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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통이 깡패임-41화 (41/221)

<혈통이 깡패임 41화>

41화 약속 지켜 (2)

권한울은 처음에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흑천의 혈족은 전원 상식을 초월한 무력을 보유하고 있다.

골드 등급 던전 따위는 팀이 아니라 잡혈 혈족 혼자서도 클리어할 수 있다.

그런데 뭐가 어떻다고?

“아무리 백토를 넘기기 싫다지만 거짓말을 하면 안 되죠.”

권한울은 권지석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확신했다. 실로 합당한 추론이라 할 수 있었으나.

“…….”

권지석은 화를 내기는커녕 침묵을 했다. 그 반응을 본 순간 권한울은 사실임을 깨달았다.

권한울은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지는 못하겠지만 한심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야! 이게 내 잘못인 줄 알아!”

“던전 내에서 발생하는 모든 사고는 대장의 잘못인데요.”

“아니, 그건 그런데…… 그게 아니라. 나도 사정이 있어!”

“그 사정이 뭐기에 이런 팀을 가지고도 골드 등급 던전 하나를 어쩌지 못하는 겁니까?”

권지석은 한숨을 푹 내쉰 뒤,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 * *

“……이렇게 된 거야.”

설명을 모두 들은 뒤, 권한울은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다.

“머드트롤이 모습을 드러내질 않는다고요?”

권지석은 한숨을 푹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놈들의 습성을 이용해서 몇 번이고 끌어내려고 했는데 소용없더라.”

짐승이라면 저마다 특정한 습성을 가지고 있기 마련이다. 몬스터 역시 예외는 아니다.

“머드트롤이 좋아하는 먹잇감을 미끼로 뿌려도, 숲 곳곳에 불을 질러도 가끔 한두 마리만 나타날 뿐이지 나머지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아.”

기이한 일이었다.

머드트롤이 아무리 느긋한 성향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영역을 침범한 적들은 결코 용서하지 않는다.

그런데 침범을 넘어서 이렇게 난리를 피우고 있는데도 다들 가만히 있다니.

“하연 씨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동면기에 들어간 것 같군요.”

권한울은 탄성을 질렀다. 그걸 놓치고 있었다.

“하필 그 시기의 던전이 걸리다니. 진짜 재수 없게 됐네요.”

“알고 계셨군요.”

“옛날에 딱 한 번 본적이 있어요.”

권지석은 이해를 못한 눈치였다. 결국 목소리를 높이며 화를 냈다.

“동면기가 뭔데? 나도 좀 알고 가자!”

“뭐야, 몰라요? 던전에도 계절이 있다는 건 알고 있죠?”

던전 안에도 시간이 흐르며, 날씨와 계절이 변한다. 이는 던전마다 각기 다르다.

그리고 시간에 따라 몬스터들도 영향을 받는다.

“저 던전의 환경 때문에 모든 머드트롤들이 동면기에 들어간 겁니다.”

동면기의 머드트롤은 숲 곳곳에 숨어서 숙면을 취한다. 이때의 머드트롤을 깨우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봐봐! 내가 잘못한 게 아니라니까! 상황이 이런데 내가 어떻게 해결…….”

“권지석님, 흑천의 혈족이라면 이보다 더한 상황도 해결할 수 있어야 합니다.”

주하연이 단호하게 말했다.

“그, 그건…… 그렇긴 한데…… 어떻게 하연이 네가 나한테 그런 말을 할 수 있어!”

“저와 권지석님은 아무 사이도 아닐뿐더러 저는 진실을 말씀드렸을 뿐입니다.”

단호하다 못해 살기가 느껴질 정도였다. 옆에서 듣고 있던 권한울이 살짝 몸을 떨 정도였다.

“그, 그보다 원인을 알고 있으니 해결방법도 알고 있지? 그치?”

“죄송하지만 동면중인 머드트롤을 깨우는 방법은 아직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그, 그러면……?”

“던전을 갈아엎던가. 아니면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꼼꼼하게 수색을 하시는 수밖에 없죠.”

권지석의 얼굴에 깊은 정말이 내려앉았다.

곤란하기는 권한울도 마찬가지였다. 최대한 빨리 던전의 토양을 얻기 위해서 왔는데. 이래서야 목적을 이룰 수 없다.

무슨 방법이 없을까. 권한울이 고민하고 있을 때였다.

“야.”

별안간 권지석이 권한울을 불렀다.

“무슨 좋은 수라도 떠오른 겁니까?”

“아니, 그건 아니고.”

“그럼 왜 부른 건데요?”

“저번에 나한테 성황수를 구해다달라고 했잖냐.”

“그랬죠.”

“그리고 이번에는 백토를 구하러왔지. 설마 너 황금사과 씨앗을 가지고 있냐?”

딱히 숨기려고 한 것도 아니었기에 권한울은 고개를 끄덕였다.

“예, 메이 가문의 창고에서 얻었습니다.”

“……할아버님께서 널 왜 따로 보냈나 했더니.”

권지석은 섭섭하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성황수는? 저번에 할아버님이 널 델로스 경매장에 데리고 간 이유가 설마?”

“예, 그때 얻었습니다.”

“젠장, 할아버님을 어떻게 구워삶았기에 성황수까지 얻어낸 거야?”

권지석은 부러워 미치겠다는 얼굴이었다. 그럴 만 했다. 능력치를 S급으로 올려주는 영약은 어지간한 돈과 인맥으로도 구할 수 없으니까.

“하나만 더 물어보자.”

“또 뭡니까.”

“델로스 경매장에 갔을 때 말이다 카탈리나 블라가를 직접 봤다면서? 진짜냐?”

권한울은 자신도 모르게 인상을 찌푸렸다. 그리 좋은 만남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만나기야 만났죠.”

“예뻤냐?”

순간, 권한울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그도 그럴 것이 카탈리나 블라가 같은 거물에 대한 질문이 겨우 이딴 것이라는 게 믿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근데 그보다는 해결책부터 먼저 생각해 보시는 게 어떻습니까.”

“궁금해서 그래. 카탈리나 블라가가 얼마나 유명한데. 얼굴에 몸매에 빠지는 게 하나도 없는데다 한 번 보면 아주 뻑 가버린다는 소문이 자자하단 말이야.”

매번 느끼는 점이지만 권지석의 단어 선택은 명문가 자제치고는 심하게 저렴했다.

“뭐 예쁘기는 예뻤죠.”

권지석이 귀를 쫑긋 세웠다. 주하연도 궁금했는지 권한울을 흘겨보고 있었다.

권한울은 황당함을 느꼈다.

다른 사람이면 몰라도 주하연은 경매장에서 직접 카탈리나 블라가를 보지 않았던가.

“얼마나 예뻤는데?”

“말로 설명하기는 좀 힘든데요.”

“그 정도로 예뻤단 말이야?”

그럴 만한 말재주가 없다는 소리인데. 권지석은 자기 멋대로 해석하고 있었다.

“저도 궁금하네요. 권한울 님께서 카탈리나 블라가 님을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옆에서 주하연이 한 마디 거들었다. 이러니 대답을 안할 수가 없었다.

“아, 그러니까…….”

권한울은 자신도 모르게 주하연의 눈치를 살폈다. 기분 탓일까. 말을 잘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때, 구세주가 나타났다. 울타리 입구 쪽이 소란스러워진 것이다.

“무슨 일이 생긴 모양인데요?”

권한울은 냉큼 화제를 돌리며 시선을 돌렸다.

“쿨럭, 쿨럭.”

그 직후, 사레가 걸리고 말았다.

카탈리나 블라가가 이쪽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카탈리나 블라가 혼자만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녀의 등 뒤로 루인 아스파담이 따라오고 있었다.

“저 인간들이 왜 여기에 있는 거야?”

너무 충격적이라 처음에는 헛것을 본 줄 알았다.

하지만 저 존재감, 피부를 찌르는 듯한 불길함이 현실임을 말해줬다.

“리틀드래곤, 이렇게 또 보내요?”

어느새 가까이 다가온 카탈리나 블라가가 생긋 웃으며 말했다. 그 순간, 주변에서 탄성이 타져 나왔다.

“오우, 씨…… 와…… 진짜…….”

권지석은 아예 입이 헤벌쭉 벌어지기까지 했다.

문제는 그 혼자만 그런 게 아니라 이 자리에 있는 사람이라면 남녀를 가리지 않고 똑같은 반응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때였다.

루인 아스파담이 다리를 들어서 힘껏 땅을 밟았다. 둔중한 파동이 사방으로 퍼지며 사람들의 몸을 뒤흔들었다.

소름끼칠 정도로 무서운 진각이었다.

“카탈리나 님을 함부로 쳐다보지 마라.”

루인 아스파담이 살기가 풀풀 담긴 목소리로 말했다. 카탈리나 블라가는 루인 아스파담의 어깨를 찰싹 때렸다.

“루인! 우리는 손님이에요! 손님이 이러면 어떻게 해요!”

“죄송합니다. 카탈리나 님.”

말과 달리 루인 아스파담은 전혀 죄송해하는 기색이 아니었다. 오히려 더욱 험악한 눈초리로 주변 사람들을 노려봤다.

그러다 문득 권한울과 눈이 마주쳤다. 루인 아스파담의 눈에 살기가 일어났다.

권한울로서는 황당할 수밖에 없는 반응이었다.

“여기는 왜 온 겁니까.”

권한울이 카탈리나 블라가를 향해 물었다. 카탈리나 블라가는 섭섭하다는 듯이 말했다.

“어머, 딱딱해라. 모처럼 만났는데. 좀 더 기뻐해 주시면 안 되나요?”

“우리가 그럴 사이는 아닌 걸로 아는데요.”

경매장에서 카탈리나 블라가는 권한울에게 지배의 권능을 발휘했다.

권한울 입장에서는 이 만남을 반가워할 이유가 조금도 없었다.

“너무 무섭게 그러지 마세요. 다 이유가 있어서 온 거니까.”

“이유라고요?”

“옆에 계신 분, 권지석 님이 맞죠?”

권지석은 맹렬히 고개를 끄덕였다. 안 그래도 헤벌쭉 벌어진 입이 더 커졌다.

권한울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이름을 불러준 것만으로 저렇게 좋아하다니.

“형님인 권찬성 님의 소개로 백토를 받아가려고 왔어요.”

그 말에 권한울은 퍼뜩 정신을 차렸다.

권찬성이 주선했다는 구매자가 카탈리나 블라가였단 말인가?

“배, 백토 말인가요?”

권지석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슬쩍 권한울과 주하연을 쳐다봤다.

둘은 권지석의 시선을 무시했다. 둘이 관여할 문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조금 더 기다리셔야 할 것 같습니다…….”

“조금 더요? 골드 등급의 던전이 그렇게 오래 걸린다고요?”

진심으로 이해가 안 된다는 물음에 반 권지석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그게 어떻게 된 거냐면…….”

권지석은 카탈리나 블라가에게 현재 상황에 대해서 말했다.

설명을 들은 카탈리나 블라가는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저런…… 골치 아픈 상황이네요.”

“조금만 더 기다려주시면…….”

“저는 사정이 그리 급하지 않으니까. 너무 조급해하지 않으셔도 돼요.”

“저, 정말이십니까?”

권지석이 얼굴에 화색을 띄었다.

권한울은 한숨을 내쉬었다. 카탈리나 블라가의 한 마디 한 마디에 휘둘리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저절로 한숨이 나왔다.

그때, 루인 아스파담이 슬쩍 권지석을 밀어냈다.

“너무 가깝다. 더 이상 붙지 말도록.”

권지석의 얼굴이 구겨졌다. 이 빌어먹을 놈이 뭐라고 지껄이냐는 표정이었다.

권한울은 권지석에게 속삭였다.

“저 사람이 누군지 알아요?”

“몰라.”

“루인 아스파담이에요.”

“……벽력자의 제자?”

그 말에 권지석의 살기가 바로 가라앉았다. 과연 유명한 인물이 맞기는 맞는 모양이었다.

“참, 아까부터 궁금했는데. 리틀드래곤께서는 권지석 님을 도와드리려고 함께하고 있는 건가요?”

“아닙니다. 저도 백토가 필요해서 이곳으로 왔습니다.”

“이런 우연이 다 있네요! 근데 백토는 우두머리 한 마리한테만 나오지 않나요?”

그게 골치 아팠다.

어지간한 구매자라면 억지를 부렸을 것이다. 어차피 이 일을 해결해야할 사람은 권지석과 권찬성이니까.

하지만 그 인물이 카탈리나 블라가 정도 되는 거물이라면 말이 달라졌다.

“저도 백토가 꼭 필요한데 이를 어떻게 하죠.”

“어디에 사용하려고 그러십니까.”

“피부미용에 굉장히 좋거든요. 그래서 틈날 때마다 구해다놓고 있어요.”

카탈리나 블라가가 잠시 고민하더니 이렇게 말했다.

“이것도 인연인데. 빈손으로 돌려보내면 제 마음이 편치 않을 것 같네요.”

“양보해 주시겠다는 말씀이십니까?”

“그렇다고 또 그냥 주면 재미가 없죠.”

카탈리나 블라가의 얼굴에 장난기가 떠올랐다.

“저랑 내기를 해서 이기면 백토를 넘겨드리죠. 어때요?”

권한울은 의심의 눈초리로 카탈리나 블라가를 쳐다봤다. 갑자기 내기라고?

“어떤 내기입니까?”

“리틀드래곤과 루인. 두 사람이 던전 안에 들어가서 머드트롤을 더 많이 잡는 쪽이 이기는 걸로 하죠. 어때요?”

권한울은 속으로 혀를 찼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권한울에게 불리한 내용이었다.

이전에 주하연에게 루인 아스파담에 대해서 물은 적이 있다.

벽력자의 제자, 세계랭킹에 가까운 남자.

수많은 칭호가 말해 주든 대단한 실력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아마도 민첩 능력치를 S급까지 올렸을 거라고 했던가.

A급 능력치와 S급 능력치의 격차는 거대한 벽에 비유될 정도로 크다. 권한울이 루인 아스파담과 싸워서 이길 확률은 극히 낮았다.

“저는 걸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습니다만.”

“음…… 그럼 이렇게 하죠. 리틀드래곤이 지면 제 저녁식사 초대를 받아주시는 거예요. 어때요?”

초대라니?

뜬금없는 말에 권한울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때, 주하연이 권한울의 손을 움켜잡았다.

“이 내기를 받아들여서는 안 됩니다. 너무 위험합니다.”

“위험하다고요?”

“카탈리나 블라가의 초대에서 무슨 일이 생기는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확실한 건 지금까지 카탈리나 블라가의 초대를 받고 돌아온 사람은 한 명도 없다는 겁니다. 모두 그녀에게 충성을 맹세하거나 종이 되고 말았습니다.”

권한울은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괜히 백토를 내기에 건 게 아니었다.

권한울은 잠시 고민했다.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권한울이 루인 아스파담을 이기는 것은 힘들다.

하지만 이 내기의 내용은 머드트롤을 누가 더 많이 잡느냐다.

그렇다면 권한울의 대답은 정해져 있다.

“좋습니다.”

권한울의 대답에 주하연의 눈동자가 커졌다. 반면 카탈리나 블라가는 어린애처럼 좋아했다.

“역시 화끈하네요! 그럼 루인은 어떻게 할래요?”

카탈리나 블라가가 루인 아스파담을 쳐다보며 물었다.

얼굴에 미소가 가득한 카탈리나 블라가와 달리 루인 아스파담의 얼굴은 분노로 일그러져 있었다.

“카탈리나 님. 이럴 목적으로 절 데려온 겁니까?”

“루인은 이 상황이 마음에 안 드는 모양이네요.”

“예, 마음에 안 들고말고요. 저 남자는 흑천의 혈족이긴 하지만 아직 이름도 제대로 알리지 못한 풋내기에 불과합니다!”

한 마디로 격이 뒤떨어진다는 소리다.

권한울은 살짝 빈정상했다.

“어머, 그럼 루인은 할 생각이 없나보네요.”

“아뇨, 하겠습니다. 저는 카탈리나 님의 권속입니다. 당신께서 원하시면 따를 수밖에요.”

루인 아스파담이 권한울을 돌아봤다. 두 눈동자가 살기로 가득했다.

“기다려 주십시오. 당신께서 선택한 권속이 어떤 남자인지. 당신께 다시 한 번 더 증명해 보이겠습니다.”

루인 아스파담마저 동의했다. 이로서 내기가 성립되었다.

“아, 그렇지. 권지석 님. 괜찮죠?”

“당연히 괜찮죠! 마음대로 하셔도 됩니다!”

“어머, 시원시원하셔라.”

권지석은 입을 헤 벌리며 좋아했다.

“그럼 던전으로 가볼까요?”

* * *

“규칙을 다시 말씀드릴 게요.”

던전의 입구.

카탈리나 블라가가 권한울과 루인 아스파담에게 설명했다.

“던전 곳곳에 숨어 있는 머드트롤을 많이 잡는 사람이 이기는 거예요. 우두머리가 잡히는 순간, 내기는 끝! 참, 우두머리는 세 마리 분으로 계산돼요.”

카탈리나 블라가가 이마를 톡톡 두드렸다.

“머드트롤의 이마에는 작은 뿔이 자라요. 사냥 증거로 그 뿔을 가져오세요. 어때요, 간단하죠?”

권한울과 루인은 서로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처음이니까 4시간 후에 돌아오는 걸로 하죠. 그럼 출발!”

권한울은 던전 게이트 안으로 들어갔다.

입구를 통과하자 거대한 숲이 눈에 들어왔다.

열 사람이 둘러싸도 모자랄 만큼 밑동이 굵은 나무들이 하늘 높이 뻗어 있었다. 얼마나 높게 자랐던지 고개를 최대한 뒤로 꺾어야 했다.

땅으로 시선을 내리자 밖으로 튀어나온 나무의 뿌리가 땅을 한가득 뒤덮고 있었다. 비어 있는 땅에는 잡초가 허리까지 올만큼 길게 자라나 있었다.

나무도, 잡초도, 모든 것이 크고 길쭉하다. 권한울은 자신의 소인이 된 것 같은 착각에 빠졌다.

“풋내기.”

옆을 돌아보자 루인 아스파담이 자신을 노려보고 있었다.

“마음 같아서는 압도적인 실력 차로 찍어 누르고 싶지만 너 따위를 상대로 전력을 다하는 건 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다.”

“뭔 소리입니까.”

“한 가지 조건을 걸어주마. 나는 스킬을 사용하지 않겠다.”

권한울은 불쾌감을 넘어서 분노를 느꼈다.

아무리 S급 민첩을 가지고 있다지만 스킬도 없이 대결하겠다고?

하지만 이내 권한울은 자신의 생각이 얼마나 짧았는지 깨달았다.

“그럼 먼저 움직이도록 하겠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루인 아스파담의 몸이 사라졌다.

권한울은 깜짝 놀라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움직이는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어디로 갔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감각을 아무리 확장시켜도 루인 아스파담의 기척을 잡아낼 수 없었다.

그때, 한참 떨어진 곳에서 굉음이 터져 나왔다. 동시에 머드트롤의 울음소리가 울렸다.

“……장난 아닌데?”

A급과 S급의 격차가 크다는 말만 들었지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역시 그냥 붙어서는 이길 수 없군.”

하지만 권한울도 무작정 내기를 받아들인 게 아니다.

이길 자신이 있었기에 받아들인 것이다.

<‘권속혈(眷屬血)’이 열기를 띕니다.> 권한울의 눈동자가 붉게 물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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