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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통이 깡패임-40화 (40/221)

<혈통이 깡패임 40화>

40화 약속 지켜 (1)

조명이 어둡게 켜진 방 안.

권찬성은 업무용 책상에 앉아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었다.

모니터 안에는 다음에 그가 토벌해야할 몬스터에 대한 정보가 적혀 있었다.

SS급 몬스터 헤카톤.

곰과 흡사한 모습에 신장만 50미터가 넘고 전신은 나무와 바위 따위로 이루어져 있는 몬스터. 더불어 본체와 똑같은 파괴력을 가진 분신을 끝없이 생성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저번에 권찬성이 토벌한 SSS급 괴수 이클립스만큼은 아니지만 헤카톤 역시 세계적인 재앙으로 분류될 정도로 위험했다.

흑천 그룹에서는 헤카톤의 토벌을 권찬성에게 일임했다. 그만큼 권찬성의 위치가 높다는 증거였다.

“……후.”

이런 막중한 임무를 맡았음에도 권찬성은 좀처럼 자료에 집중하지 못했다. 다른 생각이 그의 머릿속을 꽉 채우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놈을 어떻게 해야 하지.”

권찬성이 나지막이 중얼거렸을 때였다. 갑자기 전화벨 소리가 울렸다.

권찬성은 스마트폰 액정에 떠오른 이름을 확인했다.

권혁.

그의 아버지였다.

“…….”

권찬성은 곧바로 전화를 받지 않았다. 한 번 숨을 고르고, 생각을 정리한 뒤에야 전화를 받았다.

“아버님, 무슨 일이십니까.”

-어허, 우리 아들. 아빠 전화를 왜 이렇게 쌀쌀맞게 받아?

스마트폰 너머로 장난스러운 음색이 들려왔다. 허나 권찬성의 얼굴에 떠오른 경계심은 그대로였다.

-그래, 토벌 준비는 잘 되어 가니?

“예, 이번 달 안에 모든 게 끝날 것 같습니다.”

-역시 내 아들이라니까. 아주 훌륭해.

애정이 뚝뚝 묻어나오는 대답에도 권찬성은 경계심을 놓지 않았다.

다른 사람이면 몰라도 그의 아버지는 결코 특별한 일 없이 전화를 거는 사람이 아니었으니까.

-그런데 왜 권한울은 아직까지 처리 하지 못했지?

권찬성은 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꽉 쥐었다. 경계심을 풀지 않은 보람이 있었다.

-다 들었다. 권한울 그 녀석을 건드렸다가 실패했다면서?

“그건…….”

-심지어 회장님께 들통이 나기까지 했고.

권한울의 데뷔식 당일.

권찬성은 권한울을 죽이기 위해서 던전에 이클립스의 촉수를 집어넣었다.

이클립스의 혈액은 몬스터를 더욱 강하게 변이시킨다. 권한울이 데뷔식을 치르려 했던 플래티넘 등급 던전은 다이아 등급까지 위험도가 증가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권찬성은 권한울이 죽을 거라 확신했다. 하지만 그 확신을 비웃든 권한울은 혼자서 그 던전을 돌파했다.

그것도 너무나 쉽게.

-너에게 권한울을 맡겼을 때, 내가 뭐라고 당부했는지 기억나느냐? 죽이려거든 초반에 죽여야 한다고 말하지 않았니?

권혁의 음색은 무척 부드러웠다. 도무지 질책하는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다. 그렇기에 권찬성은 더욱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겨우 한 번 실패했을 뿐이지만 그래서 어떻게 됐지? 그 이후에 권한울이 어떤 일을 해냈지?

메이 가문과의 친선전에서 홀로 승리했다. 그 뒤에 이어진 전쟁에서 매중제일검을 죽였다.

-지금은 네가 그 녀석보다 월등히 높은 위치에 있지만 그것도 잠시뿐이다. 녀석의 성장속도를 감안하면 그 놈은 순식간에 너와 똑같은 위치에 설 거다.

권혁의 말은 우려가 아니라 확신에 가까웠다.

-출신이 지저분하니 혈족 대다수의 지지는 얻고 있지 못하지만…… 흑천은 힘의 논리에 의해 움직이는 곳이지. 혈족 전체가 머지않아 권한울을 인정하게 될 거다.

권혁은 잠시 말을 멈췄다.

-이제 어떻게 할 생각이냐.

“조만간 꼭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어떻게?

권혁의 목소리가 살짝 높아졌다.

-이제 권한울이라는 이름은 흑천 일가 전체에 퍼졌다. 가문 밖에도 조금씩 번지고 있는 중이지.

유명인은 많은 이목을 끌 수밖에 없다.

그리고 지켜보는 사람이 많으면 손대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게다가 회장님께서는 이미 권한울을 비호하고 계신다.

경쟁은 장려하되 혈전은 금지한다.

그게 권선우의 태도였다. 그는 사람의 가치를 저울질하며 평가하기를 좋아하는 인간이지만 가문이 피로 물들기를 바라지 않는다.

-회장님의 눈을 피해서 권한울을 처리하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그런데 권한울을 어떻게 없애버리겠다는 거지?

권찬성은 함부로 입을 열 수 없었다. 아버지의 말대로 회장의 눈을 피해서 권한울을 어찌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못난 녀석.

그 한 마디에 권찬성은 몸을 떨었다.

-내가 왜 그 녀석을 너에게 일임했는지 아느냐?

“모르겠습니다.”

권찬성은 솔직하게 말했다.

그의 아버지 권혁은 경쟁자를 용납하지 않는 인물이다. 언제나 직접 나서서 경쟁자들을 제거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본인이 해결하지 않고 권찬성에게 맡겼다.

-그 놈이 권천의 자식이기 때문이다.

권천.

권혁의 동생. 권한울의 아버지. 그리고 권찬성에게는 작은 아버지가 되는 인물.

-나는 내 핏줄이 그 놈의 자식보다 못하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구나.

권찬성은 등줄기가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의 아버지는 자신을 실망시키는 이를 결코 용서하지 않았다.

그게 설사 자식이라 해도 말이다.

-마지막 기회를 주마.

권찬성은 자세를 고쳐 잡았다.

-번호를 하나 보내겠다. 그 자와 협력해서 권한울을 처리해라.

“알겠습니다.”

뚝, 통화가 끊어졌다. 잠시 뒤, 문자가 도착했다.

문자에는 전화번호와 그 주인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말도 안 돼.”

이름을 본 순간, 권찬성은 당황해 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그래도 이 여자한테 혈족을…….”

권찬성은 극심한 갈등에 휩싸였다.

흑천의 혈족으로서 쌓아올린 긍지가 그를 말렸다. 이래서는 안 된다고. 이것만큼은 안 된다고.

하지만 동시에 이성이, 공포가, 본능이 경고를 했다.

아버지의 기대를 어겼다가는 죽는 것보다 못한 삶을 살게 될 것이라면서.

“…….”

권찬성은 눈을 질끈 감았다. 이윽고 스마트폰에 번호를 입력했다.

-어머, 정말 전화가 왔네요.

전화기 너머로 젊은 여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권찬성은 애써 차분함을 가장하며 말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카탈리나 블라가.”

귀를 간질거리는 듯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 * *

늦은 오후.

권한울은 책상 위에 올라와 있는 두 가지 물건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황금사과 나무 씨앗과 그것을 싹틔울 성황수.

이로서 드디어 능력치 하나를 S급까지 상승시킬 수 있게 됐다.

기쁜 일이었으나 지금 당장 황금사과를 손에 넣을 수 없었다.

“던전의 흙이 필요하다고요?”

권한울의 물음에 주하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구의 토양으로는 황금사과 씨앗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던전의 토양이 필요합니다.”

권한울도 들어본 적이 있다.

던전 내부의 토양은 지구의 것보다 훨씬 질이 좋으며 특수한 성분이 많다는 이야기를.

그래서 같은 농작물이라도 던전의 흙을 이용한 것이 맛과 영양분이 더 풍부하다던가.

“평범한 던전의 토양으로는 안 됩니다. 황금사과 씨앗의 격에 맞는 질 좋은 토양이 있어야 합니다.”

“듣고 나니 조건이 굉장히 까다롭네요.”

권한울은 짧게 혀를 찼다.

지구에도 땅은 많지만 농사에 적합한 곳은 극히 적다. 이는 던전도 마찬가지였다. 아니, 오히려 더 심하다고 말할 수 있었다.

던전에서는 온갖 지형들이 섞여서 나온다. 황무지, 사막, 심지어 바다까지 나온다.

그 중에서 작물을 기르기에 적합한, 거기에 질까지 좋은 놈을 얻기가 쉽겠는가.

“가문의 창고에 구할 수는 없을까요?”

“물량 자체가 없습니다. 던전의 토양은 워낙 인기 품목이라…….”

“허어.”

권한울은 자신도 모르게 탄식했다.

“다른 곳에서 사올 돈도 없는데 큰일이네요.”

어디까지나 흑천 일가가 부유할 뿐, 권한울은 돈이 없었다.

“제가 구입해 드릴 수도 있습니다만…….”

주하연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권한울은 고개를 저었다.

“하연 씨의 도움을 받아서야 면목이 없죠. 게다가 그랬다가는 회장님이 실망하시지 않겠어요?”

“정확한 판단이십니다.”

사람을 평가하기를 즐기는 회장의 성향을 생각하면 이것도 시험일 확률이 높았다.

하지만 이래서야 방법이 없었다. 정 뾰족한 수가 없으면 나중으로 미뤄도 되지만.

“조금이라도 빨리 황금사과를 얻고 싶은데 말이에요.”

S급과 A급 능력치의 격차는 하늘과 땅 차이.

그 강대한 힘이 눈앞에 있는데. 또 미뤄야 한다는 게 너무 아쉬웠다.

그때, 주하연이 입을 열었다.

“혹시 몰라서 토양을 구할 수 있는 던전을 미리 알아봤습니다.”

“정말요?”

권한울은 반색을 했다. 설마 거기까지 준비해놨을 줄은 몰랐다.

“흑천 그룹에서 진행되고 있는 던전들 중에서 황금사과에 적합한 토양을 구할 수 있는 던전은 딱 한군데가 있었습니다.”

“어떤 던전인데요?”

“골드 클래스의 던전입니다. 내부는 숲 지형이며 머드트롤들이 다수 서식하고 있습니다.”

머드트롤.

숲 깊은 곳에서 서식하며 특이하게도 트롤임에도 무리를 짓고 살아간다.

성정이 조용하며, 흙과 진흙에 파묻혀서 낮잠을 자는 것을 즐기기 때문에 머드트롤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권한울이 아는 건 딱 여기까지였다. 애초에 머드트롤은 희귀한 몬스터라 세간에 알려진 내용이 별로 없었다.

“머드트롤은 흙과 약초를 섭취하며 살아갑니다. 그래서 머드트롤의 체내에는 대량의 토양이 존재하죠.”

“그 흙만 있으면 황금사과를 얻을 수 있다는 거죠?”

“예, 그 중에서도 우두머리에게서 얻을 수 있는 백토(白土)는 고가에 거래가 되는 최상급 재료입니다. 백토를 사용해서 황금사과를 키워낸다면 그 효능이 더 커질지도 모릅니다.”

귀가 솔깃해지는 이야기였다.

안 그래도 황금사과는 능력치 하나를 확정적으로 S급까지 올려주는 영과다.

거기에 효능이 더 커진다면 어떤 일이 생길지 상상하는 것만으로 몸이 떨려왔다.

“다만 딱 한 가지 걱정이 되는 게…….”

“무슨 문제라도 있는 건가요?”

“해당 던전은 현재 권지석 님이 공략을 진행 중에 있습니다.”

권한울은 의문이 들었다. 권지석은 팀 결성을 불허 받지 않았던가.

“메이 가문과의 전쟁에서 활약한 덕분에 회장님께서 팀 창설을 허락하셨습니다. 그래서 팀의 합을 맞추기 위해서 연습용 던전으로 머드트롤 던전을 선택했다더군요.”

권한울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그때 권지석의 활약은 대단했다.

“두 분의 사이가 그리 좋지 못하니 부탁을 하셔도 들어주실지는…….”

“그거라면 걱정하지 마세요.”

권한울이 자신 있게 말했다. 주하연은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어차피 그쪽은 저한테 갚아야할 빚이 있거든요.”

* * *

이튿날, 권한울은 부산으로 향했다.

현재 권지석이 던전 공략을 진행 중인 곳이 부산에 위치해 있기 때문이다.

던전은 인적이 드문 해변가에 생성되어 있었다.

타원형 모양의 던전 주위로 권지석과 그의 팀원들. 그리고 공략을 돕는 흑천 그룹의 직원들이 포진해 있었다.

“뭐야, 너 왜 왔어? 하연이도 같이 왔네?”

아니나 다를까. 권지석은 굉장히 퉁명스러운 태도로 권한울을 맞이했다.

메이 가문에서 같이 싸운 전우였으나 권지석의 태도는 여전했다.

어차피 예상했던 반응이기에 권한울은 신경 쓰지 않고 용건을 말했다.

“머드트롤의 흙을 받아가고 싶어서요.”

“……이 새끼가 미쳤나! 그걸 왜 내가 너한테 줘!”

이것도 예상했던 지라 권한울은 권지석의 분노를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보냈다.

“흙 좀 달라는 게 그렇게 무리한 부탁도 아니잖습니까.”

“이 자식이 어디서 날 속이려고. 네가 노리는 건 그냥 흙이 아니라 우두머리가 내뱉는 백토(白土)잖아!”

권지석은 곧바로 권한울의 의도를 꿰뚫어보고는 노발대발했다.

“백토는 이미 사갈 사람이 정해졌어!”

“벌써 정해졌다고요? 누구한테 팔기로 했는데요.”

“몰라.”

권한울이 인상을 쓰자 권지석이 재빨리 설명을 덧붙였다.

“형님께서 주선해준 구매자야. 다른 사람한테 팔수는 없어.”

“형님이라고요?”

“그래, 애초에 이 던전도 형님께서 내게 공략권을 넘겨주셨지. 아까 말한 구매자한테 백토를 파는 조건으로. 그러니까 너한테 백토를 넘길 일은 없다. 꿈 깨.”

“정말 구매자가 있기는 있는 겁니까?”

“지금 누굴 의심하는 거야! 조만간 직접 방문하겠다고 연락까지 왔어!”

권한울은 잠시 고민에 빠졌다. 이미 구매자가 결정됐다면 건드리지 않는 게 도리였다.

하지만 권지석과 권찬성 둘이 자신에게 한 일을 생각하면 그럴 필요는 없어 보였다.

게다가 권찬성 쪽도 권한울에게 빚이 있지 않았던가.

“자꾸 그렇게 나오시면 곤란한데요.”

“뭐? 곤란?”

“저랑 약속했잖습니까. 언제든지 원하는 것을 하나 들어주겠다고요.”

몇 달 전, 권한울은 흑천 일가의 공방에서 권지석과 내기를 한 적이 있다.

당연하게도 권한울이 승리했고, 패배자인 권지석인 권한울의 부탁을 반드시 들어준다는 약속을 해야만 했다.

“설마 흑천 일가의 순혈씩이나 되시는 분께서 약속을 어기실 생각은 아니겠죠?”

그 말에 권지석의 표정이 와락 일그러졌다.

“이, 이 자식이 나를 혀, 협박해? 이러면 내가 가만히 있을 줄 알아!”

권지석의 표정이 하얗게 질렸다.

고작 구두 약속일 뿐이지만 권한울이 이 일을 떠들고 다니면 권지석의 명예가 실추되는 것은 피할 수 없었다.

“어쩌시겠어요?”

권한울이 은근한 목소리로 물었다. 권지석은 이를 으득 갈았다.

“……그래도 안 돼.”

권한울은 권지석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아, 그렇게 쳐다봐도 안 되는 건 안 돼!”

“형님과의 약속이 그렇게 중요한 모양이죠?”

“아니, 그게 아니라…… 그건 맞는데…… 그러니까…… 사실 다른 문제가 조금…….”

권지석의 얼굴에 망설임이 떠올랐다. 한숨을 몇 번 내쉰 뒤에야 권지석은 고백했다.

“……던전을 공략하지 못하고 있단 말이야.”

실로 충격 진실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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