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통이 깡패임 92화>
92화 호세 딜 파블로 (2)
리카르도 파블로는 혼란스러움을 넘어서 어떤 상황인지 전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조카인 호세 딜 파블로에게 살해당한다 싶었더니 웬 괴한이 납치를 당하고 만 것이다.
“이, 이보게.”
리카르도 파블로가 괴인을 향해 말했다. 하지만 괴인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리카르도 파블로를 어깨에 짊어진 채 건물 옥상을 뛰어넘을 뿐이었다.
“자, 자네는 대체 누구인가? 누구인데 나를…….”
별안간 괴인이 멈춰 섰다. 어느새 도시 밖에 있는 황야에 도착해 있었다.
“이럴 수가?”
그 짧은 시간에 도시를 벗어나다니. 파블로 패밀리의 전투원들 중에서 이 정도로 빠른 이는 존재하지 않았다.
“일단 고맙다는 인사를 해야겠군. 자네 덕분에 목숨만은…… 컥!”
대뜸 괴인이 리카르도 파블로의 멱살을 움켜쥐었다.
“가르시안 가문에 대해서 알고 있나?”
“커, 컥! 이, 이것부터 놓고…….”
“질문에 대답해라. 가르시안 가문에 대해서 알고 있냐고 물었다.”
“그, 그게 뭔지 설명부터…… 커억!”
괴인은 리카르도 파블로를 땅바닥에 내동댕이쳤다.
“역시 모든 일은 호세 딜 파블로가 주도했군.”
“대, 대체 자네는…….”
“스마트폰.”
“뭐, 뭐라고?”
“스마트폰을 내놓으라고 했다.”
행여나 또 폭력을 휘두를까 싶어서 리카르도 파블로는 황급히 스마트폰을 꺼내서 내밀었다.
괴인은 스마트폰을 쥐고 무언가를 한참 조작하기 시작했다.
그 사이, 리카르도 파블로는 괴인의 얼굴을 살폈다. 아무리 봐도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아니, 처음 보든 말든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지금은 어떻게든 이 괴한을 설득해서 목숨을 보존하는 게 급했다.
“이대로 날 놔주면 안 되겠나? 그럼 내 사례는 섭섭지 않게…….”
“시끄럽다.”
괴인이 살기를 담아 말했다.
“넌 그저 호세 딜 파블로를 꾀어내기 위한 미끼에 불과하다. 그러니 미끼답게 입 다물고 가만히 있어.”
* * *
“이건 또 어떤 개새끼야!”
호세 딜 파블로가 고함을 지르며 발을 굴렀다.
안 그래도 잔해밖에 남지 않은 건물이 완전히 가루가 되어 가라앉았다.
그때, 또 다른 메시지가 도착했다.
포박되어 있는 리카르도 파블로의 사진과 약속장소의 위치가 적혀 있었다.
“이 개자식이…….”
분노하는 한 편, 호세 딜 파블로는 냉정하게 생각했다.
다른 누구도 아니고 자신의 코앞에서 리카르도 파블로를 납치해간 인물이다.
이렇게 감정에 휩쓸려서 상대할 적이 아니었다.
“설마 그 놈인가?”
호세 딜 파블로는 최근에 카르텔의 조직원들을 살해하고 다니던 흉수를 떠올렸다.
“곤란하게 됐군.”
본래는 리카르도 파블로부터 처리하고 천천히 패밀리를 장악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이대로 리카르도 파블로를 놓친다면 모든 계획이 수포로 돌아간다.
물론 납치범이 이대로 리카르도 파블로를 죽일 수도 있지만 확신할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다시 스마트폰이 울렸다. 납치범인가 싶어서 호세 딜 파블로는 재빨리 전화를 받았다.
“너! 정체가 뭐야! GG라는 개 같은 이니셜 말고 본명을 말해!”
-갑자기 무슨 소리세요?
그러나 전화를 건 사람은 GG가 아니라 에슐리였다.
너무 흥분한 탓에 발신자도 확인하지 않고 전화를 받고 말았다.
-GG라뇨?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난 거죠?
“아, 그게 말이지…….”
호세 딜 파블로는 에슐리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스마트폰 너머로 한숨소리가 들려왔다.
-……리카르도 파블로를 놓쳤다고요?
“걱정하지 마. 반드시 찾아내서 마저 처리할 테니까.”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에요. 흑천 그룹에서 던전을 수송할 준비를 끝마쳤어요.
호세 딜 파블로가 미간을 좁혔다. 아니, 벌써?
-곧 떠날 계획이래요.
“그러면 던전 고정화 방법을 알아낸다는 갓파더의 계획은?”
-실패하는 거죠. 당연한 걸 왜 물어요?
호세 딜 파블로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리카르도 파블로를 빨리 처리하지 못하면 패밀리를 장악할 수 없다.
흑천 그룹을 막지 않으면 갓파더의 계획에 방해가 된다.
그렇다고 두 개를 동시에 처리할 수는 없었다. 둘 다 호세 딜 파블로의 무력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어떻게든 흑천 그룹의 발을 묶어놔.”
호세 딜 파블로는 우선 리카르도 파블로부터 해결하기로 했다.
일단 패밀리를 장악하는 게 먼저라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GG라는 수수께끼의 적을 두고 다른 일에 열중할 수는 없었다.
-저보고 시간을 끌라고요?
“그래, 무슨 방법이든 좋으니까. 붙잡아 놓기만 해. 최대한 빨리 외숙부를 처리하고 올 테니까.”
에슐리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마음에 안 든다는 투였지만 지금으로서는 뾰족한 수가 없었다.
“갓파더를 위해서다. 도와줄 수 있지?”
게다가 갓파더를 거론하니 도무지 거절할 수가 없었다.
-알겠어요. 대신 리카르도 파블로를 최대한 빨리 죽이고 와야 해요.
그리 말하며 에슐리가 전화를 끊었다.
호세 딜 파블로는 GG에게서 온 문자를 다시 확인했다.
“항구잖아?”
* * *
“알겠어요. 대신 리카르도 파블로를 최대한 빨리 죽이고 와야 해요.”
에슐리는 전화를 끊었다. 골치가 아프다는 듯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계획이 엉망이 되셨나 봅니다.”
운전석에 있던 남자가 말했다. 에슐리는 무언의 긍정을 했다.
“내일은 해가 뜨자마자 흑천을 찾아가야겠어.”
“괜찮으시겠습니까?”
“무슨 뜻이야?”
“그게…….”
운전자가 말꼬리를 흐렸다.
“호세 딜 파블로 님도 없이 흑천의 헌터들을 건드려도 되는지 걱정이 됩니다.”
“건드리기는 뭘 건드려. 못 가게 붙잡아 두는 것뿐이야.”
“그렇지만…….”
운전자는 침을 꿀꺽 삼켰다.
“흑천 그룹에 대해서 안 좋은 소문을 너무 많이 들어서요. 던전 때문에 조금 감정이 상했다는 이유로 길드 하나를 전멸시킨다거나…… 자신들의 말을 무시했다면서 가문과 전쟁을 벌인다거나…….”
에슐리도 익히 들어본 소문들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리 걱정하지 않았다.
“잘못해서 그 자리에서 전투가 벌어지면…….”
“소문은 과장되기 마련이야.”
사람들의 입을 거치면 고양이도 호랑이로, 봄바람도 태풍으로 변하는 법이다.
“그리고 여기가 어딘지 잊었어? 멕시코야. 카르텔의 영역이란 말이야. 그에 비해서 흑천에서 보낸 헌터들은 총 몇 명이지?”
명확하다 못해서 절대적인 전력 차다.
흑천의 헌터들도 머리가 있다면 결코 함부로 행동하지 못할 것이다.
“그래도 저쪽에서 전쟁을 시작하기라도 하면…….
“지금 이곳에 와 있는 부대는 무명부대야. 흑천 그룹 내부에서 위치가 굉장히 낮다는 뜻이지.”
구성원들에 대한 조사도 이미 끝마쳤다.
다들 특이한 이력을 가지고 있는데다 실력도 대단히 뛰어나다. 흑천 그룹 내에서 어느 정도 인정도 받고 있다.
하지만.
“무명부대의 권한이라고 해봤자 뻔하지. 전쟁? 그런 걸 걔들이 결정할 수 있을 것 같아?”
절대로 불가능하다.
“혹시 더 높은 직급에 있는 사람이 오면 모르겠지만…… 올 리가 없지.”
에슐리는 딱 잘라 말했다.
“그러니 쓸데없는 걱정은 그만하고 운전이나 해.”
* * *
던전의 고정화 작업이 끝나고 다음 날.
호텔에서 머물고 있던 권한울은 갑작스러운 손님을 맞이해야 했다.
“고모님?”
권미가 찾아온 것이다.
당황스럽게 짝이 없는 일이었다. 물론 던전의 고정화가 끝났으나 수송대를 맡은 권미가 오는 것이야 당연한 일이었지만.
“오늘 저녁에 오신다고 말씀하셨던 것 같은데요.”
고정화된 던전의 무게는 어마어마하게 무겁다. 택배처럼 트럭 한대를 보낸다고 될 일이 아니다.
대형 수송 헬기 여러 대와 호위를 맡을 경비대까지 움직여야 하는 대작업이었다.
“수송대는 그렇지.”
“그럼 고모님께서는 왜?”
“후돈이 얼굴도 좀 보고…… 너한테 당부할 말이 있어서 왔단다.”
권한울이 의아하게 여길 때였다. 방문이 열리며 권후돈이 들어왔다.
“어, 엄마?”
“후돈아!”
권미의 방문은 권후돈조차 의외였는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런 권후돈을 권미가 양팔 가득 끌어안았다.
“던전은 어땠어? 다친 곳은 없고?”
“나는 괜찮아.”
권한울은 잠시 기다렸다.
권미의 말이 신경 쓰였으나 둘을 방해할 정도는 아니었다.
“아, 그렇지.”
수차례 권후돈의 안부를 묻고 나서야 권미는 다시 권한울에게 시선을 돌렸다.
“혹시 파블로 패밀리…… 아니, 카르텔 쪽에서 수상한 움직임을 보이지는 않았니?”
“없었던 것 같은데…… 혹시 무슨 문제라도 생긴 겁니까?”
권한울의 얼굴이 심각해졌다. 권미 정도 되는 인물이 직접 찾아왔을 정도면 심상치 않은 일이 생긴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문제가 생긴 건 아닌데…….”
그런데 권한울의 걱정과 달리 권미는 고개를 저었다.
“좀 수상쩍은 사람이 너한테 관심을 보이고 있어서.”
“수상쩍은 사람이라뇨?”
“자세한 건 묻지 마렴. 어쨌든 수상쩍은 일은 없었다 이거지?”
권한울은 맞다고 대답하려다 호세 딜 파블로의 얼굴을 떠올렸다.
하지만 이내 머릿속에서 그 얼굴을 지워버렸다. 호세 딜 파블로가 시비를 걸기는 했지만 권미가 말한 수상쩍은 행동이라 하기는 어려웠다.
무엇보다 파블로 패밀리의 수장인 리카르도 파블로는 권한울에게 호의적으로 행동하는 중이다. 별일이 있을까 싶었다.
“혹시라도 파블로 패밀리에서 그런 행동을 한다면 바로 나에게 연락하렴.”
“알겠습니다.”
“꼭이야.”
“명심하도록 하겠습니다.”
권미가 몇 번이고 신신당부를 했다.
그때, 벽면에 걸려 있던 호텔인터폰이 울렸다. 권한울은 뭔가 싶어 전화를 받았다.
-권한울 님, 이른 시간부터 죄송합니다.
주하연의 목소리가 들렸다.
“하연 씨? 무슨 일 있으세요?”
-파블로 패밀리에서 사람을 보냈습니다.
순간,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하필 권미가 경고를 하자마자 파블로 패밀리에서 손님이 오다니.
“호텔 라운지에서 보자고 말을 전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권한울은 전화기를 내려놓았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권미가 말했다
“나도 같이 가자꾸나.”
“고모님께 그런 수고를 끼칠 수는…… 그냥 저 혼자 갔다 오겠습니다.”
“아니야, 꼭 확인해볼 일이 있단다.”
그리 말하며 권미는 기어코 따라 나섰다.
* * *
호텔 라운지에 도착하자 라틴계 미녀가 권한울을 반겼다.
“처음 뵙겠습니다. 에슐리 마시에우라고 합니다.”
말투와 행동부터 당당하다. 자신의 능력에 대단한 자신감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권한울이라고 합니다.”
“알고 있습니다.”
에슐리가 웃으며 말했다.
“그 유명한 흑천의 마녀께서는 같이 안 오셨나보네요.”
지금 라운지에 있는 사람은 권한울과 에슐리 단 둘 뿐이었다.
사실 권미가 한 명 더 있었지만 논외였다.
처음부터 자신이 나서면 저쪽에서 몸을 사릴 테니 숨어 있겠다며 앞에 나서지 않았기 때문이다.
“무슨 용무로 오신 겁니까?”
“긴 말은 하지 않겠습니다. 이번 계약 조건을 다시 논해야할 것 같아서요.”
권한울의 미간이 좁아졌다. 반면 에슐리는 여전히 웃고 있었다.
“이미 거래는 끝난 걸로 알고 있는데요.”
“그렇죠. 하지만 상황이 좀 달라져서요.”
“계약이라는 게 그렇게 쉽게 바뀌는 줄 몰랐군요.”
“어제 파블로 패밀리의 주인이 바뀌었습니다.”
권한울의 미간이 더욱 좁아졌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리카르도 파블로 님께서 조직의 보스 자리를 호세 딜 파블로 님께 이양하셨습니다.”
권한울은 저번 날에 봤던 리카르도 파블로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렇게 정정한 인간이 갑자기 보스 자리를 넘길 리가 없다.
분명 강압적인 무언가가…….
“반란이라도 일으켰나 보군.”
에슐리는 그저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
“그래서 그 일과 우리의 계약이 무슨 연관이 있는 겁니까?”
“당연히 연관이 있죠. 파블로 패밀리의 보스가 바뀌었으니 계약을 다시 논해야죠.”
“못하겠다면?”
권한울의 말에 에슐리는 팔짱을 끼며 의자에 몸을 기댔다.
몹시 거만한 자세였다.
“흑천의 명성이 높다지만 지금 당신이 두 다리를 짚고 서 있는 곳이 어딘지 다시 한 번 고려보시는 게 어때요?”
“무력을 행사하시겠다?”
“호세 딜 파블로 님께서는 갓파더의 지지를 받고 계세요. 여차하면 파블로 패밀리뿐만 아니라 남미의 카르텔 전체가 나설 거예요.”
권한울은 웃음을 터트렸다.
몹시 같잖다는 듯이.
“돌아버린 건가?”
권한울의 말에 처음으로 에슐리가 불쾌한 기색을 드러냈다.
“함부로 말씀하지 마세요.”
“무슨 속셈인지는 모르겠지만…… 시간을 잘못 잡았어. 하여간 댁도 재수가 더렵게 없군.”
권한울이 시선을 옮겼다. 에슐리는 자신도 모르게 권한울을 따라 시선을 돌렸다.
누군가 둘이 앉아 있는 곳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그 여인의 얼굴을 본 순간, 에슐리는 경악했다.
“다, 당신은…….”
에슐리는 금방 권미를 알아봤다.
“왜, 왜 여기에…….”
“다시 한 번 말해봐.”
“예, 예?”
“방금 뭐라고 지껄였는지 말해 보라고.”
권미가 분노에 가득 찬 얼굴로 말했다.
“계약 조건이 뭐? 처지를 다시 고려해?”
“그, 그게…….”
“감히 이런 촌에서 똥개들 대장노릇이나 하던 약팔이 새끼들이 흑천을 능멸해?”
“느, 능멸한 게 아니라…….”
권미가 에슐리의 멱살을 움켜쥐고 들어올렸다.
“꺄, 꺄악!”
에슐리가 비명을 질렀다. 그 소리에 대기하고 있던 그녀의 경호원들이 들이닥쳤다.
“에슐리 님!”
“그 손 놓지 못해!”
경호원들이 고함을 질렀다. 그 순간, 권미가 기세를 일으켰다.
그 순간, 라운지에 있던 모든 유리가 깨져나갔다.
압도적인 기운에 경호원들의 얼굴이 창백하게 변했다.
“살고 싶으면 숨소리도 내지 말고 엎드려 있어.”
권미의 한 마디에 경호원들이 납작하게 엎드렸다.
“에슐리라고 했지?”
권미가 다시 에슐리를 향해 말했다. 에슐리는 황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자세한 꿍꿍이는 모르겠지만 누가 사주했는지는 짐작이 가. 권혁이지?”
“무, 무슨 말씀이신지…… 컥!”
“함부로 입 열지 마.”
권미가 손에 더욱 힘을 주었다.
“이럴 때는 굳이 귀찮게 머리 쓸 거 없지. 너희들이 원하는 대로 시작해 주지.”
“뭐, 뭘…….”
“전쟁.”
권미가 한 마디를 내뱉었다. 에슐리의 얼굴이 창백하다 못해 죽은 사람처럼 거무죽죽하게 변했다.
“흑천이 어떤 곳인지 너희 약팔이 새끼들 대가리에 때려 박아주마.”