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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통이 깡패임-67화 (67/221)

<혈통이 깡패임 67화>

67화 각자의 속내 (2)

그날 밤, 권한울은 저택의 옥상에 올라와 있었다.

혼자 밤바람을 견디는 모습이 처량하게 짝이 없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현재 저택 전체를 감지할 수 있는 사람은 권한울 혼자뿐이었기 때문이다.

주하연이 있었지만 지금은 안에서 쉬고 있었다. 저택 전체에 결계를 치느라 무리를 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락브레이커를 믿자니 심하게 불안했기 때문에 권한울이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권한울은 먼 곳을 바라봤다. 저택의 울타리를 따라서 반투명한 막이 높이 솟아나 있었다.

주하연이 만들어낸 결계로 저택 내부의 사람에게만 보이며 허락받지 않은 이가 침입하면 경보가 울린다.

“저게 마법이란 말이지.”

마녀 혹은 마법사들만이 사용할 수 있다는 비밀스러운 지식.

마법은 스킬과는 전혀 다른 원리를 가지고 있다. 굳이 말하자면 학문에 가깝다고 들었다.

그 외에는 권한울도 알고 있는 게 전혀 없었다.

“잘 모르지만…… 마법사 중에도 하연 씨 같은 사람이 흔할 것 같지는 않은데.”

이 넓은 부지를 감쌀 정도로 거대한 결계를 지속적으로 유지한다.

마법에 문외한인 권한울이 봐도 보통 대단한 일이 아니었다.

“순찰은 잘 돌고 있나?”

권한울은 아래쪽을 쳐다봤다. 권후돈의 팀원들이 조를 짜서 저택 주변을 순찰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때였다.

별안간 권한울이 뒤를 돌아봤다.

“어랏.”

그러자 놀란 얼굴을 하고 있는 메이홍이 보였다.

“은신 스킬로 기척을 차단했는데. 어떻게 아셨어요?”

“이 정도도 못해서야 되겠습니까.”

“그렇게 말하면 제가 실력이 없는 거 같잖아요.”

메이홍이 섭섭하다는 듯이 말했다.

“아까 낮에도 그렇고 권한울 님은 감각이 되게 뛰어나시네요.”

그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흑룡혈을 통해 얻은 용의 본능 덕분에 감각이 예리해진 것은 맞다.

하지만 낮의 침입과 메이홍을 알아차릴 수 있었던 것은 권속혈 덕분이다.

권속혈을 사용하면 주변 생명체의 정신력을 느낄 수 있다. 그 덕분에 적들을 미리 감지해낸 것이다.

“춥고, 배고프고, 초라하실까봐. 이것저것 챙겨왔어요.”

“초라한 건 뭡니까.”

권한울이 딴죽을 걸자 메이홍이 웃음을 터트렸다. 그러면서 권하울의 어깨에 담요를 덮었다.

“스프도 받아왔어요. 저택 요리사가 솜씨가 좋더라고요.”

메이홍이 보온도시락의 뚜겅을 열어서 내밀었다.

권한울은 도시락을 받고 스프를 떠먹었다. 마침 출출했던 터라 스프가 꿀떡꿀떡 넘어갔다.

조촐한 야식을 즐기고 있을 때였다. 권한울의 시야에 누군가 눈에 들어왔다.

타카미네 료코가 정원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함부로 움직이지 말라고 했는데.”

주하연이 결계를 치면서 당부했던 말이 있다. 결계의 성능은 뛰어나지만 맹신해서는 안 된다고.

권한울이 옥상에서 대기하고 있던 이유도, 권후돈 네팀이 순찰을 돌고 있는 이유도 만일의 사태를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잠깐 갔다 올게요.”

권한울은 도시락과 담요를 내려놓고 타카미네 료코가 있는 곳으로 뛰어내렸다.

“어머!”

타카미네 료코가 깜짝 놀라서 멈췄다.

“밤늦게 어디를 가시는 겁니까.”

“아…… 잠깐 일을 좀 하려고요.”

“일이라뇨?”

타카미네 료코가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장미나무를 가리키며 말했다.

“가지치기를 해야 해서요.”

권한울은 살짝 한숨을 내쉬었다.

“위험하니 함부로 움직이면 안 된다고 말씀드렸을 텐데요.”

“죄송해요. 오늘 다 끝내지 못한 일이 남아 있어서요…….”

“사과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이 집의 주인은 당신이잖습니까.”

그 말에 타카미네 료코가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화나신 거 아니세요?”

“그렇다고 의뢰인을 뭐라 할 수야 없죠.”

권한울은 자리를 비키며 말했다.

“마저 일을 끝나시죠. 저는 혹시 모르니 여기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감사해요.”

타카미네 료코가 고개를 꾸벅 숙였다. 그리고 정원용 가위를 들고 장미나무의 가지를 툭툭 잘라내기 시작했다.

권한울은 뒤로 물러서서 기다렸다.

“미안해.”

특이하게도 타카미네 료코는 가지를 자를 때마다 사과를 했다.

“많이 아프지?”

그 이상한 행동에 권한울을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미안한데 왜 가지치기를 하는 겁니까?”

“그래야 나무가 잘 자라니까요.”

타카미네 료코가 대답했다.

“죽거나 쓸모없는 가지를 잘라내야 나무가 더 건강하게 자라나거든요. 가슴 아프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에요.”

그렇게 말하며 타카미네 료코는 계속 가지를 잘라냈다.

권한울은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봤다

식물을 가꾸는 데는 관심이 없다. 다만 타카미네 료코와의 대화에서 묘한 위화감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잠시 후, 일이 끝났다. 타카미네 료코는 권한울을 향해 꾸벅 고개를 숙였다.

“기다려주셔서 감사해요.”

“아닙니다.”

갑자기 타카미네 료코는 권한울을 지긋이 바라봤다.

“하고 싶은 말씀이라도?”

“권한울 님은 굉장히 강하시네요.”

뜬금없는 말이었다.

“저는 타카미네 가문과 병원을 물려받기 위해서 어릴 적부터 의학을 배웠어요. 헌터를 치료하는 건 일반인을 치료하는 것보다 훨씬 어려워서 알아야할 게 많았죠.”

타카미네 료코가 흥미롭다는 듯이 말했다.

“인체 구조는 물론이고 마력에 대해서도 알아야 했어요. 덕분에 헌터를 볼 때마다 이 사람이 어떤 수준인지 가늠이 되더라고요.”

타카미네 료코가 권한울에게 가까이 다가왔다. 손을 잡더니 무언가를 올려놓았다.

“이건…….”

“잘 갖고 계세요. 꼭이에요?”

신신당부를 한 뒤, 타카미네 료코는 저택 안으로 들어갔다.

“……,”

권한울은 그녀가 주고 간 물건을 몇 번 만지작거리다가 주머니에 넣었다.

그런 뒤, 다시 옥상으로 뛰어올랐다.

“갔다 왔…… 응?”

그런데 옥상 위에는 메이홍 말고 다른 사람이 한 명 더 있었다.

“아, 안녕.”

권후돈이 어색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 * *

권한울은 우선 메이홍에게 물었다.

“언제 왔데요?”

“꽤 됐어요. 정원에 계시다고 말해도 그냥 여기서 기다리겠다고 하던데요.”

권한울은 권후돈을 향해 물었다.

“무슨 일이지?”

“그, 그게…… 이걸 도, 돌려주려고…….”

권후돈이 비단에 쌓인 길쭉한 물건을 내밀었다. 권한울은 물건을 받고 비단을 걷어 확인했다.

물건의 정체는 장검 한 자루였다.

“이건…….”

예전에 몇 번이고 본 적이 있는 검이었다. 권한울은 메이홍을 돌아봤다.

“……아빠,”

메이홍이 멍하니 중얼거렸다.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것만 같았다.

권한울이 장검을 내밀었다. 메이홍은 장검을 품에 꼭 껴안았다.

“왜 검을 돌려줬지?”

메이홍의 영입에 실패했을 때, 권미는 이 검을 녹여버리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권미의 성격을 생각하면 실제로 그렇게 하려고 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어, 엄마는 없애라고 했지만…… 유, 유품이잖아. 돌려주는 게 오, 옳다고 생각했어.”

권후돈이 더듬거리는 말투로 말했다.

“……너의 독단이었다고?”

“으, 응.”

“들키면 큰일 날 텐데.”

“괘, 괜찮아. 엄마는 나한테 흐, 흑천의 긍지를 잊지 말라고 하셨거든. 그, 그 말을 따랐을 뿐이야.”

권한울은 너털웃음을 터트릴 수밖에 없었다.

“고맙다.”

“저도…… 감사……드려요…….”

메이홍도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다. 권후돈이 다시금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아, 아니야. 당연히 해, 해야 할 일인데.”

* * *

“저저 등신 새끼.”

저택의 뒤편.

락브레이커는 옥상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들으며 혀를 찼다.

“흑천의 긍지? 지랄하네. 저딴 등신을 언제까지 대장으로 모셔야 하나.”

락브레이커의 푸념에 옆에 있던 다른 팀원이 물었다.

“예? 무슨 말씀이십니까?”

“아, 너희는 못 듣지. 됐다.”

락브레이커쯤 되니까 옥상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지. 다른 팀원들은 어림도 없는 이야기였다.

“그보다 전부 모였냐?”

“예, 그렇습니다.”

락브레이커는 눈앞에 앉아 있는 이들을 쳐다봤다. 전부 권후돈의 팀원들이었다.

순찰을 돈다는 핑계로 몰래 이곳에 모이도록 했다.

“우리 대장을 어떻게 생각하느냐?”

팀원들이 서로의 얼굴을 쳐다봤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불만이 가득해 보였다.

“물어볼 것도 없었나? 하긴 말도 제대로 못하는 병신을 누가 따르겠어?”

팀원들이 전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걱정마라. 내가 있으니까. 앞으로 나만 믿고 따라와. 그럼 모든 일이 잘 풀릴 거다.”

“대장을 배신하라는 소리입니까?”

누군가 물었다. 락브레이커는 인상을 썼다.

“멍청한 새끼.”

“예?”

“배신? 그딴 걸 했다가 흑천에 찍히면 다 죽는 거야.”

락브레이커가 주먹을 꽉 움켜줬다. 팀원들의 얼굴이 살짝 굳었다.

“게다가 우리 대장의 뒤에 있는 사람이 누구냐? 권미야. 흑천 그룹의 실세 중에 한 명이라고. 기껏 연줄을 잡았으니 최대한 이용해 먹어야 하지 않겠냐?”

“그럼 부대장님만 따르라는 게 무슨 소리인지…….”

락브레이커는 웃으며 말했다.

“별 거 없고. 중요한 순간에 대장보다 내 명령을 우선시 하면 된다는 거지. 알겠냐?”

대놓고 권후돈을 허수아비로 만들겠다는 소리였다.

하지만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 중에서 반대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 * *

이후로 며칠이 더 지났다.

그동안 권한울은 저택의 방범에 총력을 기울였지만 습격은 한 번도 발생하지 않았다.

“무슨 생각이지?”

그렇다고 마음을 놓을 수도 없었다. 그 순간이 가장 위험하기 때문이다.

어느새 일주일이 지나고 계승식 당일이 되었다.

저택의 사용인들은 아침부터 분주하게 움직여야 했다. 타카미네 가문의 계승식이 열리는 장소는 저택의 연회장이라 준비해야할 게 많았기 때문이다.

“근데 이게 왜 안 묶이는 거야.”

권한울도 아침부터 거울 앞에서 넥타이와 씨름해야 했다.

명색의 계승식인데. 대충 입고 경호를 설 수야 없었기 때문이다.

“하인켈이라는 양반은 자동 입복 기능도 안 넣고 뭘 했대.”

권한울이 끙끙거리며 넥타이 줄을 맬 때였다.

“언제 나오세요?”

문이 열리더니 메이홍이 들어왔다. 그러더니 번개에 맞은 것처럼 정지했다.

“왜 그러세요?”

“네? 아, 그, 그게…….”

메이홍의 얼굴이 살짝 달아올랐다.

평소와는 다른 모습에 권한울은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무슨 일 있습니까?”

“그, 그게 아니라…… 저, 정장이 자, 잘 어울리시는구나 싶어서요.”

난데없는 말에 권한울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그런데 넥타이 때문에 고생이신 거 같네요.”

메이홍이 황급히 말을 돌렸다. 권한울은 넥타이 끊을 당기며 물었다.

“보고 있지만 말고 좀 도와주시죠.”

“저도 넥타이는 어떻게 매는지 잘 몰라서…… 하연 언니 불러올 게요!”

메이홍이 문밖으로 쌩 도망쳤다.

그렇게 몇 분이 지났을까.

“권한울 님, 안으로 들어가겠습니다.”

노크 소리와 함께 주하연이 들어왔다.

“넥타이 때문에 고생 중이라고 들었습니다.”

“……부끄럽게도 아직도 서투네요.”

주하연이 가까이 다가오더니 넥타이 줄을 넘겨받았다. 그리고 부드러운 손놀림으로 넥타이를 매기 시작했다.

“메이홍이 난리던데요.”

“왜요?”

“잘 어울린다고요.”

뭐가 잘 어울린다는 걸까. 권한울이 물으려던 찰나, 주하연이 떨어졌다.

“다 됐습니다.”

권한울은 거울에 대고 넥타이를 살펴봤다. 완벽한 솜씨였다.

“언제나 신세를 지네요.”

“아닙니다. 언제든지 환영인 걸요.”

주하연이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그때, 다시 노크소리가 들려왔다.

“권한울 님, 손님께서 오셨습니다.”

저택 사용인의 말에 권한울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손님이라니? 나한테?

“들어가겠습니다.”

문이 열리더니 사용인과 중년의 남성이 함께 들어왔다.

나이에 비해 건장한 체격을 가지고 있는 남성이었다. 그만큼 자기 관리에 철저하다는 뜻이리라.

“직접 얼굴을 맞대는 건 처음이군.”

남성이 손을 내밀며 말했다.

“노무라 마사타카라고 하네.”

그 말에 권한울은 임무 전에 머릿속에 집어넣었던 인물관계도를 떠올렸다.

노무라 마사타카.

한때 타카미네 헌터종합병원의 전임교수였으며 지금은 임시 병원장이라는 직책에 있는 남자다.

타카미네 가문의 전대 가주가 죽은 이후, 병원의 모든 권력은 휘둘러온 남자이기도 했다.

“병원장님이셨군요. 뵙게 되어 기쁩니다.”

“흑천의 기대주께서 한눈에 알아봐주시니 어깨가 으쓱한 걸?”

권한울의 말에 노무라 마사타카가 미소를 지었다.

“그런데 제게 무슨 볼일이십니까?”

“한 가지 묻고 싶은 게 있어서 말이야.”

“묻고 싶은 거라뇨?”

노무라 마사타카가 은밀하게 속삭였다.

“혹시 환골탈태(換骨奪胎)에 관심 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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