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통이 깡패임 50화>
50화 마지막 권능 (2)
“무사하셔서 다행이에요!”
권한울을 보자마자 카탈리나 블라가는 기뻐했다.
“이번 일은 정말 죄송해요. 내기에서 질 것 같아서 혈족을 보내서 루인을 돕게 했는데. 그게 화근이 돼서 루인이 미쳐버릴 줄은 몰랐어요.”
카탈리나 블라가의 두 눈에 눈물이 맺혔다.
“만약 리틀드래곤한테 무슨 일이 생겼다면 저는…… 저는……!”
결국 눈물이 또르르 떨어졌다. 여인의 눈물은 무기라는 말처럼 가슴이 절절해지는 광경이었다.
정작 권한울은 싸늘한 얼굴로 응시할 뿐이었지만.
“흑천의 마녀가 제 시간에 도착해서 다행이에요. 그동안 루인한테서 잘 버티셨어요.”
그 말에 권한울과 주하연은 서로의 얼굴을 쳐다봤다. 이게 무슨 소리냐는 눈치였다.
분위기가 묘하게 돌아가자 카탈리나 블라가도 조금 당황했다.
“카탈리나 블라가 님, 제가 들어갔을 때는 이미 루인 아스파담이 죽어 있었습니다.”
주하연의 말에 카탈리나 블라가의 얼굴에 당혹감이 번졌다.
“이미 죽어 있었다고요? 그럼 설마 리틀드래곤 혼자서……?”
“예, 맞습니다.”
카탈리나 블라가의 눈동자가 커졌다. 할 말을 잃은 채 권한울을 바라보기만 했다.
“이번 일을 ‘실수’라는 말 한 마디로 넘어갈 생각이라면 관두는 게 좋을 겁니다.”
권한울이 날카롭다 못해 살기가 담긴 목소리로 말했다.
던전에서 만났던 순혈 혈족 나디아 블라가는 권한울에게 말했다.
이번 일에 권한울을 어찌할 의도는 전혀 없으며 내기에서 승리시키라는 명만 받았다고.
순혈인 그녀가 진혈인 권한울에게 거짓말을 할 리는 없다. 하지만 권한울은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기 힘들었다.
카탈리나 블라가 정도 되는 인물이 자신의 권속이 이렇게 폭주할지 몰랐다는 게 말이 되는가?
설사 몰랐다 하더라도 결국 블라가 가문의 권속이 흑천 일가의 혈족을 죽이려 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이번 일은 정식으로 블라가 가문에게 항의할 겁니다.”
“너 인마, 너무 흥분했어.”
별안간 권지석이 끼어들었다.
“네가 던전에 있는 동안 카탈리나 블라가 님과 대화를 나눠봤는데. 이번 일은 카탈리나 블라가 님한테도 사고였어. 블라가 가문의 혈족도 한 명 루인 아스파담한테 죽었다더라.”
“지금 뭔 소리를…….”
“권속 한 명이 미쳐서 난리를 피운 걸 가문 사이의 일로 끌고 가는 건 좀 그렇지 않냐.”
권한울은 어이없다는 얼굴로 권지석을 쳐다봤다.
“다른 가문의 인간이 흑천의 영역에서 난리를 피웠어요.”
“알고 있어. 근데 여기는 내 작전 구역이잖아.”
권지석이 어깨를 으쓱했다.
“맨입으로 그냥 넘어가는 건 아니야. 배상금을 내기로 약속했어.”
권지석이 이렇게 나오자 권한울은 더 이상 뭐라 할 수가 없었다. 이곳의 총책임자는 권지석이니까.
“역시 권지석 님. 제 사정을 헤아려주셔서 감사해요.”
그때 은근슬쩍 카탈리나 블라가가 끼어들었다.
그 순간, 권지석의 눈동자에 적의가 떠올랐다 사라졌다.
순간, 권한울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카탈리나 블라가에게 홀려서 또 헛소리를 하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그럼 저는 이만 돌아 가보도록 할 게요. 참, 리틀드래곤.”
카탈리나 블라가가 권한울에게 다가왔다.
“흑천 일가에 대한 보상과는 별개로 사죄의 표시로 선물을 보낼 게요.”
카탈리나 블라가가 시선을 내리며 권한울의 몸을 훑었다.
“마침 새로운 옷이 필요하신 것 같으니까요.”
그 말에 권한울도 고개를 내려 자신의 몸을 살펴봤다.
아룡태의 곳곳이 처참하게 찌그러져 있었다. 이무기의 비늘 정도로는 루인 아스파담의 공격을 막아내기 턱없이 부족했던 것이다.
“기대하셔도 좋아요.”
그렇게 덧붙이며 카탈리나 블라가는 권한울을 스쳐 지나갔다.
그녀가 완전히 몸을 돌리기 전, 권한울이 물었다.
“나디아 블라가는 무사합니까?”
“아, 다친 곳 하나 없이 무사해요. 나디아를 구해 주셔서 정말 감사드려요.”
“별 다른 말은 없었습니까?”
“없었어요. 왜 그러세요?”
권한울은 고개를 저었다.
“아무 것도 아닙니다.”
카탈리나 블라가는 의아해 하며 자동차에 올라탔다.
그녀가 사라진 뒤, 권한울은 권지석을 돌아봤다.
“우리 이야기 좀 하죠.”
“아, 나도 그러고 싶은데. 던전을 정리해야 해서 말이야. 저 난리가 났으니까 머드트롤들도 정신이 번쩍 들었겠지. 백토를 찾으면 꼭 너한테 보내줄 테니까 걱정 말고.”
그리 말하며 권지석은 허겁지겁 도망쳤다.
권한울은 혀를 찼다.
어째 입맛이 썼다.
* * *
권지석이 개인 천막으로 들어오자마자 스마트폰이 울렸다.
권지석은 황급히 전화를 받았다.
“형님?”
-그래, 나다. 내가 말한 대로 잘 처리했느냐?
“했습니다.”
-잘했다.
형의 칭찬을 듣고도 권지석은 기뻐하지 않았다.
-그 여자가 혹시 다른 마음을 품을까 걱정했는데. 역시 내 예상대로였구나. 그래도 네 덕분에 잘 넘어갈 수 있었다.
권지석이 주먹을 움켜쥐었다. 분노에 찬 목소리로 소리쳤다.
“형님, 대체 어쩌자고 이러시는 겁니까!”
-이런 짓이라니?
“권한울을 블라가 가문에게 넘기기 위해서 카탈리나 블라가를 끌어 들이다뇨! 이건 절대로 안 될 입니다!”
-어째서 안 된다는 거냐?
“그걸 말이라고 하십니까? 그 놈은…… 권한울은 마음에 안 들기는 해도 우리 가문의 사람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외부인에게 넘길 생각을 하실 수 있습니까!”
-그래서.
권찬성의 목소리는 여전했다. 똑같은 어조와 어투로 물었다.
-할 말은 그것뿐이냐?
되레 권지석이 할 말이 없어졌다.
-권한울은 너무 위험한 존재다. 일찌감치 싹을 제거해버려야 해. 하지만 회장님의 비호를 받고 있어서 쉽게 건드릴 수 없지. 그래서 카탈리나 블라가와 손을 잡은 거다.
권찬성의 목소리는 굉장히 침착했다. 권지석은 오늘처럼 친형이 낯설 게 느껴진 적이 없었다.
-잊고 있었던 건 아니겠지? 놈은 진혈이다. 지금은 출신 때문에 외면 받고 있지만 언젠가 가문의 누구보다 강해질 거다.
권지석은 말없이 형의 말을 듣기만 했다.
-그때가 되면 너무 늦는다. 가문의 모두가 그 놈을 우러러 보게 될 거야. 그럼 아버님의 위치도 위협받게 될 거다.
“그렇다고 다른 가문에 넘긴다고요? 그게 말이 됩니까? 흑천의 혈족이라면 그 놈을 뛰어넘을 생각부터 해야죠!”
-헛소리.
권찬성의 목소리가 처음으로 날카롭게 변했다.
-잡혈과 열혈들을 봐라. 그들이 아무리 뛰어나봤자 결국 순혈을 뛰어넘지 못했다. 우리라고 다를 줄 아느냐?
“하지만 이건 아닙니다. 형님, 이건 정말 아니에요.”
-그럼 너는 받아들이겠다는 거냐?
권찬성의 목소리가 처음으로 날카로워졌다.
-그 놈이 너보다 강해지면 그에 걸맞은 업적을 세우면 너는 그 놈을 인정하고 밑으로 내려갈 생각이냔 말이다.
침묵이 흘렀다. 아주 길게, 오랫동안, 그리고 나서야 권지석은 입을 열었다.
“인정해야죠.”
-지금 뭐라고 했지?
“권한울이 그렇게 된다면 인정해야 된다고 말했습니다.”
-한심한 놈. 아버님이 어째서 널 외면했는지 아느냐? 바로 이런 점 때문이야!
권찬성이 버럭 고함을 내질렀다.
-네가 어떤 생각을 하든 상관없다! 하지만 내 일을 방해하지는 마라!
뚝, 전화가 끊어졌다. 권지석은 힘없이 스마트폰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깊이 한숨을 내쉬었다.
* * *
카탈리나 블라가는 승합차에 올라탔다.
그녀의 취향대로 꾸며진 차량은 내부가 넓고, 온통 빨간색으로 도배가 되어 있었다.
“오, 오셨어요.”
차량 안에는 이미 나디아 블라가가 들어와 있었다. 카탈리나 블라가는 그녀의 옆에 앉았다.
“K. 있나요?”
-예, 있습니다.
빈 허공에서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본가의 재화를 얼마든지 써도 좋으니까 흑천 일가 쪽에서 불만을 가지지 않도록 뒤처리를 부탁드릴 게요.”
-알겠습니다.
“역시 언제나 믿음직스러워요.”
-과찬이십니다.
카탈리나 블라가는 슬쩍 미소를 지었다.
“궁금한 게 많은 눈치네요. 물어봐도 좋아요. 마침 지금은 제가 기분이 정말 좋거든요.”
-어째서 권찬성과 약속했던 대로 행동하지 않으신 겁니까?
원래 카탈리나 블라가는 오늘 권한울을 납치하기로 권찬성과 합의가 되어 있었다. 권찬성도 그 조건으로 적극적으로 협력했던 것이다.
하지만 막상 이곳에 도착한 이후로 카탈리나 블라가는 권찬성과 논의했던 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못 미더워서요.”
카탈리나 블라가는 당연하지 않냐는 듯이 말했다.
“그 남자랑 잘 아는 사이도 아닌데 덥석 믿을 수는 없잖아요?”
K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주인은 허술해 보이지만 이런 부분에서는 철저했다.
“아마 권찬성도 절 믿지 못하고 있었을 걸요.”
카탈리나 블라가가 짧게 하품을 하며 말을 이어나갔다.
“이번에는 권찬성을 조금은 믿어도 된다는 걸 확인한 것만으로 만족해요. 그쪽도 마찬가지일 거예요.”
-알겠습니다. 한 가지만 더 질문을 드리고 싶습니다만.
“그러세요.”
-그럼 어째서 루인 아스파담을 제물로 사용하신 겁니까.
K가 봤을 때, 루인 아스파담은 보기 드문 인재였다. 이렇게 권한울의 능력을 확인할 제물로 쓰이기에는 너무 아까웠다.
“K는 루인을 굉장히 고평가하네요.”
-제게는 그렇게 보였습니다.
“저는 아니에요.”
카탈리나 블라가는 딱 잘라 말했다.
“벽력자에게서 뺏어온 이후로 루인은 정체가 되었어요. 더 이상 기대할 뭔가가 없었죠.”
카탈리나 블라가가 권속을 고르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성장가능성이었다.
권속이 기대했던 수치까지 성장하면 카발리에르 움브라로 격상시키지만 그렇지 못하면 가차 없이 버렸다.
-그럼 권한울은 만족스러우셨습니까?
K의 물음에 카탈리나 블라가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정말 즐거워서, 행복을 주체 못할 때만 나오는 웃음이었다.
“기대 이상…… 아니, 기대를 초월할 정도로 대단했어요.”
-그 정도였습니까?
“저는 리틀드래곤이 주하연이 도착하기 전까지 얼마나 멀쩡한 모습으로 버틸 수 있을지 그걸로 자질을 판단하려고 했어요.”
인간수집가라는 별명답게 카탈리나 블라가는 사람을 평가하는 독특한 기준이 있었다.
그리고 K의 경험상 그 기준은 항상 정확히 들어맞았다.
“살아 있기만 해도 통과, 사지가 멀쩡하면 최상급…… 근데 리틀드래곤은 어떻게 했죠?”
-루인을…… 이겼습니다.
“예! 이겼죠! 어떻게 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이겼어요! 정말! 정말로 이겼다고요!”
카탈리나 블라가가 발로 바닥을 쾅쾅 쳤다. 즐거워 미치겠다는 듯이.
“리틀드래곤 같은 사람은 처음이에요! 지금까지 만났던 재능 중에서…… 아니, 사람 중에서 최고였어요!”
카탈리나 블라가가 손으로 얼굴을 움켜잡았다. 눈동자가 광기로 물들어 있었다.
“어떻게든 가지고 싶어요. 반드시. 필요하다면 블라가 가문을 희생시켜서라도.”
K는 문득 묘한 위화감을 느꼈다.
카탈리나 블라가가 마음에 드는 재능을 보고 흥분하는 건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하지만 지금 보이는 모습은 어쩐지 조금 이상했다. 마치 홀린 것 같다고 해야 하나.
“참, 나디아?”
그때, 카탈리나 블라가가 옆자리를 돌아봤다. 거기에는 나디아 블라가가 숨을 죽인 채 가만히 앉아 있었다.
“정말로 던전에서 있었던 일은 제게 말한 게 끝이겠죠?”
나디아 블라가는 침을 꿀꺽 삼켰다. 긴장한 얼굴로 말했다.
“예, 예…… 분명히 숨어 있었는데. 권한울 님…… 아니, 권한울이 절 찾아냈습니다.”
“유물을 사용했는데도 들켰다고요?”
“네, 네!”
카탈리나 블라가는 어딘가 미심쩍은 얼굴로 나디아 블라가를 살폈다. 나디아 블라가는 어깨를 움츠렸다.
“뭐, 루인도 죽였는데. 나디아를 못 찾을 리는 없겠죠.”
다행히 카탈리나 블라가는 나디아 블라가를 계속 의심하지 않았다.
“그리고 나디아가 제게 거짓말을 할 리도 없고요.”
권속혈을 가진 자는 상위 혈족의 말을 절대로 거스를 수 없다.
카탈리나 블라가와 나디아 블라가는 같은 권속이지만 둘 사이의 지배력은 엄청난 차이가 있었다.
“…….”
나디아 블라가는 옷자락을 꼭 움켜잡았다. 그러면서 속으로 권한울의 얼굴을 떠올렸다.
* * *
호텔로 돌아온 권한울은 던전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 설명해야 했다.
“그러니까…… 저번 날에 메이 가문의 창고에서 발견한 스킬이란 말씀이세요?”
권한울의 변명을 들은 주하연은 반신반의하는 표정을 지었다.
“네, 수상쩍은 조각상이 있어서 만졌더니 갑자기 스킬을 얻게 됐지 뭐에요.”
“그럼 왜 말씀하지 않으셨던 거죠?”
“그때 하연 씨가 말했잖아요. 회장님께서는 능력치를 올릴 비약을 찾으라고 절 보내셨다면서요. 그 외의 것을 얻으면 문초를 당할까봐 숨겼는데. 이후에 말할 기회를 놓쳐서 본의 아니게 숨기고 말았네요.”
권한울은 본의 아니게 라는 말을 강조했다. 주하연은 여전히 의심스러운 눈초리였다.
“……다음부터는 꼭 말씀해 주세요.”
하지만 결국 믿기로 한 모양이었다.
“최소한 저한테는 말씀해 주세요. 위험한 물건일 수도 있으니까요.”
“스킬이 위험할 게 있나 싶어서 말씀을 안 드렸죠.”
“권한울 님께서는 모르시겠지만…… 유물 중에 주인의 목숨을 뺏는 마병(魔兵)이 있는 것처럼 스킬 중에도 그런 게 있습니다. 한 번 습득하면 지울 수 없다는 점에서 더 악질 적이죠.”
그제야 권한울은 주하연이 진짜 화가 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숨겨서 화가 난 게 아니라 권한울의 안위가 걱정돼서 말을 하지 않은 것이다.
“……다음부터 꼭 말할 게요.”
“꼭입니다.”
주하연이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다행히 화가 다 풀린 모양이었다.
“아, 그리고 이런 걸 얻었는데요.”
권한울은 루인 아스파담의 아공간 보석을 꺼냈다. 주하연의 눈동자가 살짝 커졌다.
“루인 아스파담의 아공간 보석이군요.”
“맞습니다. 분류하는 걸 좀 도와주실 수 있나요.”
“얼마든지요.”
권한울은 루인 아스파담의 아공간 보석에 있는 물건들을 모두 꺼내놓았다.
아쉽게도 많은 물건이 담겨 있지는 않았다.
“신체강화용 비약이네요. 이건 민첩을 상승시켜주고 이건…….”
물건을 확인하던 중에 주하연의 손이 잠깐 멈췄다.
“이건…… 도복이네요.”
노란색 바탕에 새가 그려진 도복이었다.
유물도 아니고 특별히 제작한 물건도 아니었다. 아무런 능력도 없는 평범한 옷이었다.
“웬 옷이죠.”
“아마 벽력자에게 받았을 겁니다. 벽력자는 자신의 제자에게 손수 제작한 도복을 하사한다고 하더군요.”
주하연은 도복을 정성스럽게 개어서 권한울에게 내밀었다.
“대단한 물건은 아닙니다만…… 혹시라도 나중에 벽력자를 만나면 되돌려주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겁니다. 벽력자는 자신의 제자를 끔찍하게 위하는 사람이거든요.”
“……그럼 제자를 죽인 저를 죽이려고 하지 않을까요?”
그 말에 주하연이 작게 웃었다.
“오히려 감사할 겁니다. 정도를 벗어난 제자를 바로잡아줬다면서요.”
주하연의 말을 들어서 손해 본 적은 없었다. 권한울은 도복을 받았다. 도복은 어제 막 빤 것처럼 깨끗했다.
문득 한 가지 의문이 떠올랐다.
루인 아스파담은 스승을 버리고 카탈리나 블라가의 밑으로 들어갔다.
그럼에도 스승에게 받은 도복을 아직도 간직하고 있다는 것은…….
“뭐, 나랑은 상관없지.”
“예?”
“아무 것도 아니에요.”
권한울은 남은 물건들을 살폈다. 이제 잡다한 물건들밖에 남지 않았다.
그런데 그 속에서 작은 석판 하나가 눈에 띄었다.
“이건…….”
메모리페이지.
스킬을 담고 있는 유물이었다.
벽력굉천권 순광보(霹靂轟天拳 瞬光步)
-품질 : 레전더리(SS+)
-설명 : 벽력굉천권과 짝을 이루는 상승보법. 극한에 이르면 광속으로 이동할 수 있다.
*스킬 습득 조건 : 벽력굉천권 이천(二天)을 10성까지 습득.
**스킬 습득 조건 2 : 뇌력을 보유했을 시만 가능.
메모리페이지는 스킬을 습득하면 소멸한다. 이게 남아 있다는 것은 루인 아스파담도 아직 이 스킬을 습득하지 못했다는 뜻이다.
“그림의 떡이네.”
벽력굉천권과 짝을 이루는 보법이니 분명히 뛰어난 보법일 것이다.
하지만 습득조건이 문제였다. 권한울은 벽력굉천권을 익히지 못했으며, 루인 아스파담처럼 마력의 성질을 바꿀 수 있는 기프트도 없다.
팔아넘길 수도 없다. 그랬다가는 벽력자가 권한울을 가만 놔두지 않을 테니까.
“이것도 나중에 벽력자를 만나면 돌려줘야겠네.”
그때, 한 가지 발상이 권한울의 뇌리를 스키고 지나갔다.
수라혈은 무에 대한 재능을 부여해준다. 천재혈은 사고를 확장해서 이해력을 상승시켜준다.
이 두 개의 혈통이 있으면 이 스킬을 분해해서 재창조할 수 있지 않을까.
권한울은 턱을 매만지며 고민에 잠겼다. 한참을 생각하다 결론을 내렸다.
“되겠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