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통이 깡패임 45화>
45화 질투 (3)
경악스러운 일이었다.
카탈리나 블라가가 어떤 식으로든 개입할 거라 생각했으나 설마 이렇게 우악스럽게 난입할 줄은 몰랐던 것이다.
‘움직일 수 없다.’
아무리 힘을 주어도 주먹은 벽에 고정된 것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카탈리나 님! 손을 놔주십시오!”
갑자기 루인 아스파담의 고함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에 권한울은 상념에서 깨어났다.
“저 건방진 놈은 반드시 제 손으로…….”
“루인, 엎드리세요.”
단 한 마디.
그 한 마디에 루인 아스파담은 바로 땅에 이마를 박았다.
충성심 때문이 아니었다. 권속혈의 권능이 발현된 것이다.
“리틀드래곤. 미안하해요. 부디 이해해 주길 바래요. 루인이 저를 너무 아끼다보니 이런 일이 생겼네요.”
카탈리나 블라가가 미소를 지으며 권한울의 주먹을 놓았다. 그제야 권한울은 자신의 손을 움직일 수 있었다.
“부하 관리를 잘하셔야겠습니다.”
“부하라뇨. 루인과 저는 진심을 나누는 파트너인 걸요.”
권한울은 대답하는 대신 루인 아스파담을 힐끔 쳐다봤다.
말 한 마디에 머리를 처박는 저 모습의 어디가 파트너란 말인가.
“그래도 이번 일은 제가 잘 타이를 게요. 그러니 저기 흑천의 마녀한테 마력을 거두라고 말해 주지 않을래요?”
그제야 권한울은 눈치 챘다. 식당 전체에 주하연이 마력이 휘몰아치고 있었다.
공기가 변했다. 그 수준이 아니었다. 꼭 물속에 잠겨 있는 것 같았다. 그 정도로 주하연이 내뿜고 있는 마력은 농밀했다.
잊고 있었다.
주하연은 회장인 권선우의 최측근이자 함께 활동했던 헌터다.
그녀의 기세는 카탈리나 블라가에 비견될 정도였다.
“하연 씨.”
“저 여자가 물러날 때까지는 안 됩니다.”
“그렇다고 하네요.”
권한울이 퉁명스럽게 말했다. 사실 그도 이 일을 좋게 넘어가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카탈리나 블라가는 말 한 마디로 루인 아스파담을 엎드리게 했다.
그 말은 이 사단이 나기 전에 그를 제지할 수 있음에도 가만히 내버려뒀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단단히 미움을 사버렸네요. 음, 어떻게 해야 할까.”
카탈리나 블라가가 왼손으로 오른쪽 팔뚝을 움켜잡았다.
우둑.
짧지만 인상적인 소리와 함께 카탈리나 블라가의 팔이 어깨부터 뜯겨나갔다.
단면에서 피가 샘솟았다. 떨어진 선혈이 바닥을 물들였다.
“이러면 좀 용서를 구할 수 있을까요?”
카탈리나 블라가는 아무렇지도 않게 웃으며 말했다. 되레 권한울의 얼굴이 딱딱하게 변했다.
“아, 이거라면 걱정하지 마세요. 이렇게 힘을 살짝 주면…….”
말하기가 무섭게 뜯겨나간 부위가 재생이 되기 시작했다.
핏줄과 근육이 저절로 증식을 시작하고, 뼈가 다시 자라나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오른팔이 팔뚝까지 만들어졌다.
‘……저게 뭐지?’
사라진 신체를 재생시키는 일은 던전의 유물을 이용해도 쉽지 않은 일이다.
하물며 저렇게 빠른 속도로 재생시킬 수 있는 더더욱 어렵다.
‘그러고 보니 권속혈의 권능 중에 불사력이라는 게 있다고 했는데.’
권속혈의 지배력은 타인에게만 미치지 않는다. 본인의 육신까지 완벽하게 지배하고 명령을 내릴 수 있게 된다.
저 엄청난 재생력 역시 본인의 육신을 지배함으로서 얻어지는 권능 중 하나였다.
“참, 이러면 벌을 받는 의미가 없네요.”
우둑.
카탈리나 블라가는 한 번 더 팔을 뜯어냈다.
자신의 팔을 두 번이나 뜯어내는 여자라니 실로 괴이한 광경이었다.
“앞으로 일주일은 한쪽 팔로 살아갈 게요. 이 정도면 제 성의가 전해졌을까요?”
“……충분한 것 같습니다.”
“자비롭기도 하셔라.”
카탈리나 블라가는 환한 얼굴로 웃었다. 뭉툭해진 어깨에서 피를 철철 흘리는 채로 말이다.
“이만 가보겠습니다.”
“그럼 오전에 봐요.”
내일 오전에 볼 일이라면 내기밖에 없다.
이렇게 험악한 일을 겪고도 내기를 계속하려고 하다니.
카탈리나 블라가의 태도에 어처구니가 없는 한편, 루인 아스파담과의 대결을 결착을 지을 수 있는 기회라는 생각이 동시에 들었다.
“예, 내일 뵙도록 하겠습니다.”
대답을 끝낸 뒤, 권한울은 곧바로 레스토랑을 나갔다.
스위트룸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주하연에게 말했다.
“대체 무슨 속셈일까요?”
갑자기 찾아온 것은 둘째 치고 스폰서 제의라니.
“본인은 이 모든 게 우연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상식적으로 그럴 리가 없죠.”
모든 것은 카탈리나 블라가가 의도한 게 분명했다.
다만, 이해할 수 없는 게 있었다.
“이렇게까지 해서 뭘 얻고 싶은 걸까요.”
“카탈리나 블라가가 속을 알 수 없는 여자기는 하지만 목적 자체는 단순할 겁니다. 권한울 님을 복종시키려는 것이겠죠.”
“그거 때문에 이 난리를 피운다고요?”
“이해를 못하실 수도 있지만 카탈리나 블라가는 지금까지 수도 없이 이번과 비슷한 일을 저질러 왔습니다.”
별명도 인간수집가니 오죽할까.
“게다가 권한울 님께서는 카탈리나 블라가의 지배를 이겨내셨습니다. 카탈리나 블라가가 관심을 가지는 것은 당연하겠죠.”
기억을 더듬어보면 카탈리나 블라가는 몇 번이고 계속 권속혈의 권능을 사용해 왔다.
그 이유가 정말로 지배가 통하지 않는지 확인해 보기 위해서라면?
“흑천 일가가 있는데도 절 지배하려 한다고요?”
“그게 카탈리나 블라가 입니다. 골치 아픈 건 대담한 만큼 뒤처리도 확실하다는 거죠.”
“뒤처리라뇨?”
“카탈리나 블라가가 대가문의 인재를 건드린 적이 몇 번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중에서 죄를 물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죠.”
심증은 있지만 물증은 없었다, 라고 주하연이 덧붙였다.
“저도 조심해야겠네요. 루인 아스파담 같은 꼴이 된다고 생각하면 끔찍하잖아요.”
“정말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무슨 말씀이세요?”
“세상에는 카탈리나 블라가라면 사육을 당해도 좋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그만큼 여인으로서의 매력도 대단하고, 엄청난 권력을 쥐고 있으니까요.”
“에이, 그런 사람이 세상에 어디…….”
문득 권지석이 떠올랐다. 권한울은 은근슬쩍 말을 바꿨다.
“……있기야 하겠지만 저는 아니에요.”
“정말요?”
“제 취향이 아니거든요.”
권한울은 어깨를 으쓱하며 덧붙였다.
“저는 동갑이 좋아요. 그렇게 나이가 많은 여자는 좀…….”
주하연은 웃음을 터트렸다.
“아, 근데 레스토랑을 엉망으로 만들고 말았네요.”
“걱 정마세요. 이 호텔은 흑천 그룹의 소유이니까요. 본사에서 해결해 줄 겁니다.”
“돈이 많은 게 이럴 때 좋네요.”
권한울은 키득거리며 웃었다.
“아, 권한울 님.”
“왜 그러세요?”
“저는 권한울 님과 나이가 같습니다.”
의외의 고백에 권한울은 놀라고 말았다.
* * *
난장판이 된 레스토랑.
“흠흠.”
카탈리나 블라가는 의자에 앉은 채, 발꿈치로 땅을 콕콕 찍었다.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는 게 퍽 기분이 좋아보였다.
그녀의 옆에는 루인 아스파담이 굴욕과 분노로 점철된 얼굴로 무릎을 꿇고 있었다.
“루인, 어떻게 생각하세요?”
“죄송합니다. 오늘은 실패했지만 다음번에는 반드시 그 놈을 죽여…….”
“그걸 말하는 게 아니에요.”
카탈리나 블라가는 흥에 겨운 목소리로 말했다.
“이번에도 제 유혹을 견뎌냈어요. 그것도 두 번 연속으로.”
“그건 그 놈의 눈이 옹이구멍이라서 그렇습니다! 보석을 알아볼 줄 모르는 미련한 놈이라…….”
“델로스 경매장에서는 권선우가 무슨 수를 쓴 줄 알았어요. 혼자 있어도 안 통하네요?”
카탈리나 블라가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계속 이어나갔다.
충복의 말이 들리지 않는 것인지. 아니면 무시를 하는 것인지.
“특히 마지막은 좀 충격이었어요. 내가 ‘여자’로서 유혹을 했는데. 대놓고 달라붙었는데도 그렇게 쉽게 거절하다니.”
권속혈의 지배력은 여러 요소의 영향을 받는다.
폭력으로 굴복시킬 수도 있고, 협상을 통해 지배할 수도 있다. 혹은 지금처럼 성적으로 유혹할 수도 있다.
카탈리나 블라가가 가장 자신 있는 방법이 바로 그것이었다.
수많은 헌터들이 알면서, 철저히 대비를 하고도, 그녀의 유혹에 넘어가고 말았다.
“마치 견디는 게 아니라 소용이 없는 것처럼 느껴졌는데…… 대체 어떤 비밀이 있는 걸까요? 혹시 혈통과 기프트를 동시에 타고난 걸까요?”
극히 드물지만 혈통과 기프트를 동시에 가지고 태어나는 경우가 존재한다.
천운(天運) 정도로는 불가능하다. 던전이 개방된 이후, 인류의 역사 동안 그런 케이스는 다섯 손가락 안에 꼽을 수 있을 정도로 드물었다.
“만약 그렇다면 정신계 기프트일 텐데…… 그럼 머드트롤을 잡을 때도 기프트를 이용한 걸까요? 모르겠네요. 뭐 하나 확신을 가질 수 있는 게 없어요.”
카탈리나 블라가가 혓바닥으로 입술을 적셨다.
“탐나네요. 이렇게 탐이 나는 보물은 처음이에요. 어떻게 하죠? 가지고 싶어서 미칠 거 같은데.”
루인 아스파담은 자신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카탈리나 블라가의 얼굴에서 탐욕을 넘어서 광기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볼일은 다 끝났어요. 이제 가문으로 돌아가죠.”
“……예?”
카탈리나 블라가의 말에 루인 아스파담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아직 그녀는 자신의 목적을 이루지 못했으니 말이다.
“아직 리틀드래곤을…… 손에 넣지 못하셨잖습니까.”
“에이, 루인도 참.”
카탈리나 블라가는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는 듯 손사래를 쳤다.
“여기는 한국이에요. 흑천 그룹의 영역에서 어떻게 리틀드래곤을 훔쳐낼 수 있겠어요?”
“그래서 권찬성과 손을 잡으신 거 아닙니까? 권찬성도 리틀드래곤을 납치하는 대가로 협력을…….”
“아, 그 남자요.”
카탈리나 블라가가 시시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인재에게 관심이 많은 카탈리나 블라가지만 유독 권찬성에게 만큼은 조금도 흥미를 가지지 않았다.
“권혁이라면 몰라도 권찬성 같은 핏덩이를 덜컥 믿을 수는 없죠. 게다가 그 남자는 리틀드래곤이 어떻게 내 유혹을 견뎌낼 수 있는지. 그 비밀에 대해서도 밝히지 않았잖아요?”
카탈리나 블라가의 행동 목적은 단순하다. 하지만 그녀의 심계까지 단순하지는 않았다.
“이번에는 딱 이 정도가 좋아요. 얼마나 빛나는 사람인지 다시 확인했고, 무엇보다…… 얼굴을 봤잖아요?”
루인 아스파담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카탈리나 블라가의 뺨이 살짝 상기된 것이다.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카탈리나 블라가가 침대 위가 아니라 다른 곳에서, 고작 이런 이유로 얼굴을 붉힌단 말인가.
루인 아스파담은 몸을 떨었다. 지금까지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어떤 감정이 온몸을 지배했다.
“내일 아침 일찍…… 아, 맞다. 아직 내기가 남아 있었지.”
이제야 떠올렸다는 듯 카탈리나 블라가가 고개를 들었다.
“리틀드래곤이 잡은 머드트롤의 숫자가 두 배 이상 많았죠? 만약 상황이 반대였으면 어차피 루인이 이긴 게임이라고 우기고 일찍 끝냈을 수 있었을 텐데.”
카탈리나 블라가가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하는 수 없이 조금 더 머물러야겠네요. 아, 근데 또 해봤자 어차피 루인이 지는 거 아닌가요?”
“……아닙니다. 내일은 반드시 상황을 뒤집겠습니다.”
“정말요? 자신 있어요?”
루인 아스파담은 입술을 깨물며 외쳤다.
“반드시! 이기도록 하겠습니다!”
“거짓말이네요.”
카탈리나 블라가의 눈동자가 차갑게 가라앉았다.
“루인, 절 속일 생각을 하시면 어떻게 해요. 아시잖아요? 제 눈에 뭐가 보이는지.”
권속혈은 정신력에 간섭하는 혈통.
그렇기에 타인의 감정과 정신력의 상태를 알아보는 것쯤은 간단했다.
“이성과 감성이 둘 다 흔들리고 있어요. 사실은 자신 없죠?”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루인 아스파담은 끝끝내 입을 열 수 없었다.
“곤란하네요. 백토를 넘기는 거야 상관없지만 루인이 졌다가는 리틀드래곤이 제 안목을 의심할 텐데요.”
루인 아스파담은 억울한 마음이 들었다.
이런 상황에서까지 권한울을 신경 쓴단 말인가?
“기왕 떠나는 거 좋은 이미지를 남기는 게 좋겠죠?”
카탈리나 블라가가 천장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K. 여기에 있나요?”
-예, 말씀하십시오.
아무도 없는 허공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루인 아스파담은 흠칫 놀라서 주변을 둘러봤다. 그러나 모습은 고사하고 인기척조차 느낄 수 없었다.
루인 아스파담은 곧바로 이 보이지 않는 존재의 정체를 떠올릴 수 있었다.
카발리에리 움브라(Cavalieri umbra).
카탈리나 블라가에게는 오랜 세월을 함께한 특별한 권속들이 존재한다.
성별도, 나이도, 인종도 모든 것이 베일에 싸여 있기에 그들이 누군지 아무도 모른다.
그나마 알려진 것이라면 개개인의 실력이 대단하다는 것뿐.
“혹시 모르니 애들을 대기시켜 놓으라고 했는데. 어떻게 됐나요?”
-이미 혈족 두 분을 모셔왔습니다. 던전 안으로 들어갈 때 사용할 유물도 준비해놓았습니다.
“훌륭해요.”
-과찬이십니다.
그 말을 끝으로 더 이상 목소리가 들려오지 않았다.
“그럼 루인, 이제 쉬러 갈까요?”
카탈리아 블라가가 손을 내밀었다. 루인 아스파담은 어두운 얼굴로 그녀를 부축했다.
“루인, 기운이 없어보이네요.”
“아닙니다.”
“혹시 내가 리틀드래곤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인가요? 그런 거라면 실망스러운데요.”
카탈리나 블라가가 루인 아스파담의 목을 끌어안았다.
확 풍겨오는 살 내음에 루인 아스파담의 얼굴이 새빨갛게 물들었다.
“저는 말이죠. 끝까지 저한테 집착해 주는 남자를 제일 좋아해요.”
루인 아스파담의 얼굴이 발갛게 달아올랐다.
“오늘은 날씨가 쌀쌀하네요. 혼자 있으면 밤에 춥겠어요.”
“저, 정성을 다해 모시겠습니다.”
루인 아스파담은 순박한 청년처럼 어쩔 줄 몰라 했다. 그 모습조차 귀엽다는 듯 카탈리나 블라가는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