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통이 깡패임 73화>
73화 배신자들 (3)
권한울은 시선을 옮겼다.
잔뜩 얻어맞아서 피투성이가 된 권후돈이 보였다. 퉁퉁 부어오른 얼굴 사이로 어리둥절한 눈동자가 보였다.
“수고했다.”
권한울은 짧게 말했다.
그 말이 뭐라고 권후돈은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떨어트렸다.
“어머니께서 걱정을 많이 하시더라.”
권한울은 권후돈의 어깨에 손을 올려놓았다. 그러자 황금빛이 권후돈의 몸을 감쌌다.
황금령(黃金聆)
황금사과를 섭취하고 얻은 회복 스킬을 사용했다. 레전더리 등급답게 권후돈의 얼굴에 있던 붓기가 순식간에 가라앉았다.
“조금 쉬고 있어.”
권후돈을 치료한 다음, 권한울을 타카미네 료코를 향해 말했다.
“타카미네 양, 늦어서 죄송합니다.”
“괜찮아요. 와주신 것만 해도 감사한 걸요. 그런데…….”
타카미네 료코가 무너진 입구를 바라보며 물었다.
“굳이 이렇게 부술 필요가 있었나요? 제가 열쇠를 드렸잖아요.”
“열쇠요? 이거 말씀이십니까?”
권한울은 품에서 원판을 꺼냈다. 타카미네 료코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거 맞아요.”
“어떻게 쓰는지 몰라서 그냥 부수고 왔습니다.”
“……아.”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이었던 모양이다. 허당을 연기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모두 연기였던 것도 아닌 듯 했다.
“열쇠의 사용법을 모르면 은신처의 위치도 모르셨을 텐데. 어떻게 찾아오신 거죠?”
“그건 유능한 팀원의 도움을 받았죠.”
마침 입구 쪽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메이홍이 잔해를 징검다리처럼 밟으며 내려오고 있었다.
“권한울 님, 혼자서 막 달려가시면 어떻게 해요.”
메이홍이 원망스러운 어조로 말했다. 권한울은 다시 타카미네 료코에게 설명했다.
“저 친구가 이런 쪽으로 교육을 많이 받아서요.”
메이홍은 메이 가문에서 암살자로서 교육을 받았다.
교육 받은 내용 중에는 저택의 구조를 보고 은신처의 위치를 유추해내는 것도 있었다.
지난 며칠간, 메이홍은 타카미네 저택을 지겹게 돌아다녔다.
대형 식당 아래에 은신처가 있다는 것쯤은 이미 파악하고 있었다.
굳이 권한울에게 말을 안했을 뿐이었다.
“두 분만 오신 건가요?”
“그렇습니다. 걱정되십니까?”
“아뇨, 저는 제 눈을 믿어요.”
타카미네 료코는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주하연 없이 두 명만 왔다고?”
페르드랑스가 둘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어리석은 선택을 했군. 이렇게 말해도 모르겠군. 이제 막 도착해서 무슨 상황인지 전혀 모를 테니 말이야.”
“알고 있습니다. 대충 들었거든요. 당신이 여기 있는 것도, 배신자들이 나왔다는 것도 이미 알고 있습니다.”
페르드랑스의 얼굴에 의문이 떠올랐다.
“그걸 알면서도 이곳에 왔다? 공명심에 눈이 멀었나? 아니면 그동안 유명해졌다고 자만심에 빠진 건가?”
“둘 다 아닙니다만.”
“그럼 이 페르드랑스가 만만하게 보였나?”
“그것도 아니지만…….”
권한울은 주변을 둘러봤다. 권후돈의 팀원들과 생인형, 마지막으로 페르드랑스를 쳐다봤다.
“나 혼자서 안 될 것도 없어 보이는데.”
그 말에 페르드랑스는 웃음을 터트렸다.
“세계랭커도 아닌 주제에 이 자리를 혼자서 해결할 수 있다?”
페르드랑스는 권한우링 정확히 어느 정도 수준인지 모른다.
흑천 일가는 몹시 폐쇄적인 곳이다. 권한울 정도 되는 유명인의 정보도 결코 유출시키지 않았다.
“S급 능력치도 하나밖에 갖추지 못한 몸으로 이 자리를 혼자서 해결할 수 있다?”
하지만 고수는 하수를 알아보는 법이다.
권한울을 처음 봤을 때, 페르드랑스는 그의 수준을 가늠해낼 수 있었다.
“권한울, 이래봬도 나는 널 제법 고평가하고 있어. 하지만 현재의 네 실력으로는 여기 있는 생인형 한 명 죽이기도 힘들 거 같은데?”
페르드랑스가 벽면에 붙어 있는 생인형 한 명을 가리켰다.
“그쪽도 잘 모르는 거 같은데요.”
“무슨 말이지?”
“아, 처음부터 여기 처박혀 있으면 못 봤겠네. 내가 저택을 공격한 생인형을 어떻게 만들어놨는지. 그렇죠?”
페르드랑스는 잠시 당황했다. 저택의 생인형들이 뭐 어쨌단 말인가?
눈속임으로 보내기는 했지만 그놈들도 만만한 것들은 아니다. 권한울의 수준으로는 어쩌지 못했을 텐데?
“……하찮은 실력으로 말이 너무 많군. 설마 락브레이커에게 한 방 먹여서 자신감이 붙은 건가?”
페르드랑스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무너졌던 벽에서 폭발이 일어났다. 뻥 뚫린 구멍에서 락브레이커가 튀어나왔다.
“권한울! 이 새끼가! 내 얼굴에 주먹질을 해? 넌 반드시 내가 죽여주마!”
기습적으로 나선파에 얻어맞고도 락브레이커는 멀쩡했다. 약간의 충격을 받은 기색도 없었다.
“락브레이커의 마음대로 해 주고 싶지만 그래서야 아깝지.”
페르드랑스가 어깨를 으쓱했다. 그리고 팀원들에게 손짓을 했다.
“죽이지 말고 사로잡아라.”
한 마디를 덧붙였다.
“10분 내로 붙잡지 못하면 잠복독을 발동시키겠다.”
생명에 대한 위협은 사람의 능력을 극한까지 이끌어내는 법.
페르드랑스의 말에 팀원들의 눈동자가 돌아갔다. 누가 먼저라고 할 거 없이 권한울을 향해 달려들었다.
“메이홍.”
“예!”
“타카미네 료코 양을 보호하세요.”
권한울은 재빨리 메이홍에게 명령을 내렸다.
“다 같이 덮쳐!”
“반드시 잡아야 해!”
그 사이, 팀원들은 넓게 퍼져서 권한울을 포위했다.
“후우.”
권한울은 모든 마력을 끌어올렸다. 그 모든 마력을 정장에 흡수시켰다.
그 순간, 권한울을 포위하고 있던 팀원들은 보았다.
권한울이 입고 있던 검은 정장이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꿈틀거리는 모습을.
그리고 권한울의 등 뒤로 어떤 형상이 나타나는 광경을.
“……드래곤?”
누군가 중얼거린 찰나.
용의 포효가 그들을 모두 날려버렸다.
* * *
드래곤피어.
용종 몬스터 중에서도 특히 강력한 존재들만이 사용할 수 있는 고유한 스킬.
“헉, 흐어억!”
“머리…… 내 머리……!”
격이 낮은 존재는 피어에 노출된 것만으로 극심한 충격을 받는다. 심하면 목숨을 잃는 경우도 있다.
“마, 마력이 움직이질 않아…….”
“모, 몸에 힘이…….”
그뿐만이 아니다. 마력의 흐름을 뒤집어놓으며 모든 능력치를 급락시킨다.
드래곤피어에 영향을 받은 건 팀원들만이 아니었다. 생인형들도 똑같이 바닥에 쓰러진 채 괴로워하고 있었다.
단 한 번 사용한 것만으로 페르드랑스의 모든 전력을 무용지물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어이가 없군.”
페르드랑스는 헛웃음을 터트릴 수밖에 없었다.
“벌써 놀라는 건 이른데.”
권한울은 품에서 반지를 꺼냈다. 루비를 깎아내린 것 같이 생긴 그것을 다섯 번째 손가락에 착용했다.
<‘색욕의 반지’를 소지에 착용하셨습니다.> <다섯 번째 기능이 해금됩니다.>
<‘권속혈’의 권능이 크게 강화됩니다.> 색욕의 반지는 착용하는 손가락에 따라서 총 다섯 가지의 능력을 쓸 수 있다.
그리고 소지에 착용했을 때 쓸 수 있는 능력은.
“모두 들어라.”
환각.
“옆에 있는 놈이 적이다. 죽여라.”
한순간, 은신처 내부에 정적이 찾아왔다.
팀원들, 그리고 생인형들은 각자 옆에 있는 사람들을 쳐다봤다.
이윽고 사방에서 피비린내가 터져 나왔다.
“여기 있다! 여기 권한울이야!”
“죽어! 네가 죽어야 내가 살아!”
“아, 아아악!”
아비귀환이 따로 없었다. 그 끔찍한 광경에 페르드랑스마저 입을 다물 정도였다.
그때, 누군가 고함을 질렀다.
“권한울!”
락브레이커가 옆에서 튀어나왔다. 마력 능력치가 높은 탓에 다른 팀원들과 달리 그는 환각에 걸리지 않은 상태였다.
“방심했구나!”
락브레이커가 주먹을 휘둘렀다. 폭발이 권한울이 있던 자리를 완전히 날려버렸다.
“으하핫! 이제 속이 뻥 뚫리는구나!”
“그거 잘됐네.”
락브레이커의 웃음소리가 딱 멈췄다. 폭연이 가라앉자 멀쩡하게 서 있는 권한울의 모습이 보였다.
“어, 어떻게…….”
“장비 차이.”
“뭐?”
권한울이 양손을 펼쳤다. 손에 용마기가 모여들었다.
“아까는 얕잡아봐서 미안했다.”
락브레이커가 당황하며 다시 주먹을 쥐었다.
“이번에는 제대로 한 방 먹여주지.”
“지랄!”
락브레이커가 주먹을 내리치려 했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권한울이 손을 뻗어 그의 주먹을 붙잡았다.
현룡승천공 기본형(玄龍昇天功 基本形)
유격식 역행(柳擊式 逆行)
락브레이커의 주먹에 담겨 있던 힘과 마력이 비틀린다.
권한울에게 향해야 할 것이 반대로 움직인다. 그 결과 관절이 꺾이며 팔이 뒤로 튕겨져 나갔다.
“크아아악!”
락브레이커가 비명을 질렀다. 어깨와 팔뚝, 손목의 관절이 모조리 꺾였다. 사람이 감내할 수 있는 고통이 아니었다.
그때, 권한울의 두 손이 움직였다.
손가락 끝에 용마기가 모여들었다. 칼날처럼 날카로운 예기를 뿜어냈다.
현룡승천공 기본형(玄龍昇天功 基本形)
참격식 쌍수절흔(流格式 雙手絶痕)
권한울의 손이 움직였다. 두 개의 검은 선이 락브레이커의 몸을 순식간에 훑고 지나갔다.
이윽고, 락브레이커의 전신에서 자상이 생겨나며 피가 품어져 나왔다.
“끄, 끄아아악!”
갑자기 들이닥친 새로운 통증에 락브레이커는 다시 비명을 질렀다.
그런 락브레이커를 향해 권한울이 다시 주먹을 쥐었다.
아까 사용했던 붕격식 나선파는 용마기를 방출해서 내부를 파괴시키는데 특화된 기술이다.
강력하지만 락브레이커처럼 마력 차이가 심한 상대한테는 위력이 급감된다. 그렇기에 이번에는 다른 기술을 선택했다.
현룡승천공 기본형(玄龍昇天功 基本形)
붕격식 빙백굉권(筋格式 氷白蟲奉)
주먹을 휘두리기 전에 허리를 먼저 비튼다. 뒤늦게 내지른 권격이 락브레이커의 몸통에 틀어박힌다.
단단하게 응어리진 용마기가 락브레이커의 두터운 근육을 짓이긴다. 그 뒤에 있는 뼈를 부쉈다. 그리고 내장까지 도달했다.
락브레이커는 비명을 지를 틈도 없이 뒤로 날아갔다.
“컥, 커억!”
락브레이커는 바닥에 엎어진 채 괴로워했다. 입에서 피가 왈칵왈칵 터져 나왔다.
권한울이 마무리를 짓기 위해서 락브레이커에게 다가갈 때였다.
등 뒤에서 살기가 날아들었다.
진짜 비수가 날아오는 것처럼 선명하고 날카로웠다. 권한울은 반사적으로 뒤를 돌아봤다.
페르드랑스가 자신을 노려보고 있었다.
“권후돈.”
“어, 어!”
“내가 마무리까지 짓고 싶지만 안 되겠다.”
페르드랑스는 락브레이커의 죽음을 방관할 생각이 없어보였다.
아마 세계랭커쯤 되는 노예를 또 구하기는 힘들기 때문이리라.
“락브레이커는 네가 맡아라.”
“……내, 내, 내가?”
“왜? 힘들 거 같아?”
권후돈의 얼굴에 망설임이 떠올랐다. 하지만 강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니, 할 수 있어.”
“그래, 믿고 맡기겠다.”
그리 말한 뒤, 권한울은 페르드랑스에게 향했다.
“그 짧은 시간에 정이 든 모양입니다. 죽이지 말라고 참견까지 하고.”
“세계랭커 씩이나 되는데. 여기서 죽게 하면 아깝지.”
페르드랑스가 권후돈을 힐끔 바라 보며 물었다.
“멍청한 선택을 했어. 아무리 부상을 입었어도 락브레이커는 세계랭커다. 저 얼간이가 어찌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나?”
“그건 그쪽이 걱정할 일이 아니죠."
권한울은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너무 깔끔한 대답에 페드르랑스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래, 내가 신경 쓸 일이 아니지. 그보다 신경 쓰이는 게 있는데. 네가 입고 있는 그거…… 위버 하인켈의 블랙리버 맞나?”
“맞는데. 왜 그럽니까.”
“역시.”
페르드랑스는 블랙리버 세트를 정신없이 훑어봤다.
“드래곤피어를 사용하고, 세계랭커의 공격을 막을 수 있는 방어구는 많지 않지. 오래 전에 블라가 가문이 가져간 뒤로 아무도 본 사람이 없는데…… 내 앞에 이렇게 떡 하니 나타날 줄이야.”
얼굴과 눈동자에 탐욕이 노골적으로 드러났다.
“오늘은 운수가 좋은 날이야. 세계랭커에 블랙리버 세트까지 수중에 들어오다니."
“줄 생각도 없는데. 망상이 심하시네요.”
“그건 네가 결정할 일이 아니야.”
페르드랑스가 살기를 일으켰다.
“널 죽이고 받아 가면 될 일이니까.”
권한울은 언제든지 공격할 수 있도록 자세를 잡았다. 페르드랑스는 언제든지 오라는 듯이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와라. 흑천의 이름에 경의를 표하는 의미에서 선수를 양보해 주마.”
권한울은 페르드랑스의 제안을 거절하지 않았다. 곧바로 땅을 박차며 달려들었다.
하지만 페르드랑스는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았다. 권한울은 의아하게 생각하면서도 용마기를 일으켰다.
현룡승천공 기본형(玄龍昇天功 基本形)
순격식 탄격(勝擊式 彈格)
가장 빠른 기술을, 가장 빠른 경로로 꽂아 넣는다.
권한울의 주먹이 페르드랑스의 얼굴을 노리고 일직선으로 쏘아졌다.
그때였다.
“하, 한울아!”
권후돈이 다급한 목소리로 외쳤다.
“위험해!”
페르드랑스의 얼굴에 권격이 꽂혔다.
정통으로 맞았음에도 페르드랑스는 멀쩡했다. 어떤 충격도 받지 않는지. 눈조차 깜빡이지 않았다.
“제법 알싸한 주먹이군.”
주먹에 부딪힌 그대로 페드르드랑스가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나한테는 안 돼.”
페드드랑스가 앞으로 튀어나갔다. 권한울의 목덜미를 향해 손날을 내질렀다.
블랙리버 세트의 방호력이 월등하다 한들, 비어 있는 부위까지 막을 수는 없는 법.
섬광과도 같은 일격이 권한울의 목을 꿰뚫었다.
* * *
하지만 그 직전, 권한울이 예상했다는 듯이 옆으로 허리를 숙였다.
손으로 땅을 짚으며 몸을 회전시킨다. 동시에 다리를 휘둘러서 페르드랑스의 머리를 걷어찼다.
엄청난 소리와 함께 페르드랑스의 몸이 뒤로 밀려나갔다.
예상외의 일격을 맞고도 페르드랑스의 얼굴은 멀쩡했다. 하지만 당혹한 기색이 역력했다.
“……어떻게 예상했지?”
혈통들을 복수로 운용한 덕분에 권한울의 수읽기는 예측의 경지에 발을 들이민 상태였다. 이 정도는 놀랍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런 권한울조차 이런 사태는 예상하지 못했다.
<‘???’가 ‘초인혈(超人血)’과 접촉했습니다.> <‘초인혈(超人血)’을 습득합니다.> 권한울의 몸에 격한 변화가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