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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통이 깡패임-76화 (76/221)

<혈통이 깡패임 76화>

76화 역발산 (3)

“……쿨럭.”

페르드랑스는 벽에 박혀 있던 몸을 억지로 빼냈다.

“쿨럭, 쿨럭.”

입에서 계속 피가 터져 나왔다. 죽은피가 아니래 새빨간 생혈이었다. 내상이 극심하다는 증거였다.

“아직 살아 있었네요?”

들려온 목소리에 페르드랑스는 고개를 들었다. 조금 떨어진 곳에 권한울이 서 있었다.

“…….”

온갖 질문이 턱밑까지 차고 올라왔다.

어떻게 자신의 독을 이겨냈는지. 호신기를 박살을 냈는지.

하지만 페르드랑스는 단 하나도 입 밖에 꺼내지 않았다.

물어봤자 소용이 없다는 사실을 이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괴물이라 불리는 것들은 그렇지.”

페르드랑스가 힘겹게 입을 움직였다.

“남들은 이해 못할 일을 본인들은 쉽게 해내. 불가능해 보이는 일도 아무렇지도 않게 성공시키지.”

페르드랑스는 마리아 산체스를 비롯해서 판데모니엄에서 만났던 수많은 괴물들을 떠올렸다.

“……나도 그놈들 중 한 명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하늘이 페르드랑스에게 허락한 재능은 어중간했다.

초인혈은 미약하게 짝이 없었으며, 그나마 적성을 보인 포이즌스킬 역시 한계를 보였다.

무슨 수를 써도 더 이상 강해 줄 수 없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찾은 방법이 환골탈태였는데.

“너 같은…… 괴물 같지도 않은 괴물한테 모든 계획이 어그러질 줄이야.”

페르드랑스는 어깨를 들썩이며 웃었다. 그러다 다시 피를 왈칵 토해냈다.

“최소한 길동무로 데려가고 싶었지만 그마저도 불가능하군…….”

별안간, 권한울의 눈앞에 무언가가 떠올랐다.

<‘마크 그리핀’이 당신에게 스킬을 양도하려고 합니다.> <수락하시겠습니까?>

“……내가 사용하던 아공간 스킬이다…… 내 물건들도…… 그 안에 있으니…… 가져가라…….”

권한울은 놀란 얼굴로 페르드랑스를 쳐다봤다. 페르드랑스는 힘없이 말했다.

“판데모니엄의 규칙…… 승자는 패자의 모든 것을…….”

페르드랑스의 고개가 천천히 숙여졌다. 그리고 두 번 다시 움직이지 않았다.

* * *

권후돈은 가만히 서서 권한울이 싸우는 모습을 바라봤다.

“한울이는 정말 대단하네…….”

판데모니엄의 악인을 상대로 대등하게 싸우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그저 감탄밖에 나오지 않았다.

“대장, 지금 어딜 보는 거요.”

살기등등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권후돈은 그제야 시선을 돌렸다.

“난 앞에 두고 한 눈을 팔다니. 제 정신인 거요? 하긴 제 정신이면 날 막겠다고 나설 리가 없…….”

말하다 말고 락브레이커는 인상을 쓰며 괴로워했다.

애써 괜찮은 척 하고 있었지만 정말로 그럴 리가 없었다.

한쪽 팔은 모든 관절이 부러지고, 몸 곳곳에는 자상이 가득하다. 가슴뼈는 전부 부러졌고, 그 뒤의 내장까지 상하고 말았다.

“많이 괴롭나 보네.”

권후돈의 말에 락브레이커는 헛웃음을 터트렸다.

“하! 대장한테 남을 조롱하는 재주가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군.”

“이제 그만하지 않을래?”

생각지도 못한 말에 락브레이커의 눈동자가 커졌다.

“원래 우리의 적은 페르드랑스였어. 너는 잠복독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명령을 따르는 거였잖아.”

갑자기 락브레이커가 조용해졌다. 따지고 보면 틀린 말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흑천 그룹에 가면 잠복독을 해독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거야. 그럼 싸울 필요가 없어지는 거 아니야?”

“……내일은 해가 서쪽에서 뜨겠군. 대장 같은 모지리의 입에서 설득력 있는 말이 나오다니.”

락브레이커는 피식, 비웃음을 터트렸다.

“그런데 하나만 생각하고 둘은 생각 못하고 있군. 내가 이대로 흑천 그룹으로 돌아간다 한들, 목숨이 안전할까?”

그럴 리가 없다. 흑천 그룹은 배신자를 용납하지 않는다. 게다가 권후돈의 모친인 권미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를 죽이려 들 것이다.

“그리고 권한울, 저딴 애송이한테 이렇게 얻어맞았는데. 이대로 조용히 넘어가라고?”

락브레이커가 으득, 이를 갈았다.

“다른 건 몰라도 권한울 만큼은 못 참아! 그 새끼만큼은 내 손으로 죽여 버릴 거요!”

“그럼 어쩔 수 없지.”

“그래도 옛정이 있으니 대장은 봐주도록 하지. 지금 당장 도망치면 쫓지 않겠어.”

락브레이커가 인심 썼다는 듯이 말했다. 하지만 권후돈은 곧바로 거절했다.

“그럴 수 는 없어.”

“뭐라고?”

“한울이는 날 믿고 널 맡겼어. 그런데 도망칠 수는 없지.”

락브레이커의 얼굴이 잠시 멍해졌다. 이내, 얼굴의 모든 근육이 와락 일그러졌다.

“……내 꼴도 말이 아니군. 이딴 병신 새끼까지 날 우습게보다니.”

락브레이커에게서 살기가 터져 나왔다.

“곱게 죽을 생각은 집어치워라.”

무지막지한 살기가 쏟아졌다. 하지만 권후돈의 얼굴은 굉장히 평온해 보였다.

권후돈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었다. 과거의 그였다면 지금 같은 상황에서 덜덜 떨었을 텐데 말이다.

“……아.”

권후돈은 금방 이유를 깨달았다.

락브레이커보다 권한울이 시킨 일을 완수하지 못하는 게 더 무서웠기 때문이다.

반드시 쓰러트린다.

권후돈은 의지를 가다듬으며 용투기를 일으켰다. 그때, 변화가 일어났다.

<흑룡혈이 눈을 뜹니다.>

흑룡혈은 싸우고자 하는 이에게 강력한 힘을 선사한다.

<순(順) 흑룡혈이 강화됩니다.>

<동화율 44% -> 50%> 44% 이후로 미동조차 하지 않았던 동화율이 순식간에 50%에 도달한다.

<동화율이 50%에 도달했습니다!> <세 번째 권능 ‘명명안(冥溟眼)’을 습득합니다.> <흑룡혈이 당신의 체질에 반응합니다.> <권능 ‘흑린갑(黑鱗鉀)’이 강화됩니다.> 발밑에서부터 검은 비늘이 올라온다. 권후돈의 몸을 빈틈없이 휘감는다.

“대장은 그거밖에 재주가 없는 모양이지?”

락브레이커가 비웃음과 함께 조롱했다. 하지만 잠시 뒤, 미소가 싹 지워졌다.

권한울은 흑린갑을 대량으로 생성해낼 수 있는 특수한 채질을 가지고 있다.

그렇기에 흑린갑을 단순히 방어에만 쓰지 않고, 근육처럼 움직여서 움직임을 강화시킨다.

“……뭐야.”

그런데 지금 권후돈이 만들어낸 흑린갑은 갑옷 수준이 아니었다.

권후돈을 중심으로 흑린갑이 둥근 알을 만들어냈다. 그 알에서 흑린갑이 다시 뻗어나가기 시작한다.

두 팔과 두 다리가 만들어진다. 머리가 고개를 든다.

검은 비늘로 만들어진 거인이 고개를 들었다.

“……대장 지금 무슨 짓을 한 거요.”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대신, 거인의 시선이 락브레이커를 향했다.

그 순간, 락브레이커는 과거에 들었던 말을 떠올렸다.

“……흑천의 혈족은 괴물밖에 없다.”

말을 내뱉는 순간, 락브레이커의 얼굴에 다시 힘이 들어갔다.

“헛소리 하고 자빠졌네!”

락브레이커는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앞으로 튀어나갔다.

오른손은 권한울에게 당해서 움직일 수 없었다. 권격에 직격을 당해서 움직일 때마다 온몸이 쑤신다.

하지만 충분하다.

아니, 차고 넘친다.

땅을 박차며 뛰어오른다. 주먹 하나에 모든 힘을 실어서 거인을 강타했다.

엄청난 폭발이 거인을 집어삼켰다.

그 여파로 락브레이커의 몸이 뒤로 밀려나갔다. 락브레이커는 빠르게 자세를 고쳐 잡았다.

아까 전에는 권후돈을 죽이면 안 됐기에 힘조절을 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럴 필요가 없기에 모든 힘을 쏟아 부었다.

“대장, 그러게 내 충고를 받아들이지 그랬나!”

흑린갑은 물론 권후돈까지 날려버리기에 충분한 일격이다.

락브레이커가 그렇게 확신했을 때였다.

폭발을 헤치며 거인이 멀쩡하게 걸어 나왔다.

“……뭐?”

엄밀히 말해서 멀쩡하지는 않았다. 몸통의 일부분이 날아갔다. 하지만 순식간에 다시 복구가 됐다.

“이…… 이이…… 미친……!”

거인이 주먹을 들어올렸다. 용투기가 주먹을 휘감는다. 마치 불타는 철퇴를 보는 듯 했다.

“자, 잠깐!”

락브레이커가 다급히 두 손을 들어올렸다. 그 위로 거인의 주먹이 내리꽂혔다.

* * *

권한울은 허공에 떠오른 메시지를 가만히 바라봤다.

<탐욕의 보물단지>

-품질 : 레전더리(SS+)

-설명 : 악마들이 인간의 탐욕을 흉내 내서 만든 보관소. 최대 300kg까지 물품을 보관할 수 있다.

무려 레전더리 등급의 아공간 스킬이다.

원래 권한울이 쓰던 아공간 스킬인 ‘도깨비의 비밀창고’는 유니크 등급이라 물품을 최대 50kg까지만 보관할 수 있다.

그에 비하면 탐욕의 보물단지는 300kg.

실로 어마어마한 차이였다.

“이걸 받아야 하나.”

아공간 스킬은 굉장히 유용하고 인기도 많기 때문에 구하기도 힘들고 값도 비싸다.

유니크에 불과한 도깨비의 비밀창고도 시중에 나오면 레전더리급으로 거래가 된다.

그럼 진짜 레전더리 등급인 탐욕의 보물단지는 더 값비쌀 것이다.

하지만 적이 건넸다는 게 어딘가 찜찜했다.

권한울이 고민할 때였다.

<본래 사용자가 사망했습니다.>

<5초 뒤, ‘탐욕의 보물단지’가 소멸합니다.> “수락!”

권한울은 재빨리 수락을 외쳤다.

<스킬의 양도를 수락하셨습니다.>

<‘탐욕의 보물단지’를 습득합니다.> <‘도깨비의 비밀창고’에 있던 물건들이 ‘탐욕의 보물단지’로 양도됩니다.> 지금 아공간 안에는 페르드랑스가 사용하던 것들도 남아 있다.

지금 당장 확인하기에는 시기가 좋지 못하니 나중에 볼 생각이었다.

권한울은 몸을 돌려 다른 사람들을 확인했다.

박살이 난 락브레이커의 옆에서 쉬고 있는 권후돈이 보였다.

시선을 더 옆으로 옮기자 이번에는 손을 흔들고 있는 메이홍이 눈에 들어왔다.

메이홍의 주변에는 팀원들이 베인 상처를 움켜쥔 채 괴로워하고 있었다.

아마 난전을 노려서 두 사람을 노리다가 역으로 당한 모양이었다.

“다들 무사하네.”

그러다 문득 떠올렸다.

“하연 씨는 어떻게 됐지?”

* * *

“다 끝났네.”

마리아 산체스가 난간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두 손으로 바지를 팡팡 털었다.

“그럼 나는 이만 가볼 게.”

“순순히 물러나시는군요.”

“나는 프로야. 돈 줄 사람이 죽었는데. 구질구질하게 남아 있을 필요가 없지.”

마리아 산체스가 저택 쪽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래도 마냥 수확이 없었던 것도 아니네. 덕분에 흑천의 유망주께서 어떤 인물인지 알게 됐으니까.”

마리아 산체스의 눈동자가 게슴츠레하게 감겼다. 그녀를 향해 주하연이 말했다.

“허튼 마음먹지 마세요.”

“아하하, 들켰네. 여기서 죽여 버릴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었는데.”

마리아 산체스는 웃음을 터트렸다.

“충고 하나 해 줄 게.”

“필요 없습니다.”

“혈화검을 조심해.”

주하연의 얼굴이 굳었다. 혈화검이라는 호칭은 쉽게 넘겨들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혈화검 메이샤오.

현재 메이 가문의 잔당을 이끌고 있는 여인으로 이미 젊은 시절에 스승인 매중제일검을 뛰어넘었다는 검수다.

지금 이 순간에도 메이샤오는 흑천 그룹과 권한울에게 복수의 칼날을 갈고 있을 것이다.

“……설마 그들이 움직이고 있는 겁니까?”

“나도 자세한 건 몰라. 다만, 수상쩍은 소식이 자주 들려와서.”

“소식이라고요?”

“에이, 우리 사이에 그런 것까지 알려줄 수는 없지.”

마리아 산체스가 장난스럽게 웃으며 말했다.

“그럼 다음번에야 말로 결판을 내보자.”

그리 말한 뒤, 마리아 산체스는 어디론가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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