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통이 깡패임 54화>
54화 신입 데려온다 (2)
메이홍을 찾아가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어차피 흑천 본가 주변의 던전들을 청소하는 중이라 가까운 곳에 있었기 때문이다.
결정을 내리자마자 권한울은 자동차를 타고 이동했다.
권한울이 탑승한 차량은 산과 맞닿아 있는 도로를 따라 달렸다.
별 특징 없는 도로였으나 따지고 보면 대한민국에서 가장 사치스러운 도로라고 할 수 있었다.
한반도 북쪽은 흑천의 땅. 이 차도는 흑천 그룹에서 오직 자신들만이 사용하기 위해서 만들고, 관리하고 있었다.
“메이 가문은 어떻게 됐죠?”
권한울은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다 주하연에게 물었다.
그날의 격전 이후, 메이 가문에 대한 소식을 들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처참하게 몰락해버렸습니다.”
가문의 전투원을 대다수 잃은 것도 모자라서 창고의 재화도 모두 도둑맞았다.
아무리 메이 가문이라 해도 다시 일어서기 힘든 타격이었다.
다만, 이해가 가지 않는 점이 있었다.
“메이 가문은 중국 정부에서 뒤를 봐주지 않았나요?”
“옛날에는 그랬죠.”
권한울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초창기에 메이 가문은 중국 정부의 도움으로 성장했어요. 문제는 메이 가문이 커도 너무 커버렸다는 거였죠.”
어느 순간부터 메이 가문은 중국 정부의 명령을 무시하고, 오히려 요구사항을 말하기까지 했다.
날카로운 칼도 손잡이가 있어야 쓸모가 있는 법.
중국 정부에게 메이 가문은 골칫거리밖에 되지 않았다.
“그러던 와중에 저희 흑천에게 몰락 직전까지 갔으니 어떻게 됐겠습니까?”
“중국 정부에서 완전히 짓밟아버렸다 이거군요.”
주하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혈족들은 뿔뿔이 흩어졌고, 그 중에 일부는 사로잡혀서 어디론가 팔려갔다고 들었습니다.”
“팔려가요?”
“혈통을 확보하면 여러모로 도움이 되니까요.”
정말 비참한 말로였다.
“아직 잔존병력이 남아 있기는 합니다. 지금도 메이 가문의 부흥을 위해 음지에서 움직이고 있다고 하더군요.”
“어째 남의 일 같지 않네요.”
권한울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경우가 조금 다르기는 하지만 흑천 그룹 역시 한국 정부를 상대로 이른 바, 갑질을 자주하고는 했기 때문이다.
“남의 일이죠.”
그러나 주하연은 단호하게 말했다. 흑천 그룹은 그렇게 될 리가 없다는 강한 자신감이 느껴졌다.
“그럼 아직 남아 있는 메이 가문의 고수들은…….”
권한울이 다른 질문을 하려고 할 때였다. 저 멀리서 막대한 마력이 방출되는 게 느껴졌다.
권한울과 주하연은 거의 동시에 오른쪽 창문을 쳐다봤다. 자동차에서 한참 떨어진 곳에서 던전 게이트가 열리고 있었다.
“개방형 던전이네요.”
던전 게이트를 유심히 살피며 권한울이 말했다.
내부로 들어가야 하는 진입형 던전과 달리 개방형 던전은 몬스터를 밖으로 모조리 방출해내는 던전이다.
좀처럼 보기 힘든 던전을 이런 곳에서 보게 될 줄은 몰랐다.
그때였다.
한 무리의 사람들이 던전의 입구 앞에 섰다. 이 지역의 청소를 담당하는 이들인 모양이었다.
성별도, 나이도 조금씩 달랐다. 하지만 딱 한 가지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다.
전원 흑천의 혈족들이었다.
‘잡혈이 다섯 명, 열혈이 세 명, 순혈이 한 명이군.’
흑천의 혈족답게 한 명 한 명이 강했다. 하지만 권한울은 그들을 걱정스럽게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이제 막 데뷔전을 치룬 신입들 같은데. 저 던전은 위험할 거 같은데요.”
게이트의 마력 수준으로 보건데 개방형 던전은 플래티넘 등급이 틀림없었다.
반면 입구를 막고 있는 흑천의 혈족들은 이제 아직 신입들이었다.
흑천의 혈족이 아무리 강하다 한들 처음부터 플래티넘 등급을 상대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렇다고 멋대로 끼어들면 화를 낼 겁니다.”
흑천의 혈족들이 어떤 성질머리를 가지고 있는지를 생각하면 그럴 가능성이 높았다.
권한울을 일단 지켜보기로 결정을 내렸다. 정 위험하면 그때 나서도 될 일이니까.
* * *
“문이 열린다!”
혈족 중 한 명이 소리쳤다. 던전 게이트가 좌우로 벌어지더니 몬스터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새까맣다.
모양이 전부 다르다. 네 발로 걷는 놈이 있는가 하면 두 발로, 혹은 한 발로 걷는 놈도 있다.
그림자붙이
기괴한 생김새, 그리고 눈 깜짝할 사이에 급소를 베어버리는 공격성으로 이름이 높은 곤충형 몬스터였다. .
-끼르륵!
-치르르륵!
괴상한 울음소리와 함께 그림자붙이들이 달려들었다. 흑천의 혈족들은 흑투기를 일으키며 맞섰다.
“모두 공격! 물러서지 마라!”
“그 여자가 오기 전에 우리가 먼저 끝내놓는다!”
“이번에야 말로 흑천의 자존심을 되챶는 거다!”
용투기가 휘몰아치며 그림자붙이들을 휩쓸었다.
얼핏 보면 무계획적으로 싸우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진영을 짜서 움직이고 있었다.
플래티넘 등급의 몬스터와 싸우는 것은 흑천의 혈족이라 해도 어려운 일. 그럼에도 저들은 상당히, 아니 압도하고 있었다.
하지만 저 몬스터들 역시 플래티넘 등급. 이대로 끝날 리가 없었다.
끝없이 튀어나오던 그림자붙이들이 뚝 끊겼다. 혈족들은 무슨 일인가 싶어서 던전을 쳐다봤다.
“……갑자기 왜 저러는 거지?”
별안간 던전 입구가 확 벌어졌다. 마치 누군가가 입구를 좌우로 붙잡고 찢어버린 것 같았다.
두세 배로 넓어진 구멍으로 무언가가 서서히 걸어 나왔다.
마찬가지로 그림자붙이였다. 하지만 다른 개체와 명백히 달렸다.
3미터에 달하는 덩치. 열 개가 넘는 다리. 그리고 온몸에 빼곡히 돋아난 칼날.
그 위엄 넘치는 모습에 혈족들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드디어 우두머리가 나타나셨군.”
흑천의 혈족들 중에서 순혈이 입을 열었다.
“다들 정신 차려라!”
순혈이 큰소리로 외치자 다른 이들도 정신을 차렸다.
“대충 싸워서는 우리가 죽는다! 내가 신호를 내리면 동시에 달려들어라! 그럼 내가 놈의 숨통을 끊겠다!”
순혈이 주먹을 단단하게 움켜쥐었다. 용마기가 주먹에 응집되었다. 마치 이글거리는 불꽃을 손에 쥐고 있는 것 같았다.
“공격해라!”
순혈의 외침과 함께 혈족들이 일제히 달려들었다.
그 순간, 그림자붙이 우두머리의 몸에 달려 있던 칼날이 일제히 움직였다.
그리고 모조리 뒤로 튕겨나갔다.
“커억!”
“컥!”
곳곳에서 고통스러운 신음소리가 들려왔다.
모든 혈족들의 몸에는 칼로 베어낸 것 같은 길쭉한 자상이 박혀 있었다. 그곳에서 피가 끊임없이 새어나왔다.
“……쿨럭, 쿨럭.”
순혈 혈족도 예외는 아니었다. 다른 혈족들보다는 덜했으나 심각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설마 이 정도일 줄이야.”
순혈 혈족이 절망스러운 눈빛으로 우두머리 그림자붙이를 올려다봤다.
* * *
“이거 위험한데요.”
권한울이 창밖을 바라보며 말했다. 불
길한 예감이 들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전원 위기에 빠지고 말았다.
다른 혈족들은 영문도 모른 채 당했으나 권한울은 똑똑히 봤다.
그림자붙이 우두머리의 몸에 돋아난 칼날이 순식간에 늘어나서 혈족들을 베는 것을.
“가서 도와주고 올 게요.”
“그러실 필요는 없을 거 같습니다.”
“예?”
주하연이 말없이 창문을 쳐다봤다. 권한울도 그녀를 따라서 시선을 옮겼다.
우두머리 그림자붙이가 혈족들을 마저 정리하기 위해서 칼날을 흔들고 있었다.
그때였다.
하늘에서 누군가 떨어졌다.
둥글게 묶어놓은 머리. 장식 없이 단철한 장검 한 자루.
그리고 검은색 츄리닝.
‘……츄리닝?’
몬스터를 사냥하는데 츄리닝을 입는다? 자살행위나 다름없는 짓이었다.
방금 전에 혈족들이 그림자붙이 우두머리에게 얻어맞고 살아 있는 것도 갑옷을 입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지간히 실력에 자신이 있는 게 아니라면 그냥 미친 게 분명했다.
“……젠장.”
바닥에 쓰러져 있던 순혈 혈족이 이를 갈았다.
“또 너냐.”
여인은 순혈을 힐끔 쳐다봤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대신 장검을 쥔 채, 우두머리 그림자붙이에게 다가갈 뿐이었다.
-끼르르륵?
우두머리 그림자붙이가 여인에게 반응했다. 적이라는 것을 눈치 채고는 칼날들을 더욱 격하게 흔들기 시작했다.
-끼르륵!
칼날이 흐릿해진다. 수십 개의 잔상이 여인을 덮쳤다.
여인의 손이 움직였다. 자신을 향해 날아오던 수십 개의 잔상을 모조리 쳐냈다.
-끼륵?
그림자붙이 우두머리도 당황할 정도로 엄청난 움직임이었다.
-끼륵!
그림자붙이 우두머리의 몸에서 더 많은 칼날이 돋아났다. 다시 칼날을 휘둘러 여인을 공격했다.
그때, 여인이 움직였다.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칼날을 모두 막아내며 그림자붙이 우두머리에게 달라붙었다.
‘……엄청난데.’
여인은 그림자붙이 우두머리의 공격을 피하면서 역으로 칼날을 모조리 베어내기 시작했다.
칼이 움직일 때마다 그림자붙이 우두머리의 칼날이 땅으로 툭툭 떨어졌다.
-키르르륵!
그림자붙이 우두머리가 분노에 찬 괴성을 질렀다. 몸에서 새로운 칼날이 돋아났다.
그런데 그 크기가 심하게 컸다. 낫과 비슷하게 생긴 거대한 칼날 두 개가 좌우로 돋아났다.
-끼르르륵!
대형 칼날이 진동하기 시작했다. 진동이 절정에 달하자 그림자붙이 우두머리가 두 칼날을 동시에 휘둘렀다.
칼날이 교차하며 여인을 베었다.
여인은 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앞으로 튀어나갔다. 장검을 휘둘러 정면에서 받아냈다.
마치 몽둥이를 이쑤시개로 막아내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누가 봐도 결과가 뻔했다.
그때, 여인이 칼날을 비틀며 위로 쳐올렸다. 두 개의 대형 칼날이 미끄러지듯이 하늘 위로 치솟았다.
‘흘려 넘겼어.’
보고도 믿기 힘들 만큼 대단한 기술이었다.
칼날을 튕겨낸 여인은 곧바로 앞으로 튀어나갔다.
-끼륵!
그림자붙이 우두머리는 불길함을 느끼고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여인이 칼을 휘둘렀다.
아래에서 위로.
철검을 높이 올려 벤다. 그 순간, 권한울은 볼 수 있었다.
하늘을 벨 듯이 치솟는 거대한 검기를.
검기는 그림자붙이 우두머리를 사타구니부터 정수리까지 말끔하게 베어냈다.
그림자붙이 우두머리의 몸 정중앙에 얇은 선이 그려졌다. 이윽고 좌우로 나뉘며 쓰러졌다.
잘려나간 단면에서 검은 피가 솟구쳤다. 하늘 높이 떠올랐다가 떨어졌다.
피는 비가 되어 여인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대단한데.”
권한울은 자신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 플래티넘 몬스터를 단칼에 보낸 저 검기는 범상치 않은 것이었다.
권한울은 차에서 내려서 여인에게 다가갔다. 권한울이 가까이 갈 때까지 여인은 검은 피를 그대로 맞고 있었다.
“메이홍, 맞죠?”
권한울의 물음에 여인이 천천히 몸을 돌렸다.
얼굴에 검은 피가 덕지덕지 붙어 있었으나 곧바로 알아 볼 수 있었다.
예전에 봤을 때와 똑같았으니까.
“오랜만입니다. 그날 이후로 처음 보는군요.”
메이홍은 말없이 권한울의 목소리를 듣기만 했다.
“제가 여기 온 이유는 당신을…….”
거기까지 말했을 때, 갑자기 메이홍이 몸을 돌렸다.
“저기요?”
별안간 메이홍이 엄청난 속도로 튀어나갔다. 그리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홀로 남겨진 권한울은 멍하니 메이홍이 사라진 쪽을 쳐다봤다.
한참 뒤에야 이게 무슨 상황인지 깨달았다.
“거절당한 거 같은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