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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통이 깡패임-43화 (43/221)

<혈통이 깡패임 43화>

43화 질투 (1)

뽕!

시원한 소리와 함께 포션의 병마개가 날아갔다. 권한울은 유리병에 담긴 하늘색 액체를 거침없이 들이켰다.

“크.”

청량함이 온몸으로 번졌다. 머릿속에 남아 있던 두통 싹 사라졌다.

주하연은 포션을 하나 더 내밀며 걱정스럽게 물었다.

“좀 괜찮으세요?”

“예, 이제 좀 살 것 같네요.”

권한울은 바닥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정신력이 완전히 회복된 덕분에 더 이상 힘들지 않았다.

“대체 안에서 무슨 일이 있으셨던 거예요?”

“가뜩이나 좋지도 않은 머리를 가지고 머드트롤을 잡겠다고 애를 썼더니 탈이 난 것 같네요.”

장난스럽게 말했으나 주하연의 표정은 조금도 풀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싸늘하게 변하고 말았다.

“권한울 님.”

“옙.”

“제게 뭔가를 숨기시는 건 상관없습니다. 하지만 위험한 행동만큼은 하지 말아주세요.”

“명심할 게요.”

주하연의 기분을 더 상하게 할까 싶어 권한울을 냉큼 대답했다.

그때, 던전 게이트가 술렁이더니 권지석이 튀어나왔다.

권지석은 다른 곳에는 시선도 주지 않고 곧장 권한울에게 달려왔다.

“야! 너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그것도 모자라서 권한울의 어깨를 움켜잡고 마구 흔들기까지 했다.

“던전에 들어 가봤더니 머드트롤들이 싹 죽어 있더라! 어떻게 한 거야? 빨리 말해!”

주하연도 놀라서 권한울을 돌아봤다. 두 사람의 열렬한 시선을 받으며 권한울은 천연덕스럽게 말했다.

“지금 설마 그런 귀한 정보를 그냥 알려달라는 건 아니겠죠?”

권지석의 몸이 움찔 떨렸다. 권한울의 말대로 공략 비법을 묻는 것은 예의에 어긋나는 짓이었다.

“야, 우리가 남이냐? 같은 가문 사람이잖아! 그 정도야 알려줄 수 있는 거 아니야?”

“가족이라 해도 말하지 못할 비밀 한두 개쯤은 있지 않습니까.”

그 말에 권지석은 더욱 애가 타는 듯 했다. 하지만 권한울은 말해 줄 생각이 없었다.

권속혈의 존재를 숨기기 위해서 뻔뻔하게 나가기로 이미 결정을 내렸기 때문이다.

“야야, 그럼 힌트라도 좀…….”

권지석의 부탁은 더 이상 이어지지 못했다. 다시 던전 게이트가 열리더니 이번에는 카탈리나 블라가와 루인 아스파담이 밖으로 나온 것이다.

“리틀드래곤!”

밖으로 나오자마자 카탈리나 블라가는 만면에 미소를 띤 채 달려왔다.

“정말 대단하네요! 대체 어떻게 그 많은 머드트롤들을 찾아낸 거죠?”

권한울은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예상했던 것과 전혀 다른 반응이었기 때문이다.

“카탈리나 블라가 님. 실례되는 말씀을 하나 드리자면 이대로 가면 내기에서는 제가 이기게 됩니다만.”

“리틀드래곤의 실력이 더 뛰어나니 이기는 건 당연하죠.”

카탈리나 블라가는 당연하지 않냐는 반응이었다. 권한울은 의미전달이 제대로 된 게 맞는지 진지하게 고민했다.

“백토는 언제고 다시 구할 수 있어요. 하지만 리틀드래곤 같은 재능은 두 번 다시 만날 수 없죠. 하물며…….”

카탈리나 블라가가 루인 아스파담을 쳐다보며 말했다.

“A급 능력치로 S급 능력치를 이길 수 있는 재능이라면 말할 것도 없고요.”

루인 아스파담의 표정이 더더욱 일그러졌다.

“카탈리나 님 저는…….”

“루인, 잠깐만요. 아직 리틀드래곤과 이야기가 끝나지 않았거든요.”

카탈리나 블라가는 매정하다 싶을 정도로 루인 아스파담의 말을 딱 끊어냈다.

루인 아스파담은 말없이 주먹을 움켜쥐었다.

“무슨 수를 쓴 거죠? 머드트롤에게 먹히는 특별한 요령이라도 있나요?”

“비밀입니다.”

“매정하시네요.”

카탈리나 블라가는 슬프다는 표정을 지었다. 옆에 있던 권지석은 가슴을 꽉 움켜잡았다.

권한울은 쓸데없는 짓하지 말라는 듯이 권지석을 노려봤다.

“뭐, 됐어요. 말해 주지 않아도 짐작이 가니까요.”

짐작?

권한울이 의아해할 때였다. 별안간 카탈리나 블라가가 손뼉을 쳤다.

“그럼 정리를 해볼까요. 리틀드래곤이 죽인 머드트롤의 숫자가 루인이 죽인 머트드롤의 숫자보다 두 배 이상 많았어요!”

누가 봐도 권한울의 압승이었다.

하지만 아직 내기는 끝나지 않았다.

“근데 양쪽 아직 우두머리를 잡지 못했더라고요. 그러니 내기는 내일 계속 하기로 하죠. 어떠세요?”

권한울은 카탈리나 블라가의 말에 딱히 불만을 가지지 않았다.

처음에 합의한 내용이 저런데 불만을 가질 이유가 있겠는가.

다만, 이대로 조용히 넘어가기에는 루인 아스파담에게 받은 모독이 좀 많았다.

“저는 상관없습니다만.”

권한울은 루인 아스파담을 똑바로 쳐다봤다.

“저분께서 내일 쓸데없는 고생을 하실 게 좀 걱정이 되는군요.”

루인 아스파담이 으득 이를 갈았다.

“풋내기. 자만하지 마라. 길고 짧은 건 대봐야 아는 법이다.”

“대봐도 별 거 없을 거 같아서 하는 말인데요.”

“뭐라?”

루인 아스파담이 발끈해서 앞으로 나섰다. 그때, 카탈리나 블라가가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루인, 더 이상 추한 행동은 하지 마세요.”

“……알겠습니다.”

“리틀드래곤.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는 알겠어요. 하지만 이미 약속을 했잖아요?”

권한울은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저희는 이만 돌아가 볼 게요. 내일 오전 10시에 다시 모이기로 하죠. 아, 그리고…….”

권한울이 왜 그러냐는 듯이 카탈리나 블라가를 쳐다봤다.

그 순간, 카탈리나 블라가가 눈매가 살짝 올라갔다. 눈동자가 붉게 물들었다.

대비하려고 했을 때는 이미 늦었다.

강렬한 현기증이 권한울을 덮쳤다. 바닥과 천장이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저녁식사라도 같이 하시는 게 어때요?”

카탈리나 블라가의 말이 머릿속을 헤집었다. 이성이 마비되고 온몸이 녹아내리는 듯 했다. 마치 달콤한 꿀 속에 빠진 것 같았다.

카탈리나 블라가의 권속혈에 노출된 것은 이번이 두 번째.

이미 한 번 경험해봤지만 여전히 무시무시한 지배력이었다.

하지만.

<진(眞) 권속혈이 하위 권능을 무시합니다.> 권한울의 정신은 곧바로 원래대로 되돌아왔다.

“싫습니다.”

권한울이 거절하자 카탈리나 블라가는 잠시 멍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이내 조용히 미소를 지으며 작게 말했다.

“역시 제 예상이 맞는 거 같네요.”

“예상이라고요?”

“아무것도 아니에요. 어쨌든 싫다고 하시니 어쩔 수 없네요.”

카탈리나 블라가는 순순히 몸을 돌렸다. 걸음을 옮기며 권한울에게 손을 흔들었다.

“그럼 좀 이따 뵐 게요.”

좀 이따?

권한울은 의문을 떠올렸다. 그러나 물어보기도 전에 카탈리나 블라가는 루인 아스파담과 함께 사라졌다.

“아아…….”

권지석이 아쉽다는 듯이 탄식을 했다. 권한울은 핀잔을 주려다 꾹 참았다.

권지석 뿐만이 아니라 다른 혈족과 직원들도 카탈리나의 뒷모습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후우.”

반면 권한울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가 사라지고 나서야 마음을 놓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과연 카탈리나 블라가는 거물 중의 거물이다. 권속혈의 여부와는 별개로 마주보고 있는 것만으로 피로감이 막심했다.

“하연 씨, 잠잘 곳은 잡아뒀나요?”

“호텔의 로열스위트룸을 잡아뒀습니다.”

“역시 철저하시네요. 그럼 이만 돌아가죠.”

권한울은 자리에서 일어나 엉덩이를 툭툭 털었다. 주하연도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둘을 보고 있던 권지석이 따지듯이 물었다.

“야야, 너 설마 날 내버려두고 너 혼자서 편히 쉬겠다는 건 아니지?”

“그쪽이야 던전의 책임자 아닙니까.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니 대기하고 계셔야죠.”

“그, 그건 그렇지만 어쨌든 너도 던전을 공략하고 있으니까…….”

“그럼 전 이만 갑니다.”

권한울은 권지석의 말을 가볍게 무시하며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대기시켜 놓았던 자동차에 올라탔다.

좌석에 앉자말자 피로감이 확 몰려 왔다. 권속혈을 과용한데다 예정에 없었던 카탈리나 블라가까지 만났기에 피로감이 장난이 아니었다.

‘대체 카탈리나 블라가의 속셈은 뭐지?’

본인은 우연이라고 주장하고 있기는 하지만 진짜 그럴 리가 없다.

분명히 권한울을 조사한 뒤, 찾아온 게 분명했다.

‘날 데려가려는 건가?’

하지만 그런 것치고는 태도가 미적지근했다. 인간수집가라는 별명에 어울리지 않게.

‘더 수상한 건 루인 아스파담을 대하는 태도인데.’

자꾸 자신과 루인 아스파담을 비교하는 것도 모자라서 은연중에 루인 아스파담의 자존심을 깎아 내리고 있다.

‘대체 뭘까.’

그때,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 권한울은 창밖을 내다보며 다짐했다.

‘일단 배부터 채우고 좀 쉬자.’

지만 그 다짐이 이루어질 일은 없었다.

식사를 위해서 호텔의 레스토랑으로 들어간 순간, 그리 달갑지 않은 얼굴을 또 마주쳤기 때문이다.

“어머, 여기서 또 만나네요.”

카탈리나 블라가가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고 있었다.

* * *

“…….”

너무 어이가 없었던 나머지 권한울은 화조차 나지 않았다.

그에 비해서 카탈리나 블라가는 여전히 밝은 얼굴로 손짓했다.

“리틀드래곤이랑 둘이서만 시간을 싶어서 오늘 하루는 제가 식당을 전부 빌렸어요.”

자리에 앉으라는 듯 카탈리나 블라가가 자신의 맞은 편에 있는 의자를 가리켰다.

권한울은 한동안 가만히 서 있다가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어머, 이번에는 제 부탁을 순순히 들어주시네요.”

“생각 같아서는 그냥 나가고 싶지만.”

권한울이 그녀를 노려보며 말을 이어나갔다.

“이렇게까지 집요하게 달라붙는 이유가 궁금해져서요.”

“여자가 남자를 따라다니는 이유가 뭐겠어요? 당연히 관심이 있어서 그런 게 아니겠어요?”

“하.”

권한울이 어이가 없다는 듯이 웃었다.

인간수집가로 유명한 카탈리나 블라가의 관심이라니. 차라리 저주를 하라고 소리치고 싶었다.

“나는 그쪽한테 전혀 관심이 없습니다.”

권한울이 딱 잘라 말했다. 그러자 루인 아스파담의 눈동자에서 살기가 뿜어져 나왔다.

“그래요?”

“예, 그러니 시간 낭비는 그만하시죠. 계속 이렇게 행동하면 블라가 가문한테도 좋을 게 없을 텐데요.”

그 경고에 카탈리나 블라가의 뒤에 서 있던 루인 아스파담이 발끈했다.

하지만 그가 움직이기 전에 카탈리나 블라가가 손을 들어서 저지했다.

“남녀가 서로 좋아서 만난다는데. 가문에 문제가 생길 일이 있나요.”

“그건 우리 둘이 평범한 남녀였을 때 하는 말이죠. 그리고 저는 그쪽한테 관심이 없다고 방금 말씀드렸을 텐데요.”

“두 번이나 그렇게 단호하게 말씀하시면 아무리 저라도 상처받아요.”

카탈리나 블라가가 손수건으로 눈가를 콕콕 찍었다.

연기라는 것을 알면서도 권한울은 마음속에 술렁거리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아주 잠깐일 뿐이었다.

“남녀 간의 정이야 천천히 쌓아도 되는 거죠. 서로 이야기도 나눠보고, 식사도 같이 하고. 아니면 밤 시간을 같이 보내도 좋고.”

탁자 위에 올려놓은 손에 묘한 느낌이 들었다.

어느새 카탈리나 블라가가 손가락으로 권한울의 손등을 살살 긁고 있었다.

권한울은 손을 빼며 날카로운 어조로 말했다.

“용건이나 말씀하시죠.”

“저와 손잡으시는 게 어때요?”

권한울은 이건 또 무슨 수작인가 싶어서 그녀를 쳐다봤다. 카탈리나 블라가가 눈웃음을 치며 말했다.

“흑천 일가 내에서 입지를 넓힐 수 있도록 제가 당신의 스폰서가 되어 드릴 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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