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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통이 깡패임-78화 (78/221)

<혈통이 깡패임 78화>

78화 조건부 (1)

임무를 마친 뒤, 권한울은 흑천 일가로 돌아왔다.

당분간은 휴식시간을 가지려고 했으나 아쉽게도 그럴 수는 없었다.

“권한울 님, 회장님께서 오후 12시에 따로 시간을 내라고 하셨습니다.”

모처럼 저택에서 푹 쉬려던 찰나, 주하연이 갑작스럽게 소식을 전해 왔다.

부탁이 아니라 명령이라는 점에서 실로 권선우다웠다.

“회장님께서요?”

“예, 식사를 같이 하자고 하시더군요.”

권한울의 눈동자가 연신 깜빡거렸다.

회장을 대면한 적은 많았지만 식사를 같이한 적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왜 부르신 걸까요.”

“아마 이번 일에 대해서 하실 말씀이 많은 듯 합니다.”

권한울은 시계를 확인했다. 약속시간까지 1시간 정도 남았다.

“바쁘시면 거절하셔도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뭐 그렇게 재미없는 빈말이 다 있대요.”

흑천 그룹의 회장이자 흑천 일가의 가주인 권선우의 명령을 과연 누가 거절하겠는가.

“지금부터 준비해도 빠듯하겠네요.”

어차피 본가 내에 있으니 가는 시간은 얼마 걸리지 않는다. 하지만 회장이 부르는데 대충 입고 갈 수야 없는 노릇이었다.

권한울은 바로 사용인을 불러서 나갈 채비를 했다.

제대로 된 정복을 갖춰 입고 회장이 부른 곳으로 향했다.

* * *

권선우가 권한울을 부른 장소는 본가 근처에 있는 오가산 꼭대기였다.

산봉우리를 통째로 깎아서 평평하게 만든 뒤, 작은 탑을 세워놓았다.

권한울은 탑의 최상층에 서서 창문 밖을 내다보았다.

“와…… 이런 곳이 있었네.”

파란 하늘이 훤히 보이고, 발밑에 산맥이 쭉 늘어서 있는 모습이 장관이었다.

그때,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권선우가 경호원들과 함께 들어왔다.

권선우는 권한울을 보자마자 인상을 쓰며 말했다.

“품위 없이 행동하지 마라.”

다짜고짜 이런 소리를 들으니 권한울도 괜히 억울해졌다.

“제가 뭘 했다고 그러십니까.”

“보나마나 밖을 내다보면서 놀라고 있었겠지.”

정확히 맞추자 권한울도 더 이상 억울한 티를 낼 수가 없었다.

“앉아라.”

권선우가 탁자를 가리켰다.

이 넓은 플로어에 딱 하나 있는 탁자였다. 일반 식당이었다면 굉장히 비효율적인 배치였겠지만 여기서는 문제없었다.

오로지 권선우만을 위한 장소였으니 말이다.

권한울은 탁자에 앉았다. 조금 기다리자 사용인들이 음식을 내왔다.

회장을 위해서 준비된 음식답게 냄새부터 사람의 위장을 요동치게 만들었다.

그러나 권한울은 음식 맛을 제대로 즐길 수 없었다. 이건 엄연히 회장과의 면담이었기 때문이다.

“조개가 살이 통통하게 올랐군.”

하지만 정작 회장은 아무 말도 없이 묵묵히 음식을 입에 넣기만 했다.

“저를 왜 보자고 하신 겁니까?”

결국 참다못한 권한울이 물었다. 회장은 눈썹을 치켜 올리며 권한울을 쳐다봤다.

“원래 그렇게 성격이 급했느냐.”

“평소에는 느긋한데. 지금만큼은 급해지려고 합니다.”

“못난 놈. 남이 식사를 할 때는 얌전히 기다려야 하는 법이다.”

핀잔을 주면서도 회장은 식기를 내려놓았다.

“이번 일은 수고했다.”

권한울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회장의 입에서 이렇게 쉽게 칭찬이 튀어나오다니?

“죄송하지만…… 회장님 맞으십니까? 혹시 누가 변장한 건 아니고요?”

“이 놈이 미쳤나. 갑자기 개소리를 지껄이는구나.”

폭언이 아무렇지도 않게 툭 튀어나오는 걸로 봐서는 회장이 맞는 거 같았다.

권한울은 더더욱 혼란스러웠다. 그럼 정말 회장이 자신을 칭찬했단 말인가.

“타카미네 료코를 무사히 보호한데다 그룹을 배신한 락브레이커를 처치하고, 페르드랑스한테서 승리…… 솔직히 말해서 기대이상의 성과다.”

회장은 손가락으로 탁자를 톡톡 두드리기 시작했다.

“아니지, 예상치 못한 성과라고 말하는 편이 옳겠군. 설마 네가 페르드랑스를 죽일 줄은 몰랐으니까.”

회장의 눈빛이 살짝 가라앉았다.

“대단하기는 하지만 의문이 들기도 하는구나. 이게 정말…… 진혈이라는 말로 가능한 성과일까 하고 말이다.”

권한울은 내심 뜨끔했다.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권선우의 두 눈동자가 지긋이 권한울을 응시했다. 권한울은 애써 속마음을 숨기며 말했다.

“흑천 일가는 세계최고라는 하셨잖습니까. 그럼 진혈인 제가 이 정도도 못하겠습니까?”

일리가 있는 말이라고 생각한 것인지. 권선우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맞는 말이군.”

“말로만 끝내실 생각은 아니죠?”

당연하다는 듯이 보상을 요구하는 권한울의 모습에 회장은 헛웃음을 터트렸다.

“그래, 네 말이 맞다. 너는 정당한 보상을 받을 자격이 있다.”

“감사합니다.”

“비고를 개방하도록 하겠다.”

그 말에 권한울의 눈동자가 커졌다.

“팀원들과 함께 들어가서 원하는 물건을 하나씩 가져 오거라.”

“……정말이십니까?”

“판데모니엄의 악인을 쓰러트렸으니 그만한 대가를 받을 자격이 있지.”

흑천 비고에는 흑천 일가가 얻은 모든 보물들이 잠들어 있다.

그런 곳을 권한울 한 명도 아니고 팀원들까지 포함해서 이용할 수 있다니.

정말 엄청난 특권임이 틀림없었다.

“그 외에 부탁할 게 있느냐?”

심지어 권선우는 이번 일의 보상을 비고의 이용으로 끝내지 않고 물어보기까지 했다.

“예, 있습니다.”

“말해봐라.”

권한울은 기다렸다는 듯이 종이를 한 장 꺼내서 권선우에게 내밀었다.

“이게 뭐냐?”

“거기 있는 약재들을 구해 주셨으면 합니다.”

권선우는 종이에 적힌 내용물을 읽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날 수 록 미간이 좁아졌다.

“태양초의 뿌리에 빙백화의 꽃잎…… 만드레이크의 열매에…….”

권선우가 종이에서 시선을 떼고 권한울을 쳐다봤다.

“돌아버린 것이냐?”

예상했던 반응이라 권한울은 그리 놀라지 않았다.

종이에 적힌 약재들은 능력치를 격상시켜주는 효능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신체를 회춘시킨다거나 손상된 뇌를 복원시키는 등등.

무척이나 희귀한 효능을 가지고 있기에 엄청난 고가에 거래가 됐다.

가격을 다 합치면 흑천 그룹이라 해도 부담스러울 정도였다.

“타카미네 가문에게 환골탈태를 부탁할 생각이냐?”

“그건 또 어떻게 아신 겁니까?”

“그 정도 정보도 몰라서야 어떻게 이 자리에 앉아 있겠느냐.”

권선우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지만 권한울은 섬뜩함을 느껴야했다.

타카미네 가문이 최근에야 간신히 만들어낸 시술법이다. 타카미네 가문 내에서도 알고 있는 사람이 몇 없다.

그런데 권선우는 당연하다는 듯이 약재 목록까지 파악하고 있었다.

“환골탈태…… 나쁘지 않지. 모든 최고수들이 환골탈태를 경험한 것은 아니지만 환골탈태를 경험한 놈들은 모두 최고수가 되었으니.”

권선우는 고심 끝에 말했다.

“못 구해다줄 것도 없지.”

“정말이십니까?”

“대신, 조건이 있다. 네놈이 페르드랑스에게서 얻은 독을 전부 넘겨라.”

“그거 어디다 쓰시려고요?”

“그만큼 강력한 독을 구하기가 쉬운 줄 아느냐. 가지고 있으면 여러모로 도움이 많이 된다.”

그 정도 조건은 어렵지 않았다. 어차피 권한울이 가지고 있어봤자 쓸모가 없었으니 말이다.

“마지막으로 흑천의 명성을 높여라. 그럼 넘겨주도록 하마.”

“예?”

권한울은 인상을 쓰며 되물었다. 조건이 너무 모호했다. 명성을 알리라니?

권한울의 의문을 알아차렸는지. 권선우의 얼굴에 묘한 미소가 떠올랐다.

“걱정마라. 방법은 이미 찾아놨으니.”

그때, 경호원 한 명이 권선우에게 귓속말을 했다. 권선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마침 적당한 때에 도착했구나. 곧 간다고 전해라.”

“알겠습니다.”

아직도 음식이 남아 있었음에도 권선우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자. 만나야할 사람이 있다.”

* * *

권선우가 권한울을 데려간 곳은 손님을 접대하기 위한 응접실이었다.

안에는 이미 두 사람이 앉아 있었다. 노인과 젊은 청년이었다.

권선우가 들어오자 두 사람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숙였다.

“회장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권선우는 노인과 손을 맞잡고 악수했다. 서로 굉장히 친밀한 사이처럼 보였다.

“먼 길을 오느라 수고했네.”

“수고라뇨. 이 중요한 소식을 알릴 수 있다는 기대감에 그런 건 이미 잊었습니다.”

권선우는 크게 웃었다. 그런 뒤, 권한울을 향해 말했다.

“인사해라. 라사드 가문에서 온 압둘 라사드다.”

“권한울이라고 합니다.”

권한울은 그리 말하며 허리를 숙였다. 노인, 압둘 라사드는 껄껄 웃음을 터트렸다.

“변변찮지만 라사드 가문에서 특급 조율사로 있는 압둘 라사드라고 합니다.”

권한울의 얼굴에 연신 의문이 떠올랐다. 라사드 가문도, 특급조율사라는 호칭도 처음 들어봤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권선우가 일찌감치 권한울의 상태를 알아차리고 설명했다.

“라사드 가문은 중동에 자리를 잡고 있는 가문으로 전 세계에서 유일무이한 중립 가문이다.”

“중립가문이라고요?”

“어떤 세력도 라사드 가문을 건드려서는 안 되고, 라사드 가문 역시 특정 가문을 편들어서는 안 된다. 그런 협약이 되어 있지.”

실로 파격적인 협약이었다.

권한울은 놀란 얼굴로 압둘 라사드를 다시 쳐다봤다. 압둘 라사드는 말없이 미소를 지었다.

“그리 대단한 건 아닙니다. 저희 가문이 보유하고 있는 혈통이 조금 특이한 덕분입니다.”

“겸손이 과하군. 라사드 가문의 조율사들에게 도움을 받은 헌터들이 수두룩하거늘.”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압둘 라사드는 환하게 웃은 뒤, 말했다.

“저희 가문에 대해서 잘 모른다면 천재혈에 대해서도 모르시겠군요.”

“죄송하게도…… 예?”

권한울은 놀라서 소리쳤다.

“천재혈이라고요?”

“하하핫, 이름과 달리 정말로 천재가 되는 건 아닙니다. 사고를 확장시킴으로서 남들은 모르는 것을 알게 해 주는 혈통이죠.”

모를 리가 없다. 현재 권한울이 보유하고 있는 혈통 중 하나니까.

사고의 확장은 물론 정신공격에 대한 방어, 그리고 사물의 구조와 저주의 해 주가 가능한 만능혈통이라고 할 수 있었다.

“천재혈의 권능이 있으면 헌터들의 상태에 대해서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자면 신체가 균형적으로 발달했는지. 안 좋은 버릇은 없는지. 이런 것들이죠.”

하지만 압둘 라사드가 말하는 천재혈은 권한울이 알고 있는 것과 조금 달랐다.

“아무리 뛰어난 헌터라도 안 좋은 버릇 한두 개쯤은 가지고 있기 마련이죠. 저희 라사드 가문은 그런 문제점을 파악하고, 수정하는 일을 업으로 삼고 있습니다.”

문제점의 수정.

이렇게 들어보니 권한울이 소유하고 있는 진(眞) 천재혈과 통하는 면이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진(眞) 천재혈의 하위 능력이 분명했다.

권한울이 이미 경험해봤다시피 진혈은 하위 혈통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대단한 권능을 가지고 있었으니 말이다.

“설명을 들으셔도 와 닿지 않으실 겁니다. 한 번 직접 체험해 보시죠.”

별안간 압둘 라사드의 얼굴이 진지해졌다.

날카로운 눈동자로 권한울의 몸 곳곳을 살펴봤다. 이내, 놀라움이 번졌다.

“……이거 놀랍군요.”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반대입니다. 흠잡을 곳이 없습니다.”

아무래도 믿기지 않는다는 듯 압둘 라사드는 말을 하는 내내 권한울의 몸을 살폈다.

“뼈의 균형도 완벽하고, 근육도 고르게 발달되어 있군요. 이렇게 완벽한 신체는 처음 봅니다.”

그리 말하며 압둘 라사드는 고개를 갸웃했다.

“기묘한 일이군요. 아무리 철저한 헌터라도 마력이 흐트러지는 지점 한두 개쯤은 있기 마련인데. 권한울 님한테는 그런 게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이유는 짐작이 갔다.

권한울이 보유하고 있는 천재혈은 진혈이다. 그렇기에 자신도 모르게 나쁜 버릇이 고쳐진 게 아닐까.

“아, 실례를 저질렀군요. 너무 놀라운 일이라…….”

압둘 라사드는 끝까지 권한울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그때, 권선우가 그에게 물었다.

“옆에 있는 젊은이는 누구지?”

권선우의 시선이 압둘 라사드와 함께 온 청년에게 향했다.

“흑천의 주인을 뵙습니다!”

청년은 곧바로 바닥에 무릎을 꿇으며 말했다.

“스티븐 바벨이라고 합니다.”

남자의 이름은 몰라도 바벨이라는 성씨에 대해서는 권한울도 여러 번 들어본 적이 있었다.

바벨 가문.

용심혈(龍心血)이라 불리는 드래곤의 혈통을 보유하고 있는 가문.

용과 드래곤.

서로 별개의 생물이지만 용종이라는 점에서는 똑같다. 자연스럽게 흑천 일가와 바벨 가문은 자주 비교의 대상이 되었다.

동양에 흑천 일가가 있다면 서양에는 바벨 가문이 있다고 불릴 정도였다.

그만큼 두 가문의 사이는 썩 좋다고 말할 수 없었다.

“바벨?”

권선우는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바벨 가문의 사람이 왜 여기에 있지?”

“압둘 라사드 님께 조율을 부탁드리기 위해서 바벨 가문으로 모시는 도중입니다.”

“흠.”

권선우는 턱을 매만지며 말했다.

“바벨 가문의 사람을 이곳에 들일 생각은 없었는데.”

권선우의 한 마디가 주변을 무겁게 짓눌렀다. 스티븐 바벨은 침을 꿀꺽 삼켰다.

스스로를 최고로 여기는 흑천 일가가 비교대상으로 여겨지는 바벨 가문을 곱게 여길리 없었다. 그 점은 바벨 가문도 마찬가지였다.

즉, 두 가문의 사이는…….

“조금 불쾌하군.”

험악할 정도로 좋지 못했다.

스티븐 바벨은 식은땀을 뻘뻘 흘렸다. 권선우는 이내 살기를 거둬들였다.

“농담일세.”

누가 봐도 농담이 아니었다. 바벨 가문의 사람이라 괜히 기를 죽여 놓은 게 눈에 뻔히 보였다.

“어쨌든 이쪽도 귀한 손님이로군. 인사하도록 해라.”

“반갑습니다.”

권한울은 기다렸다는 듯이 인사를 했다. 바벨이라는 이름을 들었을 때부터 노리는 게 있었다.

“권한울입니다.”

권한울은 재빨리 손을 내밀었다. 스티븐 바벨은 권선우의 눈치를 살피며 그 손을 맞잡았다.

<‘???’가 ‘용심혈(龍心血))’을 감지합니다.> 메시지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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