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통이 깡패임 52화>
52화 블라가의 선물 (2)
박태식을 따라 도착한 곳은 그의 개인 공방이었다.
벌써 두 번째 방문이었지만 공방의 풍경은 처음과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도구들이 여기저기 널려 있고, 벽에는 온갖 장비들이 걸려 있었다. 하나하나가 극상품이라 불러도 모자를 만큼 대단한 것들이었다.
“언제 봐도 대단한 곳이네요.”
“빈말 할 필요 없다. 그보다 네가 볼 장비는…….”
그때, 책상 옆에 기대어져 있던 망치들이 와르륵 무너졌다. 박태식은 귀찮다는 듯 머리를 벅벅 긁었다.
“에잉, 잠깐만 기다려라. 정리 좀 하고 있을 테니.”
박태식이 망치를 정리하는 동안 권한울은 공방에 있는 장비들을 둘러보았다.
“응?”
문득, 권한울의 시선이 멈췄다. 시선이 향한 곳에는 목이 없는 마네킹이 놓여 있었다.
권한울은 마네킹을 살펴봤다. 정확히는 마네킹이 입고 있는 옷을 쳐다봤다.
마네킹은 검은 정장을 입고 있었다. 클래식 스타일로 제작된 정장은 딱 봐도 굉장한 고급품이었다.
재킷의 깃이 넓고, 어깨에서 팔로 이어지는 선 딱 각이 져 있었다. 하얀 셔츠의 가운데에 자리 잡은 빨간 넥타이가 강한 존재감을 드러냈다.
쓰리버튼 스타일이라서 허리가 꽉 조였다. 어지간히 몸매에 자신이 있는 사람이 아니고서는 입기 힘들 것 같았다.
“와…….”
권한울은 잠시 넋을 잃고 정장을 쳐다봤다. 스스로도 왜 그랬는지 이해를 할 수가 없었다.
공방에 있는 수많은 장비들 중에서 하필이면 정장 따위에 시선이 팔리다니.
“권한울 님께서 정장에 관심을 가지신 적은 이번이 처음인 거 같네요.”
“아, 그랬나요?”
“데뷔전 때는 외출 때 정장을 입어야 한다고 하니 질색하셨잖습니까.”
“그거야 불편해서 그랬죠.”
권한울은 멋쩍다는 듯이 시선을 회피했다. 그러면서도 계속 정장을 힐끔거렸다.
“아, 다 끝났다. 하여간 이놈의 청소는 해도 해도 끝이 없다니까.”
박태식이 손을 탁탁 털며 권한울에게 다가왔다. 권한울은 정장을 가리키며 물었다.
“최근에 정장을 맞추셨나보네요. 근데 사이즈를 너무 작게 맞추신 거 아닌가요?”
“이놈이 갑자기 웬 헛소리야. 내가 그딴 걸 왜 입어?”
“그럼 이건 뭔데요?”
권한울이 정장을 가리키며 물었다. 갑자기 박태식이 웃음을 터트렸다.
“뭔 소리를 하나 했다니. 인마, 저건 내 것이 아니라 네 것이야!”
“절 위해서 정장을 주문하셨다는 말씀이세요?”
“아, 왜 이렇게 말길을 못 알아들어! 블라가 가문에서 보낸 갑옷이 저거란 소리다!”
그 말에 권한울은 다시 정장을 쳐다봤다. 저절로 미간이 구겨졌다.
“지금 농담하시는 거죠?”
“내가 그렇게 할일이 없는 놈으로 보이냐?”
“아니, 그럼 어떻게 정장이 갑옷이 될 수 있다는 말입니까.”
“하긴 워낙 희귀한 물건이니 모를 만도 하군. 하지만 하연이 너라면 알아볼 수 있겠지?”
주하연도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내 알아차렸는지 눈동자가 커졌다.
“……설마 연금마법사 위버 하인켈의 작품인가요?”
“그래, 정확히 봤다.”
박태식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위버 하인켈의 핸드메이드 No.34 블랙베리다. 확인해 보니 놀랍게도 드래곤헤츨링의 피로 제작이 되었더구나.”
그 말에 권한울도, 주하연도 놀랄 수밖에 없다.
본래 던전과 몬스터를 나누는 등급을 다섯 가지다.
브론즈, 실버, 골드, 플래티넘, 다이아.
하지만 몬스터의 종류는 무수히 많다. 그리고 그 중에는 상상을 초월하는, 다시 말해서 규격을 할 수 없을 만큼 위험한 몬스터도 존재했다.
헌터들은 그런 상식 외의 몬스터들에게 S급이라는 별도의 등급을 붙여서 따로 취급했다.
이전에 권찬성이 죽였던 이클립스의 경우에는 아프리카 대륙 전체를 위협할 정도였기에 위험도 SSS급으로 불리게 되었다.
그리고 드래곤헤츨링의 경우에는 위험도 S급. 때에 따라서는 SS급까지 올라가는 강력한 몬스터였다.
“정말 드래곤헤츨링의 피로 제작이 됐단 말씀이세요?”
권한울은 재차 물을 수밖에 없었다.
드래곤헤츨링은 위험도에 비해서 부산물의 가치가 무척 높다.
전 세계의 유명한 무구들 중에는 드래곤헤츨링의 가죽과 뼈로 만든 것들이 많았다.
“눈빛이 달라지는구나. 하긴, 드래곤헤츨링은 용종 몬스터 중에서 최고니까.”
어째서 성체가 아니라 헤츨링을 최고로 치느냐.
그 이유는 인류 역사상 성체 드래곤이 나타난 적은 딱 두 번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 이후, 수십 년이 넘도록 드래곤헤츨링밖에 나타나지 않았다. 현 시점에서는 드래곤헤츨링이 최고의 용종 몬스터인 셈이다.
“재킷은 드래헤츨링의 피로 제작이 되었고, 셔츠는 뼈를 가공해서 만들었더구나.”
드래곤헤츨링을 통째로 갈아 넣은 구성이었다.
다만, 한 가지 이해가 안 가는 점이 있었다.
“피랑 뼈로 어떻게 옷을 만들죠?”
드래곤헤츨링의 피는 액체고, 뼈는 고체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옷감이 나올 수 있는 재질이 아니었다.
“위버 하인켈은 재료를 가공하는 마법에 능통했지. 그래서 연금마법사라고 불렸던 것이고. 놈에게 피와 뼈를 직물로 가공하는 것쯤은 쉬운 일이었을 게야.”
그래서 주하연이라면 알아 볼 수 있을 거라고 말한 듯 했다.
주하연 역시 마법을 사용하는 마녀이니 말이다.
“구체적으로 어떤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겁니까?”
“일단 자동수복 기능에 착용하는 것만으로…… 에잉 됐다. 나중에 네가 직접 확인해봐라.”
박태식이 벌레 씹은 얼굴로 말했다. 권한울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이 옷이 마음에 안 드시는 모양이네요?”
“그거야 당연하지. 이 옷은 말이다. 비효율의 극치야! 어떤 미친놈이 드래곤헤츨링을 가지고 이딴 식으로 갑옷을 만들어!”
기다렸다는 듯이 불만이 터져 나왔다.
“외형에 집착하느라 재료의 성능을 완벽하게 끌어내지 못했어! 나한테 똑같은 재료가 주어진다면 더 대단한 걸 만들 수 있다! 이것보다 두 배는 뛰어날 거야!”
좀처럼 끝날 것 같지 않았다. 권한울은 적당히 틈을 봐서 끼어들었다.
“그럼 성능이 별로라는 말씀이신가요?”
“……그건 아니고.”
박태식의 목소리가 약간 누그러졌다.
“성능은…… 그럭저럭 쓸 만…… 아니, 솔직히 말해서 전 세계 어디를 가도 이만한 물건은 보기 힘들 거야.”
박태식의 얼굴에서는 인정하는 정말 싫다는 기색이 팍팍 풍겨왔다.
“딱 잘라서 지금의 너한테는 과분한 옷이야. 세계랭커들이 착용해도 문제가 없을 물건이니까.”
“구입하려면 얼마나 줘야할까요?”
“위버 하인켈의 작품을 돈을 주고 구입하겠다니. 멍청한 생각이로군. 그놈의 작품은 장비보다는 수집품으로서의 가치가 높아. 억만금을 줘도 구할 수 없을 거다.”
박태식은 블랙베리의 소매를 매만지며 덧붙였다.
“이만한 물건을 선뜻 내주다니. 아무리 카탈리나 블라가라도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거야. 확신할 수는 없지만 블라가 가문의 기둥이 하나 정도는 뽑혔을 거다.”
권한울은 카탈리나 블라가의 말을 떠올렸다.
기대해도 좋다더니 진짜로 엄청난 물건을 보냈다.
“한 번 입어볼 테냐?”
권한울은 뭔가에 홀린 것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탈의실은 없으니 저기 기둥 뒤에서 갈아입어라.”
권한울은 마네킹 째로 들고 기둥 뒤로 향했다.
걸치고 있던 옷을 벗고 블랙베리를 입기 시작했다. 그런데 사소한 문제가 생겼다.
“……으으으음.”
정장에는 익숙하지 않은 탓에 좀처럼 옷태를 살릴 수가 없었다.
마네킹이 입고 있었을 때는 정말 훌륭했는데. 막상 권한울이 입으니 여기저기가 구겨졌던 것이다.
“뭐, 성능이 중요하니…….”
“뭐가 성능이 중요하다는 거예요.”
깜짝 놀라 고개를 돌리니 주하연이 서 있었다. 권한울이 놀라는 사이 주하연이 옷매무새를 바로잡기 시작했다.
“이러지 않으셔 괜찮…….”
“괜찮기는 뭐가 괜찮아요. 흑천의 혈족으로서 정장도 제대로 못 입으면 어디 가서 체면을 차리기 힘듭니다.”
그러고 보니 흑천의 정식 복장이 정장 이랬던가.
권한울은 하는 수 없이 주하연의 손에 몸을 맡겼다.
자신이 할 때는 그렇게 안 되던 게 주하연의 손을 거치니 말끔하게 변했다.
“넥타이는 왜 안 매셨나요?”
“좀 어려워서…….”
주하연은 한숨을 내쉬며 넥타이까지 손수 매듭을 지었다.
넥타이까지 맨 뒤, 권한울은 기둥 밖으로 나왔다.
“너희들 여기서 연애질 하냐.”
둘이 밖으로 나오자 박태식이 퉁명스럽게 말했다.
“흑천의 마녀가 남자 시중이나 들고. 이 소식을 알면 놀랄 놈들이 한 트럭을 넘겠군.”
“쓸데없는 말 하지 마세요.”
“어쭈, 이제는 나한테 반항까지…… 아, 그래 알겠다. 알겠어.”
주하연이 말없이 노려보자 박태식은 그제야 한발 물러났다.
“흥, 그래도 입혀놓고 보니 맵시는 좀 나는군.”
칭찬에 인색한 박태식에게 이 정도면 후한 평가였다. 그 정도로 잘 어울렸다.
“그래, 소감이 어떠냐?”
박태식이 물음에도 권한울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럴 수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블랙리버 – 수트자켓
-품질 : 레전더리(S++)
-설명
연금대마법사 위버 하인켈의 34번째 작품. 드래곤헤츨링의 혈액으로 직물로 가공해서 제작됐다.
용의 피는 강인한 생명력의 상징이다. 이 옷을 입는 건 그 힘을 입는 것과 같다.
-능력
1. 외부에서 가해지는 모든 피해를 30%까지 흡수.
2. 일정 수준 이하의 원소 공격을 70%까지 경감.
3. 일정 수준 이하의 화염계 공격에 완전 면역.
블랙리버 – 수트팬츠
-품질 : 레전더리(S++)
-설명
연금대마법사 위버 하인켈의 34번째 작품. 드래곤헤츨링의 혈액으로 직물로 가공해서 제작됐다.
용의 피는 강인한 생명력의 상징이다. 이 옷을 입는 건 그 힘을 입는 것과 같다.
-능력
1. 외부에서 가해지는 모든 피해를 30%까지 흡수.
2. 일정 수준 이하의 원소 공격을 50%까지 경감.
3. 일정 수준 이하의 화염계 공격에 완전 면역.
블랙리버 – 드레스셔츠
-품질 : 레전더리(S++)
-설명
연금대마법사 위버 하인켈의 34번째 작품. 드래곤헤츨링의 갈비뼈를 가공해서 짜여졌다.
용의 뼈는 이 세상 어떤 광물보다 견고하다. 이 옷을 입는 것은 성벽을 입는 것과 같다.
-능력
1. 모든 능력치가 30% 상승.
2. 마력 효율 및 회복이 40% 증가.
3. 각종 상태이상의 저항력이 70% 향상.
4. 마력의 위력이 30%까지 증폭.
*블랙베리 세트를 모두 착용할 시, 특수 스킬을 사용 가능.
블랙베리 세트 효과
1. 자동수복 : 장비가 입은 손상을 자동으로 수복한다.
2. 방호강화 : 내구도 및 방호력이 100% 상승한다.
3. 드래곤 피어 : 마력을 소비하여 드래곤 피어를 발산할 수 있다.
“대단하지 않냐?”
박태식이 입을 열었다. 권한울은 멍하니 고개만 끄덕였다.
“각 파츠의 기능도 엄청나지만 특히 주목할 건 세트 효과지. 자동수복에 방호강화라니. 설사 세계랭커라 해도 그 갑옷에 흠집을 내는 건 어려울 거다.”
하지만 진짜 대단한 건 그게 아니었다.
“무엇보다 드래곤피어…… 이건 나도 인정할 수밖에 없더구나. 어떻게 드래곤피어를 구현해 낸 건지.”
드래곤피어는 이를 테면 세계최고의 광역 스킬이라고 수 있다.
발산하는 것만으로 적을 겁에 질리게 하거나 내상을 입힐 수 있다.
또한 드래곤피어에 노출된 적은 각종 디버프를 받게 된다. 아군은 반대로 버프를 받는다.
“너는 흑룡혈을 보유하고 있으니 그 옷과의 상성이 더욱 좋을 거다.”
용과 드래곤은 별개의 몬스터다. 하지만 같은 용종으로 분류되기에 통하는 면도 많았다.
권한울에게는 이 옷이 최고의 장비지만 반대로 이 옷에게도 권한울이 최고의 주인인 셈이었다.
“흥, 마음에 드냐?”
박태식이 퉁명스럽게 물었다.
이럴 때는 아니라고 말해야 하는 걸 알면서도 권한울은 이렇게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끝내주네요.”
문득 권한울은 주하연이 어딘가 불만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하연씨?”
“……어째 그 여자한테 선수를 뺏긴 거 같아서 기분이 나쁘네요.”
갑자기 주하연이 박태식을 향해 말했다.
“명장님. 블랙리버 세트에는 권사가 쓸 무기가 없죠?”
“어? 어어, 그렇다만.”
주하연이 아공간을 열었다. 거기서 코끼리 상아처럼 생긴 물건과 큼직한 가죽을 꺼냈다.
박태식 명장은 그게 무엇인지 바로 알아봤다.
“드래곤헤츨링의 송곳니랑 가죽이잖아? 이렇게 귀한걸 네가 어떻게 가지고 있냐?”
“예전에 회장님을 따라다니면서 드래곤헤츨링을 한 마리 잡아본 적이 있습니다. 그때 받은 물건이죠. 원래는 이걸로 권한울 님의 갑옷을 만들 생각이었는데…….”
주하연이 그 두 가지 물건을 박태식 명장에게 내밀었다.
“갑옷은 이미 있으니 권한울 님이 쓰실 글러브를 제작해 주세요.”
“……이걸 전부 다 써서?”
박태식의 눈동자가 빠질 것처럼 커졌다.
아이템 제작자들의 기본 스킬 중에 재료 압축이라는 게 있다.
쉽게 말해서 대량의 재료를 압축시켜서 기능을 강화하는 것이다.
이만한 재료를 통째로 사용해서 글러브를 만들면 엄청난 물건이 나올 게 분명했다.
“대신 무조건 저것보다 뛰어나야 합니다.”
주하연이 블랙리버 세트를 노려보며 말했다. 묘한 압박감에 박태식 명장조차 마른침을 삼켰다.
“그, 그래 최대한 노력하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