 밑으로 눈빛이 날카롭게 번뜩였다.

“불만이냐?”

“아뇨, 불만은 없는데…….”

“그럼 쓸데없는 소리는 하지 말고 잠자코 있어라.”

최근 일로 사이가 조금이나마 가까워졌나 했더니 여전히 까칠한 태도였다.

그때, 주하연이 슬쩍 끼어들었다.

“회장님께서 굳이 누구를 데려가신 적은 처음이군요.”

“오늘은 짐이 많을 것 같아서 말이다.”

“다른 하수인들을 시키면 되지 않습니까.”

권선우가 주하연을 흘겨봤다. 주하연은 모른 척하며 권한울에게 시선을 보냈다.

아하.

그 표정을 보니 깨닫는 바가 있었다.

주하연은 괜히 저런 말을 꺼낸 게 아니다. 무언가를 암시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뭔가 다른 꿍꿍이가 있는 건 확실한데…….’

권선우는 워낙 속마음을 내비치지 않다보니 도통 알 수가 없었다.

사실 진짜 짐꾼 노릇을 한다고 해도 권한울은 손해를 볼 게 없었다.

델로스 경매장은 세계 최대의 경매장이다. 견학만 해도 큰 경험이 될 것이다.

‘물론 진짜 목적은 그게 아니지만.’

델로스 경매장에는 다른 가문의 사람들도 모여든다. 그들과 접촉하면 새로운 혈통을 얻을 수 있을 터.

‘흑천의 정점에 오르기 위해서는 그만한 실력을 갖추고 인정을 받아야 한다.’

흑천의 혈족으로서 인정을 받기 위해서는 세계를 무대로 활동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세 개 이상의 능력치를 S급까지 올려야 한다.

‘혈통 중에는 근력이나 마력 같은 능력치를 급격하게 상승시켜주는 것들도 존재한다고 들었어.’

그런 혈통을 얻게 된다면 목표를 이루는데 필요한 시간을 훨씬 단축시킬 수 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도착했군.”

권선우가 중얼거렸다. 그 말에 권한울은 창밖을 내다봤다.

어둠이 내려앉은 바다 한가운데.

휘황찬란한 불빛이 번쩍이는 섬 하나가 보였다.

* * *

델로스 경매장.

세계 최대, 최고의 경매장으로 유명한 이곳은 언제나 바다 위에서만 열렸다.

하지만 바다 위에서 열린다는 공통점만 있을 뿐, 매번 장소가 달라졌다.

어떨 때는 대서양에서, 혹은 태평양 한가운데에서.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델로스 경매장이 지어진 장소가 유물 위였기 때문이다.

<우물 안 고래>

항해는 물론 심해 잠수까지 가능한 이 유물 덕분에 델로스 경매장은 장소의 구애를 받지 않을 수 있었다.

덕분에 델로스 경매장은 처음 경매가 시작된 이후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도둑을 포함한 외부의 침입을 받지 않을 수 있었다.

전세기가 부드럽게 섬 위에 착륙했다.

밖으로 나온 일행을 맞이한 사람은 연미복을 단정하게 차려 입은 중년 여성이었다.

“흑천의 주인을 뵙습니다.”

중년 여성은 허리를 숙이는 것을 넘어서 무릎까지 꿇었다.

그녀뿐만이 아니라 함께 동행한 수행원들도 똑같이 행동했다.

마치 손님이 아니라 주인을 맞이한 듯한 모습이었다.

‘엄청나군.’

중년 여성이 데리고 온 수행원들은 한 명 한 명이 굉장한 실력자들이었다.

일전에 싸웠던 매향 3번대 대장 메이료우와 엇비슷했다.

“마담, 오랜만에 보오. 그런데 수행원들이 수준이 옛날보다 떨어진 듯하군.”

“그렇게 말씀하시면 섭섭합니다. 이래봬도 경매장을 지키는 정예 헌터들인걸요.”

“본의 아니게 마담의 체면을 깎았군.”

상당히 친한 사이인지 둘은 허울 없이 대화를 나누었다.

“그럼 이쪽으로 모시겠습니다.”

중년 여성은 일행을 섬 내부로 안내했다.

엘리베이터를 내려간 뒤, 긴 복도를 걸어갔다. 끝에는 호텔의 스위트룸처럼 넓은 방이 놓여 있었다.

“그럼 편안한 시간을 보내시기 바랍니다.”

마담은 문을 닫고 밖으로 나갔다. 그녀가 나가자 권한울이 권선우에게 물었다.

“언제 경매장으로 내려갑니까?”

“내려가? 그게 무슨 헛소리냐.”

“경매에 참가해야 하려고 오신 거 아닙니까?”

권선우의 눈빛이 게슴츠레하게 변했다. 이런 촌놈 같으니. 그렇게 말하고 싶은 듯했다.

“하연아, 켜라.”

“예.”

주하연이 스위트룸의 벽으로 향했다.

기이하게도 이쪽 벽에는 어떤 가구도 놓여 있지 않아 황량했다.

주하연이 벽에 붙어 있는 버튼을 조작했다. 그러자 황량하던 벽이 투명해졌다.

“어?”

투명해진 유리창을 통해 바깥 풍경이 비춰졌다.

거대한 공동이 보인다. 원기둥처럼 둥글게 깎인 벽면에 네모난 유리창이 거리를 두고 달라붙어 있었다.

공동의 아래에는 넓은 무대만이 놓여 있었다. 그 위에서 한 남성이 마이크를 든 채 큰 소리로 외치고 있었다.

“자, 그럼 다음 물품은! 미국의 T본 길드에서 어렵사리 포획한 희귀 환수 유니콘입니다!”

무대의 바닥이 열리고 거대한 우리 하나가 올라왔다.

우리의 내부에는 상처투성이 유니콘이 거친 숨을 내뱉고 있었다.

“다들 아시겠지만 유니콘은 강력한 정령력을 보유하고 있는 환수입니다. 털, 혈액, 힘줄, 간, 쓸개, 심장 할 거 없이 모든 부위가 유용하게 쓰이죠.”

남자는 끊임없이 떠들어 댔다.

“그럼 500만 달러부터 경매를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공동에 붙어 있던 수많은 유리창에서 연달아 숫자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510만 달러! 540만 달러! 570만 달러! 570만 달러 나왔습니다! 더 없으십니까? 아, 600만 달러! 600만 달러 나왔습니다!”

권한울은 그제야 깨달았다.

저기 보이는 유리창 하나하나가 모두 경매에 참가한 사람들이라는 것을.

권한울이 생각했던 경매란 넓은 장소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열심히 소리를 지르는 것이었다.

하지만 델로스 경매장은 그런 곳과는 달랐다. 고급스러운 객실에 머무르면서 경매에 참가하는 형식이었다.

“이제 알겠느냐.”

마치 이 촌놈아, 라고 말하는 듯한 목소리.

그래. 잘났수다.

“그럼 좀 쉬어 볼까.”

기껏 왔음에도 권선우는 경매에 참가하지 않았다. 자리에 앉아 가만히 지켜볼 뿐이었다.

권한울도 그 옆에 앉아서 경매장에 나오는 물건들을 구경했다.

생전 처음 보는 몬스터들, 엄청난 능력을 가진 유물들.

견문을 넓힐 수 있는 귀한 경험이었으나 아쉬움이 느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다른 가문을 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이렇게 폐쇄적인 구조여서야 다른 참가자를 만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참가자들의 신원을 숨기기 위한 절차겠지.’

이 경매장에 모인 사람들은 다들 높은 위치에 있거나 내로라하는 실력자들뿐이다.

괜히 감정이 상할지 모르니 취한 조치겠지만.

‘나한테는 아쉬운 일이야.’

이래서야 혈통을 습득할 수 없다.

권한울이 입맛을 다시고 있을 때였다. 무대 위에 새로운 경매 물품이 올라왔다.

“자자, 그럼 다음 물품은…… 이럴 수가! 이 물건이 델로스 경매장에 들어오다니! 다들 이 기회를 놓치면 크게 후회하실 겁니다!”

경매장 직원 한 명이 유리로 만든 호리병을 들고 왔다.

호리병 안에는 황금빛으로 빛나는 액체가 찰랑이고 있었다.

진행자는 호리병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바로 성황수입니다!”

* * *

성황수라는 말에 권한울은 자신도 모르게 몸을 들썩였다.

황금사과 씨앗을 싹틔우기 위해서 필요한 물건을 이렇게 보게 될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다들 아시다시피 성황수에는 봉인을 해제하는 능력이 있죠! 어떤 강력한 봉인도 성황수만 있으면 솨솨솨솩! 귀한 물건이니 1000만 달러부터 시작하겠습니다!”

1000만 달러.

100억 원이 넘어가는 어마어마한 금액이었다. 시작가도 높은데. 경매가 역시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기 시작했다.

“1100만 달러! 1200만 달러! 1250만 달러! 시작부터 이렇게 치열한 경매는 오랜만이군요! 말씀드리는 순간 1300만 달러 나왔습니다!”

당연한 말이지만 저런 돈이 있을 리가 없다.

권한울은 하는 수 없이 경매를 가만히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느냐.”

별안간 권선우가 입을 열었다.

“다들 돈이 많아서 부럽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흑천의 혈족이 겨우 저 정도 금액을 부러워하는 게냐.”

“흑천 그룹은 돈이 많아도 저는 없잖습니까.”

권한울이 바지 주머니를 두드리며 말했다. 그 행동에 권선우가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그것뿐이더냐?”

“세상의 넓음을 느끼고 있습니다.”

델로스 경매장은 참가자의 안전을 위해서 각자의 신원을 숨기고 있다.

개인용 방을 제공하는 것도 그 때문이리라.

하지만 권한울은 느낄 수 있었다. 벽과 유리를 뚫고 뿜어지는 다른 참가자들의 기세를 말이다.

그 기세가 얼마나 강하던지 소용돌이 속에 맨몸으로 내동댕이쳐진 것 같았다.

벽에 가로막혀 있음에도 이 정도인데 실제로 마주하면 어떨지 상상하는 것만으로 몸이 떨려왔다.

“제대로 느끼고 있구나. 이 자리에 있는 이들은 모두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는 실력자들이다. 이 중에는 흑천에서조차 무시할 수 없는 고수도 존재한다.”

세상은 넓다.

흑천은 분명 강대하지만 최강은 아니다.

“흑천 일가는 흑천 그룹의 우두머리다. 우두머리로서 가장 중요한 일이 무엇인지 아느냐?”

“던전을 공략하고 전리품을 가져오는 일입니다.”

권한울의 대답에 권선우는 미소를 지었다.

흑천 그룹이 현재의 위치에 있을 수 있는 이유는 던전에서 가져온 유물들 덕분이다.

가령 석유를 대신할 수 있는 자원이 무한히 샘솟는 유물이 있다고 하자.

그 유물을 소유하는 쪽은 막대한 이득을 취할 수 있게 된다.

흑천의 혈족이 해야 할 일은 경쟁자들을 재치고 그 유물을 가져오는 것이다.

그 유물들을 통해 그룹이 번성하고 유지가 되는 것이다.

“네가 팀을 만들면 저들과 경쟁을 해야 한다. 그걸 감내할 수 있겠느냐.”

이 경매장에 모인 이들은 권한울보다 훨씬 강했다.

만약 일대일로 싸운다고 하면 죽임을 당하는 쪽은 권한울이리라.

과연 저들과 싸우는 날이 오면 권한울은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인가.

“당연하죠.”

권한울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말했다.

“이길 수 있다고?”

“지금은 못 이기죠. 하지만 지금 당장 싸울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권한울에게는 혈통이 있다. 하나만 있어도 강자가 될 수 있는 것들을 복수로 지니고 있다.

그런데 겨우 저런 것들에게 겁을 먹을 수야 없지 않은가.

“하, 건방진 놈이군.”

권선우는 헛웃음을 터트렸다.

“내가 이곳에 찬성이를 데리고 왔을 때, 그 아이는 한참을 고민한 뒤, 할 수 있다고 대답했다.”

권찬성의 성격을 생각하면 아마 면밀하게 검토한 뒤 말을 했으리라.

“지석이를 불러서 물었을 때는 흥분한 채로 대답했지.”

권지석의 성격을 생각하면 깊게 고민하지 않고 대답했을 게 분명했다.

“너처럼 배짱을 부리는 놈은 처음이구나. 명우의 말대로 정말 건방진 놈이야.”

권선우는 끌끌 웃음소리를 흘렸다.

“좋다. 합격이다.”

합격?

‘설마 날 여기 데려온 것도 시험이었나?’

하여간 고약한 늙은이가 아닐 수 없었다. 권한울이 툴툴거릴 때였다.

“보상으로 조촐한 선물이라도 해 줘야겠군.”

권선우가 뜻 모를 말을 했다. 그와 동시에 유리창 너머로 진행자가 외쳤다.

“자자! 이제 경매가가 2000만 달러가 됐습니다! 이제 끝입니까? 더 없으십니까? 그럼 이만 경매를…….”

그때였다. 권선우가 의자의 팔걸이에 있는 버튼을 누른 뒤 말했다.

“3000만 달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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