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혈통이 깡패임-65화 (65/221)

<혈통이 깡패임 65화>

65화 임무 준비 (3)

“오, 오랜만이야.”

권후돈이 떨리는 목소리로 인사를 했다. 반가워하는 눈치였지만 권한울은 그럴 수 없었다.

“네가 왜 여기에 있지?”

“그, 그게…… 나도 이번 임무에 참가하게 됐어.”

권한울은 인상을 찌푸렸다. 처음 듣는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회장님께 그런 소리는 못 들었는데?”

“당연히 못 들으셨겠죠. 제가 내린 결정이니까요.”

그때, 고리키 나나가 끼어들었다. 권한울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제가 추가로 저 사람의 팀을 고용했다고요.”

“이유가 뭡니까.”

“흑천 그룹의 지원은 고맙지만 아무래도 영 못미더워서요.”

고리키 나나가 검지로 안경의 중앙을 살짝 누르며 말했다.

“저도 나름대로 당신 팀에 대해서 알아봤어요. 인원은 겨우 세 명이고, 심지어 이번에 막 결성이 된 팀이더라고요?”

고리키 나나가 팔짱을 꼈다. 고압적인 말투로 소리쳤다.

“타카미네 가문은 판데모니엄에 위협을 받고 있어요. 그런데 그쪽 같은 팀만 믿고 있을 수는 없어서 제 나름대로 대책을 강구해본 거예요.”

“그래서 고용한 게 똑같은 흑천의 팀이란 말입니까?”

“괜히 트집 잡지 마세요. 이미 권미 님과 이야기가 다 끝났으니까요.”

권미라는 이름에 권한울은 인상을 썼다. 설마 했는데 그 여자가 수작을 부렸을 줄은 몰랐다.

“타카미네 료코 양도 알고 계셨습니까?”

타카미네 료코의 얼굴이 굳었다. 그녀는 심호흡을 한 뒤에야 입을 열었다.

“……처음 들어요. 나나 씨, 이런 결정을 내리기 전에 저한테 먼저 말씀을 해 주셨어야죠.”

타카미네 료코가 고리키 나나를 질책했다. 하지만 목소리가 무척 작았다.

“아가씨께서는 아직 이런 판단을 내리기에는 너무 어리세요.”

“이제 저도 성인이에요.”

“그래도 아직 경험이 부족하시잖아요. 자칫 잘못해서 그릇된 판단을 하면 어쩌려고 그러세요!”

“그건…….”

“제게는 아가씨께서 가문을 책임질 수 있을 때까지 아가씨와 가문을 지킬 의무가 있어요! 이 마음을 몰라주시는 건가요?”

고리키 나나의 항변에 타카미네 료코는 말수가 적어졌다.

권한울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이 가문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조금씩 파악이 되기 시작했다.

“타카미네 가문의 요청은 권선우 회장님께서 직접 검토하시고 결정을 내리셨습니다.”

권한울의 말에 타카미네 료코와 고리키 나나가 동시에 권한울을 돌아봤다.

“권선우 회장님께서는 저희 셋으로 충분하다고 판단하셨습니다. 그런데 타카미네 가문은 예정에 없던 행동을 했군요.”

권한울의 목소리가 조금씩 날카로워졌다.

“설마 회장님의 판단을 못 믿겠다는 겁니까?”

권한울의 으름장에 고리키 나나가 마른침을 삼켰다.

그때였다.

“이거 화가 단단히 나셨네.”

권한울은 고개를 돌렸다. 권후돈의 팀원 중 한 명이 실실 웃음을 흘리고 있었다.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지만 조금 진정하는 것도 괜찮을 거 같은데.”

“그쪽은 누구십니까.”

“아직도 내 얼굴을 모르는 사람이 있다니. 이거 좀 섭섭한데.”

남자는 머리를 긁적였다.

“락브레이커(Rockbreaker)이라 한다.”

권한울은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하지만 뒤에 있던 주하연은 달랐다.

“설마 이곳에서 당신을 볼 줄은 몰랐습니다.”

“오, 역시 그쪽은 날 알아봐 줄 거라 생각했어.”

락브레이커가 윙크를 날렸지만 주하연은 눈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하연 씨, 저 남자가 누군지 알고 계세요?”

“예, 마크 그리핀. 락브레이커라는 이명을 가지고 있는 세계랭커입니다.”

권한울은 놀란 얼굴로 남자를 쳐다봤다.

세계랭커가 어떤 존재던가. 전 세계에 존재하는 수억 명이 넘는 헌터들의 정점에 존재하는 이들이다.

심사 자격조차 까다롭기 짝이 없다. 하나만 있어도 초월자로 인정받는 S등급의 능력치를 세 개 이상 보유해야 하니 말이다.

“EU에서 공식적으로 지정한 지명수배자인 난봉꾼 카사노를 잡은 일로 큰 화제가 되었죠.”

권한울은 몰랐지만 생각보다 굉장한 유명인이었다.

루인 아스파담과는 다른 진짜 중의 진짜였다.

“너무 금칠을 해 주니까 좀 쑥스러운데.”

“최근에 소식이 들려오지 않는다 싶었는데. 설마 권미 님께서 당신을 영입하셨을 줄은 몰랐습니다.”

주하연의 말에 락브레이커가 묘한 표정을 지었다.

“나도 내가 흑천 그룹에 소속될 줄은 몰랐어. 근데 조건이 워낙 좋아서 안 들어갈 수가 없더라고. 그래서 지금은 이렇게…….”

대뜸 락브레이커가 권후돈에게 어깨동무를 했다.

체구가 작고 호리호리한 체형의 권후돈과 근육질의 락브레이커의 팔이 대비되었다.

“권후돈 대장 밑에서 일하고 있지. 아, 참고로 직책은 부대장 겸 보좌관이야.”

“라, 락브레이커 씨가 많은 도움이 되, 되고 있어요.”

권후돈이 나지막이 말했다. 아무리 봐도 대장과 수하 관계로는 보이지 않았다.

“이봐, 리틀드래곤.”

락브레이커가 권한울을 향해 말했다. 달갑지 않은 별명에 권한울은 살짝 울컥했다.

“일거리를 독차지 하지 못해서 화가 난 건 이해를 하지만 뭐 어쩌겠어. 이 업계는 강한 자가 뭐든지 독식하는 곳 아니야?”

입은 웃고 있지만 눈은 그렇지 않다. 가만히 있지 않으면 실력을 행사하겠다는 경고였다.

권한울도 웃음을 터트렸다. 흑천의 이름과 권위를 알고도 고개를 쳐드는 저 태도가 경이로웠기 때문이다.

“아무리 봐도 이쪽 팀이 숫자도 질도 더 뛰어난 거 같은데. 이번 임무를 진행할 동안에는 그쪽 팀도 내 명령을 들어줘야겠어.”

“내 명령이라고요?”

“아, 말실수했군.”

락브레이커가 웃음소리를 흘렸다. 권후돈을 더욱 강하게 끌어안으며 말했다.

“우리 대장 명령을 따라줘야겠어.”

임무의 주도권을 가져가겠다는 소리다. 선을 넘는 행동에 권한울은 조금씩 분노를 느꼈다.

“저기요.”

싸늘해진 공기 속에서 메이홍이 손을 들었다.

“세계랭커라면 이쪽에도 있는데요.”

메이홍이 주하연을 쳐다봤다. 주하연이 입을 열었다.

“저도 세계랭커입니다.”

그리고는 무표정한 얼굴로 덧붙였다.

“당신도 저도 똑같은 제로넘버링이죠. 서로 같은 처지일 텐데요?”

제로넘버링.

순위에 들지 못한 세계랭커를 뜻하는 말이다.

세계랭커인데 순위에 들지 못하다니. 모순된 말처럼 들리겠지만 사정이 있다.

수억이 넘는 헌터들 중에서 한줌이라고 해도 최소 1천 명이 넘기 때문에 모두를 순위를 매길 수 없었던 것이다.

세계랭커라 해도 순위를 부여받는 것은 500명까지.

달리 말하자면 그 500명이야 말로 최고 중의 최고라는 뜻이다.

“똑같은 제로넘버링이라도 격차는 존재하는 법 아닌가?”

락브레이커가 비웃음을 머금으며 말했다.

“제가 누군지 모르십니까?”

“알아. 흑천의 마녀. 모를 리가 없지. 하지만 결국 나랑 같은 제로넘버링 아닌가?”

도발적인 말에 주하연의 눈썹이 살짝 꿈틀거렸다.

“맞는 말씀이에요!”

그때, 고리키 나나가 목소리를 높였다.

“여기 계신 락브레이커 님께서 얼마나 유명한지 아세요? 이미 범죄자들도 여러 명 잡으셨고, 이미 방송에도 여러 번 출연하셨어요.”

그러고 보니 주하연도 락브레이커를 바로 알아봤다. 그의 유명세가 보통이 아니라는 뜻이리라.

“잠자코 이분의 말씀을 들으세요!”

“그건 안 되겠는데요.”

권한울이 딱 잘라 말했다.

“이번 임무를 먼저 받은 사람은 저입니다. 그런데 이제 와서 다른 팀의 명령을 들으라니. 납득할 수 없군요.”

“리틀드래곤. 날 상대로 자존심을 내세울 생각…….”

락브레이커는 말을 끝마칠 수 없었다.

어느새 메이홍이 그의 목에 칼끝을 대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 대장님이 말하고 있잖아요. 좀 닥치면 안 될까요?”

“이 건방진 년이…… 뒤지고 싶어서 환장했군.”

“할 수 있으면 해 보시던가요.”

세계랭커의 협박에도 메이홍은 눈조차 깜빡이지 않았다.

“그럼 계속 말하죠.”

권한울이 다시 입을 열었다.

“이번 임무를 지휘하는 사람은 접니다. 권후돈과 휘하 팀원들, 그리고 타카미네 가문은 제 말을 따라주셔야겠습니다.”

“이봐요! 그게 무슨 소리에요! 의뢰인은 우리 타카미네 가문이에요! 잠자코 따르기나 하세요!”

“뭔가 오해를 하고 있군.”

권한울이 고리키 나나를 노려봤다.

“나는 타카미네 가문의 명령을 듣기 위해서 이곳에 온 게 아니다. 먼저 도움을 요청한 것은 타카미네 가문이고 우리 흑천은 그 요청에 응했을 뿐이지.”

권한울의 목소리와 태도가 변했다. 그 위압적인 모습에 고리키 나나는 마른 침을 삼켰다.

“판데모니엄으로부터 어떤 방법으로 이 가문을 지킬지는 내가 결정한다. 너희는 잠자코 있으면 돼.”

“뭐, 뭐, 뭐라고요?”

폭언이라고밖에 볼 수 없는 말에 고리키 나나는 말까지 더듬었다.

“누가 흑천 아니랄까봐 성질머리 한 번 대단하군.”

락브레이커가 입 꼬리를 비틀었다. 고리키 나나와 다릴 그는 순순히 권한울의 말에 따를 생각이 없었다.

“그럼 어디 임무를 시작하기 전에 서열 정리부터 해볼까?”

락브레이커가 몸을 일으켰다. 권한울도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마주봤다.

그러다 별안간 시선을 돌렸다. 아무 것도 없는 창문을 빤히 쳐다봤다.

“이봐?”

락브레이커가 어리둥절한 얼굴로 되물었다. 권한울은 그를 무시한 채 주하연에게 말했다.

“하연 씨.”

“권한울 님께서도 감지하셨군요.”

“몇 명인지는 정확히 모르겠네요.”

“열 명이 넘습니다. 아마 곧 들이닥칠 겁니다.”

이 자리에서 둘의 대화를 이해한 사람은 없었다. 옆에 있던 메이홍이 원망스럽게 말했다.

“또또 둘만 아는 이야기한다.”

메이홍이 푸념이 끝나기가 무섭게 저택의 창문이 동시에 깨져나갔다.

깨진 창문으로 괴한들이 난입했다.

“타카미네 료코는 어디 있…….”

말이 끝나기도 전에 괴한의 머리가 뒤로 확 젖혀졌다. 그대로 땅으로 쓰러졌다.

다른 괴한들이 당황한 얼굴로 아래를 쳐다봤다

괴한의 이마에 둥근 구멍이 뚫려 있었다.

“약속 시간이 오늘까지라고 들었는데.”

권한울이 쭉 뻗은 손가락을 거둬들였다.

검지와 중지. 두 개의 손가락에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페르드랑스라는 놈. 성질머리 한 번 급하군.”

핑거 불릿(Finger Bullet).

아이언펭 길드에서 얻은 스킬을 처음으로 선 보이는 순간이었다.

권한울은 손가락을 바라보며 감상평을 말했다.

“쓸 만한데?”

괴한들이 당황해서 소리쳤다.

“흐, 흩어져! 놈의 주의를 분산시켜!”

“오러를 일으켜라! 몸을 보호해!”

선명한 오러가 괴한들의 갑옷에 덧씌워졌다. 솜씨가 상당히 뛰어난 게 보통 놈들이 아니었다.

하지만 보통이 아니기는 권한울도 마찬가지였다.

권한울이 열 손가락을 펼쳤다. 두 번째 마디를 굽혔다. 그리고 두 팔을 동시에 휘둘렀다.

열 발의 마탄이 동시에 쏟아졌다. 마탄은 괴한들의 오러와 갑옷을 쉽게 관통했다.

“컥!”

“으억!”

“끄어억!”

괴한들이 비명을 지르며 꼬꾸라졌다. 하지만 아직 남아 있는 괴한들이 있었다.

“뭘 가만히 보고만 있어! 빨리 타카미네 료코를 잡아!”

“하, 하지만 저, 저 놈이…….”

“이 멍청아! 여기서 죽으나 그 새끼한테 죽으나 그게 그거야!”

남은 괴한들이 다시 달려들었다. 권한울은 다시 마탄을 장전했다.

그보다 메이홍이 먼저 움직였다. 앞으로 달려 나가며 넓게 칼을 휘둘렀다.

반월 모양의 검기가 괴한들의 허리를 베고 지나갔다. 괴한들은 상체와 하체가 분리된 채로 땅으로 떨어졌다.

“제가 해도 됐는데요.”

“원래 대장은 뒤에서 명령만 내리는 거예요.”

메이홍이 칼을 거두며 말했다. 그리고 생긋 웃으며 주하연에게 말했다.

“그죠 언니?”

“아직 더 있습니다.”

“예?”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창문으로 또 다른 침입자들이 들어왔다.

놀랍게도 침입자들은 천장을 타고 달리기 시작했다. 첫 번째 괴한들보다 훨씬 수준이 높다는 증거였다.

“꺄, 꺄아아악! 마, 막아요! 막아!”

고리키 나나가 비명을 지르며 타카미네 료코의 등 뒤에 숨었다.

하지만 높은 천장을 타고 달려오는 탓에 손을 쓰기 쉽지 않았다.

그 사이 침입자들은 타카미네 료코의 머리 위까지 도달했다.

권한울은 재빨리 마탄을 발사하려 했다. 그보다 먼저 주하연이 손가락을 내밀었다.

주하연의 손가락에 검은 마력이 모여들었다. 그와 동시에 침입자들의 머리에도 검은 고리가 생겨났다.

주하연이 손가락을 위로 세웠다. 그 순간, 침입자들이 천장에 짓눌렸다.

퍼벅

소리는 그다지 크지 않았다. 하지만 침입자들은 전신이 으스러진 채 천장의 얼룩으로 변했다.

마치 벽에 붙은 모기를 손바닥으로 내려잡은 것 같은 모습이었다.

“실수. 천장이 더러워졌네요.”

주하연이 마력을 거둬들였다. 그제야 천장에서 핏물과 살점이 주르르륵 흘러내렸다.

피와 살점이 바닥을 물들였다. 그 광경을 보며 주하연이 담담히 말했다.

“어차피 생포해봤자 쓸 만한 정보를 얻기는 힘들 것 같아서 바로 죽였습니다.”

주하연의 말에 트집을 잡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방금 전에 그녀가 보여준 한수가 그만큼 섬뜩했기 때문이다.

“큼.”

권한울은 헛기침을 하며 주의를 끌었다.

“침입자들이 이렇게 저택의 경비원들은 뭘 했는지 모르겠군요.”

그리고 차분하지만 싸늘한 어조로 말했다.

“게다가 이쪽에 계신 분들 중에서도 알아차린 분이 안 계셨고요.”

그리 말하며 권한울은 락브레이커를 쳐다봤다. 락브레이커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타카미네 료코 양.”

“네?”

권한울은 고리키 나나 쪽에는 눈길도 주지 않았다. 오직 타카미네 료코에게만 말했다.

“계승식까지 저택의 경비는 저희 팀이 맡도록 하는 게 좋겠습니다. 허락해 주시겠습니까?”

말이 허락이지 사실상 선포나 다름없었다.

권한울의 말에 타카미네 료코는 곧바로 대답했다.

“네, 부탁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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