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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통이 깡패임-55화 (55/221)

<혈통이 깡패임 55화>

55화 신입 데려온다 (3)

권한울은 굳이 메이홍을 뒤쫓지 않았다.

어차피 그녀가 갈 곳은 뻔했다. 이 근처에 있는 캠프밖에 없었다. 지역 청소를 위해서 흑천 일가를 마련해둔 거점 말이다.

그보다 급한 건 혈족들의 상태였다. 아직 목숨은 붙어 있었으나 피를 너무 많이 흘렸던 것이다.

일면식도 없는 이들이지만 같은 가문의 혈족을 내팽개쳐두고 갈 수는 없었다.

간단한 응급처치를 끝낸 뒤, 이들을 모두 차량 태우고 이동했다.

다행히 차가 커서 부상자들을 모두 태울 수 있었다. 거의 짐을 싣듯이 꽉꽉 채워 넣어야 했지만 말이다.

그렇게 캠프로 향한 권한울은 바로 관리자부터 만났다.

“아이고…… 결국 이런 일이…….”

캠프의 관리자는 다친 혈족들을 보더니 한숨부터 내쉬었다.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메이홍에게 실력과 실적으로 밀리던 혈족들이 독단으로 플래티넘 던전의 토벌을 계획했던 것이다.

‘하긴 흑천의 혈족이 이런 치욕을 참을 리가 없지.’

그 자존심 강한 혈족들이 다른 누구도 아니고 메이홍에게 밀리는 것을 참을 리가 없다.

“메이홍은 여기 왔습니까?”

권한울이 신경 쓸 일이 아니었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메이홍이었다.

“역시 메이홍 씨를 찾아오셨군요. 메이홍이라면 방금 도착했습니다. 근데 오자마자 샤워실로 들어가서 바로 만나기는 힘드실 거 같습니다.”

“샤워실이라고요?”

권한울은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츄리닝만 입고 그림자붙이를 잡으러 온 것을 보고 상당히 게으를 거라고 생각했는데. 예상 외로 깔끔한 성격인 모양이었다.

“이상한 일이죠. 평소에는 몬스터 내장범벅이 되어도 언제 던전이 열릴지 모른다면서 버텼거든요.”

관리자도 이상하다는 투로 말했다

어쨌거나 지금 당장 메이홍을 만나는 건 불가능했다. 권한울은 하는 수 없이 기다리기로 했다.

관리자실을 나올 때였다.

밖에서 기다리겠다던 주하연이 한 청년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럼 주하연 씨,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말씀 편하게 하세요.”

“회장님과 함께하신 영웅께 그럴 수는 없죠.”

순혈의 흑천.

그것도 상당한 실력자였다.

권한울이 청년을 살피고 있을 때였다. 인기척이 느껴졌는지 청년과 주하연 둘 다 권한울을 돌아봤다.

“오, 저분이 바로 그 소문의 진혈이시군요.”

청년이 눈동자를 빛내며 말했다. 어째 이름보다 진혈로 더 많이 불리는 것 같았다.

“안녕하세요. 권한울이라고 합니다.”

“권형민이라고 합니다! 이번에 18번 대의 대장을 맡게 되었죠!”

심상치 않다 싶었더니 역시나 대장급이었다.

대장급이기는 하지만 그렇게 높은 권한을 가진 사람은 아닌 듯 했다. 부대를 이름이 아니라 번호로 부르는 것을 보면 말이다.

“무명대를 맡고 계셨군요.”

“부족한 몸이지만 그렇게 됐습니다.”

권형민이 뒷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무명대(無名隊)

이제 막 만들어진 부대로 뚜렷한 전공이 없기에 이름대신 번호로 불리게 된다.

모든 흑천의 부대는 무명대부터 시작하며 이후, 성과에 따라서 이름을 부여받게 된다.

이름 부여받은 부대, 성명대(盛名隊)부터 흑천의 진짜 전력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이렇게 만나 뵙게 돼서 영광입니다. 소문은 많이 들었는데…….”

권형민의 눈동자가 권한울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훑어 내렸다.

“……소문이 과장된 게 아니었군요. 오히려 부족한 게 아닐까 싶습니다.”

가늠하는 듯했던 권형민의 눈빛이 서서히 변하기 시작했다.

놀랍게도 그건 호승심이었다.

“가능하면 당신의 힘을 직접 확인해 보고 싶습니다만.”

그 말에 권한울은 실소를 터트렸다.

“제가 진혈이라는 걸 알면서도 굳이 확인하시려는 겁니까?”

많은 뜻을 품고 있는 말이었다.

흑천 일가를 비롯한 수많은 가문들은 혈통의 등급에 의해서 계급이 나뉜다.

잡혈(雜血), 열혈(劣血), 순혈(純血).

각 계급 사이에는 도저히 넘을 수 없는 벽이 존재한다.

그걸 알면서도 덤비겠냐는 뜻이었다.

“호랑이가 없는 산에서는 늑대가 왕이라지요.”

권한울은 의아해했다. 여우 아니었나?

“여태까지 왕으로 살아오던 늑대가 갑자기 호랑이가 나타났다고 해서 왕위를 넙죽 넘겨주겠습니까. 그동안 왕으로 살아온 자존심이 있는데.”

권형민의 양쪽 입 꼬리가 올라갔다. 송곳니가 드러날 정도로 크고 사나운 웃음이었다.

“하물며 그 호랑이가 아직 덜 자랐다면 말할 것도 없죠.”

권한울은 웃음소리를 흘리며 손을 내밀었다. 권형민은 망설임 없이 그 손을 잡았다.

그 순간, 맞잡은 손을 타고 용투기가 흘러들어왔다.

권형민의 용투기가 사납게 달려들었다. 권한울의 몸속을 타고 들어와 모든 것을 헤집어놓으려고 했다.

그러나.

용투기가 제대로 난동을 피우기도 전에 용마기가 그것을 집어삼켰다. 용투기는 저항할 틈도 없이 순식간에 밀려나갔다.

권한울의 용마기가 권형민의 몸을 타고 들어갔다. 권형민의 팔뚝이 꿈틀거리며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쿨럭.”

피를 토해내며 권형민이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그럼에도 권한울은 손을 놓지 않았다.

대신 권형민을 내려다보며 물었다.

“더 하시겠습니까?”

권형민은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권한울은 손을 잡아당겨 권형민을 일으켰다.

권형민은 무릎에 묻은 흙을 탁탁 털어냈다. 그런 뒤, 권한울에게 명함을 하나 건넸다.

권한울은 이걸 왜 주냐는 얼굴로 권형민을 바라봤다.

“제 명함입니다. 도움이 필요하면 부르십시오. 저와 제 부대는 당신과 좋은 관계를 맺고 싶으니까요.”

진심으로 하는 말이었는지. 권형민은 고개를 살짝 숙였다.

“가시려는 겁니까?”

“예, 이미 일찌감치 메이홍한테 거절을 당했거든요. 권한울 님께서는 부디 성공하시길 바라겠습니다.”

그렇게 말하며 권형민은 자리를 떠났다. 내상을 심하게 입었는지. 걸음걸이가 조금 불안정했다.

“축하드려야겠네요,”

“뭘요?”

“권형민 님을 복종시키셨잖아요.”

권한울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겨우 이런 걸로 복종을 한다고요?”

“흑천의 혈족 분들께서는 강직하지만 또 의외로 단순하시죠. 처음에는 온갖 핑계를 대면서 거부하다가도 결국 강자를 따르니까요.”

여전히 권한울로서는 이해가 잘 안가는 사고방식이었다.

하지만 그 자존심 강한 순혈을 굴복시켰다고 하니 그리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필요할 때, 도와주겠다고 말했죠?”

“명함까지 건네면서 하신 말씀이신 거짓말은 아닐 겁니다.”

“그러면 저야 좋죠.”

권한울은 명함을 주머니에 챙겨 넣었다.

“다른 팀은 또 안 왔나요?”

“권한울 님께서 안에 계실 때, 이미 다른 무명대의 대장을 세 분이나 만났습니다.”

“많이도 왔네요.”

“아, 그리고 성명대도 와 있답니다.”

“성명대도요?”

권한울의 눈동자가 커졌다. 무명대야 이제 막 출범을 했으니 메이홍을 탐낸다고 해도 이미 뿌리를 박은 성명대까지 왔을 줄은 몰랐다.

“그쪽은 대장이 아니라 대리인이 왔지만요.”

“왜 찾아오지 않는 거죠? 적어도 어느 부대인지 이름은 알고 싶은데요.”

“그쪽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걸요.”

반대?

의아해하던 권한울은 곧 그 의미를 깨달았다.

“……저보고 인사를 오라 이거군요.”

권한울이 전례를 찾아볼 수 없는 속도로 강해진 것은 사실이다.

세계에서 통할 실력을 갖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흑천의 진짜배기들에 비하면 부족한 것 또한 사실이었다.

그러니 대장도 아니고 대리인 따위가 저렇게 고자세로 나오지.

“참, 메이홍은 어떻게 됐나요?”

“씻고 있다고 하던데요. 좀 기다려야겠어요.”

그리 말하며 권한울이 혀를 찰 때였다. 별안간 건물 바깥이 소란스러워졌다.

권한울과 주하연은 출입구의 유리문을 통해 바깥쪽을 내다봤다.

다섯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그 중에서 가장 선두에 있는 사람과 눈이 마주쳤다.

굉장히 잘생긴 남자였다. 작은 체구 때문인지 얼핏 봐서는 남자인지 여자인지 구분이 잘 가지 않았다.

“응?”

“어?”

권한울도, 그 사람도 서로를 알아봤다.

“권후돈?”

“하, 한울이구나.”

메이 가문에 갈 당시, 흑천 일가는 세 명의 대표자를 뽑았다.

권한울, 권지석, 그리고 남은 한 명이 권후돈.

말을 더듬는데다 매사에 자신이 없는 못미더운 모습과 달리 실제 실력은 대단한 남자였다.

“오랜만이야. 뒤에 있는 사람들은 누구지?”

“마, 맞아. 내 팀원들이야. 메이 가문 때 잘 싸웠다고 가주님께서 허락해 주셨어.”

그렇게 말하는 권후돈의 얼굴은 어딘가 어두워보였다.

이상한 일이었다.

흑천 그룹에서 부대 창설을 허가받는 것은 대단한 영광이다.

그럼에도 저런 얼굴이라니.

“그, 그보다 혹시 너도 메, 메이홍 때문에 온 거야?”

권한울은 고개를 끄덕였다. 권후돈은 배시시 미소를 떠올렸다.

워낙 잘생긴 얼굴이다 보니 그것만으로 그림이 됐다.

“나, 나도 그래. 사실 나는 관심이 없는데…… 엄마가 꼭 데려와야 한다고…….”

“대장, 뭘 그렇게 주저리주저리 떠드는 거요?”

뒤에 있던 남자가 퉁명스러운 어조로 말했다. 대머리에 얼굴에 상처가 가득한 남자였다.

“갈 길이 바쁘니 빨리 갑시다.”

“조, 조금만 더 이야기를…….”

“권미 님께서 시키신 일을 잊은 건 아니겠지? 이따 질책을 당하고 싶으신 거요?”

남자가 다시 권후돈을 재촉했다. 권후돈은 어깨를 축 늘어트렸다.

“그, 그럼 나중에 보자. 나는 이만 갈 게…….”

권후돈은 팀원들과 함께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그들이 사라지자 권한울은 주하연을 향해 입을 열었다.

“제대로 부대를 장악하지 못하고 있는 거 같은데요.”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개개인의 능력은 뛰어난 듯 합니다만…… 통합이 제대로 되질 않았군요.”

그런 것을 팀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권한울은 아무래도 부정적이었다.

“아무리 봐도 리더감은 아닌 거 같은데. 어쩌다 저렇게 된 걸까요.”

“그거야 아마…….”

“우리 후돈이한테 지금 뭐라고 한 거니?”

등 뒤로 앙칼진 목소리가 들려왔다.

새빨간 정장을 입은 중년의 여인이 보였다. 그녀를 보자마자 권한울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다시 말해 봐! 방금 뭐라고 했는지!”

“아, 잘못 들으신 걸 겁니다.”

“지금 나한테 말대답하는 거니?”

중년의 여인이 눈살을 찌푸렸다. 권한울은 최대한 부드러운 어조로 그녀를 달랬다.

“그럴 리가요. 제가 어떻게 감히 고모님께 그러겠습니까.”

권미.

흑천의 회장 권선우의 막내딸이자 권한울 고모.

그녀가 눈앞에 있었다.

* * *

첫만남 때부터 권미는 권한울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

“지금 날 놀리는 거니?”

그리고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고모? 난 너 같은 조카를 둔 적 없어!”

“네, 죄송합니다.”

권한울은 권미의 말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보냈다. 그녀야 언제나 자신에게 이랬으니까.

“메이 가문 때는 어쩔 수 없이 널 도와줬지만 그렇다고 내가 널 인정한다는 뜻은 아니야!”

권한울은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숙였다. 섭섭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애초에 아무 관계도 아니었으니까.

“흑천의 혈족은 그에 맞는 품격을 가지고 있어야 해! 너는 태생부터 문제투성이에 밖에서 자라느라 품위도, 뭣도 없지.”

“권미 님, 부디 말씀을 조심해 주셨으면 합니다.”

주하연이 앞으로 나오며 말했다. 권한울이 말리려 했으나 소용없었다.

“회장님께서는 권한울 님을 인정하고 계십니다. 더 이상의 모독은 회장님을 욕하는 것과 마찬가지 입니다.”

따지기 애매했는지. 권미는 혀를 차며 고개를 돌렸다 .

“지금까지는 운이 좋아서 유명세를 좀 얻었지만 이제부터는 어림도 없어. 우리 후돈이가 나설 테니까.”

권한울은 침음을 삼켰다. 권미의 기대가 너무 과도한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네가 여기 있다는 건 그 메이 가문의 여식한테 볼일이 있다는 뜻이겠지? 미안하지만 그 아이는 후돈이의 팀에 들어올 거다.”

“벌써 이야기를 나누셨습니까?”

“아니.”

권한울은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김칫국부터 마셨다는 소리를 이렇게 당당하게 하다니.

“하지만 이걸 보여 주면 그 아이도 바로 우리 팀에 들어올 걸?”

권미가 옆구리에 기고 있던 보자기를 살짝 풀었다. 그러자 검집이 드러났다.

무척 익숙한 검이었다. 기억을 더듬던 권한울은 결국 떠올릴 수 있었다.

“……매중제일검의 검이잖습니까?”

“원래는 그 메이 가문 아이의 아버지가 쓰던 검이었다더구나. 그걸 매중제일검이 뺏어서 쓰고 있었고.”

권미가 이토록 자신만만해 하던 이유가 있었다.

“그걸 어떻게 손에 넣으신 겁니까?”

“전투가 끝나고 작은 아버님께 부탁해서 손에 넣었다. 나도 그 정도의 전공은 있으니까.”

사실 그 정도 전공 수준이 아니었다. 당시 본가에 남아 있던 메이 가문의 고수들 대부분을 막아선 이가 권미였다.

‘저런 보물을 써가면서까지 메이홍을 데려가려 하다니.’

매중제일검이 사용할 정도면 엄청난 가치를 가진 아이템일 게 뻔했다.

그걸 메이홍을 데려오기 위해서 선뜻 사용하다니.

‘권후돈을 위해서인가?’

자식인 권후돈의 팀을 위해서 권미가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 조금이나마 알 수 있었다.

“알았으면 쓸데없이 시간낭비하지 말고 이만 돌아가. 나는 그 아이를 데리고 갈 테니.”

문득 권한울의 시선이 권미의 뒤편으로 향했다. 익숙한 기척을 가진 여인이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메이홍이잖아?”

처음 봤을 때와 달리 츄리닝이 아니라 제대로 된 복장을 착용하고 있었다. 심지어 얼굴에 옅은 화장까지 마친 상태였다.

권미도 메이홍을 돌아봤다. 그녀를 알아보고는 걸음을 옮겼다.

“잘지냈니?”

메이홍은 권미를 향해 고개를 꾸벅 숙였다.

“권미 님, 인사드립니다.”

“날 바로 알아보다니 기쁘구나. 내가 여기 온 건 널 데려가기 위해서란다.”

“저는 그럴 생각이…….”

“이 검의 원래 주인이 너희 아버지라지?”

권미가 칼자루를 내보이며 말했다.

“날 따라오겠다고 약속하면 바로 돌려주…….”

“죄송합니다.”

메이홍은 다시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권미를 지나쳤다.

이런 상황은 예상치 못했는지. 권미의 얼굴이 당혹감에 딱딱하게 굳어버렸다.

권미를 지나친 메이홍은 권한울의 앞에 섰다.

“좋아요.”

그러더니 대뜸 뜻 모를 소리를 했다. 권한울은 눈만 깜빡거렸다.

그러자 심통이 났는지 메이홍이 화가 난 표정을 지었다.

“아이참, 저는 좋다니까요!”

“어…… 그러니까 뭐가 좋다는 겁니까?”

“절 데려가려고 오신 거 아니었어요?”

“그건 맞는데…….”

“전 좋다니까요.”

여전히 황당해 하는 권한울에게 메이홍이 다시 말했다.

“절 데려가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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